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법연구회는 이념 성향의 사조직 아니다”
⊙ 수사기관의 신문·진술 조서에 의존하는 것 비판하면서 ‘법정에서 조사한 증거 중심 재판’ 강조
⊙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큰 고통… 나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가”
⊙ “판사에게는 미리엘 주교의 자비심과 자베르 경감의 성실성이 필요”
⊙ “‘사법의 정치화’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사법화’도 경계해야”
⊙ 수사기관의 신문·진술 조서에 의존하는 것 비판하면서 ‘법정에서 조사한 증거 중심 재판’ 강조
⊙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큰 고통… 나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가”
⊙ “판사에게는 미리엘 주교의 자비심과 자베르 경감의 성실성이 필요”
⊙ “‘사법의 정치화’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사법화’도 경계해야”
- 문형배 헌법재판관소장 대행.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고 있는 8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공석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인 문형배(文炯培·60) 재판관이다. 문형배 재판관은 지난 20년간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해 왔다. 자신이 읽은 책의 독후감이나 법조인으로서의 단상(斷想) 등을 올리는 블로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시작된 이후 그가 SNS에 올린 글들을 부지런히 지우고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이 블로그에는 그의 생각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들이 꽤 많이 있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을 읽고
우선 문형배 재판관이 읽은 책부터 보았다. 누가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많이 실망스러웠다. 문학, 저출산, 건강, 역사 등 다양한 책을 섭렵하기는 했지만, 독후감이 지나칠 정도로 밋밋했기 때문이다. 책의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종종 자신의 소감을 짧게 밝히는 정도였다.
그중에서 법과 관련된 독후감들을 일별해 보았다. 문 재판관은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18년 6월 30일 “몽테스키외가 쓴 《법의 정신》을 세 번째 읽었다”면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했다.
〈공화정체(政體)에서는 재판관이 법조문에 따르는 것이 그 국가조직의 본성에 속한다. 시민의 재산과 명예 또는 생명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그에게 불리하도록 법을 해석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재판소가 고정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판결은 그것이 법률의 정확한 조문이어야 한다는 정도로 고정적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한 재판관의 개인적 견해라고 가정한다면, 사람들은 그들 의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채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게 될 것이다. (중략) 중용의 정신이 입법자의 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善)은 도덕적 선과 같이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 있다.〉
《법의 정신》을 발췌해 소개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그만큼 그가 그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소감을 달았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부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이나 시민 중 주요한 사람의 동일 단체가 이 세 가지 권력을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라는 부분은 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덜 중요하게 인식된다. 경계할 일이다.〉
부산가정법원장이던 2017년 2월 17일에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두 번째로 읽고 독후감을 올렸다. 여기서 문형배 재판관은 판사의 역할과 관련해 이렇게 썼다.
〈판사에게는 미리엘 주교의 자비심과 자베르 경감의 성실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 발장이 죽음을 앞두고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죽는 것 아무것도 아니야. 살 수 없는 것이 무서운 일이지.’〉
“우리법연구회, 사실과 다르게 왜곡돼”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 재판관은 ‘법원 내 이념 편향의 사조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모두 12개의 글을 올렸다.
부산지법 부장판사이던 2010년 2월 19일 올린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의 논리적 오류 3가지’에서 문 재판관은 ‘이른바 튀는 판결을 하는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거나 그 영향권 내에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튀는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튀는 판결을 막으려면 우리법연구회는 해체되어야 한다’는 비판들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썼다.
〈그분들은 편향된 판결을 지적한 다음, 이를 해소하려면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권력자가 법원의 판결이 좌편향되었다며 비판하는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중략) 향후를 가정하여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사건에 대하여 무죄 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 헌법이 3권 분립의 구조를 취하는 이상, 불가피할 것입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부존재(不存在)가, 튀는 판결을 예전에도 막지 못했고,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사법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하고 저 자신도 늘 이 점을 명심하여 왔으며, 앞으로 더욱 경각심을 가지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의 사법화’ 역시 경계해야 하고 이것이 적절하게 견제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훼손될 것입니다.
좋은 판사가 되려고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한 저로서는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이 좋은 판사가 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려 섭섭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이 주장하는 분들의 애국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법연구회가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인상과 이미지에 의하여 왜곡 또는 과장되어 있는 만큼, 좀 더 냉정하게 토론을 해보자는 뜻에서 부족한 이 글을 올렸습니다. 배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형배 재판관은 앞서 2009년 11월 20일에도 법원 게시판에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올해 말 (이 모임 회장) 임기가 끝나는 저로서는 일부 보수단체와 언론사가 제기하는 몇 가지 의문에 대하여 사법부 구성원에게 해명을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법연구회의 목표는 법원 개혁이 아니다”
이 글에서 그는 먼저 “우리법연구회는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념 성향의 사조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념을 연구하지도 아니하고, 특정 이념에 기초하여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적 이익을 꾀하기 위해서 존립하는 모임이라면 제 임기 중에 해체를 추진했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분별은 저에게 있습니다. (중략)
우리법연구회에도, 판사가 가입한 다른 모임과 마찬가지로, 이런 견해를 가진 판사도 있고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판사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견해가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끊임없이 토론을 할 뿐 특정 이념을 내세우거나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담당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인지 여부를 조사한 다음 우리법연구회 회원임이 확인되면 황당한 판결이라는 비난과 함께 20년 전 행적까지 들춰내고 있습니다. (중략)
사법부는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곳이고 접수된 사건에만 사법권을 행사하는 수동적인 국가권력인 점을 고려하여, 사법부 판결에 대한 비판은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선진국 언론이 공유하는 상식입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목표는 법관으로서 끊임없이 하는 자기성찰”이라고 주장했다.
〈촛불집회 사건의 재판과 관련한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행위에 관하여, 많은 판사들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취지로 코트넷(법원 내부통신망-기자 주)에 글을 올리거나 판사회의에서 토론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저의 몫이 아니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우리법연구회가 선동하였다거나 주도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판사들이 선동의 대상이 된다고 가정하는 것도 참 우스운 발상이거니와 우리법연구회는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일 뿐, 법원 현안에 관하여 논의하거나 대응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일부 회원들이 그런 흐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신념에 기초할 것일 뿐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많은 회원들이 코트넷에 글을 쓰지도 아니하였고 판사회의에 참여하지도 아니하였던 점은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목표는 법원의 개혁이 아닙니다. 단지 법관으로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개선해 나가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는 이 글의 말미에서 “법원 안팎의 비판을 받아들여 코트넷에 학회 등록을 하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 데 이어 위와 같이 회원 명단까지 공개하기로 했다”면서 “학술연구단체에 대한 편향적 시각과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은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좌경 판사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나”
2009년 10월 18일에는 ‘부끄러운 대학생활’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전경들이 대학 입구에서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던 5공 시절의 풍경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등교하는 나에게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법연구회가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라고 주장하고 입증하여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 다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고 좌경 판사 물러가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먼발치에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나는 26년 전 그들에게 학생증을 제시하고 등교를 하여야 했듯이 또 다른 그들에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함으로써 좌경 판사가 아님’을 확인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법원에 출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 전에 그들은 나에게 좌경 판사가 아님을 입증할 서류로 학생증이 아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고작 학생증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 정녕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2009년 4월 23일 우리법연구회 새해 인사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 수도 전체 법관의 3%가 넘습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 소금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요? (선민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적, 사적 생활을 엄중히 하여 법원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임.) 운영위원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성의를 다하여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되도록 조직하겠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성(城)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공판중심주의와 그 敵들’
창원지법 부장판사이던 2006년 10월 8일 올린 ‘공판중심주의와 그 적들’이라는 글도 눈길을 끈다. 당시 법원 주변에서 회자(膾炙)되던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쓴 이 글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공판중심주의란, 법정에서 조사한 증거를 중심으로 재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인데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란 말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이유는 그동안 이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의 참 모습을 알기 위해서 그 적들을 나열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조서 및 진술조서에 무심코 또는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중략)
‘법정 증언은 늘 피고인 측에 의하여 왜곡되는 것이고 수사기록·진술조서는 늘 왜곡할 시간적 여유 없이 진실되게 작성된 것이다.’
‘수사기관은 공무원인데 사심에 의하여 사건을 조작하겠느냐.’ (중략)
‘범행 수단, 방법 및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방청석에서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공판중심주의란, 만인이 지켜보는 법정에서 (판사의-기자 주) 심증을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정은 공개와 투명을 생명으로 하고 공정한 조건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법정은 우선 공개와 투명을 생명으로 합니다. 법원조직법에는 심리의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만 비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실제로 강간 사건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를 제외하고 비공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법정은 공정한 조건이 보장됩니다. 피고인에게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있는 무기를 제공합니다. 증인에 대하여 신청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상대방에게도 질문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합니다. 진실은 공정의 조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입니다. 어쩌면 공개, 투명, 공정은 형제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에 관심이 가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형사재판에서는 피의자 신문조서가 증거로 채택되려면 피고인이 조서 내용에 동의해야 한다’는 2020년 개정 형사소송법을 준용(準用)하지 않기로 해서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과 성격이 다르다는 논리로 그러한 비판을 외면하고 있다.
‘프라하의 48시간’
문형배 재판관은 기행문이나 생활 단상 같은 소프트한 글들도 곧잘 올렸다. 그중에서 부산고법(창원재판부) 부장판사이던 2014년 9월 2일 올린 ‘프라하의 48시간’이라는 글은, 프라하에서 색(sack)을 도난당한 후 경찰서에 출두했던 경험을 적었다.
〈경찰서 직원은 동행한 가이드 말을 듣더니 범죄 피해 리포트를 써줄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같이 간 가이드는 도난의 증인이 아니었고, 나는 체코 말을 할 수 없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으며, 그 외 도난의 증거가 없으니 여권 분실 신고만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중략)
한국 대사관에 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에 경찰서 직원이 교체되었다. 이 직원은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다. 되도록이면 나의 말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들어주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논쟁이 길어지자 가이드가 한국 대사관에 하소연하였고, 대사관 직원이 경찰서에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보험금을 부정하게 수령하기 위하여 범죄 피해 리포트를 허위로 발급받는 사례가 많아 프라하 경찰서에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청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2시간 정도 걸려 범죄 피해 리포트를 만들고 근처 사진관에서 즉석 사진을 찍어 오후 5시 무렵에 한국 대사관에 도착하여 단수(單數)여권을 재발급 받았다. 체코 관공서는 아침 7시 반에 시작하고 오후 4시 반에 끝나는 경우가 많아 아슬아슬하게 일을 마친 셈이었다. (중략)
그리고 나는 경험했다.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큰 고통이라는 것을, 공무원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매우 답답하고 때로는 화가 난다는 것을.
그렇게 프라하의 48시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3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가?〉⊙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을 읽고
우선 문형배 재판관이 읽은 책부터 보았다. 누가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많이 실망스러웠다. 문학, 저출산, 건강, 역사 등 다양한 책을 섭렵하기는 했지만, 독후감이 지나칠 정도로 밋밋했기 때문이다. 책의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종종 자신의 소감을 짧게 밝히는 정도였다.
그중에서 법과 관련된 독후감들을 일별해 보았다. 문 재판관은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18년 6월 30일 “몽테스키외가 쓴 《법의 정신》을 세 번째 읽었다”면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했다.
〈공화정체(政體)에서는 재판관이 법조문에 따르는 것이 그 국가조직의 본성에 속한다. 시민의 재산과 명예 또는 생명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그에게 불리하도록 법을 해석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재판소가 고정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판결은 그것이 법률의 정확한 조문이어야 한다는 정도로 고정적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한 재판관의 개인적 견해라고 가정한다면, 사람들은 그들 의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채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게 될 것이다. (중략) 중용의 정신이 입법자의 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善)은 도덕적 선과 같이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 있다.〉
《법의 정신》을 발췌해 소개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그만큼 그가 그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소감을 달았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부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이나 시민 중 주요한 사람의 동일 단체가 이 세 가지 권력을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라는 부분은 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덜 중요하게 인식된다. 경계할 일이다.〉
부산가정법원장이던 2017년 2월 17일에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두 번째로 읽고 독후감을 올렸다. 여기서 문형배 재판관은 판사의 역할과 관련해 이렇게 썼다.
〈판사에게는 미리엘 주교의 자비심과 자베르 경감의 성실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 발장이 죽음을 앞두고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죽는 것 아무것도 아니야. 살 수 없는 것이 무서운 일이지.’〉
“우리법연구회, 사실과 다르게 왜곡돼”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 재판관은 ‘법원 내 이념 편향의 사조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모두 12개의 글을 올렸다.
부산지법 부장판사이던 2010년 2월 19일 올린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의 논리적 오류 3가지’에서 문 재판관은 ‘이른바 튀는 판결을 하는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거나 그 영향권 내에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튀는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튀는 판결을 막으려면 우리법연구회는 해체되어야 한다’는 비판들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썼다.
〈그분들은 편향된 판결을 지적한 다음, 이를 해소하려면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권력자가 법원의 판결이 좌편향되었다며 비판하는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중략) 향후를 가정하여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사건에 대하여 무죄 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 헌법이 3권 분립의 구조를 취하는 이상, 불가피할 것입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부존재(不存在)가, 튀는 판결을 예전에도 막지 못했고,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사법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하고 저 자신도 늘 이 점을 명심하여 왔으며, 앞으로 더욱 경각심을 가지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의 사법화’ 역시 경계해야 하고 이것이 적절하게 견제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훼손될 것입니다.
좋은 판사가 되려고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한 저로서는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이 좋은 판사가 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려 섭섭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이 주장하는 분들의 애국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법연구회가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인상과 이미지에 의하여 왜곡 또는 과장되어 있는 만큼, 좀 더 냉정하게 토론을 해보자는 뜻에서 부족한 이 글을 올렸습니다. 배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형배 재판관은 앞서 2009년 11월 20일에도 법원 게시판에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올해 말 (이 모임 회장) 임기가 끝나는 저로서는 일부 보수단체와 언론사가 제기하는 몇 가지 의문에 대하여 사법부 구성원에게 해명을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법연구회의 목표는 법원 개혁이 아니다”
![]() |
문형배 대행은 우리법연구회를 향한 ‘법원 내 이념 편향 사조직’이라는 비난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
〈우리는 이념 성향의 사조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념을 연구하지도 아니하고, 특정 이념에 기초하여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적 이익을 꾀하기 위해서 존립하는 모임이라면 제 임기 중에 해체를 추진했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분별은 저에게 있습니다. (중략)
우리법연구회에도, 판사가 가입한 다른 모임과 마찬가지로, 이런 견해를 가진 판사도 있고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판사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견해가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끊임없이 토론을 할 뿐 특정 이념을 내세우거나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담당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인지 여부를 조사한 다음 우리법연구회 회원임이 확인되면 황당한 판결이라는 비난과 함께 20년 전 행적까지 들춰내고 있습니다. (중략)
사법부는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곳이고 접수된 사건에만 사법권을 행사하는 수동적인 국가권력인 점을 고려하여, 사법부 판결에 대한 비판은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선진국 언론이 공유하는 상식입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목표는 법관으로서 끊임없이 하는 자기성찰”이라고 주장했다.
〈촛불집회 사건의 재판과 관련한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행위에 관하여, 많은 판사들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취지로 코트넷(법원 내부통신망-기자 주)에 글을 올리거나 판사회의에서 토론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저의 몫이 아니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우리법연구회가 선동하였다거나 주도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판사들이 선동의 대상이 된다고 가정하는 것도 참 우스운 발상이거니와 우리법연구회는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일 뿐, 법원 현안에 관하여 논의하거나 대응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일부 회원들이 그런 흐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신념에 기초할 것일 뿐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많은 회원들이 코트넷에 글을 쓰지도 아니하였고 판사회의에 참여하지도 아니하였던 점은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목표는 법원의 개혁이 아닙니다. 단지 법관으로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개선해 나가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는 이 글의 말미에서 “법원 안팎의 비판을 받아들여 코트넷에 학회 등록을 하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 데 이어 위와 같이 회원 명단까지 공개하기로 했다”면서 “학술연구단체에 대한 편향적 시각과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은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좌경 판사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나”
2009년 10월 18일에는 ‘부끄러운 대학생활’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전경들이 대학 입구에서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던 5공 시절의 풍경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등교하는 나에게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법연구회가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라고 주장하고 입증하여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 다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고 좌경 판사 물러가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먼발치에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나는 26년 전 그들에게 학생증을 제시하고 등교를 하여야 했듯이 또 다른 그들에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함으로써 좌경 판사가 아님’을 확인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법원에 출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 전에 그들은 나에게 좌경 판사가 아님을 입증할 서류로 학생증이 아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고작 학생증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 정녕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2009년 4월 23일 우리법연구회 새해 인사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 수도 전체 법관의 3%가 넘습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 소금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요? (선민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적, 사적 생활을 엄중히 하여 법원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임.) 운영위원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성의를 다하여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되도록 조직하겠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성(城)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공판중심주의와 그 敵들’
창원지법 부장판사이던 2006년 10월 8일 올린 ‘공판중심주의와 그 적들’이라는 글도 눈길을 끈다. 당시 법원 주변에서 회자(膾炙)되던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쓴 이 글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공판중심주의란, 법정에서 조사한 증거를 중심으로 재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인데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란 말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이유는 그동안 이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의 참 모습을 알기 위해서 그 적들을 나열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조서 및 진술조서에 무심코 또는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중략)
‘법정 증언은 늘 피고인 측에 의하여 왜곡되는 것이고 수사기록·진술조서는 늘 왜곡할 시간적 여유 없이 진실되게 작성된 것이다.’
‘수사기관은 공무원인데 사심에 의하여 사건을 조작하겠느냐.’ (중략)
‘범행 수단, 방법 및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방청석에서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공판중심주의란, 만인이 지켜보는 법정에서 (판사의-기자 주) 심증을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정은 공개와 투명을 생명으로 하고 공정한 조건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법정은 우선 공개와 투명을 생명으로 합니다. 법원조직법에는 심리의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만 비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실제로 강간 사건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를 제외하고 비공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법정은 공정한 조건이 보장됩니다. 피고인에게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있는 무기를 제공합니다. 증인에 대하여 신청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상대방에게도 질문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합니다. 진실은 공정의 조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입니다. 어쩌면 공개, 투명, 공정은 형제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에 관심이 가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형사재판에서는 피의자 신문조서가 증거로 채택되려면 피고인이 조서 내용에 동의해야 한다’는 2020년 개정 형사소송법을 준용(準用)하지 않기로 해서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과 성격이 다르다는 논리로 그러한 비판을 외면하고 있다.
‘프라하의 48시간’
문형배 재판관은 기행문이나 생활 단상 같은 소프트한 글들도 곧잘 올렸다. 그중에서 부산고법(창원재판부) 부장판사이던 2014년 9월 2일 올린 ‘프라하의 48시간’이라는 글은, 프라하에서 색(sack)을 도난당한 후 경찰서에 출두했던 경험을 적었다.
〈경찰서 직원은 동행한 가이드 말을 듣더니 범죄 피해 리포트를 써줄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같이 간 가이드는 도난의 증인이 아니었고, 나는 체코 말을 할 수 없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으며, 그 외 도난의 증거가 없으니 여권 분실 신고만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중략)
한국 대사관에 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에 경찰서 직원이 교체되었다. 이 직원은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다. 되도록이면 나의 말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들어주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논쟁이 길어지자 가이드가 한국 대사관에 하소연하였고, 대사관 직원이 경찰서에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보험금을 부정하게 수령하기 위하여 범죄 피해 리포트를 허위로 발급받는 사례가 많아 프라하 경찰서에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청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2시간 정도 걸려 범죄 피해 리포트를 만들고 근처 사진관에서 즉석 사진을 찍어 오후 5시 무렵에 한국 대사관에 도착하여 단수(單數)여권을 재발급 받았다. 체코 관공서는 아침 7시 반에 시작하고 오후 4시 반에 끝나는 경우가 많아 아슬아슬하게 일을 마친 셈이었다. (중략)
그리고 나는 경험했다.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큰 고통이라는 것을, 공무원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매우 답답하고 때로는 화가 난다는 것을.
그렇게 프라하의 48시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3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