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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이중섭 위작 논란 검증의 ‘기준작’ 공개

이중섭 그림으로 본 僞作의 세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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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그림의 위작은 삽화풍의 그림이 대다수 차지… 흉내 내기 쉬워
⊙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위작 2834점 모두 몰수되기도
⊙ 컬렉터가 알면서 僞作 사면 敗家亡身의 지름길
  우리 미술시장은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머지않아 뜨겁게 달궈질 전망이다. 그림 컬렉션을 투자로 생각하는 많은 이가 이에 발맞춰 고무될 듯싶다. 그림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진위(眞僞) 문제다.
 
  전북 완주에 위치한 책박물관 박대헌(朴大憲) 관장은 사람들이 위작(僞作)을 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전문 컬렉터이자 고서점 호산방 주인이다.
 
  “위작이 진작(眞作)만큼 결코 아름답지 못함에도 진작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중섭(李仲燮·1916~1956년)을 비롯해 천경자(千鏡子·1924~2015년)·박수근(朴壽根·1914~1965년)·김환기(金煥基·1913~1974년)·이우환(李禹煥·1936~) 등 유명 작가들의 위작 시비가 법정으로 옮겨가지만, 과연 판사가 제대로 그림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전문가조차 진위를 몰라 때로 고개를 젓는데 말이다.
 
  문제는 분별해낼 수 있는 심미안(審美眼)에 있다.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이 있는 컬렉터라면 위작에 겁낼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진작과 위작 차이는 무엇일까? 박 관장은 이렇게 요약한다.
 
  “미술시장에서의 진작이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가 본인이 직접 제작한 작품 또는 그 시대에 제작된 작품’을 이르는 말일 게다. 반대로 위작이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흉내 내어 비슷하게 만드는 일 또는 그 작품’을 이르는 뜻이다.”
 
  그림 컬렉션은 바로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참된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 그 첫째 목표다.
 
  이럼에도 위작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갤러리나 옥션에서 판매한 작품이 위작이라거나, 세계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그림이 가짜라는 뉴스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작품 진위, 관점에 따라서 이견 있을 수 있어”
 
  이런 현실 앞에서 과연 컬렉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관장의 설명이다.
 
  “위작을 철저히 가려 배제하려면 안목이 필요한데 저는 해당 작품의 연대 추정에 특히 중점을 두고 살핀다. 작품에 사용된 여러 화구의 재질과 이들이 보여주는 세월의 흔적을 면밀히 분석한다. 이러한 연대 추정은 모든 고미술품의 감정에서 가장 기본이고 원칙이다.”
 
  ― 컬렉터는 작품 수집을 어떻게 해야 하나.
 
  “미술관 설립이나 전시를 염두에 두고 작가 선정과 작품성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컬렉션은 컬렉터 취향이나 관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특히 19세기 서양 미술사에 영향력을 미친 작가의 작품에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이 작품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감식안이 요구된다.”
 

  ― 지금까지 구입한 예술품이 모두 진품이라 확신하는가.
 
  “모두 진작이라 단정 내리지는 않겠다. 작품 진위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다.”
 
  ― 고서와 그림을 수집하면서 신중하게 경계하는 원칙이 있나.
 
  “컬렉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따라서 알면 사고 모르면 사지 마라. 그래도 사고 싶으면 알 때까지 공부하라. 아니면 믿을 만한 멘토를 두든지….”
 
  흔히 미술 애호가들은 그림이나 고미술품 감정은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전문가란 말인가?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뜨거웠던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감정위원들이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의 위작 여부를 감정하고 있다. 사진=조선DB
  2005년 3월 16일, ◯◯옥션 경매에 출품된 이중섭 작품 4점이 모두 낙찰되었다.
 
  화가 이중섭의 미공개작 〈아이들〉 (24×19cm)이 ◯◯옥션 경매에서 3억1000만원(수수료 별도)에 낙찰돼 이중섭 작품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다. 종전 이중섭 작품의 경매 최고가는 2000년 10월 〈풍경〉의 2억8000만원이었다.
 
  이날 경매에서는 이중섭 미공개작 4점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나머지 작품 중 〈아이들〉(8.8×13.7cm)은 1억5000만원, 〈가지〉(12.5×18.5cm)는 5200만원, 〈사슴〉(12.5×18.5cm)은 4200만원에 각각 낙찰됐다. 이 작품들은 일본에 사는 이 화백의 부인 마사코 여사와 둘째 아들 태성(일본명 야스나리) 씨가 이중섭 타계 50주기를 맞아 기념사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 ◯◯옥션 관계자는 밝혔다.
 
  그런데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이 경매에서 판매된 이중섭 작품이 모두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작품의 진위 문제는 법정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중섭 작품 위작 논란은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이란 이름으로 무려 12년 동안이나 다툼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2017년 7월 27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음은 이때의 언론 기사 중 하나다.
 
  〈2005년 한국 미술계를 흔들었던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국내 최대 규모 위작 논란’이 12년 만에 위작으로 최종 판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중섭 화백의 가짜 그림 5점을 팔아 9억1900만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아무개 전 한국고서협회 고문의 사기·사기 미수 등 사건 상고심에서 김씨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위작으로 압수한 그림 2834점을 모두 몰수한다는 원심 판결도 확정됐다.〉

 
  재판부는 2013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그림의 필적을 감정한 결과 연필로 그린 위에 다시 덧그린 흔적 등이 발견됐으며 1984년 이후에야 생산된 펄 물감의 성분이 검출됐다”는 점 등을 들어 ‘위조품’이라고 판단했다. 압수된 그림 가운데는 잘못 인쇄된 도록의 그림을 그대로 베끼는 바람에 좌우가 바뀐 그림도 있었고, 똑같은 그림이 10점 넘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감정가도 사람이니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위 전문가들도 혼동할 정도로 이 그림들이 그토록 정교하게 만들어졌단 말인가.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경매에서 낙찰되었던 이중섭 그림 중 〈아이들〉 그림이라고 소개하는 사진을 보면 해상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한눈에도 엉터리 그림에 가깝다. 박 관장은 “이는 결코 실수가 아니다. 심미안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신뢰성에 영향을 미치는 나쁜 거짓말도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위작을 판매할 경우 알리바이를 조작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인사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라든지 또는 작가로부터 직접 선물 받은 작품이라는 등의 말로 그럴듯하게 꾸민다.”
 
 
  원로 미술사학자의 위작 문제 제기
 
한국사학회가 2001년에 펴낸 도록에 실린 이중섭의 가짜 〈황소〉 그림이다. 사진=조선DB
  2022년 8월 12일부터 2023년 4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를 두고 원로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가 전시되고 있는 작품 대부분이 ‘위작’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에 “해당 전시에 출품 중인 엽서화들은 이중섭 작가가 생전에 배우자인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에게 만들어 보낸 진품으로 1976년에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되었고 대부분은 1979년 미도파백화점 화랑 등에서 전시된 작품으로 도록의 출처가 명확하고 기존 이중섭 작가에 대한 연구 등에서도 그 존재가 이미 입증된 작품”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원로 학자가 위작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언론은 물론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없었다.
 
  위작 논란, 어떻게 해야 위작 논란에 있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박대헌 관장은 이중섭의 작품 중 확실한 진작을 ‘기준작’으로 설정, 위작 논란에 선 작품과 비교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준작을 이중섭 생전에 출판된 도서와 잡지의 삽화, 표지화로 한정했다. 사후가 아니라는 점, 생전에 인쇄매체에 발표해 외적 검증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준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나 감정의 결과는 연구자나 컬렉터의 견해에 따라 얼마든지 이견을 보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 전시된 〈꿈에 본 병사〉는 강우방 교수가 위작이라고 지적한 그림 중 하나로 강 교수는 “맨 위 왼쪽 구석에 보일락 말락 작은 글씨로 ‘태성군’이라고 쓴 것은 이중섭의 글씨가 아닌데 왜 귀퉁이에 얌전히 썼을까” 하고 강한 의혹을 제기한다.
 
 
  〈꿈에 본 병사〉
 
  이와 비슷한 또 다른 〈꿈에 본 병사〉가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에도 실려 있다. 이 그림에는 ‘태현군’이란 표기가 있다. ‘태성’은 이중섭의 둘째 아들, ‘태현’은 첫째 아들 이름이다.
 
  이중섭은 1952년 7월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았다. 이후 이중섭은 두 아들을 생각하며 그림을 곁들인 편지들을 많이 남겼다.
 
  ‘태성군’과 ‘태현군’ 표기의 〈꿈에 본 병사〉 그림 두 점은, 이때 두 아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냈다는 것이 이중섭 관련 연구자와 연구서들이 내놓는 정황 설명이다. 이에 근거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그림들을 모두 진품으로 단정한 것이다.
 
  그러나 ‘태성군’과 ‘태현군’ 글씨 문제 이외에도 몇 가지 의문점을 지적할 수 있다. 박 관장의 주장이다.
 
  “첫째, 평소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에는 두 아들을 위해 그림과 함께 이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적고 있다. 이 그림이 진작이라면 이와 관련된 내용의 글이 편지에서 발견되었어야 마땅할 텐데 보이지 않는다.”
 
  물론 관련된 편지를 이중섭 유족이 소장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분실하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당초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 그림 크기가 각각 29.5×19.5cm와 26.2×18cm로 서로 다른 점이다. 이중섭이 두 아들에게 같은 도형의 그림을 하나씩 그려 보내는데, 서로 다른 크기의 종이를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박 관장은 더 큰 의문으로 “〈꿈에 본 병사〉의 원형 그림은 《저격능선》 표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격능선》은 문중섭 대령의 한국전쟁 참전 수기를 1954년 9월, 육성각에서 발행한 책이다. 당시 표지 그림을 이중섭이 그렸다.
 
  저격능선은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평강과 철원, 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를 이르는 말로 1952년 10월 14일부터 42일간 이 저격능선을 놓고 국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고지전이 있었던 곳이다.
 
 
  “필력과 기교 면에서 많은 차이”
 

  《저격능선》 표지는 이때의 전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형상에 칼을 휘두르고 있는 켄타우로스 모습을 연상케 하는, 상체는 인간이고 가슴 아래는 말[馬] 형상의 그림이다.
 
  박 관장은 “《저격능선》 표지화는 무사(武士)의 기질을 닮은 역동적인 구성과 활달한 필치가 특징이다. 반면 〈꿈에 본 병사〉 그림은 《저격능선》 표지 그림과는 필력과 기교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의심은 《영문》 제13호 표지화로 더욱 굳어진다. 이 책은 《저격능선》이 출판되고 이듬해인 1955년 11월에 영남문학회에서 발행한 동인지다. 《저격능선》 표지화와 매우 흡사한 구도와 필력을 보여주는데 《저격능선》 표지 그림의 또 다른 시안으로 보인다는 것이 박 관장의 주장. 그는 “《저격능선》과 《영문》 제13호 표지 그림과 앞의 ‘태성군’ ‘태현군’ 표기의 〈꿈에 본 병사〉 그림 두 점의 차이는 독자가 판단하면 된다”고 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는 〈꿈에 본 병사〉와 나란히 〈새〉가 전시되었다. 이 그림에 대해 전시장 ‘오디오 가이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전투능선(《저격능선》의 오기-편집자 註) 표지화를 위해 이중섭이 처음 그렸던 것은 다른 그림이었습니다. 바로, 피 묻은 새가 능선 위로 날고 있는 그림인데요, 군인의 용맹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한 이 그림은, 2년 뒤였던 1957년 《자유문학》 9월호에 실리게 됩니다.〉
 
  오디오 가이드는 전시된 〈새〉 그림이 마치 《자유문학》 표지에 실린 원화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전시된 〈새〉 그림은 《자유문학》 표지에 사용되었던 원화가 아니고, 《자유문학》 표지 그림과 비슷한 도형의 그림일 뿐이다.
 
  《자유문학》 표지 그림에서 능선은 노란색 면을 하나씩 건너 표현했다. 반면에 〈새〉 그림에서는 나머지 면을 모두 하늘색으로 채워 넣었다. 그림의 격 또한 〈꿈에 본 병사〉에서와 같이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새〉 그림을 《자유문학》 표지 그림의 또 다른 밑그림이라고 주장한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꽃과 어린이와 게〉 vs 《현대문학》 목차 그림
 
위는 〈꽃과 어린이와 게〉.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 이중섭 작품으로 소개된 그림이다. 아래는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목차 그림. 이건희 컬렉션의 〈꽃과 어린이와 게〉에 비해 펜 선이 굵다.
  이중섭은 해방 직후 오장환(吳章煥·1918~?), 구상(具常·1919~2004년), 마해송(馬海松·1905~1966년) 등의 시집 표지와 속표지 그림도 남겼다. 1952년부터 1956년 사이에 출판된 《현대문학》과 《문학예술》 《자유문학》 등의 잡지에도 그의 삽화가 여러 컷 실렸는데 중복된 그림을 제외하면 31점으로 추정된다.
 
  이중섭의 삽화는 대부분 간단한 선묘(線描)로 되어 있다. 출판 인쇄를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1950년대 출판 환경에서 일반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의 인쇄술과 종이의 질에 비추어 삽화 인쇄가 사진 인쇄에 비해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출판된 도서와 잡지의 삽화와 표지화가 위작 논란의 기준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꽃과 어린이와 게〉를 통해 설명하면 이렇다.
 
  〈꽃과 어린이와 게〉는 앞서 말한 2022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 전시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목차 그림과 비슷한 도형으로 위작이 의심되는 그림이다. 그 까닭을 박 관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꽃과 어린이와 게〉 그림과 《현대문학》 목차 그림을 비교해 보면 구도와 크기는 물론 비례가 거의 일치한다. 다만 차이점은 목차 그림 중앙에 있던 물고기 부분의 도형이 〈꽃과 어린이와 게〉에서는 빠져 있다.”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목차 그림은 꽃줄기-어린이-물고기-게-어린이-나비로 이어지는 도형이 두 페이지로 연결된 그림이다. 따라서 페이지가 접히는 중앙 부분은 제본 과정에서 속으로 접혀 들어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접힌 부분의 어린이와 물고기와의 연결 부분의 도형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런 사정으로 〈꽃과 어린이와 게〉에서 위조자는 물고기 도형을 아예 빼버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모사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목차 그림 원화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뚜렷해진다. 계속된 그의 설명이다.
 
  “둘째, 이 그림은 기준작인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목차 그림에 비해 필력과 그림의 속도감이 떨어져 보이고 특히 펜 선이 가늘다. 펜 선의 굵기는 잡지 목차 그림의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기교다.”
 

  잡지 목차는 편집의 특성상 많은 내용의 원고가 지면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목차 그림의 펜 선은 일반적인 삽화보다 조금 더 굵게 표현되어야 주변의 원고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화가가 아니고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또한 이중섭의 또 다른 목차 그림이 실려 있는 《현대문학》 1956년 6월호에서도 펜 선이 굵게 표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중섭 그림의 위작은 삽화풍의 그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유화보다는 삽화가 위작으로 만들기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박 관장은 “이중섭 삽화는 거의 선묘로 되어 있어 흉내 내어 그리기가 쉽다”며 “물론 모사한 그림은 속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으나, 바탕에 약간의 채색을 더하면 유치한 그림이라도 속아 넘어가기 쉽다. 여기에 이중섭 위작의 필연성이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이중섭 그림의 진위 감정이나 연구에서 기준작의 선정은 특히 중요해 보인다.
 
 
  처음 공개하는 이중섭 ‘기준작’ 4점
 
위에서부터 〈사슴과 힘겨루기 하는 아이〉(《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수탉에 올라탄 아이〉(《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사슴과 아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새와 나무〉(《자유세계》 1956년 11월호).
  박 관장은 “이중섭 기준작의 제일 조건은 이중섭 생전에 출판된 단행본 표지 그림과 잡지 삽화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위작 그림이 끼어들 틈새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한다.
 
  한데 지금까지 학계와 고미술계에서 인용하는 이중섭 작품의 기준작 중에도 의문스러운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박 관장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중섭 삽화 4점을 새로 발굴해 《월간조선》에 처음 공개했다. 여기에는 이중섭의 새로운 ‘ㅈㅜㅇ’ 서명이 표기된 그림도 있다. 박 관장은 6월 초에 발행될 자신의 다섯 번째 저서 《세잔이 보인다》(책박물관)를 통해 자세히 공개할 예정이다.
 
  ①〈사슴과 힘겨루기 하는 아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최일수의 〈우리 문학에 있어서 신인의 위치〉(114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사내아이가 알몸으로 사슴 모가지에 올라타 사슴과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다. 위아래 타원형으로 두 줄의 외곽선을 둘러 구도의 안정감을 꾀했다. 오른쪽 아래에 ‘ㅈㅜㅇ’ 서명을 넣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2.8cm 가로 1.8cm로 아주 작다.
 
  ②〈수탉에 올라탄 아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T. S. 엘리오트(김용권 역)의 〈문화의 정의를 위한 노오트〉(130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사내아이가 알몸으로 수탉 등에 올라탄 모습으로 수탉의 억센 다리와 날개에서 강인함이 전해진다. 왼쪽 아래에 ‘ㅈㅜㅇ’ 서명을 넣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2.2cm 가로 1cm로 아주 작다. 이 그림은 같은 잡지 1956년 5월호 리차아드 헨서(채동배 역)의 〈문학적 상해죄에의 항변〉(188쪽)에 다시 실렸다.
 
  ③〈사슴과 아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김춘수의 〈형태상으로 본 한국의 현대시 제7회〉(195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사내아이가 알몸으로 사슴과 노는 모습이다. 사슴과 맞선 아이가 뿔을 움켜잡고, 사슴은 머리를 위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ㅈㅜㅇ’ 서명을 넣고 원으로 선을 둘렀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2.4cm 가로 2.9cm로 아주 작다.
 
  ④〈새와 나무〉: 《자유세계》 1956년 11월호 김중희 소설 〈고독한 군중〉(284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가 마치 사람처럼 걸터앉아 있고, 그 아래에 새 두 마리가 이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사방으로 외곽선을 둘러 구도가 단단하게 보인다. 왼쪽 아래에 ‘ㅈㅜㅇ’ 서명을 넣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5.2cm 가로 10.6cm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중섭 삽화의 도형과는 그 구도를 달리하고 있다.
 
 
  ‘기준작’으로 활용 가능한 이중섭의 삽화 12점
 
위에서부터 〈두 마리 사슴〉(《문학예술》 1956년 2월호), 〈개구리와 어린이〉(《현대문학》 1955년 4월호 속표지에 실린 권두화), 〈개구리와 어린이〉(1979년 《이중섭 작품집》), 〈개구리와 어린이〉(1999년 《이중섭》).
  이와 함께 앞의 이중섭 작품의 ‘기준작’으로 활용 가능한 이중섭의 삽화 12점 또한 소개한다. 미술계에 일부 알려졌으나 위작 논란 시 중요한 검증 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가치가 높은 삽화들이다.
 
  ①〈두 마리 사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정한숙의 〈바위〉(12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암수 한 쌍의 사슴을 묵화로 그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중섭 삽화는 대부분 선묘로 그렸는데 〈두 마리 사슴〉은 굵은 붓을 사용하여 〈소〉 작품에서 보이는 이중섭 특유의 힘찬 필력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 위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을 넣고 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5.7cm 가로 10.5cm다. 이 그림은 같은 잡지 1956년 6월호 송원희의 〈화사〉(73쪽)에 다시 실렸다.
 
  ②〈개구리와 어린이〉: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속표지에 실린 권두화로 이중섭 삽화다. 이와 비슷한 도형의 그림이 1979년 《이중섭 작품집》(이중섭기념사업회), 2015년 《이중섭편지》(현실문화연구)에 실려 있다. 또한 다른 도형의 그림이 1999년 《이중섭》(갤러리 현대)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그림들의 기준작은 《현대문학》 1955년 4월호 권두화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부터 〈아이들과 나무〉(《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얼굴과 나뭇잎〉(《문학예술》 1956년 2월호), 〈낚시하는 아이〉(《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수사슴〉(《문학예술》 1956년 3월호).
  ③〈아이들과 나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곽학송의 〈마음〉(22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활짝 꽃핀 매화나무에 여섯 아이가 올라 장난치는 모습이다. 왼쪽 아래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이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6.3cm 가로 10cm다. 이 그림은 같은 잡지 다음 호인 1956년 3월호 전광용의 〈경동맥〉(105쪽)에 다시 실렸다.
 
  ④〈얼굴과 나뭇잎〉: 《문학예술》 1956년 2월호의 〈의자의 풍경〉(31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가로로 길게 창살 같은 틈새에 세 개의 얼굴을 그리고, 나뭇잎을 위에 네 장, 아래에 두 장 배치했다. 중앙 아래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이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6.2cm 가로 10.5cm다.
 
  ⑤〈낚시하는 아이〉: 《문학예술》 1956년 2월호 제스 스튜어드(김성한 역)의 〈개구리 노름〉(105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아이가 낚시로 물고기를 끌어당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오른손으로 낚싯줄을 낚아채는 모습에서 짜릿한 ‘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중섭 특유의 힘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왼쪽 위 모서리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이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6.5cm 가로 10.2cm다. 이 그림은 같은 잡지 1956년 5월호 김성한의 〈극한〉(45쪽)과 6월호 김송의 〈청개구리〉(25쪽)에 각각 다시 실렸다.
 
  ⑥〈수사슴〉: 《문학예술》 1956년 3월호 박영준의 〈불효부〉(12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수사슴이 홀로 내달리는 모습을 묵화로 그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중섭 삽화는 대부분 선묘로 그렸는데 이 그림은 《문학예술》 1956년 2월호에 실린 〈두 마리 사슴〉과 마찬가지로 굵은 붓을 사용하여 그렸다. 사슴의 발 모양으로 미루어 보아 높이 뛰어올라 달리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이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5.6cm 가로 9cm다.
 
위에서부터 〈꽃잎과 나뭇잎〉(《문학예술》 1956년 3월호), 〈두 아이와 나뭇잎〉(《문학예술》 1956년 3월호), 〈아이와 게와 물고기1〉(《문학예술》 1956년 3월호), 〈아이와 게와 물고기들2〉(《문학예술》 1956년 3월호).
  ⑦〈꽃잎과 나뭇잎〉: 《문학예술》 1956년 3월호 박용구의 〈여인〉(33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꽃잎을 중심으로 주변에 나뭇잎을 일곱 장을 배치했다. 오른쪽 위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을 넣고 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6.2cm 가로 10.5cm다.
 
  ⑧〈두 아이와 나뭇잎〉: 《문학예술》 1956년 3월호 이종환의 〈또 하나의 설계〉(67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벌거벗은 두 아이가 주요 부분을 나뭇잎으로 가리고 천진난만하게 장난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을 넣고 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6.4cm 가로 10.5cm다.
 
  ⑨〈아이와 게와 물고기1〉: 《문학예술》 1956년 3월호 최요안의 〈단면〉(94쪽)에 실린 이중섭 삽화다. 아이와 게와 물고기가 서로 평화롭게 노는 모습이다. 굵은 붓으로 거칠게 테두리를 둘렀다. 서명이 없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6.5cm 가로 10.8cm다.
 
  ⑩〈아이와 게와 물고기2〉: 《현대문학》 1956년 3월호 속표지에 실린 권두화로 이중섭 삽화다. 아이와 게와 물고기가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이다. 물고기 입에 걸린 낚싯줄로 그림 주변을 자연스럽게 둘러 균형을 이루고 있다. 중앙 아래에 ‘ㅈㅜㅇㅅㅓㅂ’ 서명이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4.8cm 가로 4.2cm다.
 
  ⑪〈아이와 게와 물고기들〉: 《자유문학》 1957년 6월호 속표지에 실린 권두화로 이중섭 삽화다. 아이와 게와 물고기 세 마리가 서로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서명이 없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4.8cm 가로 8.8cm다.
 
왼쪽부터 〈꽃과 노란 어린이〉(《모래알 고금》, 1958), 〈꽃과 노란 어린이〉(《이중섭, 백년의 신화》, 2016).
  ⑫〈꽃과 노란 어린이〉: 《모래알 고금》(가톨릭 출판사, 1958) 표지 그림으로 이중섭 작품이다. 붉은 꽃송이를 중심으로 노란색의 다섯 어린이가 꽃 속에 얼굴을 파묻고 중앙 위로는 나비 한 마리가 나는 모습이다. 1955년 작품으로 이중섭 사후인 1958년에 출판되었다.
 
  이와 비슷한 도형의 〈꽃과 노란 어린이〉 그림이 1972년 현대화랑 전시도록 《이중섭 작품집》의 ‘출품번호 24’에 실렸다. 이때 소장자는 서양화가 이항성이다. 이후 이 그림은 1999년 《이중섭》(갤러리 현대)에 다시 나타나는데 이때는 소장자를 별도로 밝히지 않았다. 이후 2016년 《이중섭, 백년의 신화》에서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이라 표기하였다.
 
  박 관장은 “이 그림에서는 다섯 어린이의 얼굴이 모두 앞으로 드러나 있다. 〈꽃과 노란 어린이〉 그림과 《모래알 고금》 표지 그림과의 관계는 앞으로 연구해볼 과제”라고 말했다.⊙
 
박대헌 관장이 말하는 컬렉션의 네 원칙
 
  1. 알면 사고 모르면 사지 않는다.
  그림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전시회나 갤러리를 직접 접해보면서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림을 직접 사고파는 것일 수 있다. 오랫동안 갤러리를 운영한 딜러의 안목이 가장 좋다고 보통 여기지만 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의 역량과 안목에 달린 문제다. 이를 위해 컬렉터는 오랜 세월 발품을 팔기도 하고, 때로는 별 가치 없는 그림이나 위작을 구입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2. 한번 구입한 물건은 무르지 않는다.
  컬렉터 중에는 한번 구입한 작품을 다시 물러달라고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물론 작품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것 같아 물러달라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만약에 구입한 작품이 귀한 보물로 밝혀졌더라도 그렇게 하겠는가? 한번 구입한 작품은 가짜이거나 주인이 설명한 내용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 한 무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컬렉터는 결코 좋은 작품을 수집할 수 없다.
 
  3. 귀물 한둘은 무리해서라도 산다.
  고서를 수집하다 보면 천하의 진본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평생에 한두 번은 만나게 된다. 이럴 때 그 가격이 엄청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보통이라면 망설이게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단호하게 마음을 접지 못하고 망설일 정도라면 무조건 사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진본을 구입한 대가로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겠지만, 만약 사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4. 컬렉션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다.
  위작과 관련해 대부분의 컬렉터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하나 있다. 살 때는 위작이라도 좋다며 헐값에 산 물건이라도, 일단 자기 것이 되면 혹시 진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컬렉션에서 진작을 좀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은 괜찮지만 위작을 사는 것은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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