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연구] ‘이슬람 민주주의’의 두 모델, 터키와 이란 : 월간조선

지난해 11월 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보고서를 통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페르시아만(灣)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필자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산하 종교평화국제사업단과 이란 외교부 산하 종교간대화센터 간 대화협력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테헤란행(行)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核)시설 공습설이 나오던 무렵이라 주위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들어갔다가 못 나오는 것은 아니냐” “서방의 오인공격으로 타고 가는 비행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줄을 이었다.

“괜찮다”며 웃어넘기긴 했지만, 제 목숨 소중한 줄 아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전혀 근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미 이란측과 굳게 약속했던 행사여서 국제정세를 이유로 취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란으로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주한(駐韓) 이란대사관이 적극적으로 돕고 있긴 하지만, 상호 비자 면제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란 내 기관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야 비자수속이 가능하다.

종종 사회정치적 변동에 따른 변수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2009년 6월에는 이란 대통령 선거 부정 시비로 인한 시위 때문에 이란여행 자제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이란행을 취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비행일정이다. 이란항공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후 한(韓)-이란 직항(直航)노선이 없다. 따라서 베이징(北京),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 이스탄불 등에서 환승(換乘)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연결 비행기편을 제대로 못 찾을 경우에는 30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스탄불 공항을 허브공항으로

필자는 작년 12월 이란 여정에 앞서 8월과 9월 두 차례 이란을 다녀왔다. 그때는 아부다비와 도하를 경유해서 테헤란에 들어갔었다. 이번에는 비행 일정이 더 불편하긴 했지만 비(非)아랍 중동(中東)의 두 축(軸)인 이란과 터키의 사회분위기를 수박겉핥기 식으로나마 비교해 보기 위해 일부러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노선을 택했다.

터키정부와 터키항공은 이스탄불공항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허브(Hub)공항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덕분에 필자처럼 터키항공을 이용한 국제선 여행객은 환승대기 시간 동안 무료(無料) 시내여행을 하거나 아니면 비즈니스급(級) 호텔에서 숙박하는 특별 혜택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필자 일행은 시내관광을 했는데, 미안할 정도로 깔끔한 항공사의 서비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마라해(海)가 보이는 식당에서의 정결한 아침 및 점심식사 비용은 물론이요, 아야소피야 성당, 술탄아흐메트 모스크 등 여러 유적지 입장료까지 모두 항공사 측에서 지불했다. 일정 내내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여 상세하게 설명해 준 것은 물론이다.

우리 측에서 쓴 것이라고는 가이드와 버스 운전사에게 준 팁뿐이었다. 이리저리 계산해 보아도 이는 분명히 항공사 측이 크게 밑지는 장사일 것이다. 그 대신 환승객의 마음을 얻었으니 멀리 보면 크게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필자 일행이 느낀 것은 고마움을 넘어서 미안함이었으니 터키에 대한 좋은 인상이 그만큼 진하게 각인되어 오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케말 파샤, “나는 종교가 없다”

서구화 개혁을 추진한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오른쪽). 케말 파샤의 탈이슬람정책의 영향으로 옆에 있는 그의 부인은 히잡은 썼지만 베일을 쓰지 않고 있다.

오늘날 터키의 기틀을 닦은 사람은 무스타파 케말 파샤(1881-1938)다. 아타튀르크(Ataturk), 즉 ‘튀르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오스만튀르크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국가해체의 위기상황 속에서 열강의 침략을 물리치고 터키공화국을 수립했다.

케말 파샤는 이슬람법 체제의 폐지와 서구식 법체제 도입, 종교학교 폐교와 초등학교 의무교육 도입, 이슬람력(曆) 폐지와 그레고리우스력 채택, 여성의 베일 착용 금지, 여성참정권 인정, 라틴 알파벳 채택 등의 ‘탈(脫)이슬람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케말 파샤는 이슬람을 공적인 영역에서 추방하여 개인적 신앙의 울타리 안에 묶어 두려고 했다. 엄격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원한 것이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나는 종교가 없다. 나는 종종 모든 종교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길 바란다. 종교의 힘을 빌려 정부를 이끄는 통치자는 나약하다. 이는 마치 국민들을 덫에 가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원칙, 진리가 내리는 명령, 과학의 가르침을 배울 것이다. 미신은 사라져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믿도록 내버려두라. 올바른 이성(理性)에 어긋나지 않거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양심을 따를 것이다.”

현대 터키는 이슬람을 공적인 자리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세속주의, 이성, 과학, 근대화를 바탕으로 한 아타튀르크의 개혁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흔히들 케말주의(세속주의)라고 부른다.

정의개발당과 軍部의 갈등

그러나 1000년 이상을 이슬람 종교문화에 푹 젖어 살아온 터키인들에게 아타튀르크가 주도한 개혁이 먹혀들어 가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았다. 그래도 케말주의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군(軍)이 케말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터키 군부(軍部)는 조금이라도 국기(國基)를 흔드는 정치세력이 세속주의 근간을 위협하면 정치에 직접 개입하여 판을 정리하고 다시 병영으로 돌아가는 일을 4차례(1960년, 1971년, 1980년, 1997년)나 반복했다.

그런데 현재 터키의 여당인 정의개발당은 터키법상 종교를 표방하면 정당 해체 사유가 되기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이슬람을 중시하는 정당이다. 2002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래 현재까지 모두 3기에 걸쳐 집권하고 있는 정의개발당은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스로는 ‘윤리도덕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으로 정의한다.

정의개발당은 “종교를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로 여기고, 세속주의를 민주주의의 선결(先決)요건이자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로 간주한다”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성한 종교적 가치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 현(現) 총리는 “이슬람법을 지지한다” “세속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무슬림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여러 차례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총리뿐 아니라 당 지도부 여럿이 이슬람 정치단체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종교심이 강한 사람들로 과거 종교적 신념을 공공연히 피력해 왔다.

따라서 군부를 위시한 터키의 세속주의자들은 정의개발당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해 의심해 왔다. 세속주의자들은 2008년 정의개발당이 대학 내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대통령 승인을 받자마자 바로 헌법재판소에 정의개발당 해산 소송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의개발당이 종교를 이용하여 세속주의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며, 이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직접적이고 분명한 위험요소”라고 적시(摘示)하면서도 “EU 가입정책, 여성권리 신장정책 등을 참작해 볼 때, 정의개발당이 민주주의 및 세속정부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없고 폭력적인 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해산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정의개발당, 문화 차원에서 종교문제 접근

이스탄불 거리는 다채롭고 자유로운 기운으로 활기찼다. 여성들이 굳이 히잡을 억지로 써야 할 필요도 없고, 그 때문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술탄아흐메트 모스크에 들어갈 때에도 억지로 여성들에게 머리를 가리라고 하는 지시도 없다.

그러나 야당인 공화인민당 인사들과 세속주의 신봉자들은 집권여당이 겉보기와 달리 속으로는 비밀스런 이슬람 정강정책을 견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정의개발당이 집권한 후 거리에 히잡을 쓴 여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모스크의 예배 알림 소리도 더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이슈 유럽관계장관은 “지난 9년간 사람들이 정의개발당이 해 온 일을 지켜보았는데도 그러한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비밀일 것”이라고 일축한다.

이슬람 정당이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의개발당이 터키 정치사에 3기 연속, 그것도 연정(聯政)이 아니라 단독정부를 구성하는 신기원을 이룩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집권 이후 연(年)평균 약 7%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EU에 가입하고자 국제기준에 맞는 민주주의 개혁을 꾸준히 해 왔기 때문이다.

케말주의를 신봉해 온 오랜 여당 공화인민당이 종교를 공적인 영역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동시에 규제하려고 했다면, 정의개발당은 개인적인 신앙과 종교생활을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묶어 두려 하지 않고 문화 차원에서 접근했기에 대중적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것 같다. 정의개발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터키식 이슬람 민주주의는 현재 인근 중동 국가에서 상종가(上終價)를 치고 있다.

2010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사업을 펼치려다 이스라엘 군의 구호선 공격으로 10명의 터키 민간 활동가가 사망하고 50여 명이 부상했다. 터키 정부는 이를 강력 규탄하며 터키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고 이스라엘과 등을 돌려 아랍인들의 민심을 얻었다.

지난해 10월, 미(美) 메릴랜드대 텔하미 교수가 아랍국가인 이집트·요르단·레바논·모로코·UAE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동 민주화운동에 가장 건설적인 영향을 끼친 나라로 터키(50%)를 꼽았다. 이는 프랑스(30%)와 미국(24%)을 훨씬 앞지르는 수치다.

터키 이스탄불의 거리 풍경. 연 평균 7%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가장 선호하는 지도자 1위, 에르도안 터키 총리

이 여론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외국 지도자로는 22%가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꼽혔다. 2위는 13%를 얻은 레바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정치적 대격변을 겪고 있는 이집트인들은 33%가 가장 선호하는 지도자로 에르도안을 꼽았고, 44%가 터키와 같은 정부체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2위는 10%를 얻은 프랑스).

터키 민간기구인 TESEV가 2011년 10월 19일부터 12월 15일까지 16개 아랍국가 2323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對)터키 의식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터키에 대한 선호도가 중동 역내(域內)에서 가장 높게 나왔고(78%), 61%가 터키를 모델국가로 뽑았다. 특히 최근 변혁을 경험하고 있는 리비아·튀니지·이집트에서 터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본받아야 할 이유로는 민주정권(32%), 경제(25%), 무슬림정체성(23%)이 꼽혔다. 응답자의 77%가 터키가 역내 평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고, 71%는 터키가 더 큰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필자가 지켜본 터키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차고 자유로웠다. 터키인들은 친절하고, 소박하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더 나은 나라를 배우려는 의지와 열망이 보였다. 선진 유럽의 일원이 되려는 노력이 배어나는 듯, 이스탄불 곳곳이 활기차 보였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는 곧 터키가 그만큼 개방적인 국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또 그만큼 활발하게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커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테헤란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갈 때 택시기사가 이란에 대해 한 말이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란 이슬람은 우리와 너무 달라요!”

국민 대다수가 수니파(派)인 터키와 달리 이란이 시아파 이슬람을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슬람이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정곡을 찌른다.

이 터키 택시기사의 분별력은 이란행 비행기를 타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기내(機內) 여성들 중 머리에 히잡을 쓴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비행기가 테헤란 공항에 도착하면 기내 여성 승객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모두 머리를 가리기에 분주하다.

이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왠지 그럴 때마다 교복자율화 이전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학생부 선생님이나 선도부에 걸리지 않으려고 교문 근처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모자도 바로 쓰고 호크도 잘 잠그고 가방도 바로 들곤 하던 그 시절 말이다. ‘아, 내 나라에 들어갈 때마다 이런 긴장감을 느낀다면 참 싫겠다’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여행 마치고 집에 다 왔다는 해방감 대신 무겁게 다가오는 규제의 손길이 싫지는 않으냐’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어쩌면 일상이라 별생각 없이 따를지도 모르겠다.

작년 9월 이란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올 때는 카타르 도하에서 환승했다. 일행 중 한 분이 이란에서 내내 머리 가린 여성들을 보다가 도하에서는 거의 모든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농을 던졌다.

“아, 정신없다. 가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네.”

모두들 웃었지만, 어쩌면 이슬람 성(性)윤리에 바탕을 두고 시행한다는 여성의 히잡 착용이 남성의 시각을 통일시키는 뛰어난 효과를 지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터키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란의 거리가 덜 활발하고 단조롭게 보이는 것은 역시 외부세계와 단절이 주된 원인인 것 같다. 이란은 서방과 불편한 관계 때문에 터키만큼 교류의 폭이 넓지 않다. 이란이 외부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친하게 지내는 나라들도 대개 이란보다 정치·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를 배우기보다는 가르쳐 주는 입장이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만다.

아랍인들, 이란을 위협적인 나라로 인식

이란 이스파한의 젊은이들.

사실 중동 민주화시위 이전까지만 해도 이란은 아랍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나라였다. 아랍인들은, 어찌 되었든 간에 꼬박꼬박 대통령 선거를 하고, 대통령이 바뀌고, 물러난 대통령이 투옥(投獄)이나 죽음을 당하지 않고 무탈하게 잘사는 나라라는 점에서 이란을 부러워했다. 아랍국가 중 그런 나라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란은 민주화과정을 겪고 있는 대다수 아랍국가 국민들에게 보고 배워야 할 나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아랍 대다수가 같은 수니파인 터키와 달리 이란이 시아파에 속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아랍인들은 이란을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한다.

앞서 인용한 텔하미 교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위협이 되는 나라 둘만 적어 보라’는 질문에 아랍인들은 이스라엘(71%), 미국(59%), 이란(18%)을 꼽았다. 2년 전에 비해 이스라엘(88%)과 미국(76%)은 위협도가 다소 낮아졌지만, 이란(12%)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2년 전 53% 대 40%보다 더 높은 64% 대 25% 비율로 이란 편을 들고 나섰다. 좀 더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 여론조사에서만 본다면 이란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반드시 핵과 연계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2009년 6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再選)을 둘러싼 부정선거 시비 이후로 이란의 정치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중동 역내에서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SNS 소통에 능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러하다. 이들은 이슬람법학자들의 영향력이 강한 이란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현재 이란 일각에서 말하는 ‘개혁’이란 체제전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공화국 체제의 ‘체제 내 정치적 자유 보장’에 대한 요구인 것이다. 서구에서 개혁파로 인식되고 있는 하타미 전 대통령도 이 점을 누차에 걸쳐 분명히 강조한 바 있다.

하타미, “靈性이 깃든 민주주의”

터키나 이란 모두 나름의 ‘이슬람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터키는 세속주의의 틀 안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반면, 이란은 이슬람문화 안에서 탈(脫)세속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하타미의 말을 인용하자면 “세속주의에 기반한 서구 민주주의가 아니라 영성(靈性)이 깃든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이란식 이슬람 민주주의다.

호메이니의 이슬람법학자 통치론에 바탕을 둔 이란의 이슬람 민주주의는 이슬람법 정신이 삶 곳곳에 구현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테면 국회에서 법을 하나 만들더라도 이슬람법에 능통한 학자들이 이슬람 정신에 어긋나는지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공포한다.

‘이슬람법에 따라 심의한다’는 말이 답답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이슬람법이 전(前)근대적이라고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시아법학자들의 이슬람법 해석은 상당히 창조적이고 치열할 뿐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평등·정의의 가치를 나름대로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 일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직자들을 길러 내는 종교학교 교육과정에 있다. 급격히 진보하는 현대 과학과 경제를 두루 다룰 수 있을 만큼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현대 개인자아(自我)의 자유에 대한 해석의 폭을 제한하는 악순환(惡循環)을 낳고, 사람들의 욕망을 당분간만 보이지 않게 지하로 밀어넣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은 겉에서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여기서 여성복장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간섭과 집착현상 같은 것이 파생한다.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진력(盡力)해야 할 국가적 에너지가 여성들의 신체부위 노출 점검에 쓰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비행기가 테헤란 공항을 떠나는 순간 거의 모든 여성승객이 히잡과 겉옷을 풀어 젖히는 것을 보는 마음 역시 아프다.

“돈만 있으면 테헤란이 파리요, 암스테르담”이라는 말도 있다. 이슬람 문화권이기에 못하는 것 투성이일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는 말이다.

터키식이냐, 이란식이냐

변혁의 중동 이슬람문화권 국가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지 아무도 모른다. 터키식이든 이란식이든 나름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을 것이다. 술을 예로 삼아 터키와 이란을 비교하자면 두 나라의 이슬람식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

술은 이슬람에서 금기(禁忌)음식이기에 이란에서는 마실 수 없다. 터키 에르도안 총리는 “나 자신뿐 아니라 내가 속한 정의개발당은 보수적 민주주의 정당으로 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있지만,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억압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이끄는 정부는 법률로 술을 더 엄격하게 규제하고 값을 올려 소비를 제한하고 나섰다. 물론 이란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초록은 동색(同色)’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랍인들은 터키식 모델과 이란식 모델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텔하미 교수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랍인들은 두 나라 모두 살고 싶은 나라로 꼽지 않았고, 두 나라가 최(最)강대국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나라로 꼽은 곳은 프랑스, 최강대국이 되었으면 하고 희망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언젠가 이란과 터키가 이들을 대체할까? 알라후 아을람(신만이 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