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제언] 미국 911센터를 견학하고 얻은 결론 : 월간조선

경찰의 미숙한 대응으로 한 젊은 여성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피해자는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112센터에 신고를 했지만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알리고 있음에도 시종 일관 무성의하게 응대하는, 피해자와 112센터 직원 간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대부분의 국민이 적어도 112센터가 위급 상황에서만큼은 나의 안전을 책임져 줄 것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지켜보며 지난해 8월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LA) 911 센터를 떠올렸다. LA 911센터는 미국 내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꼽힌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수많은 모니터와 첨단 장치가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내부는 의외로 깔끔하고 단출했다. 벽에 걸려 있는 것은 성조기를 배경으로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 사진 하나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얼마 전 김황식(金滉植) 국무총리가 112센터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비치던 우리나라의 상황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직원들이 지켜보는 것은 각자의 책상에 있는 4대의 모니터다. 각각 발신 위치 파악, 경찰·소방 위치 파악, 무전 지령, 일반 관리의 용도다. 미국 911센터는 우리나라의 112와 119를 통합한 형태라 사건이나 사고가 모두 이곳에 접수된다. 직원들은 전화를 받는 동시에 모니터상에서 전화를 건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이나 구급차를 찾아 출동 지시를 내린다. 사고로 다친 사람이라면 사고 현장에 구조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응급처치 요령을 설명하기도 한다.

신고 담당 직원 전문화시켜야

미국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LA 911센터. 미국의 911센터는 우리의 119센터와 112센터를 통합한 형태다.

LA 911센터의 경우 좌석은 100여 석이지만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전체 직원은 수백 명에 달한다. 필자가 찾은 날은 50여 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전 직원이 여성이고, 책임자급인 세 명의 디렉터가 상주해 상담원들이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전화를 넘겨받는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모두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경찰관이나 소방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LA 911센터에는 감독관 역할의 경찰관 단 한 명이 배치되어 있을 뿐 직원들은 모두 아웃소싱 업체가 고용한 전문 상담원들이다. 이들은 실제 업무에 배치되기까지 기본교육 3개월을 포함해 6개월~1년간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영어를 쓰지 않는 라틴계 주민들을 위한 창구도 별도로 운영한다.

반면 우리나라 112센터는 경찰관이 직접 전화를 받는다. 경찰들에게 이곳은 기피 부서이거나 한직으로 꼽힌다. 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탓인지, 이번 사건에서 최초 신고를 받은 경찰관은 2주간의 기본교육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경찰은 최근 112센터 개편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그 안에는 유능하고 우수한 인력들이 일할 수 있도록 수당을 지급하거나 근무성적 평가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적격 심사를 실시해 부적절한 요원은 교체하고,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사례 중심 교육을 강화하고, 신규 인력에 대한 집중 교육도 실시한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제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는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철저히 교육하고 훈련해 어느 정도 자리에 적응한다 해도 순환인사에 걸리면 다른 부서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관이 이리저리 부서를 옮겨 다니는 현 구조에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불을 끄거나 범인을 잡는 전문가이지, 전화접수 전문가는 아니다. 즉, 베테랑 경찰을 배치하고 교육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신고 담당 직원을 전문화시킬 수 있는 운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112센터 순환 근무는 국력 낭비

이번 사건으로 조현오 경찰청장과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워낙 심각한 사건이라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이 책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누가 물러나고 누가 그 자리에 올 것인지는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가’라는 점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두 가지 문제점을 고치고, 뒷북치듯 누군가 물러나는 땜질식 처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재해재난 대응력에서 선진국이라는 곳을 두루 방문해 보았지만 하드웨어만큼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결국 운영 체계의 부실에 있다.

112센터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 911센터와 비교하며 개선점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기회에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경찰에게 해결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과감히 아웃소싱하고, 전문요원을 선발해 배치해야 한다. 이미 훈련된 경찰관이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신규 인력이 올 때마다 또 다시 교육을 반복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대단한 낭비이다. 아웃소싱으로 선발된 상담원들은 보직 순환을 하는 경찰에 비해 지속성 면에서도 훨씬 효과적이고 그들의 축적된 경험이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발휘될 것이다.

필자가 몸담았던 KT에서도 콜센터가 아웃소싱되기 전까지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루 종일 고객 불만 전화를 받아야 하니 직원들 사이에서는 콜센터가 당연히 기피 부서였다. 원하지 않는 업무를 하게 되니 전화 응대가 불친절하기 일쑤였고, ‘담당이 아니니 다른 곳으로 전화하라’는 무성의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고객들의 불만이 높았다. 하지만 콜센터 업무를 외부에 위탁한 후 이런 문제가 사라졌다. 전문 상담원들의 친절한 응대로 고객만족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동행한 일행과 함께. 가운데 미국인 경찰관이 센터 감독관이다. 이곳에 경찰관은 한 명뿐이다.

국민의 안전이 우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도 미국 911센터처럼 112와 119를 통합한 상위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초기 단계에서는 현장 경찰과 소방관은 911센터의 지시를 받는다. 그들의 상급자에게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다.

통합센터를 만들면 위치추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112센터의 경우 아무리 급박한 범죄 상황이라 해도 신고자 본인의 동의 없이는 위치추적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긴급구조기관으로 규정된 소방서(119센터)나 해양경찰청만 신고와 동시에 자동으로 위치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몇 해 전부터 관련법안인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고 노력했지만, 인권침해와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신고 센터가 통합되면 법 개정과 관계없이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필자는 이미 이 두 가지 내용, 아웃소싱을 통한 ‘상담요원의 전문화’와 ‘통합센터 신설’을 고위관료에게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렇게 하면 충성심이 떨어진다’는 답을 들었다. 공무원이 아니면 충성심이 없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였다. 그가 말한 충성심은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들렸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라도 업무 미숙과 조직 보호 논리에 따라 수원 사건과 같은 사태를 만든다면 국민만 불행해질 뿐이다.

우리는 부처 간 밥그릇 다툼, 자리 다툼에 여념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안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경찰관과 소방관을 본업에 충실하도록 하자. 전화 접수는 전문 상담원에게 맡기고 그들은 범죄를 막는, 재해를 막는 본업으로 돌아가도록 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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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와 119 합친 통합센터 신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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