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 세계 원유생산의 12% 차지, 油田 지대 거주하는 少數 시아파 봉기 時 제3차 오일쇼크 우려
⊙ 34세 이하 인구가 국민의 70%, 청년 실업률 40%
⊙ 압둘라 現 국왕 88세, 술탄 왕세제 87세, 왕위계승서열 3위인 나이프 왕자는 78세,
국가요직 독점하고 있는 왕족 대부분이 70~80대
朴炫度
⊙ 45세.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연구소 박사 과정 수료.
⊙ 現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 대화위원,
《종교와 평화》 편집위원.
⊙ 저서 : 《사람의 종교 종교의 사람》(共著)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共著)
《재미있는 종교이야기》(共著).
⊙ 34세 이하 인구가 국민의 70%, 청년 실업률 40%
⊙ 압둘라 現 국왕 88세, 술탄 왕세제 87세, 왕위계승서열 3위인 나이프 왕자는 78세,
국가요직 독점하고 있는 왕족 대부분이 70~80대
朴炫度
⊙ 45세.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연구소 박사 과정 수료.
⊙ 現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 대화위원,
《종교와 평화》 편집위원.
⊙ 저서 : 《사람의 종교 종교의 사람》(共著)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共著)
《재미있는 종교이야기》(共著).
- 파드 전 사우디 국왕(왼쪽)과 압둘라 현 국왕.
지난 1월 4일 튀니지 중부 도시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서 26세 청년 청과노점상 부아지지가 분신(焚身) 자살한 후 불붙기 시작한 중동(中東)-북(北)아프리카발(發) 민주화 열풍이 넉 달이 다 되도록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걸프지역 아랍국가, 이란 등 중동 어느 한 나라도 조용한 곳이 없다.
중동-북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다. 다른 나라에 비하자면 산발적이고도 조용한 시위 몇 번밖에 없었던 이 왕국의 정정(政情)을 긴장감 속에 지켜보는 이유는 사우디가 전(全) 세계 석유매장량의 19.2%를 차지하고(2010년 1월 기준 《석유&가스 저널》 추정치), 중동지역에서 반미(反美) 이란에 맞서 친미(親美)체제를 유지하는 핵심국가로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루 약 16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던 리비아가 내전으로 인해 정상적인 원유 공급을 하지 못하자 국제유가가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 에너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간 평균치로 놓고 보았을 때 전 세계 석유생산량 하루 7349만 배럴에서 리비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2%다. 반면 사우디는 844만 배럴로 12%에 육박한다. 정정불안으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 中東전략의 중심축
국제정치질서 측면에서 보면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친미(親美)에서 반미(反美)로 돌아선 시아파 이란의 중동 헤게모니 장악을 막는 큰 축이 사우디다.
1945년 밸런타인 데이에 영국의 처칠 수상 몰래 루스벨트 미(美) 대통령과 사우디의 이븐 사우드 국왕이 미 군함 퀸시(Quincy)호에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제공하고,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고 약속했다. 이후 석유자원 확보, 중동 헤게모니 장악을 통한 유럽 보호, 이스라엘의 안전을 핵심 중동정책으로 삼아 견지해 온 미국에 사우디는 말 그대로 최적의 파트너였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질서라는 두 측면에서 지난 60여 년간 미국 주도 자유민주 진영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사우디는 사실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입헌(立憲) 왕정인 바레인과 달리 사우디는 절대왕정으로 국민이 선출한 의회도,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정당도 없다.
국회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은 ‘국왕자문협의회’(마즐리스 앗-슈라)다. 이는 왕이 임명한 30세 이상 남자 150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와는 거리가 멀다. 주된 업무는 사실상 정부가 제시한 안건을 승인하는 데 한정되어 있다. 입법부(立法府)가 없는 상황에서 법은 법제부(法制部)에서 만든다.
유일한 선거는 지방의회 선거이다. 한국으로 치면 시·군·구(市·郡·區) 단위에서 행해지는 이 선거는 2005년 처음 실시됐고, 올 9월 22일 두 번째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지방의회 선거도 모든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258곳에 한정해 실시된다. 또 전체 의원의 절반만 선거로 뽑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가 임명한다. 여성 참정권(參政權)은 허락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입후보할 수도, 투표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는 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우디에서 민주주의적 가치가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은 1992년 3월 1일 공포된 ‘통치기본법’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법을 헌법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총 9장 83조로 구성되어 국가정체성(正體性), 국가권력구조,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다른 나라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엄밀히 말해서 사우디의 헌법은 통치기본법 제1조에 명시된 대로 “지고하신 알라의 경전과 그분의 사도(使徒)의 수나”다. 코란은 주지하다시피 이슬람교 경전이고, 수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 전통을 의미한다. 헌법을 이슬람 종교 신앙의 핵심인 코란과 수나로 규정하고 있다면 사실상 사우디는 종교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치기본법 제1조에서 사우디는 스스로를 아랍이슬람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통치기본법에는 ‘민주’라는 말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사우디의 가족 구성원은 이슬람에 기초하여 양육되는데, 이들이 받는 이슬람 교육은 “믿는 자들이여, 알라께 복종하고, 사도에 복종하고, 너희 지도자에게 복종하라”는 코란 4장 59절을 본뜬 “알라, 그분의 사도,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복종(제9조)”이다.
통치기본법의 비민주성은 “투표제도는 이슬람 신앙에 없다”고 하면서 “현대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파드 전(前) 국왕의 통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생각은 결국 이슬람 정부의 지도자는 신(神)의 법을 수호하는 의(義)로운 통치자이기에 국민이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지 민의(民意)에 의해 선출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테러의 온상
사우디의 비민주적인 정치현실은 기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잣대로 세계정치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동맹국 미국의 오랜 고민거리다.
사우디가 제한적이나마 2005년 지방선거를 실시한 것도 알고 보면 9·11테러 이후 중동 민주화가 급선무라는 것을 깨달은 부시 행정부가 중동 친미국가들에 민주개혁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시는 “사우디가 국민들이 직접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확대시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중동 내 지도자적 국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우디 자문협의회의 압둘아지즈 알-파이즈는 “개혁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우리나라의 개혁은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우디가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슬람을 국시(國是)로 한다고 해서 무슬림들이 만족해하는 이슬람적 정치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순수정통 이슬람을 표방하며 비이슬람적인 일체의 관습을 일소하겠다는 와하비 사상을 바탕으로 건국한 왕국이지만, 적어도 이슬람주의자들은 사우디 정부가 제대로 된 이슬람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러한 생각을 지닌 대표적 인물이다. 리야드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이끈 9·11테러 가담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결국 사우디가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뿐 아니라 무슬림 종교 감정도 충족시키거나 사로잡지 못했다는 말이다.
실로 정부의 녹(祿)을 받고 있는 무슬림 외에는 강경,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사우디 정부의 ‘이슬람 신앙’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박한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사우디 정부가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뿐, 신앙을 올바르게 지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폭력적 이슬람주의 온상이 되어버린 책임을 미국에만 물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3년 5월에는 급기야 수도 리야드에서 알카에다 연관 테러가 발생, 미국인 9명과 사우디 자국민 7명을 포함해 모두 35명이 목숨을 잃었고 16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우디판 9·11로 불리기도 하는 이 참사는 오사마 빈 라덴이 1996년 대미(對美) 지하드(聖戰)를 선언한 후 이듬해 공언한 사우디 왕정 전복(顚覆)이 공염불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 사건은 사우디 정부가 종교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해 ‘서로 다름은 알라의 축복’이라고 한 예언자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슬람 사회를 구축한 결과, 옆을 보지 못하고 앞만 보는 경주마 같은 외골수 무슬림을 양산해 냈음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2003년 6월 당시 왕세제(王世弟)였던 압둘라 현 국왕은 뒤늦게 이슬람 정치로 자승자박(自繩自縛)한 현실을 깨닫고 사회지도층 지식인들을 망라하여 교육, 종교, 여성, 문화 등에 걸친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少數 시아파와 油田
사회통합 측면에서 보면 사우디의 가장 큰 문제는 인구의 10~15%를 차지하며 동부 하사와 카티프 지역에 사는 12이맘파(派), 남부 나즈란이 거점인 이스마일파, 예멘 국경지대에 몰려 있는 자이드파 등 소수파(少數派) 시아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다.
특히 현재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시아 무슬림은 동부유전(油田) 지대에 거주하는 12이맘파다.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사우디 당국의 요시찰(要視察) 대상이다.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전지역이라 자원안보까지 겹쳐 있다.
이번 중동민주화시위의 와중에 사우디에 이웃하고 있는 바레인에서도 시아파에 의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바레인에 제5함대 사령부를 두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바레인 시아파 시위에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 바레인에서 시아파의 반정부 시위가 성공하면 그 여파가 사우디 등 수니왕정 치하에 있는 시아파에 미쳐 역내(域內)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뿐 아니라, 시아파가 밀집해 있는 유전 지역 원유 생산과 유통에도 차질을 빚기 때문이었다. 사우디가 이웃 바레인 왕정수호를 위해 군대를 파견, 시위진압을 돕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페르시아만 연안(걸프) 국가에서 생산되는 총원유량은 하루 평균 2081만 배럴(미에너지부 2010 자료)인데 시아파 지역에 있거나 시아파가 사는 지역을 거쳐야만 수출할 수 있는 원유의 양은 하루 약 864만 배럴에 달한다.
관건이 되는 유전지대는 1948년 발견되어 1951년부터 본격 생산을 시작한 사우디의 세계 최대 가와르 유전(하루 500만 배럴), 이라크의 루말리아 유전(하루 200만 배럴), 쿠웨이트의 부르간 유전(하루 164만 배럴)이다.
최악의 경우 수출길이 막히면 가와르 유전 생산 석유는 파이프라인으로 서부 얀부로 보낼 수 있지만, 쿠웨이트 부르간 유전은 수출로가 막힌다. 이라크의 루말리아 유전은 사우디 쪽으로 파이프라인이 개설되어 있으나, 이 라인은 지난 걸프전 이래 작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용 여부가 불투명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유전 지역 시아가 봉기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하루 364만 배럴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제3차 오일쇼크가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는 압둘라 국왕은 유화책의 일환으로 와하비 수니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부터 시아파를 종교 간 대화상대로 포용하고 나섰다.
압둘라 국왕의 대화프로그램은 사우디 사회에 다양한 신앙이 있다는 현실을 일깨운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7년 소수 시아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수니파 학자들과 함께 《사우디 내 종파간 대화》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것은 확실히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일이다.
그러나 시아파 주민들은 여전히 시아라는 이유로 수니보다 직장을 잡기 어렵고, 자유롭게 모스크를 짓고 시아 의례를 행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사우디와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는 이란은 이를 이용하여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며 사우디 정부와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개혁비용’ 930억 달러
그나마 고(高)유가가 지속되고 국민의 기대치가 높지 않으며 인구 증가율이 안정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75년에서 2009년 사이 인구증가율이 무려 333%에 달한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 기반을 늘릴 수 없다면 산아(産兒)제한을 통해서라도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제어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가족을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 전통에 어긋나 국민들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사우디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예전과 달리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잘 알고 있는 34세 이하 인구가 국민의 70%(사우디 시민 1800만명 중 1330만명)를 차지하고 있다. 실업자 수가 45만명에 달하며, 20~24세 청년 실업률은 40%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왕정체제의 비효율성을 감추기도 쉽지 않다. 사실상 참정권도 없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산유국답지 않게 경제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정권에 위협이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국내 젊은이들의 시위에 화들짝 놀란 사우디 정부는 지방의회 선거 지역을 늘리고, 주택 50만 호를 건설해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집에 살기 위해 18년이나 기다리는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최저(最低)임금을 인상하고, 경찰 6만명을 증원하여 실업난을 덜겠다는 당근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개혁에 들어가는 비용이 무려 930억 달러다. 원래는 360억 달러 수준의 개혁비용을 계획하였다가 국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폭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석유수입뿐 아니라 외환(外換)보유액에도 손을 대야만 가능한 액수라는 평가다.
위키리크스는 얼마 전 사우디 석유생산을 총괄하는 국영(國營) 아람코사가 석유매장량을 실제보다 40% 더 부풀려 왔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외교문서를 폭로했다. 이로써 사우디 원유 의존 경제에 대한 회의가 한층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석유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수입원이 없고, 땅에서 나는 석유를 팔아 번 돈을 국민에게 선심 쓰듯 나눠주는 상황에서 원유매장량마저 부풀려졌다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父子상속에서 兄弟상속으로
사우디 왕가는 1932년 사우디라는 나라를 세우기 200여 년 전인 1744년부터 수도 리야드가 있는 중부 나즈드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한 유서 깊은 부족의 후손이다. 어언 400여 년에 이르는 사우드 왕가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1744~1821년)에는 권력이 부자(父子)승계되었다. 하지만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겪은 두 번째 시기(1823~1891년)에는 중부 나즈드 지역의 베드윈과 연합하면서 부족전통 요소를 이전보다 더 많이 수용하였다. 권력 계승 방식도 부자상속이 아닌 형제상속으로 변화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형제상속이 발생했는지는 문헌 부족으로 인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형제간 권력투쟁은 사우드 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권력 기반을 흔들었다.
현 왕가의 실질적 시작은 1927년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고 1932년 사우디왕국을 선포한 국부(國父) 압둘아지즈다. 195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2명의 아내와 4명의 첩을 두었고, 모두 4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35명이 생존해 있다. 압둘아지즈는 형제들과 사촌들을 배제하고 아들들을 요직에 앉혀 권력을 다졌다. 이는 결국 그의 사후 아들들이 권력을 승계하는 전통의 바탕이 되었다.
압둘아지즈가 사망한 날 사우드 왕세자(王世子)가 왕으로 선포되었는데, 그는 이복(異腹)동생 파이살을 왕세제로 임명하였다. 사우드 왕은 1933년 왕세자가 되었을 때부터 동생 파이살보다 여러모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결국 1964년 파이살은 형을 퇴위시키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75년 같은 이름을 지닌 조카의 총탄에 사망하고 만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이복동생 칼리드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으로 1975년 왕세제로 임명한 이복동생 파드에게 모든 국정을 맡기다시피 하다가 1982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술탄 王世弟, 50년째 국방장관 재직 중
파드가 즉위할 때까지 왕이 친밀한 가족들과 비밀리에 협의한 후 이복동생을 왕세제로 지명하는 관례(慣例)가 지속되었다. 공식적인 왕위계승 논의기구나 원칙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파이살 국왕 이래 제2부총리가 현 왕세제 다음으로 차기(次期) 왕세제가 되고 결국 차차기(次次期) 국왕이 되는 불문율(不文律)이 생겼다.
사우디 왕정 시스템에서 국왕은 총리가 되어 모든 정부 요직 임명권을 지니고, 왕세제는 제1부총리다. 파드 왕 역시 파이살 왕 치하 때 제2부총리로 지명되었다.
파드는 1992년 통치기본법을 제정하여 제5조 2항에 국왕이 되는 자격을 국부의 아들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부여하고 ‘이들 중 가장 올바른 자가 국왕이 된다’고 새롭게 규정하였다.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왕위 계승에 관한 공식문건을 만든 파드는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 2005년 사망하였다. 그해 8월 1일 이복동생 압둘라가 왕권을 승계하였다. 압둘라는 즉위와 동시에 이복동생이자 파드의 동복(同腹)동생인 술탄을 왕세제로 지명하였다.
국부 압둘아지즈 사후 현 압둘라 국왕까지 52년 동안 5명의 아들이 형제상속으로 연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동안 형제간 알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협의와 조정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넘겨왔다.
그런데 형제상속이 계속되고 전임 형들의 재임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후임 왕이 되는 동생들이 고령(高齡)이 되어 즉위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2대 사우드 왕부터 5대 파드 왕까지는 50~60대에 즉위하였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파드 국왕이 무려 23년간 재임하면서 현 국왕과 왕세제는 즉위 시 연령이 82세, 81세로 껑충 뛰었다.
또 왕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형제들 또한 고령이 되어서도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국가지도층 전반이 노쇠하다. 압둘라 국왕은 1923년생으로 올해 88세인데 1963년부터 2010년 아들 무타이브에게 지휘권을 넘길 때까지 근위대 사령관직을 맡아왔다. 87세인 왕세제 술탄은 1962년부터 국방장관으로 재임 중이다. 80세인 압둘라흐만 왕자는 1978년부터 33년째 국방차관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 78세인 나이프 왕자는 1975년부터 36년째 내무장관이다. 75세의 살만 왕자는 49년째 리야드 주지사를 역임하고 있다. 아흐마드 왕자는 올해 71세로 36년째 국방차관이다.
왕실충성위원회에서 次次期 국왕 선출?
고령이면서 건강이 좋지 못한 국왕과 왕세제로 인한 승계문제를 정리할 필요성에서 압둘라 국왕은 2006년 10월 왕실충성위원회를 신설해 차기 왕세제를 선출하겠다고 발표해서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
이 위원회의 임무는 현 국왕이 죽고 왕세제 술탄이 국왕이 되었을 때 왕세제 또는 왕세자를 뽑는 것이다. 압둘라 국왕은 이듬해 12월 자신의 세대 왕자 16명과 다음 세대 왕자 19명으로 총 35인의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가 구성된 지 1년3개월 만인 2009년 3월, 그동안 공석으로 두었던 제2부총리직에 현 왕세제 술탄의 동복동생인 나이프 왕자가 임명되면서 사우디의 차기 왕권 구도는 더욱 혼미해졌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파이살 국왕 이래 제2부총리는 왕세제 다음으로 차차기 국왕이 되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자면 현 압둘라 국왕 유고시 술탄 왕세제가 차기 왕이 되고, 나이프 왕자는 자연스럽게 왕세제가 되어 다음 왕권을 이어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관례와 왕실충성위원회의 존재가 상충(相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왕실충성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승계구도에 논란이 될 제2부총리를 임명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이는 왕실충성위원회 위원인 탈랄(80세) 왕자이다. 그는 “이번 임명이 무슨 의미인지 왕가의 설명이 필요하고 이러한 결정이 (나이프 왕자가) 차기 왕세제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왕실충성위원회에서 승계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개혁파 VS. 보수파
이러한 의견에 대해 사우디 왕가는 일체의 공식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탈랄 왕자는 승계가 전적으로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왕정과 종교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개혁파에 속한다. 반면 나이프 왕자는 여성 참정권 부여, 지방의회 선거 실시 등에 반대하는 보수파다.
나이프 왕자의 제2부총리 지명은 현 왕가 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밀실(密室) 협의에 따른 결과라는 후문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거명되지 않았고, 탈랄 왕자가 포함되었는지의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압둘라 국왕이 만든 왕실충성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것일까? 아니면 압둘라 국왕 사후 왕실충성위원회가 나이프를 왕세제로 승인하는 역할을 하게 될까? 통치기본법, 왕실충성위원회법 등 왕위 승계에 관한 법조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려가 끊이지 않는 것은 나이프 부총리 임명에서 볼 수 있듯 그동안 법조문보다 관습에 우선해 특별한 공식적 절차나 설명 없이 왕가의 승계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왕위승계를 두고 왕이 먼저 죽을 경우, 또는 왕세제가 먼저 죽을 경우, 또는 두 사람 다 공직 수행이 어려울 경우 등 복잡한 경우의 수를 상정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나이프 왕자가 별안간 제2부총리로 지명된 것 때문만은 아니다. 국왕과 왕세제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고, 비록 나이프 왕자는 두 사람보다 나이가 적지만 그도 80을 앞둔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위계승 시나리오
미국의 중동전문가인 사이먼 헨더슨은 워싱턴 연구소의 2009년 《정책초점》(Policy Focus) 96호에서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나누어 예측하였다.
첫째, 압둘라 국왕보다 술탄 왕세제가 먼저 죽을 경우, 압둘라 국왕은 이복형들로부터 나이프를 왕세제로 지명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두 사람 모두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동반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압둘라 국왕이 죽으면 나이프가 왕이 된다.
둘째, 압둘라 국왕이 술탄 왕세제보다 먼저 죽을 경우,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술탄이 왕위에 오른 후 동복동생인 나이프를 왕세제로 책봉할 것이고, 나이프가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다.
셋째, 압둘라 왕과 술탄 왕세제가 건강이 악화되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이론적이라면 왕실충성위원회가 5명으로 구성된 과도정(過渡政) 위원회를 구성해 임시로 왕국을 통치하다가 왕실충성위원회가 왕을 선출한다. 이 경우 위원회는 나이프를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나이프는 쿠데타를 불사하며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여 나이프가 왕위에 오른다면 그는 동복동생 살만 왕자를 왕세제로 임명할 것이다.
넷째, 국부의 아들 중 젊은 아들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일 경우, 75세의 살만 왕자가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나이프도 동복동생인 그에게 양보할 것이다. 나이를 고려한다면 최적의 후보자는 68세의 정보부장 무크린 왕자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예멘 출신이라서 국왕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국부의 아들들이 다음 세대로 왕권을 넘길 가능성인데, 이 경우 압둘라 국왕, 술탄 왕세제, 나이프 왕자, 살만 왕자 등의 아들들이 물망에 오르내린다.
왕위 승계와 관련하여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형제 왕자들 간의 경쟁구도이다. 압둘라 국왕은 동복 형제가 없는 관계로 아들들이 유일한 혈육이며 지지세력이다. 이복형 전임 파이살 국왕의 아들들과 연합하지 않으면 막강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이른바 수다이리파(派) 형제들을 제어할 수 없다. 수다이리는 국부 압둘아지즈의 8번째 아내 하사 빈트 아흐마드가 속한 씨족 이름이다. 전임 국왕 파드, 현 왕세제 술탄, 압둘라흐만 국방차관, 나이프 제2부총리 겸 내무장관, 카이로에 거주하고 있는 투르키, 리야드 주지사 살만, 아흐마드 내무차관 등 하사가 낳은 7명의 아들을 수다이리파라 부른다. 파드는 세상을 떠났지만 나머지 6명의 동생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이들의 아들들도 정부 요직에 있다. 압둘라 국왕이 왕실충성위원회를 만든 것은 이들 수다이리 형제들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다. 위원회에서 이들은 35표 중 7표밖에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가는 연대의식을 발휘할까
현재 국부의 손자 세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로는 파이살 전 국왕의 아들 칼리드 메카 주지사(71세), 압둘라 현 국왕의 아들 무타이브 근위대 사령관(58세), 나이프 제2부총리 겸 내무장관의 아들 무함마드 내무차관보(52세)를 들 수 있다. 나이프 내무장관은 무함마드를 자신의 후임으로 쓰려고 하나 압둘라 국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풍문이 있다. 이는 압둘라 국왕이 자신의 아들 무타이브 왕자를 차세대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견제수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압둘라 국왕과 수다이리 형제들 간 알력의 예는 적잖다. 파드 전 국왕은 왕세제 당시 압둘라가 제2부총리가 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고, 1992년 통치기본법을 만들었을 때 ‘왕세제 임명과 해임은 왕의 권한’이라는 문구를 넣어 압둘라 당시 왕세제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사우디 왕가는 이처럼 속으로 서로 불편해해도 왕가의 평온을 깨지 않기 위해 조용히 갈등을 무마하면서 원만하게 왕위 승계작업을 해나갈지도 모른다.
중세(中世) 최고의 역사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추앙받는 이븐 칼둔(1332~1406년)은 한 정권의 흥망성쇠를 아사비야(연대의식)라는 말로 꿰뚫어보았다. “강력한 연대(連帶)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정권을 만들고 유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대의식이 약해지면서 더 강렬한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정권을 내준다”는 것이다.
사우디 왕가가 연대의식을 발휘하여 승계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왕가의 안정을 확립할지, 아니면 수다이리 형제들이 연대의식으로 뭉쳐 경쟁자를 물리치고 집권할지, 아니면 왕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연대의식이 와해되어 자체붕괴할지, 아니면 강력한 연대의식을 지닌 새로운 젊은이들의 힘에 의해 변화의 바람에 직면할지 지켜볼 일이다.⊙
중동-북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다. 다른 나라에 비하자면 산발적이고도 조용한 시위 몇 번밖에 없었던 이 왕국의 정정(政情)을 긴장감 속에 지켜보는 이유는 사우디가 전(全) 세계 석유매장량의 19.2%를 차지하고(2010년 1월 기준 《석유&가스 저널》 추정치), 중동지역에서 반미(反美) 이란에 맞서 친미(親美)체제를 유지하는 핵심국가로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루 약 16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던 리비아가 내전으로 인해 정상적인 원유 공급을 하지 못하자 국제유가가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 에너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간 평균치로 놓고 보았을 때 전 세계 석유생산량 하루 7349만 배럴에서 리비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2%다. 반면 사우디는 844만 배럴로 12%에 육박한다. 정정불안으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 中東전략의 중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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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스벨트 대통령과 사우드 국왕은 1945년 2월 미국 군함 퀸시호 함상(艦上)에서 만나 양국 간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
1945년 밸런타인 데이에 영국의 처칠 수상 몰래 루스벨트 미(美) 대통령과 사우디의 이븐 사우드 국왕이 미 군함 퀸시(Quincy)호에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제공하고,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고 약속했다. 이후 석유자원 확보, 중동 헤게모니 장악을 통한 유럽 보호, 이스라엘의 안전을 핵심 중동정책으로 삼아 견지해 온 미국에 사우디는 말 그대로 최적의 파트너였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질서라는 두 측면에서 지난 60여 년간 미국 주도 자유민주 진영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사우디는 사실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입헌(立憲) 왕정인 바레인과 달리 사우디는 절대왕정으로 국민이 선출한 의회도,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정당도 없다.
국회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은 ‘국왕자문협의회’(마즐리스 앗-슈라)다. 이는 왕이 임명한 30세 이상 남자 150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와는 거리가 멀다. 주된 업무는 사실상 정부가 제시한 안건을 승인하는 데 한정되어 있다. 입법부(立法府)가 없는 상황에서 법은 법제부(法制部)에서 만든다.
유일한 선거는 지방의회 선거이다. 한국으로 치면 시·군·구(市·郡·區) 단위에서 행해지는 이 선거는 2005년 처음 실시됐고, 올 9월 22일 두 번째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지방의회 선거도 모든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258곳에 한정해 실시된다. 또 전체 의원의 절반만 선거로 뽑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가 임명한다. 여성 참정권(參政權)은 허락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입후보할 수도, 투표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는 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우디에서 민주주의적 가치가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은 1992년 3월 1일 공포된 ‘통치기본법’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법을 헌법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총 9장 83조로 구성되어 국가정체성(正體性), 국가권력구조,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다른 나라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엄밀히 말해서 사우디의 헌법은 통치기본법 제1조에 명시된 대로 “지고하신 알라의 경전과 그분의 사도(使徒)의 수나”다. 코란은 주지하다시피 이슬람교 경전이고, 수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 전통을 의미한다. 헌법을 이슬람 종교 신앙의 핵심인 코란과 수나로 규정하고 있다면 사실상 사우디는 종교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치기본법 제1조에서 사우디는 스스로를 아랍이슬람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통치기본법에는 ‘민주’라는 말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사우디의 가족 구성원은 이슬람에 기초하여 양육되는데, 이들이 받는 이슬람 교육은 “믿는 자들이여, 알라께 복종하고, 사도에 복종하고, 너희 지도자에게 복종하라”는 코란 4장 59절을 본뜬 “알라, 그분의 사도,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복종(제9조)”이다.
통치기본법의 비민주성은 “투표제도는 이슬람 신앙에 없다”고 하면서 “현대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파드 전(前) 국왕의 통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생각은 결국 이슬람 정부의 지도자는 신(神)의 법을 수호하는 의(義)로운 통치자이기에 국민이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지 민의(民意)에 의해 선출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테러의 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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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살 전 사우디 국왕. |
사우디가 제한적이나마 2005년 지방선거를 실시한 것도 알고 보면 9·11테러 이후 중동 민주화가 급선무라는 것을 깨달은 부시 행정부가 중동 친미국가들에 민주개혁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시는 “사우디가 국민들이 직접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확대시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중동 내 지도자적 국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우디 자문협의회의 압둘아지즈 알-파이즈는 “개혁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우리나라의 개혁은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우디가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슬람을 국시(國是)로 한다고 해서 무슬림들이 만족해하는 이슬람적 정치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순수정통 이슬람을 표방하며 비이슬람적인 일체의 관습을 일소하겠다는 와하비 사상을 바탕으로 건국한 왕국이지만, 적어도 이슬람주의자들은 사우디 정부가 제대로 된 이슬람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러한 생각을 지닌 대표적 인물이다. 리야드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이끈 9·11테러 가담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결국 사우디가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뿐 아니라 무슬림 종교 감정도 충족시키거나 사로잡지 못했다는 말이다.
실로 정부의 녹(祿)을 받고 있는 무슬림 외에는 강경,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사우디 정부의 ‘이슬람 신앙’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박한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사우디 정부가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뿐, 신앙을 올바르게 지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폭력적 이슬람주의 온상이 되어버린 책임을 미국에만 물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3년 5월에는 급기야 수도 리야드에서 알카에다 연관 테러가 발생, 미국인 9명과 사우디 자국민 7명을 포함해 모두 35명이 목숨을 잃었고 16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우디판 9·11로 불리기도 하는 이 참사는 오사마 빈 라덴이 1996년 대미(對美) 지하드(聖戰)를 선언한 후 이듬해 공언한 사우디 왕정 전복(顚覆)이 공염불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 사건은 사우디 정부가 종교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해 ‘서로 다름은 알라의 축복’이라고 한 예언자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슬람 사회를 구축한 결과, 옆을 보지 못하고 앞만 보는 경주마 같은 외골수 무슬림을 양산해 냈음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2003년 6월 당시 왕세제(王世弟)였던 압둘라 현 국왕은 뒤늦게 이슬람 정치로 자승자박(自繩自縛)한 현실을 깨닫고 사회지도층 지식인들을 망라하여 교육, 종교, 여성, 문화 등에 걸친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少數 시아파와 油田
사회통합 측면에서 보면 사우디의 가장 큰 문제는 인구의 10~15%를 차지하며 동부 하사와 카티프 지역에 사는 12이맘파(派), 남부 나즈란이 거점인 이스마일파, 예멘 국경지대에 몰려 있는 자이드파 등 소수파(少數派) 시아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다.
특히 현재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시아 무슬림은 동부유전(油田) 지대에 거주하는 12이맘파다.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사우디 당국의 요시찰(要視察) 대상이다.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전지역이라 자원안보까지 겹쳐 있다.
이번 중동민주화시위의 와중에 사우디에 이웃하고 있는 바레인에서도 시아파에 의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바레인에 제5함대 사령부를 두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바레인 시아파 시위에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 바레인에서 시아파의 반정부 시위가 성공하면 그 여파가 사우디 등 수니왕정 치하에 있는 시아파에 미쳐 역내(域內)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뿐 아니라, 시아파가 밀집해 있는 유전 지역 원유 생산과 유통에도 차질을 빚기 때문이었다. 사우디가 이웃 바레인 왕정수호를 위해 군대를 파견, 시위진압을 돕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페르시아만 연안(걸프) 국가에서 생산되는 총원유량은 하루 평균 2081만 배럴(미에너지부 2010 자료)인데 시아파 지역에 있거나 시아파가 사는 지역을 거쳐야만 수출할 수 있는 원유의 양은 하루 약 864만 배럴에 달한다.
관건이 되는 유전지대는 1948년 발견되어 1951년부터 본격 생산을 시작한 사우디의 세계 최대 가와르 유전(하루 500만 배럴), 이라크의 루말리아 유전(하루 200만 배럴), 쿠웨이트의 부르간 유전(하루 164만 배럴)이다.
최악의 경우 수출길이 막히면 가와르 유전 생산 석유는 파이프라인으로 서부 얀부로 보낼 수 있지만, 쿠웨이트 부르간 유전은 수출로가 막힌다. 이라크의 루말리아 유전은 사우디 쪽으로 파이프라인이 개설되어 있으나, 이 라인은 지난 걸프전 이래 작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용 여부가 불투명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유전 지역 시아가 봉기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하루 364만 배럴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제3차 오일쇼크가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는 압둘라 국왕은 유화책의 일환으로 와하비 수니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부터 시아파를 종교 간 대화상대로 포용하고 나섰다.
압둘라 국왕의 대화프로그램은 사우디 사회에 다양한 신앙이 있다는 현실을 일깨운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7년 소수 시아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수니파 학자들과 함께 《사우디 내 종파간 대화》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것은 확실히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일이다.
그러나 시아파 주민들은 여전히 시아라는 이유로 수니보다 직장을 잡기 어렵고, 자유롭게 모스크를 짓고 시아 의례를 행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사우디와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는 이란은 이를 이용하여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며 사우디 정부와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개혁비용’ 930억 달러
그나마 고(高)유가가 지속되고 국민의 기대치가 높지 않으며 인구 증가율이 안정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75년에서 2009년 사이 인구증가율이 무려 333%에 달한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 기반을 늘릴 수 없다면 산아(産兒)제한을 통해서라도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제어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가족을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 전통에 어긋나 국민들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사우디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예전과 달리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잘 알고 있는 34세 이하 인구가 국민의 70%(사우디 시민 1800만명 중 1330만명)를 차지하고 있다. 실업자 수가 45만명에 달하며, 20~24세 청년 실업률은 40%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왕정체제의 비효율성을 감추기도 쉽지 않다. 사실상 참정권도 없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산유국답지 않게 경제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정권에 위협이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국내 젊은이들의 시위에 화들짝 놀란 사우디 정부는 지방의회 선거 지역을 늘리고, 주택 50만 호를 건설해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집에 살기 위해 18년이나 기다리는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최저(最低)임금을 인상하고, 경찰 6만명을 증원하여 실업난을 덜겠다는 당근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개혁에 들어가는 비용이 무려 930억 달러다. 원래는 360억 달러 수준의 개혁비용을 계획하였다가 국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폭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석유수입뿐 아니라 외환(外換)보유액에도 손을 대야만 가능한 액수라는 평가다.
위키리크스는 얼마 전 사우디 석유생산을 총괄하는 국영(國營) 아람코사가 석유매장량을 실제보다 40% 더 부풀려 왔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외교문서를 폭로했다. 이로써 사우디 원유 의존 경제에 대한 회의가 한층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석유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수입원이 없고, 땅에서 나는 석유를 팔아 번 돈을 국민에게 선심 쓰듯 나눠주는 상황에서 원유매장량마저 부풀려졌다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父子상속에서 兄弟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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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군 차량들이 시아파 반정부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바레인으로 진입하고 있다. |
첫 번째 시기(1744~1821년)에는 권력이 부자(父子)승계되었다. 하지만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겪은 두 번째 시기(1823~1891년)에는 중부 나즈드 지역의 베드윈과 연합하면서 부족전통 요소를 이전보다 더 많이 수용하였다. 권력 계승 방식도 부자상속이 아닌 형제상속으로 변화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형제상속이 발생했는지는 문헌 부족으로 인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형제간 권력투쟁은 사우드 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권력 기반을 흔들었다.
현 왕가의 실질적 시작은 1927년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고 1932년 사우디왕국을 선포한 국부(國父) 압둘아지즈다. 195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2명의 아내와 4명의 첩을 두었고, 모두 4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35명이 생존해 있다. 압둘아지즈는 형제들과 사촌들을 배제하고 아들들을 요직에 앉혀 권력을 다졌다. 이는 결국 그의 사후 아들들이 권력을 승계하는 전통의 바탕이 되었다.
압둘아지즈가 사망한 날 사우드 왕세자(王世子)가 왕으로 선포되었는데, 그는 이복(異腹)동생 파이살을 왕세제로 임명하였다. 사우드 왕은 1933년 왕세자가 되었을 때부터 동생 파이살보다 여러모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결국 1964년 파이살은 형을 퇴위시키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75년 같은 이름을 지닌 조카의 총탄에 사망하고 만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이복동생 칼리드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으로 1975년 왕세제로 임명한 이복동생 파드에게 모든 국정을 맡기다시피 하다가 1982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술탄 王世弟, 50년째 국방장관 재직 중
파드가 즉위할 때까지 왕이 친밀한 가족들과 비밀리에 협의한 후 이복동생을 왕세제로 지명하는 관례(慣例)가 지속되었다. 공식적인 왕위계승 논의기구나 원칙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파이살 국왕 이래 제2부총리가 현 왕세제 다음으로 차기(次期) 왕세제가 되고 결국 차차기(次次期) 국왕이 되는 불문율(不文律)이 생겼다.
사우디 왕정 시스템에서 국왕은 총리가 되어 모든 정부 요직 임명권을 지니고, 왕세제는 제1부총리다. 파드 왕 역시 파이살 왕 치하 때 제2부총리로 지명되었다.
파드는 1992년 통치기본법을 제정하여 제5조 2항에 국왕이 되는 자격을 국부의 아들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부여하고 ‘이들 중 가장 올바른 자가 국왕이 된다’고 새롭게 규정하였다.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왕위 계승에 관한 공식문건을 만든 파드는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 2005년 사망하였다. 그해 8월 1일 이복동생 압둘라가 왕권을 승계하였다. 압둘라는 즉위와 동시에 이복동생이자 파드의 동복(同腹)동생인 술탄을 왕세제로 지명하였다.
국부 압둘아지즈 사후 현 압둘라 국왕까지 52년 동안 5명의 아들이 형제상속으로 연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동안 형제간 알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협의와 조정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넘겨왔다.
그런데 형제상속이 계속되고 전임 형들의 재임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후임 왕이 되는 동생들이 고령(高齡)이 되어 즉위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2대 사우드 왕부터 5대 파드 왕까지는 50~60대에 즉위하였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파드 국왕이 무려 23년간 재임하면서 현 국왕과 왕세제는 즉위 시 연령이 82세, 81세로 껑충 뛰었다.
또 왕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형제들 또한 고령이 되어서도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국가지도층 전반이 노쇠하다. 압둘라 국왕은 1923년생으로 올해 88세인데 1963년부터 2010년 아들 무타이브에게 지휘권을 넘길 때까지 근위대 사령관직을 맡아왔다. 87세인 왕세제 술탄은 1962년부터 국방장관으로 재임 중이다. 80세인 압둘라흐만 왕자는 1978년부터 33년째 국방차관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 78세인 나이프 왕자는 1975년부터 36년째 내무장관이다. 75세의 살만 왕자는 49년째 리야드 주지사를 역임하고 있다. 아흐마드 왕자는 올해 71세로 36년째 국방차관이다.
왕실충성위원회에서 次次期 국왕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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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파드 전 사우디 국왕의 장례식. 세계 제1의 산유국 국왕의 시신이 관(棺)도 없이 평범한 갈색 천에 싸인 채 나무판 위에 놓여 운구되고 있다. |
이 위원회의 임무는 현 국왕이 죽고 왕세제 술탄이 국왕이 되었을 때 왕세제 또는 왕세자를 뽑는 것이다. 압둘라 국왕은 이듬해 12월 자신의 세대 왕자 16명과 다음 세대 왕자 19명으로 총 35인의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가 구성된 지 1년3개월 만인 2009년 3월, 그동안 공석으로 두었던 제2부총리직에 현 왕세제 술탄의 동복동생인 나이프 왕자가 임명되면서 사우디의 차기 왕권 구도는 더욱 혼미해졌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파이살 국왕 이래 제2부총리는 왕세제 다음으로 차차기 국왕이 되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자면 현 압둘라 국왕 유고시 술탄 왕세제가 차기 왕이 되고, 나이프 왕자는 자연스럽게 왕세제가 되어 다음 왕권을 이어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관례와 왕실충성위원회의 존재가 상충(相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왕실충성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승계구도에 논란이 될 제2부총리를 임명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이는 왕실충성위원회 위원인 탈랄(80세) 왕자이다. 그는 “이번 임명이 무슨 의미인지 왕가의 설명이 필요하고 이러한 결정이 (나이프 왕자가) 차기 왕세제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왕실충성위원회에서 승계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개혁파 VS. 보수파
이러한 의견에 대해 사우디 왕가는 일체의 공식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탈랄 왕자는 승계가 전적으로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왕정과 종교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개혁파에 속한다. 반면 나이프 왕자는 여성 참정권 부여, 지방의회 선거 실시 등에 반대하는 보수파다.
나이프 왕자의 제2부총리 지명은 현 왕가 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밀실(密室) 협의에 따른 결과라는 후문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거명되지 않았고, 탈랄 왕자가 포함되었는지의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압둘라 국왕이 만든 왕실충성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것일까? 아니면 압둘라 국왕 사후 왕실충성위원회가 나이프를 왕세제로 승인하는 역할을 하게 될까? 통치기본법, 왕실충성위원회법 등 왕위 승계에 관한 법조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려가 끊이지 않는 것은 나이프 부총리 임명에서 볼 수 있듯 그동안 법조문보다 관습에 우선해 특별한 공식적 절차나 설명 없이 왕가의 승계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왕위승계를 두고 왕이 먼저 죽을 경우, 또는 왕세제가 먼저 죽을 경우, 또는 두 사람 다 공직 수행이 어려울 경우 등 복잡한 경우의 수를 상정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나이프 왕자가 별안간 제2부총리로 지명된 것 때문만은 아니다. 국왕과 왕세제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고, 비록 나이프 왕자는 두 사람보다 나이가 적지만 그도 80을 앞둔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위계승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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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둘라 현 사우디 국왕의 뒤를 이을 술탄 왕세제. 올해 87세로 암투병 중이다. |
첫째, 압둘라 국왕보다 술탄 왕세제가 먼저 죽을 경우, 압둘라 국왕은 이복형들로부터 나이프를 왕세제로 지명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두 사람 모두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동반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압둘라 국왕이 죽으면 나이프가 왕이 된다.
둘째, 압둘라 국왕이 술탄 왕세제보다 먼저 죽을 경우,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술탄이 왕위에 오른 후 동복동생인 나이프를 왕세제로 책봉할 것이고, 나이프가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다.
셋째, 압둘라 왕과 술탄 왕세제가 건강이 악화되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이론적이라면 왕실충성위원회가 5명으로 구성된 과도정(過渡政) 위원회를 구성해 임시로 왕국을 통치하다가 왕실충성위원회가 왕을 선출한다. 이 경우 위원회는 나이프를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나이프는 쿠데타를 불사하며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여 나이프가 왕위에 오른다면 그는 동복동생 살만 왕자를 왕세제로 임명할 것이다.
넷째, 국부의 아들 중 젊은 아들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일 경우, 75세의 살만 왕자가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나이프도 동복동생인 그에게 양보할 것이다. 나이를 고려한다면 최적의 후보자는 68세의 정보부장 무크린 왕자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예멘 출신이라서 국왕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국부의 아들들이 다음 세대로 왕권을 넘길 가능성인데, 이 경우 압둘라 국왕, 술탄 왕세제, 나이프 왕자, 살만 왕자 등의 아들들이 물망에 오르내린다.
왕위 승계와 관련하여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형제 왕자들 간의 경쟁구도이다. 압둘라 국왕은 동복 형제가 없는 관계로 아들들이 유일한 혈육이며 지지세력이다. 이복형 전임 파이살 국왕의 아들들과 연합하지 않으면 막강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이른바 수다이리파(派) 형제들을 제어할 수 없다. 수다이리는 국부 압둘아지즈의 8번째 아내 하사 빈트 아흐마드가 속한 씨족 이름이다. 전임 국왕 파드, 현 왕세제 술탄, 압둘라흐만 국방차관, 나이프 제2부총리 겸 내무장관, 카이로에 거주하고 있는 투르키, 리야드 주지사 살만, 아흐마드 내무차관 등 하사가 낳은 7명의 아들을 수다이리파라 부른다. 파드는 세상을 떠났지만 나머지 6명의 동생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이들의 아들들도 정부 요직에 있다. 압둘라 국왕이 왕실충성위원회를 만든 것은 이들 수다이리 형제들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다. 위원회에서 이들은 35표 중 7표밖에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가는 연대의식을 발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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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 왕위계승 서열 3위인 나이프 왕자도 올해 나이 78세의 노인이다. |
압둘라 국왕과 수다이리 형제들 간 알력의 예는 적잖다. 파드 전 국왕은 왕세제 당시 압둘라가 제2부총리가 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고, 1992년 통치기본법을 만들었을 때 ‘왕세제 임명과 해임은 왕의 권한’이라는 문구를 넣어 압둘라 당시 왕세제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사우디 왕가는 이처럼 속으로 서로 불편해해도 왕가의 평온을 깨지 않기 위해 조용히 갈등을 무마하면서 원만하게 왕위 승계작업을 해나갈지도 모른다.
중세(中世) 최고의 역사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추앙받는 이븐 칼둔(1332~1406년)은 한 정권의 흥망성쇠를 아사비야(연대의식)라는 말로 꿰뚫어보았다. “강력한 연대(連帶)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정권을 만들고 유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대의식이 약해지면서 더 강렬한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정권을 내준다”는 것이다.
사우디 왕가가 연대의식을 발휘하여 승계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왕가의 안정을 확립할지, 아니면 수다이리 형제들이 연대의식으로 뭉쳐 경쟁자를 물리치고 집권할지, 아니면 왕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연대의식이 와해되어 자체붕괴할지, 아니면 강력한 연대의식을 지닌 새로운 젊은이들의 힘에 의해 변화의 바람에 직면할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