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셰일 가스·석유 개발 통해 에너지 자립국 돼, 세계 패권 계속 쥘 것”(조지프 나이)
⊙ 미국은 중국을 ‘패권’ 차원이 아니라 ‘위협’ 차원에서 볼 뿐
⊙ 중국인들의 긍정적인 對美觀은 美·中 충돌 막는 정서적 안전판
劉敏鎬
⊙ 5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미국은 중국을 ‘패권’ 차원이 아니라 ‘위협’ 차원에서 볼 뿐
⊙ 중국인들의 긍정적인 對美觀은 美·中 충돌 막는 정서적 안전판
劉敏鎬
⊙ 5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중국의 대표적인 유전지대인 헤이룽장성 다칭유전. 하지만 이미 에너지 수입국으로 전락한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쥐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출범과 함께 중국의 미래에 관한 분석과 전망이 넘치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시진핑 출범이 미국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면서 미·중(美中) 양국을 비교하는 글도 많이 볼 수 있다.
크게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미래는 실업(失業)과 경제불황에 허덕이는 ‘추락하는 대제국(大帝國)’이란 식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듯하다. 연방정부가 주도하는 경제회생 정책에는 한계가 있고, 오바마를 지지한 사회 마이너리티들의 요구 때문에 미국의 경쟁력이 한층 약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으로 날아가는 용(龍)의 모습이다. ‘중국경제, 미국 추월’이라는 식의 미래보고서는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다소 ‘어려움’은 있겠지만, 미국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역사가 시진핑 체제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보다 중국 지도부의 변화에 더 큰 비중를 두는 것 같다. 일단 베이징발(北京發) 기사가 워싱턴발 기사보다 많다. 미국에 대해 한마디를 보태려는 지식인보다, 중국에 관련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 일각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2025년경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경제대국이 될지 여부에 관계없이, 한반도에 불어닥친 중국 파워는 이미 미국을 넘어서는 듯하다.
중국 패권론(覇權論)이 대세(大勢)로 자리 잡으면서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취항한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는 미·중충돌의 서막처럼 와 닿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즉시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방문을 결정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아세안 포럼에서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는 종전에 5대 5로 유지되던 유럽과 아시아 해군력을, 2013년을 기점으로 4대 6으로 재(再)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崛起’가 아니라 ‘崛坐’에 그칠 것
시진핑 출범과 함께 미국에서도 중국 패권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리라는 중국 패권론은 대세가 아니다. 미국이 보는 중국은 아직 ‘굴좌(崛坐)’ 수준이 아닌가 싶다. 중국이 오랫동안의 고통을 이겨 낸 뒤 벌떡 일어나는 것(起)이 아니라, 누워 있다가 ‘자리를 찾아 제대로 앉는(坐)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에서의 중국론은 1970년대 일본, 20세기 말 유럽공동체를 잇는 ‘시대의 화두(話頭)’로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인도의 비약도 만만치 않다. 2016년 올림픽을 치르는 남미(南美)의 브라질도 주목할 나라이다.
미국이 보는 중국 패권론은 역사적 관점에서 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단일 변수(變數)를 통한 패권론이 아니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역사 속에 부침(浮沈)했던 수많은 제국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패권론을 논의한다. 한국이 보는 중국관, 나아가 중국 패권론과 미국이 보는 중국이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자.
중국이 가진 인구와 국토, 지형적 위치를 고려할 때, 한 세대 전의 일본이나 현재의 인도·브라질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9·11 테러 사건 이후 세계에서 불고 있는 반미 분위기를 고려할 때, 미국의 가상적(假想敵)으로서 중국이 누리는 반사이익(反射利益)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 볼 때, 중국은 근본적으로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없다. ‘굴기’를 원하는 중국인의 야심(野心)은 이해하지만, 굴기를 지탱해 줄 허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허리의 핵심은 에너지, 즉 자연자원이다. 허리를 움직여 활동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인 에너지가 중국 패권론을 대세로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을 구하는 셰일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조지프 나이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누르는 이유,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는 인물이다. 미국은 ‘에너지 독립국’인 반면, 중국은 ‘에너지 식민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이 교수는 “미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싼 에너지를 갖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10년 뒤인 2023년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의 해외 석유수입 의존도는 50% 이하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석유 이외의 에너지는 전부 자급자족(自給自足)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현재 전(全)세계 에너지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셰일(Shale)’ 덕분이다.
셰일이란 ‘혈암(頁巖)’을 의미한다. 입자 크기가 작은, 진흙이 뭉쳐져서 형성된 퇴적암(堆積巖)의 일종이다. 원래 가루로 깨 시멘트와 벽돌 재료로 사용됐다.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셰일은 셰일 가스와 셰일 석유로 나뉜다. 주된 것은 가스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셰일 가스다.
지난해 겨울 기준으로, 셰일 가스 가격은 석유가의 16분의 1 정도이다. 운송시설을 이용해 외국에 수출한다 하더라도, 석유가의 4분 1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셰일 가스가 다량으로 생산된다는 말은 석유를 비롯해 에너지 가격이 전부 내려간다는 의미이다. 2009년 미국의 가스의존도는 전체 에너지 가운데 약 24.7%이다. 2020년이 되면 가스의존도가 42%로 높아진다고 한다. 전체 소비 가스 가운데 50% 정도가 셰일에서 추출(抽出)된다는 것이다.
셰일 석유는 최근 석유추출 기술개발과 함께 각광받는 에너지원이다.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셰일 석유의 생산량이 하루 평균 200만 배럴에 달하게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10년 뒤 미국에서 소비되는 석유 에너지의 약 10%, 현재 석유수출기구(OPEC) 하루 생산량의 7.5%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나이 교수는 10년 뒤 미국은 석유 자립도가 50%를 넘어서면서 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하는 ‘원천적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국의 에너지 패권이 한층 강해진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에너지 수입대국 중국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할 운명이다. 올해 기준으로 중국은 대략 소비 에너지의 3분의 1 정도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 관영(官營) 페트로 차이나(Petro China)에 따르면, 중국은 2010년 기준으로 수요량의 약 50% 정도를 외국산 석유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 석유 필요량인 BPD(Barrels per day) 기준으로, 9900만 BPD 가운데 5300만 BPD가 중국산이다. 석유 소비량과 수입량은 늘지만, 중국산 석유 공급량은 계속해서 축소될 전망이다.
중국은 석유만이 아니라, 정제된 석유와 석탄·목재 등 에너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하는 ‘에너지 수입대국’이다.
현재 중국 에너지의 근본은 석탄이다. 노천광산(露天鑛山)에서 얻어지는 석탄이 한계에 달하면서 땅을 깊이 파고 내려가면서 석탄을 채취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해외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스탠퍼드 대학의 리처드 모스(Richard Morse)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석탄거래의 15% 정도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석탄에 대한 중국의 집념은 미국 본토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2009년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석탄은 약 38만t이다. 1년 뒤인 2010년 수입규모는 약 400만t이다. 1년 만에 11배 가까이 는 것이다. 2010년 중국의 총 석탄수입 규모는 1억6000만t 정도이다. 중국의 미국으로부터의 석탄수입 비율이 전체의 2.5%에 불과하지만, 미국산 석탄 수입 규모는 매년 최소한 10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2008년까지만 해도 석탄수출국이었다.
2010년을 전후로 본격화한 중국의 미국산 석탄 수입은 앞으로 펼쳐질 두 나라의 에너지 판세를 읽을 수 있는 좋은 근거이다. 중국의 미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석탄만이 아니라, 조지프 나이 교수가 말한 미국의 절대적 우위를 지탱해 줄, 셰일 에너지에 대한 수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부족 국가 중국의 한계
에너지 전문가는 중국도 미국에 버금가는 셰일 에너지 보유국이라고 한다. 문제는 물과 기술이다. 셰일 에너지는 정제과정에서 엄청난 물과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중국의 셰일 에너지 대부분은 물이 부족한 지역에 편재(偏在)해 있다. 중국은 셰일 에너지용 물만이 아니라, 식수와 농업용수조차 부족한 상태이다.
아직 출발단계지만, 미국이 셰일 에너지 개발에 나서면서 중국의 셰일 에너지 수입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미국산 가스의 대일(對日)수출이 급격히 늘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중단되는 과정에서, 부족한 에너지를 미국산(産) 가스로 대체하면서 가스수출이 폭증한 것이다. 미국산 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장기적’이라는 데 있다. 가격뿐 아니라 양적·질적인 면에서 안심하고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메이드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에너지이다.
지금 중국의 에너지 보고(寶庫)인 중동(中東)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이 원하는 최적(最適)의 에너지는 바로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그 같은 중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 2011년 문제가 된 캐나다산 셰일 가스 수송파이프 개발 문제는 미국의 심중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증거이다.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캐나다 가스 파이프라인의 미국 통과에 반대했다. 이유는 환경문제였지만, 실제는 캐나다 가스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중국의 에너지 수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미국이 셰일 가스의 대중(對中)수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캐나다산이 아닌, 미국산 셰일 에너지를 수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셰일 에너지 생산자 보호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은 미국 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셰일 에너지의 대중 수출은 조만간 가능해질 것이 분명하다. 석탄에 이어 미국산 셰일 에너지가 중국을 먹여살리게 되는 셈이다.
覇權국가 되려면 에너지 패권부터 잡아야
아무리 글로벌 시대 경제라고 하지만, 전 세계 패권을 노리는 나라가 가상적의 에너지로 살아간 예는 없다. 냉전 당시 소련이 미국의 적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에너지 독립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유럽 위성(衛星)국가들은 소련이 제공하는 에너지로 경제와 정권을 지켜 나갔다. 주변국에 대한 소련의 에너지 제공이 중단되면서 이들은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 20세기 말 냉전(冷戰)종식과 소련 몰락은 크렘린이 쥐고 있던 에너지 통제권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총 에너지 소비량의 3분의 1을 수입하는 중국의 대외(對外) 에너지 의존도도 문제지만, 미국산 에너지로 자국의 경제와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감내하기 어려워질 경우, 정부가 수출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전쟁은 에너지 확보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독일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알사스와 로렌 지방의 석탄과 철광석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이 대일(對日) 석유금수(禁輸) 조치를 취하자 동남아시아의 석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평화 시에는 에너지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시에는 상대의 목숨을 끊는 비수(匕首)가 되는 것이 바로 에너지다.
조지프 나이 교수가 말한 21세기 미국 우위론은 과장이나,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거만한 발상이 아니다. 역사가 증명한, ‘에너지의 이면(裏面)’을 통해 본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전망이다.
세계패권은 군사력·경제력 이전에, 에너지 패권에서부터 시작된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그 에너지 패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米國과 美國
에너지 문제는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이 될 수 없는 ‘객관적(客觀的)’인 이유에 해당된다. 한때 나름대로의 능력을 통해 세계 패권을 꿈꾼 나라들이 왜 중간에 탈락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근거이다.
미국인이 보는 중국 패권론의 한계는 또 있다. 중국인 가슴속에 남아 있는 ‘주관적(主觀的)’ 요소에서 답을 찾는 사람도 많다. 미국을 미국(米國)이 아닌, 미국(美國)이라 부르는 것이 미·중충돌을 막는 주관적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중국식 표기인 ‘美國’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의미다. 일본은 ‘米國’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쌀의 나라’라는 의미다. 이처럼 ‘미국’에 대한 서로 다른 표기법에는 미국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을 ‘米國’, 즉 ‘쌀의 나라’라고 표기하는 일본의 시각에는 경제적 관점이 들어가 있다. 근대화 이전에 쌀은 돈의 대명사이다. 19세기 말 일본인이 미국을 둘러본 뒤 느낀 소감은 ‘쌀과 음식이 넘치는 풍요한 나라’로 집약될 수 있다. 경제동물 일본의 모습은 지금이나 100년 전이나 똑같은 셈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감성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즐거운 나라’인 것이다. 일본과 같은 ‘돈’의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심성적·감상적·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일본이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라면 중국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아름다운 나라로, 일본이 쌀의 나라로 부른 이유 중에는, 미국을 처음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배경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중국은 황제와 그 주변 권력자들이 미국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지지하거나 직접 참가한 하급무사나 평범한 사람이 미국을 처음 만난다. 1871년 12월 미국에 건너간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의 참가자는 20대 전후의 젊은 신진들이다. 노회한 권력자와 청년 지사(志士)가 보는 세계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의 대명사로 신뢰하는 중국인의 ‘주관적 편견(?)’은 19세기 말만이 아닌, 1930년대 대일(對日)항전을 통해 한층 더 굳어진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당시 중국 지도부가 비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명한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 덕분이다.
플라잉 타이거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일(中日)전쟁 때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서 창설된, 미국 의용군(AVG·American Volunteer Group) 소속 공군부대이다. 서울 이태원에 가면, 국민당 정부의 상징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와 미국 국기가 함께 악수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 잠바를 볼 수 있다. 플라잉 타이거스의 비행조종사가 입었던 AVG 전용 가죽 점퍼이다.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플라잉 타이거스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이 중국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일본군을 적대시하는 상태에서, 자위(自衛) 차원에서 진주만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AVG를 미국 정부에 소속된 공군요원으로 보지 않는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동의하고, 정부가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AVG는 용병(傭兵)이고, 소속 장병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참전(參戰)했다는 것이다.
장제스(蔣介石)가 ‘비호대(飛虎隊)’라고 부른 플라잉 타이거스는, 총 100여 기의 전투기와 100명 정도의 조종사, 200명의 정비사로 구성돼 있다. 조종사는 미국인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인도 포함돼 있다. 목숨을 건 일인 만큼, 1개월 급료는 일반인들의 1년분에 달했다고 한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국인 모두가 알고 있는 신화적(神話的) 존재이다. 플라잉 타이거스에 관련된 것은 중국과 미국의 우호관계를 상징 짓는 ‘신성(神聖)한 유물(遺物)’로 다뤄진다.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서 북서쪽으로 700km 떨어진, 인구 7000명의 마을 달하트(Dalhart)도 그중 하나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소떼가 전부인 이 마을이 언제부턴가 텍사스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됐다. 달하트 재판소 입구에 서 있는 동상 때문이다.
美中 우호의 상징
조종사복 차림의 이 청동상 모델은 AVG 소속으로 1943년 중국에서 행방불명된 제임스 폭스이다. 달하트 출신인 그는 1943년 3월 11일, 윈난성(雲南省)에서 인도 동부 딘쟌으로 날아가던 도중 기류(氣流) 이상으로 추락했다. 중국인 부조종사 2명도 함께 사망했다. 당시 폭스처럼 작전 중 사망한 미국인은 14명에 달한다.
폭스는 2002년 10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방미(訪美) 때 유명해졌다. 장쩌민이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을 방문하기에 앞서 폭스의 청동상을 달하트에 기증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각종 행사가 성대하게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주 방위군 공군 조종사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 해군 조종사로 활약했었다. 장쩌민이 폭스의 동상을 만들어 기증한 것은, 플라잉 타이거스라는 반일(反日) 공동전선을 상기시킴으로써 미·중 간의 특별관계를 강조하고, 파일럿 출신인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국이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르는 근거 중 하나이다. 서방제국(西方諸國)은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중국의 고통의 주범(主犯)들이다. 중국인들을 서방제국을 ‘마약을 팔고, 땅을 뺏고, 역사적 유물을 강탈한 강도’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그 같은 ‘더러운 역사’와 무관한, 극히 예외적인 나라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유럽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던 19세기 중반, 미국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힘들었다. 1861년부터 5년간 이어진 남북전쟁과 이후의 뒤처리, 곧이어 서부개발 등으로 외국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덕분에 독립 100여 년에 불과한 신생국 미국은 ‘열강(列强) 중에서 중국을 괴롭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 남을 수 있었다. 1930년대 플라잉 타이거스는 그 같은 ‘뜸한 관계’ 속에서 이뤄진, 중국과 미국의 만남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중국인에게는 ‘친미(親美) 유전자(遺傳子)’가 있고, 이 때문에 중국의 반미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가 많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박사는 “1930년대 맺어진 미·중 간의 우정은 국민당이나 공산당에 관계없이 양국을 하나로 이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말한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국의 미국에 대한 신뢰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黃禍論
만일 ‘플라잉 타이거스’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1972년 이뤄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도 그토록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미·중관계 개선을 주도했던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플라잉 타이거스와 닉슨을 잇는 21세기판 미·중우호의 상징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키신저 등은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기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과는 전혀 다른 나라이며, 앞으로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결국 미국이 보는 중국관은 ‘패권론’이 아니라, ‘위협론’ 차원에 그치는 듯하다. 19세기 말 처음 등장해 이후 20세기 초 정착된 이른바 ‘옐로 페릴(Yellow Peril)’, 황화론(黃禍論) 정도에 그치는 듯하다.
‘황화론’은 유럽과 미국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통용되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엄청나게 몰려온 중국인들이 서양의 고귀한 문명과 문화를 파괴한다는 논리다. 중국인의 끈질긴 생명력에 놀란 서양인들의 보호본능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황화론은 1920년대 미국이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중국 위협론을 상징하는 것으로 서양인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소설로 《닥터 후만추(傅滿洲: Fu Manchu)》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작가 삭스 로머(Sax Rohmer)가 쓴 17권에 달하는 시리즈 소설물이다.
소설 주인공 후만추는 원래 베이징에서 한의사를 하던 인물이다. 19세기 의화단(義和團) 사건에 휘말려 처자식이 백인에게 살해된 뒤 복수를 다짐하면서 세계정복에 나서는 황당무계한 인물이다. 절대 총을 사용하지 않고, 고문을 통해 고통스럽게 사람을 죽이는, 음모와 계략에 능한 악당의 대명사이다.
《후만추》 시리즈는 소설만이 아니라, 영화·만화 등으로 만들어진다. 길게 기른 콧수염과 긴 손톱, 가는 눈과 둥근 모자는 후만추를 특징지우는 캐릭터이다. 대머리로 나오지만, 카리브의 해적 3편에 등장하는 중국 해적 저우룬파(周潤發)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구글 유튜브에 들어가 후만추를 찾으면 어떤 인물상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중국인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소설 《후만추》의 캐릭터를 원형(原型)으로 한다.
후만추의 부활
시리즈 《후만추》는 1910년대 처음 출간된 이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서방권의 베스트 셀러로 자리 잡았다가 중국이 개방에 들어선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다. 대신 마오쩌둥(毛澤東) 모자를 쓴 중국공산당이 만주인 복장을 한 후만추를 대신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 4월부터 시작된 후만추 복간(復刊) 붐이다. 《후만추의 운명》을 시작으로 올해 한 해 무려 7권의 복간이 이뤄졌다. 아마존(Amazon.com) 책매장에 들어가 키워드로 ‘Fu Manchu’를 치면 무려 1086권의 책이 나온다. 디지털로 만들어져 곧바로 다운로드해서 읽을 수도 있다. 황화론이 정보기술(IT) 시대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후만추가 ‘위협론’ 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간단한 얘기지만, 후만추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한 번도 ‘작전을 성공한 적이 없는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머리회전도 빠르고 재력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잔인하고 의리가 없는 캐릭터가 후만추이다. 세계 지도자감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미국이 보는 중국관은 100여 년에 걸친 미·중 역사를 통해 본 중후장대(重厚長大)형 분석이라 볼 수 있다. 갑자기 한국 신문방송을 덮은, 시진핑과 ‘라오펑유(老朋友)’ 관계라고 하는 한국의 정치인·기업인·외교관을 통한 중국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베이징 출신 40대 중반 중국 외교관에게 21세기 중국인의 라오펑유 개념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전부 끝났습니다. 장정(長征) 출신들이야 고생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라오펑유로 가지만, 결코 입으로 라오펑유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꺼내는 순간, 가짜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것 지금 중국에 없습니다. 오직 피, 즉 가족만 있을 뿐입니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20년이 흘렀다. 강산이 3분의 2쯤 변하는 세월이지만, 경박단소(輕薄短小) 형의 중국관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듯하다. 중국 패권론을 말하기 전에 한국과 쌓아 온 20년 역사의 흔적을 더듬고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 시진핑의 중국만이 아니다. 중국 역사 속에서 본 새로운 지도부와 중국 근현대사 속에 나타난 한중관계 연구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미국이 보는 중국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크게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미래는 실업(失業)과 경제불황에 허덕이는 ‘추락하는 대제국(大帝國)’이란 식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듯하다. 연방정부가 주도하는 경제회생 정책에는 한계가 있고, 오바마를 지지한 사회 마이너리티들의 요구 때문에 미국의 경쟁력이 한층 약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으로 날아가는 용(龍)의 모습이다. ‘중국경제, 미국 추월’이라는 식의 미래보고서는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다소 ‘어려움’은 있겠지만, 미국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역사가 시진핑 체제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보다 중국 지도부의 변화에 더 큰 비중를 두는 것 같다. 일단 베이징발(北京發) 기사가 워싱턴발 기사보다 많다. 미국에 대해 한마디를 보태려는 지식인보다, 중국에 관련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 일각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2025년경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경제대국이 될지 여부에 관계없이, 한반도에 불어닥친 중국 파워는 이미 미국을 넘어서는 듯하다.
중국 패권론(覇權論)이 대세(大勢)로 자리 잡으면서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취항한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는 미·중충돌의 서막처럼 와 닿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즉시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방문을 결정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아세안 포럼에서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는 종전에 5대 5로 유지되던 유럽과 아시아 해군력을, 2013년을 기점으로 4대 6으로 재(再)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崛起’가 아니라 ‘崛坐’에 그칠 것
시진핑 출범과 함께 미국에서도 중국 패권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리라는 중국 패권론은 대세가 아니다. 미국이 보는 중국은 아직 ‘굴좌(崛坐)’ 수준이 아닌가 싶다. 중국이 오랫동안의 고통을 이겨 낸 뒤 벌떡 일어나는 것(起)이 아니라, 누워 있다가 ‘자리를 찾아 제대로 앉는(坐)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에서의 중국론은 1970년대 일본, 20세기 말 유럽공동체를 잇는 ‘시대의 화두(話頭)’로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인도의 비약도 만만치 않다. 2016년 올림픽을 치르는 남미(南美)의 브라질도 주목할 나라이다.
미국이 보는 중국 패권론은 역사적 관점에서 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단일 변수(變數)를 통한 패권론이 아니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역사 속에 부침(浮沈)했던 수많은 제국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패권론을 논의한다. 한국이 보는 중국관, 나아가 중국 패권론과 미국이 보는 중국이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자.
중국이 가진 인구와 국토, 지형적 위치를 고려할 때, 한 세대 전의 일본이나 현재의 인도·브라질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9·11 테러 사건 이후 세계에서 불고 있는 반미 분위기를 고려할 때, 미국의 가상적(假想敵)으로서 중국이 누리는 반사이익(反射利益)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 볼 때, 중국은 근본적으로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없다. ‘굴기’를 원하는 중국인의 야심(野心)은 이해하지만, 굴기를 지탱해 줄 허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허리의 핵심은 에너지, 즉 자연자원이다. 허리를 움직여 활동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인 에너지가 중국 패권론을 대세로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을 구하는 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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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나이 교수는 에너지패권론의 차원에서 중국이 패권국이 될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다. |
앞으로 10년 뒤인 2023년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의 해외 석유수입 의존도는 50% 이하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석유 이외의 에너지는 전부 자급자족(自給自足)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현재 전(全)세계 에너지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셰일(Shale)’ 덕분이다.
셰일이란 ‘혈암(頁巖)’을 의미한다. 입자 크기가 작은, 진흙이 뭉쳐져서 형성된 퇴적암(堆積巖)의 일종이다. 원래 가루로 깨 시멘트와 벽돌 재료로 사용됐다.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셰일은 셰일 가스와 셰일 석유로 나뉜다. 주된 것은 가스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셰일 가스다.
지난해 겨울 기준으로, 셰일 가스 가격은 석유가의 16분의 1 정도이다. 운송시설을 이용해 외국에 수출한다 하더라도, 석유가의 4분 1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셰일 가스가 다량으로 생산된다는 말은 석유를 비롯해 에너지 가격이 전부 내려간다는 의미이다. 2009년 미국의 가스의존도는 전체 에너지 가운데 약 24.7%이다. 2020년이 되면 가스의존도가 42%로 높아진다고 한다. 전체 소비 가스 가운데 50% 정도가 셰일에서 추출(抽出)된다는 것이다.
셰일 석유는 최근 석유추출 기술개발과 함께 각광받는 에너지원이다.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셰일 석유의 생산량이 하루 평균 200만 배럴에 달하게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10년 뒤 미국에서 소비되는 석유 에너지의 약 10%, 현재 석유수출기구(OPEC) 하루 생산량의 7.5%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나이 교수는 10년 뒤 미국은 석유 자립도가 50%를 넘어서면서 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하는 ‘원천적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국의 에너지 패권이 한층 강해진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에너지 수입대국 중국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할 운명이다. 올해 기준으로 중국은 대략 소비 에너지의 3분의 1 정도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 관영(官營) 페트로 차이나(Petro China)에 따르면, 중국은 2010년 기준으로 수요량의 약 50% 정도를 외국산 석유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 석유 필요량인 BPD(Barrels per day) 기준으로, 9900만 BPD 가운데 5300만 BPD가 중국산이다. 석유 소비량과 수입량은 늘지만, 중국산 석유 공급량은 계속해서 축소될 전망이다.
중국은 석유만이 아니라, 정제된 석유와 석탄·목재 등 에너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하는 ‘에너지 수입대국’이다.
현재 중국 에너지의 근본은 석탄이다. 노천광산(露天鑛山)에서 얻어지는 석탄이 한계에 달하면서 땅을 깊이 파고 내려가면서 석탄을 채취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해외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스탠퍼드 대학의 리처드 모스(Richard Morse)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석탄거래의 15% 정도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석탄에 대한 중국의 집념은 미국 본토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2009년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석탄은 약 38만t이다. 1년 뒤인 2010년 수입규모는 약 400만t이다. 1년 만에 11배 가까이 는 것이다. 2010년 중국의 총 석탄수입 규모는 1억6000만t 정도이다. 중국의 미국으로부터의 석탄수입 비율이 전체의 2.5%에 불과하지만, 미국산 석탄 수입 규모는 매년 최소한 10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2008년까지만 해도 석탄수출국이었다.
2010년을 전후로 본격화한 중국의 미국산 석탄 수입은 앞으로 펼쳐질 두 나라의 에너지 판세를 읽을 수 있는 좋은 근거이다. 중국의 미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석탄만이 아니라, 조지프 나이 교수가 말한 미국의 절대적 우위를 지탱해 줄, 셰일 에너지에 대한 수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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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받는 셰일 가스 시추작업을 하고 있다. |
아직 출발단계지만, 미국이 셰일 에너지 개발에 나서면서 중국의 셰일 에너지 수입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미국산 가스의 대일(對日)수출이 급격히 늘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중단되는 과정에서, 부족한 에너지를 미국산(産) 가스로 대체하면서 가스수출이 폭증한 것이다. 미국산 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장기적’이라는 데 있다. 가격뿐 아니라 양적·질적인 면에서 안심하고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메이드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에너지이다.
지금 중국의 에너지 보고(寶庫)인 중동(中東)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이 원하는 최적(最適)의 에너지는 바로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그 같은 중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 2011년 문제가 된 캐나다산 셰일 가스 수송파이프 개발 문제는 미국의 심중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증거이다.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캐나다 가스 파이프라인의 미국 통과에 반대했다. 이유는 환경문제였지만, 실제는 캐나다 가스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중국의 에너지 수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미국이 셰일 가스의 대중(對中)수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캐나다산이 아닌, 미국산 셰일 에너지를 수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셰일 에너지 생산자 보호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은 미국 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셰일 에너지의 대중 수출은 조만간 가능해질 것이 분명하다. 석탄에 이어 미국산 셰일 에너지가 중국을 먹여살리게 되는 셈이다.
覇權국가 되려면 에너지 패권부터 잡아야
아무리 글로벌 시대 경제라고 하지만, 전 세계 패권을 노리는 나라가 가상적의 에너지로 살아간 예는 없다. 냉전 당시 소련이 미국의 적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에너지 독립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유럽 위성(衛星)국가들은 소련이 제공하는 에너지로 경제와 정권을 지켜 나갔다. 주변국에 대한 소련의 에너지 제공이 중단되면서 이들은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 20세기 말 냉전(冷戰)종식과 소련 몰락은 크렘린이 쥐고 있던 에너지 통제권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총 에너지 소비량의 3분의 1을 수입하는 중국의 대외(對外) 에너지 의존도도 문제지만, 미국산 에너지로 자국의 경제와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감내하기 어려워질 경우, 정부가 수출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전쟁은 에너지 확보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독일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알사스와 로렌 지방의 석탄과 철광석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이 대일(對日) 석유금수(禁輸) 조치를 취하자 동남아시아의 석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평화 시에는 에너지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시에는 상대의 목숨을 끊는 비수(匕首)가 되는 것이 바로 에너지다.
조지프 나이 교수가 말한 21세기 미국 우위론은 과장이나,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거만한 발상이 아니다. 역사가 증명한, ‘에너지의 이면(裏面)’을 통해 본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전망이다.
세계패권은 군사력·경제력 이전에, 에너지 패권에서부터 시작된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그 에너지 패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에너지 문제는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이 될 수 없는 ‘객관적(客觀的)’인 이유에 해당된다. 한때 나름대로의 능력을 통해 세계 패권을 꿈꾼 나라들이 왜 중간에 탈락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근거이다.
미국인이 보는 중국 패권론의 한계는 또 있다. 중국인 가슴속에 남아 있는 ‘주관적(主觀的)’ 요소에서 답을 찾는 사람도 많다. 미국을 미국(米國)이 아닌, 미국(美國)이라 부르는 것이 미·중충돌을 막는 주관적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중국식 표기인 ‘美國’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의미다. 일본은 ‘米國’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쌀의 나라’라는 의미다. 이처럼 ‘미국’에 대한 서로 다른 표기법에는 미국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을 ‘米國’, 즉 ‘쌀의 나라’라고 표기하는 일본의 시각에는 경제적 관점이 들어가 있다. 근대화 이전에 쌀은 돈의 대명사이다. 19세기 말 일본인이 미국을 둘러본 뒤 느낀 소감은 ‘쌀과 음식이 넘치는 풍요한 나라’로 집약될 수 있다. 경제동물 일본의 모습은 지금이나 100년 전이나 똑같은 셈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감성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즐거운 나라’인 것이다. 일본과 같은 ‘돈’의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심성적·감상적·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일본이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라면 중국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아름다운 나라로, 일본이 쌀의 나라로 부른 이유 중에는, 미국을 처음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배경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중국은 황제와 그 주변 권력자들이 미국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지지하거나 직접 참가한 하급무사나 평범한 사람이 미국을 처음 만난다. 1871년 12월 미국에 건너간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의 참가자는 20대 전후의 젊은 신진들이다. 노회한 권력자와 청년 지사(志士)가 보는 세계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의 대명사로 신뢰하는 중국인의 ‘주관적 편견(?)’은 19세기 말만이 아닌, 1930년대 대일(對日)항전을 통해 한층 더 굳어진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당시 중국 지도부가 비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명한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 덕분이다.
플라잉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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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당시 중국을 지원한 ‘플라잉 타이거스’는 美中 우호의 상징이다. |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플라잉 타이거스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이 중국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일본군을 적대시하는 상태에서, 자위(自衛) 차원에서 진주만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AVG를 미국 정부에 소속된 공군요원으로 보지 않는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동의하고, 정부가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AVG는 용병(傭兵)이고, 소속 장병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참전(參戰)했다는 것이다.
장제스(蔣介石)가 ‘비호대(飛虎隊)’라고 부른 플라잉 타이거스는, 총 100여 기의 전투기와 100명 정도의 조종사, 200명의 정비사로 구성돼 있다. 조종사는 미국인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인도 포함돼 있다. 목숨을 건 일인 만큼, 1개월 급료는 일반인들의 1년분에 달했다고 한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국인 모두가 알고 있는 신화적(神話的) 존재이다. 플라잉 타이거스에 관련된 것은 중국과 미국의 우호관계를 상징 짓는 ‘신성(神聖)한 유물(遺物)’로 다뤄진다.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서 북서쪽으로 700km 떨어진, 인구 7000명의 마을 달하트(Dalhart)도 그중 하나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소떼가 전부인 이 마을이 언제부턴가 텍사스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됐다. 달하트 재판소 입구에 서 있는 동상 때문이다.
美中 우호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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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달하트시 재판소 입구에 있는 제임스 폭스의 동상. |
폭스는 2002년 10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방미(訪美) 때 유명해졌다. 장쩌민이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을 방문하기에 앞서 폭스의 청동상을 달하트에 기증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각종 행사가 성대하게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주 방위군 공군 조종사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 해군 조종사로 활약했었다. 장쩌민이 폭스의 동상을 만들어 기증한 것은, 플라잉 타이거스라는 반일(反日) 공동전선을 상기시킴으로써 미·중 간의 특별관계를 강조하고, 파일럿 출신인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국이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르는 근거 중 하나이다. 서방제국(西方諸國)은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중국의 고통의 주범(主犯)들이다. 중국인들을 서방제국을 ‘마약을 팔고, 땅을 뺏고, 역사적 유물을 강탈한 강도’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그 같은 ‘더러운 역사’와 무관한, 극히 예외적인 나라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유럽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던 19세기 중반, 미국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힘들었다. 1861년부터 5년간 이어진 남북전쟁과 이후의 뒤처리, 곧이어 서부개발 등으로 외국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덕분에 독립 100여 년에 불과한 신생국 미국은 ‘열강(列强) 중에서 중국을 괴롭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 남을 수 있었다. 1930년대 플라잉 타이거스는 그 같은 ‘뜸한 관계’ 속에서 이뤄진, 중국과 미국의 만남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중국인에게는 ‘친미(親美) 유전자(遺傳子)’가 있고, 이 때문에 중국의 반미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가 많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박사는 “1930년대 맺어진 미·중 간의 우정은 국민당이나 공산당에 관계없이 양국을 하나로 이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말한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중국의 미국에 대한 신뢰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黃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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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만화, 영화 등으로 만들어진 ‘후만추’는 서양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잘 보여준다. |
이런 이유들 때문에 키신저 등은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기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과는 전혀 다른 나라이며, 앞으로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결국 미국이 보는 중국관은 ‘패권론’이 아니라, ‘위협론’ 차원에 그치는 듯하다. 19세기 말 처음 등장해 이후 20세기 초 정착된 이른바 ‘옐로 페릴(Yellow Peril)’, 황화론(黃禍論) 정도에 그치는 듯하다.
‘황화론’은 유럽과 미국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통용되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엄청나게 몰려온 중국인들이 서양의 고귀한 문명과 문화를 파괴한다는 논리다. 중국인의 끈질긴 생명력에 놀란 서양인들의 보호본능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황화론은 1920년대 미국이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중국 위협론을 상징하는 것으로 서양인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소설로 《닥터 후만추(傅滿洲: Fu Manchu)》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작가 삭스 로머(Sax Rohmer)가 쓴 17권에 달하는 시리즈 소설물이다.
소설 주인공 후만추는 원래 베이징에서 한의사를 하던 인물이다. 19세기 의화단(義和團) 사건에 휘말려 처자식이 백인에게 살해된 뒤 복수를 다짐하면서 세계정복에 나서는 황당무계한 인물이다. 절대 총을 사용하지 않고, 고문을 통해 고통스럽게 사람을 죽이는, 음모와 계략에 능한 악당의 대명사이다.
《후만추》 시리즈는 소설만이 아니라, 영화·만화 등으로 만들어진다. 길게 기른 콧수염과 긴 손톱, 가는 눈과 둥근 모자는 후만추를 특징지우는 캐릭터이다. 대머리로 나오지만, 카리브의 해적 3편에 등장하는 중국 해적 저우룬파(周潤發)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구글 유튜브에 들어가 후만추를 찾으면 어떤 인물상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중국인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소설 《후만추》의 캐릭터를 원형(原型)으로 한다.
후만추의 부활
시리즈 《후만추》는 1910년대 처음 출간된 이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서방권의 베스트 셀러로 자리 잡았다가 중국이 개방에 들어선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다. 대신 마오쩌둥(毛澤東) 모자를 쓴 중국공산당이 만주인 복장을 한 후만추를 대신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 4월부터 시작된 후만추 복간(復刊) 붐이다. 《후만추의 운명》을 시작으로 올해 한 해 무려 7권의 복간이 이뤄졌다. 아마존(Amazon.com) 책매장에 들어가 키워드로 ‘Fu Manchu’를 치면 무려 1086권의 책이 나온다. 디지털로 만들어져 곧바로 다운로드해서 읽을 수도 있다. 황화론이 정보기술(IT) 시대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후만추가 ‘위협론’ 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간단한 얘기지만, 후만추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한 번도 ‘작전을 성공한 적이 없는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머리회전도 빠르고 재력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잔인하고 의리가 없는 캐릭터가 후만추이다. 세계 지도자감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미국이 보는 중국관은 100여 년에 걸친 미·중 역사를 통해 본 중후장대(重厚長大)형 분석이라 볼 수 있다. 갑자기 한국 신문방송을 덮은, 시진핑과 ‘라오펑유(老朋友)’ 관계라고 하는 한국의 정치인·기업인·외교관을 통한 중국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베이징 출신 40대 중반 중국 외교관에게 21세기 중국인의 라오펑유 개념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전부 끝났습니다. 장정(長征) 출신들이야 고생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라오펑유로 가지만, 결코 입으로 라오펑유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꺼내는 순간, 가짜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것 지금 중국에 없습니다. 오직 피, 즉 가족만 있을 뿐입니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20년이 흘렀다. 강산이 3분의 2쯤 변하는 세월이지만, 경박단소(輕薄短小) 형의 중국관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듯하다. 중국 패권론을 말하기 전에 한국과 쌓아 온 20년 역사의 흔적을 더듬고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 시진핑의 중국만이 아니다. 중국 역사 속에서 본 새로운 지도부와 중국 근현대사 속에 나타난 한중관계 연구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미국이 보는 중국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