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 칭화 100주년 기념식 행사

오늘은 톈안먼도 칭화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 글 : 유형석 칭화대학 인문사회과학원 중문학 석사 졸업(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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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4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수도 베이징의 중심부인 인민대회당은 축하의 물결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평소 중국의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전국대표들이 모이는 장소인 인민대회당. 오늘 하루만은 노랑머리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칭화대학 졸업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칭화대학의 개교 100주년을 축하하는 장소로 바뀐 것이다.
 
  개교 100주년 행사가 열리기 전인 4월 22일 저녁 유학생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만찬이 있었다. 각국에서 80여 명의 손님이 모처럼 모교를 방문했다. 다들 남다른 감회가 있는 듯 이전 기억을 더듬으며 모교의 발전상을 보며 감격에 겨워 했다.
 
  뉴스를 통해서만 보던 낯익은 인민대회당. 그 인민대회당이 칭화대학 동문들을 위해 오늘 하루만은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인파 사이로 속속 도착하는 의전차량의 규모에 놀라 중국정부 주최의 행사로 착각할 정도였다.
 
 
  후진타오 입장
 
  늘 CCTV에서 보던 인민대회당이라 낯설지 않았다. 원래 연단은 중국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중앙에 그려져 있고 오성홍기 좌우로 중국공산당 표시가 있었다. 연단에 마련된 좌석에는 국가주석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자리했었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 내부의 모습은 ‘혹시 내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칭화대학의 공간이었다. 행사장 중앙 벽면을 차지하던 오성홍기의 자리에는 칭화대학 마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공산당 표시가 있던 자리에는 좌우로 1911과 2011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상단부 커다란 현수막에는 “경축 칭화대학 개교 100주년 대회”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히 우리로 치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인데, 대학 행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칭화대학만을 위한 자리로 변해 있었다. 만약 천장에 달린 붉은 별 모양의 등마저 없었다면, 난 여기가 인민대회당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인민대회당의 새로운 디자인은 시작에 불과했다. 예고편 없는 감동이 훨씬 기쁨을 배가한다고 하지 않는가? 중국의 CC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10시 정각에 시작된 행사에서 단상에 마련된 자리에 앉을 사람들을 한 사람씩 소개할 때 귀를 의심했다. 사회자가 첫 번째 사람을 호명했다. “국가주석 후진타오.” 장내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후진타오 주석을 환영했다.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인 20일 후진타오 주석이 모교인 칭화대를 방문했다는 중국뉴스를 이미 들었던 터라 메인행사에 “교우” 신분으로 참석할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칭화대의 힘
 
칭화대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 받은 칭화대 한국 동문회 간부들. 왼쪽 첫번째가 필자. 최낙섭 베이징지회장(왼쪽 세번째), 박승찬 총동문회장(왼쪽 여섯번째).

  사회자는 이어서 주요 인사들을 한 사람씩 소개했다. “전인대 상무위원장 우방궈”, “총리 원자바오”, “정협 주석 자칭린”, “국가부주석 시진핑”, “부총리 리커창” 등등. 한 사람씩 소개될 때마다 장내는 행사의 열기가 더해 갔다. 대학교 기념식에 중국공산당 권력서열 1~7위가 한 명을 빼고 전원 참석한 것에 다들 말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낀 표정이었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을 수 있는 힘은 이 중국에서도 오직 ‘칭화대’만 가지는 것이니까.
 
  칭화대 100주년 기념식 행사는 후진타오 주석의 축사를 끝으로 1시간30분의 행사가 끝났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사진으로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민대회당을 나서는 순간 또 다른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이 톈안먼 일대의 교통을 통제한 가운데 행사참석자를 싣고 온 대형 버스들이 톈안먼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늘은 톈안먼도 칭화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비록 중국의 국가주석이 나온 최고 명문대학이라고 하지만, 한 대학의 100주년 기념식이 마치 국가 행사인 것처럼 성대하게 치러진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정부가 대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메시지가 무엇이었든 메시지의 중심에는 칭화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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