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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美日동맹 3.0 시대 일본의 현장

‘아시아의 이스라엘’ 꿈꾸는 일본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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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우주·사이버안보 부문에서 미국과 밀접한 협력 체제 구축 추진
⊙ 美군납업자, “한국에 이전될 경우 중국으로 곧바로 넘어갈 수 있어”
⊙ 日외무성 내 ‘차이나 스쿨’ 몰락, ‘아메리칸 스쿨’ 독주
⊙ 低出産 문제 등 논의하기 위한 ‘국민회의’ 개최키로… 嫌韓정서 확산 통로 될 수도

劉敏鎬
⊙ 54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지난 11월 2일 열린 한일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상을 보는 눈(目)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관찰하고 비교하는 ‘관(觀)’으로서의 눈과 오감(五感) 중 하나인 시각에 의존하는 ‘견(見)’으로서의 눈이다. 머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관’, 눈동자 조리개를 활용한 것이 ‘견’이라 볼 수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百聞不如一見)’라는 말이 있지만, 백 번 듣는 것을 압도하는 단 한 번의 위력은 ‘견’이 아니라 ‘관’에 있다. ‘견’으로 세상을 대할 경우, 백 번 봐도 소용이 없다. 눈앞에 드러난 것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인간 생리다. 불교의 보살(菩薩)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관세음(觀世音)이다. 견세음(見世音)이 아니다.
 
  11월 초 도쿄(東京)에 들른 것은, ‘관’으로서의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불교의 천태종(天台宗)에서 말하는 ‘지관(止觀)’을 통한 탐구다. 근본적인 부분에 주목하면서 지혜를 통해 사물의 진리를 파악하자는 것이 지관이다. ‘지관’은 현실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英日동맹과 美日동맹
 
  지난 2월 일본을 찾았던 필자는, 9개월 만에 다시 일본을 방문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사이의 변화는 엄청났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핵심 요인은 안보법 제정이다. 지난 9월 중순 일본의회에서 통과된 법이다. 전후(戰後)의 일본, 아니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꾼 행동준칙이다. 안보법의 골자는 ‘자위대의 미군 2중대 편입을 위한 법적 장치’라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미일(美日) 협력에 관한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업그레이드된 미일동맹 2.0 체제를 지지(支持)하는 법이다. 미일동맹에 근거해, 미군과 함께 전(全) 세계 어디든지 함께 갈 수 있고, 갈 의향을 가진 나라가 현재의 일본이다. 패전(敗戰) 직후 만든 평화헌법은 자위대의 공격용 무력(武力) 개입을 전면금지해 왔다. 미일동맹 2.0 실행을 가로막았던 법적 문제가 안보법을 통해 ‘전부’ 해결됐다.
 
  안보법 통과를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1902년 영일동맹(英日同盟)이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군사동맹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타깃으로, 미일동맹 2.0은 중국을 가상적(假想敵)으로 한 군사협력 체제다. 113년의 시차는 있지만, 일본의 안보에 직결되는 동맹이다.
 
  서로 비슷하게 보이지만, 안보법을 통한 미일동맹 2.0의 위상과 위력은 20세기 초 영일동맹을 압도한다. 20세기 초 영국은 이미 꺼져가는 대제국에 불과했다. 러시아와 독일이 부상(浮上)하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제국(諸國)들의 식민지 경영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다. 영일동맹이라고 하지만, 양국이 전면적 차원에서 상대방의 안보를 책임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분적인 군사협력과 외교나 정보 차원의 상호협조가 동맹의 골자였다. 그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영일동맹을 충분히 활용했다.
 
  일본 해군은 영국의 군함 제조기술을 도입해 해군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태평양으로 이동하자 영국은 러시아 해군의 화력(火力), 작전, 사기 등에 대한 정보를 일본에 제공했다. 일본 연합함대가 쓰시마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아베, 일본 외교의 나침반 마련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계없이 한일관계는 상당기간 냉각상태를 유지할 전망이다. 일본의 혐한정서는 한국의 반일정서를 능가하고 있다.
  미일동맹 2.0은 기술이나 정보 측면에 국한하지 않는다. 함께 작전을 벌이면서 ‘혈맹(血盟)’으로서 함께 싸우는 체제다. 예전보다 못하다고는 하지만, 21세기 미국의 위상과 힘은 20세기 초 영국에 비교할 수 없다. 안보법은 그러한 나라 미국과 일본의 일체화를 보장하는 최종확인서다.
 
  도쿄 도착 후 안보법 제정 이후의 일본을 이해하는 현직 외교관 한 사람을 만났다. 현재 미일동맹 2.0과 관련된 핵심부서에서 일하는 인물로 필자와는 15년 지기(知己)다. 대화는 익명을 전제로 했다. 시작은 ‘마이너스에서 제로로 올라섰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외교에 대한 얘기다.
 
  “일본은 이제 겨우 땅에 착지한 상태다. 전후(戰後) 어둠 속에서 여러 나라에 떠밀려 방향을 잃고 헤매던 것이 일본 외교다. 이제 모두가 방향을 잡고 원칙과 가치에 근거해 나가게 됐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아베가 그 같은 나침반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일본이 말하는 원칙과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민주주의에 근거한 동맹이다. 인권·자유·언론을 무시하는 나라와는 같은 배를 타기 어렵다. 물론, 원칙과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글로벌 시대의 비즈니스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막을 수도 없다. 하지만 마음을 트는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긴장 속의 관계 정도라 해둘까? 아시아에서 진짜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는 일본, 한국, 대만, 인도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은 이들 나라와의 관계 증진을 최우선시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그 같은 일본의 노력에 대해 부정적이다. 한국과 달리, 인도, 대만과의 협력 체제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韓中日 FTA와 TPP
 
  필자가 도쿄에 들른 시기는 한중일(韓中日) 3국 정상(頂上)회담이 끝난 직후였다. 박근혜(朴槿惠)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아왔던 종군위안부 문제는 어느 틈엔가 사라져 가고 있다. 3년 가까이 한국 외교가 총력을 기울였던 종군위안부 문제는 ‘연내(年內) 타결 요구’라는 한국 측의 일방적 통보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측의 일방적 요구일 뿐이다. 일본은 ‘조기(早期) 해결을 위한 교섭 가속화’가 한일 간의 합의사항이라고 말한다. 연내 타결도 아닌 조기 타결, 그것도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조기 타결을 위한 교섭의 가속화이다. 교섭을 많이 한다는 전제하에 조기 타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연내 타결과는 엄청난 거리를 가진 문구다.
 
  한국 외교의 모든 것을 걸었던 종군위안부 문제는 결국 일본의 ‘관용’에 매달리는 식으로 사라지는 중이다. 한국 정부가 내세운 연내 타결이란 마지노선이 지켜지리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내 타결 데드라인인 2015년 12월 31일이 지나도 박근혜 대통령이 던질 카드는 거의 없다. 미중, 미일 사이의 판세를 읽는 사람이라면 연내 타결 데드라인을 넘은 2016년 1월 1일 이후 한국 외교의 행보를 ‘간단히’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외교의 주도권은 일본으로 넘어갈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의(同意)요청서’에 목을 맬 것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지상주의자에 의해 철저히 무시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가입 문제는 대표적인 예다. 한일 정상회담 후 한국 정부는 ‘한국 TPP 가입 일치’란 식의 발언을 흘렸다.
 
  일본은 어떨까? ‘한중일 FTA 추진 일치’를 내세웠다. 일본은 한국의 TPP 가입 문제가 아니라, 한중일 FTA 추진을 우선시한다. 한중일 FTA에 TPP의 룰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저작권과 환율(換率) 조작 금지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한국은 일본의 생각에 반대하면서 TPP를 우선시하자고 말할 듯하다. 일본을 무시하면서 일본이 TPP에 무슨 권리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3년 전 한국이 중국에 올인하던 때부터, 일본은 TPP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결국 일본은 아시아의 대형(大兄)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한국이 미국과 TPP 문제를 논의하려 해도 결국은 “일본에 가서 알아보라”는 식의 답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중일 FTA가 TPP 룰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한국과 중국의 TPP 가입도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런 상황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당당’ ‘호탕’ ‘통 큰’ 같은 부사와 형용사를 자랑하던 한국 외교는 명사, 동사, 숫자를 내세우는 일본 외교에 철저히 공략당할 운명이다.
 
 
  한국 외교, 더 이상 카드가 없다!
 
당면과제가 있으면 당장 그와 관련된 논의와 방안을 서적이나 영상으로 만들어 국민 모두에게 전달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안보법에 이어 헌법개정이 아베의 차기 과제다.
  한국에서는 거의 무시하고 있지만, 일본은 《산케이(産經) 신문》 지국장 문제도 외교카드로 적극 활용할 전망이다. 이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을 경우, 아랫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이 될지 몰라도, 한국 외교에는 불리하다. 외국에서는 이 문제를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한 지 오래다. 국제언론단체는 물론 국제연합 인권위원회(Human Right Committee)까지 《산케이》 지국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아베는 이들 단체들의 성명을 근거로 한국을 언론탄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결국 종군위안부 해결을 위한 카드는커녕, 거꾸로 일본이 한국을 압박할 너무도 많은 카드를 갖게 될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도 목소리는 높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동도 안 할 것이다. 아베가 도쿄로 돌아간 바로 다음날 ‘연내 타결 불가’를 언론에 흘린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 같은 말에 대응할 만한 박근혜 대통령의 카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원칙과 가치는 정권의 외교 수장인 대통령을 넘어서는 장기적·보편적 세계관의 문제다. 정권 내에서나 통하는 반일(反日)감정에 근거한 외교는 국내 정치용 카드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아베를 규탄하면서 대일 강경발언을 할수록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국내 정치가 혼미할수록 ‘반일’이라는 만병통치약의 효과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은 더욱 강한 법. 반일 목소리를 높이던 정권이 바뀌는 순간, 그 피해는 차기 정권이 전부 뒤집어쓰게 된다.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하에서 차기 정권은 한층 더 약발이 강한 반일 전략·전술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이명박(李明博) 정권의 유산(遺産)이기도 하다.
 
  국제정치학의 기본이지만, 분명한 원칙과 보편적 가치는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을 상대하는 최고(最高) 최후(最後)의 무기다. 적당한 선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하거나 밀실(密室) 외교로 대국과 상대할 경우, 그 피해는 자자손손(子子孫孫) 이어진다.
 
  최악(最惡)의 외교는 최근 3~4년간 한국 외교를 풍미한 것과 같은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행해지는 무원칙·무가치 외교다. 반일을 열심히 부르짖는 동안 이미 잃었거나, 앞으로 잃게 될 국익(國益)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친일(親日)로 가는 것이 원칙이자 가치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외람되지만, 필자는 그 같은 사람들을 ‘바둑알 머리’라 부르고 싶다. 세상의 돌은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견’이 아니라 ‘관’으로 세상을 보는 한, 일본이 한국보다 약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일본이 민주주의와 동맹을 21세기 외교의 나침반으로 잡아둔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에 맞춰, 아베가 위안부 문제를 연내 타결하지 않을 경우, 한국 외교의 원칙과 가치는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아니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궁금증으로, 흑백 바둑돌을 넘어선, 한국 외교의 원칙과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한미동맹, 톈안먼광장에서 행한 중국과의 우정, 아니면 아스라한 기억으로 사라지고 있는 민주주의 한국일까?
 
 
  블러드에서 브레인으로
 
  일본 외교관과의 대화는 민주주의와 동맹에 근거한 일본의 향후 계획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안보법으로 발판을 굳힌 상태에서 일본 외교의 차기 목표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미일동맹을 보다 심화하는 것이 일본 외교의 핵심 현안”이라고 답했다. 일본 자위대가 2중대로 나선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가이드라인 개정과 안보법 이후의 미일관계는 미국과 나토(NATO)나 미영(美英) 정도라 해석될 수 있다. 일본의 목표는 미-영, 미-나토 수준을 넘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준하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함께 전투에 나서는 혈맹으로서만이 아니라, 정보와 기술에 근거한 ‘머리 동맹’이다. ‘블러드(Blood)’에서 ‘브레인(Brain)’으로 옮아간다는 의미다. 주된 분야는 사이버테러 대응과 우주협력 체제 구축이다. 미일동맹 3.0 정도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지난 9월 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미국 방문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최대 현안은 사이버테러 문제다. 중국에 사이버 도둑질을 당장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21세기형 안보 영역으로 자리 잡은 것이 사이버테러 문제다. 미국이 치를지도 모를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전쟁은 육탄전이 아니라, 사이버 전쟁으로 시작할 것이다. 우주협력 체제는 우주선에서 양국 우주인들이 함께 유영을 하고 사진을 찍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인공위성을 통한 정보전이나 우주에서의 전쟁도 미일이 함께 대응하는 식이다. 미국의 인공위성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지원에 나서는 방식도 있다.”
 
  구체적으로 미-이스라엘 관계의 어떤 점을 일본이 모델로 삼으려는지 물어봤다.
 
  “사이버, 우주 분야에서의 미국-이스라엘의 관계는 굳건하고도 특별하다. 정보만이 아니라, 안보 분야의 인적 교류도 엄청나다. 이미 시작된 미일동맹 3.0은 ‘아시아에서의 이스라엘로서의 일본’을 목표로 한다. 이스라엘이 그러하듯, 일본의 정보와 기술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확보되는 셈이다. 미국은 하루라도 빨리 일본이 제2의 이스라엘로 자리매김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나는 사이버 우주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앞으로 5년 내로 이스라엘 수준의 미일동맹 3.0이 구축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항공모함이나 최신 전투기에 비교할 경우, 사이버나 우주에서의 협력 체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나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사실 필요한 사람의 수도 수천, 수만 단위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제한된 예산과 인력만으로도 협력 체제를 충분히 구축해 낼 수 있다. 물론 그 같은 협력 체제는 깊은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겠지만, 일본과 이스라엘과의 협력 체제도 보다 더 활발해지고 굳건해질 것이다.”
 
 
  의심받는 동맹 한국
 
  미일동맹 3.0이 시작된 순간, 서울에서는 한국형 전투기(KF-X)의 기술력에 대한 얘기가 연속 드라마처럼 이어지고 있다. ‘톱 시크리트’라는 그럴듯한 타이틀과 함께 미국 기술력의 80%에 준하는 자체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축하해 주고 싶지만, 사실 발표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 군사기술은 최첨단 기술에 근거한 0.01%의 싸움이란 점을 감안할 때 80%, 90% 기술력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왜 그 같은 얘기들이 기술 이전 요청에 ‘노(No)’라는 답이 나온 직후부터 ‘줄기차게’ 터져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더불어 F-35 전투기 몇 대 사고, 동맹이란 이유로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당찬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같은 요청을 실무진이 아닌 미국 국방장관에게 곧바로 들이대는 한국 국방장관의 ‘애국적 충정’은 한층 더 놀라울 뿐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옷 전체가 틀어져 가는 것이 기술이전을 둘러싼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필자는 도쿄로 날아가기 직전, 워싱턴 근처 로슬린(Rosslyn)에 위치한 IT 관련 군납업체에서 일하는 미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 1년에 한 번쯤은 한국 내 미군기지에도 들르는 아시아통이다.
 
  대화 중 한국형 전투기 기술이전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전직 군인으로 미국 국방장관이 ‘노’라고 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군사기술이란 것이 외국에 넘기고 싶어도 넘길 수 없다.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관련 개별기업과의 관계도 복잡하다. 최근 분위기로 보면, 국제정치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 이전할 경우 중국으로 곧바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를 못 믿는다는 것인지 물어봤다.
 
  “불신이라기보다 관리 체제 그 자체를 확신하기 어렵다. 꼭 정부 차원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나 개인 차원의 동기나 실수에 의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 외교관의 블러드-브레인론에 근거한다면, 미국이 한국과 함께 브레인 동맹으로 나갈 가능성은 크게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블러드 차원에서조차 의문시되고 있다.
 
 
  찬밥 신세가 된 ‘차이나 스쿨’
 
  일본 외교관과의 대화 말미에 한일관계에 대한 외무성 내 분위기를 물어봤다. 답은 ‘차이나 스쿨’이 사라졌다는 얘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외무성 내 양대(兩大) 산맥으로 ‘차이나 스쿨’과 ‘아메리칸 스쿨’이 있다. ‘코리안 스쿨’은 미미하지만, ‘차이나 스쿨’과 ‘아메리칸 스쿨’의 연장선에 서 있는 중간지대쯤으로 보면 된다. 차이나 스쿨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수상 때 일본 외교를 주도했던 그룹으로 주로 단카이(團塊) 세대의 세계관에 연결돼 있다고 보면 된다. 중국에 대한 과거사 반성과 함께, 국익을 위해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 같은 생각은 아베가 들어서면서 달라졌다. 그나마 약화되던 차이나 스쿨이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중국 담당 외교팀에서부터 한반도, 동남아시아와 같은 아시아 대부분의 최고 담당관은 아메리칸 스쿨 외교관으로 채워진다. 조직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지만, 중국의 무력행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동맹국인 미국을 잘 아는 아메리칸 스쿨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게 됐다. 당분간 그 같은 상황은 계속될 듯하다. 따라서 미국의 생각을 염두에 둔 한일관계가 외무성의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보면 한미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톈안먼 등장은 과연 한국 외교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1억 玉碎’와 ‘1억 총활약相’
 
가토 가쓰노부 1억 총활약 담당상.
  일본의 엄청난 변화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것 중 하나는 ‘1억 총활약 담당상(擔當相)’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의 장관 자리다. 지난 10월 초 아베가 총리로 재신임을 얻은 뒤 개각(改閣)을 하면서 탄생한 자리다. 1955년생 5선(選) 중의원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부(副)장관을 기용했다. 가토 장관은 여성활약담당, 재챌린지담당(再チャレンジ), 납치문제담당, 국토강인화(國土强靭化)담당과 같은 자리도 함께 맡았다.
 
  장관급 자리의 양산은 아베 정권이 안정될 수 있는 요인이자, 특징이다. 한국 중앙부처의 부(部)에 해당되는 성(省)을 맡은 장관이 아니다. 1억 총활약 담당상처럼 태스크포스의 수장이다. 예산은 물론 부하 직원도 제한적이지만, 아베는 장관 타이틀을 주면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만든 것이다. 반발도 일지만, 아베 1강(强) 체제로 나아가는 중요한 카드다. 일단 장관 타이틀을 갖게 되면, 의전(儀典)・예산과 더불어, 태스크포스를 위한 각 부처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가토 장관은 복수(複數)의 태스크포스를 섭렵한 아베 파벌의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1억 총활약 담당상’이 신설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의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는 두 단어로 압축된다. ‘1억 옥쇄(玉碎)’와 ‘1억 총특공(總特攻)’이다. 파블로프 개의 본능적 반사처럼 ‘1억=옥쇄, 총특공’으로 와닿는다. 옥이 깨어질 때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처럼 한순간 삶을 접자는 옥쇄와 비행기든 폭탄이든 육탄으로 돌격해 적을 무찌르자는 자살특공은 패전 직전 일본을 상징하는 광풍(狂風) 슬로건이었다.
 
  1억 모두 죽음으로써 적을 맞이하자는, 탈레반 원리주의 같은 사고(思考)가 75년 전 열도를 압도했다. 사실 당시 일본의 인구는 1억이 아닌 7000만 정도였다. 나머지 3000만은 한국・대만・만주 내 인구다. 아무 상관도 없는 주변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여 자신들과 함께 죽자는 ‘집단광기’가 ‘1억 옥쇄’ ‘1억 총특공’이란 단어 속에 숨어 있다.
 
  필자는 ‘1억 총활약 담당상’이란 말을 들으면서 ‘아베는 역시 우향우(右向右)의 화신(化身)’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전쟁 전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신설 부서를 통해, 마치 결전(決戰)에 임하듯 외부는 물론 내부의 적과 싸워나가자는 결의를 느낄 수 있다.
 
 
  일본식 직접민주주의?
 
  ‘1억 총활약 담당상’의 주된 임무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명목 GDP 490조 엔을 600조 엔으로 증대.
 
  둘째, 적극적 육아(育兒) 대책을 통해 출산율 1.4를 1.8로 향상.
 
  셋째, 안심할 수 있는 사회보장 확산.
 
  한마디로 노인・저출산(低出産)과 선진국병(病) 해결을 맡긴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업무의 내용이 아니라 업무 실현을 위한 논의 과정이다. 아베가 이미 천명했고, 가토 장관도 취임 즉시 강조했지만, ‘국민회의 개최’가 논의 과정의 핵심이다. ‘일본식 직접민주주의’라는 슬로건과 함께, 국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3개 핵심 문제를 논의하자는 식이다.
 
  이 회의는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많은 정치분석가는 결국 이 회의가 ‘초대형 우향우 광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의 일본의 공기를 이해한다면 최하 수백, 수천 단위가 될 국민회의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너무도 분명하다. 초기에는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내용에 주력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도 전체의 공기를 반영하는 홍위병(紅衛兵)식 회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혐한(嫌韓)으로 가득한 일본 내 공기를 감안할 때 국민회의가 혐한정서가 확산되는 통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엄청난 수의 사람이 모일 경우, 목소리가 크거나 조직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주도하기 쉽다. 중우(衆愚)정치다. 물론 여기서 아베는 프로듀서, 가토는 총감독에 해당한다. 공기로 움직이는 국민회의 - 바로 전쟁 직전의 광기에 찬 일본의 모습과 흡사하다. ‘1억 옥쇄’ ‘1억 총특공’으로 이어지던 1940년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신장개업하는 식으로 21세기에 재등장하는 것이다.
 
  지난 6월 선거법을 개정해 선거권 행사 연령을 18세로 낮춘 것도 일본의 우향우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젊을 경우 극(極)으로 달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일본의 공기를 감안하면 일본 청년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할 수 있다. ‘젊은 피’를 기반으로 사회 전체를 하나로 결속해 ‘집단일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나씩 완성해 가고 있는 셈이다.
 
 
  100엔숍의 진화
 
편의점에서는 100엔짜리 도시락을 팔고 있다. 고령사회를 준비하는 일본인의 경제처세술이다.
  100엔숍과 관련한 변화도 인상깊다. 100엔숍은 잃어버린 20년을 견지해 온 저가(低價)상품의 대명사다. 가격은 100엔이지만, 품질과 디자인, 견고성을 보면 미국에서 팔리는 10달러짜리 물건에 비견될 정도다.
 
  지난 11월 방문에서 필자는 종래 알고 있는 100엔숍 상품과 전혀 다른 상품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도쿄 동북쪽 미나미센쥬(南千住)역 주변 꽃 관련 전시회에 참가했다가 근처에 있는 로손 100엔숍에서였다. 로손은 편의점이다. 일반 가게에 비해 다소 비싼 곳이 편의점이지만, 일본에서는 거꾸로 편의점을 저가의 대명사인 100엔숍으로 바꿔가고 있다.
 
  더불어 일용잡화만이 아닌, 먹는 음식까지 100엔숍에서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과자・음료수・통조림 같은 음식이 100엔숍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새롭게 접한 것은 김치찌개・과일・두부・콩나물・파・두유・양배추・소바・생선회・소고기 같은 것들이다. 건강을 고려한 저칼로리의 고혈압 및 당뇨병 예방 통조림도 있다. 어떻게 생산하고 판매망을 구축했는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싼 식품으로 가득 차 있다. 맛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기본은 갖춘 100엔짜리 도시락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경이롭다. 한국에서 비슷한 수준의 상품을 구입할 경우, 최소한 세 배 아니 다섯 배는 지불해야만 할 물건들이다.
 
  미나미센쥬는 저소득 고령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평균연령이 70세는 됨직하다. 길에 쓰러져 잠을 자는 노인도 있다. 한국에도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고령사회의 참상이 과연 어떤 것인지, 미나미센쥬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와닿는다.
 
  생활용품에 이어 100엔짜리 식품이 편의점에까지 침투한 것은 바로 그런 저소득 독거자(獨居者)나 고령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나미센쥬 로손 100엔숍의 주된 고객은 70~80대의 초고령자들이다. 편의점 점원에게 로손 100엔숍의 현황을 물어봤다. 그는 “아직은 도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 전역으로 퍼져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답했다.
 
 
  과거지향적인 한국, 미래지향적인 일본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신문・방송은 과거사와 역사라는 키워드로 세월을 보내는 것 같다. 종군위안부니 친일인명사전이니 하는 것도 답답하지만, 이제 와서 ‘한강의 기적’이나 ‘파독(派獨)광부’ 얘기, 역사교과서 얘기를 하는 것도 과거지향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반면에 9개월 만에 만난 일본은 정치・외교・경제는 물론 일상생활까지도 미래에 대응하면서 하루하루 업그레이드되어 가는 것 같다. 지금 일본의 키워드는 ‘미래’다.
 
  한국은 과연 스스로 노력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하루종일 과거에 매달리는 과정에서 어쩌면 미래라는 말 자체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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