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창간 《알 샤미카》, 여성 독자 겨냥한 아랍어 잡지
⊙ 구미(歐美)의 젊은 무슬림 겨냥한 《인스파이어》, 테러 방법 상세 연재
⊙ 명지대 중동연구소 안정국 교수, “극단주의자들이 스스로 함정 파는 것”
⊙ 구미(歐美)의 젊은 무슬림 겨냥한 《인스파이어》, 테러 방법 상세 연재
⊙ 명지대 중동연구소 안정국 교수, “극단주의자들이 스스로 함정 파는 것”
- 《인스파이어》 2010년 겨울호에 실린 빈 라덴의 연설문.
미디어를 이용한 알카에다의 지하드(Jihad·성전·聖戰)가 시작된 걸까.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올해 3월 여성지 《알 샤미카》(Al Shamika)를 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알카에다가 잡지를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 6월에도 영어로 된 지하드 잡지 《인스파이어》(Inspire)를 펴냈다. 작년 12월 영국 런던 경찰은 테러 용의자들의 집에서 이 잡지를 찾아냈다. 이 용의자들은 모두 9명의 젊은 청년이었는데, 혐의는 폭탄 테러 모의였다. 이들은 12월 25일에 빅벤 시계탑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전망탑 등 유명 관광 명소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하는 ‘크리스마스 테러’를 계획했었다고 진술했다. 《인스파이어》는 알카에다의 지역조직 중 하나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支部)(Al Qaeda in Arabian Peninsula갂QAP)가 발행처로 돼 있었다.
《알 샤미카》와 《인스파이어》 모두 인터넷에서 파일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테러조직이 왜 잡지를 발행했을까. 또 잡지에 그들은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여성은 사회의 전부다?’
알 샤미카는 아랍어로 ‘당당한 여성’을 뜻한다. 《알 샤미카》 이전에도 알카에다가 여성 잡지를 발간한 적이 있다. 2004년에 아라비아반도 여성미디어지부(Women’s Media Bureau in the Arabian Peninsula)에서 발간한 《알 칸사》(Al-Khansa)가 그것이다. ‘이슬람 전사로 활동하는 남편을 내조하는 법’ ‘가족이 부상당했을 때 응급처치하는 법’ 등의 정보를 실었던 《알 칸사》는 현재 발간되지 않는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안정국(安貞國) 교수의 번역에 따르면, 《알 샤미카》의 발간사에는 “여성은 사회의 절반이 아니다. 나머지 반도 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의 전부다”라는 문장이 있다. 급진적인 여성 인권 옹호 발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성의 인권이 아닌 ‘희생’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이슬람 세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자식을 출산하는 것을 여성의 의무로 규정한 이슬람 교리를 충실히 반영한 말이라고 한다.
《알 샤미카》 창간호는 총 31쪽으로 발행됐다. 총 9편의 글과 1편의 ‘부록 기사’가 있다. 《알 샤미카》는 발행 주기를 명확히 기재하지 않았다. 잡지의 전반적인 주제는 ‘무슬림(이슬람 신도) 여성들이 미군의 압제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이 돌아오지 않을 때’라는 제목의 첫 번째 칼럼에서는 ‘서구침략자’를 ‘십자군’이라고 부르며, “원숭이와 돼지의 자식들이(미군들이) 우리의 몸을 능욕하고 우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우리의 가슴에 있던 코란을 찢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커버스토리 격의 기사인 ‘한 여성 무자히드(Mujahid·이슬람 성전을 수행하는 전사)의 노트에서’라는 글에서는 무자히드였던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을 또 다른 무자히드로 키우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여성이 미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친구에게 받았다는 편지에는 “자유와 평화를 전하겠다고 온 더러운 미국인들이 여성들을 포로로 잡아 이들을 짐승 다루듯이 다뤄 미친 사람도 있다”며 “미군은 여성과 남성들의 명예를 더럽히고 모든 것을 파괴한 다음, 여러분을 해방하러 왔고 인권을 돌려주기 위해 왔다고 얘기한다”는 구절이 있다.
‘알샤미카 프레스’라는 코너에는 미군과 이스라엘군이 무슬림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풍문들이 나열돼 있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제시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어느 도시의 안보조사센터에서는 여성들의 옷을 완전히 벗겨놓고 심문을 한다’ ‘한 유대인 신문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 있는 어느 이스라엘 군인이 백기를 들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슬림 여성을 죽인 사실을 인정했다’는 식이다.
여성지지만 패션화보나 화장법 관련 기사는 없어
‘이슬람 율법에 복종하라’는 메시지도 기사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슬람 교리와 율법은 경전인 코란(Koran)과 마호메트의 언행을 전하는 ‘하디스’(Hadith)를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하디스’는 실질적인 이슬람 율법서나 마찬가지다. 여러 종류의 하디스 중 여성이 참여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하디스에 바탕을 둔 이슬람 율법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부르카(Burka·전신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 전통 의상) 착용을 강제하고, 가족이 아닌 남자와는 말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철저히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들의 행동기준을 규정한 것이 이슬람 율법인 것이다.
여성지 《알 샤미카》는 이 율법을 엄격히 지키라고 기사 곳곳에서 강조했다. ‘자유공간’이라는 코너에서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지금 배교자들이 우리 땅을 침탈하고 있고 하나님의 길과 법이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이런 상황의 변화를 위해, 이슬람 국가를 되살리기 위해 사명을 갖고 결혼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미용과 육아 등 상대적으로 좀 더 ‘여성지다운’ 주제를 다루는 부록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부 관리법을 논한 부분을 보면 “피부의 아름다움, 투명함과 빛남이 아름다움의 90%를 차지한다. 물을 많이 마시고 건조하지 않게 관리하라”는 조언과 함께 “당신의 아름다움은 남편만이 누릴 수 있으니 히잡(Hijab·무슬림 여성들이 외출 시 착용하는 베일의 일종)을 꼭 착용하라”는 문장도 빼놓지 않았다.
육아법을 다룬 부분에서도 역시 코란과 하디스를 인용하며 율법을 강조했다. 기사에는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방하는 말을 입에 올린 한 아이를 다른 아이가 죽인 일화가 인용돼 있다. 여성은 이슬람 율법을 위반하는 사람을 언제라도 용맹하게 죽일 수 있는 이슬람 전사, 즉 ‘무자히드’로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스파이어》 필자는 주로 알카에다 강경파 지도자
《인스파이어》는 미국과 유럽의 젊은 무슬림들에게 테러를 종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10년 6월에 첫 호가 나온 이래 지금까지 총 5차례 발행되었다. 분기마다 나오는 ‘계간지’ 형식인데, 지난 11월에는 한 차례 특별호도 냈다. 영어로 발행되고, 인터넷에서 파일 형태로 배포된다. 알카에다의 여러 하부 지부 중에서도 가장 강경 성향으로 분류되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가 제작했다. PDF파일 형태로 배포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배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전 세계 어디서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볼 수 있다. 기자는 잡지에 기재된 편집부의 전자메일 주소로 연락해, 종이 형태로도 발행하고 있는지 문의했지만 아무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인스파이어》의 편집자와 필진 역할을 하고 있는 사미르 칸(Khan)은 올해 25세 된 미국 시민권 소유자다. 사미르 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부모의 집 지하실에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지하드 선동 글을 인터넷에 올리다 미국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예멘으로 건너갔다.
칸 외의 기명 필자들은 안와르 알 올라키(al-Awlaki), 아부 자카리아 알에리트리(al-Eritri) 등 예멘에서 활동하는 지도자급의 알카에다 대원들이다. 이 중 알 올라키는 40세의 미국 시민권 소유자로 알카에다의 ‘영적 지도자’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9·11테러를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2009년부터 알카에다 지역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새로운 매체 활용에 적극적이라 ‘인터넷의 빈 라덴’으로도 불린다.
잡지 앞 부분에는 알카에다 주요 지도자들의 ‘지령’(指令)을 서구의 젊은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의 ‘성명(聲明) 대본’도 3차례 축약·게재되었다. 연설 대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도 지루하거나 시의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삭제하고 실었다. 이 중 두 편은 빈 라덴의 성명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축에 속하는 연설이다.
창간호인 2010년 6월호에 실린 ‘지구를 구하는 길’(The way to save the earth)은 2010년 1월에 공개된 빈 라덴의 성명을 요약한 것이다. 미국의 학자 노암 촘스키(Chomsky)와 미 항공우주국 소속 전문가인 제임스 한센(Hansen)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주장을 펼쳐 당시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던 성명이다. 빈 라덴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의 폐해’를 언급하며 “대기업을 비호하기 위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는 미국 대통령(부시 전 대통령)과 의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이념과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온난화 현상을 예로 들어 미국을 비난한 것이다.
2010년 겨울호에는 ‘우리가 당한 것을 그들도 겪게 하기 위해’(In order that they taste some of what we tasted)라는 제목 아래 빈 라덴이 2004년 10월에 한 연설문을 실었다. 이 연설에서 빈 라덴은 2001년 9·11테러의 배후에 자신이 있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그는 테러 동기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들에게 폭정을 휘두른 것을 목격한 후 (테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를 공격 목표로 정한 데 대해서는 “레바논에서 파괴된 탑(Tower)을 보았을 때, 우리가 맛본 것을 그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미국의 탑을 공격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쌍둥이 탑(Twin Towers)이라고도 불린 곳이다. 2010년 가을호에는 빈 라덴이 2007년 12월에 공개한 연설을 한 쪽 분량으로 간략하게 줄여 실었다.
‘트럭으로 무차별 살상 테러하는 방법’ 소개
《인스파이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사는 ‘오픈 소스 지하드’(Open source Jihad)라는 연재물이다. 독자들이 집에서 테러 방법을 익혀 성전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코너라고 잡지는 소개했다. 부엌에서 손쉽게 폭탄을 만드는 방법, 건물을 폭파하는 방법 등 구체적인 테러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그림과 함께 설명했다. 2010년 가을호에서는 픽업트럭(적재함에 뚜껑이 없는 소형 트럭)으로 사람들을 ‘쓸어 버리는’ 방법을 소개했다. 차량의 앞쪽과 뒤쪽에 칼날을 붙이라고 하면서, 정육점에서 쓰는 칼이나 두꺼운 철판이 적합하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테러 장소에 대해서는, 붐비면서도 협소한 공간이 좋은데, 도심의 보행자 전용 공간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일단 감행하면 무사히 도망치기 어려울 것이므로 ‘순교용 작전’으로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작전 대상국으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국가들’을 들고 있다. 두 군데 모두 파병한 우리나라도 작전 대상국에 포함된 셈이다.
AK 소총을 다루는 법도 연재하고 있다. 중동에서 주로 쓰이는 칼라슈니코프(Kalashnikov) 소총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총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를 위해 모든 내용을 사진과 함께 친절히 설명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소총은 휴대하기 쉽게 총신을 짧게 줄인 실전용이다.
‘소총 제조국 구분하기’도 실렸다. 총신의 아랫부분에 새겨져 있는 마크를 보고 제조국가를 구별하는 법이다. 그림으로 제시된 제조국 마크에는 북한산(産) AK의 마크도 포함돼 있다. 북한제 무기가 알카에다로도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총기를 분해·조립하는 법도 연재했다. 전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줘, 총기를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몇 번 읽고 따라 해보면 쉽게 익숙해질 수 있을 정도다.
잡지 발간은 알카에다 지도부 와해의 단면?
알카에다가 이처럼 ‘미디어 지하드’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2001년 9·11테러 이후 사실상 지도부가 와해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 정보당국과 외신들에 따르면 이슬람 수니파가 주도하는 저항세력들의 협의체 역할을 했던 ‘무자헤딘 슈라 회의’(Mujahidin Shura Council)가 2006년 사실상 해체되었다. 잔존해 있는 알카에다 대원들과 각 테러단체들은 소규모로 각기 움직이는 ‘점조직’ 활동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의 서정민(徐廷珉) 교수는 “알카에다의 실체가 존재하는지조차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현재 활동하는 단체는 알카에다의 뜻을 잇고자 자생적으로 등장한 ‘알카에디즘’ 추종 세력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지도부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테러를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젊은 무슬림들을 부추기기 위해 잡지를 잇달아 창간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런던에서 크리스마스에 맞춰 교회와 시계탑을 폭파하려 했던 무슬림 젊은이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의 전략은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중동을 비롯한 아랍권에서도 알카에다에 대한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서정민 교수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Hamas·반이스라엘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 겸 정당)나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시아파 무슬림 저항운동 단체 겸 정당)도 알카에다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아랍의 일부 국가는 오히려 알카에다의 위험성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홍보해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안정국 교수는 알카에다의 잇단 잡지 창간이 아랍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이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다”며 “(이런 매체들은) 일부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에게 강력한 환영을 받고, 그들 사이에서는 활발히 읽히며 극단주의자들의 사상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건한 시민 사이에서는 강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한국 이슬람성원(聖院)의 이주화(李周和) 이맘(Imam·이슬람 교단의 지도자)은 두 잡지에 대해 “이슬람 율법은 역사적인 이해와 함께 바라봐야 한다”며 “히잡 착용 등의 규정도 여성을 존중한다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카에다를 이슬람교와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알카에다를 이슬람 종교집단이 아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반이스라엘, 반미 세력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 중 누구도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일본강점기 때 안중근 같은 열사가 독립운동을 했듯이 알 카에다 같은 단체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저항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슬림들의 복잡한 심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올해 3월 여성지 《알 샤미카》(Al Shamika)를 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알카에다가 잡지를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 6월에도 영어로 된 지하드 잡지 《인스파이어》(Inspire)를 펴냈다. 작년 12월 영국 런던 경찰은 테러 용의자들의 집에서 이 잡지를 찾아냈다. 이 용의자들은 모두 9명의 젊은 청년이었는데, 혐의는 폭탄 테러 모의였다. 이들은 12월 25일에 빅벤 시계탑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전망탑 등 유명 관광 명소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하는 ‘크리스마스 테러’를 계획했었다고 진술했다. 《인스파이어》는 알카에다의 지역조직 중 하나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支部)(Al Qaeda in Arabian Peninsula갂QAP)가 발행처로 돼 있었다.
《알 샤미카》와 《인스파이어》 모두 인터넷에서 파일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테러조직이 왜 잡지를 발행했을까. 또 잡지에 그들은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여성은 사회의 전부다?’
알 샤미카는 아랍어로 ‘당당한 여성’을 뜻한다. 《알 샤미카》 이전에도 알카에다가 여성 잡지를 발간한 적이 있다. 2004년에 아라비아반도 여성미디어지부(Women’s Media Bureau in the Arabian Peninsula)에서 발간한 《알 칸사》(Al-Khansa)가 그것이다. ‘이슬람 전사로 활동하는 남편을 내조하는 법’ ‘가족이 부상당했을 때 응급처치하는 법’ 등의 정보를 실었던 《알 칸사》는 현재 발간되지 않는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안정국(安貞國) 교수의 번역에 따르면, 《알 샤미카》의 발간사에는 “여성은 사회의 절반이 아니다. 나머지 반도 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의 전부다”라는 문장이 있다. 급진적인 여성 인권 옹호 발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성의 인권이 아닌 ‘희생’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이슬람 세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자식을 출산하는 것을 여성의 의무로 규정한 이슬람 교리를 충실히 반영한 말이라고 한다.
《알 샤미카》 창간호는 총 31쪽으로 발행됐다. 총 9편의 글과 1편의 ‘부록 기사’가 있다. 《알 샤미카》는 발행 주기를 명확히 기재하지 않았다. 잡지의 전반적인 주제는 ‘무슬림(이슬람 신도) 여성들이 미군의 압제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이 돌아오지 않을 때’라는 제목의 첫 번째 칼럼에서는 ‘서구침략자’를 ‘십자군’이라고 부르며, “원숭이와 돼지의 자식들이(미군들이) 우리의 몸을 능욕하고 우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우리의 가슴에 있던 코란을 찢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커버스토리 격의 기사인 ‘한 여성 무자히드(Mujahid·이슬람 성전을 수행하는 전사)의 노트에서’라는 글에서는 무자히드였던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을 또 다른 무자히드로 키우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여성이 미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친구에게 받았다는 편지에는 “자유와 평화를 전하겠다고 온 더러운 미국인들이 여성들을 포로로 잡아 이들을 짐승 다루듯이 다뤄 미친 사람도 있다”며 “미군은 여성과 남성들의 명예를 더럽히고 모든 것을 파괴한 다음, 여러분을 해방하러 왔고 인권을 돌려주기 위해 왔다고 얘기한다”는 구절이 있다.
‘알샤미카 프레스’라는 코너에는 미군과 이스라엘군이 무슬림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풍문들이 나열돼 있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제시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어느 도시의 안보조사센터에서는 여성들의 옷을 완전히 벗겨놓고 심문을 한다’ ‘한 유대인 신문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 있는 어느 이스라엘 군인이 백기를 들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슬림 여성을 죽인 사실을 인정했다’는 식이다.
여성지지만 패션화보나 화장법 관련 기사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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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창간된 여성잡지 《알 샤미카》 창간호 표지. |
여성지 《알 샤미카》는 이 율법을 엄격히 지키라고 기사 곳곳에서 강조했다. ‘자유공간’이라는 코너에서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지금 배교자들이 우리 땅을 침탈하고 있고 하나님의 길과 법이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이런 상황의 변화를 위해, 이슬람 국가를 되살리기 위해 사명을 갖고 결혼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미용과 육아 등 상대적으로 좀 더 ‘여성지다운’ 주제를 다루는 부록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부 관리법을 논한 부분을 보면 “피부의 아름다움, 투명함과 빛남이 아름다움의 90%를 차지한다. 물을 많이 마시고 건조하지 않게 관리하라”는 조언과 함께 “당신의 아름다움은 남편만이 누릴 수 있으니 히잡(Hijab·무슬림 여성들이 외출 시 착용하는 베일의 일종)을 꼭 착용하라”는 문장도 빼놓지 않았다.
육아법을 다룬 부분에서도 역시 코란과 하디스를 인용하며 율법을 강조했다. 기사에는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방하는 말을 입에 올린 한 아이를 다른 아이가 죽인 일화가 인용돼 있다. 여성은 이슬람 율법을 위반하는 사람을 언제라도 용맹하게 죽일 수 있는 이슬람 전사, 즉 ‘무자히드’로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스파이어》 필자는 주로 알카에다 강경파 지도자
《인스파이어》는 미국과 유럽의 젊은 무슬림들에게 테러를 종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10년 6월에 첫 호가 나온 이래 지금까지 총 5차례 발행되었다. 분기마다 나오는 ‘계간지’ 형식인데, 지난 11월에는 한 차례 특별호도 냈다. 영어로 발행되고, 인터넷에서 파일 형태로 배포된다. 알카에다의 여러 하부 지부 중에서도 가장 강경 성향으로 분류되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가 제작했다. PDF파일 형태로 배포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배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전 세계 어디서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볼 수 있다. 기자는 잡지에 기재된 편집부의 전자메일 주소로 연락해, 종이 형태로도 발행하고 있는지 문의했지만 아무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인스파이어》의 편집자와 필진 역할을 하고 있는 사미르 칸(Khan)은 올해 25세 된 미국 시민권 소유자다. 사미르 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부모의 집 지하실에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지하드 선동 글을 인터넷에 올리다 미국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예멘으로 건너갔다.
칸 외의 기명 필자들은 안와르 알 올라키(al-Awlaki), 아부 자카리아 알에리트리(al-Eritri) 등 예멘에서 활동하는 지도자급의 알카에다 대원들이다. 이 중 알 올라키는 40세의 미국 시민권 소유자로 알카에다의 ‘영적 지도자’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9·11테러를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2009년부터 알카에다 지역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새로운 매체 활용에 적극적이라 ‘인터넷의 빈 라덴’으로도 불린다.
잡지 앞 부분에는 알카에다 주요 지도자들의 ‘지령’(指令)을 서구의 젊은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의 ‘성명(聲明) 대본’도 3차례 축약·게재되었다. 연설 대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도 지루하거나 시의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삭제하고 실었다. 이 중 두 편은 빈 라덴의 성명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축에 속하는 연설이다.
창간호인 2010년 6월호에 실린 ‘지구를 구하는 길’(The way to save the earth)은 2010년 1월에 공개된 빈 라덴의 성명을 요약한 것이다. 미국의 학자 노암 촘스키(Chomsky)와 미 항공우주국 소속 전문가인 제임스 한센(Hansen)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주장을 펼쳐 당시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던 성명이다. 빈 라덴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의 폐해’를 언급하며 “대기업을 비호하기 위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는 미국 대통령(부시 전 대통령)과 의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이념과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온난화 현상을 예로 들어 미국을 비난한 것이다.
2010년 겨울호에는 ‘우리가 당한 것을 그들도 겪게 하기 위해’(In order that they taste some of what we tasted)라는 제목 아래 빈 라덴이 2004년 10월에 한 연설문을 실었다. 이 연설에서 빈 라덴은 2001년 9·11테러의 배후에 자신이 있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그는 테러 동기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들에게 폭정을 휘두른 것을 목격한 후 (테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를 공격 목표로 정한 데 대해서는 “레바논에서 파괴된 탑(Tower)을 보았을 때, 우리가 맛본 것을 그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미국의 탑을 공격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쌍둥이 탑(Twin Towers)이라고도 불린 곳이다. 2010년 가을호에는 빈 라덴이 2007년 12월에 공개한 연설을 한 쪽 분량으로 간략하게 줄여 실었다.
‘트럭으로 무차별 살상 테러하는 방법’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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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파이어》 2011년 봄호에 실린 총기 다루는 방법 소개 기사. |
테러 장소에 대해서는, 붐비면서도 협소한 공간이 좋은데, 도심의 보행자 전용 공간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일단 감행하면 무사히 도망치기 어려울 것이므로 ‘순교용 작전’으로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작전 대상국으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국가들’을 들고 있다. 두 군데 모두 파병한 우리나라도 작전 대상국에 포함된 셈이다.
AK 소총을 다루는 법도 연재하고 있다. 중동에서 주로 쓰이는 칼라슈니코프(Kalashnikov) 소총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총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를 위해 모든 내용을 사진과 함께 친절히 설명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소총은 휴대하기 쉽게 총신을 짧게 줄인 실전용이다.
‘소총 제조국 구분하기’도 실렸다. 총신의 아랫부분에 새겨져 있는 마크를 보고 제조국가를 구별하는 법이다. 그림으로 제시된 제조국 마크에는 북한산(産) AK의 마크도 포함돼 있다. 북한제 무기가 알카에다로도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총기를 분해·조립하는 법도 연재했다. 전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줘, 총기를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몇 번 읽고 따라 해보면 쉽게 익숙해질 수 있을 정도다.
잡지 발간은 알카에다 지도부 와해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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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파이어》 2010년 가을호 표지. |
한국외국어대의 서정민(徐廷珉) 교수는 “알카에다의 실체가 존재하는지조차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현재 활동하는 단체는 알카에다의 뜻을 잇고자 자생적으로 등장한 ‘알카에디즘’ 추종 세력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지도부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테러를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젊은 무슬림들을 부추기기 위해 잡지를 잇달아 창간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런던에서 크리스마스에 맞춰 교회와 시계탑을 폭파하려 했던 무슬림 젊은이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의 전략은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중동을 비롯한 아랍권에서도 알카에다에 대한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서정민 교수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Hamas·반이스라엘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 겸 정당)나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시아파 무슬림 저항운동 단체 겸 정당)도 알카에다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아랍의 일부 국가는 오히려 알카에다의 위험성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홍보해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안정국 교수는 알카에다의 잇단 잡지 창간이 아랍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이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다”며 “(이런 매체들은) 일부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에게 강력한 환영을 받고, 그들 사이에서는 활발히 읽히며 극단주의자들의 사상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건한 시민 사이에서는 강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한국 이슬람성원(聖院)의 이주화(李周和) 이맘(Imam·이슬람 교단의 지도자)은 두 잡지에 대해 “이슬람 율법은 역사적인 이해와 함께 바라봐야 한다”며 “히잡 착용 등의 규정도 여성을 존중한다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카에다를 이슬람교와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알카에다를 이슬람 종교집단이 아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반이스라엘, 반미 세력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 중 누구도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일본강점기 때 안중근 같은 열사가 독립운동을 했듯이 알 카에다 같은 단체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저항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슬림들의 복잡한 심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