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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일본 민주당은 왜 몰락했나?

“자민당은 미래, 민주당은 과거”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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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중의원 의석 중 308석 차지했던 민주당, 작년 총선에서는 73석 건져
⊙ 민주당은 퇴장하는 단카이 세대의 역사관에 집착, 아베는 일본인이 친근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메이지 시대 역사 강조
⊙ 일본인의 29%가 2020년 이전 中日 전쟁 발발 예상, 강력한 리더십 희망하면서 아베 지지
⊙ 생존 위해 민주당도 右向右 할 것

劉敏鎬
⊙ 54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역임.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저서: 《일본내면풍경》 《미슐랭을 탐하다》 등.
아베 총리가 기세 좋게 ‘아베 2.0’ 시대를 열어가는 사이에, 노다 요시히코, 간 나오토, 하토야마 유키오 등 민주당 정치인들은 몰락했다. 사진 왼쪽부터 노다 요시히코, 간 나오토, 하토야마 유키오, 아베 신조.
  “30%대로 추락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지지율이 박정희(朴正熙)를 기반으로 한 향수병(鄕愁病) 유권자들과 일치한다는 데 진짜인가?”
 
  지난해 말 청와대 비선조직 여부와 관련해 수많은 비서관의 이름이 오르내릴 당시 일본인 친구로부터 들은 질문이다. “신문에 따르면 그런 모양”이라는 식으로 적당히 넘겼다.
 
  죽은 지 한 세대를 넘긴 사람에 대한 지지율이 국민의 3할대를 넘어선다는 것이 놀랍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놀랍다. 내가 아는 한,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아베 신조 총리의 아버지) 전 외상(外相)이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 전 총리를 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에게 표를 준 일본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고향 선거에 나설 경우 몰표를 얻겠지만, 전국 무대에 나가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출신 배경면에서 박 대통령과 아베가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현실 정치 세계에서 두 사람의 권력 기반은 전혀 다르다.
 
  NHK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 평론가로 일하는 일본인은 한일(韓日) 두 정상의 차이점으로 기본 지지율을 강조한다. 아베는 내리막과 오르막의 한계가 없는 정치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르다. 최악의 내리막이라고 해도 3할대는 건질 수 있다.
 
 
  ‘아베 1.0’에서 ‘아베 2.0’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최악으로 치달을 당시, 공교롭게도 아베는 총선에서 압승했다. 지난달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강조했듯이, 아베의 ‘1강(强) 체제’는 4년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2018년 12월을 넘어, 2020년 도쿄(東京) 하계올림픽이 끝난 뒤까지 이어질 것이다.
 
  아베 집권 2기는 집권 1기인 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지난 2년간의 기간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정권이다. 집권 1기를 아베 1.0이라 부른다면, 집권 2기는 아베 2.0에 해당된다.
 
  1.0과 2.0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베의 색깔이다. 지난 2년간의 아베 1.0은 그전에 집권했던 일본 민주당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3·11동일본대지진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에 대한 반대 정당으로서의 자민당 대표가 아베이다. 민주당이 싫어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란 심정으로 자민당을 밀었는데, 마침 자민당 총재가 아베였다는 얘기다.
 
  아베는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에 나가 겨우 당선된 경력을 갖고 있다.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에 이어 2위였지만, 과반수 당선자가 없었기 때문에, 2차 선거에서 겨우 과반수를 얻어 역전승(逆轉勝)을 거두었다. 2012년 9월까지만 해도 아베는 자민당을 좌지우지할 만한 강력한 리더가 아니었다. 따라서 집권 1기의 아베 1.0은 ‘자민당 총재 아베’라는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12월 14일 총선 압승 이후 나타난 아베 2.0은 어떨까? ‘자민당 총재 아베’가 아닌, 아베라는 개인을 내세운 것이 ‘아베 2.0’의 실체이다. ‘아베의, 아베에 의한, 아베를 위한’ 자민당과 내각이 ‘아베 2.0’ 시대의 아베 정권이다. ‘아베 2.0’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아베의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에 대한 일본인의 향수는 작용하지 않았다. 아베는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아베 2.0을 ‘획득’했다.
 
 
  일본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아베 2.0’ 시대를 대하면서 궁금한 것은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의 나약함이다. 아베가 자민당 1강 구도인 아베 2.0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동안 일본 민주당은 무엇을 했을까?
 
  정책을 중심으로 할 경우, 가장 실패한 정치가로서의 모델은 무엇일까? 증세(增稅)는 그중 최악(最惡)의 실패담이 아닐까? 21세기 글로벌 시민들의 최대의 관심은, 결국에는 돈으로 귀착된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돈 문제가 핵심이다. ‘아베 1.0’은 집권 16개월인 지난해 4월 소비세(消費稅·한국의 부가가치세)를 인상했다. 종전의 5%에서 8%로 3%포인트 올린 것이다. ‘아베 2.0’이 시작되기 불과 8개월 전에 터진 ‘대사건’이다. 그럴 듯한 명분으로 소비세를 올렸지만,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세상이 전부 불황이라고 하는 시대다. 세금 인상을 단행한 정치 지도자의 경우 가만히 있어도 도태되는 것이 21세기 정치다. 일본은 다르다. 세금을 올린 뒤에도 아무 탈 없이 아베는 총선에서 압승했다.
 
  야당은 무엇을 했을까? 왜 야당은 그냥 둬도 사라질 아베를 붕괴시킬 수 없었을까?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 나오토(菅直人),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등 한국인들도 기억하는 그 많은 민주당 지도자들은 무엇을 했을까? 3·11동일본대지진 당시 내각과 국민들을 지도하고 다그치던 총리 경험자를 비롯한 대정치가들은 어디로 ‘꼭꼭’ 숨은 것일까?
 
  필자는 민주당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다. 필자가 20여 년 전 공부한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 선후배 중 상당수가 민주당에서 정치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탄생한 마쓰시타 정경숙은 1993년 8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의 신당 바람을 타고 정치계로 진출했다. 한번에 15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늦게 시작하면 보병으로 출발하게 된다. 젊은 혈기도 있지만, 비교적 공천을 얻기 쉬운 야당이 정경숙 출신자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이들은 정당 간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러 정당을 오가기도 했지만, 대개는 야당에서 꾸준히 활동한 결과 민주당이 집권하자 집권 정당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마쓰시타의 희망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 지도자 양성을 위해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
  2009년 8월 30일, 민주당이 압도적 차로 승리해 집권 여당이 될 당시, 정경숙 출신자 25명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자민당 55년 체제를 무너뜨린 민주당 체제하에서 정경숙 출신은 가장 강력한 파벌이 됐다.
 
  정경숙 창설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86세 때 정경숙을 만들면서, “문부성(文部省) 대신이 하나 나와 일본의 미래를 밝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경숙을 만든 의미가 있다”고 말했었다. 그런 기대를 뛰어넘어 2011년 8월 11일 정경숙 출신의 총리(노다 요시히코)가 등장했다. 노다 총리는 외무성 장관 등 요직에 정경숙 출신들을 대거 등용했다.
 
  ‘아베 1.0’이 탄생되기 전에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스라한 추억과 자랑스런 영광 어디쯤이다. 이후 민주당 정권이 몰락했지만, 선후배들이 다시 복귀해 그들의 이상과 꿈을 실현해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다.
 
  워싱턴에 들르는 정경숙 선후배나 정치 관계자에게 왜 민주당이, 왜 그 많은 야당 투사들이 아베 2.0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아베가 왜 강한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2009년 중의원 480석 가운데 308석을 얻었던 민주당이, 왜 불과 5년 만에 존립 자체가 의심스러운 정당으로 추락했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총 의원 475명 가운데 291명 당선이 아베 2.0의 성적표다. 사실 2009년 민주당의 승리가 한층 더 화려하다. 그러나 아베 2.0 체제에서 민주당은 불과 73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불과 5년 만에 중의원(衆議院) 수가 4분의 1 정도로 급추락한 것이다.
 
 
  민주당, 총선 슬로건에서부터 지고 들어가
 
  ‘이 길밖에 없습니다(この道しかない).’ 지난해 말, 선거에 앞서 만들어진 자민당의 총선용 슬로건이다. 민주당은 어떤 정치 슬로건으로 대응했을까?
 
  ‘지금이야말로 흐름을 바꿔야 할 시기(今こそ流れを變える時).’ 선거 포스터에 실린 두 정당의 총선 슬로건을 처음 대했을 때, 필자는 이미 승부가 났다고 판단했다. ‘이 길밖에 없다’는 말은 다시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다. 좀 과장하자면 ‘배수진(背水陣)’을 친 자세이다. ‘지금이야말로 흐름을 바꿔야 할 시기’라는 말은 자민당의 흐름을 막아내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잘못된 것이니까 모두 힘을 합쳐 다른 길로 돌리자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길로 돌리자는 것인지, 돌릴 길과 아베의 길이 얼마나 다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는지에 대한 밑그림이 안 보인다. 그냥 자민당을 막아내고 보자는 것이 민주당의 슬로건이다.
 
  한마디 말 속에 정치 비전을 전부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슬로건을 통해 일을 대하는 자세나 방향을 짚어나갈 수 있다. ‘이 길밖에 없다’는 말 속에는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해 봤지만,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 길뿐이다. 알다시피 이 길이 어렵더라도 다른 길을 만들 시간도 돈도 없지 않으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건방지게 누구의 판단으로 ‘오직 이 길’을 외치는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다른 길을 인정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세우려는 극우적(極右的)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공기를 못 읽는 소리다. 일본은 리더십에 목말라 있다.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다. 섬 하나를 둘러싼 중국 측의 집요한 무력(武力)시위를 보면서 ‘일전(一戰)’이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이란 사실을 일본 국민 대부분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 9월 제10회 중일(中日) 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29%가 2020년 이전에 양국 간 전쟁이 터질 것이라 답했다. 중국의 경우 무려 53%가 전쟁이 터질 것이라 응답했다. 중국은 공산당 정부가 제공하는 일방적 정보에 의존하는 나라이다. 수동적이고 부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다(多)채널 정보에 의존하는 일본인이 한층 더 능동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 볼 수 있다. 29%는 거품이 낀 허수(虛數)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사람들이다. 10명 중에 3명이 중일전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일전쟁을 피하고 중국과 친구가 되자고 말하는 평화주의자들도 있다. 민주당이 말하는 ‘지금이야말로 흐름을 바꿔야 할 시기’라면서 중국 나아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주문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점점 줄어드는 노년층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이 호시탐탐 일본을 노리는데, 당장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외침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찾아,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원하는 것이 현재의 일본인들이다. 비장함까지 배어든 ‘이 길밖에 없다’라는 말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에 해당된다.
 
 
  역사인식의 起點
 
  ‘이 길밖에 없다’와 ‘지금이야말로 흐름을 바꿔야 할 시기’ 사이의 거리감은 미래와 현재라는 틀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사이의 상인한 정치적 기반에 대해 설명해 준 일본인은 말한다.
 
  “자민당은 미래입니다. 민주당은 과거입니다. 그들이 주목하는 눈높이 말입니다. 각론(各論)으로 들어가면 양당 모두 과거 현재 미래가 투영돼 있겠지요? 그러나 대체적으로 보면 자민당이 미래, 민주당은 과거에 연연해 방향을 맞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라는 말은 한국·일본 관계없이 두 나라 정치가 모두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역사’란 말을 쓰면 뭔가 장기적이고 종합적이고 고상하고도 품위 있게 느껴진다.
 
  역사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좋은 나침반이라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방향은 있지만, 방향을 결정할 수 없고 그나마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아무리 방향을 잘못 가리키는 엉터리 나침반이라도 나름대로의 원리와 원칙을 파악할 경우 훨씬 더 유용하게 쓸 수도 있다. 방향을 정한 뒤 초지일관 관철해 나가고, 방법도 함께 노력하면서 개발해 나갈 경우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2015년, 역사를 보는 눈은 일본 정당을 이분(二分)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정확히 말해, ‘역사를 보라’라는 말을 할 때 과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한 역사인가, 라는 것이 이분의 근거에 해당된다. 10년 전, 100년 전, 1000년 전, 1만 년 전…. 과연 어디를 기준으로 역사를 보라는 말인가? 모든 역사를 전부 통괄해서 보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곧바로 도움이 되는 ‘피부로서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시점은 크게 단축된다. 피부로서의 역사란, 이질감 없이 당시의 상황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기능적 의미의 역사’를 의미한다. ‘선조 만만세(先祖 萬萬歲)’로서의 자랑스런 역사가 아닌, 당시 상황을 비교해 활용하는 지식과 지혜로서의 역사다.
 
 
  하토야마의 ‘멍청한 발언’
 
  먼저 민주당을 보자. 태평양전쟁을 전후(前後)한 일본 침략사가 역사 교훈의 기점이라고 말한다. 식민지 조선, 중국 침략, 진주만 공격, 동남아시아 지배, 반핵(反核), 평화, 반미(反美), 친한(親韓), 친중(親中) 같은 것이 민주당이 말하는 ‘역사를 보라’의 기점이다.
 
  2010년 5월 4일, 당시 총리였던 민주당의 하토야마는 희한한 고백을 하나 기자들에게 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 때까지만 해도 미(美) 해병대가 전쟁억지력으로서 오키나와(沖縄)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미 해병대 각 부대들이 연계해서 전쟁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텐마(普天間) 기지의 일본 밖 이전이나 오키나와 내 이전과 같은 얘기를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 너무도 경솔했다고 판단된다.”
 
  하토야마의 발언은 당시 일본 정국을 뒤흔든 ‘멍청한 발언’으로 유명하다. 민주당 중의원으로 거의 30년 이상을 일해 온 사람이 미 해병대의 전쟁억지력을 몰랐다는 점이 일본인 대부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토야마만이 아니라, 후텐마 기지 이전을 반대하던 민주당 대부분의 의원도 그 같은 입장이라는 추측이 흘러나왔다.
 
  미군은 전쟁억지력과 무관한, 미국의 세계 패권(覇權)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후 일본 지식인의 상식이었다. 바로 반미논리이다. 멀리는 임진왜란, 가까이는 지정학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중국·러시아·미국으로 이어지는 태평양 현황을 무시한, 반미라는 잣대에 모든 것을 맞춘 세계관이 바로 하토야마의 머리를 지배해 왔다.
 
  그는 총리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알았던 역사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된다. 그 이전에 그를 지배했던 역사관은 일본 침략사에 기초한, 전후 세계 역사의 흐름에만 주목하는 제한적인 역사인식이었다. 이 같은 세계관은 사실, 이른바 한국 내 진보 진영에 만연한 미군에 대한 입장과 비슷하다. 글로벌 차원의 군사 지정학적 차원이 아니다. 전후 반미론에 근거해 미군 주둔을 평가하는, 이념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단카이 세대의 몰락
 
  하토야마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역사인식은 전후 일본 문화 역사계를 주도해 온 단카이(團塊) 세대들의 사고와 일치한다. 하토야마 본인은 단카이의 정수(精髓)인 1947년생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언론의 중요한 메뉴로 등장한, 이른바 일본 내 진보세력들이 주도하는 ‘일본관’과 비슷하다.
 
  한국 신문을 보면 어딘가에 일본인 필자의 글이 있다. 생활 관련 글을 쓰는 일본인 주부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베를 비난하는 일본 지식인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집단적 자위권에서부터, 미일외교, 한일외교 책임론, 역사 문제에 관한 반성에 관련된, 한국인들의 귀에 솔깃한 내용들이다.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왜 이런 글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실리는지 궁금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카이가 은퇴하면서 그들이 독점하던 공간이 일본 내에서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100%는 아니겠지만, 한국 신문에 실리는 반(反)아베 일본 필자의 공통점 중 하나로 60대 이상의 단카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민주당이 말하는 역사인식의 출발점은 저물어 가는 단카이와 더불어 종적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다. 단카이를 이어받은 후배들의 건투가 있을 법하지만, 아직 그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단카이가 잘나갈 때는 강력한 파워 때문에 주변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었다. 따라서 단카이가 사라지면서 계승자 없이, 모든 것이 한순간 소멸되는 형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 리버럴의 대부(代父)인 《아사히(朝日)신문》에 대한 자기비판과 국민적 비난은 새해 들어서도 식을 줄 모른다. 오보(誤報)로 밝혀진 종군위안부 정부 관여 보도에서 비롯된 일본 리버럴의 대추락이다. 《아사히신문》은 제3자 기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거의 매일 자아비판에 나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 조선, 중국 침략, 진주만 공격, 동남아시아 지배, 반핵과 평화로 이어지는 역사인식과 거기에 따른 반성과 다짐 같은 얘기는 일본 국민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단카이가 독차지해 온 일방적 가치 독점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과 더불어, 거의 100년 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왜 반성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는 부정적으로 들리는 상황이지만, 2015년 일본은 민주당의 역사인식에 대해 등을 돌린 상태이다.
 
  이 같은 배경을 감안한다면, 왜 민주당은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내놓기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침략사에 근거한 역사인식을 전제로 할 경우 그 결과는 한국·중국에 대한 저자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에 역사인식 재고(再考)를 수차례 요구한 상태다. 두 나라 정상(頂上)이 공조(共助) 형식으로 일본 비판에 나선 적도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중일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믿는 일본인이 10명 중 3명에 달한다. 민주당의 역사인식에 동의하면서 한국·중국에 대한 사과와 보상에 동의하는 일본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같은 딜레마 속에서 민주당은 일본의 미래를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아베와 자민당은 안 됩니다!’밖에 없다.
 
 
  아베와 메이지유신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배출한 쇼카손주쿠. 아베가 말하는 역사의 출발점은 에도 말기나 메이지(明治)를 기원으로 한다.
  그렇다면 아베는 어떤 기준하의 역사인식으로 미래에 답하고 있을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베는 에도(江戶) 막부 말기나 1860년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기점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아베는 2013년 8월 총리 자격으로 자신의 고향에 있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방문했다. 메이지 당시 일본의 선각자들을 배출해 낸, 하급무사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만든 사립학교이다. 아베는 지난해 8월에도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의 묘를 공식 참배해 자신의 역사의식을 모두에게 천명했다. 다카스기는 에도 말기 평민들 중심의 근대적 군대 조직을 이끌며 막부군(幕府軍)에 맞서 싸운 메이지 설립의 일등공신이다.
 
  아베가 주목하는 시기는 민주당 역사인식의 기원보다 100년 정도 앞서 있다. 이 시기는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가장 많은 무용담을 만들어낸 일본사의 르네상스에 해당된다.
 
  일본인들은 역사만화와 역사소설을 대중만화와 대중소설 레벨로 이해한다. 나이가 많거나 지식인을 위한 전문영역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편안히 쉽게 읽을 수 있는 아름답고 신나는 스토리로서의 역사다. 메이지를 전후한 역사는 일본인 모두가 좋아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수많은 스타가 탄생하고, 그들의 얘기가 마치 일본인 개개인의 분신처럼 움직여 나간다.
 
  한국인의 귀에도 익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 히지가타 히사모토(土方久元)와 같은 메이지의 지사들은 미남에다 패션감각까지 뛰어난, 주관을 가진 인물로 만화에 등장한다. 사(私)를 버리고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여성이라면 사랑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존재들이 아베가 설정한 역사인식의 주인공들이다.
 
  아베가 상기시키는 메이지 시대의 역사는 얘기를 꺼내는 순간 고개를 숙이도록 만드는, 어둡고도 추운 스토리들로 메워진 민주당의 일본 침략사와 격이 다르다. 입에 올릴수록 일본과 일본인을 증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당의 역사인식 속에 투영돼 있다. 아베의 역사는 정반대다. 서로가 경쟁적으로 얘기를 즐기고, 모두가 본받고 싶고 가까이서 만나보고 싶은 스타들의 향연으로서의 역사이다.
 
  일본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선거 슬로건인 ‘이 길밖에 없다’는 말을 수많은 의미를 내포한 명구(名句)로 풀이한다. “메이지 시대 지사들의 경험과 그들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이 길밖에 없다’라는 말이 아베가 원래 전하려던 의미일 것”이라 분석한다.
 
 
  외부인, 바보, 젊은이
 
  민주당의 추락을 설명해 주는 말로 ‘요소모노(他所者)’ ‘바카모노(馬鹿者)’ ‘와카모노(若者)’로 대표되는 3개 유형의 인간을 빼놓을 수 없다. ‘외부인’ ‘바보’ ‘젊은이’로 풀이될 수 있는 말로, 조직을 개선(改善)시켜 나가는 3총사란 의미로 일본 속담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조직을 개선시켜 주는 역할은 장기근무자, 사장, 연장자가 아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 들른 외부인, 정확한 판단도 못 내리는 즉흥형의 바보, 머리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젊은이가 조직 개선의 주인공이다. 2012년 일본 한 출판사는 《조직 이노베이션의 기점은 외부인, 바보, 젊은이 삼총사》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공교롭게도 책이 출간된 시점은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의 능력이 의심스럽게 보이던 때이다. 민주당 정권이 3·11동일본대지진 사태를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지탄받았던 시기다.
 
  민주당은 외부인, 바보, 젊은이를 당내(黨內) 수혈(輸血)의 근본으로 삼았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튀는 인물을 발탁해 국회의원에 올렸다. 연예인, 운동선수, 비영리단체 대표들이 집권 민주당에 포진한다. 따라서 책 제목을 언뜻 보면, 3총사로 채워진 민주당을 지원 지지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자세히 음미해 보면 달라진다.
 
  “이노베이션, 즉 개선이나 개량(改良) 수준은 소나 닭이나 전부 가능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 전부를 바꾸는 개혁이나 대변혁은 그런 엉터리 아마추어의 손에서 결코 이뤄질 수 없다”라는 것이 책 제목의 이면(裏面)에 깔려 있다. “외부인, 바보, 젊은이 3총사는 평화시에는 필요하고, 능력도 발휘해 낼 수 있다. 그러나 3·11동일본대지진 같은 대참사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公約은 화려했지만…
 
  외부인, 바보, 젊은이 3총사를 선두로 내세울 경우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게 바로 언제부턴가 전(全) 세계 정치 현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포퓰리즘 중 하나다. 구체적인 준비나 장기적 비전 없이 화려한 아이스크림을 3총사의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나누어준다. 복잡한 소리나 하고, 안 된다는 논리로 일관해 오던, 두꺼운 안경을 쓴 늙은 정치인보다 쿨하고 빠르다. 그러나 국민들이 받아든 아이스크림은 입에 대기도 전에 전부 녹아버린다. 맛은 달콤함과 거리가 먼, 마늘 맛으로 채워져 있다.
 
  2009년 민주당이 집권할 당시의 선거 슬로건 중 하나로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コンクリートから人へ)’가 있다. 간단히 말해 공공사업비를 줄여서 그 돈을 복지사업에 쓴다는 구상이다. 공공사업은 자민당 중심의 토목 관련 업체를 위한 악(惡)이라 규정했다. 줄인 예산을 공립고교 무상(無償)수업, 어린이 수당(手當) 도입, 고속도로 무료화(無料化) 등에 쓰겠다는 화려한 복지공약을 제시한다.
 
  이론상 그럴 듯하고, 멋진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로 들어가자 상황은 복잡하게 변했다. 재원 마련이 간단하지 않았다. 공공사업을 중단하면서 여기저기서 불만이 발생했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해갔다. 후텐마 기지 이전을 둘러싼 약속 번복과 모순된 행동, 그리고 복지정책이 유야무야되면서 민주당 정권이 허둥대던 상태에서 3·11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다. 결국 국민들은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베는 민주당이 활용한 외부인, 바보, 젊은이 3총사를 홍위병(紅衛兵)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이노베이션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 개혁과 국가적 변혁을 위해 다시 두꺼운 안경의 원로들을 자리에 앉혔다.
 
  아베 정권은 평화, 반미, 반핵, 친중, 친한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노선이 일본의 근본적 변화에 맞지 않다는 식으로 풀이한다. 한국에서는 아베를 포퓰리스트 정치가로 이해하지만, 사실 아베는 포퓰리즘 정책과 거리가 멀다. 소비세를 올리는 악역(惡役)을 자처한 인물이 아베다. 농촌 표가 떨어져 나갈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제휴협정(TPP)을 적극 추진 중이고,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원자력발전소 가동도 지지한다.
 
  한국 기준으로 치자면, 표 떨어지는 정책만 골라 하는 정치가가 아베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이 길밖에 없다, 라는 식으로 밀고 나가는 정치가이다.
 
 
  민주당 변신의 향방
 
  한국에 들어온 이케아(IKEA)가 손님들로 터져나간다고 한다. 필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스웨덴 외교관에게 이케아가 어떻게 스웨덴에서 탄생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바이킹 야만인에게 무슨 고상한 문화가 있겠는가? 스웨덴 문화의 원점은 제로에서의 출발에 있다. 문화 예술 모든 것이 전혀 없는 발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기존에 없던 전혀 다른 디자인, 재료, 기능, 저가(低價)는 IKEA 제품의 특징 중 하나이다. 제로에서 출발한 결과이다.”
 
  역사인식에 대한 지나친 부하(負荷)는 일본 민주당을 추락게 만든 근본적 이유일지 모른다. 역사인식의 기점으로 내세운 일본 침략사 중심의 이데올로기 벽에 갇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민주당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동일한 역사인식에 근거한 친구를 잃는 것 같겠지만, 민주당 생존 차원에서 보면 어제의 역사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필자는 조만간 아베의 역사인식을 능가하는 우향우(右向右) 역사인식이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불어닥칠 것으로 전망한다. 리버럴, 나아가 좌(左)의 논리에 매달리던 어제의 민주당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베보다 더한 우(右)의 논리로 나아가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일부에서 그 같은 움직임은 시작됐다. 경제, 복지, 외교, 군사, 나아가 대미(對美), 대한(對韓), 대중(對中) 정책에 관한 부분은 그 같은 역사인식의 조정을 끝낸 뒤 구체화될 것이다. 아베에 맞먹는 야당의 우향우 변신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또 다른 과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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