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일본 原電 안전관리 首長의 시각

지난 3월 따스한 봄날, 부모님의 묘소를 돌아보려 교토(京都)에 갔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도호쿠(東北)·간토(關東)지역에서 미증유(未曾有)의 대형 지진이 발생해 신칸센(新幹線) 운행이 중지되고 있다’는 구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3·11 대지진에 이어 발생한 쓰나미(津波)로 1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행방불명자도 2만명을 넘고 있다. 1995년 64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140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낸 한신(阪神)대지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력 종사자들은 이번 3·11 대지진을 가리켜 “상상조차 못한 지진과 쓰나미”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진에는 견딘 原電, 쓰나미엔 束手無策

일본 원전(原電) 관계자들은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의 지진이나 쓰나미 데이터를 수집해 대응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내 6기의 원전은 진도 8, 쓰나미 파고(波高) 6.4m를 충분히 견딜 만큼 대비가 돼 있었다. 진도 9의 지진이 왔더라도 내진(耐震)에 관한 한 여유가 있었고, 원자로는 긴급정지했다.

원자로가 ‘긴급정지’하자 원전 관계자들은 (안심한 나머지) 안전에 대비하는 요구수준을 완화했고,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정도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수로(輕水爐) 안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로의 냉각기능에 이상이 발생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원자로가 긴급정지하자 원자로를 냉각하는 비상용 냉각장치 계통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초 지진 발생 50분 후 몰아닥친 파고 14m의 쓰나미는 방호벽을 뛰어넘어 원전을 강타했다. 안전확보에 필요한 전원(電源)이나 각종 설비들은 물에 잠겨 버리거나 파손되고 말았다.

운전 중인 원자로의 비상용 전원이 전부 상실됐던 것이다. 원자로가 멈춘 직후 원자로 중심부의 방사성물질 붕괴로 발생한 열(崩壞熱)을 외부로 빼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비상용 냉각계통이 작동하지 않았고, 원자로 냉각장치를 작동시킬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원자로 4基가 동시에 사고 일으키면 대응 어려워

지난 3월17일 자위대 시누크 헬기가 후쿠시마 원전 냉각을 위해 인근 해안에서 물을 퍼나르고 있다.

‘지진해일’을 뜻하는 일본말 쓰나미(津波)를 영어에서 채용해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다. 일본 원전 관계자들은 거대한 쓰나미에 대응이 필요했음에도 불구, 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정기검사 중인 후쿠시마 원전 3기는 정지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인 수조(水槽)에서 핵연료봉을 꺼낼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던 점이다. 예상대로 발열량(發熱量)이 큰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봉 저장조에서 냉각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6기의 원자로 가운데 4기가 안전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원전사고는 ‘쓰나미’가 원인이었다. 4기의 사고유형은 닮은꼴이었지만, 각각의 원전은 서로 다른 사고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사고관리(Accident Management)가 단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기의 원자로가 동시에 사고를 일으킬 때, 그 대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사고를 마무리하기 위해 뛰어든 원전 기술자들의 투혼(鬪魂)은 높이 살 만하다.

사고관리라는 측면에서 냉정하게 말하면, 처음으로 경험하는 미증유의 사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상사태 때 작동하게 돼 있는 기기(器機)들이 제 기능을 하지 않은 것을 보고서야,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만전을 기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일 것이다.

지금껏 일본은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소련의 체르노빌, 1999년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의 핵연료회사 JCO에서 발생한 임계사고(작업원 2명 피폭으로 사망)를 사고관리의 교훈으로 생각해 왔었다.

6만t에 달하는 방사능 汚染水 발생

비상용 전원공급 장치가 작동하지 않자, 원자로 중심부에서 발생한 붕괴열 제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원자로나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에 있는 핵연료봉이 뜨거워졌고, 지르코늄과 물이 반응하면서 수소가 발생했다. 물이 방사선분해(radiolysis)하면서 수소가 생겨났고, 핵분열에 따른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수소가 폭발하고 말았다. 수증기 폭발도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급격하게 수소가 타면서 원자로 격납시설의 파괴를 가져왔고 응축풀(suppression pool·원자로 노심의 증기를 응축시켜 압력을 낮추는 안전계통)이 고압(高壓)으로 파손됐다. 특히 응축풀은 격납계통의 안전에 결정적인 기기로, 이것이 파손되면서 방사성물질의 차단에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시켰던 것이다.

응축풀이 고압으로 파손되자, 시급하게 원자로 노심을 냉각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노심 핵연료가 갖고 있는 방사성물질을 가둬 두기 위해 서둘러 냉각을 해야 했다. 후쿠시마 원전 관계자들은 경수로 안전의 핵심이 ‘냉각’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핵연료봉을 적절하게 냉각시키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냉각수가 없는 상태에서 연료봉이 과열로 파손되는 바람에 노심(爐心)이 손상을 입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70%가 노심손상을 입었고, 2호기는 30%, 3호기는 25%를 손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비상용 전원을 사용할 수 없자 원전 냉각은 오로지 펌프카를 동원해 바닷물을 끌어들여 냉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위대(自衛隊)나 소방대원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바닷물을 대량으로 끌어들여 원자로를 식힐 수 있었다. 그 결과, 과열되던 원자로는 기세가 꺾여 갔다. 표면온도가 100℃(2호기는 128℃) 이하로 유지됐다. 한편, 외부전원을 확보하는 작업도 시작됐다. 하지만 사고 후 열흘이 지나면서 겨우 전원복구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바닷물 등의 대량주입은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6만t에 달하는 오염수(汚染水)를 발생시켰고, 그 처리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원전사고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스리마일 사고와의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일본·미국·한국 등이 운전 중인 원전은 모두 경수로(輕水爐)로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전 관계자들은 ‘정지’ ‘냉각’ ‘방사성물질 외부누출 차단’이라는 3가지 기능을 명심했어야 했다. 이번 사태도 ‘정지’는 성공했으나, 경수로의 핵심부분인 노심을 ‘냉각’하는 기능조절은 실패했다고 본다.

체르노빌 原電 사고보다 심각하지 않아

필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언론들로부터 취재요청을 줄곧 받았다. 가급적 이해하기 쉽게 이번 사태의 진상을 전하고, 불필요한 불안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사고의 전모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단계에서 원자로 노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를 말하는 것은 무리다. 필자는 다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선, 방사성물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체르노빌의 그것과는 다르다. 필자는 도쿄가 긴급피난을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번 원전사고는 정말 유감이다. 방사선, 방사성물질이 누출돼 주변지역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안전지역으로 피난하라거나 집안에서 생활하라고 권하고 있다. 도쿄전력(東京電力)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로부터 반경 20km 지역까지 피난지역으로 설정했고, 20~30km까지는 주택내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사선의 영향으로부터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방사능 피폭(被爆) 불안 이외에도 일본 국민들은 생필품(生必品)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수많은 주민은 관공서 볼일과 생필품 구입을 위해 현외(縣外)까지 드나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독일, 프랑스, 미국 등 각국 대사관들은 일본에 체류하는 자국민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비상연락망을 가동했고, 방사선 피해가 없는 간사이(關西) 지방으로 이동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전세기편으로 귀국시키려고까지 하고 있다. 만일 외국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했다면 일본대사관도 비슷한 조치를 할 것이기 때문에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일본 정부는 방사성물질이 함유돼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근 출하한 농산물, 예컨대 시금치 가운데는 방사성물질인 요오드가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 이 기준치는 별안간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수치는 아니다. 우유나 야채로부터 발단이 된 음식물 섭취제한에 관한 규제조치들은 점차 확대됐고, 까나리까지도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규제값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이 정도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원전사고가 종결된 후에 논의되어져야 할 것이다.

안전지침 대폭 강화해 轉禍爲福 계기 삼아야

지난 3월20일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 지역에서 구호품을 든 딸이 엄마와 함께 걷고 있다.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사고 때, 미국 정부는 안전지침 등 54개 항목에서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개선했다.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안전관리 지침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고종결 후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련기관에서 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대규모 쓰나미가 1000년 전에도 발생했다는 ‘뉴스’는 안전기준 개정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중요한 ‘팩트’들일 것이다.

원자로나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의 내진성(耐震性), 쓰나미에 대응하는 내성(耐性), 과열된 원자로 노심의 열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원전 각 계통의 독립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등을 안전지침 개정에 전부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문명(文明)의 전환기에 있다. 인류가 불을 제어하고 정착생활에 들어가면서부터 ‘화학반응’에 뿌리를 둔 문명을 향유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특히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이후 인류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다. X-레이 발견 이래 ‘핵반응’이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다. 원전이 그 대표적 사례다.

원전은 자원확보와 환경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번 사고로 무엇을 잃었을까. 그것을 충분히 분석하고 개선하는 것에 따라 이번 사고의 교훈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글을 읽는 경애하는 한국 국민들에게 “전화위복(災いじて福となす)”이라는 속담을 필자의 결의로 보내며 끝을 맺는다.⊙

<번역=吳東龍月刊朝鮮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