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原電 안전실태 총점검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9의 지진과 십수 미터 높이의 유례없는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해 진앙(震央) 인근 해안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 원전(原電)으로의 전력공급이 완전 차단되고, 이러한 정전에 대처하기 위해 구비된 비상발전기와 안전설비들까지 침수돼 기능 하지 못함으로써 세계 원자력 이용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사고로 전개됐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한 사고등급 기준의 최고단계인 7등급 사고로 공식 평가됐고, 이전까지는 1986년 구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유일하게 7등급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아직도 완전히 수습되지 않아 원자로 내부의 피해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지진 발생 당시에 가동 중이던 1, 2, 3호기에서는 원자로 내의 핵연료가 일부 녹았거나 손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방정비를 위해 원자로 내의 핵연료를 모두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로 옮겨두었던 4호기에서도 저장수조 내의 핵연료가 일부 손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극한적 시나리오들이 현실화

이번 사고는 그동안 발생가능성이 극히 희박해 따로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던 ‘극한적’ 시나리오들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세계 원자력계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로 인해 체르노빌 사고 이후 20년 이상 지속된 원자력의 암흑기(暗黑期)가 다시 도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존의 기본 가정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드러난 취약점에 대해 근원적인 보완조치를 하지 않으면 원전사업 추진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원전 안전성에 대해 국제사회에 던진 현안으로는 ▲극한 자연재해에 대한 대처능력 ▲비상전력공급의 신뢰성 ▲사용후 핵연료 저장의 안전성 ▲사고대응체계 ▲장기가동 원전의 안전성 ▲주변국과의 조기통보, 지원 및 협조체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세계 공통의 화두에 직면해 거의 대부분의 원전 운영국들은 자국에서 가동되는 원전에 대한 안전점검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3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국내 원자력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기로 의결하고, 3월 23일부터 4월 말까지 1개월 이상에 걸쳐 1차적인 점검을 실시했다. 특별히 점검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점검팀이 구성됐다.

산업계, 학계, 연구계의 분야별 전문가 37명과 원자력 안전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검사원 37명이 점검팀에 합류했고, 현안 또는 시설특성에 따라 6개의 분야로 팀을 나눠 가동원전 21기 전체와 연구용 원자로와 핵연료 가공시설까지 모두 점검했다. 특히 20년 이상 가동 중인 장기가동 원전에 대해서는 주요 구조물과 기기(器機)의 건전성 여부를 보다 면밀하게 점검했다.

극한 자연재해 대처능력: 비상발전기 침수에 대비해 방수벽과 방수문 보강해야

IAEA 아마노 유키야 사무총장이 지난 4월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원자력발전소 안전 관련 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내 원전은 지질 및 지진 조사를 통해 해당 부지에서의 최대 지진력(지반가속도)을 산출하고, 그보다 큰 지진력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설계기준이 되는 지반가속도는 모두 0.2g(지반이 중력가속도의 20%의 힘을 받음을 뜻함)이고, 리히터 규모로 환산하면 약 6.5를 적용했으며, 수출형 원전인 APR 1400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지진발생 가능성이 높은 나라들을 겨냥해 그보다 강화된 0.3g를 적용하고 있다. 참고로 규모 9.0의 이번 동일본 지진 발생 당시, 진앙과 가장 가까운 울진 원전 부지에서 계측된 지반가속도가 0.0006g 수준이었으므로, 일본 열도를 따라 위치한 지진대에서 이번과 유사하거나 또는 더 큰 규모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국내 원전은 안전할 것으로 평가됐다.

지진해일 역시, 과거 발생하였거나 향후 예측되는 최대의 지진해일 높이를 고려해 이보다 충분히 높은 곳에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부지에서 예측되는 지진해일 높이는 1~3m 정도이지만, 고리원전이 7.5m 고도에 위치하는 것을 비롯해, 대부분 10m 내외의 높은 부지에 건설돼 있어 안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에 밀려온 15m 높이의 지진해일이 과거 예측치를 상회한 점을 감안해, 비상발전기 등 침수(浸水)에 취약한 주요 설비에 방수벽과 방수문을 보강함으로써 만일의 경우에도 정상가동이 보장되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비상전원의 신뢰성: 디젤발전기 건물의 방수능력 보강 필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초기원인은 지진과 그에 따른 지진해일이었지만, 사고가 오랫동안 수습되지 못하고 핵연료 손상과 대규모의 방사선 누출로까지 전개된 것은 전력공급원이 모두 파손되고 장기간 회복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이번 사고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도 비상전원을 확보하는 것이 원전 안전성에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국내 원전의 경우, 외부전원이 상실될 경우를 대비해 각 호기 별로 비상디젤발전기가 2대씩 설치돼 있으며, 비상디젤발전기까지 작동이 안 될 경우를 상정해 원전부지별로 1~2대의 보조디젤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을 반영해 디젤발전기 건물의 방수능력 보강 및 대형발전차량과 같은 이동형 대체전력수단을 예비로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의 안전성: 중대사고 관리매뉴얼에 포함해 관리해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 안전문제의 초점이 원자로 시설뿐만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까지 확대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내 원전의 경우 원자로 내의 핵연료봉이 손상되는 사고발생에 대비해 이미 각 호기별로 ‘중대사고 관리매뉴얼’이 수립돼 있지만, 향후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 내의 핵연료봉이 손상되는 사고발생 시나리오까지 사고관리 매뉴얼에 반영시킬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저장수조를 냉각하는 필수설비인 펌프 보관실에 대한 방수대책을 강구해 극한 규모의 지진해일 발생에 대비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초대형 지진 등으로 사용후 핵연료 냉각수조에 담긴 냉각수의 일부가 범람할 경우도 고려해 냉각수 외부유출 방지대책을 마련할 필요성도 함께 검토돼야 할 것이다.

사고대응 체계: 국내 원전 사고 대응매뉴얼을 주변국 사고대응 매뉴얼로 확대해야

일본 정부와 원전사업자인 도쿄전력(東京電力)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많은 지적이 제기됐다. 여러 호기가 동시에 사고에 처한 상황 등의 일부 극한적 상황에 대한 대응매뉴얼이 없어 문제가 됐고, 긴급복구작업 투입 등에서는 너무 매뉴얼에 얽매여서 적기에 유연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이 지적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비상대응 체계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동일 부지에 위치한 다수의 원자로가 동시에 사고를 겪는 시나리오를 비상 대응매뉴얼에 보완하고, 긴급 상황에서 보수요원을 복구작업에 투입하는 절차도 사전에 확립해 두어야 적기(適期)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대사고 상황에서 고(高)방사선구역 안의 설비 복구작업에 투입되는 작업자들은 평상시 원전을 운영하는 발전회사 직원들이 아닌 정비용역업체 요원들인 점을 감안해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방사선 방재훈련에 정비요원들이 참여할 필요성도 대두됐다.

한편, 비록 이웃 국가에서 발생한 사고일지라도 방사선 영향이 국내에 미칠 수 있음을 감안해, 주변국 사고시 대응매뉴얼로 보다 실효성 있게 보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현재의 방사선 비상 대응계획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를 전제로 짜여 있기 때문에, 주변국 사고시 국가 간 정보교환, 공조 및 협력방안까지 포괄하는 주변국 사고 대응매뉴얼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됐다. 만일 수십 기(基)의 원전을 황해(서해) 연안에 건설·운영 중인 중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유출 방사성 물질이 단시간 내에 우리나라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해, 시급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기가동 원전의 안전성: 20년 이상 장기가동 원전 특별 점검 실시

이번에 사고를 겪은 후쿠시마 원전이 30~40년 이상 장기가동한 원전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국내에서 20년 이상 장기가동 중인 9기의 원전 구조 및 설비 안전성에 대해 특별히 중점적으로 점검했다. 국내에서 맨 처음 가동을 시작한 고리 1호기의 경우, 30년 가동기간 이후의 연장운전 승인과정에서 안전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성능이 저하된 주요 설비들을 교체하거나 보강했었다. 예를 들어, 일찍이 증기발생기는 새것으로 교체된 상황이었고, 계측 및 제어시스템도 현대화된 디지털 장비로 교체했다. 두 번째로 오래 가동한 월성 1호기의 경우, 현재 원자로 압력관을 신품(新品)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 모든 가동 중 원전에 대해서도 국제원자력기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10년 단위로 주기적 안전평가를 실시해, 각종 구조물과 설비의 성능저하 여부를 확인하고 그 사이 변화된 규제기준과 연구결과 등을 참조해 안전수준을 종합적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주변국과의 협조체제: IAEA협약 토대로 동북아 지역 공조체제 강화 필요성

평상시의 원전 운영은 해당국가의 책임과 관할하에서 관리되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원칙이지만, 방사선이 누출되는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국경을 초월해 다른 나라에 폭넓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공조시스템이 요구된다. 특히 일정 한도 내에서는 주변국의 개입도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대두돼 그 이후 국제원자력기구 주도하에 ‘원자력사고 조기통보협약’과 ‘상호원조협약’으로 각각 성립됐지만, 이들 협약 발효 이후 최초 적용사례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사고를 통해서 그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볼 때, 한-일, 한-중 등의 양자 간 공조체제 구축을 토대로 해, 더 나아가 한-중-일 3국 간 공조체제, 북한과 러시아 극동지역까지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공조체제로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고 발생 시 주변 국가에 조기 통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IT 기술을 적극 활용해 각국 환경방사능 감시망을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방사성 물질의 확산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각국이 필요한 대응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협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기적인 합동훈련을 통해 유사시 국가 간 공조시스템이 실효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국가 간 공조체제 구축작업은 지정학적으로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우수한 IT인프라를 보유한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되며, 향후 다양한 양자 간 및 다자간 회의를 통해 구체화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향후 원전 안전에 관한 논의전개 전망: 최고 수준의 안전설비가 채택된 제3세대 원전만 건설 가능

국내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기준에 부합하도록 설계, 건설 및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원전에 적용하는 안전기준 자체의 상향조정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개별 국가들이 판단하기보다 국제적인 논의를 통해 장기과제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의 안전기준을 재검토하기 위한 국제적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금년도 G20 의장국인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5월에 주요 20개국 원자력 규제당국자 회의를 파리에서 개최해 원전 안전목표의 상향 조정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또한 일본 출신인 아마노 유키야(天野之)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도 오는 6월 원자력 안전에 관한 특별회의 소집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안전기준의 상향 조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 경우에는 최고 수준의 안전설비가 채택된 이른바 제3세대 원전만이 추가로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전원 공급이 없어도 중력이나 자연대류 등 자연현상에 의해 안전성이 담보되는 제4세대 원전의 개발도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