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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소식

‘어깨부상’ 류현진의 롤모델인 다저스 동료 하웰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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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절와순 손상으로 수술받은 후 재기 성공한 경우는 10% 불과
⊙ 류현진의 재기는 그의 노력과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어
2010년 ‘어깨수술’을 한 하웰은 재기에 성공해 다저스 불펜투수 가운데 최고의 투수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코리언 몬스터’ 류현진(28·LA 다저스)이 어깨수술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올해 빅리그 정상급 투수의 바로미터(Barometer)인 ‘200이닝 투구’를 목표로 삼은 류현진은 지난 1월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혼자가 아니었다. 류현진은 미국 애리조나 글렌데일에 위치한 다저스 스프링캠프로 전지훈련을 온 한국프로야구 LG 선수단과 함께 땀을 흘렸다. 이때만 해도 류현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훈련장 분위기와 몸 상태도 좋았다. 의욕도 넘쳤다.
 
  하지만 류현진은 3월 중순 텍사스를 상대로 첫 선발등판한 시범경기가 끝난 뒤 어깨통증을 호소했다. 지난해에도 등과 어깨통증을 겪은 적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염주사를 맞은 류현진은 3일 뒤 캐치볼을 재개했지만 다시 통증을 느껴 훈련을 중단했다. 이후 류현진은 스프링캠프 동안 재활에만 몰입했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고 시즌개막을 DL(부상자명단)에서 시작했다.
 
  류현진은 4월 말 어깨부상 후 처음으로 롱토스(Long toss)와 불펜피칭을 소화하며 90개의 공을 던졌다. 5월 초에는 부상 전과 같은 구위를 회복하며 마운드 복귀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했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도 “류현진의 재활과정이 순조롭다”며 “늦어도 5월 말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예상과 달리 마운드 복귀를 위한 4번째 불펜피칭을 끝낸 뒤 몸 상태가 다시 나빠져 훈련을 중단했다. 그리고 한국시간으로 5월 22일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병명은 ‘관절와순(Labrum)’ 손상 및 파열이었다.
 
  관절와순은 어깨뼈의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는 부위를 말한다. 어깨와 팔뼈를 연결시켜 주고 어깨관절의 안정성도 유지시켜 준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수술부위를 고정시켜 주는 기간만 3~6주가 소요되고 이후 복귀를 위한 재활과정은 최소 수개월이 걸린다. 때문에 올 시즌 류현진을 마운드에서 보는 건 불가능하다. 수술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한 것이다.
 
  류현진은 한국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좌완투수로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빅리그 진출 첫해에 시즌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의 빼어난 성적을 올린 그는 단숨에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거듭났다. 류현진은 지난해에도 시즌 14승 7패 평균자책점 3.38로 호투하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에 총 192이닝을 던졌던 그는 지난해 152이닝 투구에 그쳤다. 등과 어깨통증 등의 부상 때문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때부터 류현진의 어깨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류현진 ‘어깨부상’ 원인은?
 
‘어깨수술’로 올 시즌을 조기에 마감한 류현진이 더그아웃에 앉아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고교시절 한 차례 토미존(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았던 류현진은 2006년 한국프로야구(KBO)에 데뷔했고 그해 총 201.2이닝을 던졌다. 이후 류현진은 KBO에서 뛴 7년 동안 한 시즌 180이닝을 던진 적이 무려 5번이나 된다. 류현진 데뷔 후 그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없을 만큼 류현진은 프로진출 첫해부터 이닝이터(Inning eater)의 면모를 자랑했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도 맹활약했다.
 
  하지만 근육이나 인대는 많이 사용할수록 탈이 나는 건 당연한 일. 류현진의 경우는 어깨근육을 많이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절와순에 이상이 생겼고, 관절와순이 둘러싼 견갑골에 통증이 발생하며 첫 징후가 등 근육통으로 나타난 것이다. 류현진이 올 스프링캠프 기간에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전보다 더 강하게 던지고 KBO 시절보다 더 빨리 마운드에 오른 것이 류현진의 부상 이유로 꼽힌다. 류현진은 한국보다 수준이 높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공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전력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타자에 따라 완급조절이 가능했던 KBO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KBO시절보다 피로가 더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이란 대륙을 누벼야 하는 시즌 중의 장거리 이동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하루 7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비행도 자주 있었다. 여기에 한국과 달리 4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메이저리그의 낯선 환경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류현진은 4일 휴식 후 등판했을 때 3.5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5일 휴식 후에는 3.20 그리고 6일 휴식 후 등판했을 때는 2.4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류현진 본인 또한 “5일 이상 쉬고 마운드에 오르면 확실히 편하지만 4일 휴식 후 등판하면 피곤하다”고 말한 바 있다.
 
 
  류현진 ‘수술’은 성공적, LA에 머물며 재활 중
 
  수술을 마친 류현진은 현재 LA에 머물고 있다. 최근 1차 6주 재활과정을 마친 그는 어깨상태를 지켜보면서 본격적인 재활과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류현진은 어깨수술 뒤 미국 현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부터 어깨에 통증이 있었다. 고심 끝에 수술을 한 이상 열심히 재활훈련을 해서 내년 시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류현진의 국내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에이스펙(A-Spec) 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지난 7월 초 미국에서 만난 기자에게 “수술 때문에 아쉽게 시즌을 마쳤지만 류현진은 현재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류현진은 워낙 낙천적인 데다 유연성도 좋고 회복력도 뛰어나 반드시 부상을 털어내고 마운드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1년 미국 《저널 오브 애슬레틱 트레이닝(Journal of Athletic Training)》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류현진처럼 관절와순 수술을 받은 뒤 재기에 성공한 메이저리그 투수는 10% 내외라고 한다. 과거 김병현(KIA)과 함께 애리조나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합작했던 투수 커트 실링(은퇴)과 마이클 피네다(26·뉴욕 양키스) 등을 제외하면 어깨수술 후 모두 구위를 잃거나 제구력이 떨어졌다. 국내에선 이대진 KIA 코치가 현역시절 어깨수술을 한 뒤 재기하기까지 무려 7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NC 투수 손민환과 박명환도 어깨수술 후 4년 동안이나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이들은 마운드 복귀에는 성공했지만 예전의 구위는 찾지 못했다.
 
 
  수개월에서 1년은 재활 매달려야
 
과거 김병현의 동료였던 실링은 류현진과 같은 어깨수술을 했지만 이후 재기에 성공하며 메이저리그 통산 216승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가 됐다. 제공=애리조나구단
  류현진을 기다리고 있는 재활훈련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최소 수개월에서 1년은 재활에만 매달려야 한다.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류현진이 재활과정에 돌입하면 우선 관절의 각도를 회복하는 ROM(Range of motion 관절운동범위) 과정을 거쳐 서서히 근력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다음은 ‘롱 토스-캐치볼-하프 피칭(Half pitching)-라이브 피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는 상당한 통증이 동반되는 힘겨운 과정이다. 때문에 재활과정 중에 류현진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받을 수 있다.
 
  고교시절 류현진과 함께 최고의 좌완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남윤성(군복무)도 과거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마이너리그 시절에 어깨수술을 받았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상은 몸이 아픈 것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크다”며 “(류)현진이가 긴 재활을 통해 행여나 예전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등 트라우마(Trauma) 증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남윤성은 이어 “사람의 몸은 체인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현진이가 재활과정을 앞당기기 위해 욕심을 내다 보면 다른 부위에 부상이 생길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장기간 마운드에 복귀하지 못하면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우울증도 겪을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현진의 재기 가능성이 낮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실링은 1995년 오른쪽 어깨수술을 받은 뒤 단 9개월 만인 1996년 5월 중순에 마운드에 복귀했다. 예전과 같은 구위를 회복한 것은 물론 그해 9승 10패 평균자책점 3.19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2001년에는 무려 시즌 22승을 거두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김병현과 함께 소속팀 애리조나의 우승을 합작했다.
 
  이후 2007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20년 현역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실링은 빅리그 통산 216승을 올린 전설적인 투수가 됐다. 어깨수술 후 12년 동안 현역생활을 한 것은 물론 통산 216승 중 수술 후 거둔 승수가 무려 173승이나 된다. 류현진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어깨 부상했다 부활한 하웰
 
  실링 외에 류현진이 부상 후 롤모델로 삼아야 할 인물은 또 있다. 그의 팀 동료인 좌완투수 J. P. 하웰(32)이다. 류현진의 수술이 끝나자 국내의 많은 언론은 과거 어깨수술 전력이 있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기사를 쏟아내며 류현진의 재기 가능성을 비교했다. 하지만 하웰의 사례를 다룬 기사는 전무했다.
 
  류현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불행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더 아프다. 하지만 불행 앞에 주저앉거나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삶의 일부이다. 개중에는 불행을 딛고 일어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류현진의 팀 동료 하웰이 그렇다.
 
  다저스 불펜투수 가운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하웰은 7월 초 기준 올 시즌 총 33경기에 투입돼 4승 1패 평균자책점 0.36의 눈부신 호투를 펼치고 있다. 팀 내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에 투입된 것은 물론 30경기 이상 출장한 리그 전체 불펜투수 가운데 최고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다저스가 올 시즌 초부터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는 동력 중의 하나는 다저스 마운드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 주고 있는 하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부상과 따돌림 등 불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왕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야구’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출신인 하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외모 때문에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왕따’였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던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채 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하웰은 야구를 알게 됐고, 야구를 시작한 뒤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의 나이 10세 때 한 경기에서 삼진을 10개나 잡으며 투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좋은 코치를 만나 한층 더 발전했다. 하웰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야구스타가 됐다. 더 이상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가 아니었다.
 
  하웰이 왕따를 극복한 뒤 또 다른 난관을 만난 것은 대학에 진학한 후였다. 하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즌 10승 무패 평균자책점 0.09의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를 보기 위해 대학 및 프로 스카우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01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애틀랜타의 지명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교육이 먼저”라며 대학(USC)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코치가 있었다.
 
  하웰은 기자에게 당시를 떠올리며 “코칭스태프의 의견은 존중했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식의 훈련과 투구를 하고 싶었다.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며 아쉬워했다. 하웰은 심사숙고 끝에 학교를 옮기기로 마음 먹었다. 19세 청년에게 찾아온 갈림길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옳았다. 대학교 2학년 때 텍사스 대학(UT)으로 이적한 하웰은 그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호투를 펼쳤다. 특히 4학년 때 출전한 ‘2004 전미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하웰이 선발투수로 기록한 평균자책점 0.77은 당시 최고 기록이었다.
 
  어린 시절 ‘왕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야구는 어느새 하웰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린 만큼 보상도 따랐다. 2004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31번)에서 캔자스시티의 지명을 받은 것. 이후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하웰은 1차 지명자답게 프로진출 단 1년 만인 2005년 6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휴스턴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됐다. 1년 뒤인 2006년 6월 탬파베이로 트레이드됐지만 그곳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2008년 선발에서 불펜투수로 보직이 변경됐지만 그해 6승 1패 평균자책점 2.22를 기록할 만큼 하웰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정상급 투수로 군림했다.
 
 
  ‘승승장구’하던 하웰, 어깨부상을 당하다
 
  하지만 또 다른 불행이 하웰을 찾아왔다. 2010년 스프링캠프에서 투구를 하는 왼쪽어깨에 통증이 시작된 것. 하웰은 2달간의 재활과정을 끝내고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깨가 불편했다. 올 초 류현진이 겪었던 과정과 유사했다. 당시 하웰의 나이는 27세로 류현진(28)과 비슷했다. 이 둘은 좌완투수라는 공통점도 있다. 하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의사를 찾아갔는데 ‘관절와순이 손상돼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의사에게 수술 후 다시 공을 던질 수 있겠냐고 묻자 ‘재기할 수 있는 확률은 고작 15~20프로’라고 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눈앞이 깜깜하고 두려웠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하웰 앞에는 기약할 수 없는 긴 재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기할 수 있는 확률도 극히 낮았다. 일부에서는 “이제 하웰의 야구인생은 끝났다”고 비아냥거렸다. 수술 후 하웰은 아내와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앨라배마주로 이주했다. 재기를 위해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하웰은 기자에게 “그때의 심정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가 남몰래 흘렸을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감히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년간의 재활을 마친 하웰은 2011년 보란 듯이 마운드에 올라 다시 공을 던졌다. 모두가 놀랐다. 하웰 본인도 “놀랐다”고 했다. 이후 하웰은 2012년 탬파베이 불펜투수로 1승 무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3년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을 얻어 현 소속팀 다저스로 이적했다. 이적 첫해에 4승 1패 평균자책점 2.03의 호투를 펼친 하웰은 지난해에도 3승 3패 평균자책점 2.39를 기록해 2년 연속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웰의 성공적인 재기에는 아내 헤더(Heather)의 내조도 빼놓을 수 없다. 하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내의 덕”이라고 말했다.
 
  대학교(USC) 캠퍼스 커플이었던 하웰 부부는 친구 같은 연인으로 지내다 2009년 11월에 결혼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헤더는 2006년 졸업과 동시에 미국 폭스스포츠(Fox Sports) 방송사에 조연출로 입사했다. 그리고 18개월 만에 메이저리그와 대학미식축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국방송의 진행자가 됐다. 다수가 탐내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부상을 당하자 그의 재기를 위해 ‘사표’를 던졌다. 헤더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사표를 제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보다 남편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헤더가 이처럼 내조를 우선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또한 불행했던 과거와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둔 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더는 남동생 두 명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부친은 영업사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살림 탓에 부모는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헤더가 13세 때 이혼했다.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이혼 등 답답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어린 헤더가 선택한 것은 스포츠였다. 평소 털털하고 활발했던 그녀는 축구와 농구는 물론 육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남자농구팀에서 뛰라’는 제의를 받을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헤더는 육상에만 전념했다. 주종목으로 800m 달리기를 선택한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16세 때 고등부 전미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올림픽 기대주로 각광을 받았고 대학 스카우트들의 관심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2008년 8월 불행이 엄습했다. 그녀가 고3 때였다. 육상팀 동료들과 함께 크로스컨트리 연습을 하던 중 그만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 강물에 떨어져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추락 당시의 충격으로 허리와 꼬리뼈가 심하게 손상됐다.
 
  헤더는 두려웠다. 팔과 다리의 감각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중상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다시 걷게 될 수는 있어도 육상선수로서의 생명은 끝났다”고 말했다. 한 달 이상의 기간을 병원에서 보낸 그녀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계단 하나도 스스로 오를 수 없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도 항상 극심한 고통이 동반될 만큼 아프고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홀로 걷게 됐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우울증마저 경험했다.
 
 
  美 ‘육상 꿈나무’ 헤더, 부상을 통해 희망을 찾다.
 
  헤더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부상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덕”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어머니는 항상 긍정적이다.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도 ‘세상 모든 일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바뀌고 또 다시 봄이 찾아왔을 때 포기하지 않은 헤더의 희망도 열매를 맺었다. 그녀가 다시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체육특기자로 대학(USC)에도 진학했다. 헤더는 사고 후 1년 만에 육상부 일원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게다가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까지 겹쳐 고통은 배가됐다. 의사는 그녀에게 무리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자칫 장애를 안고 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심하던 헤더는 결국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선수생활을 끝냈다.
 
  헤더가 육상을 선택하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기자에게 “육상을 잘해서 성공하면 부모님이 재결합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 또한 장차 소중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소중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재기를 위해 방송 일을 그만둔 헤더는 현재 더 멋지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의 어린 시절 ‘왕따’ 경험을 모티브(Motive)로 한 동화책(The adventures of Dangles)을 집필한 것. 지난 7월 초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체이스필드에서 만난 하웰은 “헤더가 최근 또 다른 동화책을 탈고(脫稿)했다”며 기자에게 아내의 근황을 들려줬다.
 
 
  하웰 부부가 전하는 희망과 긍정의 힘!
 
  이뿐만이 아니다. 하웰 부부는 2013년 초 ‘바른길 찾기(Discover your path)’ 재단을 설립했다. 자신들의 불행했던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저마다 꿈을 향해 올바른 길을 찾아 전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어린아이들이 또래의 외모나 말투 등을 트집잡아 집단으로 따돌림하는 것을 예방하는 캠페인도 함께 펼치고 있다.
 
  헤더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올림픽에 출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저마다 바른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그 길을 긍정적으로 걸어가다 보면 종국에는 사랑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웰은 “꿈을 향해 가다 보면 주변의 무관심이나 부정적인 시선 등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나게 된다. 어린아이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지 긍정의 힘을 전해 주고 싶다. 어려움을 만나도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웰 부부는 오프시즌은 물론 시즌 중에도 LA 홈경기 일정이 있을 때에는 타운 내에 소외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을 찾아가 사비로 준비한 야구공과 동화책 등의 선물을 나눠주며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웰은 기자에게 “열 명 아니 백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우리를 통해 자신의 바른길을 찾을 수 있다면 아내 헤더와 함께하는 이 일은 분명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애견 로즈
 
‘내조의 여왕’ 헤더가 남편 하웰 그리고 애견 로즈와 함께 다저스 구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제공=하웰
  하웰 부부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아내 헤더의 부상후유증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적적함은 이들의 애견인 로즈(Rose)가 메워 주고 있다. 하웰은 기자에게 “아내와 내가 숱한 역경을 이겨낸 것처럼 우리의 아이도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각종 난관을 이겨 내고 긍정과 희망의 힘으로 삶을 대하는 하웰의 밝은 모습은 주위 사람들마저 기분 좋게 한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류현진이 마주한 부상도 그렇다. 류현진은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스프링캠프 복귀를 목표로 재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초 기자와 만난 익명의 다저스 관계자는 “류현진이 내년 스프링캠프 때까지 투구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고 귀띔해 줬다.
 
  류현진의 재기는 전적으로 그의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 류현진의 바람처럼 내년에 복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두 번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실링과 하웰의 과거는 류현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울 점도 많다.
 
  ‘류현진이 다시 빅리그 마운드에 올라 예전처럼 힘차게 공을 던질 수 있을까.’ 아무도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하지만 팬들은 벌써부터 내년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류현진의 복귀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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