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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창원 국가산업단지 50주년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도시, 창원

“전방에는 국산 戰車, 후방에는 국산 자주포”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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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의 전차 생산업체 현대로템… 14년 연구 끝에 ‘K2’ 개발
⊙ 현대로템, 방산 매출 2014년 7500억원에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원 돌파
⊙ 한국의 무기체계 기술 수준은 세계 9위지만, K9 자주포 등으로 화포 부문은 세계 4위
⊙ “수십 년 전 미국의 포를 받아서 사용하던 국가가…”(에드먼드 마일스 소장)
⊙ 폴란드에 수출한 K2 전차는 폴란드 맞춤형 모델, 사막에 특화된 ‘중동형 K2’ 전차도 있어
⊙ “수출 선적에 전차 실을 때 딸 시집보내는 기분”(현대로템 공장장)
현대로템의 K2 전차 폴란드 첫 수출 물량의 모습. 사진=뉴시스
  창원이 ‘방산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생산 공장이 이곳에 있어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은 지상전(地上戰)의 핵심 전력(戰力)인 전차(戰車) ‘K2’를 생산한다. 전차의 중요성은 과거 레바논 전쟁·이라크전·걸프전에서 볼 수 있었다. 전쟁은 공중 폭격, 화력에 의해서만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지상부대가 투입돼야 끝난다. 그런 차원에서 지상전의 핵심은 강력한 화력·기동력·장갑으로 보호된 전차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를 생산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前身)은 삼성테크윈이다.
 
  한화그룹은 2015년 6월에 삼성테크윈 지분을 인수해 2017년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사명(社名)을 변경했고, 한화디펜스(2022년 11월)·한화방산(2023년 4월)을 합병했다. 화포는 근거리 또는 원거리에서 탄체를 투발해 적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소화기·박격포·로켓포·자주포 등이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3사업장에서는 K9A1 자주포, K10 탄약운반장갑차, K56 탄약운반장갑차, K77 사격지휘장갑차, K105A1 차륜형 자주포, KAAV 상륙돌격장갑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험준한 지형에서도 사격 가능, 세계 최고의 기술력”
 
한화지상방산(現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노르웨이 현지 시험평가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현대로템이 본격적으로 한국형 전차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76년이다. 전차 생산 1급 방산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1984년에 최초의 한국형 전차인 ‘K1’ 전차를 개발했다. 1990년대 성능 개량을 통해 ‘K1A1’ ‘K1E1’ ‘K1A2’ 등을 생산했다. K2 전차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간 것은 1995년이다. 현대로템은 2008년에 K2 전차의 운용시험을 종료하고, 2014년부터 양산 및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현재 현대로템은 지상군 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3차 양산을 진행 중이다.
 
  현대로템의 K2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현대로템 관계자의 설명이다.
 
  “K2 전차에 적용된 장포신 120mm 활강포(滑腔砲)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모든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동장전장치를 채택해 3명의 승무원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기동 간에 6초 이내 재사격이 가능합니다. K2 전차에는 1500마력 고출력 엔진을 탑재해 포장도로에서 70km/h, 야지에서는 50km/h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또 실시간 궤도장력 제어장치를 통해 궤도 이탈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유기압 현수장치(질소 가스로 충전된 실린더와 유압유로 충전된 실린더)’라는 것을 적용해 산지가 많고 험준한 지형에서도 다양한 사격 각도를 확보할 수 있고, 노출면적을 감소시킬 수 있는 자세 제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군요.
 
  “전투 중에 아군과 적군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피아식별장치가 있고, 사격 목표의 이동을 고려해 자동으로 추적이 가능합니다. 수심(水深) 4.1m까지 잠수도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하천지대에서도 작전 수행이 가능합니다. K2 전차의 진면목은 자체 방호(防護) 능력입니다.”
 
  ― 적군의 포탄을 자체적으로 방호합니까.
 
  “K2 전차에 탑재한 능동방호시스템입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는 유도교란형인 소프트킬(Soft-kill)과 직접 무기를 타격하는 대응파괴형인 하드킬(Hard-kill) 모두 가능합니다. K2 전차에 들어간 소프트킬 시스템으로는 방호용 레이더와 레이저 경고장치·유도교란 통제장치·각종 발사장치·복합 연막탄이 있습니다. 적군의 대전차 유도미사일이 날아오면 이를 감지해 미사일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즉각 복합연막탄을 발사해 미사일을 교란하고 신속하게 피할 수 있습니다.”
 
 
  지상 전투 최고의 전차를 우리 손으로
 
  ― 전차에 탑승한 3명의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군요.
 
  “네. 승무원의 생존력을 극대화한 수동방호체계는 K2 전차의 강점입니다. K2 전차 전면부에는 특수 복합 장갑이 설치됐고, 핵 공격 시 발생하는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중성자 차폐 라이너, 승무원이 별도 방독면 착용 없이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양압 화생방 장치를 적용했습니다.”
 
  현대로템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차를 생산하는 회사다.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K2 전차를 기획·개발·양산하는 데까지 1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전차를 개발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김의환(金義煥) 현대로템 고문의 설명이다.
 
  “처음엔 머릿속에 여러 가지 개념을 그립니다. 이걸 각종의 공학적 분석과 운용 효과를 분석해가며 문서와 도면으로 대략적인 설계를 하는 거죠. 이 단계를 개념 설계라고 합니다. 다음에 이 구상이 구현이 가능한지 구체화하는 탐색 개발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체계 개발 단계로 들어가는데 이때 실제로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 평가를 합니다.”
 

  ―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니겠지요.
 
  “가령 120mm 장포를 만들 때는 그냥 그림을 그리고, 장포 모양으로 설계하는 게 아닙니다. 전차에 올렸을 때 힘을 얼마나 받느냐, 또 포탄 발사시 주퇴(포탄 발사 시 반동 충격 완화를 위한 포신 후퇴)를 하는데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일일이 따져야 합니다. 전차와 탄을 함께 개발하려면 정말 긴 시간이 걸립니다.”
 
  ― 이미 성능이 검증된 것을 가져다가 조립만 하면 시간이 확 줄겠죠.
 
  “물론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개발된 부품을 수입해서 우리나라에서 조립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가 ‘포니’를 개발하기 전에 그런 식으로 생산했죠. 그러면 우리는 생산만 할 뿐 그 기술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지적재산권도 물론 우리가 가질 수 없습니다. 현대로템이 과거에 만든 K1 전차는 미국이 개발한 것을 우리가 생산만 해서 전력화한 전차입니다. K2 전차는 완전한 우리 기술로 만든 전차입니다. 지상 전투 장비 중 최고인 전차를 우리 손으로 개발한 겁니다.”
 
 
  독일·미국 전차와 어깨 나란히
 
K2 전차의 수출 계약 대수 및 경쟁 제품과의 제원 비교.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에 따르면 고유한 자기 전차 모델을 가진 국가는 독일·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이스라엘·러시아·일본·중국 등이 있으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우리가 50여 년 남짓한 기간 만에 독자 모델을 가진 것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지난 9월 5일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에서 3대의 전차가 전시됐다. 왼쪽 독일의 ‘레오파드2’, 오른쪽에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가운데에 대한민국의 K2가 나란히 서 있었다.
 
  ‘자주국방’이라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들 손으로 전차를 만들려다 물먹은 나라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아준(Arjun) 전차’는 50년 전인 1974년부터 개발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전력(戰力) 취급을 받지 못하고 소량만 생산됐다. 2010년엔 국내 언론에서 가장 긴 개발기간으로 소개됐고 이듬해엔 ‘무기 개발 역사에 남을 실패작’이라고 평가받았다. 아준 전차 개발이 시작된 1974년은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창원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 해다.
 
 
 
10년 연구 끝에 1998년, K9 자주포 개발

 
K9 자주포의 수출 계약 대수 및 경쟁 제품과의 제원 비교.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차도 그러하지만, 현대에 와서 1970년대까지 우리 손으로 제대로 만들어낸 총포류는 하나도 없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의 얘기다.
 
  “창군(創軍) 이후 우리 군은 105mm M3 곡사포를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155mm 곡사포, 평사포, 8인치 자주포, 견인 곡사포, 175mm 무포탑형 자주곡사포 등으로 무장해 전투종심(戰鬪縱深·접촉하지 않고 종심상의 적 부대를 타격하는 전투)을 증가시킬 수 있는 포병 화력을 준비했으나, 대부분 미국의 군원 또는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인수한 것들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1971년 ‘번개사업(자주국방을 목적으로 시작된 무기 국산화 산업)’을 통해 자체 무기 개발에 들어갔고, 박격포를 스스로 개발해냈습니다. 그럼에도 사거리 20~30km의 화포 필요성이 대두했고, 군 당국은 155mm 곡사포를 개발키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1979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한국형 곡사포, KH179가 탄생해 1984년부터 작전 배치가 본격적으로 됐지만 군 당국의 위기감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 왜 그랬습니까.
 
  “우선 북한과 비교해보면 화포의 경우, 당시 북한은 우리 군보다 수적으로 5000문이나 더 많았고, 그중 50%가 자주화 및 차량 탑재용이어서 기동화가 쉬웠습니다. 우리 군으로서는 양적인 열세를 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화포체계실은 1989년 1월부터 자주포체계팀을 편성하고 새로운 자주포, 즉 신형 155mm 자주곡사포에 대한 개념 형성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 왜 하필이면 155mm 구경입니까.
 
  “105mm처럼 구경이 작은 탄보다 위력이 세고, 175mm처럼 구경이 큰 탄약에 비해서는 운반과 장전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K9 자주포의 포신은 155mm·52구경장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된 155mm·52구경 자주포입니다. 우리 군은 국제 간 탄약 호환성을 고려해서 이 규격을 채택했습니다.”
 
  ― 순수 우리 제품이군요.
 
  “1998년 10여 년간의 개발 끝에 탄생한 K9 자주포는 애초 육군에 의해 개발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에 연평해전이 발발하며 인근 해역 긴장이 고조되자, 군 당국은 K9을 해병대용으로 전환 배치키로 결정했습니다. 연평도에서 북한 해주까지 거리는 32km로, K9 자주포의 최대 사거리 40km 내에 포함됐습니다. K9은 창원 공장에서 출고식 행사를 마친 뒤 해군상륙함으로 운송돼 연평도에 배치됐습니다.”
 
 
  미군이 감탄한 K9의 성능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은 개머리 진지에서 연평도를 향해 방사포 170여 발을 쏴댔다. 우리 군 해병대는 80여 발을 응징 사격했다. 이때 사용된 총포가 우리의 K9 자주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북한이 포탄을 쐈지만 K9 자주포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아 바로 대응 사격을 할 수 있었다. K9이 튼튼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고 말했다.
 
  K9 자주포가 적군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자유아시아방송’ 보도(2012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방송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 군인 1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북한군의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1년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기체계 기술 수준은 세계 9위다.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분야는 K9 자주포 등으로 대표되는 화포로 세계 4위다. 연구소는 “한국 화포 분야는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자주포 성능 개량을 위해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K9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2년 9월, 미국 애리조나 YUMA 사격장에서 미 육군 자주포 사업 관계자를 초청해 K9 자주포 사격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운용 시범 행사를 가졌다. 이를 통해 미군이 운용 중인 다양한 탄과 K9, K10과의 호환성, K9의 운용 성능을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에드먼드 마일스 브라운 사령관(소장)은 K9, K10의 시범이 끝나고 장비를 샅샅이 살피고는 “수십 년 전 미국의 포를 받아서 사용하던 국가가 오히려 미국에 첨단 장비를 가져와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브라운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은 K9의 자동장전 사격 체계, K10의 탄약 적재, 이동 능력에 감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군의 최신 장비(M109A7)는 여전히 병력이 30~40kg에 달하는 탄을 직접 손으로 장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병이 러시아의 키이우 점령 무산시켜”

 
  화포는 화약의 발명으로 탄생한 오래된 무기다. 초정밀 미사일과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현대전(戰)에서 여전히 도태되지 않고 발전하는 이유가 의아할 수 있다. 군사 전문가가 말한 바로는 첫째, 화포는 가성비 좋은 고효율 무기 체계다. 미 육군이 운용하는 전술 탄도미사일인 ATACMS는 미사일의 성능은 매우 우수하지만, 한 발의 가격이 82만여 달러(10억원)로 고가(高價)다. 둘째, 야포(지상전투에 사용되는 화포)는 융통성과 운용성이 뛰어나다. 야포는 전투기와 달리 사격하는 데 있어서 기상이나 지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운용할 수 있다. 또 야포는 사격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화력을 동시에 집중(또는 분산)할 수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포병은 전쟁 초기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을 제압했다. 우크라이나 2개 포병여단은 집중 사격을 통해 러시아군의 키이우 점령을 무산시켰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전에서도 화포의 중요성이 입증된 사례이다.
 
 
  2022년 8월에 첫 해외 진출
 
지난해 8월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가 폴란드 군비청과 K2 흑표 전차 및 K9 자주포 수출을 위한 57억6000만 달러(약 7조6780억원) 규모의 1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수출 기업으로 우뚝 서고 있어서다.
 
  현대로템의 방산 매출은 2014년 750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매출이 늘어 8225억원(2020년), 8965억원(2021년)에 이어 2022년에 1조원을 넘어선 1조59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에는 1분기에만 2600억원, 2분기 7444억원을 기록했다. 수출 호조에 따른 변화다.
 
  현대로템은 2008년에 튀르키예(터키)에 K2 전차 기술을 수출했다. 이후 회사는 방산 부문 사업 확대를 위해 해외 시장 수출 기회를 꾸준히 모색했다. 첫 기본 계약은 2022년 7월에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긴급소요 및 폴란드형 K2 전차를 포함, 1000대 물량에 대한 기본 계약이다. 현대로템 측이 말한 바로는 기본 계약은 폴란드 획득 절차상 앞으로 진행될 개별 실행계약 체결 이전에 하는 절차다. 다음 달인 2022년 8월에 현대로템은 폴란드 군비청과 총 4조4992억원 규모의 K2 전차 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K2 전차의 첫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두 달 뒤인 2022년 10월에 폴란드로 향하는 K2 전차 초도 물량 10대가 출고됐고, 약 50일 만인 12월에 폴란드 현지에 도착했다. 이어 2023년 3월에 K2 전차 5대가 기본 납기(納期)보다 무려 3개월 앞서서 현지에 도착했다.
 
  현대로템 관계자의 얘기다.
 
  “K2 전차의 빠른 출고를 위해 회사는 업무 부하가 예상되는 팀을 중심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통해 근무시간 연장으로 업무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물론 K2 전차가 빨리 출고될 수 있었던 데는 군, 관계 기관의 적극적 협조도 일조했습니다.”
 
  ― 행정 절차를 간소화한 모양이군요.
 
  “국방부와 방사청, 군은 유기적인 업무 대응으로 K2 전차 수출과 관련한 행정 절차를 크게 단축했고, 국방기술품질원은 K2 전차에 대해 신속하게 품질 검사를 진행해 생산·출고에 이르는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1차 긴급 소요분 180대는 2025년까지 납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폴란드를 공략한 방법은요.
 
  “현재 폴란드에 납품 중인 한 K2 전차는 ‘K2GF’ 폴란드 맞춤형 모델입니다. 폴란드의 긴급 소요를 충족하기 위해 정보통신 체계만 폴란드형으로 개조한 K2 전차입니다. 이를 후속하게 될 ‘K2PL’은 여러 가지 폴란드 군 요구사항을 반영해 K2를 개조한 폴란드형 K2 전차가 될 것입니다. 이 전차는 폴란드에서도 생산이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제안해 현재 총괄계약이 체결된 상태입니다.”
 
 
  국가별 맞춤형 전차로 세계 시장 공략
 
  현대로템은 폴란드군에 최적화된 K2PL처럼 이미 각국의 전투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모델로 세계 시장 문을 두드려왔다. 섭씨 50도가 웃도는 사막 기후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개량한 중동형 K2 전차는 중동 현지에서 성공적인 운용평가를 받았다. 영하의 북유럽 노르웨이의 동계 환경에서도 성능이 입증돼 세계 어느 지역으로든지 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
 
  현재 현대로템은 2023년 4월, 폴란드 국영방산그룹 PGZ 및 PGZ 산하 업체인 WZM과 체결한 전차 본 계약 협상을 위한 컨소시엄 이행 합의서를 바탕으로 폴란드형 K2 전차 본 계약 협상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K2PL 컨소시엄은 2022년 7월 현대로템과 폴란드 군비청이 맺은 총괄계약 내용을 기반으로 체결된 것으로, 폴란드 측의 K2PL 전차 생산 역량 구축을 위한 지원 사항을 포함해 현지 생산 및 적기 납품을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 관계를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컨소시엄은 올해 후반기 폴란드 군비청과의 이행계약 체결을 목표로 내부적인 협의를 지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현지 기술지원과 교육, 생산시설 구축 등 K2PL 전차를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제반 세부사항들을 검토하고 조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국내 유일의 전차 생산 기업으로서 수십 년간 축적해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최신예 K2 전차의 해외 수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자주국방의 핵심 전력인 전차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 방위에 변함없이 일조하는 데 매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없다”
 
지난 8월 31일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김현우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산공장장.
  현대로템 창원공장엔 K2 전차를 만드는 ‘방산 공장’과 고속철도를 만드는 ‘철도차량 공장’이 공존하고 있다. 수주 사업에 따라 일감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현대로템 창원공장은 한울타리 안에서 두 공장을 서로 전환 배치하며 인력을 공유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폴란드 수출 계약 체결로 인해 철도 부문 인력 80여 명을 방산 부문으로 전환 배치했다. 김현우 공장장에게는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처음 K2 전차 10대를 계약과 동시에 납품해야 했습니다. 전차 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언어를 다 영어로 바꿔야 했습니다. 도색(塗色)이나 표시, 지시판도 영어로 바꾸고, 어떤 부분은 폴란드어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직원들이지만 대단한 것이 그걸 한 달 만에 다 해냈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도면을 리뷰해서 바로 색칠하고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영어 작문하고, 다른 나라 같으면 1년 걸릴 걸 우리는 금방 하는 걸 보면, 천재들이 많은 것 아닌가요(웃음). 제가 볼 땐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없습니다.”
 
  ― 그렇게 애쓴 K2 전차를 처음으로 보낼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내 딸 시집보내는 마음이었습니다. 폴란드로 가는 배에 K2를 실은 시각이 새벽 두 시였습니다. 저도 직원들도 모두 나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방산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했는데 수출은 처음입니다. 그때 기분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방산 물자는 배에 싣는 것부터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항로도 운송도 전부 기밀이었습니다.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모든 직원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현대 정신’을 발휘했습니다(웃음).”
 
 
  인도 사막에서 제품 테스트
 
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과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럽법인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해 2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K9 자주포 2차 이행계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01년 튀르키예에 K9 기술 이전을 시작으로 수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4년에 폴란드에 K9 차체를 수출했고, 2017년에는 인도·핀란드·노르웨이에 중고품 및 완제품을 수출했다. 지난해에는 이집트와 2조원 규모의 K9·K10·K11 완제품 수출 및 기술 이전 현지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방산 수출이 증가하면 기업의 생산시설 가동률이 높아지고, 이는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진다. 또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인하를 통해 우리 군의 무기 체계 획득·운용·유지 비용까지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며 “적시적인 군수 지원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수출 실적을 쌓기 위해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의 얘기다.
 
  “2017년에 수주한 인도평가시험 때는 모래 바람과의 싸움이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인도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에는 러시아 자주포가 K9과 경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군은 사막 언덕에서 등판 시험을 진행하기를 원했습니다. 수주를 하기 위해서 한국과 러시아 자주포는 인도군이 요구하는 시험 테스트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혹독한 테스트였네요.
 
  “러시아 자주포는 몇 번 시도 끝에 등판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우리 K9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재차 도전해 통과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18년에 수주에 성공한 에스토니아의 공략법은 또 달랐다. 한화는 ‘편의성’을 강조해 수출 계약을 맺었다. 에스토니아 수주전이 한창일 때, 에스토니아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고위 관계자가 우리 육군 운용 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리 군 관계자는 K9 운용을 부대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에게 맡겼다. 갓 배치된 신병이 K9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고 에스토니아 군 장성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글로벌 무기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국방 예산 증가 추세와 비례해 무기 체계 개발과 생산, 운영 유지를 포함한 무기 획득 예산이 늘고 있다. ‘Aviation Week’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무기 획득 예산은 5500억 달러였으나, 러시아발 전쟁 이후 늘어 2023년에는 6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앞으로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장래가 기대된다.
 

  인터뷰
  김의환 현대로템 고문
 
  “K2, 현존하는 어느 전차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전차”
 
지난 8월 25일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K2 전차 개발자 김의환 현대로템 기술고문.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의환 고문은 1979년에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해 장갑차ㆍ전차 개발을 맡아왔다. K2 전차개발단장ㆍ한국시스템공학회장을 역임한 그는 2020년부터 현대로템 고문을 맡아 기술 자문을 맡고 있다.
 
  “국방연구소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국방(國防)의 초석(礎石)’이라는 휘호가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밝히면서 기업들에 방위 산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우리에게 북한은 살아 있는 위협이고, 외국의 지원은 정치ㆍ경제ㆍ외교 환경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우리 손으로, 우리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한 우리 무기 개발 능력 확보에 대한 절실함, 필요성, 이것이 현재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자주국방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죠.
 
  “이스라엘이 ‘메르카바’라는 전차를 개발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에 지원을 약속했던 영국이 중동전이 터지자 하루아침에 지원을 끊으면서부터입니다. ‘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차 독자 개발을 하게 했고 우리도 같았던 겁니다. 창원공단은 평상시에는 민간 수요를 담당하지만, 전시(戰時)에는 방산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조성했습니다. 창원은 흔히들 ‘폭격이 어려운 지형’이라고 하는데, 방산 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겁니다.”
 
  ― 전차 개발의 100년 역사를 가진 독일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미천한데요.
 
  “정부 ADD의 주도하에 군(軍)ㆍ연구소ㆍ학계ㆍ기업이 모두 힘을 합친 국민 염원의 결과물입니다. 튀르키예에 ‘알타이’라는 전차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튀르키예에 기술 지원, 양산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을 합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대한민국이 불과 50년 만에 튀르키예에 전차 관련 기술과 부품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느냐’며 부러워합니다. 폴란드가 물론 소련의 위성 국가였지만, 독립 후에 자주국방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하고 전차를 수입하는 형편입니다. 군ㆍ연구소ㆍ기업 등이 삼위일체가 돼 오늘날의 쾌거를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
 
  ― 숱한 시행착오, 실패가 있었겠지요.
 
  “연구개발은 테스트, 실패, 보완 과정을 돌고 도는 겁니다. ‘어떻게 실패의 빈도를 줄일 수 있을까’ ‘한 번에 성공하는 방법은 없을까?’ 매일 이런 생각만 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웃음). 실패를 할 때마다 비용이 들어가고, 시간을 버리는 겁니다. 장갑을 두껍게 하면 전차가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엔진이 커져야 하고 엔진이 커지면 전차가 더 커지고 그러면 전차가 더 무거워져 주행 장치도 더 강인해져야 하고 전차 움직임은 둔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성능과 기능 요소를 조화롭게 최적화해 최소의 시행착오로 최고 전차로 만들어 나가는 게 일이 아닌가 합니다.”
 

  ― 전차는 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도구 아닙니까.
 
  “그렇죠. 무조건 좋은 부품 사용한다거나 많은 기능이 있다고 좋은 전차가 되는 게 아니라 전차의 고유 임무인 쏘고 달리고 막고 하는 모든 기능의 ‘최적화’와 ‘최고화’가 필수입니다. 또 성능이 좋으면서도 특정 기간 내에 완성해야 하고, 그 과정에 소모되는 비용이 적절해야 합니다. 특히 전차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물건의 품질 외에 정치, 외교가 필수입니다.”
 
  ― K2를 수출했다는 것은 그 국가와도 끈끈한 관계라는 증명이죠.
 
  “만약에 어느 국가가 ‘성능ㆍ납기일ㆍ가격 등을 모두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K2 전차를 쓰겠다’고 해보죠. 그런데 그 국가가 전차 강국인 경쟁국과 역사적으로 유대관계를 갖고 있거나, 만일 경쟁국 제품을 쓰지 않으면 곤란한 정치ㆍ경제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모든 면에서 우리의 K2 전차가 경쟁국 전차보다 우수해도 수출할 수 없습니다. 전차 수출은 전차 성능, 가격 자체만이 경쟁력이 아니라 정치ㆍ외교ㆍ안보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정부의 역할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가 50여 년에 불과한 현대로템이 이제 K2 전차 완제품 수출을 시작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 K2가 정말 그렇게 뛰어납니까.
 
  “지구상에 현존하는 어느 전차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전차입니다. 네티즌들이 말하는 세계 전차 순위에서 항상 3위 안에는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서양 열강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아시아 국가 가운데 국제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전차를 생산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 현대로템 입장에서는 수출 이외에 내수용은 군납이다 보니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아닐 텐데요.
 
  “제가 알기로 정주영(鄭周永) 창업주께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습니다. ‘북한 때문에 편히 잘 수가 없다. 우리 기술력으로 전차라는 것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시작한 사업입니다. 개발연대의 창업주들이 그러했듯이, 나라가 온전해야 비즈니스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전통이 지금도 현대로템에 우직하게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른 국가가 우리를 쫓아오는 상황이 됐으니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K3, K4 전차를 만들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일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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