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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눈

시진핑 시대 중국의 발전 모델은 싱가포르

정리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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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淸史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임계순 교수, 《중국의 미래, 싱가포르 모델》 출간
‌⊙ 1978년 싱가포르의 발전상에 충격받은 덩샤오핑, “내 꿈은 중국에 싱가포르 같은 도시를 1000개 세우는 것”
‌⊙ 중국-싱가포르, 쑤저우공업단지, 톈진생태도시, 광저우 지식도시 합작 건설… 싱가포르의 도시발전·관리·운영, 사회보장·조직관리·서비스·체계 등 전수
‌⊙ “시진핑, 싱가포르 본받아 부패척결 등 달성한 후 리콴유처럼 ‘上皇’이나 ‘資政’으로 물러나 영향력 행사할 것”
쑤저우공업단지는 싱가포르의 경제·사회개발경험이 중국에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이다. 사진=조선일보DB
  임계순(任桂淳·73)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는 청사(淸史)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기자는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가 쓴 《만주족의 역사》라는 책을 읽다가 임계순 교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임 교수는 청나라의 핵심 무력(武力)이었던 팔기(八旗)의 지방 주둔군인 ‘청조만주팔기주방(淸朝滿洲八旗駐防)’에 대한 연구로 특히 유명하다.
 
  그런 임 교수가 최근 《중국의 미래, 싱가포르 모델》이라는 책을 펴냈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 때는 마침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미북(美北)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이 싱가포르에 집중되어 있던 무렵이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와 2부는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중국 역대 정권, 특히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싱가포르 모델에 깊은 관심을 가져 왔다는 사실과 함께 중국-싱가포르 합작으로 건설된 쑤저우(蘇州)공업단지, 톈진(天津)생태도시, 광저우(廣州)지식도시 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3~5부에서는 중국의 모델이 되고 있는 싱가포르의 국가경영과 정체성(正體性) 확립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발간 이후 여러 매체의 서평란에서 이 책을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6주 만에 2쇄 인쇄에 들어갔다.
 
  중국의 발전에 대한 책이나 리콴유(李光耀·1923~2015. 재임 1959~1990) 전 총리와 싱가포르에 대한 책들은 좀 읽어보았지만, 두 나라를 접목(接木)한 책은 처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浮上)한 중국도, 작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부국(富國)이 된 싱가포르도 더 나은 미래,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야말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서초동 남부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는 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을 원활하게 전달하기 위해 인터뷰 형식을 지양(止揚)하고 내용을 정리했다. 《중국의 미래, 싱가포르 모델》의 순서와는 달리 중국이 모델로 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앞에, 중국의 사례를 뒤에 제시한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현재 한국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만한 제도와 정책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중국의 경우는 쑤저우·톈진·광저우 합작사례, 시진핑 정권하에서 중국의 정치개혁 가능성 등을 주로 보여주기로 한다.
 
 

 
1978년 11월 싱가포르를 방문한 덩샤오핑은 싱가포르의 발전상과 리콴유의 리더십에 큰 감명을 받았다.
  1978년 11월 중국의 덩샤오핑은 부총리 자격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이때 덩샤오핑은 1918년 프랑스로 유학 가는 길에 들렀던 싱가포르는 낙후한 항구도시에 불과했는데 아주 깨끗하고 선진적인 도시로 변모한 것을 보고 놀랐다. 74세의 덩샤오핑은 아주 격앙된 심정으로 리콴유 총리에게 싱가포르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리콴유는 이렇게 말했다.
 
  “싱가포르에 온 중국인들은 모두 광둥성이나 푸젠성에 한 뼘의 땅도 없었던,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후예입니다. 중원(中原)에는 관리, 문인, 학사, 장원(壯元)의 후예들이 많은데, 싱가포르같이 만드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중국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만들어도 이보다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가 외국자본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와 싱가포르의 경제건설과 사회관리를 보고 온 덩샤오핑은 이후 싱가포르를 거울삼아 국가를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중국의 개혁개방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덩샤오핑은 생전에 중국에 싱가포르 같은 도시 1000여 개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개국공신으로 재무부 장관·국방부 장관·부총리 등을 역임한 고켕스위(吳慶瑞·1918~2010)를 1985년부터 중국 국무원 경제고문으로 초청, 직접 싱가포르의 경험을 받아들였다. 고켕스위는 6년간 중국의 첫 외국 고문으로 활동하며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와 샤먼(厦門) 4곳의 경제특구 발전과 세계 각국 기업들의 생산 공장 유치 및 관광산업에 관해 조언했다.
 
 
  난양이공대학은 중국 공산당 ‘해외당교’
 
  경제개혁의 선두 지역인 선전 특구는 처음에는 홍콩을 모델로 삼았으나 곧 싱가포르를 본보기로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싱가포르의 잘 확립된 사회질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선전의 지도자들은 이때부터 ‘싱가포르를 배우자’는 열풍을 급속도로 확산시켰다.
 
  1993년 싱가포르 총리직에서 물러난 리콴유 선임장관은 쑤저우공업단지를 합작 개발하는 데 싱가포르의 경험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후 처(處)급 이상의 중국 간부 1000여 명이 싱가포르에 가서 법·제도, 시구(市區)의 구획·발전과 관리, 외국투자, 업무기술 훈련, 사회보장과 고객 서비스 등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합작과 투자뿐만 아니라 1992년부터는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이 중국 공산당 간부의 연수기지가 되었다. 난양이공대학은 중국 간부들을 위해 다양한 레벨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고급반을 위해서는 전·현직 각료들이 강사로 나섰다. 때문에 난양이공대학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의 ‘해외 당교’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중국 중간층 간부들 사이에서는 “당신 싱가포르에 갔다 왔나?”가 인사말이 될 정도로 많은 간부가 싱가포르에서 연수를 받았다. 1992~2012년 난양이공대학에서 연구한 중국 간부의 수는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난양이공대학 이외의 학교나 기관에서 연수·교육받은 중국 간부의 수는 2만여 명이 넘는다.
 
 
  중국이 싱가포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싱가포르가 권위주의 사회이면서도 경제 수준과 시민생활 수준은 매우 양호하고, 관료사회가 청렴하며, 사회질서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이러한 성과가 나온 것은 서양식 민주주의가 아닌 일당 장기 집권체제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그 밖에 중국이 싱가포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싱가포르는 인구 74% 이상의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간 화인(華人·중국인) 사회다. 싱가포르의 아시아적 가치관, 난양이공대학에 가면 중국어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친밀감과 공동체 의식이 중국 관료들로 하여금 싱가포르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가 뛰어난 지도자라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이 50여 년간 장기집권하고 있지만 관료의 청렴도는 아시아에서 으뜸이다. 중국계·말레이계·인도계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多民族)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민족 간 갈등이 거의 없었다. 경제 상황이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도 양호하고 사회 노령화에 대한 준비 또한 잘 되어 있다. 리콴유가 어떻게 싱가포르를 이런 국가로 건설하고 관리하였는가가 중국 지도자들이 배우고 싶은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중국 지도자들은 작은 섬나라로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었던 싱가포르가 선진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서양 모델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여 ‘경제가 먼저이고 민주는 나중’이라는 싱가포르 정황에 맞는 노선을 선택한 결과라고 보았다. 중국 공산당 정권도 ‘중국식의 사회주의’를 기치로 하여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을 우선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모델’에 더욱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일당이 장기집권하는 싱가포르식의 정치운영은 국가가 개방의 진전 과정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집권당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당내(黨內) 정치를 조정·처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 모델’에 대하여 친근감과 매력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싱가포르는 엄격하게 법치를 실현하여 공직자들이 청렴과 효율을 유지하기 때문에 “정책을 실행하여 효과를 보는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에서도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효과를 보려면 싱가포르식으로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부터 척결하고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은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도박장도 건립하는데, 무엇인들 못하랴”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마리나베이와 센토사 개발로 싱가포르는 새로운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사진=조선일보DB
  싱가포르의 선거제도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소 불공평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는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반대당이 있다. 5년마다 치르는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은 선거를 통해 선거구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하고 있다.
 
  인민행동당 정부가 건국 이래 국가발전에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속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리콴유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노선 때문이다. 홍콩의 사오루산(邵盧善) 사회정책연구고문유한공사 총재는 “리콴유는 어떤 주의나 어떤 국제적 표준을 높이 주창하지 않았고 다만 국가의 필요에 따라 번영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다수 국민이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즐겁게 일하게 했다”고 말한다.
 
  리콴유를 위시한 지도자들은 전통에 매달리거나 맹목적으로 서방 민주주의 모델을 복사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제도를 찾아 연구하고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또한 그들에게 적절하게 응용하면서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제도를 창조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리나베이에 건설한 20만m2 넓이의 도박장이다. 2000년대 초 싱가포르의 관광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싱가포르에 머무는 시간은 사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2005년 센토사와 마리나베이에 도박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싱가포르에 도박장은 절대로 건설하지 않겠다던 국부(國父) 리콴유의 선언을 뒤집는 조치였다. 리콴유도 경제발전을 위해 이에 동의했다. 2009년, 2010년 개장한 두 휴양지는 3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마리나베이와 센토사의 성공은 싱가포르 자체의 개조와 변화를 촉진했다. “도박장도 건립하는데, 무엇인들 못하랴” 하는 도전정신은 싱가포르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세계도 싱가포르의 높은 효율성과 실무체제, 경제적 활력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이는 싱가포르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다.
 
 
  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화
 
  싱가포르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경제운영에서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리콴유를 중심으로 한 인민행동당 설립자들은 당초 영국의 노동당과 페이비언 사회주의(Fabian Society)의 영향을 받았다. 리콴유는 정치적 안정은 미래의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고, 국민들의 높은 생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국가의 사회경제생활에서 거시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한편, 공정성과 사회정의를 견지하며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수준·교육·취업·주택·의료 등을 보장하는 ‘싱가포르 특색의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했다.
 
  리콴유는 국가가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국민들은 일치단결하여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대신 이에 따른 모든 결실을 국민 모두가 공유(共有)하도록 했다. 리콴유는 취약한 그룹에게 교육·주택·공공보건·의료에 보조금을 제공하기 위해 국민수입이 반드시 적당하게 재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의 복지를 위한 중앙공적금 제도와 주택소유권 제도를 추진했다. 취약계층들이 주택을 소유하고, 자녀교육의 혜택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중앙공적금 제도다. 이는 고용주와 노동자가 매월 노동자의 월급에 비례하여 일정액씩 강제적으로 저축하여 조성한 기금이다. 중앙공적금 가운데 의료계좌는 한국의 건강보험과 기능이 비슷하지만, 일반계좌는 주택 구매나 교육은 물론 투자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특별계좌는 양로와 은퇴 관련 상품 투자나 비상 시 목적으로 사용한다. 55세 이후에는 은퇴계좌를 개설한다. 노사(勞使)가 함께 기금을 조성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과 흡사하지만, 국민들이 자기의 필요에 따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자기 책임 아래 운용하기 때문에 유럽의 복지제도처럼 국민을 정부에 의타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여기에서도 국민들에게 주택·의료·교육 등 기본적인 복지와 기회균등은 보장해 주는 한편, 자유·경쟁·효율도 강조하면서 각 개인에게 전력을 다하도록 요구하는 싱가포르식 사회민주주의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변하겠느냐, 죽겠느냐”며 勞組 설득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노조(勞組)를 설득하고 순치(馴致)시킬 수 있었다. 건국 초기 리콴유는 “변하겠느냐 아니면 죽겠느냐” “만약 이렇게 하면 집을 가질 수도 있고, 자녀들이 학교에 갈 수도 있고,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리콴유는 외자(外資) 유치 등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노동법·고용법·노동조합법을 개정했다. 조합원들은 파업하기 전에 투표를 해야만 했다. 대신 리콴유는 부패가 없는 청결한 도시국가, 범죄가 없는 살기 좋은 나라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노조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싱가포르산업노조(SIGO), 선진산업 고용노조(PIEU) 등 좌익 성향의 노조들은 도태되고, 정부에 협조적인 전국노동조합총회(National Trade Union Congress·약칭 전국노총)가 뿌리를 내렸다.
 
  1972년에 정부는 고용주·노조·정부대표로 구성된 국민임금협의회(National Wage Council)를 만들었다. 국민임금협의회는 임금체계 유연화, 공정한 고용규칙, 고용창출의 문제 등 모든 노동현안을 대화로 풀어 정책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만든 심의체였다. 여기에서 “결코 임금인상이 노동 생산성 증가율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원칙이 마련되었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의 논의에 대해 싱가포르는 돈을 벌어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국민 모두의 원칙으로 삼았다. 국민임금협의회의 임금결의안은 고용주는 물론 대다수 노동자의 지지를 얻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노조를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노조의 교육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노조의 운동방향이 정부 정책을 수렴하도록 주력했다.
 
 
  민주주의도 수단일 뿐
 
고촉통 전 총리와 리셴룽 현 총리는 리콴유 밑에서 오랜 정치수업 기간을 거쳐 총리직에 올랐다.
  이런 실용주의 때문에 싱가포르에서는 민주주의조차도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리콴유와 인민행동당 지도자들은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서양 문화에 바탕을 둔 서구민주주의가 반드시 모든 국가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인민행동당은 싱가포르의 안정과 질서가 민주주의나 인권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콴유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입각하여 통치해 왔으며, 그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했다는 비평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리콴유는 후계자를 선정할 때, 기성세대와 생각이 다른 젊은 세대의 동향을 잘 파악하여 결정해야 하며, 새 지도자가 현 장관들과 팀을 만들어 팀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제2대 총리 고촉통(吳作東·재임 1990~2004)이나 제3대 총리 리셴룽(李顯龍·재임 2004~) 모두 장기간에 걸쳐 각료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리콴유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선임장관(senior minister), 고문장관(mentor minister)으로 내각에 남아 후임자들을 지켜보면서 조언했다. 이렇게 후계자 선정에 있어 정책의 일관성·연속성을 중시하고 정치적·사회적 안정을 유지했기 때문에 싱가포르는 일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효율적인 국방, 원칙 중시하는 외교
 
  싱가포르가 추구해 온 실용주의가 잘 나타나는 부문 가운데 하나가 국방이다. 싱가포르가 총병력 35만명(직업군인 2만명, 의무복무병 4만5000여 명, 상근예비군 25만명, 민방위대 2만3000명, 경찰 1만2000명)에 달하는 강군(强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상비군과 예비군을 조화시킨 병력 구조를 비롯해 소수정예로 구성된 장교단, 효율적인 방위산업 등은 이스라엘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싱가포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싱가포르는 건국 초기부터 비밀리에 이스라엘로부터 군사고문단을 받아들여 국방력을 건설했다. 국토가 작아 군사훈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육군은 대만과 미국에서, 공군은 미국 등에서 훈련받고 있다. 《제인정보리뷰》는 “싱가포르 군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훈련되고, 가장 잘 장비를 갖추었으며, 잠재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군대 가운데 하나로 발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제적으로도 국익(國益)을 추구하는 실용주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 정부는 외국 기업의 이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불공정한 간섭을 하지 않음으로써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이념·종교·정치체제와 상관없이 모든 국가와 선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싱가포르 외무장관들은 지적 능력과 교양, 국제전략에 대한 식견 등이 뛰어난 것으로 국제 외교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싱가포르는 외교정책에서 원칙과 신의를 고수하는 것을 중시해 왔다. 싱가포르는 국방력 건설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크게 신세를 졌지만, 점령지 문제를 둘러싼 이스라엘-아랍 점령지 분쟁에서는 아랍 측 입장을 지지하곤 했다. 또 미국과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1983년 그레나다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에 반대했다. 이는 영토주권의 보전이라는 원칙이 유린되면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싱가포르의 독립도 보장받기 어렵게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리콴유는 덩샤오핑 이래 역대 중국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생전에 33번이나 중국을 방문했다. 싱가포르는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해 온 중국은 싱가포르에도 대만과의 관계를 축소할 것을 요구해 왔다. 싱가포르가 대만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 중국은 자기들이 훈련장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리콴유는 이를 거절했다. 어려웠던 시절에 싱가포르에 군사훈련장을 제공해 준 장징궈(蔣經國) 대만총통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리셴룽 현 총리는 총리 취임 한 달 전인 2004년 7월, 중국의 항의를 무릅쓰고 대만을 방문하기도 했다.
 
  실용주의를 취하면서도 원칙과 신의를 중시하는 외교노선 덕분에 싱가포르는 국제적으로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외교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북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물론 싱가포르가 완벽한 나라는 아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서방 기준에서 보면 갈 길이 멀다. 정부와 집권당이 일체화되어 있고, 야당이 견제받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싱가포르 언론은 각각 독립된 관점으로 보도하는 것은 용인되는데, 행정부 정책을 약화시키거나 국가를 비난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가까운 시일 내에 서방 민주국가 수준의 복수(複數)정당제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정치 시스템이 일반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파탄 수준으로 무너지지 않는 한, 싱가포르는 앞으로도 현재의 플랫폼을 가지고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 모델의 첫 사례 쑤저우공업단지
 
생태도시를 표방하는 톈진 빈하이신구는 소금기가 있는 바닷가 땅에 건설됐다. 사진=조선일보DB
  리콴유는 1989년 톈안먼 사태를 보면서 결국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 중국과 싱가포르의 합작이 상호학습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92년 덩샤오핑에게 양국 합작으로 쑤저우공업단지를 개발, 싱가포르의 경험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리콴유는 이를 통해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에게 친(親)싱가포르 정서를 심어주어야겠다는 계산도 했다.
 
  경제발전만을 앞세워 난개발(亂開發)된 다른 중국의 신흥 도시들과는 달리 쑤저우공업단지는 도시설계에서부터 인프라 구축, 도시관리체계 등에서 싱가포르의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선(先)발전 후(後)건설, 선지하 후지상, 선2차산업 후3차산업, 선기초시설 개발 후상업부동산 개발 등의 원칙이 준수됐다.
 
  1994년부터 3단계에 걸쳐 진행된 개발사업의 결과, 원래 양어장이 뒤얽혀 있던 교외의 한적한 농촌은 278km2의 지역에 110여만 명이 거주하는 현대적 공업도시로 변모했다. 2013년 1인당 평균 GDP는 4만4000위안, 도시화된 지역의 평균 GDP는 4만9000위안에 달했다. 싱가포르를 본받아 각종 주민편의시설, 복지, 원스톱행정서비스, 행정기관과 주민들 간의 피드백 시스템 등도 구축했다.
 
  오늘날 쑤저우공업단지는 도농(都農)이 공생하는 창조·스마트·친환경생태도시로 자리 잡았다. 나노기술, 생물의약, 소프트웨어·벤처, 융합통신, 환경 관련 첨단기술산업을 적극 유치하고 있으며, 그 결과 2013년 이 지역 공업총생산의 64.2%가 첨단신기술 분야에서 나왔다. 세계 500개 우수기업 중 91개 기업이 150개 분야에 걸쳐 투자했다. 1억 달러 이상 투자한 분야가 133개이며, 그중 10억 달러 이상 투자한 분야도 7개이다.
 
  쑤저우공업단지는 싱가포르 경험의 중국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첫 번째 사례였다. 중국 각지에서 25만명 이상의 공무원들이 쑤저우공업단지를 방문, 이곳의 체험을 배워갔다.
 
  쑤저우공업단지의 성공에 고무된 중국과 싱가포르 정부는 2007년 톈진에 빈하이(濱海)신구라는 생태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빈하이신구는 열악한 거주환경이나 대기오염 등으로 악명 높은 중국의 도시들도 환경친화적 생태도시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 케이스로 건설됐다. 이를 위해 일부러 장소도 경작지가 아니라 담수(淡水)가 부족하고 오염이 심한 척박한 바닷가를 선정했다.
 
  톈진생태도시 역시 싱가포르의 경험을 살려 효율적 수자원 활용, 치밀한 도시계획, 환경보호, 경제사회발전의 일체화 등을 지향했다.
 
  일례로 생태도시는 30km2의 면적에 인구는 35만명으로 제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쓰레기 무해화(無害化) 처리율은 100%, 회수이용률은 62.75%에 달한다. 신재생에너지 사용에도 적극적이어서 풍력(風力)을 가로등에 사용했고, 모든 주택에는 태양열 온수기를 설치했으며, 대부분의 공공건물은 지열(地熱)을 이용해 온냉방을 조절하고 있다.
 
  산업도 애니메이션산업 등 문화창의산업, 생태환경보호산업, 금융산업, 회의-컨벤션산업 등을 발전시키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광저우의 주장(珠江)삼각주 지역은 개혁개방 초기부터 중국 경제발전의 주축이 되었던 곳이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2008년 중국 정부는 이곳을 첨단과학기술산업을 중심으로 한 지식산업도시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광저우지식산업도시는 앞의 쑤저우공업단지, 톈진생태도시가 중국과 싱가포르 중앙정부 간의 합작사업이었던 것과는 달리 처음에는 싱가포르 중앙정부와 광저우성 정부의 합작사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관리체계 등에서 문제가 드러나 2015년 중국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바뀌었다.
 
  지식산업도시 발전계획 면적은 123km2이지만, 개발될 건설용지는 60km2이다. 지식산업도시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선진제조업, 바이오산업, 정보통신산업, 신재생에너지산업, 환경보호산업, 벤처산업 등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광저우지식산업도시 합작사업의 모토는 “기업이 선행(先行)이고, 시장에 운영을 맡기며, 정부는 추진한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에서 100명의 리더급 중국인 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해 이노베이션단지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결합한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의료관광산업도 유치한다거나, 3D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산업 유치 계획 등도 눈길을 끈다.
 
 
  시진핑의 개혁
 
2017년 10월 18일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에서 공작보고를 발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이 대회 이후 시진핑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상의 사례들을 보면 중국은 이제 양적(量的) 성장을 넘어서 질적(質的) 성장, 지속가능한 성장을 강력하게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발전 이후의 중국은 어떻게 될까? 중국 지도자들이 여러 번 천명했고, 리콴유도 말했던 것처럼 중국은 서방식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의 주도하에 나름의 정치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는 할 것이다.
 
  그중 핵심은 부패척결이다. 이는 공산당 지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시진핑은 이를 위해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을 모델로 해서 국가반부패총국을 신설했다. 중국은 워낙 거대한 나라인 데다가 정치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싱가포르처럼 엄격한 반부패정책를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을 위시한 지도자들이 사심 없이 오직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수준까지는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이 부패척결 등 개혁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까? 시진핑은 은퇴한 고위 관료들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왔으며 부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능력 있는 당원들을 단결시키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덕목을 갖춘 외유내강(外柔內剛)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리콴유는 생전에 시진핑에 대해 “대범하고 시야가 넓으며 통찰력이 깊고 신중하고 당당한 데다가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인물이다. 문화대혁명 기간 시련을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에 비할 만하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시진핑, 리콴유처럼 上皇 역할 할 것
 
톈진생태도시 앞에 선 임계순 교수.
  시진핑 집권 이후 국무원 총리(리커창)의 위상이 하락하고 시진핑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게다가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후계자를 선정하던 전례(前例)도 깼다. 이를 두고 시진핑이 절대권력자가 되었다는 관측이 많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진핑은 부패와의 전쟁으로 계속 분열 상태인 공산당의 재정비·강화, 기득권층에 대한 대수술, 소득 격차 해소, 지방정부의 난개발 중단,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응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나는 지금 시진핑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싱가포르식의 제도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에게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에 이어 ‘핵심’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그가 절대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기대와 격려, 응원, 협력의 차원이라고 본다.
 
  아마 시진핑은 아직 공개하지는 않고 있지만,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그의 비전을 완성할 수 있는 후계자를 이미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집권 2기를 마치기 전에 후계자를 정한 후, 임기가 끝난 후에는 자리에서 물러나리라고 본다. 퇴임 후 그는 아마 선임장관·고문장관으로 후배들을 지도했던 리콴유처럼 상황(上皇) 혹은 자정(資政·정치자문역)이 되어 자기가 시작한 개혁의 완성을 보려 할 것이다.
 
  《아주주간(亞洲週刊)》 편집장 추리번이 “많은 사람이 시진핑의 모습에서 마오쩌둥의 그림자를 보고, 강력한 슈퍼맨의 힘을 본다고 하지만 정치발전상으로 보면 시진핑은 사실 덩샤오핑의 기질(태도, 스타일)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면서 “그는 용감하게도 공산당 이외의 정치적 지혜, 즉 리콴유의 정치에서 영감(靈感)을 찾은 것 같다”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서방 수준의 자유민주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싱가포르 수준의 정치 민주주의까지만이라도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러기를 기대하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싱가포르 수준의 민주주의를 하기에도 중국은 너무 큰 나라고, 싱가포르와는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이 나아갈 길
 
  양적 성장을 넘어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는 중국을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찌 될지 밤잠을 설치게 된다. 하루속히 그에 대한 대응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우리는 중국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금 중국은 경공업 분야뿐 아니라 휴대폰, 반도체, 4차혁명 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분야에서 선두그룹에 있는 사이언스 엔지니어는 대부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5년, 10년 후면 과학기술 분야의 선도적 인재들이 중국에서 일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분야를 찾아 파고들어야 한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방식의 세계화나 인재양성 방안으로는 중국과 경쟁을 할 수 없으니 비상한 정책으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부존자원이 하나도 없는 싱가포르도 일류국가가 되는데 우리도 지혜를 모으고 단결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특히 싱가포르의 핵심 정신인 ▲위기를 직시한다(똑바로 본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실무적인 사업 수행에 힘쓴다 ▲변화를 추구하는 데 용감하다 ▲국민을 근본으로 한다 ▲단련하고 용감하게 나아간다 등의 이념은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지도자는 국민이 한마음이 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국민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우왕좌왕하며 싸우면 배는 뒤집힌다. 갑판장이 맘에 안 든다고 갑판을 때려 부순다면 어찌 되겠나? 갑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문제가 된 부분만 고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인터뷰] 임계순 교수
 
  “이제 중국·중국인은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던 중국·중국인 아니다”
 
   - 전공이 청사(淸史)인데, ‘역사 속 중국’에서 ‘현실의 중국’으로 관심이 바뀐 느낌이 듭니다.
 
  “역사가는 과거 역사를 연구하고 분석하며 습득한 역사적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낸 것도 싱가포르처럼 변하고 있는 중국을 냉철히 분석하고 판단하라고 우리 국민들, 특히 정계(政界)와 재계(財界) 지도자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제 중국과 중국인은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던 중국과 중국인이 아닙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중국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운명에 빠지지 않도록 국가적 대응전략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냈습니다.”
 
  - 어떻게 싱가포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둘째 아들(조남준 박사)이 싱가포르에서 선발하는 세계 젊은 국가과학자로 선발되어 난양이공대학에 교수로 영입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전에는 나도 막연히 리콴유라는 독재자, 아들이 총리직을 이어받은 나라, 무더운 열대 도시국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놀랍게도 제가 전공하는 중국의 발전모델이더군요. 그래서 중국의 미래를 예측해 보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싱가포르를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싱가포르와 중국을 하나로 묶어 700페이지가 넘습니다.
 
  “싱가포르에 대해서만 쓴 책을 출판했을 경우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싱가포르에 관해 큰 관심이 없습니다. 쑤저우공업단지, 톈진생태도시, 광저우지식도시 건설 과정을 살펴보면서 ‘싱가포르가 중국의 미래’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두려웠어요. 그러니 우리나라에 영향력이 큰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과 싱가포르, 두 주제를 다루다 보니 책이 두꺼워졌습니다. 중국을 잘 모르는 독자는 싱가포르를 다룬 3부를 먼저 읽고 1부와 2부를 읽으면, 싱가포르 모델이 무엇이고, 그것이 중국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한중수교 초기만 해도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열심히 배워가려 하던 중국이 이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홀대하고 사드 문제 등에 대해 아주 고압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중국학계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를 해왔는데, 나도 중국인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태도변화를 피부로 느낍니다. 그러나 정말 친분이 있는 분들과의 우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 중국의 곁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가 중국·미국·일본, 그리고 러시아에 중요한 국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지요. 우리의 강점은 보완하고 단점은 수정 보완해서 이들 국가에 필요한 국가가 되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다원화하는 한편, 일본의 존재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청대사(淸代史) 연구의 독보적인 학자이신데 앞으로 그에 관해 더 연구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우리 애들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청나라 이야기》(가제)를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요. 청나라 역사를 풀어서 고1 정도 수준에서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써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사실 청나라 역사는 중국사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하고, 현대 중국과도 직접 연결이 됩니다. 청왕조의 흥망성쇠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관심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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