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20kg 소방장비 입고 계단 오르니 금방 땀범벅
⊙ “현장에 투입되면 ‘무조건 구하자’ 이 생각만”(현대봉 소방장/구조 2팀)
⊙ “진입로 없어 화재 진압 어려우면 ‘벽 부수고라도’ 들어간다”(박준화 소방장/화재진압 2팀)
⊙ “의료대란이라 할지언정… 어떻게든 골든타임 내 환자 이송”(박준호 소방교/구급 2팀)
⊙ 한국 소방 역량, 미국 소방에도 뒤지지 않아. 이제 필요한 것은 ‘예산과 인력’
⊙ “얘들아, 가정보다 더 행복한 직장 만들어보자”(이동헌 소방경/지휘 3 팀)
⊙ “현장에 투입되면 ‘무조건 구하자’ 이 생각만”(현대봉 소방장/구조 2팀)
⊙ “진입로 없어 화재 진압 어려우면 ‘벽 부수고라도’ 들어간다”(박준화 소방장/화재진압 2팀)
⊙ “의료대란이라 할지언정… 어떻게든 골든타임 내 환자 이송”(박준호 소방교/구급 2팀)
⊙ 한국 소방 역량, 미국 소방에도 뒤지지 않아. 이제 필요한 것은 ‘예산과 인력’
⊙ “얘들아, 가정보다 더 행복한 직장 만들어보자”(이동헌 소방경/지휘 3 팀)
- 기자가 직접 방화복 세트를 입고 공기호흡기를 멘 상태로 소방서 6층까지 올라갔다. 오른쪽 사진은 화재 현장에서 ‘구조대’와 ‘화재진압대’에게 편제된 장비를 모아둔 사진이다. 사진=백재호 기자
“성동구로 이사 오고 싶네요.”
기자가 지난 1월 26일부터 27일까지, 2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소방관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날씨는 꽤 추웠지만 소방관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춥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기자가 소방서 취재를 희망했던 이유는 지난 12월 4일에 개봉한 영화 〈소방관〉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은 ‘홍제동 방화사건(2001)’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관객들은 “소방관만큼 헌신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 어디 있느냐”며 “단순 재미로 본 게 아니라 소방관들을 위해 봤다”고 하기도 했다. 기자도 소방관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과연 그들의 하루는 어떨까. 본격적인 설 연휴를 앞두고 ‘일상 속 영웅’이라 불리는 소방관들을 만나기 위해 성동소방서로 향했다.
20kg 넘는 소방장비
기자는 방화복을 직접 입어보고 싶었다. ‘방화복이 군 전투복과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하며 ‘신속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가졌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훨씬 더 무겁고, 두껍고, 뻑뻑했다. 하의를 입고 방수장화도 신으니 방수장화에 하의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졌다. 상의를 입자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얹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어 화재 간 연기 흡입을 방지하는 두건을 착용하고 공기호흡기를 고정하는 등지게도 멨다. 공기호흡기와 연결된 면체(공기호흡 마스크)도 착용했다. 또 방화장갑을 착용하고 각 대원 및 현장 지휘팀과 소통하는 무전기 2개와 손전등 1개, 열화상 카메라까지 상의에 부착한 후 마지막으로 헬멧까지 쓰니 ‘이러고 사람을 어떻게 구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방화복을 입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기자의 생각이 망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기자를 보며 주변 화재 진압대원들은 껄껄 웃으며 “어때요 무겁죠”라며 “이제 계단도 올라가 보라”고 했다. 오기가 생겨 소방서의 꼭대기인 6층까지 최대한 힘껏 오르고 내려왔다. 면체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올라갔음에도 숨이 가빴다. 내려갈 때는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렸다. 계단을 오르내린 후 구조 3팀 이태영(李泰泳·33) 소방교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 생각보다 꽤 힘든데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화재 현장의 경우 ‘화재 진압대원’은 소방호스도 함께 들고 가야 합니다. 소방호스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40mm(옥내 소화전), 50mm(건물 내부, 소방차용), 65mm(소방차와 소화전 연결용), 75mm(대형 화재 진압용) 규격이 있죠. 또 ‘구조대원’의 경우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해야 하니 실제 현장 소방대원들이 견뎌야 할 무게는 지금 입고 있는 소방장비보다 훨씬 더 무거운 셈입니다.”
“물 채운 호스는 최대 70kg”
― 호스 자체의 무게는 어떤가요.
“규격에 따라 다 다르지만 물을 채우지 않은 상태의 경우 보통 5~15kg 정도입니다. 하지만 물을 채운 상태라면 최소 25kg에서 최대 70kg까지 나갑니다.”
― 물 채운 소방호스를 혼자 들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수압에 따라 다릅니다. 옥내 소화전은 개인 운용이 가능합니다. 일반 시민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고요. 하지만 소방차용 호스(50mm 이상)부터는 최소 2인이 동원됩니다. 혼자 들 수 없기 때문이죠. 특히 대형 화재의 경우 별도의 호스(75mm)도 동원되는데 수압 등을 원활히 통제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3명의 화재 진압대원이 동원됩니다.”
― 인명 구조도 팀워크 아닙니까.
“맞습니다. 인명 구조의 경우 구조대원 1명이 전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보통 효율적인 구조를 위해 3~4인이 한 개 조로 움직입니다.”
― 출동 현장에 따라 복장도 변화가 클 거 같은데요.
“항상 이렇게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출동하는 건 아닙니다. 화재 현장이 아니라면 꼭 방화복을 입을 필요가 없지요. 다만 ‘화재의 위험이 있거나 예상되는 출동지’라면 반드시 방화복을 입고 출동합니다.”
방화장비를 벗고 다시 본 소방대원들은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땀 빼느라 고생했다”며 기자를 격려하기도 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쾌활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방서의 경우 보통 ‘구조대’ ‘화재진압대’ ‘구급대’와 이를 현장에서 지휘하는 ‘지휘팀’이 모여 하나의 ‘현장대응단’이 구성된다. 그렇다면 분야별 현장 근무자들의 일상은 어떨까.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자랑”
지난 1월 26일 오전, 구조 2팀 현대봉(玄大奉·41) 소방장을 만났다. 그는 특전사 중사 출신으로 ‘구조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지난 2013년부터 소방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구조 분야의 베테랑이다. 구조 업무에 대한 그의 얘기다.
― 구조 경력만 12년인데 이유가 있나요.
“생명 그 자체를 구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랄까요? 이런 감정이다 보니 자연스레 구조 업무에 열중하게 됐습니다. 구조대는 활용 장비가 많습니다. 대략 700종이 넘죠. 그만큼 상황이 각기 다른 현장을 만난다는 방증인데, 순간순간 ‘어떻게 하면 구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따르고, 결국 구조해 내는 게 구조 업무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을 구조할 때도 많아요.”
“구조대의 경우 모든 장비 들고 출동”
― 구조팀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소방서의 경우 평균적으로 3개의 구조팀이 있고 각 팀당 보통 7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 출동 시에는 구조대장을 포함한 구조대원 6명이 함께 출동합니다. 이때 ‘구조운반차’와 ‘구조공작차’로 나눠 출동하는데, 구조운반차에는 구조 시 필요한 각종 장비와 함께 구조대원들이 탑승하고, 구조공작차에는 유압 절단기, 유압 리프트, 에어매트 등 대형 장비를 싣습니다.”
― 구조 업무 간 가장 힘드셨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꽤 많죠. 한 번은 출동하는데 화재 현장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방화복을 입지 않았는데 사고 현장 건물로 가 보니 화재인 거예요. 심지어 건물에 들어가서야 알았죠. 당시 제 위치가 건물 7층이었는데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와 곧바로 방화복을 입고 죽어라 뛰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어요. 내부에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무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면 ‘무조건 구하자’는 생각만 듭니다.”
―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신고 내용과 다를 때도 있는 거군요.
“그래서 구조대의 경우 모든 장비를 들고 출동합니다. 상황이 현장에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현장에서 대응하기 수월해요.”
― 구조대는 교통사고 현장에도 투입되지 않나요.
“맞아요. 한 번은 올림픽대교 남단 아산병원 쪽에서 교통사고가 좀 크게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차량에는 아기와 부모님이 타고 있었는데 아기는 차량 내부에 있고 부모님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들은 상황이었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아기 부모님들이 다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구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저도 두 아이의 아빠인지라 정말 필사적으로 구조하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어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 자녀분들이 항상 자랑스러워할 것 같습니다.
“그럼요. 아이들이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더라고요. 물론 직업상 위험한 현장에 직접 투입되다 보니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방관들 장비가 많이 개선돼 그리 큰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물론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부족함을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8년 이상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면 좋을 것”
― 그래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꼽자면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소방공무원의 경우 한 소방서에서 최대 8년까지만 근무가 가능합니다. 8년이라고 하면 꽤 긴 시간입니다. 소방 업무는 기본적으로 팀 단위 업무입니다. 함께하는 시간도 길다 보니 제 옆에 있는 동료는 동료 이상의 의미입니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동료를 다른 소방서로 떠나보낼 때 아쉬움이 늘 큽니다. 한 소방서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주변 지리가 자연스레 숙지돼요. 하지만 다른 소방서로 가면 처음부터 외워야 합니다. 가정이 있는 소방관의 경우 거주환경이 아예 달라지는 점도 있고요. 개인이 희망한다면 8년 이상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보완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기자는 현대봉 소방장의 안내로 구조대 차량 내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출동해도 될 만큼 방화복을 비롯한 각종 장비가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상황에 따라 빨리 사용할 수 있게끔 장비 명칭도 함께 적혀 있었다. 구조 2팀의 막내인 최준엽(崔浚燁·30) 소방사의 “출동 시 바로 시동만 걸면 된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됐다. 기자가 인터뷰를 끝으로 구조 2팀 단체사진을 찍기를 희망하자 “(구조공작)차 밖으로 빼고 멋지게 찍어보자”며 포즈를 취했다.
전직 간호사가 보는 ‘의료대란’
작년부터 응급의료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가 병원 응급실에서 수용을 거부당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자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책임과 해법을 놓고 구급대원과 의사 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 구급대원이 환자 이송을 위해 40차례 이상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설 연휴를 앞둔 성동소방서의 상황은 어떨까.
구급 2팀의 박준호(朴俊浩·35/구급대장) 소방교를 만났다. 그는 간호사로 근무하다 ‘구급특채’로 2018년부터 소방공무원의 길을 걷고 있다. 전직 간호사였던 그가 생각하는 병원과 구급대의 입장이 궁금했다. 기자는 작년부터 이어진 ‘의료대란’부터 최근 구급대 업무의 고충까지 물어봤다.
― 여전히 환자 이송이 어렵다고 느낍니까.
“사실 이 부분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현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 어떻게 다른가요.
“그때는 의료대란이 아니었죠.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 상황이 심각했지 의료체계가 유지는 됐습니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을 어떻게 격리하고 치료할지가 핵심이었습니다.”
― 전직 간호사로서 병원의 입장도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해는 하는데, 시민 입장으로서는 의사가 환자를 받는 게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고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 1명이 응급환자 수십 명을 감당하는 게 아니라면 부담이 덜하죠. 이와 반대로 의사 1명이 응급환자 수십 명을 감당해야 한다면 말 그대로 받고 싶어도 못 받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설령 환자를 받아도 적절한 조치를 못 하게 되죠.”
― 지금도 ‘응급실 뺑뺑이’가 있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일부 지역에 응급환자가 몰릴 경우 환자 이송에 시간이 더 소요될 수는 있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에요. 구급대 입장에서는 의료대란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골든타임 내 환자를 이송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출동했지만 응급환자가 아닐 때도 있나요.
“구급대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죠. 하지만 응급 신고가 들어온 이상 저희는 당연히 출동을 합니다. ‘응급의 기준’은 저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급대 같은 경우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한국형 중증도 분류 체계)라는 시스템을 쓰고 있습니다. 총 5단계인데요, 최우선-고위험-경증-비응급 순으로 분류가 됩니다. 분류에 따라 환자 이송 병원(센터)이 달라지게 됩니다.”
식사조차 제때 먹기 힘든 구급대
― 응급환자가 상급의료기관만 선호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요.
“대개 그렇죠. 심리적인 이유인데, 단순 복통이나 발목 염좌 등은 1차 의료기관(동네병원) 등에서도 충분히 조치가 가능해요. 심각한 응급환자에 한해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는데, 응급 신고를 하는 환자의 경우 경증임에도 본인이 중증이라 착각해 상위병원을 희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환자가 몰리면 정작 상급병원으로 가야 하는 환자가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 관할 지역 내 응급환자가 다수 발생하면 상당히 힘들 것 같습니다.
“성동소방서의 경우 산하에 3개(성수, 왕십리, 금호)의 119 안전센터가 있습니다. 저희 본서에서 구급대가 출동한 상태라면 차순위로 가까운 왕십리 쪽 안전센터가 출동하게 됩니다. 업무상 공백은 크게 없습니다.”
시계를 보니 점심즈음이었다. 성동소방서 홍보 담당자인 김동아(金東雅·35) 소방교는 “구급대는 업무상 출동이 잦아 딱히 점심 식사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며 “응급 상황도 저희가 인터뷰 중인 걸 아는지 출동벨이 울리지 않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즉 구급대가 소방서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는 것이다.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하는 기자의 마음을 아는 듯 구급대원들은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며 기자를 구내식당으로 안내했다.
‘연휴’ 없는 현장대응단
기자는 김동아 소방교와 함께 식사했다. 그는 2019년 공채로 소방공무원의 길에 들어섰다. 김 소방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설 연휴를 앞두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순간 또 아차! 싶었다. 소방관(현장대응단)은 사실상 연휴가 없기 때문이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 소방관들은 연휴(주말)에도 항시 대기를 하나요.
“내근직의 경우 주말이나 휴일에 휴식이 가능하지만, 현장대응단은 요일이 아닌 당직제로 근무합니다. 당직근무 후 2일간의 휴식이 주어지죠.”
― 화재 진압, 구조, 구급팀이 각 3교대인 이유군요.
“그렇습니다. 3조 1교대를 해야 대원들 여건 보장이 됩니다.”
― 근무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오전 9시부터 그다음 날 9시까지입니다.”
― 휴가 가기에 애로사항은 없나요.
“출동 인원에 공백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본인 자리에 들어갈 대체 근무자를 매번 구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기자는 식사를 하며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비교적 빠르게 식사가 이뤄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자가 이유를 물으니 “식사 도중에 출동벨이 울리면 바로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과 무관하게 (밥을) 빨리 먹는 것이 평소 습관이 됐다”고 했다.
기자가 방문한 오전부터 점심때까지 출동벨이 울린 건 ‘1번’이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적다 생각할 수 있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 내 출동벨이 울린 것이었다. 언제 출동벨이 울릴지 모르니 덩달아 긴장이 됐다. 김 소방교의 “소방관들은 청각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다.
“워터실드(water-shield·분무 형태로 물을 발사하는 것) 치는 것이 특히 멋있습니다.”
화재진압 2팀에 속한 박준화(朴俊華·38) 소방장에게 기자가 한 말이다. 박 소방장도 특전사 출신의 12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 소방관이다. 그는 구조대와 내근직을 거쳐 지금은 화재진압 2팀으로 6개월째 근무 중이다. ‘구조 업무’와 ‘화재 진압 업무’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에게 관련 업무에 대해 폭넓게 물었다.
― 우선 화재 진압 후에 구조가 이뤄지는 건가요.
“시민들은 대부분 ‘불을 끄고 구조대가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구조대는 화재진압대와 동시에 운용됩니다. 자칫 골든타임을 넘길 수 있으니까요. 말 그대로 방화복을 입고 불 속으로 바로 뛰어들어갑니다.”
― 방화복은 어디까지 보호합니까.
“열감(熱感)을 고스란히 느끼니 말 그대로 완벽한 ‘방화(防火)’는 아닙니다. 불길을 어느 정도 막아낼 뿐이지 무한정 버틸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화재 진압대원들이 소방(消防) 활동을 통해 길을 열어주는 겁니다. 인명 구조와 화재 진압의 핵심은 ‘신속함’에 있습니다.”
― 화재진압대 구성도 궁금한데요.
“화재 진압대장 포함 6명입니다. 진압대의 경우 관창(管槍)수와 관창보조수 2명 총 3명이 호스를 듭니다. 이 외 인원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소방차량(펌프, 물탱크 차량) 작업을 지원하거나 관창을 2개 이상 운용해야 하는 경우 추가 배치되기도 합니다. 화재 현장에 따라 다 다르기에 정확한 임무 분담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 화재 진압 시 다량의 물을 전력(全力) 분사하는 것이 정석인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만 크게 ‘직사(stream) 형태’와 ‘분무(fog-spray) 형태’로 나뉩니다. 직사 형태 분사는 도달거리가 길고 수압이 강해 화재 초기나 원거리에서 불을 진압할 때 사용합니다. 분무 형태 분사는 무지개와 같이 물이 펼쳐지는 형태입니다. 건물 내부에서 연기와 유독가스의 차단을 목적으로 활용되죠. 분사 방법에 따른 별도의 세부 명칭도 있습니다만 직접적으로 불을 끄느냐, (연기, 유독가스, 화재 확장 위협 등을) 차단하느냐의 차이로 이해하면 됩니다.”
“공기호흡기, 1시간 이상 사용 어려워”
― 소방 작전 시 공기호흡기도 중요한 장비죠.
“그렇죠. 일반적인 호흡만 한다면 평균 50분 정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는 호흡이 가빠지죠. 작전 시 평균적으로 30~35분 정도가 한계라고 보면 됩니다. 산소 잔여 여부는 호흡기에 연결된 기기를 통해 항상 표시되고 면체(공기마스크) 내부에도 잔여량 표시가 뜹니다. 또 산소 부족 시 자체 진동으로 진압대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주죠. 산소가 떨어졌을 때 실시하는 ‘비상호흡법’도 있습니다. 작전 시 부득이한 상황이 닥쳤을 때 ‘비상호흡법’을 통해 시간을 벌고 있으면 동료가 새 공기호흡기를 가져다주는데, 이럴 때 팀워크가 빛을 발합니다.”
― 화재 진압이 어려운 경우도 있죠.
“밀폐된 공간은 화재 진압이 정말 어렵습니다. 내부 온도가 상당히 높거든요. 그러다 보니 장비를 갖춰 입어도 너무 뜨거워서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화재 현장의 경우 창문이나 문 등으로 진입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나은 상황입니다. 진입로가 마땅치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진입하는데 그래서 측면 벽을 부수고 들어가 화재 진압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 화재 시 시민들에게 요청하고픈 부분이 있습니까.
“화재 초기에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바로 대피하는 걸 권장합니다. 이때 화재 장소에 문이나 창문이 있다면 가급적 닫고 대피한다면 연기 등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발화점 발견과 화재 진압 간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희생자들, 절대 잊을 수 없죠”
박 소방장과의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다소 답하기 힘든 질문을 물었다. 바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실제 소방 임무 중 구하지 못한 생명을 마주한 소방관들이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 박 소방장에게 어떤 입장인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 화재 현장 인명 구조 간 우선순위가 있다면요.
“생존 확률이 높은 사람부터 구조합니다. 안타깝지만 생존 확률이 희박한 경우는…. 여기서 말하는 ‘생존 확률의 희박함’은 신체의 움직임이 없거나 화상이 심각한 경우, 신체 일부가 절단된 경우 등을 말합니다. 저희로서도 참 속상한 부분입니다.”
― 현장에서 희생자를 목격하는 것이 가장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중부소방서에서 근무할 당시 화재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분들을 봤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잘린 모습도 봤고요. 아무래도 연차와 상관없이 모든 소방관이 공통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입니다.”
―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극복법이 있는지요.
“다수의 소방관이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또 (소방)서 내의 ‘심리지원단’과 같은 전문상담 인력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와 대화하는 것도 많이 위로가 돼요. 같은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사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겁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며 “아직도 군인 같다”는 말을 하자 그는 씩 웃었다. 유독 박 소방장은 여전히 ‘특전사’로 보였다. 전역한 지 오랜 해가 지났지만 말투와 표정에서 남모를 군인정신이 느껴졌다. 기자가 군 전역 후 소방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묻자 그가 짧게 답했다.
“군 경력을 살릴 수 있고 또 애국심도 여전히 있습니다.”
현장 지휘의 핵심은 ‘사람’
지난 1월 27일 오후, 다시 성동소방서를 찾았다.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이날은 현장대응단 3팀이 당직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지휘 3팀장 이동헌(李東憲·56) 소방경은 소방 경력이 33년으로 정년을 3년 앞둔 소방관이었다. 그는 지난 1992년부터 소방관 근무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정중히 요청하자 그는 옅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 소방 인생 33년이라면 수준이 경지에 이르렀을 것 같습니다.
“골고루 다 해봤죠. 화재 진압, 구급, 구조, 내근직 등 안 해본 게 없네요. 이제 정년이 3년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힘내야지요.”
― 임용됐을 90년대 초 소방공무원의 삶은 어땠습니까.
“많이 열악했죠. 지금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이 됐지만 당시에는 지방직 공무원이었어요. 심지어 (소방) 서에 공기호흡기가 딱 2대씩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화재 진압대원들은 일반 천 마스크를 쓰고 화재 현장에 들어가기도 했지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죠. 그러다 보니 소방관들은 수명이 좀 짧기도 했어요. 폐가 안 좋아진 선배, 동료… 하지만 직무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아 보상을 못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 중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요.
“소방관으로서 항상 자부심이 있었어요. ‘남을 지킨다’는 것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항상 좋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임용 초기에는 심리적으로 흔들리기도 했어요. 업무 난도가 높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직업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자체가 강인해지거든요. 사명감도 커지고요.”
― 현장 출동 후 지휘체계가 궁금합니다.
“사고 현장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선착(先着)대를 포함한 화재진압대와 구조대원들이 현장 위험 요인을 파악해 각 대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면 이후 각 대장이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휘팀에서 안전을 고려해 소방 작전 전개를 지시하게 됩니다.”
― 현장 지휘 간 예상치 못한 순간도 있지 않나요.
“그래서 ‘5개 대 출동 원칙’을 준수합니다. 말 그대로 소방대, 구조대, 구급대, 지휘대, 예비출동대까지 한 번에 동원하는 겁니다. 의외로 소방차량이 대규모로 동원되는 것을 보며 시민들이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화재 현장은 불만 잘 끄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지만 현장에 갔는데 화재가 생각 이상으로 크거나 심각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는 소방력으로 억제하는 겁니다. 잠재위험까지 예측하는 거죠.”
― 본인만의 현장 지휘 철학이 있습니까.
“저는 인명 구조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화재 진압도 결국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하는 행동입니다. 건물은 재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건물이 아니잖아요. ‘소방관들에게 1순위는 항상 사람’입니다. 그다음이 ‘소방관 본인의 안전’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이 ‘화재 확장을 방지’하는 것이죠. 실제 다수의 소방 훈련도 대부분 인명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군 조직과 유사하지만 ‘수평적’
취재를 하다 문득 소방 조직이 군 조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급도 있고, 당직근무도 있고 심지어 군 출신도 많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수평적’인 느낌이었다. 이동헌 소방경과의 계속된 문답이다.
― 소방 조직이 수평적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연하죠. 친구이자 동료라고 생각해요. 내 계급이 더 높다 하더라도 당장 옆에 있는 동료가 출동할 때 도와주지 않으면 업무를 할 수가 없죠. 계급을 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하지만 저는 항상 계급이 아닌 든든한 동료로 봅니다.”
― (성동소방)서에도 신입 소방관이 있는 걸로 압니다.
“신입 소방관의 경우 소방학교에서 6개월 교육을 받고 소방서로 배치가 됩니다. 아무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죠. 선배 소방관들이 살뜰하게 챙겨주지만, 사실 저는 신입 소방관들의 잠재력 자체가 정말 크다고 봐요. 신입이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요. 애초부터 아무나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에요.”
― 당직근무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당직근무를 서고 2일간의 휴식을 취하다 보니 근무 여건이 괜찮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체력 소모가 매우 크죠. 건강에 무리가 오는 게 사실이에요. 신입 소방관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물론 야간에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는 있죠. 하지만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 두고 근무 간 숙면을 취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숙면이 아니라 ‘대기’인 이유입니다.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고는 해도 역설적으로는 체력 부담이 가증되는 거죠. 그래서 체력단련을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시간을 정해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과시간에 훈련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 되면 자율적으로 체력단련을 하게 합니다.”
소방 역량, 미국 소방에도 밀리지 않아
― 은퇴를 3년 앞두고 계신데 소방 조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사실 저는 이제 ‘장비 수준’이나 ‘소방관들 역량’이 미국 소방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봐요. 이제는 균등한 소방 역량을 전국 단위로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예산이 뒷받침돼 야 해요. 소방관이 국가직 공무원이 됐지만 아직 소방예산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충당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별 예산 격차가 발생하는 점이 있죠.”
― 인력 문제는 없습니까.
“각 소방서 산하 119 안전센터의 경우 인력 확충이 시급합니다. 소방서가 경찰서라면 119 안전센터는 파출소와 같은 개념입니다. 119 안전센터의 경우 평균 30여 명 정도가 근무 중입니다. 당직근무 체계 등도 소방서와 동일합니다. 한데 육아휴직 등 개인사정으로 인해 결원이 발생하면, 솔직히 결원이 1~2명에 불과하다고 해도 안전센터 입장에서는 치명적입니다. 당장 출동해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니까요.”
― 소방서 내 시설 보수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맞아요. 소방서를 비롯한 각 소방서 산하 119 안전센터의 시설 개선도 시급합니다. 이미 노후화된 시설도 있습니다. 그나마 성동소방서의 경우 2017년에 건립됐으니 최신식 건물이지만 일부 시설의 경우는 건물 보수가 필요한 곳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방 인력 정원은 대체로 비슷한데 휴게시설 등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소방관들은 인생의 3분의 1을 소방서에서 보내지 않습니까. 단순 휴게시설이나 독서 공간을 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정말 소방대원들이 휴식할 수 있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복지시설을 구축해 줘야 합니다. 이제는 단순 소방 장비 공급 등의 문제가 아닌 소방관 개개인의 삶을 위한 내실을 다질 때라고 봅니다.”
이동헌 소방경은 동료들에게 “‘얘들아, 가정보다 더 행복한 직장 생활 해보자’라고 늘 말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가정만큼 소방서에 오래 있는데 이왕 즐겁게 직장 생활 하면 더 좋지 않겠냐”는 취지라고 했다. 그의 미소는 인터뷰 내내 따듯했지만 소방인으로서의 긍지와 바람이 묻어 있었다.
임용 6개월 차 ‘신입 소방관’
베테랑 소방관과 달리 신입 소방관은 어떨까. 작년 7월 공채로 임용되어 첫 발령을 받고 구급 2팀에서 근무 중인 박새움(朴새움·28) 소방사를 만났다. 소방공무원으로서 첫걸음이 설레기도 하겠지만 분명 고충이 있을 터였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소방 임무를 하고 있을까. 나이도 비슷한 만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소방조끼에 달린 토끼 모양 테이프 걸이가 인상적이었다.
― 토끼 모양 테이프 걸이가 신기하네요.
“구급차량에서 환자 이송 간 필요한 테이핑을 바로 하고자 항상 달고 있습니다. 실제로 써본 적은 없어요. 처음에는 화재진압대에 있었는데 구급대로 발령이 났습니다. 구급대로 일한 지는 이제 일주일 됐어요.”
― 소방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전 간 차이가 큰가요.
“아무래도 소방학교에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긴 하지만 실제 환자를 맞닥뜨리는 상황과는 많이 다릅니다. 마음이 정말 아파요. 환자의 감정에 이입이 되는 느낌도 들어요. 꿈에 나온 적도 있어요. 감정을 잘 다뤄야 하는데…. 잠이 아예 안 올 때도 있고요.”
― 직업병도 있을까요.
“대기하면서 가끔 환청으로 출동벨이 들릴 때가 있어요. 워낙 출동에 예민하다 보니까 깜짝 놀랄 때도 있고요. 심장이 막 쿵쿵 뛰기도 하죠.”
― 하지만 표정은 엄청 뿌듯해 보입니다.
“사실 저는 공익을 추구하는 일을 꼭 하고 싶었어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택하고자 했는데 소방직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사명감으로 이 직업을 택했어요.”
―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어머니는 조금 걱정하셨고요.”
― 이제는 정말 소방관이 됐으니 훌륭한 딸이 된 거네요.
“그럼요. 가족이 응원해 주니 항상 든든하죠.”
박 소방사는 기자에게 “소방관으로서 해낸 멋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싶은데 아직 업무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성과가 없어 속상하다”라고 했다. 또한 “학교에서 교육을 열심히 받았지만 배울 것이 아직도 정말 많다”며 “하지만 성동구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은 어느 소방관들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기자가 지난 1월 26일부터 27일까지, 2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소방관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날씨는 꽤 추웠지만 소방관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춥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기자가 소방서 취재를 희망했던 이유는 지난 12월 4일에 개봉한 영화 〈소방관〉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은 ‘홍제동 방화사건(2001)’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관객들은 “소방관만큼 헌신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 어디 있느냐”며 “단순 재미로 본 게 아니라 소방관들을 위해 봤다”고 하기도 했다. 기자도 소방관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과연 그들의 하루는 어떨까. 본격적인 설 연휴를 앞두고 ‘일상 속 영웅’이라 불리는 소방관들을 만나기 위해 성동소방서로 향했다.
20kg 넘는 소방장비
기자는 방화복을 직접 입어보고 싶었다. ‘방화복이 군 전투복과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하며 ‘신속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가졌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훨씬 더 무겁고, 두껍고, 뻑뻑했다. 하의를 입고 방수장화도 신으니 방수장화에 하의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졌다. 상의를 입자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얹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어 화재 간 연기 흡입을 방지하는 두건을 착용하고 공기호흡기를 고정하는 등지게도 멨다. 공기호흡기와 연결된 면체(공기호흡 마스크)도 착용했다. 또 방화장갑을 착용하고 각 대원 및 현장 지휘팀과 소통하는 무전기 2개와 손전등 1개, 열화상 카메라까지 상의에 부착한 후 마지막으로 헬멧까지 쓰니 ‘이러고 사람을 어떻게 구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방화복을 입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기자의 생각이 망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기자를 보며 주변 화재 진압대원들은 껄껄 웃으며 “어때요 무겁죠”라며 “이제 계단도 올라가 보라”고 했다. 오기가 생겨 소방서의 꼭대기인 6층까지 최대한 힘껏 오르고 내려왔다. 면체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올라갔음에도 숨이 가빴다. 내려갈 때는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렸다. 계단을 오르내린 후 구조 3팀 이태영(李泰泳·33) 소방교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 생각보다 꽤 힘든데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화재 현장의 경우 ‘화재 진압대원’은 소방호스도 함께 들고 가야 합니다. 소방호스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40mm(옥내 소화전), 50mm(건물 내부, 소방차용), 65mm(소방차와 소화전 연결용), 75mm(대형 화재 진압용) 규격이 있죠. 또 ‘구조대원’의 경우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해야 하니 실제 현장 소방대원들이 견뎌야 할 무게는 지금 입고 있는 소방장비보다 훨씬 더 무거운 셈입니다.”
“물 채운 호스는 최대 7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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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 내 근무자 대기실. 당직근무 간 대기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화재 진압, 구조, 구급 등 역할별 대기실이 분류되어 있다. 이하 사진=백재호 기자 |
“규격에 따라 다 다르지만 물을 채우지 않은 상태의 경우 보통 5~15kg 정도입니다. 하지만 물을 채운 상태라면 최소 25kg에서 최대 70kg까지 나갑니다.”
― 물 채운 소방호스를 혼자 들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수압에 따라 다릅니다. 옥내 소화전은 개인 운용이 가능합니다. 일반 시민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고요. 하지만 소방차용 호스(50mm 이상)부터는 최소 2인이 동원됩니다. 혼자 들 수 없기 때문이죠. 특히 대형 화재의 경우 별도의 호스(75mm)도 동원되는데 수압 등을 원활히 통제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3명의 화재 진압대원이 동원됩니다.”
― 인명 구조도 팀워크 아닙니까.
“맞습니다. 인명 구조의 경우 구조대원 1명이 전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보통 효율적인 구조를 위해 3~4인이 한 개 조로 움직입니다.”
― 출동 현장에 따라 복장도 변화가 클 거 같은데요.
“항상 이렇게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출동하는 건 아닙니다. 화재 현장이 아니라면 꼭 방화복을 입을 필요가 없지요. 다만 ‘화재의 위험이 있거나 예상되는 출동지’라면 반드시 방화복을 입고 출동합니다.”
방화장비를 벗고 다시 본 소방대원들은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땀 빼느라 고생했다”며 기자를 격려하기도 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쾌활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방서의 경우 보통 ‘구조대’ ‘화재진압대’ ‘구급대’와 이를 현장에서 지휘하는 ‘지휘팀’이 모여 하나의 ‘현장대응단’이 구성된다. 그렇다면 분야별 현장 근무자들의 일상은 어떨까.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자랑”
지난 1월 26일 오전, 구조 2팀 현대봉(玄大奉·41) 소방장을 만났다. 그는 특전사 중사 출신으로 ‘구조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지난 2013년부터 소방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구조 분야의 베테랑이다. 구조 업무에 대한 그의 얘기다.
― 구조 경력만 12년인데 이유가 있나요.
“생명 그 자체를 구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랄까요? 이런 감정이다 보니 자연스레 구조 업무에 열중하게 됐습니다. 구조대는 활용 장비가 많습니다. 대략 700종이 넘죠. 그만큼 상황이 각기 다른 현장을 만난다는 방증인데, 순간순간 ‘어떻게 하면 구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따르고, 결국 구조해 내는 게 구조 업무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을 구조할 때도 많아요.”
“구조대의 경우 모든 장비 들고 출동”
― 구조팀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소방서의 경우 평균적으로 3개의 구조팀이 있고 각 팀당 보통 7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 출동 시에는 구조대장을 포함한 구조대원 6명이 함께 출동합니다. 이때 ‘구조운반차’와 ‘구조공작차’로 나눠 출동하는데, 구조운반차에는 구조 시 필요한 각종 장비와 함께 구조대원들이 탑승하고, 구조공작차에는 유압 절단기, 유압 리프트, 에어매트 등 대형 장비를 싣습니다.”
― 구조 업무 간 가장 힘드셨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꽤 많죠. 한 번은 출동하는데 화재 현장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방화복을 입지 않았는데 사고 현장 건물로 가 보니 화재인 거예요. 심지어 건물에 들어가서야 알았죠. 당시 제 위치가 건물 7층이었는데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와 곧바로 방화복을 입고 죽어라 뛰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어요. 내부에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무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면 ‘무조건 구하자’는 생각만 듭니다.”
―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신고 내용과 다를 때도 있는 거군요.
“그래서 구조대의 경우 모든 장비를 들고 출동합니다. 상황이 현장에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현장에서 대응하기 수월해요.”
― 구조대는 교통사고 현장에도 투입되지 않나요.
“맞아요. 한 번은 올림픽대교 남단 아산병원 쪽에서 교통사고가 좀 크게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차량에는 아기와 부모님이 타고 있었는데 아기는 차량 내부에 있고 부모님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들은 상황이었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아기 부모님들이 다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구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저도 두 아이의 아빠인지라 정말 필사적으로 구조하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어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 자녀분들이 항상 자랑스러워할 것 같습니다.
“그럼요. 아이들이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더라고요. 물론 직업상 위험한 현장에 직접 투입되다 보니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방관들 장비가 많이 개선돼 그리 큰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물론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부족함을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8년 이상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면 좋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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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소방서 구조 2팀의 대원들이 구조공작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소방공무원의 경우 한 소방서에서 최대 8년까지만 근무가 가능합니다. 8년이라고 하면 꽤 긴 시간입니다. 소방 업무는 기본적으로 팀 단위 업무입니다. 함께하는 시간도 길다 보니 제 옆에 있는 동료는 동료 이상의 의미입니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동료를 다른 소방서로 떠나보낼 때 아쉬움이 늘 큽니다. 한 소방서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주변 지리가 자연스레 숙지돼요. 하지만 다른 소방서로 가면 처음부터 외워야 합니다. 가정이 있는 소방관의 경우 거주환경이 아예 달라지는 점도 있고요. 개인이 희망한다면 8년 이상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보완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기자는 현대봉 소방장의 안내로 구조대 차량 내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출동해도 될 만큼 방화복을 비롯한 각종 장비가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상황에 따라 빨리 사용할 수 있게끔 장비 명칭도 함께 적혀 있었다. 구조 2팀의 막내인 최준엽(崔浚燁·30) 소방사의 “출동 시 바로 시동만 걸면 된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됐다. 기자가 인터뷰를 끝으로 구조 2팀 단체사진을 찍기를 희망하자 “(구조공작)차 밖으로 빼고 멋지게 찍어보자”며 포즈를 취했다.
전직 간호사가 보는 ‘의료대란’
작년부터 응급의료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가 병원 응급실에서 수용을 거부당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자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책임과 해법을 놓고 구급대원과 의사 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 구급대원이 환자 이송을 위해 40차례 이상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설 연휴를 앞둔 성동소방서의 상황은 어떨까.
구급 2팀의 박준호(朴俊浩·35/구급대장) 소방교를 만났다. 그는 간호사로 근무하다 ‘구급특채’로 2018년부터 소방공무원의 길을 걷고 있다. 전직 간호사였던 그가 생각하는 병원과 구급대의 입장이 궁금했다. 기자는 작년부터 이어진 ‘의료대란’부터 최근 구급대 업무의 고충까지 물어봤다.
― 여전히 환자 이송이 어렵다고 느낍니까.
“사실 이 부분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현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 어떻게 다른가요.
“그때는 의료대란이 아니었죠.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 상황이 심각했지 의료체계가 유지는 됐습니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을 어떻게 격리하고 치료할지가 핵심이었습니다.”
― 전직 간호사로서 병원의 입장도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해는 하는데, 시민 입장으로서는 의사가 환자를 받는 게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고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 1명이 응급환자 수십 명을 감당하는 게 아니라면 부담이 덜하죠. 이와 반대로 의사 1명이 응급환자 수십 명을 감당해야 한다면 말 그대로 받고 싶어도 못 받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설령 환자를 받아도 적절한 조치를 못 하게 되죠.”
― 지금도 ‘응급실 뺑뺑이’가 있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일부 지역에 응급환자가 몰릴 경우 환자 이송에 시간이 더 소요될 수는 있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에요. 구급대 입장에서는 의료대란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골든타임 내 환자를 이송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출동했지만 응급환자가 아닐 때도 있나요.
“구급대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죠. 하지만 응급 신고가 들어온 이상 저희는 당연히 출동을 합니다. ‘응급의 기준’은 저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급대 같은 경우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한국형 중증도 분류 체계)라는 시스템을 쓰고 있습니다. 총 5단계인데요, 최우선-고위험-경증-비응급 순으로 분류가 됩니다. 분류에 따라 환자 이송 병원(센터)이 달라지게 됩니다.”
식사조차 제때 먹기 힘든 구급대
― 응급환자가 상급의료기관만 선호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요.
“대개 그렇죠. 심리적인 이유인데, 단순 복통이나 발목 염좌 등은 1차 의료기관(동네병원) 등에서도 충분히 조치가 가능해요. 심각한 응급환자에 한해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는데, 응급 신고를 하는 환자의 경우 경증임에도 본인이 중증이라 착각해 상위병원을 희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환자가 몰리면 정작 상급병원으로 가야 하는 환자가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 관할 지역 내 응급환자가 다수 발생하면 상당히 힘들 것 같습니다.
“성동소방서의 경우 산하에 3개(성수, 왕십리, 금호)의 119 안전센터가 있습니다. 저희 본서에서 구급대가 출동한 상태라면 차순위로 가까운 왕십리 쪽 안전센터가 출동하게 됩니다. 업무상 공백은 크게 없습니다.”
시계를 보니 점심즈음이었다. 성동소방서 홍보 담당자인 김동아(金東雅·35) 소방교는 “구급대는 업무상 출동이 잦아 딱히 점심 식사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며 “응급 상황도 저희가 인터뷰 중인 걸 아는지 출동벨이 울리지 않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즉 구급대가 소방서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는 것이다.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하는 기자의 마음을 아는 듯 구급대원들은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며 기자를 구내식당으로 안내했다.
‘연휴’ 없는 현장대응단
기자는 김동아 소방교와 함께 식사했다. 그는 2019년 공채로 소방공무원의 길에 들어섰다. 김 소방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설 연휴를 앞두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순간 또 아차! 싶었다. 소방관(현장대응단)은 사실상 연휴가 없기 때문이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 소방관들은 연휴(주말)에도 항시 대기를 하나요.
“내근직의 경우 주말이나 휴일에 휴식이 가능하지만, 현장대응단은 요일이 아닌 당직제로 근무합니다. 당직근무 후 2일간의 휴식이 주어지죠.”
― 화재 진압, 구조, 구급팀이 각 3교대인 이유군요.
“그렇습니다. 3조 1교대를 해야 대원들 여건 보장이 됩니다.”
― 근무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오전 9시부터 그다음 날 9시까지입니다.”
― 휴가 가기에 애로사항은 없나요.
“출동 인원에 공백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본인 자리에 들어갈 대체 근무자를 매번 구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기자는 식사를 하며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비교적 빠르게 식사가 이뤄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자가 이유를 물으니 “식사 도중에 출동벨이 울리면 바로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과 무관하게 (밥을) 빨리 먹는 것이 평소 습관이 됐다”고 했다.
기자가 방문한 오전부터 점심때까지 출동벨이 울린 건 ‘1번’이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적다 생각할 수 있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 내 출동벨이 울린 것이었다. 언제 출동벨이 울릴지 모르니 덩달아 긴장이 됐다. 김 소방교의 “소방관들은 청각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다.
“워터실드(water-shield·분무 형태로 물을 발사하는 것) 치는 것이 특히 멋있습니다.”
화재진압 2팀에 속한 박준화(朴俊華·38) 소방장에게 기자가 한 말이다. 박 소방장도 특전사 출신의 12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 소방관이다. 그는 구조대와 내근직을 거쳐 지금은 화재진압 2팀으로 6개월째 근무 중이다. ‘구조 업무’와 ‘화재 진압 업무’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에게 관련 업무에 대해 폭넓게 물었다.
― 우선 화재 진압 후에 구조가 이뤄지는 건가요.
“시민들은 대부분 ‘불을 끄고 구조대가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구조대는 화재진압대와 동시에 운용됩니다. 자칫 골든타임을 넘길 수 있으니까요. 말 그대로 방화복을 입고 불 속으로 바로 뛰어들어갑니다.”
― 방화복은 어디까지 보호합니까.
“열감(熱感)을 고스란히 느끼니 말 그대로 완벽한 ‘방화(防火)’는 아닙니다. 불길을 어느 정도 막아낼 뿐이지 무한정 버틸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화재 진압대원들이 소방(消防) 활동을 통해 길을 열어주는 겁니다. 인명 구조와 화재 진압의 핵심은 ‘신속함’에 있습니다.”
― 화재진압대 구성도 궁금한데요.
“화재 진압대장 포함 6명입니다. 진압대의 경우 관창(管槍)수와 관창보조수 2명 총 3명이 호스를 듭니다. 이 외 인원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소방차량(펌프, 물탱크 차량) 작업을 지원하거나 관창을 2개 이상 운용해야 하는 경우 추가 배치되기도 합니다. 화재 현장에 따라 다 다르기에 정확한 임무 분담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 화재 진압 시 다량의 물을 전력(全力) 분사하는 것이 정석인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만 크게 ‘직사(stream) 형태’와 ‘분무(fog-spray) 형태’로 나뉩니다. 직사 형태 분사는 도달거리가 길고 수압이 강해 화재 초기나 원거리에서 불을 진압할 때 사용합니다. 분무 형태 분사는 무지개와 같이 물이 펼쳐지는 형태입니다. 건물 내부에서 연기와 유독가스의 차단을 목적으로 활용되죠. 분사 방법에 따른 별도의 세부 명칭도 있습니다만 직접적으로 불을 끄느냐, (연기, 유독가스, 화재 확장 위협 등을) 차단하느냐의 차이로 이해하면 됩니다.”
“공기호흡기, 1시간 이상 사용 어려워”
― 소방 작전 시 공기호흡기도 중요한 장비죠.
“그렇죠. 일반적인 호흡만 한다면 평균 50분 정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는 호흡이 가빠지죠. 작전 시 평균적으로 30~35분 정도가 한계라고 보면 됩니다. 산소 잔여 여부는 호흡기에 연결된 기기를 통해 항상 표시되고 면체(공기마스크) 내부에도 잔여량 표시가 뜹니다. 또 산소 부족 시 자체 진동으로 진압대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주죠. 산소가 떨어졌을 때 실시하는 ‘비상호흡법’도 있습니다. 작전 시 부득이한 상황이 닥쳤을 때 ‘비상호흡법’을 통해 시간을 벌고 있으면 동료가 새 공기호흡기를 가져다주는데, 이럴 때 팀워크가 빛을 발합니다.”
― 화재 진압이 어려운 경우도 있죠.
“밀폐된 공간은 화재 진압이 정말 어렵습니다. 내부 온도가 상당히 높거든요. 그러다 보니 장비를 갖춰 입어도 너무 뜨거워서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화재 현장의 경우 창문이나 문 등으로 진입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나은 상황입니다. 진입로가 마땅치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진입하는데 그래서 측면 벽을 부수고 들어가 화재 진압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 화재 시 시민들에게 요청하고픈 부분이 있습니까.
“화재 초기에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바로 대피하는 걸 권장합니다. 이때 화재 장소에 문이나 창문이 있다면 가급적 닫고 대피한다면 연기 등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발화점 발견과 화재 진압 간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희생자들, 절대 잊을 수 없죠”
박 소방장과의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다소 답하기 힘든 질문을 물었다. 바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실제 소방 임무 중 구하지 못한 생명을 마주한 소방관들이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 박 소방장에게 어떤 입장인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 화재 현장 인명 구조 간 우선순위가 있다면요.
“생존 확률이 높은 사람부터 구조합니다. 안타깝지만 생존 확률이 희박한 경우는…. 여기서 말하는 ‘생존 확률의 희박함’은 신체의 움직임이 없거나 화상이 심각한 경우, 신체 일부가 절단된 경우 등을 말합니다. 저희로서도 참 속상한 부분입니다.”
― 현장에서 희생자를 목격하는 것이 가장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중부소방서에서 근무할 당시 화재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분들을 봤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잘린 모습도 봤고요. 아무래도 연차와 상관없이 모든 소방관이 공통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입니다.”
―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극복법이 있는지요.
“다수의 소방관이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또 (소방)서 내의 ‘심리지원단’과 같은 전문상담 인력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와 대화하는 것도 많이 위로가 돼요. 같은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사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겁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며 “아직도 군인 같다”는 말을 하자 그는 씩 웃었다. 유독 박 소방장은 여전히 ‘특전사’로 보였다. 전역한 지 오랜 해가 지났지만 말투와 표정에서 남모를 군인정신이 느껴졌다. 기자가 군 전역 후 소방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묻자 그가 짧게 답했다.
“군 경력을 살릴 수 있고 또 애국심도 여전히 있습니다.”
현장 지휘의 핵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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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3팀의 이동헌 소방경이 현장대응단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가정보다 행복한 직장 만들기를 꾸준히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
― 소방 인생 33년이라면 수준이 경지에 이르렀을 것 같습니다.
“골고루 다 해봤죠. 화재 진압, 구급, 구조, 내근직 등 안 해본 게 없네요. 이제 정년이 3년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힘내야지요.”
― 임용됐을 90년대 초 소방공무원의 삶은 어땠습니까.
“많이 열악했죠. 지금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이 됐지만 당시에는 지방직 공무원이었어요. 심지어 (소방) 서에 공기호흡기가 딱 2대씩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화재 진압대원들은 일반 천 마스크를 쓰고 화재 현장에 들어가기도 했지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죠. 그러다 보니 소방관들은 수명이 좀 짧기도 했어요. 폐가 안 좋아진 선배, 동료… 하지만 직무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아 보상을 못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 중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요.
“소방관으로서 항상 자부심이 있었어요. ‘남을 지킨다’는 것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항상 좋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임용 초기에는 심리적으로 흔들리기도 했어요. 업무 난도가 높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직업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자체가 강인해지거든요. 사명감도 커지고요.”
― 현장 출동 후 지휘체계가 궁금합니다.
“사고 현장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선착(先着)대를 포함한 화재진압대와 구조대원들이 현장 위험 요인을 파악해 각 대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면 이후 각 대장이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휘팀에서 안전을 고려해 소방 작전 전개를 지시하게 됩니다.”
― 현장 지휘 간 예상치 못한 순간도 있지 않나요.
“그래서 ‘5개 대 출동 원칙’을 준수합니다. 말 그대로 소방대, 구조대, 구급대, 지휘대, 예비출동대까지 한 번에 동원하는 겁니다. 의외로 소방차량이 대규모로 동원되는 것을 보며 시민들이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화재 현장은 불만 잘 끄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지만 현장에 갔는데 화재가 생각 이상으로 크거나 심각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는 소방력으로 억제하는 겁니다. 잠재위험까지 예측하는 거죠.”
― 본인만의 현장 지휘 철학이 있습니까.
“저는 인명 구조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화재 진압도 결국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하는 행동입니다. 건물은 재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건물이 아니잖아요. ‘소방관들에게 1순위는 항상 사람’입니다. 그다음이 ‘소방관 본인의 안전’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이 ‘화재 확장을 방지’하는 것이죠. 실제 다수의 소방 훈련도 대부분 인명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군 조직과 유사하지만 ‘수평적’
취재를 하다 문득 소방 조직이 군 조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급도 있고, 당직근무도 있고 심지어 군 출신도 많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수평적’인 느낌이었다. 이동헌 소방경과의 계속된 문답이다.
― 소방 조직이 수평적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연하죠. 친구이자 동료라고 생각해요. 내 계급이 더 높다 하더라도 당장 옆에 있는 동료가 출동할 때 도와주지 않으면 업무를 할 수가 없죠. 계급을 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하지만 저는 항상 계급이 아닌 든든한 동료로 봅니다.”
― (성동소방)서에도 신입 소방관이 있는 걸로 압니다.
“신입 소방관의 경우 소방학교에서 6개월 교육을 받고 소방서로 배치가 됩니다. 아무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죠. 선배 소방관들이 살뜰하게 챙겨주지만, 사실 저는 신입 소방관들의 잠재력 자체가 정말 크다고 봐요. 신입이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요. 애초부터 아무나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에요.”
― 당직근무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당직근무를 서고 2일간의 휴식을 취하다 보니 근무 여건이 괜찮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체력 소모가 매우 크죠. 건강에 무리가 오는 게 사실이에요. 신입 소방관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물론 야간에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는 있죠. 하지만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 두고 근무 간 숙면을 취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숙면이 아니라 ‘대기’인 이유입니다.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고는 해도 역설적으로는 체력 부담이 가증되는 거죠. 그래서 체력단련을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시간을 정해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과시간에 훈련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 되면 자율적으로 체력단련을 하게 합니다.”
소방 역량, 미국 소방에도 밀리지 않아
― 은퇴를 3년 앞두고 계신데 소방 조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사실 저는 이제 ‘장비 수준’이나 ‘소방관들 역량’이 미국 소방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봐요. 이제는 균등한 소방 역량을 전국 단위로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예산이 뒷받침돼 야 해요. 소방관이 국가직 공무원이 됐지만 아직 소방예산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충당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별 예산 격차가 발생하는 점이 있죠.”
― 인력 문제는 없습니까.
“각 소방서 산하 119 안전센터의 경우 인력 확충이 시급합니다. 소방서가 경찰서라면 119 안전센터는 파출소와 같은 개념입니다. 119 안전센터의 경우 평균 30여 명 정도가 근무 중입니다. 당직근무 체계 등도 소방서와 동일합니다. 한데 육아휴직 등 개인사정으로 인해 결원이 발생하면, 솔직히 결원이 1~2명에 불과하다고 해도 안전센터 입장에서는 치명적입니다. 당장 출동해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니까요.”
― 소방서 내 시설 보수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맞아요. 소방서를 비롯한 각 소방서 산하 119 안전센터의 시설 개선도 시급합니다. 이미 노후화된 시설도 있습니다. 그나마 성동소방서의 경우 2017년에 건립됐으니 최신식 건물이지만 일부 시설의 경우는 건물 보수가 필요한 곳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방 인력 정원은 대체로 비슷한데 휴게시설 등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소방관들은 인생의 3분의 1을 소방서에서 보내지 않습니까. 단순 휴게시설이나 독서 공간을 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정말 소방대원들이 휴식할 수 있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복지시설을 구축해 줘야 합니다. 이제는 단순 소방 장비 공급 등의 문제가 아닌 소방관 개개인의 삶을 위한 내실을 다질 때라고 봅니다.”
이동헌 소방경은 동료들에게 “‘얘들아, 가정보다 더 행복한 직장 생활 해보자’라고 늘 말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가정만큼 소방서에 오래 있는데 이왕 즐겁게 직장 생활 하면 더 좋지 않겠냐”는 취지라고 했다. 그의 미소는 인터뷰 내내 따듯했지만 소방인으로서의 긍지와 바람이 묻어 있었다.
임용 6개월 차 ‘신입 소방관’
베테랑 소방관과 달리 신입 소방관은 어떨까. 작년 7월 공채로 임용되어 첫 발령을 받고 구급 2팀에서 근무 중인 박새움(朴새움·28) 소방사를 만났다. 소방공무원으로서 첫걸음이 설레기도 하겠지만 분명 고충이 있을 터였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소방 임무를 하고 있을까. 나이도 비슷한 만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소방조끼에 달린 토끼 모양 테이프 걸이가 인상적이었다.
― 토끼 모양 테이프 걸이가 신기하네요.
“구급차량에서 환자 이송 간 필요한 테이핑을 바로 하고자 항상 달고 있습니다. 실제로 써본 적은 없어요. 처음에는 화재진압대에 있었는데 구급대로 발령이 났습니다. 구급대로 일한 지는 이제 일주일 됐어요.”
― 소방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전 간 차이가 큰가요.
“아무래도 소방학교에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긴 하지만 실제 환자를 맞닥뜨리는 상황과는 많이 다릅니다. 마음이 정말 아파요. 환자의 감정에 이입이 되는 느낌도 들어요. 꿈에 나온 적도 있어요. 감정을 잘 다뤄야 하는데…. 잠이 아예 안 올 때도 있고요.”
― 직업병도 있을까요.
“대기하면서 가끔 환청으로 출동벨이 들릴 때가 있어요. 워낙 출동에 예민하다 보니까 깜짝 놀랄 때도 있고요. 심장이 막 쿵쿵 뛰기도 하죠.”
― 하지만 표정은 엄청 뿌듯해 보입니다.
“사실 저는 공익을 추구하는 일을 꼭 하고 싶었어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택하고자 했는데 소방직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사명감으로 이 직업을 택했어요.”
―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어머니는 조금 걱정하셨고요.”
― 이제는 정말 소방관이 됐으니 훌륭한 딸이 된 거네요.
“그럼요. 가족이 응원해 주니 항상 든든하죠.”
박 소방사는 기자에게 “소방관으로서 해낸 멋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싶은데 아직 업무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성과가 없어 속상하다”라고 했다. 또한 “학교에서 교육을 열심히 받았지만 배울 것이 아직도 정말 많다”며 “하지만 성동구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은 어느 소방관들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