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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들여다보기

어느 少數派 무슬림학자의 《코란》 해석

이스라엘 땅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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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릴 모함메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명이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수복에 있지 않다… 무함마드의 임무는 메카 정복으로 완성”
⊙ ‘이슬람을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며 테러를 행하지 마라’
‌⊙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지만,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가 무슬림”(압드 알라만 알라시드)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저서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5월 15일 요르단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뉴시스
  1995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예루살렘대사관법’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首都)로 인정하고,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고 규정했다. 단 대사관을 이전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경우 6개월마다 이전을 유예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었다.
 
  이 법의 발의자는 당시 공화당의 밥 돌 상원의원이었다. 대선(大選)에서 유대계의 지원을 얻기 위해 낸 묘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96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현직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했다. 1976년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패한 뒤 20년 만에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苦杯)를 마신 것이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후보, 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섰다가 모두 패한 유일한 정치인으로 기록됐다.
 
  대선에서 밥 돌처럼 유대인의 지지를 기대한 빌 클린턴, 조지 부시(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유세에서는 모두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유예조항을 활용하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지도,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이중적인 태도와는 달리 과감하게 유예조항을 무시하고 법안을 그대로 살리는 돌직구를 던졌다. 그리고 지난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에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이전했다.
 
  예루살렘 대사관법이 통과될 당시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평화협상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악영향을 우려하여 이 법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23년 후인 올해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은 축제 분위기다.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 임시국가위원회 위원장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영국 몰래 텔아비브박물관으로 불러 4시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자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 70년 후인 올해 5월 14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까지 이전했으니 두 ‘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에는 은인 중의 은인이 아닐 수 없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하루 앞둔 5월 13일 예루살렘 시내에는 ‘미국 대사관의 이전을 환영한다’는 글귀가 내걸렸다. 사진=뉴시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통과시키면서도 예루살렘이 지닌 역사적·종교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아랍이나 이스라엘 어느 쪽에도 관할권을 주지 않고 ‘코르퓌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 즉 분리개체(分離個體)로 지정하여 국제사회에 관리를 맡겼다.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동(東)예루살렘을 빼앗아 동서 예루살렘을 모두 지배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복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1980년 이스라엘 의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규정한 ‘예루살렘법’을 통과시키자 유엔은 안보리 결의안 478호로 이를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회원국에 외교공관을 예루살렘에서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미국만 기권한 채 찬성 14표, 반대 0표로 가결된 결의안에 따라 올해 미국이 대사관을 이전하기 이전까지 단 한 개국도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점령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당연히 자신들의 땅으로 여기고 있다. 이스라엘처럼 팔레스타인 역시 예루살렘을 자신들이 세울 국가의 수도로 결정해 놓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아부디스에 의회 건설 공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 의회를 세워야 한다는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밀려 중단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예루살렘 대신 아부디스를 수도로 하여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라고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강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반응은 차갑다. 특히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맞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과의 공식대화 통로인 주미 특사를 소환했고, 더 나아가 미국 대사관 개관식에 참석한 유럽연합 4개국(루마니아·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 주재 자국(自國) 대사를 불러들였다. 미국 대사관 개관식 날 강렬하게 항의에 나선 팔레스타인 주민 시위대에 이스라엘군이 발포하여 60여 명이 죽고 약 2800여 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예루살렘이 단순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대립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 지배하의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중동(中東) 전역의 아랍인들, 더 나아가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성지로 믿는 전(全) 세계 무슬림들까지 반미(反美)·반이스라엘 대열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국제테러의 대명사 알카에다는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무장투쟁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음성메시지를 내보내며 무슬림들의 봉기를 선동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텔아비브도 무슬림 땅인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를 이스라엘에 팔아넘겼다고 비난하면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한다고 재촉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에서 살라는 것은 神의 명령”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칼릴 모함메드 교수. 사진=유튜브 캡처
  그렇다면 정말 이스라엘은 무슬림의 땅일까? 무슬림이자 예배인도자(이맘)인 칼릴 모함메드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종교학과 교수는 적어도 《코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무슬림 소유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코란》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 오늘날 이스라엘 건국자들인 시온주의자들의 주장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이스라엘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모아놓은 《하디스》는 이스라엘이 저주받은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무슬림의 땅이라고 한다. 칼릴 모함메드의 주장은 명료하다. 원래 아랍-이스라엘 대립은 종교와는 무관한 것이었는데, 반이스라엘 투쟁을 이슬람과 유대교의 싸움으로 비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코란》은 종교전쟁으로 격상시킨 사람들이 불리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소유권이 무슬림에게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땅은 히브리어로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이다. 근세에 유대인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시작한 이른바 정치적 시온주의자들이 쓴 표현이 바로 ‘에레츠 이스라엘’이지만, 이 말은 이들 시온주의자들보다 훨씬 먼저 히브리성서(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에 사용됐다. 그런데 이슬람의 경전 《코란》 역시 이 개념을 그대로 쓴다. 모세가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여!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베푸신 호의를 기억하시오. 여러분으로부터 예언자와 왕을 세우시고 어느 민족에게도 주신 적 없는 것을 여러분에게 주셨소.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여, 하나님(알라)께서 여러분을 위해 써 놓으신 성스러운 땅으로 들어가시오. 되돌아오지 마시오, 그러면 고통을 겪으리라.”(《코란》 5장 20-21절)
 
  위 구절 중 21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모세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써 놓으신” 성스러운 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기에서 “써 놓다”라는 말의 원어(原語)는 아랍어 동사 ‘카타바(kataba)’다.
 
  칼릴 모함메드는 이 동사에 주목한다. 《코란》에서는 이 동사의 행위자가 알라인 경우가 22번 나오는데 하나같이 거스를 수 없는, 요즘 북핵(北核)과 관련하여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는 말인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2장 183절은 라마단 단식이 무슬림들에게 “적혀졌다”이며 ‘카타바’ 동사의 수동형 ‘쿠티바(kutiba)’를 쓴다. 이 말은 곧 ‘단식이 의무’라는 말이다. 칼릴 모함메드는 역사적으로 코란 주석가들이 코란 5장 21절의 카타바 동사를 알라의 명령으로 해석했다고 강조한다.
 
  8세기 무카틸 이븐 술레이만(767년 사망)은 카타바를 ‘명령하다’로 풀이하고, “이 땅에서 퇴각하면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스러운 땅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상속될 곳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10세기 역사가이자 《코란》 주석가로 유명한 앗타바리(922년 사망)는 카타바를 “거기에 살고 있는 폭압자들 대신 너희가 살 곳으로 보존된 서판(알라우 알마푸즈, al-Lawh al-Mahfuz)에 확실히 적어두신 것”으로 풀이한다. ‘보존된 서판’이란 ‘천상의 성서’를 뜻하는 말로 《코란》 85장 21절은 바로 이 서판에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 살라고 ‘천상의 성서’에 적어두었다는 말은 결국 절대 고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말이다.
 
 
  ‘성스러운 땅’은 어디인가?
 
  12세기 시아 무슬림 아부 알리 앗타바르시(1153년 사망)는 앗타바리의 해석을 그대로 따른다. 14세기에 이븐 카시르(1373년 사망)는 카타바를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라고 풀이했고, 19세기에 무함마드 앗샤우카니(1834년 사망)는 한층 더 나아가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하나님의 지식 속에 이미 예정해 놓은 것으로 해석한다. 즉 모세 일행이 성스러운 땅으로 들어가 살도록 하나님이 본래부터 정해 놓았다는 말이다.
 
  20세기 시아 무슬림 학자인 이란의 타바타바이(1981년 사망)는 《코란》 5장 21절을 28장 5절이 더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즉 “하나님이 약한 자들에게 그 땅을 상속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의존하고 도움을 청하면 이러한 약속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고, 《코란》 7장 129절은 그 땅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 땅을 줄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코란》 주석가들은 순니나 시아 구분 없이 하나님이 ‘성스러운 땅’을 모세와 모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땅’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가? 오늘날 예루살렘은 아랍어로 ‘알쿠드스’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곳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코란》은 예루살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코란》 5장 21절에 나오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말의 원어 표현은 ‘알아르드 알무캇다사(al-Ard al-Muqaddasah)’다. 앗타바리는 이 지명이 (1) 시나이와 인근 지역 (2) 시리아 (3) 예리고 (4) 다마스쿠스, 팔레스타인, 요르단 일부를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칼릴 모함메드는 《코란》이 17장 4절에서 유대인이 바빌론제국과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배를 당했다는 것을 2번의 유배로 암시하면서 17장 104절에서는 모세를 따르는 이들이 심판의 날에도 이 땅, 즉 이스라엘에 살 것이라고 말한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이 유대인들을 위한 땅이라는 시온주의의 개념을 《코란》이 정확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코란》 어디에도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명이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수복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코란》 5장 3절에서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랍인들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임무는 메카 정복으로 완성됐다는 것이다.
 
 
  초기 무슬림, 예루살렘 중시하지 않아
 
  그렇다면 왜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을 반드시 투쟁해서 수복해야 할 무슬림의 땅이라고 생각하는가? 칼릴 모함메드는 무함마드가 죽은 지 1세기 후에 만들어진 예언자 언행록(言行錄)인 《하디스》가 원인을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하디스》가 유통되기 전인 638년부터 이미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초기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지배했을 때 예루살렘을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겼더라면 왜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로드(Lod)를 수도로 삼았겠느냐고 반문한다.
 
  칼릴 모함메드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면서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계약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통해 혈통적으로는 유대인, 영적(靈的)으로는 그리스도인들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고는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인 이스마일을 통해 무슬림들이 진정한 계약의 상속자임을 내세웠다고 해석한다. 아브라함이 사랑하고 하나님에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들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일이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코란》에서 지적한 바대로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한 약속을 어겼다는 점을 무슬림들이 언급하지만, 이러한 계약과 예루살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칼릴 모함메드는 지적한다. 설령 계약을 어겼다고 하여도 그 권리가 무슬림에 상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하디스》의 신빙성은 9세기부터 무슬림 학자들이 꾸준히 제기했다. 대표적인 《하디스》 수집가 무함마드 알부카리(810~870)도 60만 개의 《하디스》를 모았지만 결국 신뢰도 점검과정 중에 거의 다 쳐내고 약 6000여 개만 묶어 책으로 출판했을 정도다. 칼릴 모함메드는 이처럼 《하디스》가 조작된 경우가 많으니 《하디스》 없이 《코란》 구절에 집중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릴 모함메드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이 종교 간 다툼으로 변질됐다고 개탄한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아랍군이 이스라엘에 대패한 직후인 1968년 아즈하르대학에 모인 무슬림 학자들이 《코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행동을 제어하는 지하드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인뿐 아니라 이슬람을 믿는 모든 사람의 투쟁을 독려한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가 불거진 1948년 이스라엘 독립 때부터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구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를 살해할 때까지도 반이스라엘 투쟁의 핵심동력은 이슬람이 아니라 아랍민족주의였다고 칼릴 모함메드는 지적한다. 타도대상도 유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건국이념인 정치적 시온주의였지만, 헤즈볼라, 하마스, 알카에다가 투쟁의 선봉에 나서면서 ‘반이스라엘’이 ‘반유대인’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한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종교적 색채 없애야
 
  증오 발언을 일삼으며 테러를 조장하는 사람들을 신실한 무슬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칼릴 모함메드는 유수프 알카라다위처럼 민간인 살해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이슬람법 해석을 내어놓는 이들을 신랄히 비판한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조건으로 네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종교적 색채를 없애야 한다.
 
  둘째, 무슬림이 《코란》과 《하디스》의 차이를 인식하고, 적어도 《코란》에 초점을 강하게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셋째, 테러와 유대인 증오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넷째,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중단하고 이집트, 요르단처럼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어야 한다.
 
  학자적 양심에 근거한 칼릴 모함메드의 의견은 소수(少數) 중의 소수다. ‘친(親)이스라엘 시온주의 무슬림’이라는 비아냥도 쏟아지고 협박 이메일도 메일함에 쇄도한다. 그러나 그가 지닌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이슬람을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며 테러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테러는 이슬람이 아니라 사람을 증오하는 소수의 인간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무슬림이 대다수인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기도 하다고 토로한 칼릴 모함메드는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포기하고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길 염원한다.
 
  평화의 종교 이슬람을 악용하는 이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칼릴 모함메드의 절규는 비록 오늘날 무슬림세계에서는 듣기 힘든 극소수 의견이지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의 고민은 그가 인용한 저명한 아랍 언론인 압드 알라만 알라시드의 말에 그대로 담겨 있다.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가 무슬림이란 것 또한 명백하고, 이는 정말 고통스러운 사실이다.… 빈 라덴은 무슬림이다. 버스, 차량, 학교, 집, 건물에 자살폭탄을 감행한 전 세계 다수는 무슬림이다. 가슴 아픈 기록이다!”
 
  칼릴 모함메드의 기원대로 무슬림 지도자들이 증오선동 설교와 법해석을 멈추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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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2018-07-02)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3
역시 무슬림들이란...성경내용 살짝 인용하며 거짓을 석듯이,
이 기사도 똑같네데라아들(성경) 아브라함과 아자르아들(꾸란) 아브라함예긴 왜 빠짐?어딜 근거로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로 해석됩디까?
IS는 믿음이 깊은자들일뿐
  ㅇㅇ    (2018-07-02)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1
하느님은 여호와하느님 오직 한분 뿐입니다.알라는 절대 여호와하느님이 아닙니다.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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