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현장에 가다 : 월간조선

“2004년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 길거리에서 자면서 김밥, 주먹밥 먹어가며 했어요. 그런데 지금 노조는, 지금 노조는… 많이 변했어요.”

30년째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정모씨는 “지금 노조는…”이란 대목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젊은 시절 양대 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에 몸담았지만 이젠 어느 곳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월례비’ 때문이다. 월례비가 뭔지는 뒤에서 설명하기로 하자.

소속이 없는 정씨가 겪는 일들은 여느 비(非)노조 기사들과 비슷하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다. 노조가 서로 자기네 조합원들을 채용하라고 기업에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뒤 기자는 경기도에 위치한 타워크레인 A업체 이모 대표를 만나 타워크레인 기사 채용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이 대표의 말이다.

“(노조에서) 우리한테 취업 강요는 그냥 말도 못 할 정도로…. 제가 당했으니까 말씀드리면, 어느 현장에 타워크레인 5대가 필요합니다. 기사 5명이면 충분한데 한국노총에서 3명, 민주노총에서 3명을 써달라고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요. 결국 6명을 채용한 현장도 있어요.”

필요한 인원보다 억지로 더 많이 채용할 만큼 건설업계는 노조의 눈치를 본다. 이 대표는 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온갖 패악질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을 맡긴 회사의) 계열사 현장까지 찾아가서 집회를 하고, 모델 하우스에 가서 상복을 입고 장송곡 틀어놓고…. 심지어 붉은 글씨로 ‘모 회사 타도’를 써놓아요.”

양대 노총의 수법도 지능적으로 발전해 현장 관련 법규를 조금이라도 어기면 사진 등의 자료를 남겨 신고한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월급만 내가 줬지, 인사권은 없다”며 허탈해했다.

기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사무총장은 “타워크레인 조종 자격을 가진 사람이 2만3000명 정도”라며 “현재 4500명 정도 활동한다”고 했다. 그런데 기사로 활동하는 인원 대부분이 양대 노총 소속이라는 게 김 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4000명 정도가 양대 노총에 가입해 있고, 500명 정도는 가입을 안 했다. 가입을 안 한 이들은 노조 가입자의 잔업을 처리하거나 일감이 짧은 데 가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월례비가 2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타워크레인 작업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설치, 그중에서도 텔레스코핑 작업(기둥을 이루는 마스트를 쌓아 올려 타워크레인을 높이는 작업)엔 기사가 구해지지 않아 타워크레인 네이버 밴드에서 구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한 ‘짧은 일감’ 중에는 타워크레인 설치 및 해체 작업도 포함돼 있다. 건설업계에선 이 작업이 타워크레인과 관련된 모든 작업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런데 정씨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채용 강요를 할 정도로 타워크레인 조종석을 ‘사수하는’ 양대 노총이 정작 타워크레인 설치와 해체 작업엔 참여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고된 설치와 해체 작업은 대개 비노조 기사들이 맡는다. 그래서 ‘땜빵 기사’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가뜩이나 양대 노총에 밀려 일할 기회가 적은 비노조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도 더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는 셈이다.

정씨는 “타워크레인 설치 작업을 할 때는 볼트를 풀어놓고 작업해서 더 위험하다”며 “그렇게 붕 뜬 상태에서 바람이 불거나 약간의 실수라도 있으면 사고가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원들 목숨은 아깝고 비노조원 목숨은 목숨도 아니냐”고 꼬집었다.

노조를 나온 정씨가 겪는 또 다른 불이익은 바로 ‘임금 격차’다. 물론 하는 일은 똑같다. 그는 “노조 기사와 비노조 기사의 임금 격차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 정도 난다”고 했다. 그는 “설치는 더 위험해서 30만원, 해체는 20만~25만원을 받는다. 노조 기사들은 월례비도 받고 하루에 40만~50만원을 받는데 비노조 기사에게는 일당만 준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월례비가 뭔지 살펴보자.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급여 외 정례 웃돈’을 말한다.

게다가 이 월례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엔 여러 단종 업체(건설사가 선정한 분야별 전문업체)들이 있는데, 이 업체들이 서로 작업을 먼저 해달라고 부탁하는 관행이 발단이 되었다. 다시 말해, 여러 단종 업체들은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잘 보여야 물건을 빨리 옮겨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처음엔 수고비 명목으로 200만~300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기자에게 “처음에는 소소하게 200만~30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최고 1500만원까지 가져간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된 배경은 ‘건설 현장의 꽃’으로 불릴 만큼 타워크레인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긴 팔(지브)의 갈고리가 닿는 곳은 어디든 10t까지의 물건을 들어 올려 옮길 수 있다. 만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보니 건설 현장의 업체들이 서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잘 보이려 웃돈을 얹어주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점차 노동계의 힘이 사용자를 억누를 만큼 막강해지면서 월례비가 1500만원까지 치솟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김준용 사무총장도 “2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한 타워크레인 기사의 월급명세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월례비는 명세서에 나와 있지 않았다. 당연히 세금도 떼지 않는다. 반론을 듣기 위해 민주노총에 연락을 취했으나 민주노총은 답변을 거부했다.

“절대 명함 돌리시면 안 됩니다”

타워크레인 설치와 해체 현장을 보기 위해 건설 현장에 찾아갔다. 위험천만하다 해도 두 눈으로 현장을 보고 싶었다.

타워크레인 설치 현장에서 모 건설업체에서 근무하는 최모씨를 만났다. 그는 기자에게 몇 번이고 신분을 숨길 것을 당부했다. 아무래도 언론에 적대적인 양대 노총 소속 근로자들이 많은 탓이다.

오전 7시에 모여 안전교육을 받은 뒤 현장으로 갔다. 한쪽에선 항타기(건물을 짓기 전 기초 공사로 말뚝을 박는 천공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축을 흔들고 있었다. 때마침 대각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타워크레인 설치 작업이 시작됐다. 타워크레인의 기둥은 ‘마스트’를 하나씩 올려 높게 쌓는다. 타워크레인의 기둥을 이루는 여러 개의 철재 구조물이 마스트다.

베이식 마스트(타워크레인을 지면에 고정시키는 하단부 마스트) 위로 마스트를 하나씩 올릴 때마다 작업을 하는 기술자들은 지상에서 멀어져 갔다. 마스트의 구조는 격자 형태이지만, 철골 구조물 사이 공간은 사람의 몸이 빠져나가기에 충분했다. 작업을 하다가 까딱하면 몸이 빠져 추락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물론 작업복엔 두 개의 추락 방지 갈고리가 달려 있다. 근처 손잡이 같은 곳에 갈고리를 걸고 작업을 하지만 사다리로 위아래를 이동할 땐 갈고리를 걸지 않는다. 그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고 했더니 최씨는 당연하다는 듯 “사다리 탈 때 어떻게 갈고리를 걸어요”라고 말했다.

타워크레인은 설치와 해체 작업이 가장 위험하다. 설치 작업은 주로 외주를 맡기는데, 5인 1조로 타워크레인을 설치하는 기술자들을 현장에선 ‘도비’라고 부른다. 비계공(높은 곳에서 가설물을 설치하는 직업)을 뜻하는 일본어 도비쇼쿠(とびしょく)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날 작업은 기둥 위로 조종실과 지브, 후크(갈고리), 웨이트(무게추)를 설치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타워크레인의 T자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엔 텔레스코핑 작업(타워크레인의 기둥인 마스트를 연장해 높이를 올리는 작업)이 예정돼 있었다.

현장 관계자들은 “타워크레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밸런스(무게 균형)”라고 했다. 도비 기술자들에게 전문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도비 기술자 B씨는 “높은 곳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면 위험하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 많다는 외국인 근로자를 도비팀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B씨는 “작업이 위험하다 보니 신입이 오면 팀원들의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쏠린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간혹 있다고는 들었지만 거의 못 봤다”고 했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정신이 아찔”

현장 직원은 “안전고리를 걸지 않은 사고가 작년에 많이 일어났다”고 했다. 작업 과정을 지켜보니 ‘그럴 만도 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작업을 높은 곳에서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이동할 때마다 갈고리를 걸다 보면 깜빡하기 쉬웠다. A씨는 등골이 오싹했던 경험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안전고리를 깜빡해 안 걸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아래에서, 맞은편에서 알려줘요. 많이 위험하죠.”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A씨는 “앉아서 작업하다가 일어서면 어지러우면서 순간 정신이 아찔하다”고 했다.

현장 관계자도 “타워크레인을 설치, 해체할 때 가장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도비 기술자들의 날랜 몸놀림이 자연스러워서 일상적인 행동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 와서 본 모든 작업은 보통 사람으로선 상상도 못 할 담력이 필요했다. 타워크레인의 기둥을 올릴 때마다 마스트 난간에 다리를 걸쳐 망치질을 하고, 공중에서 수십 t에 달하는 타워크레인 무게 추를 집어넣으며 매듭을 푸는 동작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프로들의 몸놀림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말이 실감됐다. 작업까진 아니더라도 그 높이에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줬다.

“사다리 안 타봤어? 그러다가 큰 사고 난다”

타워크레인으로 들어간 기자가 착용한 작업용 벨트. 두 개의 안전고리가 달려 있다. 건설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강사의 말에 따르면 이마저도 원래는 한 개밖에 없었는데 이동하며 고리를 잠깐 뺀 사이에 사고가 일어나 두 개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작업이 끝날 때쯤, 기자는 현장 관계자의 허락을 받고 타워크레인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스트 안으로 들어와서 잡은 사다리는 생각보다 얇고 쉽게 흔들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철골 구조물 사이로 아래가 훤히 보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조종실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호기롭게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서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팔다리가 말을 듣질 않았다. 떨리는 팔다리와 함께 얇은 사다리도 요동쳤고, 밑에서 이 광경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기술자들은 일제히 손짓하며 이렇게 외쳤다.

“야, 야 내려와, 내려와.”

내려오자마자 나이가 지긋한 기술자 한 명이 다가와 “발끝으로 디디면 안 돼, 사다리 안 타봤어? 그러다가 큰 사고 난다”고 했다. 사다리 타는 방법부터가 틀렸다며 직접 시범을 보여준 기술자는 “발 중간을 딛고, 손과 발을 번갈아가며 잡고 디뎌야 한다”며 요령을 알려줬다. 그사이, 사다리에 매달린 기자의 모습을 본 기술자들은 뒤에서 “누군 오줌을 지렸다”라든가, “누군 매미처럼 딱 붙어서 옴짝달싹 못해서 결국 그날 작업을 철수했다”든가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박장대소했다. 얼굴이 빨개졌다.

또 다른 타워크레인 B업체 박모 대표는 “타워크레인 운행 도중 사고가 나면 대부분의 경우, 지상 작업자들이 다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종석에 CCTV를 설치하면 사고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조종석엔 정말 기사 혼자 있다”며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안에서 뭘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A업체 이 대표는 자신의 회사 소속 크레인 기사가 사고를 일으켜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며 이렇게 푸념했다.

“13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모두 다 사업주가 책임을 지게 돼 있어요. 일부 기사들은 휴대폰, 노트북을 앞에 놓고 게임, 주식 매매 등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종실 CCTV 설치를 제안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못 했어요.”

사고가 날 경우에만 열람하겠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런 민노총과 한국노총이 재작년 5월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시민사회단체와의 회의에서 의료사고 우려가 높아지자 수술실 내부 CCTV 촬영에는 찬성 의견을 냈다고 한다.

안전규정과 공공연한 비밀

사실 건설 현장에서 안전규정을 일일이 지키지 않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법정 휴게시간을 지키느니 후딱 일을 마치고 일찍 퇴근하는 게 낫다는 건 어느 직장인들이나 똑같은 마음이다. 다만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손엔 지상 작업자들의 목숨까지도 달려 있다.

“거기 신호수 하는 척 좀 해주세요!”

건설업체 수습사원으로 신분을 감춘 탓에 기자가 건설사 직원으로부터 받은 부탁이다.

이날 오후 노동부에서 현장 안전 점검을 나온다는 소식이 인근의 다른 현장에서 들려왔다. 현장엔 황급히 붉은색 ‘접근 금지’ 테이프가 둘러쳐졌고, 신호수 옷과 경광봉을 든 직원이 배치됐다.

현장 직원은 “작업구역 표시만 해도 노동부 감독에 걸릴 일이 없다”고 했다.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기 위한 전지형 크레인이 마스트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 밑으로 사람이 다니지 않도록 다들 신경 쓰기 시작했다.

현장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감리(인력)도 나와 있어야 하는데…”라고 했다. 법정 감리 인력은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안전을 관리하는 이들이 해이한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안전 관리자들은 건설사 넘어갈(이직할) 거 아니면 사진만 찍고 건물 지어질 때쯤 거기 안에 틀어박혀 있다”며 “가서 뭐 하냐고 따진 적도 있다”는 말들이 오갔다.

꼼꼼히 살피고 또 살피는…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에 의하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223명으로, 업종별로는 건설업(46%)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재해유형도 떨어짐(36.8%)이 가장 많았다. 항상 높은 곳에서 일하는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작업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타워크레인 사고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당국에 문의했지만 산업재해 통계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조차 “타워크레인 사고 현황을 따로 통계로 내진 않는다”고 답했다.

그래도 현장에선 묵묵히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이들이 있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기술자들도 모두 작업복을 갈아입고 귀가할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최씨는 한참 동안 타워크레인 조종석 근처에서 배선을 만지며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무리하기 전에 재차 점검을 하며 작업이 잘 됐는지 꼼꼼히 살피고 또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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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현장에 가다

사다리에 매달려 ‘덜덜’… 떨면서 들은 월례비와 채용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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