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북한 정권 교체론 / 외국의 시각 : 월간조선

김정일 사망 이후 국제사회에서 그동안 북한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주장해 오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미국과 중국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면서 김정은으로의 3대(代) 세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와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염려와 기도(thoughts and prayers)를 전한다”면서 “북한의 새 지도부(New Leadership)가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 이행, 이웃 국가와의 관계 개선, 주민 인권 존중을 통해 북한을 평화의 길로 안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김정은을 말한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김정일은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고, 변화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카니 대변인의 발언은 미국 정부가 북한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도 김정은을 북한의 영도자로 인정하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김정은에게 “중국과 북한의 인민과 군(軍)은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갖고 있으며 새로운 역사 상황 아래서도 계속해서 강화돼 나갈 것으로 믿는다”는 내용의 축하메시지까지 보냈다.

美유라시아그룹, “北권부 내 권력투쟁 가능성”

미국과 중국이 김정은이 영도하는 북한 정권을 인정한 것은 어떻게 보면 국익을 위한 전략적(戰略的)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의도는 북한의 핵(核)무기나 핵물질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태를 막고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한 북한이 예측지 못한 돌발행동을 할 경우 오는 11월 대선(大選)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북한의 불안정으로 내전(內戰)이 벌어지거나 북한 난민(難民)이 자국(自國)으로 유입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생각해 온 중국도 북한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해 왔다.

특히 경제 발전을 지속해야 하는 중국은 차제에 북한에 대한 지원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또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속셈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 앞으로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북한 정권이 스스로 붕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그동안 내부 단속을 철저하게 해왔지만, 리비아 등 독재 국가들에서 시민혁명으로 절대권력이 무너졌듯이 주민들의 봉기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민간단체인 유라시아그룹은 ‘2012년 최고 위험요소’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김정은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북한 정권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보고서의 지적처럼 견고하게 보이는 독재체제도 절대권력이 사라질 경우 권력투쟁으로 한순간에 붕괴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과감한 문제제기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

영국의 권위 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일 사후 북한:체제에 대한 논의 필요’라는 제목의 사설(지난해 12월 31일자)에서 “김정은은 북한을 통치해 온 왕조적 스탈린주의 독재의 3대”라면서 “동일한 체제의 유지는 북한 주민 생활에는 고통의 연장을, 국제사회에는 핵 위협의 지속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제사회가 본격적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한국은 물론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의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데 머물지 말고 철저히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잡지는 그 이유에 대해 “북한이 혼돈 속에 붕괴되더라도 한반도 평화라는 장기적인 잠재적 혜택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 등 주변국을 위해서도 잠재적인 불안정 사태를 지속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경우, 국경의 불안정을 우려하고 미군이 국경의 바로 앞까지 진주할 것을 두려워해 평양 정권을 지지해 왔지만 이제는 분명히 북한의 변화를 앞당기고 그것을 관리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잡지는 “미국은 추가적인 글로벌 위기를 우려하고, 한국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통일비용을 걱정하고, 일본은 통일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살인적인 북한 정권을 인정해 온 것은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미 양국이 북한 정권 붕괴가 가져오는 위험한 결과를 최소화한다면 중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미 양국은 한반도에 평화가 조성되면 주한미군이 더 이상 한반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임을 중국에 주지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중국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씨 왕조는 영원히 존속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국들이 대체 방안에 관한 대화에 조속히 착수하는 것이 지역 안정과 북한의 억압받는 인민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의 사설은 김정일 사후 북한의 안정만을 강조해 온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신랄하게 질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조차 김정일 사후 북한의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前) 미(美)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겠다거나 북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권력승계를 참고 기다려야 하고,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북한 핵 협상대표를 맡았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타결했었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對北)정책 특별대표도 “미국은 북한이 과도기를 끝낼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보즈워스 전 대표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다 지난해 10월 미북(美北) 2차 고위급 회담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라크戰의 교훈

특히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안정적인 권력승계 등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이런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임 부시 정부 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북한을 비롯해 이란, 이라크를 ‘악(惡)의 축(軸)’이라고 불렀고, 이들 3개국의 정권 교체를 적극 추진했었다. 실제로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후세인은 같은 해 12월 13일 고향인 티그리트에 숨어 있다 미군에 체포됐다.

후세인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2006년 12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이라크에선 두 차례 총선을 통해 의회와 정부가 구성됐으며,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 정권 교체가 실현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았다. 무엇보다 전쟁의 명분이었던 WMD가 이라크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침략전쟁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조차 퇴임 후 “재임 중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이라크의 WMD 보유 여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한 점”이라고 자책(自責)했었다.

두 번째,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벌이면서 초(超)강대국이라는 지위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지나친 전쟁비용으로 미국의 국력(國力)이 소진됐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게 됐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赤字)와 국가부채(負債)로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말 이라크에서 미군이 완전 철군(撤軍)했을 때 이라크 전쟁을 미국의 ‘승리’라고 선언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가 추진했던 이라크의 정권 교체 전략은 ‘무리수’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시 부시 정부가 추진했던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정권 교체 정책은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과 이란은 이라크와는 달리 핵무기 개발을 통해 세습체제와 신정(神政)체제를 유지·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당시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副)장관을 비롯한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자)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위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비롯해 군사행동 등 다양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까지 했었다.

특히 네오콘의 군사 행동 주장은 “6자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었다. 이들은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에 기회만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었다.

다시 말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북한도 압박하고 동시에 중국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네오콘은 또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도 인권(人權)문제를 반드시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 이유는 인권문제를 개선할 경우 북한을 내부적으로 서서히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네오콘의 주장들이 구체적으로 실행됐더라면 현재 북한의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란의 정권 교체가 실현됐다면 현재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시 정부가 북한과 이란의 정권 교체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美, 북한과 이란에 대해 상반된 대처

제임스 레이니 미 에모리대 명예총장.

오바마 정부는 현재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이란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이란의 핵개발을 용납할 수 없으며 우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반드시 저지할 것이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 이란에 대해 상반된 대응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과 이란이 전략적으로 득실 관계가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는 석유도 없고 경제적 이익도 걸려 있지 않는 데다 북한의 정권 교체 정책을 추진할 경우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을 철저히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핵무기 유출이나 사용 등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석유를 가진 이란이 핵무기까지 보유하게 되면 미국에는 최악의 악몽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이란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고, 같은 이슬람 시아파인 이라크 정권과 연대해 미국을 이라크에서 발도 내밀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미국의 영향력은 중동(中東) 지역에서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이런 판단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다. 21세기의 국제질서와 경제는 동(東)아시아가 핵심이다. 특히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浮上)을 어느 정도 견제해야 한다. 북한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지렛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카드이다.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3대 세습과 김정은을 영도자로 인정한 것이다. 중국의 속셈은 북한의 체제를 유지시켜 중장기적으로 자국에 종속시키려는 것이다. 제임스 레이니 미국 에모리대 명예총장은 “중국은 한국이나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한반도와 북한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면서 “중국은 남북 분단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이니 총장은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주한미국대사로 재직했었다.

블레어 전 DNI국장, 오바마의 對北정책 비판

마이클 마자 미 기업연구소 연구원.

중국은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중국은 김정일 사망이 오히려 북한을 자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더욱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다.

충분한 후계수업을 거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권력을 승계하게 된 김정은으로선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대내외적(對內外的)인 리더십 확보가 중요하다. 때문에 김정은은 중국의 전면적인 ‘후원’이 절실한 입장이다.

중국이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경우,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을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자원 공급 기지로 활용할 수도 있다.

데니스 블레어 전 미 국가정보국장.

때문에 미국도 차제에 북한의 정권 교체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이클 마자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김정일 사망으로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 진정하고 영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맞았다”면서 “미국이 북한의 어떤 상황을 원하는지, 또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자 연구원은 “북한의 비핵화(非核化)와 한국 주도의 통일이 미국의 장기적 목표라고 한다면 김정은을 비롯해 도발 행위를 반복할 그 어떤 지도자도 북한의 권력을 잡도록 놔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블레어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김정일 사망 이후 한반도 안정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미국의 국가적 가치관에 부적합한 대응”이라면서 “오바마 정부는 김정은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인권 탄압 조치들을 중단하고 통일을 이루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레어 전 국장은 특히 “미국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미국은 북한과 관련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北정권교체=전쟁위기 아니다

흔히들 ‘북한의 정권 교체’하면 ‘북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북한의 붕괴는 북한이라는 국가와 체제가 무너짐으로써 북한이 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권 교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정권이 무너지고 다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뜻한다.

3대 세습 정권이 없어지는 것과 북한이 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3대 세습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반드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를 촉발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정권 교체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국내적 요인이다. 선거 등 민주적 절차 또는 민중봉기, 혁명, 쿠데타 등 물리적 요인을 말한다. 정권 교체는 대부분 이런 국내적 요인에 의해 성사된다.

둘째, 외부적 요인이다. 타국(他國)의 무력(武力) 공격이나 강압에 따른 정권 교체로, 대표적인 사례가 이라크이다. 하지만 이라크와 같은 정권 교체는 국제사회의 합법적(合法的)인 지지를 받지 않았을 경우 항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정권 교체에 대한 외부적 요인은 북한의 핵 유출이나 실험 또는 도발 등을 빌미로 한 미국의 무력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외부적 요인은 국제사회의 합법적 지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합법적 지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말한다. 북한에 대한 결의안이 안보리(安保理)에 상정된다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미국이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한다면 역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권보다 국민이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비아의 정권 교체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3월 17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군사적으로 제재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 바 있다. 당시 안보리 결의 1973호의 내용은 즉각적인 교전 중단과 민간인에 대한 모든 공격 금지, 비행금지구역 설정,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수단 강구 등이었다. 안보리가 결의안을 통과시켰던 이유는 카다피 정권이 정예 친위부대와 아프리카 용병(傭兵)들을 투입해 반정부 시위에 나선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짓밟았기 때문이었다.

안보리 결의 1973호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국민보호 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이라는 개념이 처음 적용됐기 때문이다. R2P는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집단학살, 인종청소, 전쟁범죄, 반(反)인륜범죄를 자행할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흔히들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로 주권·국민·영토를 말한다. 유엔은 한 국가의 주권을 존중해 왔기 때문에 군사개입을 자제해 왔다. 그런데 R2P 개념으로 볼 때 주권은 단순히 영토와 국민을 지배하는 권리가 아니라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안보리의 리비아 군사개입은 ‘주권보다는 국민이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독재자는 더 이상 국가 주권의 원칙 뒤에 숨을 수 없게 됐다”고 얘기했다.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국가에 국제사회가 적극 개입한다는 개념이 북한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한 국가에 대한 합법적인 정권 교체인 셈이다. 때문에 미국은 중국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중장기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북한의 정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