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이분들을 챙겨줄 수 없어서 이곳에 입원해 계시다고 보면 된다”
⊙ “수도자가 아니라 서울 대학병원의 톱클래스 암 전문 의사인데 미련 없이 꽃동네로 오셨어요”
⊙ 후천성 뇌성마비 1급 중증 장애인인 윤순희 시인… “꽃동네 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
⊙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요한씨… 장애수당 모아 우간다 AIDS 고아들에게 계란 6500개(130만원) 기부
⊙ 현재 음성, 가평 등 국내 8개 꽃동네 시설에 2688명의 노숙인, 장애인, 노인 등 살아
⊙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신(神)이 고통 면(免)해주지 않아”
⊙ 오웅진 신부, 업무상 횡령 16건, 사기 65건, 업무방해 3건, 명예훼손 3건 등 87건으로 15년 송사… 87개 혐의 모두 무죄
⊙ “수도자가 아니라 서울 대학병원의 톱클래스 암 전문 의사인데 미련 없이 꽃동네로 오셨어요”
⊙ 후천성 뇌성마비 1급 중증 장애인인 윤순희 시인… “꽃동네 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
⊙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요한씨… 장애수당 모아 우간다 AIDS 고아들에게 계란 6500개(130만원) 기부
⊙ 현재 음성, 가평 등 국내 8개 꽃동네 시설에 2688명의 노숙인, 장애인, 노인 등 살아
⊙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신(神)이 고통 면(免)해주지 않아”
⊙ 오웅진 신부, 업무상 횡령 16건, 사기 65건, 업무방해 3건, 명예훼손 3건 등 87건으로 15년 송사… 87개 혐의 모두 무죄
- 프란치스코 교황과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 그리고 신상현 수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처음으로 충북 음성 ‘꽃동네’엘 갔다. 진작부터 찾고 싶었지만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집자(集字) 노역에 빠져 사느라 먼 길을 돌아왔다고나 할까.
엽편(葉篇)소설 같은 기사를 매달 마감하면서도 꽃동네 생각은 못 하고 살았다. 그곳 사람들의 긴 서사(敍事)를 읽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떠날 때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혼자였다. 경기도 안성 일죽면, 충북 음성 삼성면에서 승객들이 모두 내렸다. 버스 기사가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꽃동네에 가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오웅진(吳雄鎭) 신부가 세운 꽃동네. 흔히 사람들은 이곳을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이 사는 마을이라 말한다. 무연고 장애인과 무의탁 병자, 오갈 데 없는 노인을 품은 이 착한 마을을 두고 빚어진 지난 15년간의 긴 송사(訟事)를 떠올려보았다. 단 한 건의 ‘일부 유죄판결’도 없었다. “큰 복지 시설에서 무슨 비리라도 1건은 나올 것”이라는 의혹은 그렇게 잦아들었다.
“어디에 꽃이 있습니까”
꽃동네 정류장에서 내려 산기슭에 위치한 인곡자애병원으로 걸어가는데 가을바람이 쏴 하고 불어왔다. 때마침 내과 의사인 신상현(辛相賢·69) 수사가 “도착했느냐”는 전화를 걸어왔다. 흰 의사 가운을 입은 그가 병원 입구에 서서 활짝 웃고 있었다.
꽃동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동네를 둘러보고 나서 “어디에 꽃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한다. 물론 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가 온통 숲이어서 숲동네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신 수사로부터 꽃동네 이름에 얽힌 설명을 듣고 다시 꽃동네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꽃동네 설립자인 오 신부가 처음 이곳을 만들 당시 김종호 충북도지사(재임 1980년 1~9월)와 상의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오웅진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가장 사랑에 굶주린 분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맞아들이는 게 이곳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셨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데, 그 사랑의 극치를 생각하니 ‘꽃’이 연상되었고, 그래서 꽃같이 아름다운 동네라 하여 꽃동네라고 부르자고 하셨다고 해요.”
― 그래서 이런 이름이 나왔군요.
“돌아가신 오기선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이 자라나신 고향 나자렛(Nazareth)의 어원에 ‘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요. 꽃동네인 거죠. 놀랍지 않나요?”
6·25 전쟁 직후 전쟁고아 3000명을 돌봐 ‘고아의 대부(代父)’로 알려진 이가 오기선(1907~1990년) 신부다. 오웅진 신부는 이 대부가 주례하는 새벽미사를 참례하고 신부가 될 것을 결심했다고 전한다. 신 수사의 계속된 말이다.
“나무 장사와 독학으로 신학교에 들어간 오웅진 신부님이 오기선 신부님을 찾아뵙고 ‘제가 어떻게 살면 되겠느냐’고 물으셨대요.
오기선 신부님이 이런 당부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일에든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사제가 돼라.’ ‘앞으로 일을 하다 보면 반대하는 사람과 적(敵)이 생기게 될 것인데 그들을 대적하지 말고 용서와 사랑으로 인내하라.’”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
회진(回診)을 도는 신 수사 뒤를 따라 병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은 보호자가 없는 버림받은 이들이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조차 없다. 신 수사의 말이다.
“아무도 이분들을 챙겨줄 수 없어서 이곳에 입원해 계시다고 보면 됩니다. (병원비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이렇게 덧붙인다.
“이곳도 세상 병원처럼 운영하면 문을 닫아야겠죠. 소수 인력으로 버티고 있어요.”
건강보험 수가(受價)가 낮고, 신 수사 같은 수도자의 헌신이 있기에 그나마 유지되는 셈이다. 병원에서는 수녀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병실 복도에서 한 의사와 인사를 나눴다.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기자에게 긴 여운을 주었다. 서울 모 대학병원의 유명한 암(癌) 전문의 교수인데 10여 년 전 꽃동네로 왔다고 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꽃동네 봉사자인데 최소한의 급여밖에 못 드리고 있어요.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생계비 정도 드리는 편이죠. 저처럼 수도자가 아니라 서울 대형병원의 톱클래스 의사셨는데 미련 없이 꽃동네로 오셨어요.”
신 수사는 “제가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냥 내려오셨다. 명예도 돈도 다 버리신 게다. 저보다 더 훌륭하신 사람”이라고 말했다.
복도를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내면의 파장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용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세상의 양심이 형편없이 졸아들고 있다지만 그래도 세상 비탈길의 어느 한쪽엔 화덕 같은 온기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꽃동네 하느님의 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
기자는 신 수사를 통해 여러 환자를 만났다. 윤순희(57) 환자는 후천성 뇌성마비 1급 중증 장애인이다. 원래는 잘 걷고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단다. 그러다 가정의 불행과 불치병으로 30여 년을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슬픔을 겪었다. 지금은 왼쪽 발가락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이분은 말도 못 하시고 사지까지 마비됐는데, 그나마 왼쪽 엄지발가락만큼은 기능이 살아 있어 ‘네, 아니오’로 의사 표현을 하세요.
불행함이 분명한데도 얼굴에는 평화가 있고요. 기나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겪은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그런 평화입니다.”
신 수사는 어느 날 윤씨가 쓴 시를 보았고, 그 시야말로 고통 속에 피어난 꽃이란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 윤순희 마리아 시인은 꽃동네 하느님의 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입니다. 시집도 내셨는데 한 번 보여드릴게요. 아주 아주 영적(靈的)인 글입니다.”
신 수사는 윤 시인에게 기자를 소개하며 “우리 기자님이 윤순희씨를 보러 온 거야. 《월간조선》에 이름이 나올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발가락으로 ‘사랑’이라고 썼고 기자도 “사랑합니다”라고 답해주었다. 그가 활짝 웃는데, 공중에 뜬 흰 부석처럼 치아가 눈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신 수사가 건넨 윤씨의 시집을 펼쳐 봤다. 그중 한 편을 인용한다.
〈오 사랑하는 님이시여.
나를 사랑하시는 이여.
당신만이 나의 진정한 벗
나의 유일한 희망 모든 것입니다.
언제나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며
그대 생각 사무치도록 간절합니다.
오 그리운 이여 외로워하시지 마옵소서.
사랑 얘기 들려드릴게요.
위로하여 드릴게요.
실망하시지도 마옵소서.
부족하지만 힘이 되어 드리리이다.
님이 제 곁에 계시기에 이 몸은 외롭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부럽거나 겁나지 않아요.
님이 계심으로서 언제나 행복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일편단심 그대만을 사랑하고 따르리이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윤순희의 시 ‘그대만이 나의 모든 것’ 전문〉
오요한씨가 말하는 행복한 이유 3가지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요한(40)씨를 만났다. 그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한다. 기관 절개 수술을 해 목에는 튜브를 꽂아 가래를 빼내고 있었으며, 손발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손바닥을 만져보니 무척 거칠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폐렴의 합병증으로 기관 절개를 하여 등교를 못 하게 되었고 지금은 특수교사가 병원까지 와서 수업을 해준다고 한다.
“세 살 때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해 섭섭한 마음으로 미운 감정이 들었다고 해요. 그러다 오웅진 신부님의 미사 강론 때 ‘가톨릭 영성(靈性)은 사랑이고, 사랑의 핵심은 용서’라는 말을 듣고 엄마를 용서하게 되었어요.”
지난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꽃동네를 방문했을 때 교황이 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교황이 “교황을 위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고 한다.
― 그때 교황님께 스페인어로 어떻게 인사했나요?(신 수사)
“올라(Hola).”(오요한)
― 그 이후로 교황님께 기도했나요? 매일 했어요? 빼먹은 적도 있지요?(신)
“안 빼먹었어요.”(오)
신 수사가 “오늘도 기도했나요?”라고 물으니 요한씨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오늘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 이 꽃동네에 버려졌지만 3가지 이유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요한씨가 행복한 3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이유는 자기를 버린 엄마를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남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라에서 주는 장애수당, 방문객들이 더러 찾아와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준 돈을 모아 아프리카 우간다의 AIDS 고아들에게 계란을 기부한 적이 있어요. 처음 ‘계란값 보내주세요’라고 하기에 1만원 정도 기부할 줄 알았어요. 글쎄 130만원을 기부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 돈으로 계란 6500개를 선물했습니다. 그 뒤로 돈이 생기면 모아놨다가 다 남한테 주는 거예요. 몇 해 전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을 때 이재민들에게 쓰라고 50만원을, 멕시코에서 지진이 났을 때에는 40만원을 보냈어요.”
요한씨의 기부 이야기를 듣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가 행복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맑고 선한 마음이 비 갠 후 〈인왕제색도〉의 투명한 붓질처럼 느껴졌다. 계속된 신 수사의 말이다.
“몇 주 전에 필리핀에서 봉사자 78명이 왔었어요. 꽃동네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저녁밥을 전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요한씨가… (그를 보며) 그때 돈을 얼마 기부했지? 20만원? (그가 고개를 흔들자) 30만원이구나. 그래, 30만원으로 노숙인들에게 베지밀 두유 한 팩씩을 돌렸어요. 모두 300개!
제가 그날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어요. 중증 장애인 요한씨가 돌린 베지밀이라고. 그랬더니 한 할머니가 저를 붙잡고 우시며 ‘수사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날은 250명쯤 되는 노숙인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기부를 했는데 모두 모았더니 33만2000원이나 됐어요. 인도네시아의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쓰려 합니다.”
따스한 손길은 릴레이 게임의 바통처럼 전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 몸인 채로 수도회에 들여
신상현 수사는 꽃동네에서 내과 의사로 의료 봉사를 하다가 가톨릭 수도자가 되었다. 꽃동네에 온 지 올해로 37년째다.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3대 독자 외아들에 고아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감내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가난과 싸우며 우여곡절 끝에 신 수사를 의사로 만들었지만 폐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너는 전문의가 되면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도우며 살아라”는 유언을 남겼다.
착한 아들은 그 말에 순종해 꽃동네로 왔고, 병들고 버림받은 이웃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신 수사의 말이다.
“제 단점은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요. 하느님 말씀도 잘 듣고요. 그렇게 살다 보니 복(福)을 받아서… 그런데 수녀님 말씀은 잘 안 들어요. 야단만 치고….”
― 큰 잘못을 저지르고 계시네요.
이에 곁에서 듣고 있던 김명심 안드레아 수녀가 웃으며 “(신 수사님은) 수도복이든 뭐든 그냥 다 기워서 입지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신 수사가 입고 있는 수도복도 남이 입던 옷이란다.
“2014년 방한한 교황님을 뵐 때도 제일 낡고 오래된 수도복을 입고 만났다고 해요. 그게 당신 옷이니까.”(김 수녀)
철저한 청빈을 강조하는 꽃동네 수도회는 입회 시에 일절 지참금을 받지 않고 빈 몸인 채로 수도회에 들인다. 만약 수도회를 떠나게 될 경우에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 몸으로 돌아간다.
“80% 정도가 무연고자”
신 수사, 김 수녀와 함께 노인 요양 시설인 꽃동네 부활의 집을 둘러보았다. 꽃동네대학교 출신의 권지혜 야고보 수녀가 시설 곳곳을 설명해 주었다.
정원 100명의 시설인데 현재 82명이 살고 있으며, 직원 60여 명에 요양보호사가 한 40명 정도. 장기 요양기관의 경우 입소자 2.3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배치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 2.1대 1로 강화될 예정이란다.
―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나요.
권 수녀의 말이다.
“거의 대부분요. 걸으셔도 많이 걷지 못하시고 일상에서 잠깐 걸으시다가 앉으셔야 해요. 무릎 고관절이 안 좋으셔요. 와상 환자가 70~80% 정도 돼 대부분 식사 수발을 도와드려야 해요.”
― 대개가 무연고자들인가요.
신 수사의 말이다.
“80% 정도가 무연고자들이에요. 가족이 있으면 일차적으로 이곳에 오실 수 없지만 가족이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분들도 있어요. 이럴 경우 정상을 참작해 그냥 받아줍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과거엔 우리(꽃동네)한테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정부가 복지예산을 지원하니까 정부가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야 해요.”
― 발달장애인이나 노숙인, 정신장애인, 노인 등이 스스로 자립해 꽃동네를 나가는 경우도 있나요.
“나가는 경우는 두세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도망치듯 나가는 경우예요. 노숙인이나 부랑인은 야생마 같은 분들입니다. 단체 생활을 해야 하고 술은 절대 안 주죠. 그러나 담배는 피울 수 있어요. 부랑인들은 떠돌아다니던 습관 때문에 우리가 잘해줘도 나갑니다.
둘째는 재활 시스템을 거쳐 자활(自活)하는 경우입니다. 학교에 진학해 기술을 배워 자립해 세상 밖으로 나갑니다. 가족들끼리 서로 다투고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내가 첫눈에 순자씨에게 반했지”
신 수사가 노인들이 모인 곳으로 가더니 인사를 건넸다. 박순자(가명) 할머니가 신 수사에게 농담조로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 신 수사가 웃으며 “꽃동네 낙원묘지에 이분 양어머니 묘가 있는데 제가 모시고 간다 해놓고 아직까지 못 가봤다”며 미안해했다.
“이 할머니를 37년 전 처음 뵈었는데 모습이 그때와 똑같아요.”
그러더니 신 수사가 박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내가 첫눈에 순자씨에게 반했지. 완전히 홀딱 반해가지고 여길 못 떠났잖아. 여기 눌러앉았잖아. 내 첫사랑이지.”
― 박 할머니 얼굴이 빨개지신 것 같은데….
곁에 있던 김 수녀가 박 할머니에게 “용서해 줄 거야?”라고 하니, 박 할머니는 큰 소리로 웃었다.
신 수사는 노인 요양 시설을 둘러보며 누워 있는 노인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말을 걸고 손을 잡았다. 식사를 입으로 못 해 코에 줄을 하고 있거나 목에 튜브를 단 노인도 있었다. 이날 신 수사가 이들에게 한 말을 열심히 메모했는데 내용을 정리하면 몇 줄이다.
“건강하십시오” “야, 힘 세네. 장사야, 장사!” “진지 잡수셨어요?” “(무언가를 들고 있는 분에게) 그것 내려놔, 힘들어” “우리 악수 한 번 해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침묵의 도서관’
기자는 이 장기 요양 시설을 둘러보며 꽃동네가 마치 침묵의 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우물거리거나 속 시원히 속엣말을 내뱉지 못해도 말 없는 말들이 수백 권의 서사를 이루는 듯 느껴졌다. 신 수사와 김 수녀, 권 수녀를 바라보는 이들의 움푹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이들이 누운 침대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의 책처럼 보였다. 밤이 되면 이들의 이마에서, 귀에서, 입에서 불빛이 아무도 몰래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신 수사의 말이다.
“종합복지 시설이 좋은 이유는 일생 동안 같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는 일정 기간 머무르다가 떠나야 하거든요. 이 노인 요양 시설은 우리 꽃동네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장애인 시설, 정신 요양 시설, 노숙인 시설에서 지내다가 65세가 되어 체력이 떨어지면 이곳으로 오세요.
서로들 다 아는 사람이니까 한 식구로 살다가 돌아가시는 거지요. 인근에 무연고 사망자 봉안 시설인 ‘추기경 정진석 센터’가 마련돼 있는데 꽃동네 식구들과 나란히 묻힙니다.”
― 종합복지 시설에 대한 시각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규모가 커서 오해를 사는데, 이곳만 해도 80명이 소박하게 살아가거든요. 물론 소규모 시설에 사시는 분들까지 모두 더하면 2000여 명 정도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으니 제일 좋은 점이 병원입니다. 병원을 운영하려면 그래도 1000명은 넘어야 하거든요.”
현재 음성, 가평 등 국내 8개 꽃동네 시설에서 2688명이 도란도란 살고 있다. 이 중 음성이 1310명, 가평이 806명으로 가장 많이 살고 있단다.
화제를 돌려, 권 수녀가 “내일모레가 김장날이어서 오늘부터 준비하느라고 주위가 어수선하다”고 했다.
― 몇 포기나 하세요.
권 수녀의 말이다.
“요즘엔 절인 배추를 사서 하는데 절인 배추 20kg이 한 100포기쯤 되려나? 이래저래 따지면 8000포기가 좀 안 될 것 같아요. 하하하.”
서로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꽃동네가 전체적으로 2만 포기씩 하곤 했어요. 김장 전쟁이었죠.”(신 수사)
“쌓아 올린 배추가 산이 되었죠.”(권수녀)
“옛날에는 군인들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요즘은 그런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가지고….”(김 수녀)
“코로나19로 타격이 컸어요.”(권 수녀)
“그땐 2~3시간에 한 번씩 절인 배추를 뒤집어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지요. 배추를 수영장에 쌓았는데….”(김 수녀)
수녀와 트로트 가수
이들 3명의 수도자는 모두 예수의꽃동네형제회와 자매회 소속이다. 권수녀는 2006년에 자매회에 입회해 17년째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신 수사님이 제일 바쁘시죠.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제일 겸손하게 사세요. 수사님이 모범을 보여 되게 많이 감동받으며 삽니다.”(권 수녀)
“감동받는 것은 김명심 수녀님이랑 나랑 맨날 싸우는 것 때문에 감동받겠지. 23년간 싸웠어. 하하하.”(신 수사)
기자가 볼 때,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겠지만 두 분이 23년간 만나 서로 의지하며 수도자, 봉사자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권 수녀는 “제가 대학생 때도 싸우셨어요. 지금까지도 싸우신다고 하시니까…”라며 크게 웃었다.
― 멱살을 쥐고 싸우시던가요.
“이 전쟁은 아마 누구 하나 죽어야지 끝나…. 하하하!”(신 수사)
“그냥 하는 말이고….”(김 수녀)
“예전에 수사님이 한번은 진짜 사과[果]를 드리며 ‘사과합니다. 사과 드세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권 수녀)
“내가 안 그랬을 것 같은데….”(신 수사)
김명심 수녀에게 수도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됐는지 물었더니, 1992년에 입회해 32년째 한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꼭 10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꽃동네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장애인들, 두 다리를 쓰지 못해 바닥에 앉아 있는 장애 아동들의 머리에 교황이 손을 얹고 성호를 그으며 축복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권 수녀는 기자에게 김 수녀가 트로트 가수라고 폭로(?)했다. ‘죽음까지도 목숨까지도 사랑하면 다 내어줘라~’라는 복음을 트로트로 불렀다는 것이다. 노래 제목은 ‘사랑의 방법’. 그 곡이 든 CD 음반을 줬다. 꼭 듣겠다고 약속했다. 집에 와서 들어보니 흥이 절로 나는 구성진 가락에 트로트 감성을 제대로 갖춘, 혼자 듣기에는 아까운 목소리였다. 수녀와 트로트 가수라는 조합은 수사와 의사 조합만큼이나 낯설었지만 노래를 듣다 보니 꽃동네에서는 모든 직업군의 조합이 다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동네가 하는 일은 인간 구원 사업”
다음은 신 수사와의 일문 일답이다.
― 꽃동네가 꿈꾸는 자선이란 무엇인가요. 꽃동네가 꿈꾸는 복지란 무엇인가요.
“오웅진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꽃동네 복지는 사회사업도, 자선사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지사업도 아닙니다.
우리 꽃동네가 하는 일은 인간 구원(救援) 사업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보편 복지가 옳다, 선별 복지가 옳다고 싸웁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은 이들 중에 고맙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어요. 더 달라고만 하지요. 이런 ‘받을 줄만 알고 줄 줄 모르는 거지를 만드는 복지’를 하지 말자는 게 오 신부님의 생각이십니다. 그들이 받은 것 이상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그런 복지를 하자, 이게 사랑의 복지입니다.”
― 어떻게 하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나요.
“오늘 만났던 오요한씨 같은 사람의 행동이 되돌려주는 복지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버린 부모를 용서했잖아요. 그리고 남을 위해 기도합니다. 돈이 들어오면 남을 위해 기부합니다. 요한씨야말로 사랑의 복지 모델입니다. 꽃동네에선 이런 일이 보편화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사후(死後) 안구(眼球) 기증을 실천한 가족이 1600명이나 됩니다. 사체(死體) 기증을 하신 분도 100여 명이나 되고요. 그분들은 가진 게 몸밖에 없으니까… 우리 수도자들도 많은 분이 안구 기증, 사체 기증을 약속했어요.”
― 사랑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베푸는 사랑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는 말씀이군요.
“베풀면 자부심이 생기고 자긍심이 생깁니다. 꽃동네 복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달라고 할 줄만 알던 사람들이 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구원’이란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모셔다가 진정한 사랑을 베풀어 그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달라고 할 줄만 알던 사람들이 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주는 사랑으로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 자선사업, 사회사업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란 어려울 텐데.
“그렇습니다. 돈, 물질, 프로그램, 조직으로 운영하는 사회사업이나 자선사업으로 사람을, 인간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워요. 오직 내 것을 몽땅 주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내어주려는 진정한 사랑… 이웃의 고통과 죽음까지도 대신하려는 사랑만이 한 생명을 새로 태어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나누어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몽땅 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신 수사는 “꽃동네가 하는 일은 인간 구원 사업”이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어나갔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말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고, 더 주고 싶은데 더 줄 것이 없어서 마음의 가난을 누릴 때까지 이웃을 사랑하면, 그 가난의 영성으로 사는 사람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5장 3절)”
100원이 100만원처럼 보이다
충북 음성에서 차를 몰아 서울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구(舊)역사(驛舍) 앞에 노숙인 2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밤이 되니 쌀쌀했다. 기자도 따끈한 밥 한 공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한 그릇이 그리웠다. 음성 꽃동네에서 온 봉사자들과 가평 꽃동네에서 온 봉사자 몇 명이 밥과 국, 빵과 두유를 준비했다. 신상현 수사가 노숙인들에게 오요한씨 이야기를 건넸다.
“지난번에 중증 장애인 오요한씨가 준 두유를 마시고 성금 33만2000원을 모았지요? 기억 나시죠? 그 성금으로 다른 이웃을 또 도울 겁니다.
자, 어떤 사람이 우리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노숙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씨 착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신 “맞아요. 그런데 마음이 착해지려면 뭘 해야 하나요?”
노 “하느님을 믿어야 해요.”
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또 무얼 해야 되죠?”
노 “나한테 잘못한 사람한테도 잘해줘야 해요.”
신 “그걸 뭐라고 하지요?”
어느 노숙인 “용서하는 것!
신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분에게 박수 한 번 쳐주세요. (짝짝짝) 대단하십니다. 하느님은 나한테 잘못한 사람한테도 잘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착한 사람은, 하느님이 우릴 용서한 것처럼, 우리도 나한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합시다. 오늘 밥 선물 받으시고 기도하는 거예요. 나를 이렇게 쫓아내고 박해하고,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누구 이름으로 용서한다고요?”
노 “예수님 이름으로요.”
신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합시다.”
노 “아멘.”
신 “준비가 다 됐다니까 식사 기도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음식을 먹는 이, 그리고 음식을 장만한 꽃동네 어머니 봉사자분들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노 “아멘.”
노숙인들 모두 꽃동네 인사에 익숙한 지 두 팔을 둥글게 하여 머리 위로 두 손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사랑합니다”를 주고받았다. 신 수사와 노숙인들 간 주고받은 대화는 마치 연극 무대 위 정갈한 대사처럼 들렸다.
기자도 꽃동네 봉사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줬다. 왠지 늦가을 저녁, 따스한 바람이 가슴에 부는 것 같았다. 일부 노숙인은 밥값으로 몇천원을 냈다. 신 수사는 100원을 받으면 “100만원을 주셨다”며 기뻐했다.
이런 1만 배의 셈법이라면 행복해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셈법은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할 묘법으로도 보인다.
“들은 것을 실천해야”
서울역 노숙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신 수사와 기자는 가평 꽃동네로 향했다. 그곳에 자리한 노체리안드리자애병원을 비롯해 사랑의집, 은총의집, 평화의집, 온유의집, 환희의집, 희망의집 등의 시설에서 노숙인, 정신장애인, 심신장애인, 노인, 발달장애인 등 800여 명(2023년 말 현재)이 살아가고 있다. 핸들을 잡은 신 수사와 긴 대화를 주고받았다.
― 전국 각지에 있는 꽃동네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현실로 가능할 수 있는지 놀라게 됩니다.
“오웅진 신부님의 은사적(恩賜的)인 믿음, 한 사제의 헌신과 기도를 통해 이뤄진 것이지만 하느님이 함께하신 것이지요.”
― 믿음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건가요.
“조그만 겨자씨가 나무가 되듯이 그 믿음은 자라고 성장하는 거지요. 믿음은 첫째, 들음으로 생기는 거예요. 하느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해요. 성경 말씀, 신부님 말씀, 은수자(隱修者)들의 강론을 자꾸 들으면 믿음이 더 자라게 되거든요. 그걸 교의적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 믿음이 성장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들은 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실천하지 않고 (믿음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으면 공허한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 단계는 실천입니다. 우리가 알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생활로 옮기는 일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이 은사적 믿음입니다. 내가 믿고 구하는 것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이런 확신 속에 치유와 기적이 이뤄지는 겁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게 은사적 믿음이죠.”
신 수사는 오웅진 신부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분은 자기 몸을 안 돌보시고 일하세요. 심지어 아픈 것하고 일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세요. 아파도 일하라! 실제로 당신도 그렇게 사세요. 우리 수도자들은 무슨 병에 걸리면 쉬거든요. 근데 신부님은 절대 쉬지 않으세요. 한번은 심근경색이 오셔서 혈관에 스텐트를 몇 개나 박으셨는데도 시술 다음 날 퇴원하시고선 (꽃동네로) 돌아가셔서 바로 일하셨어요.”
‘고통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
― 꽃동네의 가난한 이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신은 왜 고통받는 이들을 곁에 두셨을까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나요.
“악한 이가 잘되고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답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리스도에게 답이 있어요. 신자들에게 ‘예수님이 왜 죽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요. 예수님도 의롭게 사시다 고통을 당하셨어요. 그러니 세상의 의인들도 고통을 당할 수밖에요.”
― 왜 가난한 이는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나요.
“자기 눈으로 보기에 죄인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게 부럽고 불공평한 세상 같고,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참된 행복은 현세(現世)의 것이 아니에요. 내세(來世)의 것입니다. 현세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영원히 벌을 받을 것 같지만 그분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세가 없다면 이 세상은 정말 부조리하고 말도 안 되는 세상일 겁니다. 세상은 불공정하게 보일지 모르나 하느님은 공평무사한 분이십니다.”
― 인간에게 고통이란 무엇입니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고통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라고요. 나에게 허락되는 모든 고통이 나를 구원하고 교회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신비 이외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수도자들은 고통을 겪어야 해요.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요.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그걸로 다 설명이 돼요.”
신 수사는 음성 꽃동네 병원에서 만났던 윤순희씨를 떠올렸다.
“그분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입니다. 우리한텐 미소를 보이셨지만 많이 아프시죠. 몸도 아프지만 밥 먹는 것도 고역이에요. 밥 한 끼 먹으려면 1시간씩 걸리는데 먹을 때마다 음식이 목에 걸리는 고통을 겪으셔야 해요. 온몸에 강직이 와서 자세를 바꿔야 하는데도 우리가 자세를 바꿔줄 때까지 꼼짝도 못 하고 지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육체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한다는 마음의 고통도 얼마나 클까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 고통을 정의할 수 있나요.
“저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어요. 하나는 죄인들이 겪는 고통이 있어요. 죄의 결과로서 오는 고통 말입니다.
그런데 죄 없이 겪는 고통이 있어요. 그건 의인들이 겪는 고통이에요. 하느님은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고통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도 있습니다. 세상은 착하게 사는 사람을 박해하고 시기 질투를 겪게 합니다. 죄인도 고통을 겪고, 의인도 고통을 겪지만 고통의 동기는 전혀 다릅니다.”
― 그렇다면 저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통을 잘 분류하고 유익한 고통으로 만들면 됩니다. 오요한씨, 윤순희씨처럼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유익한 고통으로 바꿔서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게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밤 10시 넘어 가평 꽃동네 병원에 도착했다. 음성에서 서울역, 그리고 가평까지 신 수사는 직접 작은 경차를 몰아 수백km를 달렸다. 몸이 상당히 피곤할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밤늦은 시각에도 환자들을 둘러보았고 일일이 환자들의 아픈 부위를 살펴보며 이렇게 말을 건넸다.
“편안하세요? 힘든 것 말씀해 보세요. 괜찮아요?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더러 몇몇 환자가 “고맙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병을 잘 받아들이고 잘 참아줘서 너무 감사해요.”
“구○○씨. 잘 견뎌주어 고맙습니다. 이렇게 예의 바르시고 착하시고, 다 받아들이시고… 감사해요.”
“오늘은 손님이랑 같이 왔어요. 회진 도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 고생은 무슨 고생. 박○○씨처럼 숨찬 게 고생이지. 가래가 많이 나왔구나. 약을 써도 폐렴이 잘 안 잡히네….”
뒤에서 지켜보던 기자는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신 수사는 고된 일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했지만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회진이란 영혼 하나하나를 달래주는 일종의 의식(儀式)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치에 초대받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
이튿날 새벽, 가평 꽃동네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례했다.
경기 포천시 화현 이벽(李檗·1754~ 1786년) 성지(聖地)의 고봉연 요셉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사제와 수사·수녀와 꽃동네 가족들, 외부에서 온 신자들이 성당을 메우고 있었다.
춘천교구 소속인 고 신부는 성경의 루카(누가)복음 14장 15절부터 24절까지를 또박또박 읽었다. 이날 복음 말씀은 비유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어 많은 사람을 초대했지만, 초대받은 이들은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않았다. 밭을 보러 가야 한다거나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걸 보러 잔칫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종이 돌아와 그 사실을 알렸더니 집주인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 눈먼 이들,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오라고 명한다.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다’고 하자 다시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고 말한다.
이 비유를 들며 예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성경은 전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고 신부는 복음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 뜻, 내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가톨릭 기도서에 적힌 ‘구원을 비는 기도’를 함께 낭송하자고 권했다. 구원의 기도는 이렇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나자렛의 어원에 ‘꽃’이 들어 있다고 해서, 기자는 다른 의미는 무엇이 더 있을까 찾아보았다. 히브리어로 ‘나자렛’은 ‘싹트다’ ‘솟아나다’ ‘잔가지’ ‘지키는 장소’를 내포한다고 나와 있다. 꽃같이 아름다운 동네는 사랑을 싹트게 하고 솟아나게 하며 가지를 뻗어 실천하는 사랑의 꽃향기가 피어나는 듯하다.
참, 신 수사가 기사 말미에 꽃동네 후원 계좌번호를 넣어달라고 꼭 부탁했는데 꽃동네 안내전화로 대신한다. 043-879-0151/0100.⊙
엽편(葉篇)소설 같은 기사를 매달 마감하면서도 꽃동네 생각은 못 하고 살았다. 그곳 사람들의 긴 서사(敍事)를 읽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떠날 때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혼자였다. 경기도 안성 일죽면, 충북 음성 삼성면에서 승객들이 모두 내렸다. 버스 기사가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꽃동네에 가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오웅진(吳雄鎭) 신부가 세운 꽃동네. 흔히 사람들은 이곳을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이 사는 마을이라 말한다. 무연고 장애인과 무의탁 병자, 오갈 데 없는 노인을 품은 이 착한 마을을 두고 빚어진 지난 15년간의 긴 송사(訟事)를 떠올려보았다. 단 한 건의 ‘일부 유죄판결’도 없었다. “큰 복지 시설에서 무슨 비리라도 1건은 나올 것”이라는 의혹은 그렇게 잦아들었다.
| 꽃동네 15년 송사의 결과는… 87개 혐의 모두 무죄 2015년 6월 23일의 대법원(2015두39750) 판결과 같은 해 7월 9일의 대법원(2014두47600) 판결로써 지난 15년간 계속된 꽃동네의 시련(試鍊)은 끝이 났다. 2006년 11월 17일에 대전고등법원(2005노452)이 오웅진 신부에 대한 1심의 일부 유죄판결을 취소하고 전부 무죄판결을 한 데 이어 2007년 12월 27일 대법원(2006도8870)에서도 전부 무죄판결을 내린 지 7년 반여 만에, 민사와 아울러 행정소송에서 전부 승소해 결국 2015년 7월 꽃동네의 소송과 이 시련은 막을 내렸다. 오 신부에 대한 기소 내용은 업무상 횡령 16건, 사기 65건, 업무방해 3건, 명예훼손 3건 등 87건이나 됐을 만큼 막중했다. 이 중 가장 가벼운 한 건이라도 유죄가 확정됐다면, 다시 말해 87건 중 86건이 무죄라 해도 사람들은 그 1건의 잘못만 기억했으리라. 어찌 보면 ‘일부 무죄’는 칼을 빼 든 사법당국의 체면을 위한 관료주의적 퇴로(退路)였는지도 모른다. 오 신부는 결국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 작고한 임광규(林炚圭) 변호사의 헌신적 변론이 큰 힘이 되었다. |
“어디에 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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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동네를 건립한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가 꿈꾸는 세상은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
꽃동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동네를 둘러보고 나서 “어디에 꽃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한다. 물론 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가 온통 숲이어서 숲동네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신 수사로부터 꽃동네 이름에 얽힌 설명을 듣고 다시 꽃동네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꽃동네 설립자인 오 신부가 처음 이곳을 만들 당시 김종호 충북도지사(재임 1980년 1~9월)와 상의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오웅진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가장 사랑에 굶주린 분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맞아들이는 게 이곳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셨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데, 그 사랑의 극치를 생각하니 ‘꽃’이 연상되었고, 그래서 꽃같이 아름다운 동네라 하여 꽃동네라고 부르자고 하셨다고 해요.”
― 그래서 이런 이름이 나왔군요.
“돌아가신 오기선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이 자라나신 고향 나자렛(Nazareth)의 어원에 ‘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요. 꽃동네인 거죠. 놀랍지 않나요?”
6·25 전쟁 직후 전쟁고아 3000명을 돌봐 ‘고아의 대부(代父)’로 알려진 이가 오기선(1907~1990년) 신부다. 오웅진 신부는 이 대부가 주례하는 새벽미사를 참례하고 신부가 될 것을 결심했다고 전한다. 신 수사의 계속된 말이다.
“나무 장사와 독학으로 신학교에 들어간 오웅진 신부님이 오기선 신부님을 찾아뵙고 ‘제가 어떻게 살면 되겠느냐’고 물으셨대요.
오기선 신부님이 이런 당부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일에든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사제가 돼라.’ ‘앞으로 일을 하다 보면 반대하는 사람과 적(敵)이 생기게 될 것인데 그들을 대적하지 말고 용서와 사랑으로 인내하라.’”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
회진(回診)을 도는 신 수사 뒤를 따라 병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은 보호자가 없는 버림받은 이들이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조차 없다. 신 수사의 말이다.
“아무도 이분들을 챙겨줄 수 없어서 이곳에 입원해 계시다고 보면 됩니다. (병원비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이렇게 덧붙인다.
“이곳도 세상 병원처럼 운영하면 문을 닫아야겠죠. 소수 인력으로 버티고 있어요.”
건강보험 수가(受價)가 낮고, 신 수사 같은 수도자의 헌신이 있기에 그나마 유지되는 셈이다. 병원에서는 수녀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병실 복도에서 한 의사와 인사를 나눴다.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기자에게 긴 여운을 주었다. 서울 모 대학병원의 유명한 암(癌) 전문의 교수인데 10여 년 전 꽃동네로 왔다고 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꽃동네 봉사자인데 최소한의 급여밖에 못 드리고 있어요.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생계비 정도 드리는 편이죠. 저처럼 수도자가 아니라 서울 대형병원의 톱클래스 의사셨는데 미련 없이 꽃동네로 오셨어요.”
신 수사는 “제가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냥 내려오셨다. 명예도 돈도 다 버리신 게다. 저보다 더 훌륭하신 사람”이라고 말했다.
복도를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내면의 파장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용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세상의 양심이 형편없이 졸아들고 있다지만 그래도 세상 비탈길의 어느 한쪽엔 화덕 같은 온기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꽃동네 하느님의 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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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동네 시인 윤순희씨. 사진=꽃동네 |
“이분은 말도 못 하시고 사지까지 마비됐는데, 그나마 왼쪽 엄지발가락만큼은 기능이 살아 있어 ‘네, 아니오’로 의사 표현을 하세요.
불행함이 분명한데도 얼굴에는 평화가 있고요. 기나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겪은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그런 평화입니다.”
신 수사는 어느 날 윤씨가 쓴 시를 보았고, 그 시야말로 고통 속에 피어난 꽃이란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 윤순희 마리아 시인은 꽃동네 하느님의 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입니다. 시집도 내셨는데 한 번 보여드릴게요. 아주 아주 영적(靈的)인 글입니다.”
신 수사는 윤 시인에게 기자를 소개하며 “우리 기자님이 윤순희씨를 보러 온 거야. 《월간조선》에 이름이 나올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발가락으로 ‘사랑’이라고 썼고 기자도 “사랑합니다”라고 답해주었다. 그가 활짝 웃는데, 공중에 뜬 흰 부석처럼 치아가 눈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신 수사가 건넨 윤씨의 시집을 펼쳐 봤다. 그중 한 편을 인용한다.
〈오 사랑하는 님이시여.
나를 사랑하시는 이여.
당신만이 나의 진정한 벗
나의 유일한 희망 모든 것입니다.
언제나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며
그대 생각 사무치도록 간절합니다.
오 그리운 이여 외로워하시지 마옵소서.
사랑 얘기 들려드릴게요.
위로하여 드릴게요.
실망하시지도 마옵소서.
부족하지만 힘이 되어 드리리이다.
님이 제 곁에 계시기에 이 몸은 외롭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부럽거나 겁나지 않아요.
님이 계심으로서 언제나 행복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일편단심 그대만을 사랑하고 따르리이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윤순희의 시 ‘그대만이 나의 모든 것’ 전문〉
오요한씨가 말하는 행복한 이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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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현 수사가 오요한씨와 대화하고 있다. |
“세 살 때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해 섭섭한 마음으로 미운 감정이 들었다고 해요. 그러다 오웅진 신부님의 미사 강론 때 ‘가톨릭 영성(靈性)은 사랑이고, 사랑의 핵심은 용서’라는 말을 듣고 엄마를 용서하게 되었어요.”
지난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꽃동네를 방문했을 때 교황이 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교황이 “교황을 위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고 한다.
― 그때 교황님께 스페인어로 어떻게 인사했나요?(신 수사)
“올라(Hola).”(오요한)
― 그 이후로 교황님께 기도했나요? 매일 했어요? 빼먹은 적도 있지요?(신)
“안 빼먹었어요.”(오)
신 수사가 “오늘도 기도했나요?”라고 물으니 요한씨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오늘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 이 꽃동네에 버려졌지만 3가지 이유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신 수사의 말이다.
“요한씨가 행복한 3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이유는 자기를 버린 엄마를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남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라에서 주는 장애수당, 방문객들이 더러 찾아와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준 돈을 모아 아프리카 우간다의 AIDS 고아들에게 계란을 기부한 적이 있어요. 처음 ‘계란값 보내주세요’라고 하기에 1만원 정도 기부할 줄 알았어요. 글쎄 130만원을 기부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 돈으로 계란 6500개를 선물했습니다. 그 뒤로 돈이 생기면 모아놨다가 다 남한테 주는 거예요. 몇 해 전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을 때 이재민들에게 쓰라고 50만원을, 멕시코에서 지진이 났을 때에는 40만원을 보냈어요.”
요한씨의 기부 이야기를 듣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가 행복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맑고 선한 마음이 비 갠 후 〈인왕제색도〉의 투명한 붓질처럼 느껴졌다. 계속된 신 수사의 말이다.
“몇 주 전에 필리핀에서 봉사자 78명이 왔었어요. 꽃동네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저녁밥을 전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요한씨가… (그를 보며) 그때 돈을 얼마 기부했지? 20만원? (그가 고개를 흔들자) 30만원이구나. 그래, 30만원으로 노숙인들에게 베지밀 두유 한 팩씩을 돌렸어요. 모두 300개!
제가 그날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어요. 중증 장애인 요한씨가 돌린 베지밀이라고. 그랬더니 한 할머니가 저를 붙잡고 우시며 ‘수사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날은 250명쯤 되는 노숙인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기부를 했는데 모두 모았더니 33만2000원이나 됐어요. 인도네시아의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쓰려 합니다.”
따스한 손길은 릴레이 게임의 바통처럼 전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 몸인 채로 수도회에 들여
신상현 수사는 꽃동네에서 내과 의사로 의료 봉사를 하다가 가톨릭 수도자가 되었다. 꽃동네에 온 지 올해로 37년째다.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3대 독자 외아들에 고아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감내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가난과 싸우며 우여곡절 끝에 신 수사를 의사로 만들었지만 폐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너는 전문의가 되면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도우며 살아라”는 유언을 남겼다.
착한 아들은 그 말에 순종해 꽃동네로 왔고, 병들고 버림받은 이웃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신 수사의 말이다.
“제 단점은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요. 하느님 말씀도 잘 듣고요. 그렇게 살다 보니 복(福)을 받아서… 그런데 수녀님 말씀은 잘 안 들어요. 야단만 치고….”
― 큰 잘못을 저지르고 계시네요.
이에 곁에서 듣고 있던 김명심 안드레아 수녀가 웃으며 “(신 수사님은) 수도복이든 뭐든 그냥 다 기워서 입지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신 수사가 입고 있는 수도복도 남이 입던 옷이란다.
“2014년 방한한 교황님을 뵐 때도 제일 낡고 오래된 수도복을 입고 만났다고 해요. 그게 당신 옷이니까.”(김 수녀)
철저한 청빈을 강조하는 꽃동네 수도회는 입회 시에 일절 지참금을 받지 않고 빈 몸인 채로 수도회에 들인다. 만약 수도회를 떠나게 될 경우에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 몸으로 돌아간다.
“80% 정도가 무연고자”
신 수사, 김 수녀와 함께 노인 요양 시설인 꽃동네 부활의 집을 둘러보았다. 꽃동네대학교 출신의 권지혜 야고보 수녀가 시설 곳곳을 설명해 주었다.
정원 100명의 시설인데 현재 82명이 살고 있으며, 직원 60여 명에 요양보호사가 한 40명 정도. 장기 요양기관의 경우 입소자 2.3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배치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 2.1대 1로 강화될 예정이란다.
―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나요.
권 수녀의 말이다.
“거의 대부분요. 걸으셔도 많이 걷지 못하시고 일상에서 잠깐 걸으시다가 앉으셔야 해요. 무릎 고관절이 안 좋으셔요. 와상 환자가 70~80% 정도 돼 대부분 식사 수발을 도와드려야 해요.”
― 대개가 무연고자들인가요.
신 수사의 말이다.
“80% 정도가 무연고자들이에요. 가족이 있으면 일차적으로 이곳에 오실 수 없지만 가족이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분들도 있어요. 이럴 경우 정상을 참작해 그냥 받아줍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과거엔 우리(꽃동네)한테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정부가 복지예산을 지원하니까 정부가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야 해요.”
― 발달장애인이나 노숙인, 정신장애인, 노인 등이 스스로 자립해 꽃동네를 나가는 경우도 있나요.
“나가는 경우는 두세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도망치듯 나가는 경우예요. 노숙인이나 부랑인은 야생마 같은 분들입니다. 단체 생활을 해야 하고 술은 절대 안 주죠. 그러나 담배는 피울 수 있어요. 부랑인들은 떠돌아다니던 습관 때문에 우리가 잘해줘도 나갑니다.
둘째는 재활 시스템을 거쳐 자활(自活)하는 경우입니다. 학교에 진학해 기술을 배워 자립해 세상 밖으로 나갑니다. 가족들끼리 서로 다투고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내가 첫눈에 순자씨에게 반했지”
신 수사가 노인들이 모인 곳으로 가더니 인사를 건넸다. 박순자(가명) 할머니가 신 수사에게 농담조로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 신 수사가 웃으며 “꽃동네 낙원묘지에 이분 양어머니 묘가 있는데 제가 모시고 간다 해놓고 아직까지 못 가봤다”며 미안해했다.
“이 할머니를 37년 전 처음 뵈었는데 모습이 그때와 똑같아요.”
그러더니 신 수사가 박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내가 첫눈에 순자씨에게 반했지. 완전히 홀딱 반해가지고 여길 못 떠났잖아. 여기 눌러앉았잖아. 내 첫사랑이지.”
― 박 할머니 얼굴이 빨개지신 것 같은데….
곁에 있던 김 수녀가 박 할머니에게 “용서해 줄 거야?”라고 하니, 박 할머니는 큰 소리로 웃었다.
신 수사는 노인 요양 시설을 둘러보며 누워 있는 노인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말을 걸고 손을 잡았다. 식사를 입으로 못 해 코에 줄을 하고 있거나 목에 튜브를 단 노인도 있었다. 이날 신 수사가 이들에게 한 말을 열심히 메모했는데 내용을 정리하면 몇 줄이다.
“건강하십시오” “야, 힘 세네. 장사야, 장사!” “진지 잡수셨어요?” “(무언가를 들고 있는 분에게) 그것 내려놔, 힘들어” “우리 악수 한 번 해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침묵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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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동네 수도자들. 왼쪽부터 신상현 수사, 권지혜 수녀, 김명심 수녀. |
“종합복지 시설이 좋은 이유는 일생 동안 같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는 일정 기간 머무르다가 떠나야 하거든요. 이 노인 요양 시설은 우리 꽃동네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장애인 시설, 정신 요양 시설, 노숙인 시설에서 지내다가 65세가 되어 체력이 떨어지면 이곳으로 오세요.
서로들 다 아는 사람이니까 한 식구로 살다가 돌아가시는 거지요. 인근에 무연고 사망자 봉안 시설인 ‘추기경 정진석 센터’가 마련돼 있는데 꽃동네 식구들과 나란히 묻힙니다.”
― 종합복지 시설에 대한 시각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규모가 커서 오해를 사는데, 이곳만 해도 80명이 소박하게 살아가거든요. 물론 소규모 시설에 사시는 분들까지 모두 더하면 2000여 명 정도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으니 제일 좋은 점이 병원입니다. 병원을 운영하려면 그래도 1000명은 넘어야 하거든요.”
현재 음성, 가평 등 국내 8개 꽃동네 시설에서 2688명이 도란도란 살고 있다. 이 중 음성이 1310명, 가평이 806명으로 가장 많이 살고 있단다.
화제를 돌려, 권 수녀가 “내일모레가 김장날이어서 오늘부터 준비하느라고 주위가 어수선하다”고 했다.
― 몇 포기나 하세요.
권 수녀의 말이다.
“요즘엔 절인 배추를 사서 하는데 절인 배추 20kg이 한 100포기쯤 되려나? 이래저래 따지면 8000포기가 좀 안 될 것 같아요. 하하하.”
서로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꽃동네가 전체적으로 2만 포기씩 하곤 했어요. 김장 전쟁이었죠.”(신 수사)
“쌓아 올린 배추가 산이 되었죠.”(권수녀)
“옛날에는 군인들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요즘은 그런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가지고….”(김 수녀)
“코로나19로 타격이 컸어요.”(권 수녀)
“그땐 2~3시간에 한 번씩 절인 배추를 뒤집어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지요. 배추를 수영장에 쌓았는데….”(김 수녀)
수녀와 트로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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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인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음성 꽃동네를 방문한 모습이다. 사진=교황방문위원회 |
“신 수사님이 제일 바쁘시죠.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제일 겸손하게 사세요. 수사님이 모범을 보여 되게 많이 감동받으며 삽니다.”(권 수녀)
“감동받는 것은 김명심 수녀님이랑 나랑 맨날 싸우는 것 때문에 감동받겠지. 23년간 싸웠어. 하하하.”(신 수사)
기자가 볼 때,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겠지만 두 분이 23년간 만나 서로 의지하며 수도자, 봉사자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권 수녀는 “제가 대학생 때도 싸우셨어요. 지금까지도 싸우신다고 하시니까…”라며 크게 웃었다.
― 멱살을 쥐고 싸우시던가요.
“이 전쟁은 아마 누구 하나 죽어야지 끝나…. 하하하!”(신 수사)
“그냥 하는 말이고….”(김 수녀)
“예전에 수사님이 한번은 진짜 사과[果]를 드리며 ‘사과합니다. 사과 드세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권 수녀)
“내가 안 그랬을 것 같은데….”(신 수사)
김명심 수녀에게 수도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됐는지 물었더니, 1992년에 입회해 32년째 한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꼭 10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꽃동네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장애인들, 두 다리를 쓰지 못해 바닥에 앉아 있는 장애 아동들의 머리에 교황이 손을 얹고 성호를 그으며 축복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권 수녀는 기자에게 김 수녀가 트로트 가수라고 폭로(?)했다. ‘죽음까지도 목숨까지도 사랑하면 다 내어줘라~’라는 복음을 트로트로 불렀다는 것이다. 노래 제목은 ‘사랑의 방법’. 그 곡이 든 CD 음반을 줬다. 꼭 듣겠다고 약속했다. 집에 와서 들어보니 흥이 절로 나는 구성진 가락에 트로트 감성을 제대로 갖춘, 혼자 듣기에는 아까운 목소리였다. 수녀와 트로트 가수라는 조합은 수사와 의사 조합만큼이나 낯설었지만 노래를 듣다 보니 꽃동네에서는 모든 직업군의 조합이 다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동네가 하는 일은 인간 구원 사업”
다음은 신 수사와의 일문 일답이다.
― 꽃동네가 꿈꾸는 자선이란 무엇인가요. 꽃동네가 꿈꾸는 복지란 무엇인가요.
“오웅진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꽃동네 복지는 사회사업도, 자선사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지사업도 아닙니다.
우리 꽃동네가 하는 일은 인간 구원(救援) 사업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보편 복지가 옳다, 선별 복지가 옳다고 싸웁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은 이들 중에 고맙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어요. 더 달라고만 하지요. 이런 ‘받을 줄만 알고 줄 줄 모르는 거지를 만드는 복지’를 하지 말자는 게 오 신부님의 생각이십니다. 그들이 받은 것 이상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그런 복지를 하자, 이게 사랑의 복지입니다.”
― 어떻게 하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나요.
“오늘 만났던 오요한씨 같은 사람의 행동이 되돌려주는 복지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버린 부모를 용서했잖아요. 그리고 남을 위해 기도합니다. 돈이 들어오면 남을 위해 기부합니다. 요한씨야말로 사랑의 복지 모델입니다. 꽃동네에선 이런 일이 보편화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사후(死後) 안구(眼球) 기증을 실천한 가족이 1600명이나 됩니다. 사체(死體) 기증을 하신 분도 100여 명이나 되고요. 그분들은 가진 게 몸밖에 없으니까… 우리 수도자들도 많은 분이 안구 기증, 사체 기증을 약속했어요.”
― 사랑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베푸는 사랑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는 말씀이군요.
“베풀면 자부심이 생기고 자긍심이 생깁니다. 꽃동네 복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달라고 할 줄만 알던 사람들이 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구원’이란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모셔다가 진정한 사랑을 베풀어 그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달라고 할 줄만 알던 사람들이 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주는 사랑으로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 자선사업, 사회사업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란 어려울 텐데.
“그렇습니다. 돈, 물질, 프로그램, 조직으로 운영하는 사회사업이나 자선사업으로 사람을, 인간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워요. 오직 내 것을 몽땅 주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내어주려는 진정한 사랑… 이웃의 고통과 죽음까지도 대신하려는 사랑만이 한 생명을 새로 태어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나누어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몽땅 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신 수사는 “꽃동네가 하는 일은 인간 구원 사업”이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어나갔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말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고, 더 주고 싶은데 더 줄 것이 없어서 마음의 가난을 누릴 때까지 이웃을 사랑하면, 그 가난의 영성으로 사는 사람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5장 3절)”
100원이 100만원처럼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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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과 가평 꽃동네 수도자와 봉사자들이 서울역 노숙인 봉사를 마친 뒤 기도와 감사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지난번에 중증 장애인 오요한씨가 준 두유를 마시고 성금 33만2000원을 모았지요? 기억 나시죠? 그 성금으로 다른 이웃을 또 도울 겁니다.
자, 어떤 사람이 우리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노숙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씨 착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신 “맞아요. 그런데 마음이 착해지려면 뭘 해야 하나요?”
노 “하느님을 믿어야 해요.”
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또 무얼 해야 되죠?”
노 “나한테 잘못한 사람한테도 잘해줘야 해요.”
신 “그걸 뭐라고 하지요?”
어느 노숙인 “용서하는 것!
신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분에게 박수 한 번 쳐주세요. (짝짝짝) 대단하십니다. 하느님은 나한테 잘못한 사람한테도 잘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착한 사람은, 하느님이 우릴 용서한 것처럼, 우리도 나한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합시다. 오늘 밥 선물 받으시고 기도하는 거예요. 나를 이렇게 쫓아내고 박해하고,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누구 이름으로 용서한다고요?”
노 “예수님 이름으로요.”
신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합시다.”
노 “아멘.”
신 “준비가 다 됐다니까 식사 기도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음식을 먹는 이, 그리고 음식을 장만한 꽃동네 어머니 봉사자분들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노 “아멘.”
노숙인들 모두 꽃동네 인사에 익숙한 지 두 팔을 둥글게 하여 머리 위로 두 손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사랑합니다”를 주고받았다. 신 수사와 노숙인들 간 주고받은 대화는 마치 연극 무대 위 정갈한 대사처럼 들렸다.
기자도 꽃동네 봉사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줬다. 왠지 늦가을 저녁, 따스한 바람이 가슴에 부는 것 같았다. 일부 노숙인은 밥값으로 몇천원을 냈다. 신 수사는 100원을 받으면 “100만원을 주셨다”며 기뻐했다.
이런 1만 배의 셈법이라면 행복해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셈법은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할 묘법으로도 보인다.
“들은 것을 실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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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동네 건립을 위해 헌신한 오웅진 신부와 신상현 수사. |
― 전국 각지에 있는 꽃동네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현실로 가능할 수 있는지 놀라게 됩니다.
“오웅진 신부님의 은사적(恩賜的)인 믿음, 한 사제의 헌신과 기도를 통해 이뤄진 것이지만 하느님이 함께하신 것이지요.”
― 믿음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건가요.
“조그만 겨자씨가 나무가 되듯이 그 믿음은 자라고 성장하는 거지요. 믿음은 첫째, 들음으로 생기는 거예요. 하느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해요. 성경 말씀, 신부님 말씀, 은수자(隱修者)들의 강론을 자꾸 들으면 믿음이 더 자라게 되거든요. 그걸 교의적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 믿음이 성장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들은 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실천하지 않고 (믿음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으면 공허한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 단계는 실천입니다. 우리가 알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생활로 옮기는 일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이 은사적 믿음입니다. 내가 믿고 구하는 것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이런 확신 속에 치유와 기적이 이뤄지는 겁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게 은사적 믿음이죠.”
신 수사는 오웅진 신부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분은 자기 몸을 안 돌보시고 일하세요. 심지어 아픈 것하고 일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세요. 아파도 일하라! 실제로 당신도 그렇게 사세요. 우리 수도자들은 무슨 병에 걸리면 쉬거든요. 근데 신부님은 절대 쉬지 않으세요. 한번은 심근경색이 오셔서 혈관에 스텐트를 몇 개나 박으셨는데도 시술 다음 날 퇴원하시고선 (꽃동네로) 돌아가셔서 바로 일하셨어요.”
‘고통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
― 꽃동네의 가난한 이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신은 왜 고통받는 이들을 곁에 두셨을까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나요.
“악한 이가 잘되고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답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리스도에게 답이 있어요. 신자들에게 ‘예수님이 왜 죽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요. 예수님도 의롭게 사시다 고통을 당하셨어요. 그러니 세상의 의인들도 고통을 당할 수밖에요.”
― 왜 가난한 이는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나요.
“자기 눈으로 보기에 죄인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게 부럽고 불공평한 세상 같고,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참된 행복은 현세(現世)의 것이 아니에요. 내세(來世)의 것입니다. 현세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영원히 벌을 받을 것 같지만 그분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세가 없다면 이 세상은 정말 부조리하고 말도 안 되는 세상일 겁니다. 세상은 불공정하게 보일지 모르나 하느님은 공평무사한 분이십니다.”
― 인간에게 고통이란 무엇입니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고통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라고요. 나에게 허락되는 모든 고통이 나를 구원하고 교회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신비 이외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수도자들은 고통을 겪어야 해요.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요.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그걸로 다 설명이 돼요.”
신 수사는 음성 꽃동네 병원에서 만났던 윤순희씨를 떠올렸다.
“그분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입니다. 우리한텐 미소를 보이셨지만 많이 아프시죠. 몸도 아프지만 밥 먹는 것도 고역이에요. 밥 한 끼 먹으려면 1시간씩 걸리는데 먹을 때마다 음식이 목에 걸리는 고통을 겪으셔야 해요. 온몸에 강직이 와서 자세를 바꿔야 하는데도 우리가 자세를 바꿔줄 때까지 꼼짝도 못 하고 지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육체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한다는 마음의 고통도 얼마나 클까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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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평 꽃동네 병원에서 신상현 수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암 환자를 다독이고 있다. |
“저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어요. 하나는 죄인들이 겪는 고통이 있어요. 죄의 결과로서 오는 고통 말입니다.
그런데 죄 없이 겪는 고통이 있어요. 그건 의인들이 겪는 고통이에요. 하느님은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고통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도 있습니다. 세상은 착하게 사는 사람을 박해하고 시기 질투를 겪게 합니다. 죄인도 고통을 겪고, 의인도 고통을 겪지만 고통의 동기는 전혀 다릅니다.”
― 그렇다면 저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통을 잘 분류하고 유익한 고통으로 만들면 됩니다. 오요한씨, 윤순희씨처럼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유익한 고통으로 바꿔서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게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밤 10시 넘어 가평 꽃동네 병원에 도착했다. 음성에서 서울역, 그리고 가평까지 신 수사는 직접 작은 경차를 몰아 수백km를 달렸다. 몸이 상당히 피곤할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밤늦은 시각에도 환자들을 둘러보았고 일일이 환자들의 아픈 부위를 살펴보며 이렇게 말을 건넸다.
“편안하세요? 힘든 것 말씀해 보세요. 괜찮아요?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더러 몇몇 환자가 “고맙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병을 잘 받아들이고 잘 참아줘서 너무 감사해요.”
“구○○씨. 잘 견뎌주어 고맙습니다. 이렇게 예의 바르시고 착하시고, 다 받아들이시고… 감사해요.”
“오늘은 손님이랑 같이 왔어요. 회진 도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 고생은 무슨 고생. 박○○씨처럼 숨찬 게 고생이지. 가래가 많이 나왔구나. 약을 써도 폐렴이 잘 안 잡히네….”
뒤에서 지켜보던 기자는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신 수사는 고된 일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했지만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회진이란 영혼 하나하나를 달래주는 일종의 의식(儀式)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치에 초대받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
이튿날 새벽, 가평 꽃동네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례했다.
경기 포천시 화현 이벽(李檗·1754~ 1786년) 성지(聖地)의 고봉연 요셉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사제와 수사·수녀와 꽃동네 가족들, 외부에서 온 신자들이 성당을 메우고 있었다.
춘천교구 소속인 고 신부는 성경의 루카(누가)복음 14장 15절부터 24절까지를 또박또박 읽었다. 이날 복음 말씀은 비유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어 많은 사람을 초대했지만, 초대받은 이들은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않았다. 밭을 보러 가야 한다거나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걸 보러 잔칫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종이 돌아와 그 사실을 알렸더니 집주인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 눈먼 이들,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오라고 명한다.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다’고 하자 다시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고 말한다.
이 비유를 들며 예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성경은 전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고 신부는 복음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 뜻, 내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가톨릭 기도서에 적힌 ‘구원을 비는 기도’를 함께 낭송하자고 권했다. 구원의 기도는 이렇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나자렛의 어원에 ‘꽃’이 들어 있다고 해서, 기자는 다른 의미는 무엇이 더 있을까 찾아보았다. 히브리어로 ‘나자렛’은 ‘싹트다’ ‘솟아나다’ ‘잔가지’ ‘지키는 장소’를 내포한다고 나와 있다. 꽃같이 아름다운 동네는 사랑을 싹트게 하고 솟아나게 하며 가지를 뻗어 실천하는 사랑의 꽃향기가 피어나는 듯하다.
참, 신 수사가 기사 말미에 꽃동네 후원 계좌번호를 넣어달라고 꼭 부탁했는데 꽃동네 안내전화로 대신한다. 043-879-015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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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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