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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나?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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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이스라엘 양 축으로 삼아 이란 제어하려는 미국 전략의 일환
⊙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에게 “예루살렘 포기하라”
⊙ 이스라엘 매체, “트럼프의 발언에 아랍 국가들이 사전(事前) 동의하였다”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수도로 인정하는 선언에 서명했다.사진=뉴시스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면서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 시작하겠다고 밝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1995년 미국 상·하원 의회는 압도적인 표차로 ‘예루살렘대사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야 하고, 늦어도 1999년 5월 31일까지 이곳에 미국대사관을 설립해야 한다. 그러나 1998년 10월 1일부터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상 이익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6개월간 이를 유예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동안 클린턴, 부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러한 유예조항을 이용해 법안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미루어 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후 2017년 6월 1일 유예결정을 하였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2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한 약속을 지킨다”고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옮기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聖地)가 있는 민감한 지역이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인과 아랍인의 땅으로 분할하는 안(案)을 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로 통과시킬 때에도 예루살렘은 분리개체(Corpus Separatum)로 인정하여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지역이다. 1948년 제1차 이스라엘·아랍전쟁 결과 예루살렘은 동서로 분리되었다. 유서 깊은 성지가 있는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차지하였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나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80년 7월 이스라엘 의회는 “동서로 나뉘지 않은 완전체의 예루살렘이 영원한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예루살렘기본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478호를 의결하여 이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거부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모두 13개국의 대사관이 있었다.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점차 이전하여 현재 예루살렘에는 단 한 국가의 대사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슬로평화협정을 맺을 때에도 예루살렘은 양쪽이 모두 수도로 삼고자 하는 곳이기 때문에 문제의 폭발성을 감안하여 협상 최종단계에서 논의하기로 미루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선거전에서는 막강한 재력을 지닌 유대계의 지원을 의식하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대통령이 되어서는 예루살렘대사관법 실행을 미루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단순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무슬림의 반미(反美)시위를 촉발하는 화약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동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와 이란의 팽창을 제어하겠다고 천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것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반미를 선명하게 내세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이란에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트럼프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을까? 러시아 스캔들로 국내 지지율이 확연히 떨어지고 정치적 위기에 몰린 처지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핵심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이미 충분히 지극히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인 대다수가 반대하는 선언을 굳이 한 것은 트럼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신(神)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확인하는 장소이고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예루살렘은 ‘JerUSAlem’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시키는 ‘세기의 협상(Deal of the Century)’을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선언이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물론 협상 대상자인 팔레스타인은 친이스라엘인 미국이 공정한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재삼 확인하고 이미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다.
 
 
  트럼프의 속내는?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렇게 팔레스타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이유가 트럼프 특유의 압박전략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예루살렘 수도 선언이 있기 전 중동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교(國交)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서로 활발하게 접촉하면서 공통의 적(敵) 이란을 무찌르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심지어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스라엘을 방문했다는 설(說)까지 돌았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부정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서로 적이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빈 살만이 2017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압바스 대통령에게 “동예루살렘을 포기하고 외곽 인근 도시인 아부 디스(Abu Dis)를 새로운 수도로 삼으라”고 설득했다는 말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빈 살만이 압바스에게 두 달간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고 보도하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발언 이전에 친미(親美) 아랍국가 지도자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렸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의 발언은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주판알을 튕긴 후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압박을 통해 ‘기회의 공간’을 만드는 트럼프 스타일의 협상전략이다. 압바스를 최대한 궁지로 몰아넣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심산일 가능성이 크다.
 
 
  아랍국가들 반발은 의례적인 것 불과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다음 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는 격렬한 반미시위가 일어났다. 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역내 아랍국가를 비롯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의 활화산 같은 반감과 적대적 행동 가능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듯 팔레스타인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무슬림들이 성조기와 트럼프 초상화를 불태우며 강렬한 반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등 친미국가들도 부당하고 무책임하다면서 미국의 처사에 우려와 실망을 표하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민중 시위는 각국의 권위주의 정권이 알아서 잘 막을 것이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트럼프의 사위로 중동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유대계 쿠슈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트럼프의 발언을 사전에 미리 충분히 막고도 남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한 이스라엘 방송이 “트럼프의 발언에 아랍국가들이 사전(事前) 동의하였다”고 보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재정지원을 받는 이집트·요르단 등 아랍국가들의 비판은 의례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분위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시 답은 이란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이래 6년에 걸친 시리아 내전에서 친이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살아남았고, 시아파 이란의 영향력을 아랍세계에서 제거하려던 순니 아랍국가들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제 반이란 기치를 높게 든 트럼프와 손을 잡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반이란 전선(戰線)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은 1979년 이란혁명 이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쌍둥이 기둥으로 삼아 공산주의 소련과 아랍민족주의 이집트를 제어하였는데, 이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축으로 트럼프가 규정한바 ‘테러지원국가’요, ‘광신도정권’이자 ‘불량정권’인 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분열된 중동 이슬람 국가들
 
  중동 무슬림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연대(連帶)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낮다.
 
  사실 그동안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란만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을 뿐이다. 호메이니 이래 이란은 ‘시온주의자들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이슬람 세계의 단결을 저해하고 무슬림 간 불화를 조장하기 위하여 영국이 저지르고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사악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터키도 트럼프의 발언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이 테러국가라고 거칠게 몰아붙이지만 이스라엘과 단교(斷交)할 의지는 없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어쩌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물론 트럼프의 행보에도 난관이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자국(自國) 내 반발로 왕위 계승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 만일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반이란 협력전선에 먹구름이 낄 것이다. 그런 때가 오면 트럼프는 “내가 말한 예루살렘에는 동예루살렘이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빠져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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