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하라 신타로, 단순한 ‘極右정치인’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戰後 일본에 희망을 안겨주었던
상징적 존재
⊙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이제 일본 전체를 움직일 생각”
⊙ 인구·소득 면에서 일본의 1/2 차지하는 도쿄도+오사카부+아이치현 3자 連帶 진행 중
劉敏鎬
⊙ 5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現 워싱턴〈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상징적 존재
⊙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이제 일본 전체를 움직일 생각”
⊙ 인구·소득 면에서 일본의 1/2 차지하는 도쿄도+오사카부+아이치현 3자 連帶 진행 중
劉敏鎬
⊙ 5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現 워싱턴〈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21세기 유신을 위한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시장(왼쪽)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
일본 정국(政局)이 요동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과 20년을 지나, 어쩌면 잃어버린 30년으로 나아갈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마침내 정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벌(派閥)정치, 금권(金權)정치, 사실상의 자민당 일당독재(一黨獨裁), 정경유착(政經癒着), 세습의원과 족(族)의원 등으로 상징되는 일본정치의 폐해가 하나 둘 사라지는 상황에서 마침내 정치판을 처음부터 다시 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45년 종전(終戰) 이후 최근까지의 정치구도인, 자민-민주 양당(兩黨)체제로는 일본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나카타초(永田町·일본 국회의사당)의 상식이 되었다. 자민당 대신 민주당에 나라를 맡겼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며 자민당이 다시 나서고 있지만, 국민들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정치판으로는 21세기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치가·시민·언론·학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작년 3·11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드러난 정치의 무력감(無力感)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적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퇴조가 확연히 보이고 있다. 때문에 지금 나오는 개혁 논의는 단순한 개혁 차원이 아니라 1867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수준으로 나라를 통째로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중의원(衆議院ㆍ하원) 해산이 빠르면 오는 6월 중에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 증세(增稅) 여부를 총선 결과에 따라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소비세 문제만이 아니라, 21세기 유신의 주역을 뽑는 선택이 될 전망이다.
일본인의 아이돌 이시하라
유신의 서막(序幕)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다. 도쿄도(東京都)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와 오사카(大阪) 시장 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이다. 현재 일본의 전 미디어는 총선을 맞아 두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나아갈지를 실황중계하듯 보도하고 있다.
2012년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두 사람의 주된 활동은 신당(新黨) 문제로 압축된다. 신당 창당은 기정사실화됐고, 두 사람의 연합 여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이다. 자민, 민주 양당의 힘이 빠진 상태에서, 기존의 정당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두 사람, 그리고 국민의 생각이다.
지난 2월 6일 후지텔레비전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33.6%가 이시하라-하시모토 연립(聯立)신당에 대해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야당인 자민당 중심의 연립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15.6%, 여당인 민주당 주도의 연립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8.6%에 불과했다.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Noと言える日本)》이라는 책을 통해 일본 우익(右翼)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80세라는 나이와 40년이 넘는 정치적 경륜(經綸), 자민당 2인자의 자리에 오른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의 존재 등을 감안할 때, 신당 논의 과정에서 이시하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사실, 이시하라는 일본 정치무대서 아주 ‘특별한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정치인과는 격이 다르다. 필자도 도쿄에서 목격한 적이 있지만, 이시하라가 가는 곳은 항상 사람들로 들끓는다. 그 가운데는 노장년층뿐 아니라, 10대 20대도 적지 않은, 국민적 아이돌이 이시하라다. 아마도 이시하라는 총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기자가 따라붙는 인물일 것이다.
이시하라 동생은 戰後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잘 알려져 있듯이 이시하라는 1956년 24세의 나이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은 작가이다. 일본인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쇼난(湘南) 바닷가를 무대로 한 청춘남녀의 이야기인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이 수상작이다. 전후(戰後) 패배의식에 젖은 일본인에게 청춘남녀의 꿈, 사랑, 희망이란 메시지를 전해준, 이른바 ‘태양족(太陽族)’의 웃음을 창조한 인물이다. 일본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작가이다.
아쿠타가와상 수상과 함께 이시하라는 준수한 용모와 세련된 매너 등으로 국민적 아이돌로 등극했다. 그는 《금각사(金閣寺)》를 쓴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와 더불어 전후 일본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태양의 계절》이 영화화되면서 이시하라의 두 살 아래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朗)가 등장했다. 그는 형의 도움으로 데뷔 즉시 청춘스타로 부상(浮上)했고, 이후 영화를 통해 형보다 더 유명해졌다.
연예프로덕션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군단’은 유지로가 현역 배우 시절 만든 회사이다. 이시하라가 선거운동을 할 때에는 ‘이시하라 군단’ 소속 연예인이 총출동한다. ‘이시하라 군단은 잠시 반짝하는 스타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지는 스테디셀러형 연예인을 길러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나 TV 속에서 이시하라 유지로의 역할은 주로 보스 기질이 강하고 정(情)이 넘치는 캐릭터이다. 1987년 유지로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일본인들은 각별한 추모의 정을 표시했다. 지금도 TV를 보면 유지로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거나, 과거의 출연작품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형 이시하라는 이러한 대스타인 동생의 자취와 함께 일본인의 의식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이시하라 신타로라고 하면 단순히 ‘우익정치인의 거두(巨頭)’ ‘극우(極右)정치인’이라고 인식하지만, 일본에서는 전후 일본에 희망을 불어넣어 준 역사 그 자체로 인식한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2~3년 만에 펴내는 소설이나 에세이가 항상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유는, ‘정치인 이시하라’가 아닌, ‘일본인의 생각과 역사를 얘기하는 작가’로서의 이시하라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오사카維新會
천하의 이시하라도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80세의 작가에게 나라를 맡기려는 일본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정치경력 5년도 안 되는 43세의 하시모토가 이시하라를 능가하는 정치적 파워로 등장했다.
지난 1월 말 후지TV와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의 차기 리더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묻는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하시모토가 21.4%로 1위, 이시하라 신타로가 9.6%로 2위,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부총리가 8.3%로 3위,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주당 정조(政調)회장이 5.8%로 4위를 차지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현 총리는 3.6%를 얻어 9위에 그쳤다.
국회의원과 같은 중앙 정치가가 아닌, 오사카 시장이라는 지방 정치가인 하시모토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념, 집행력, 발언력’을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대통령제 국가라면 차기 대통령에 오를 인물이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현재 일본의 신당 논의는 하시모토가 주역이고 이시하라가 뒤를 받쳐주는 식으로 나가고 있다. 두 사람이 현재 논의 중인 통합신당이 결렬돼 각자의 길로 나간다 하더라도, 하시모토 쪽이 더 승산이 있다. 신당 창당을 둘러싼 정국의 주도권은 이시하라가 아닌 하시모토에게 있는 것이다.
신당의 깃발은 하시모토로부터 시작됐다.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정치단체인 오사카유신회(維新會)가 출발점이다. 지난해 4월 설립된 오사카유신회는 오사카부(府ㆍ광역지방자치단체)와 오사카시(市ㆍ기초지방자치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구상에 동의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모임이다. 오사카 부(府)의원 29명, 오사카 시(市)의원 13명을 포함해 지역 내 정치인 49명이 참가하고 있다(2012년 1월 기준).
赤字사업 등 그 자리에서 정리
오사카유신회라는 지방정치단체를 전국정당으로 확장시키려는 생각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된다. ‘일개 지방의 수장(首長)이 어떻게 전국을 상대로 한 정당을 창당하고, 일본 전역의 유신에 나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하시모토의 인기와 이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시모토는 ‘풍운아(風雲兒)’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본 최고의 정치스타이다. 한번 뜨고 사라지는 일회성(一回性) 스타가 아니다. 대낮에도 빛나고, 어두운 일본 하늘을 밝게 비출 ‘젊은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사카 개혁을 위해 ‘진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이 감동하고 있다.
일본 국민은 하시모토가 오사카 시장에 당선된 후인 작년 12월 19일부터 보여주고 있는 하시모토류(流)의 ‘격렬한 정치’를 매일 접하고 있다.
하시모토는 지역 내 수돗물을 선전하기 위해 제조한 오사카 특산 미네랄 워터 혼마야(ほんまや)가 1년간 1500만 엔의 적자(赤字) 상태라는 보고를 받자마자 즉석에서 사업 중단을 명령했다. 혼마야가 외국에서 상(賞)까지 받은 우수한 미네랄 워터이긴 하지만 “시민세금으로 적자까지 내면서 미네랄 워터를 마실 이유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마 다른 정치인이라면 혼마야의 판매가격을 조금 높여 적자 폭을 줄이거나, 관련 사업의 예산절약을 통해 사업을 유지해 나갔을 것이다. 한순간에 사업 자체를 중단시키는 식의 발상은 하시모토 외에는 불가능하다. 해외 4개 지역에 나가 있던 오사카시의 국제사무실도 “돈이 드는 데 비해 성과가 없다”는 하시모토의 한마디에 문을 닫았다.
오사카시 외곽단체에서 일하는 고위직 관리 137명의 월급명세서를 공표하도록 명령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퇴직 후 유관 공공기관에 낙하산식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아마쿠타리(天下り)’라고 한다. 하시모토는 이들을 질식시키기 위해 이들의 월급 공표를 명령한 것이다. 이들이 “개인정보법에 의해 월급을 공표할 수 없다”고 저항하자, 하시모토는 “시민세금으로 받는 돈이기에 시민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고 일축했다. 이 때문에 하시모토는 오사카 공무원 전체로부터 불만을 사게 됐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3개월만 주면 연금·의료보험 개혁할 수 있다”
하시모토는 오사카시 24개 구(區)의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는 지역주민과의 대화를 트위터로 할 것을 지시했다. 참석자 가운데 일부가 “나이가 많아서 트위터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자, 하시모토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젊은 사람을 통해 배우든지, 아니면 자리를 내놓고 나가든지!”
노인차별이란 반발이 나올 법도 하지만, 오사카 시민과 일본 국민은 하시모토류 정치에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빠르고 간단하며 즉석에서 이뤄지는 시민중심, 세금절약형 정치를 보면서 “일본정치 전반에 대한 개혁도 하시모토라면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하시모토는 “나에게 맡겨만 준다면, 적자투성이의 연금법과 의료보험법 개혁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인원과 조직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적자 폭을 엄청 줄일 수 있다. 3개월만 달라. 전부 바꿀 수 있다. 못하면, 자리를 내놓겠다.”
이쯤 되면 ‘목숨을 건 정치’라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시원시원한 하시모토류의 정치가 시민, 국민이란 명분을 앞세운, 다분히 포퓰리즘에 근거한 극장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같은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시모토류 정치가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내일을 염두에 둔 긴 안목의 생각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세금문제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자. 하시모토는 지난 1월 말 나고야(名古屋) 시장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와의 지방분권(分權)을 둘러싼 연대(連帶) 가능성을 탐색했다. 회담 직후 하시모토는 “가와무라와 정치적 의견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연대가 힘들다”고 단언했다. 세금문제에 관한 이견(異見)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하시모토는 이때 “감세(減稅)를 목표로 하는 나고야 시장의 생각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
‘세금을 늘리지 않으면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하시모토의 생각이다. 세금을 늘리겠다고 ‘공언하는’ 정치가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감세는 말도 안 되는 공허한 정치적 슬로건이고 결국 증세(增稅)로 갈 수밖에 없다”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두 사람의 회동 이후 감세를 주장한 나고야 시장이 수세에 몰리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올해 한 번 더 승부를 걸겠다”
현재 일본 언론이나 정치전문가들은 하시모토, 이시하라 두 사람이 하나의 신당으로 통일할 가능성을 50대 50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인물은 2월 초부터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아이치현(愛知縣) 지사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이다. 일본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이치현은 도쿄와 오사카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태평양을 마주한 도쿄, 아이치현, 오사카 3개 지역이 앞장서서, 중앙집권적인 정치구조를 바꾸면서 개혁으로 나가자는 것이 오무라의 생각이다.
오무라는 원래 자민당 출신 5선 중의원으로 올해 아이치현 지사 선거에 나서서 당선된 인물이다. 1960년생인 그는 후생노동성 부(副)장관을 지냈지만, 원래 개혁노선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개혁 이미지를 높이려는 정치인이다.
당초 하시모토가 오사카 시장에 취임할 당시의 가장 큰 현안은 오사카 지역의 개혁이었다. 오사카시와 오사카부를 통합해 중복된 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쓸데없는 예산을 줄여 오사카의 활기를 되찾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그러나 2012년 들어서면서 하시모토의 개혁범위는 오사카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취임 한 달이 지난 금년 1월 20일 열린 정치기부금 모집 파티를 통해 지방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한 그의 구상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오사카 개혁만이 목표가 아니다. 이제 일본 전체를 움직일 생각이다. 올해 한 번 더 승부를 걸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바란다.”
이시하라의 양팔, 가메이와 히라누마
이시하라는 하시모토의 개혁노선을 적극 찬성하면서 도쿄와 오사카의 연대에 동의한다. “중앙집권을 허물기 위해서는 지방과 지방이 서로 동맹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치현의 오무라가 등장한 것은 이시하라가 하시모토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직후이다.
도쿄, 오사카, 아이치 세 개의 지방권역은 소득과 인구면에서 일본의 절반에 해당되는 영역이다. 2월 중으로 예상되는 세 사람의 회동 명분은 지방개혁을 위한 연대에 있다. 그러나 신당 창당이 진짜 핵심이슈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시하라는 하시모토에 앞서 신당 창당을 통한 개혁의 필요성을 꺼낸 인물이다. 그가 추진하는 것은 국민신당 가메이 시즈카(龜井 靜香)와 다치아가레 일본(たちあがれ日本·‘일어나라 일본’이라는 의미)의 대표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와 함께하는 신당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막이 오른 이시하라 신당론은 이시하라가 당수가 되고, 가메이와 히라누마가 양팔이 되어 총선에 나선다는 것으로 압축될 수 있다.
가메이와 히라누마는 다음 총선거에서 자신의 당선조차 확신할 수 없는 한물간 정치인이다. 이들은 이시하라의 카리스마를 이용해 신당을 만든 뒤,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시하라부터가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이지만, 가메이와 히라누마의 배경을 보면 이시하라 신당의 향방은 쉽게 점쳐진다.
가메이는 공안(公安) 출신으로 정보력에 관한 한 일본에서 손꼽히는 정치가이다. 고이즈미 총리 당시 개혁반대파로 몰려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는 80세인 이시하라에게 “당수(黨首)로 모시겠다”면서 신당 창당을 재촉한 장본인이다.
히라누마는 전후 1급 전범(戰犯)으로 투옥됐던, 35대 일본총리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郞)의 아들이다. 히라누마 기이치로 전 총리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러한 내력 때문에 히라누마 다케오는 이시하라와는 생리적으로 잘 맞는다.
이시하라 新黨의 정강정책
이시하라 신당의 성격은 2월 3일 발표된 신당의 기본정책 초안(草案)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전부 7개 분야로 나눠진 초안은 세계화(世界化)와 지구시민사회와 같은 다국적(多國籍), 다문명(多文明)을 배격하고 ‘1국가 1문명’을 지향한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일본인의,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의 정신’으로 세계를 상대하겠다는 말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국군을 보유하고, 현재 양원제(兩院制)인 국회를 일원제(一院制)로 만들어 국론(國論)을 하나로 집약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군사외교와 관련해서는 방위산업육성, 중국을 타깃으로 한 남서(南西)방위전략 수립, 핵(核)시뮬레이션을 통한 사실상의 핵보유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시하라는 그의 책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으로 인해 반미(反美)주의자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시하라는 친미(親美)는 아니지만, 적어도 반미를 주장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는 반중(反中)정서를 기반으로 중국의 패권(覇權)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100조 엔의 국채(國債)를 발행하고 재정장부의 복식(複式)부기화,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제로화, 국가공무원 3분의 1 감축, 세제(稅制) 단일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 문화와 관련해서는 교육칙령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상은 이시하라의 평소 생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한국 관점에서 볼 때, 이시하라 신당이 성공해 정책정강을 구체화할 경우 외교 군사적인 마찰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우익을 전면에 내세운 이시하라 신당과 달리 하시모토의 경우 아직 뚜렷한 정책정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하시모토는 전국을 상대로 한 국가전략으로, <선중팔책(船中八策)>이란 공약을 2월 말 공표한다. 선중팔책이란 도쿠가와(德川) 막부 말기 지사의 대명사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기획한 신(新)국가체제 기본방침이다. 하시모토 스스로가 사카모토 료마처럼 21세기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를 담은 공약이다.
2월 말에 구체적으로 발표되겠지만, 국가통치구조에서부터 외교 군사 헌법개정에 이르는 8종목, 91개 항목의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미동맹에 기초한 친미(親美)정책 지속과 아시아경제 활성화 주력 등은 그동안의 방침과 크게 변화가 없다. 하시모토는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아예 오사카에 유치(?)하겠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복싱경기장에서 기미가요 열창
1969년생 하시모토는 현재 43세이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태어난 이른바 단카이세대(團塊世代)의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정년퇴직에 들어간 60대의 단카이세대는 평화헌법을 기반으로 자란 세대이다. 전쟁 때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쟁 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美軍)을 보면서 자란 세대이다. 1960년대 고도성장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일본 때문에 고생한 한국, 중국 등 아시아권(圈) 국가에 대해서는 미안함을 갖고 있지만, 전승국(戰勝國) 미국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고 있는 묘한 세대가 바로 단카이다.
단카이세대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면서, 인류공영, 지구시민사회, 탈미친중(脫美親中)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중국의 문화혁명에 막연한 호감을 느끼고, 북한의 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바로 이 단카이세대를 대변하는 신문이다. 이시하라 신당은 단카이세대와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하시모토는 연령대로 볼 때 단카이세대의 자식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히피부모를 둔 자식세대가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 한층 보수화된 것처럼 하시모토를 비롯한 일본 30, 40대는 단카이세대의 역사관,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시모토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단카이세대가 제국주의 일본의 대표적 상징물로 여기는 기미가요(君が代)와 국기에 대한 입장도 정반대다. 하시모토는 일본인이라면, 특히 국가권력을 기반으로 한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기미가요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하시모토는 지난해 오사카에서 열린 한 복싱대회 경기장에서 기미가요를 열창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행정책임자가 기미가요를 부르거나 일본 국기에 대한 예의를 다할 것을 주장할 경우 언론으로부터 제국주의 일본을 찬양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제 그렇게 생각하는 일본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미가요와 국기는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존중해야 할 귀중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미가요, 국기에 대한 하시모토의 단호한 입장에 대해 국민들은 감동한다. 젊은이들도 이를 ‘뭔가 쿨하다’고 받아들인다.
오사카유신회, 총선에서 200명 당선 목표
신당 바람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숙(塾·주쿠)’의 출현이다. 숙이란 사설학교와 같은 성격을 가진, 임의 연구단체이다. 정치계절이 되면 나타나는 한국의 포럼이나 연구회처럼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운영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에도(江戶)시대 때부터이다. 당시의 대학에 해당되는 명륜관(明倫館)은 돈과 계급이 있어야만 입학이 가능했다. 숙은 돈, 신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가 공부할 수 있었다.
숙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 네덜란드·포르투갈 같은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외국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숙이 개설된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842년 야마구치(山口)현 하기시(萩市)에 세워진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이다. 1857년 숙장(塾長)이 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아래서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슈(長州) 군벌의 우두머리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메이지시대의 인걸들이 배출됐다.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의 문호개방을 강요한 흑선(黑船)충격 이후 일본 전역에는 약 8000개의 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2012년의 숙 열풍은, 현재의 상황을 ‘흑선충격’에 비교하면서 곧 닥칠 결전(決戰)에 맞설 인재를 기르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오사카유신회의 대표 하시모토는 신당 창당과 관련해 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래 하시모토는 유신회의 이름으로 오사카 주변에서 50명 정도의 중의원(衆議員·하원의원)을 만들어낼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사카 대도시 구상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자파(自派)의 중의원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시모토가 전국적 풍운아로 등장하면서 오사카 개혁법안 통과를 위한 중의원 확보 차원의 얘기는 사라진다. 이제는 오사카 개혁법안과는 관계없이 전국에서 유신회 소속 중의원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유신회 출신 중의원의 당선목표도 2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전체 중의원 480명 중 40%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정당이 아니라 지방에 본부를 둔 전국정당이 되는 것이다.
잇달아 생겨나는 정치塾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국정당 진출 훈련장소로 유신정치숙이 거론된다. 3월 개숙(開塾)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유신정치숙은 당초 300여 명의 숙생(塾生)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10일 마감된 하시모토의 유신정치숙 지원자는 전부 3326명에 달해, 하시모토 파워를 실감케 했다.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렸기 때문에 1700명 정도를 숙생으로 받아들일 방침이다. 하시모토 측은 이들 중 300명을 엄선, 중의원 선거에 투입해 200명 당선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교과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처럼 숙장인 하시모토 시장이 직접 강의하는 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유신정치숙에 이어 만들어진 정치숙은 동해대지숙(東海大志塾)이다. 하시모토와의 정치적 연대가 확실시되는 아이치현 지사 오무라가 시작한 곳이다. 오는 4월에 문을 열 예정으로 2월 중순부터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숙의 규모는 100명 정도이다. 오무라가 숙장이다. 주로 아이치현과 주변 지역의 정책에 주목하는 정치숙으로, 숙생들을 곧 닥칠 중의원 선거에 투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주도할 정치숙도 4월에 문을 열 예정이다. 전국에서 약 1000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나고야를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도쿄에서도 개최할 방침이다. 아예 처음부터 전국 차원에서 운영한다는 의미이다. 총리 경선을 염두에 두고 가와무라 시장이 만든 이른바 ‘가와무라 비전’이 주된 강의 내용이다. 당시 정책구상에 참가한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해 정치보다는 정책에 주목할 방침이라고 한다. 감세, 외교안보, 의료보험에 관한 정책토론 등이 강의내용에 포함될 전망이다. 하시모토와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오사카유신회 관계자들을 강사로 초빙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하시모토와 이시하라가 하나의 당으로 나아갈 경우, 제1당, 그것도 압도적 다수로 정국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시모토의 추진력과 이시하라의 카리스마가 갖는 절묘한 조화는 일본 유권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리멸렬한 민주당과 이미 한계를 드러낸 20세기 정당 자민당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당은 너무 강하고, 구당(舊黨)은 너무 약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속담에 ‘적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라는 말이 있다. 일본 통일의 기초를 다진 오다 노부나가(小田信長)가 혼노지에서 가장 믿었던 가신(家臣)의 기습공격을 받고 살해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시하라의 장남인 자민당 간사장 이시하라 노부테루이다. 노부테루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을 물리칠 경우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이다. 아버지 덕분에 정치에 나선 노부테루는 중의원 7선 의원으로 어느 사이에 총리 후보 반열로 성장했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하시모토와 손을 잡을 경우, 정치무대의 주역은 40대로 낮춰질 것이 분명하다. 하시모토가 오사카 시장직을 버리고 중의원 선거에 나설 경우, 그는 총리 후보 1순위가 된다. 55세의 노령(?)인 노부테루의 정치인생도 한순간에 끝날 것이다. 아버지의 신당 창당과 하시모토와의 연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시하라 父子의 갈등
그래서 노부테루는 “아버지가 (정치꾼들의) 꼬임에 넘어가 신당 창당에 나서고 있다”며 공식석상에서 신당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한다. 그는 하시모토에 대해서도 “3대 도시연합과 같은, 중앙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돌려서 반대한다.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마치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한다.
이시하라는 장남 노부테루를 자신의 분신이라 믿는, 이른바 ‘오야바카(親ばか)’를 자임하는 사람이다. 오야바카란, 자기 자식만 최고로 여기는 다소 이성(理性)이 마비된 부모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해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 도지사를 3선(選)에서 끝내려고 할 때 아버지에게 4선을 ‘강력히’ 권유했던 사람이 아들 노부테루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수습을 위해 한번 더 도쿄를 책임져야 한다고 ‘읍소(泣訴)’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부자간의 정이 남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이시하라 부자(父子)간의 갈등은 이시하라가 아들 노부테루의 반대를 무시하고, 신당 참여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이시하라가 아들에게 “이미 끝난 정당(자민당)에서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는 충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시하라 신당이 확실한 지지표를 얻을 때까지는 이시하라가 자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흘러 나오고 있다. 이시하라 신당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에 대한 결말은 유보된 채, 부자간의 불협화음은 국회해산 직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신당 창당과 정치숙은 3월부터 본격화된다. 하시모토·이시하라의 연합을 통해 일본정국의 판세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일본 전체가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 나빠진 상태라는 점이다. 조만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터지기 직전의 상황이다. 물론 일본의 변화는 한반도 나아가 중국과 아시아 전체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2012년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격랑을 목격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1945년 종전(終戰) 이후 최근까지의 정치구도인, 자민-민주 양당(兩黨)체제로는 일본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나카타초(永田町·일본 국회의사당)의 상식이 되었다. 자민당 대신 민주당에 나라를 맡겼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며 자민당이 다시 나서고 있지만, 국민들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정치판으로는 21세기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치가·시민·언론·학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작년 3·11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드러난 정치의 무력감(無力感)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적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퇴조가 확연히 보이고 있다. 때문에 지금 나오는 개혁 논의는 단순한 개혁 차원이 아니라 1867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수준으로 나라를 통째로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중의원(衆議院ㆍ하원) 해산이 빠르면 오는 6월 중에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 증세(增稅) 여부를 총선 결과에 따라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소비세 문제만이 아니라, 21세기 유신의 주역을 뽑는 선택이 될 전망이다.
일본인의 아이돌 이시하라
유신의 서막(序幕)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다. 도쿄도(東京都)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와 오사카(大阪) 시장 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이다. 현재 일본의 전 미디어는 총선을 맞아 두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나아갈지를 실황중계하듯 보도하고 있다.
2012년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두 사람의 주된 활동은 신당(新黨) 문제로 압축된다. 신당 창당은 기정사실화됐고, 두 사람의 연합 여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이다. 자민, 민주 양당의 힘이 빠진 상태에서, 기존의 정당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두 사람, 그리고 국민의 생각이다.
지난 2월 6일 후지텔레비전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33.6%가 이시하라-하시모토 연립(聯立)신당에 대해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야당인 자민당 중심의 연립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15.6%, 여당인 민주당 주도의 연립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8.6%에 불과했다.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Noと言える日本)》이라는 책을 통해 일본 우익(右翼)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80세라는 나이와 40년이 넘는 정치적 경륜(經綸), 자민당 2인자의 자리에 오른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의 존재 등을 감안할 때, 신당 논의 과정에서 이시하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사실, 이시하라는 일본 정치무대서 아주 ‘특별한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정치인과는 격이 다르다. 필자도 도쿄에서 목격한 적이 있지만, 이시하라가 가는 곳은 항상 사람들로 들끓는다. 그 가운데는 노장년층뿐 아니라, 10대 20대도 적지 않은, 국민적 아이돌이 이시하라다. 아마도 이시하라는 총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기자가 따라붙는 인물일 것이다.
이시하라 동생은 戰後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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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의 동생인 영화배우 이시하라 유지로. |
아쿠타가와상 수상과 함께 이시하라는 준수한 용모와 세련된 매너 등으로 국민적 아이돌로 등극했다. 그는 《금각사(金閣寺)》를 쓴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와 더불어 전후 일본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태양의 계절》이 영화화되면서 이시하라의 두 살 아래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朗)가 등장했다. 그는 형의 도움으로 데뷔 즉시 청춘스타로 부상(浮上)했고, 이후 영화를 통해 형보다 더 유명해졌다.
연예프로덕션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군단’은 유지로가 현역 배우 시절 만든 회사이다. 이시하라가 선거운동을 할 때에는 ‘이시하라 군단’ 소속 연예인이 총출동한다. ‘이시하라 군단은 잠시 반짝하는 스타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지는 스테디셀러형 연예인을 길러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나 TV 속에서 이시하라 유지로의 역할은 주로 보스 기질이 강하고 정(情)이 넘치는 캐릭터이다. 1987년 유지로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일본인들은 각별한 추모의 정을 표시했다. 지금도 TV를 보면 유지로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거나, 과거의 출연작품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형 이시하라는 이러한 대스타인 동생의 자취와 함께 일본인의 의식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이시하라 신타로라고 하면 단순히 ‘우익정치인의 거두(巨頭)’ ‘극우(極右)정치인’이라고 인식하지만, 일본에서는 전후 일본에 희망을 불어넣어 준 역사 그 자체로 인식한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2~3년 만에 펴내는 소설이나 에세이가 항상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유는, ‘정치인 이시하라’가 아닌, ‘일본인의 생각과 역사를 얘기하는 작가’로서의 이시하라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오사카維新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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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오사카’를 내건 오사카유신회의 선거포스터. |
지난 1월 말 후지TV와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의 차기 리더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묻는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하시모토가 21.4%로 1위, 이시하라 신타로가 9.6%로 2위,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부총리가 8.3%로 3위,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주당 정조(政調)회장이 5.8%로 4위를 차지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현 총리는 3.6%를 얻어 9위에 그쳤다.
국회의원과 같은 중앙 정치가가 아닌, 오사카 시장이라는 지방 정치가인 하시모토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념, 집행력, 발언력’을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대통령제 국가라면 차기 대통령에 오를 인물이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현재 일본의 신당 논의는 하시모토가 주역이고 이시하라가 뒤를 받쳐주는 식으로 나가고 있다. 두 사람이 현재 논의 중인 통합신당이 결렬돼 각자의 길로 나간다 하더라도, 하시모토 쪽이 더 승산이 있다. 신당 창당을 둘러싼 정국의 주도권은 이시하라가 아닌 하시모토에게 있는 것이다.
신당의 깃발은 하시모토로부터 시작됐다.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정치단체인 오사카유신회(維新會)가 출발점이다. 지난해 4월 설립된 오사카유신회는 오사카부(府ㆍ광역지방자치단체)와 오사카시(市ㆍ기초지방자치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구상에 동의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모임이다. 오사카 부(府)의원 29명, 오사카 시(市)의원 13명을 포함해 지역 내 정치인 49명이 참가하고 있다(2012년 1월 기준).
赤字사업 등 그 자리에서 정리
오사카유신회라는 지방정치단체를 전국정당으로 확장시키려는 생각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된다. ‘일개 지방의 수장(首長)이 어떻게 전국을 상대로 한 정당을 창당하고, 일본 전역의 유신에 나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하시모토의 인기와 이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시모토는 ‘풍운아(風雲兒)’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본 최고의 정치스타이다. 한번 뜨고 사라지는 일회성(一回性) 스타가 아니다. 대낮에도 빛나고, 어두운 일본 하늘을 밝게 비출 ‘젊은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사카 개혁을 위해 ‘진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이 감동하고 있다.
일본 국민은 하시모토가 오사카 시장에 당선된 후인 작년 12월 19일부터 보여주고 있는 하시모토류(流)의 ‘격렬한 정치’를 매일 접하고 있다.
하시모토는 지역 내 수돗물을 선전하기 위해 제조한 오사카 특산 미네랄 워터 혼마야(ほんまや)가 1년간 1500만 엔의 적자(赤字) 상태라는 보고를 받자마자 즉석에서 사업 중단을 명령했다. 혼마야가 외국에서 상(賞)까지 받은 우수한 미네랄 워터이긴 하지만 “시민세금으로 적자까지 내면서 미네랄 워터를 마실 이유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마 다른 정치인이라면 혼마야의 판매가격을 조금 높여 적자 폭을 줄이거나, 관련 사업의 예산절약을 통해 사업을 유지해 나갔을 것이다. 한순간에 사업 자체를 중단시키는 식의 발상은 하시모토 외에는 불가능하다. 해외 4개 지역에 나가 있던 오사카시의 국제사무실도 “돈이 드는 데 비해 성과가 없다”는 하시모토의 한마디에 문을 닫았다.
오사카시 외곽단체에서 일하는 고위직 관리 137명의 월급명세서를 공표하도록 명령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퇴직 후 유관 공공기관에 낙하산식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아마쿠타리(天下り)’라고 한다. 하시모토는 이들을 질식시키기 위해 이들의 월급 공표를 명령한 것이다. 이들이 “개인정보법에 의해 월급을 공표할 수 없다”고 저항하자, 하시모토는 “시민세금으로 받는 돈이기에 시민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고 일축했다. 이 때문에 하시모토는 오사카 공무원 전체로부터 불만을 사게 됐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3개월만 주면 연금·의료보험 개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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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
“젊은 사람을 통해 배우든지, 아니면 자리를 내놓고 나가든지!”
노인차별이란 반발이 나올 법도 하지만, 오사카 시민과 일본 국민은 하시모토류 정치에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빠르고 간단하며 즉석에서 이뤄지는 시민중심, 세금절약형 정치를 보면서 “일본정치 전반에 대한 개혁도 하시모토라면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하시모토는 “나에게 맡겨만 준다면, 적자투성이의 연금법과 의료보험법 개혁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인원과 조직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적자 폭을 엄청 줄일 수 있다. 3개월만 달라. 전부 바꿀 수 있다. 못하면, 자리를 내놓겠다.”
이쯤 되면 ‘목숨을 건 정치’라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시원시원한 하시모토류의 정치가 시민, 국민이란 명분을 앞세운, 다분히 포퓰리즘에 근거한 극장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같은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시모토류 정치가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내일을 염두에 둔 긴 안목의 생각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세금문제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자. 하시모토는 지난 1월 말 나고야(名古屋) 시장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와의 지방분권(分權)을 둘러싼 연대(連帶) 가능성을 탐색했다. 회담 직후 하시모토는 “가와무라와 정치적 의견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연대가 힘들다”고 단언했다. 세금문제에 관한 이견(異見)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하시모토는 이때 “감세(減稅)를 목표로 하는 나고야 시장의 생각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
‘세금을 늘리지 않으면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하시모토의 생각이다. 세금을 늘리겠다고 ‘공언하는’ 정치가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감세는 말도 안 되는 공허한 정치적 슬로건이고 결국 증세(增稅)로 갈 수밖에 없다”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두 사람의 회동 이후 감세를 주장한 나고야 시장이 수세에 몰리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올해 한 번 더 승부를 걸겠다”
현재 일본 언론이나 정치전문가들은 하시모토, 이시하라 두 사람이 하나의 신당으로 통일할 가능성을 50대 50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인물은 2월 초부터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아이치현(愛知縣) 지사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이다. 일본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이치현은 도쿄와 오사카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태평양을 마주한 도쿄, 아이치현, 오사카 3개 지역이 앞장서서, 중앙집권적인 정치구조를 바꾸면서 개혁으로 나가자는 것이 오무라의 생각이다.
오무라는 원래 자민당 출신 5선 중의원으로 올해 아이치현 지사 선거에 나서서 당선된 인물이다. 1960년생인 그는 후생노동성 부(副)장관을 지냈지만, 원래 개혁노선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개혁 이미지를 높이려는 정치인이다.
당초 하시모토가 오사카 시장에 취임할 당시의 가장 큰 현안은 오사카 지역의 개혁이었다. 오사카시와 오사카부를 통합해 중복된 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쓸데없는 예산을 줄여 오사카의 활기를 되찾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그러나 2012년 들어서면서 하시모토의 개혁범위는 오사카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취임 한 달이 지난 금년 1월 20일 열린 정치기부금 모집 파티를 통해 지방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한 그의 구상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오사카 개혁만이 목표가 아니다. 이제 일본 전체를 움직일 생각이다. 올해 한 번 더 승부를 걸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바란다.”
이시하라의 양팔, 가메이와 히라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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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의 양팔인 가메이 시즈카(왼쪽)와 히라누마 다케오(오른쪽). |
아이치현의 오무라가 등장한 것은 이시하라가 하시모토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직후이다.
도쿄, 오사카, 아이치 세 개의 지방권역은 소득과 인구면에서 일본의 절반에 해당되는 영역이다. 2월 중으로 예상되는 세 사람의 회동 명분은 지방개혁을 위한 연대에 있다. 그러나 신당 창당이 진짜 핵심이슈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시하라는 하시모토에 앞서 신당 창당을 통한 개혁의 필요성을 꺼낸 인물이다. 그가 추진하는 것은 국민신당 가메이 시즈카(龜井 靜香)와 다치아가레 일본(たちあがれ日本·‘일어나라 일본’이라는 의미)의 대표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와 함께하는 신당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막이 오른 이시하라 신당론은 이시하라가 당수가 되고, 가메이와 히라누마가 양팔이 되어 총선에 나선다는 것으로 압축될 수 있다.
가메이와 히라누마는 다음 총선거에서 자신의 당선조차 확신할 수 없는 한물간 정치인이다. 이들은 이시하라의 카리스마를 이용해 신당을 만든 뒤,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시하라부터가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이지만, 가메이와 히라누마의 배경을 보면 이시하라 신당의 향방은 쉽게 점쳐진다.
가메이는 공안(公安) 출신으로 정보력에 관한 한 일본에서 손꼽히는 정치가이다. 고이즈미 총리 당시 개혁반대파로 몰려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는 80세인 이시하라에게 “당수(黨首)로 모시겠다”면서 신당 창당을 재촉한 장본인이다.
히라누마는 전후 1급 전범(戰犯)으로 투옥됐던, 35대 일본총리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郞)의 아들이다. 히라누마 기이치로 전 총리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러한 내력 때문에 히라누마 다케오는 이시하라와는 생리적으로 잘 맞는다.
이시하라 新黨의 정강정책
이시하라 신당의 성격은 2월 3일 발표된 신당의 기본정책 초안(草案)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전부 7개 분야로 나눠진 초안은 세계화(世界化)와 지구시민사회와 같은 다국적(多國籍), 다문명(多文明)을 배격하고 ‘1국가 1문명’을 지향한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일본인의,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의 정신’으로 세계를 상대하겠다는 말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국군을 보유하고, 현재 양원제(兩院制)인 국회를 일원제(一院制)로 만들어 국론(國論)을 하나로 집약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군사외교와 관련해서는 방위산업육성, 중국을 타깃으로 한 남서(南西)방위전략 수립, 핵(核)시뮬레이션을 통한 사실상의 핵보유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시하라는 그의 책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으로 인해 반미(反美)주의자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시하라는 친미(親美)는 아니지만, 적어도 반미를 주장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는 반중(反中)정서를 기반으로 중국의 패권(覇權)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100조 엔의 국채(國債)를 발행하고 재정장부의 복식(複式)부기화,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제로화, 국가공무원 3분의 1 감축, 세제(稅制) 단일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 문화와 관련해서는 교육칙령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상은 이시하라의 평소 생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한국 관점에서 볼 때, 이시하라 신당이 성공해 정책정강을 구체화할 경우 외교 군사적인 마찰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우익을 전면에 내세운 이시하라 신당과 달리 하시모토의 경우 아직 뚜렷한 정책정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하시모토는 전국을 상대로 한 국가전략으로, <선중팔책(船中八策)>이란 공약을 2월 말 공표한다. 선중팔책이란 도쿠가와(德川) 막부 말기 지사의 대명사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기획한 신(新)국가체제 기본방침이다. 하시모토 스스로가 사카모토 료마처럼 21세기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를 담은 공약이다.
2월 말에 구체적으로 발표되겠지만, 국가통치구조에서부터 외교 군사 헌법개정에 이르는 8종목, 91개 항목의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미동맹에 기초한 친미(親美)정책 지속과 아시아경제 활성화 주력 등은 그동안의 방침과 크게 변화가 없다. 하시모토는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아예 오사카에 유치(?)하겠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복싱경기장에서 기미가요 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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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19일 오사카시청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는 하시모토 토오루 시장. |
정년퇴직에 들어간 60대의 단카이세대는 평화헌법을 기반으로 자란 세대이다. 전쟁 때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쟁 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美軍)을 보면서 자란 세대이다. 1960년대 고도성장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일본 때문에 고생한 한국, 중국 등 아시아권(圈) 국가에 대해서는 미안함을 갖고 있지만, 전승국(戰勝國) 미국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고 있는 묘한 세대가 바로 단카이다.
단카이세대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면서, 인류공영, 지구시민사회, 탈미친중(脫美親中)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중국의 문화혁명에 막연한 호감을 느끼고, 북한의 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바로 이 단카이세대를 대변하는 신문이다. 이시하라 신당은 단카이세대와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하시모토는 연령대로 볼 때 단카이세대의 자식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히피부모를 둔 자식세대가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 한층 보수화된 것처럼 하시모토를 비롯한 일본 30, 40대는 단카이세대의 역사관,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시모토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단카이세대가 제국주의 일본의 대표적 상징물로 여기는 기미가요(君が代)와 국기에 대한 입장도 정반대다. 하시모토는 일본인이라면, 특히 국가권력을 기반으로 한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기미가요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하시모토는 지난해 오사카에서 열린 한 복싱대회 경기장에서 기미가요를 열창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행정책임자가 기미가요를 부르거나 일본 국기에 대한 예의를 다할 것을 주장할 경우 언론으로부터 제국주의 일본을 찬양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제 그렇게 생각하는 일본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미가요와 국기는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존중해야 할 귀중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미가요, 국기에 대한 하시모토의 단호한 입장에 대해 국민들은 감동한다. 젊은이들도 이를 ‘뭔가 쿨하다’고 받아들인다.
오사카유신회, 총선에서 200명 당선 목표
신당 바람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숙(塾·주쿠)’의 출현이다. 숙이란 사설학교와 같은 성격을 가진, 임의 연구단체이다. 정치계절이 되면 나타나는 한국의 포럼이나 연구회처럼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운영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에도(江戶)시대 때부터이다. 당시의 대학에 해당되는 명륜관(明倫館)은 돈과 계급이 있어야만 입학이 가능했다. 숙은 돈, 신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가 공부할 수 있었다.
숙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 네덜란드·포르투갈 같은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외국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숙이 개설된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842년 야마구치(山口)현 하기시(萩市)에 세워진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이다. 1857년 숙장(塾長)이 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아래서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슈(長州) 군벌의 우두머리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메이지시대의 인걸들이 배출됐다.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의 문호개방을 강요한 흑선(黑船)충격 이후 일본 전역에는 약 8000개의 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2012년의 숙 열풍은, 현재의 상황을 ‘흑선충격’에 비교하면서 곧 닥칠 결전(決戰)에 맞설 인재를 기르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오사카유신회의 대표 하시모토는 신당 창당과 관련해 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래 하시모토는 유신회의 이름으로 오사카 주변에서 50명 정도의 중의원(衆議員·하원의원)을 만들어낼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사카 대도시 구상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자파(自派)의 중의원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시모토가 전국적 풍운아로 등장하면서 오사카 개혁법안 통과를 위한 중의원 확보 차원의 얘기는 사라진다. 이제는 오사카 개혁법안과는 관계없이 전국에서 유신회 소속 중의원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유신회 출신 중의원의 당선목표도 2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전체 중의원 480명 중 40%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정당이 아니라 지방에 본부를 둔 전국정당이 되는 것이다.
잇달아 생겨나는 정치塾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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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동해대지숙’ 설립을 발표하고 있다. |
유신정치숙에 이어 만들어진 정치숙은 동해대지숙(東海大志塾)이다. 하시모토와의 정치적 연대가 확실시되는 아이치현 지사 오무라가 시작한 곳이다. 오는 4월에 문을 열 예정으로 2월 중순부터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숙의 규모는 100명 정도이다. 오무라가 숙장이다. 주로 아이치현과 주변 지역의 정책에 주목하는 정치숙으로, 숙생들을 곧 닥칠 중의원 선거에 투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주도할 정치숙도 4월에 문을 열 예정이다. 전국에서 약 1000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나고야를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도쿄에서도 개최할 방침이다. 아예 처음부터 전국 차원에서 운영한다는 의미이다. 총리 경선을 염두에 두고 가와무라 시장이 만든 이른바 ‘가와무라 비전’이 주된 강의 내용이다. 당시 정책구상에 참가한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해 정치보다는 정책에 주목할 방침이라고 한다. 감세, 외교안보, 의료보험에 관한 정책토론 등이 강의내용에 포함될 전망이다. 하시모토와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오사카유신회 관계자들을 강사로 초빙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하시모토와 이시하라가 하나의 당으로 나아갈 경우, 제1당, 그것도 압도적 다수로 정국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시모토의 추진력과 이시하라의 카리스마가 갖는 절묘한 조화는 일본 유권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리멸렬한 민주당과 이미 한계를 드러낸 20세기 정당 자민당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당은 너무 강하고, 구당(舊黨)은 너무 약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속담에 ‘적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라는 말이 있다. 일본 통일의 기초를 다진 오다 노부나가(小田信長)가 혼노지에서 가장 믿었던 가신(家臣)의 기습공격을 받고 살해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시하라의 장남인 자민당 간사장 이시하라 노부테루이다. 노부테루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을 물리칠 경우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이다. 아버지 덕분에 정치에 나선 노부테루는 중의원 7선 의원으로 어느 사이에 총리 후보 반열로 성장했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하시모토와 손을 잡을 경우, 정치무대의 주역은 40대로 낮춰질 것이 분명하다. 하시모토가 오사카 시장직을 버리고 중의원 선거에 나설 경우, 그는 총리 후보 1순위가 된다. 55세의 노령(?)인 노부테루의 정치인생도 한순간에 끝날 것이다. 아버지의 신당 창당과 하시모토와의 연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시하라 父子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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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하라 노부테루 자민당 간사장. |
이시하라는 장남 노부테루를 자신의 분신이라 믿는, 이른바 ‘오야바카(親ばか)’를 자임하는 사람이다. 오야바카란, 자기 자식만 최고로 여기는 다소 이성(理性)이 마비된 부모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해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 도지사를 3선(選)에서 끝내려고 할 때 아버지에게 4선을 ‘강력히’ 권유했던 사람이 아들 노부테루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수습을 위해 한번 더 도쿄를 책임져야 한다고 ‘읍소(泣訴)’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부자간의 정이 남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이시하라 부자(父子)간의 갈등은 이시하라가 아들 노부테루의 반대를 무시하고, 신당 참여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이시하라가 아들에게 “이미 끝난 정당(자민당)에서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는 충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시하라 신당이 확실한 지지표를 얻을 때까지는 이시하라가 자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흘러 나오고 있다. 이시하라 신당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에 대한 결말은 유보된 채, 부자간의 불협화음은 국회해산 직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신당 창당과 정치숙은 3월부터 본격화된다. 하시모토·이시하라의 연합을 통해 일본정국의 판세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일본 전체가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 나빠진 상태라는 점이다. 조만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터지기 직전의 상황이다. 물론 일본의 변화는 한반도 나아가 중국과 아시아 전체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2012년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격랑을 목격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