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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예루살렘! - 무슬림의 성지 알하람 알샤리프(al-Haram al-Sharif)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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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산에 보안검색기 설치하자 무슬림 분노, 제3차 인티파다 우려
⊙ 유대인에게 성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성지
⊙ 무슬림들은 성전산을 무함마드가 천상(天上) 여행을 한 곳으로 여겨 …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유대인과 무슬림간의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산.
황금돔 바위성원과 알아끄사 모스크(앞쪽 검은 지붕)은 무슬림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성소다.
  성전산(聖殿山·Temple Mount), 예루살렘 구도시 모리아(Moriah)산 언덕에 있는 솔로몬 성전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각형의 땅으로, 북쪽의 길이가 310m, 남쪽은 281m, 서쪽은 491m, 동쪽은 462m다. 이곳에서 7월 14일 아랍계 남성 3명이 이스라엘 경찰 2명을 살해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출입금지 조치와 함께 16일 알아끄사(Al-Aqsa) 모스크로 들어가는 성전산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거센 시위가 일어났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금속탐지기 대신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00년 9월 28일 당시 이스라엘 야당 리쿠드(Likud)당 당수였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성전산을 방문한 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봉기한 제2차 인티파다(Intifada)가 일어났듯, 이번에도 대규모 유혈사태를 동반한 제3차 인티파다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아리엘 샤론 때나 지금이나 성전산이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가 첨예한 현안이다. 이 질문의 답은 늘 두 개다. 이스라엘은 성전산을 유대인의 영원한 지성소(至聖所)라며 소유권을 주장한다. 단순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영토가 아니라 전 세계 유대인의 성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더 나아가 전 세계 무슬림은 ‘고귀한 성소’라는 뜻의 아랍어 ‘알하람 알샤리프(al-Haram al-Sharif)’라고 부르는 성전산을 팔레스타인의 땅이요, 더 나아가 무슬림의 성지라고 확언하며 단 한 치의 양보도 할 마음이 없다.
 
 
  유대인과 이슬람교도의 성지
 
  유대인의 히브리 성서, 즉 그리스도인의 구약성서의 이사야서 45장은 기원전 538년 유대인을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준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를 ‘메시아’라고 부르며 칭찬한다.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서 울던’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으니 고레스야말로 진정 유대인에게는 은인 중의 은인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은 모리아산 솔로몬 성전터에 페르시아 제국의 도움을 받아 제2의 성전을 세웠다. 솔로몬 성전은 586년 바빌론 제국이 남유대 왕국을 멸하면서 파괴했다. 성전은 무너지고 유대인은 노예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기원전 20년에 로마 치하 유대왕국 헤로데 대왕이 성전 확장 공사를 벌였다. 그러나 식민지배자 로마에 저항하여 벌인 제1차 독립전쟁(66~70년)에서 성전은 다시 속절없이 무너졌다. 70년에 로마군은 서쪽 벽, 이른바 ‘통곡의 벽’만 남겨두고 성전을 파괴했다. 유대인은 ‘통곡의 벽’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냥 서쪽 벽이다. 서쪽 벽은 성전의 일부가 아니라 외벽이었기에 로마군이 굳이 부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70년 독립전쟁에서 로마에 패해 쫓겨난 이래 성전산은 로마제국, 비잔티움제국, 무슬림 손을 거쳐 1967년 6일전쟁 때 이스라엘이 재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성전산이 자기 땅이기에 유대인이 방문하는 것이나 보안장치 설치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스라엘 유대인은 성전산을 방문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성전산은 여전히 우리 손안에 있다”고 한 17년 샤론의 발언은 지금도 유대인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중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부침이 있긴 했지만 638년 아랍 무슬림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래 6일전쟁 때까지 아랍 무슬림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뺏고 점령했지만 관리는 무슬림들에게 맡겼다.
 
  17년 전 샤론의 도발에 대해 당시 팔레스타인 고위 관리 파이살 후세이니(Faisal Husseini)는 이스라엘이 군사력과 강권력은 가지고 있어도 성전산에 대해서는 주권이 없다고 했다. 이런 믿음의 연장선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무 권리 없는 이스라엘이 보안장치를 설치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금속탐지기를 설치하자 팔레스타인 무슬림은 성전산 출입을 거부했다. 탐지기를 통과하면 이스라엘이 성전산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곳
 
알 아끄사 모스크의 내부. 우마이야조의 칼리파 압둘말리크의 역작이다.
  성전산이 유대인의 성소인 것은 이름에서부터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히브리 성서에서 유일신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니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이곳이 무슬림의 성소인지는 설명이 필요하다. 도대체 왜일까?
 
  일단 무슬림은 예루살렘을 꾸드스(Quds)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은 카바 성전이 있는 메카, 예언자 무함마드의 묘가 있는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신앙전통에서 3번째로 중요한 성소다. 알아끄사 모스크와 황금돔 바위성원(Dome of the Rock)이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일부 이슬람학자들은 최초의 예배 방향도 예루살렘이었다가 메카로 변경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638년 아랍 무슬림군이 비잔티움제국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빼앗았을 때 성전산은 쓰레기더미였다. 로마나 비잔티움은 그리스도교인의 제국이었기에 유대인의 성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폐허로 방치했다. 새로운 주인이 된 두 번째 칼리파 우마르(재위 634~644년)가 폐허더미를 청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슬림들이 세운 두 개의 건축물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을 압도하고 있다. 알아끄사 모스크와 황금돔 바위성원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두 건축물 모두 우마이야조 칼리파 압둘 말리크(재위 685~705년)의 역작이다. 7세기 후반 우마이야조 칼리파 무아위야 1세(재위 661~680년) 때 이곳을 방문한 그리스도교 주교 또는 수도사 아르퀼프(Arculf)에 따르면 허름한 폐허 동쪽에 허름한 예배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예배당이 우마르 시대에 만든 것인지, 아니면 무아위야 1세 때 건축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늘날 성전산 남서쪽에 자리 잡은 알아끄사 모스크와 얼마나 관련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동안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하면 황금돔 바위성원을 지은 압둘 말리크가 건축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건축 후에도 오랜 기간 수차의 개·증축 과정을 거쳤다.
 
  황금돔 바위성원은 바위를 안에 감싸고 지은 성원이다. 유대인의 믿음에 따르면 이 바위에서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한다. 무슬림들도 아브라함의 번제(燔祭)에 동의하나 이들과 장소가 다르다.
 
  무슬림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이브라힘)은 이삭(이스하끄)이 아니라 이스마엘(이스마일)을, 예루살렘 모리아산이 아니라 메카 인근 아라파트(Arafat)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해마다 무슬림들은 메카 순례 때 이스마엘을 바치려 한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순례 말미에 소나 양 등 동물을 바치는 이드 알아드하(Id al-Adha) 의례를 행한다.
 
 
  ‘가장 멀리 있는 모스크’?
 
이슬람교도들은 무함마드가 신이 내려준 영험한 동물 부락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천상여행을 했다고 믿는다.
  알아끄사 모스크와 황금돔 바위성원은 이슬람 신앙전통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천상(天上)여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란》 17장 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분의 종을 밤새 알마스지드 알하람에서 알마스지드 알아끄사로 데려가신 그분께 영광! 그 일대를 우리가 축복했다. 우리의 징표를 그에게 보여주었으니. 실로 그분은 들으시고 보시노라!”
 
  알마스지드 알하람(al-Masjid al-Haram)은 메카성지 카바(Ka‘bah)성원을 가리키지만, 알마스지드 알아끄사(al-Masjid al-Aqsa)는 해석이 상당히 어려운 용어다. 말 그대로 하면 알아끄사 모스크다. 그렇다면 이 글 바로 윗부분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모스크라고 혼동할 수도 있다.
 
  알아끄사라는 말을 고유명사로 보지 않고 뜻 그대로 해석하면, ‘가장 멀리 있는’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알마스지드 알아끄사는 ‘가장 멀리 있는 모스크’라고 풀이할 수 있다. 《코란》에 따르면 신은 무함마드를 하룻밤 사이에 카바에서 가장 멀리 있는 모스크까지 여행을 시켜 주었다.
 
  그런데 가장 멀리 있는 모스크는 어디였을까?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카바 주변에서 가장 먼 모스크다. 둘째, 지상의 카바의 원형이 하늘에 있다는 믿음에 따라 천상의 카바가 바로 가장 먼 모스크다. 셋째, 예루살렘 성전산이다.
 
  첫째와 셋째는 카바에서 횡적으로, 둘째는 종적으로 가능한 여행이다. 《코란》이 말한 여행을 물리적인 여행이 아니라 영적(靈的)인 여행으로 풀이하는 무슬림 학자와 영성가가 적지 않지만, 대중적인 믿음은 그렇지 않았다. 물리적인 여행으로 본다. 무함마드 당시에는 성전산에 알아끄사 모스크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함마드가 예언자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가 보았다는 기록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란》 구절을 근거로 무함마드의 천상여행에 대한 믿음의 전통이 형성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신이 내려준 부락(Buraq)이라는 영험한 동물을 타고 메카의 카바에서 예루살렘 성전산으로 가서 황금돔 바위 사원 안에 있는 바위를 밟고 하늘로 올라 천상여행을 한다. 횡적인 여행과 종적인 여행이 합쳐져 완벽한 천상여행 일정을 만든 것이다.
 
  이제 성전산의 알아끄사 모스크는 바로 《코란》에서 말하는 바 알마스지드 알아끄사, 즉 가장 멀리 있는 모스크이고, 황금돔 바위 사원 안의 바위에는 무함마드가 천상여행을 할 때 남긴 발자국이 선명하게 지금도 남아 있다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무함마드의 천상여행
 
  그렇다면 무함마드는 하늘에 올라가서 어떤 일을 경험했을까?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무슬림 전승을 《하디스》라고 하는데, 무슬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인기 있는 부카리(810~870년)의 《하디스》 모음집에 천상여행 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천사 가브리엘(지브릴)과 하늘에 오른 무함마드는 첫 번째 하늘에서 아담, 두 번째 하늘에서 세례자 요한(야흐야)과 예수(이사), 세 번째 하늘에서 히브리 성서의 요셉(유수프), 네 번째 하늘에서 이드리스(Idris)를, 다섯 번째 하늘에서 아론(하룬)을 만난다. 이드리스는 《코란》에 나오는 예언자인데, 무슬림 전승에 따르면 아담과 셋에 이은 인류 세 번째 예언자라고 한다. 또 히브리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녹(Enoch)과 같은 인물이라고도 한다.
 
  여섯 번째 하늘에서 만난 모세(무사)는 무함마드가 일곱 번째 하늘로 떠나자 울었는데, “나 다음에 젊은 예언자가 나왔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를 따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운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젊은 예언자는 무함마드를 가리킨다. 이슬람이 성공한 종교가 될 것이라고 모세가 예언한 것이다.
 
  일곱 번째 하늘에서 무함마드는 아브라함을 만난 후 하늘을 한 층 더 올라가서 ‘시드라트 알-문타하(Sidrat al-Muntaha)’라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생명의 나무를 보고 코끼리 귀와 같이 큰 잎과 거대한 열매에 압도당한다. 천사 가브리엘은 무함마드에게 4개의 강이 있다고 설명을 하면서, 강 2개는 숨겨져 있는 천국의 강이고, 나머지 2개는 나일강과 유프라테스강이라고 한다.
 
  이어서 성스러운 곳을 본 후 술, 우유, 꿀이 각각 가득 담긴 용기가 나오자 무함마드는 우유를 선택했다.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은 무함마드에게 “그것이 바로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선택한 이슬람이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무함마드에게 하루에 예배를 50번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길에 무함마드는 모세를 다시 만났다. 모세는 무함마드에게 어떤 명령을 받았느냐고 물었고, 이에 무함마드가 예배 50번이라고 답하자 모세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시도해 보니 어림도 없었다고 하면서 다시 올라가 주님께 예배 횟수를 좀 줄여 달라고 부탁드리라고 충고한다.
 
  모세의 말을 따른 무함마드는 10번이 깎인 40번을 가지고 왔지만, 다시 모세가 그것도 어렵다고 하여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을 반복했다. 30번으로 깎이고 10번으로 줄더니 최후에는 5번 예배라는 조정명령을 받았다.
 
  모세는 자신의 경험상 5번도 어렵다고 하면서 더 줄여 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는데 이에 무함마드는 더 이상은 부끄러워서 못하겠다고 하면서 5번으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명을 내렸고, 나를 경배하는 자들의 짐을 덜어 주었노라.”
 
  무슬림들이 하루에 5번 예배 의무가 이처럼 천상여행에서 결정됐다. 모세의 진심 어린 충고가 아니었더라면 50번이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예언자의 천상여행에 포함된 알아끄사 모스크와 황금돔 바위성원이 무슬림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이제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알아끄사 모스크는 지금도 무슬림들이 예배를 하는 곳이다.
 
 
  황금돔 바위성원을 지은 이유
 
황금돔 성원 외부에 적힌 《코란》 구절은 유일신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황금돔 바위성원은 그 용도가 알아끄사 모스크와 달리 독특하다. 일단 모스크 용도로 만든 건축물이 아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축물인데 모스크가 아니라면 왜 성전산에 지었을까?
 
  알아끄사 모스크와 황금돔 바위성원 건축의 주역은 전술한 바와 같이 압둘 말리크다. 632년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이후 무슬림들은 아라비아를 넘어 중동을 장악했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 아랍어라는 언어를 피지배민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비잔티움 지역에서는 비잔티움 행정으로 페르시아 사산제국 지역에서는 페르시아 전통에 따라 제국을 운영했다. 동전을 예로 들자면, 비잔티움 동전이나 사산제국 동전을 그대로 쓰면서 조금씩 아랍어로 종교적 문구를 넣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러나 압둘 말리크 시대에 이르면 제국 운영에 자신감이 붙어 제국의 공용어로 아랍어를 쓰고, 동전도 이슬람 예술 양식에 맞춰 주조하기 시작한다.
 
  황금돔 바위성원의 건축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692년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건물을 왜 지었는지 이슬람 학자들은 아직까지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개 두 가지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첫째, 정치종교적 이유다. 압둘 말리크의 우마이야 칼리파 제국의 수도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였다. 그런데 당시 메카 지역은 이븐 알주바이르(Iban al-Zubayr, 624~692)가 스스로를 칼리파라고 선언하고 우마이야 칼리파조와 대치하면서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카의 카바성원 대신 새로운 순례지로 황금돔 바위성원을 지은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원 안팎을 둘러싼 아랍어 문구 어디에도 이러한 무슬림 간 정치종교적 패권 다툼을 반영하는 증거가 없는 것이 문제다.
 
  둘째,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지배자가 무슬림임을 보여주기 위해 바위성원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성원 안팎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랍어 문구는 유일신 신앙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교의 예수 신성론을 비판하고 있다. 외벽에 적힌 아름다운 서체의 《코란》 112장은 유일신 신앙을 강조한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라, 그분은 하나님, 유일하신 분. 하나님, 영원하신 분. 낳으시지도 태어나시지도 않으신다. 그분과 같은 이 없도다.〉
 
  또 내부에는 특별히 예수를 하나님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단지 예언자일 뿐이라고 하면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충고하는 《코란》 구절(19:30-33)이 적혀 있다. 무슬림이 지배하던 지역 주민 다수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이러한 문구를 보면 바위성원은 새로운 지배자가 무슬림이라고 선포하면서 비잔티움 건축양식으로 지배자의 종교를 각인시키기 위해 만들었을 것 같다. 특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예수성묘성당을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모습은 나름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구한말 경복궁을 내려다보도록 명동성당을 지은 것처럼 말이다.
 
 
  전 세계 유대인과 무슬림의 성지전쟁터
 
  그렇다면 혹시 반유대적인 뜻은 없었을까? 성원 어디에도 유대교나 유대인을 언급하는 문구는 없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쳤던 바위를 감싸고 지었다는 점, 그리고 성전산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브라함은 이슬람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신앙의 선조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곧 이슬람 신앙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을 이슬람화하여 이슬람과 유대교가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아브라함을 두고 유대교와 경쟁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정치 현실은 후자(後者)다. 알아끄사와 황금돔 바위성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화약고를 넘어, 전 세계 유대인과 무슬림인의 성지전쟁터가 되었다.
 
  보수적인 유대 율법학자들은 성전산이 지극히 성스러운 곳이기에 유대인들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유대인의 영원한 성지를 되찾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아리엘 샤론처럼 좀 더 당당하게 성전산이 유대인의 것임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성전산이 있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무슬림이 관리하는 성전산. 유대인과 무슬림이 믿는 유일신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사이크스-피코 협약(Sykes-Picot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양국이 예루살렘을 공동관리 구역으로 놓은 이유를 다시금 떠올린다. 앞으로 누가 어떻게 잠재적 대량 유혈의 장(場)인 성전산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무슬림들 표현마냥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시리!” 알라후 아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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