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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외국 ‘의원님’들도 온갖 ‘특권’ 누릴까? ④ 스웨덴

한국 의원실의 1/10 규모 사무실… “의자·책상·노트북만 있으면 된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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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은 가장 저렴한 것이어야’ 규정… 택시 탔다가 보도되면 큰 비난 받아
⊙ 당 소속 보좌관 1명이 의원 5~6명 도와
⊙ 휴가·보좌관 없어도 “의원직 수행 자체가 특권”
⊙ 의원들에게 법정 휴가 없어… 1년 365일 24시간 근무가 원칙
⊙ 19~20세기 ‘위로부터의 개혁’… 부패·특권 의식 뿌리 뽑아
⊙ 스웨덴 국민 63.3% ‘의회 신뢰’ … 한국 국회 신뢰도는 24.1%(2022 한국행정연구원)
⊙ 1995년 총리 후보, 공금 30만원 유용 후 납입 사실 드러나 사퇴
⊙ “언론사마다 정치인 업무용 카드 지출내역 분석 전담팀 운영”
다비드 페레즈 스웨덴 민주당 의원의 사무실. 스웨덴 의원들의 사무실 크기는 15㎡ 수준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하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웨덴 의원 대다수가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의정 활동을 돕는 보좌관,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후원 제도도 없다. 의원 사무실 크기는 약 15㎡로 한국 의원실 크기(약 148㎡)의 10분의 1 수준이다. 스스로 세비(歲費)를 인상하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 의원의 세비는 전문가로 구성된 의회 산하 독립 기구인 보상위원회(Riksdagens arvodesnamnd)가 결정한다. 세비 인상률은 스웨덴의 임금 상승률에 맞춘다. 연 2~3% 수준으로 올린다. 항공편으로 출장을 갈 때도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업무 강도도 높다. 스웨덴 의원들은 1년 365일 24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휴가 기간(6월 말~8월 말)에 폐회하는 걸 제외하면, 연중 상시 회의를 진행한다. 이마저도 올여름에는 우크라이나 물자 지원 관련 법안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 등으로 긴급회의가 자주 열려 휴가를 온전히 보낸 의원은 거의 없다고 한다. 세비도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편이다. 1957년 이전까지 의원들은 무급으로 일했다.
 
  이처럼 특권·특혜가 없어서일까? 의회를 향한 스웨덴 국민의 신뢰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2년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스웨덴 국민은 전체의 63.3%였다. 다국적 사회과학 연구기관인 세계가치조사는 1981년부터 민주주의, 환경, 종교, 안보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의식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국회의 국민 신뢰도는 24.1%다.(한국행정연구원의 ‘2022 한국의 사회지표’)]
 
 
  의회가 지급한 교통카드로 대중교통 이용
 
올레 토렐 사회민주당 의원. 토렐 의원은 “한국을 좋아해 기아차를 탄다”고 말했다.
  스웨덴 의원이 누리는 몇 안 되는 특권·특혜는 ▲출퇴근용 대중교통 카드 지급 ▲개인 차량을 운전해 의회 출근 시 유류비 환급 ▲의회와 지역구의 거리가 50km 이상일 경우 스톡홀름 소재 숙소(15~45㎡) 제공 ▲스웨덴 1인당 국민총소득(5만9000달러)의 1.3배에 해당하는 연봉(7만8000달러)이 전부다.
 
  이처럼 스웨덴 의회에서 특권·특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 현직 의원들과 온건당 청년위원회 관계자, 최연혁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와 만나 의원 특권·특혜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스웨덴 의원들은 대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의회는 의원 1명당 연 7만4000크로나(약 900만원)의 교통비를 지급한다. 그렇다고 아무 교통편이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원 입법 활동 지원법’에 명시된 4가지 기준을 따라야 한다. 첫째, 교통편은 가장 저렴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친환경적이어야 하며, 셋째 신속한 교통편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전한 교통편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스톡홀름 시내에 사는 의원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트램을 타고 출근한다. 자전거나 도보로 출근하는 의원도 많다. 개인 차량을 운전해 의회로 출근하는 경우, 영수증을 제출, 유류비를 환급받을 수 있다. 의회까지 오는 기차나 버스 노선이 없는 북부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면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교통카드 외에 업무용 차량이나 차량 유지비는 제공되지 않는다. 한국 의원들이 매달 110만원의 차량 유류비, 35만8000원의 차량 유지비를 받는 것과 대비된다.
 
  위 4가지 기준은 해외 출장 시에도 적용된다. 항공편을 이용한 유럽 내 출장의 경우 이코노미석에 앉는 것이 원칙이다. 비즈니스석은 유럽 외 타 대륙 출장에서 도착과 동시에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 제공된다. 주최 측이 표를 제공할 경우에도 비즈니스석 탑승이 가능하다.
 
  올레 토렐 사회민주당 의원은 주로 기차를 타고 의회로 출근한다. 토렐 의원은 한국-스웨덴 의원 친선협회 스웨덴 측 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속한 사회민주당은 중도좌파 성향으로 총 349석의 스웨덴 의회에서 107석을 차지한 제1당이다. 다음은 토렐 의원과의 일문일답.
 
  ― 주로 기차를 타는 이유가 있습니까.
 
  “기차가 가격이 가장 저렴하고, 의회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 개인 차량을 운전해서 출근하기도 합니까.
 
  “종종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기차를 타면 오가는 시간에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베스테로스에서 스톡홀름 중앙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리니 회의 자료를 검토하기 충분한 시간이지요.”
 

  ― 항공편을 이용한 해외 출장 시에도 이코노미석에 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 불만은 없습니까.
 
  “지금껏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왔기 때문에 익숙합니다. 더군다나 3~4시간 이동이 전부인 유럽 내 출장의 경우 불편한 점도 없고요.”
 
  ― 의원의 교통편의를 많이 봐주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습니까.
 
  “교통편의 정도는 국민 대다수가 이해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택시를 탔다가 언론에 보도되면 큰 비난을 받습니다.”
 
 
  의원 숙소에서 가족 숙박 시 돈 내야
 
  의회와 지역구의 거리가 50km 이상일 경우 해당 의원들은 스톡홀름 소재 국영 숙소를 지원받는다. 숙소의 크기는 15~45㎡로 1인용 침대와 주방이 딸려 있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2023년 스톡홀름 중심지 원룸 아파트의 평균 월세는 1만4650크로나(약 181만원)다. 숙소를 지원받은 의원들은 매달 약 181만원씩 월세를 아끼는 셈이다.
 
  다만 이 숙소는 의원 본인만 사용할 수 있다. 가족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지만, 숙박할 경우에는 돈을 내야 한다. 가족이 숙소에 머무는 기간도 의원 임기의 절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한편, 2022년 7월 ‘의원 처우법’이 개정돼 질병, 장애, 특수한 가정환경 등 특별 사유가 인정되면 국영 숙소 대신 월 9000크로나(약 111만원)의 숙박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오사 에릭손 사회민주당 의원은 “일주일에 2~3일은 스톡홀름 소재 국영 숙소에 머문다”고 말했다. 에릭손 의원은 스톡홀름에서 약 90km 떨어진 베스트만랜드주(州)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자주는 아니고, 1달에 1~2번 주말에 남편과 아이들이 찾아와 자고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숙소에 머물면 숙박비를 당연히 내야 한다”고 밝혔다. 에릭손 의원은 “숙소는 내 가족이 아닌, 국민의 대표인 나를 위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서 “숙소가 제공되는 것만으로도 큰 혜택”이라고 말했다.
 
  한편, 스웨덴 의원은 의사당 내부에 개인 사무실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업무를 보거나 손님을 맞는다. 일부 의원은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다 이곳에서 자기도 한다. 사무실 크기는 약 15㎡에 불과하다. 사무실 내부에 의원 집무실과 보좌진 업무공간, 접견실 등을 갖춘 148㎡의 우리나라 국회의원 사무실의 10분의 1 수준이다.
 
  다비드 페레즈 스웨덴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사무실 안에는 소파와 책상, 책장이 놓여 있어 작은 사무실이 더 작게 느껴졌다. 업무 공간이 작아서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자 페레즈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페레즈 의원은 “업무 공간인데 굳이 클 필요가 있느냐”면서 “의자, 책상, 노트북만 있으면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 보좌관 없어 업무 꼼꼼히 챙길 수 있어”
 
마티아스 칼손 스웨덴 민주당 의원. 칼손 의원은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당대표를 지냈다.
  스웨덴 의원들은 개인 보좌관을 둘 수 없다. 스웨덴의 ‘의원 입법 활동 지원법’은 ‘정치 보좌관이란 정당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의원당 정치 보좌관 1명에 해당하는 예산을 지원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것이 ‘개인 보좌관 1명 채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입법 지원이 필요한 경우 의원들은 당에 요청, 당에 속한 정책 보좌관의 도움을 받아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다. 보통 정책 보좌관 1명이 의원 5~6명을 돕는 구조다. 9명의 개인 보좌진을 둘 수 있는 우리 국회와 상당히 대비된다.
 
  엠마 노렌 녹색당 의원은 일정 관리와 전자우편 확인 모두 직접 한다. 노렌 의원과 한 번 연락을 주고받기까지 일주일이 족히 걸렸다. 그때마다 노렌 의원은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면서 “개인 보좌관이 없어 전자우편 확인에 시간이 걸렸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노렌 의원은 “불편함은 없다”고 말했다. 노렌 의원의 설명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법안 발의나 연설문 작성은 물론, 일정 관리 및 전자우편 확인, 정책 홍보물 제작, 유류비 영수증 제출 등 사소한 업무들까지 직접 하지요. 당 소속 정책 보좌관이 있지만, 그들이 이런 업무까지 대신해주진 않지요. 모든 업무를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울릭 닐슨 온건당 의원은 “개인 보좌관이 없어 오히려 업무를 꼼꼼히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닐슨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선 의원 스스로 해당 현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관련 자료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지요. 만약 개인 보좌관을 통해 보고만 받는 식으로 일한다면 결코 좋은 법을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웨덴 의원들에게는 법정 휴가도 없다. 이들은 1년 365일 24시간 근무가 원칙이다. 만약 여가를 즐기고 싶다면 의회의 공식 일정이 없는 때를 골라 가야 한다. 주로 정기 의회가 폐회하는 6월 말~8월 말을 선택한다. 다만, 상임위원회 회의는 이 시기에도 계속 열리기 때문에 일정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마티아스 칼손 민주당 의원은 이 기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기간을 휴가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지역구 현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지역구를 돌며 주민들의 고충을 듣지요.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회기가 시작되면 해당 구상들을 구체화해 법안을 만듭니다.”
 
  울릭 닐슨 온건당 의원은 의회가 폐회해도 ‘의원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간다고 말했다. 닐슨 의원의 설명이다.
 
  “회기 중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3번 의회에 출근해야 합니다(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상임위원회 회의와 법안 투표가 매주 2회 열리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당내 회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지역구에 머물거나 언론 취재에 응합니다. 다른 의원들과 공부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회기가 시작되면 더욱 바빠지지요.”
 
  다비드 페레즈 민주당 의원은 “이 기간 스톡홀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국에 있더라도 긴급회의가 열리게 되면 곧장 돌아와야 합니다. 항상 휴대전화 전원을 켜놓는 이유이지요”라고 말했다.
 
 
 
2014년에 ‘의원연금제’ 폐지

 
  그럼에도 금전적인 보상은 많지 않다. 스웨덴 의원들의 연봉은 약 7만8000달러(약 1억500만원)다. 초선이든 재선이든 모두 같다. 언뜻 보면 많아 보이지만, 이는 스웨덴 1인당 국민총소득(5만9000달러)의 1.3배에 불과하다. 한국 국회의원의 연봉은 ▲미국(2억2367만원) ▲일본(2억1500만원) ▲독일(1억7794만원) 등에 이은 1억5426만원으로 세계 9위다. 이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의 3.65배다. 일본(2.31배), 미국(2.28배), 영국(2.03배)보다 훨씬 높다.
 
  스웨덴 의회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따른다. 만약 의원이 회기 중 결근하면 결근일만큼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국회가 열리지 않아도, 회의에 전혀 참석하지 않아도, 심지어 구속 중에도 급여가 나오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울릭 닐슨 온건당 의원은 “돈을 벌고자 했으면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닐슨 의원은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권”이라고 밝혔다.
 
  엠마 노렌 녹색당 의원도 연봉이 의정 활동에 부족한 액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렌 의원은 “1인당 국민총소득을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긴 하다”면서도 “일반 국민의 임금 수준에 비춰보면 많은 액수”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4년까지 스웨덴에는 의원 연금 제도가 있었다. 2014년 전까지는 최소 3년 이상 일한 의원들은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와 재임 기간을 종합해 의원 시절 받은 월급의 66~80%를 매달 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의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며 폐지됐다. 이제는 스웨덴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연금제도를 따른다.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받는 실업급여 역시 일반 국민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의원이 선거자금을 후원받을 수 있는 제도도 없다. 기자가 “한국 의원은 연간 선거자금으로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까지 후원받을 수 있다”고 하자 에릭손 의원은 “만약 스웨덴에서 그랬다간 해당 의원은 형사 처벌 받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에릭손 의원은 “스웨덴에도 선거를 앞두고 정당 차원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의회 또한 정당 규모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면서도 “의원 개인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보공개청구제도’의 효시
 
  지금껏 살펴본 스웨덴 의원들의 모습은 특권 의식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스웨덴은 19세기 초반까지 여전히 부패가 만연한 국가였다. 1771년 프랑스 외교관은 귀국보고서에 “스웨덴은 정치인과 사회 전체가 부패의 병에 걸린 나라”라고 적었다.
 
  19세기 들어서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됐다. 1809년 스웨덴은 헌법을 개정해 입헌군주제 국가가 됐다. 이때 옴부즈맨 제도(의회가 임명한 조사관이 공무원의 권력남용 등을 조사·감시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1844년 오스카 1세(1799~1859)가 왕위에 오르자 개혁에 탄력이 붙었다. 그의 아들 칼 15세(1826~1872)와 루이스 데예르(1818~1896) 총리는 오스카 1세의 뜻을 이어받아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 개혁을 완성해나갔다. 1845년 장원제 폐지, 1862년 지방의회 선거 도입, 1866년 양원제 도입, 1897년 정당제도 구축, 1907년 비례대표제 실시 및 남성 보통선거제 도입, 1918년 완전한 보통선거제 도입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스웨덴 의회는 1766년 제정된 ‘출판언론자유법’을 개정해 정부의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권력유착형 비리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오늘날 각국의 정보공개청구제도의 효시(嚆矢)가 됐다.
 
  1960년대 들어 존칭 대명사를 사용하지 말자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1967년 브로워 렉시드 국립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조직 내 모든 직원에게 자신을 ‘당신(Du)’으로 부를 것을 발표했다. 1969년 취임한 올로프 팔메 총리 역시 기자들에게 자신을 ‘총리’가 아닌 이름으로 보도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제 스웨덴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직함이나 지위 대신 이름이나 ‘당신’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신은 특권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스웨덴의 사회의식은 이렇게 발전돼왔다. 지금의 스웨덴 의회 역시 이런 역사적 토양 위에 서 있다.
 
 
  “의원들의 출신 배경 다양”
 
  기자가 만난 모든 의원도 자신이 ‘특권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엠마 노렌 녹색당 의원의 말이다.
 
  “스웨덴에서 의원은 국민을 대변하는 ‘봉사자’ 정도로 인식됩니다. 의원들의 출신 배경을 보면 전직 교사, 전직 농부, 전직 간호사 등으로 다양합니다. 한국은 법조인 출신 의원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입법 활동을 해야 하니 법조인 출신도 좋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곳입니다. 의회 또한 이런 다양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티아스 칼손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저는 노동자 출신입니다. 가족과 이웃들이 겪는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이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지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치였습니다. 10대 시절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청년 세대를 위한 의제를 발굴하고, 해당 안건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지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20여 년째 의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 자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저에겐 특권 그 자체입니다.”
 
  칼 구스타프 파이퍼 온건당 청년위원회 국제 비서관은 스웨덴 청소년들이 청년위 활동을 통해 ‘봉사 정신’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파이퍼 비서관은 “청년위 활동은 학업이나 직업 활동과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순전히 자신의 여가를 이용하는 활동이지요. 금전적인 보상도 전혀 없습니다. 의장으로 선출돼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정치=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확립하게 되지요. 기초의원, 국회의원, 장관, 당대표 등 대부분의 정치인이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했습니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건강검진’
 
  의원의 특권을 제한하려는 제도적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연혁 린네대 정치학 교수의 설명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의원윤리규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반면, 특혜는 거의 없습니다. ‘의원 처우법’이나 ‘의원 입법 활동 지원법’에 따라 무료 대중교통이나 의원 숙소 정도를 지원받지요. 의원을 포함한 스웨덴 정치인들에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1995년 ‘토블론 초콜릿 스캔들’이라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총리이자 총리 후보였던 모나 살린은 업무용 카드로 토블론 초콜릿과 생필품 등 구입에 30여만원을 사용한 뒤 자신의 돈으로 메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요. 결국 살린은 총리 후보는 물론 부총리직에서마저 사퇴했습니다. 금액이 크진 않았지만, 세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2014년 모든 정당의 합의로 만들어진 ‘의원 윤리 규정’은 내부 거래, 재산 거짓신고, 뇌물수수, 선물수수 등 의원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정해놨다. 이와 연관된 혐의가 발각될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우리와 달리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없다. 2년형 이상의 판결을 받으면 의원직은 자동으로 박탈된다.
 
  또 스웨덴에서는 ‘민주주의 건강검진’이라고 불리는 ‘민주주의조사단(Demokratiutredningen)’이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3차례(1985년, 1997년, 2014년) 조사가 이뤄졌다.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간 의회와 정부 기관을 조사해 민주주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권력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투표율 하락의 원인은 무엇인지, 청년 정치인의 비율을 늘리기 위해선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등을 분석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한다. 정부, 의회, 지방정부 등 모든 공공기관은 이 보고서를 검토한 뒤 입장 발표와 추후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최 교수는 언론의 치밀한 감시 또한 의회가 청렴하게 유지될 수 있는 배경으로 분석했다. 최 교수는 “언론사마다 정치인의 업무용 카드 영수증 내역을 분석하는 전담팀을 두고 있다”면서 “의원들이 대중교통이 아닌 택시를 탄 것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티아스 칼손 스웨덴 민주당 의원은 “모든 언론이 정치인들의 씀씀이나 언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정치인의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기는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부패지수 세계 4위·민주주의 지수 4위
 
  지금까지 스웨덴 의원이 누리는 특혜·특권을 살펴봤다. 대중교통 카드와 스톡홀름 소재 숙소 제공 등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기자는 스웨덴 의원의 특혜·특권을 취재한 그간의 보도와 단행본을 보며 과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스웨덴 의원들을 만나보니 이들은 무언가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 섬기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물론,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국민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할 의원은 없다. 선거철이 되면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와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반면, 스웨덴 의원들은 달랐다. 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지수(CPI) 4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4위. 2022년 스웨덴이 받아 든 성적표다. 이는 19세기 정치 개혁에서부터 지금껏 이어진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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