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의식했다면 오히려 기념관 건립 추진하지 말았어야”
⊙ “기념관 하나 짓지 못할 만큼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가 크고, 업적은 없나?”
⊙ “대한민국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주춧돌을 놓고 튼튼한 기초공사를 해놓은 것”
⊙ “이승만 대통령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
⊙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고 끝까지 또 책임지는 것이 국가보훈부의 책무”
박민식
1965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제22회)·사법시험(제35회) 합격 /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창원·여주 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국회의원(제18·19대),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 現 국가보훈처장
⊙ “기념관 하나 짓지 못할 만큼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가 크고, 업적은 없나?”
⊙ “대한민국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주춧돌을 놓고 튼튼한 기초공사를 해놓은 것”
⊙ “이승만 대통령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
⊙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고 끝까지 또 책임지는 것이 국가보훈부의 책무”
박민식
1965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제22회)·사법시험(제35회) 합격 /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창원·여주 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국회의원(제18·19대),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 現 국가보훈처장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행사가 서울 종로구 이화장(梨花莊)에서 열렸다. 박민식(朴敏植·58) 국가보훈처장은 이 자리에서 “진영을 떠나 이제는 후손들이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건국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업적을 재조명할 때”라며 “그것이 건국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의무일 것이고,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3월 27일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 후보지에 대한 사전 검토 절차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박민식 처장이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백선엽(白善燁) 장군 기념사업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물밑에서 이와 관련된 여론 수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몇 경 로를 통해 이미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일을 진행할 줄은 몰랐다.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에 따른 장관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정식으로 장관 임명을 받은 후에야 공표할 줄 알았다.
기념관 건립 추진 보도가 나오자 한편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 등은 “독재 부활 시도”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좌우로 첨예하게 나누어져 이념적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논란의 중심에 선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4월 12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서울지방국가보훈청에서 만났다.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
―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윤석열 정부가 정말 큰 결심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히 당부한 것이 있습니까.
“아직 공식적인 말씀은 없으셨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저와 거의 같으실 것이라고 봅니다. 적절한 기회에 대통령께서 공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밝히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처장께서 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功過)와 관련, ‘공팔과이(功八過二)’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저도 공감합니다.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고 했지요!”
―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을 하나 꼽는다면.
“업적은 너무 여러 가지여서… 그래도 두 개, 아니 세 개는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웃음)”
― 그럼 세 개를 말씀해주시죠.
“아시다시피 올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미국과 싸워가면서 한미동맹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동맹이 튼튼한 안보의 기틀이 되었고, 이 덕분에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 그렇지요.
“둘째,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독립운동의 ‘절대영웅’입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으신 분입니다. 물론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셨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암흑 같은 일제(日帝) 치하에서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샛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근대인”
― 세 번째는요?
“이건 사실 간과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은 ‘근대인(近代人)’이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890년대 후반에 독립협회 운동 등을 하면서 이미 민주공화정을 지향했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전제군주정하에 있던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결국 이 때문에 대역죄로 몰려서 사형선고를 받고 한성감옥에 갇히셨잖아요? 그 당시 지사들 가운데는 단순히 망해가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도 많았어요. 이런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혜안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조(淸朝)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한 쑨원(孫文)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인 이승만’에 착목(着目)하는 것을 보고, ‘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제대로 공부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노년(老年)에 이르러 주변 관리를 잘 못 한 부분이겠지요. 그것이 권위주의 정치로, 또 결국은 그분이 하야(下野)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생물학적인 연령, 노쇠함, 이런 것이 영향을 많이 줬을 것 같고… 그런 부분은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 처장의 목소리는 조금은 젖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박 처장은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결국 변명할 수 없는 것이고, 역사적인 비판은 당연하게, 엄정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박민식 처장이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점이 단 하나도 없어야 기념관 지을 수 있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이른바 진보 성향 매체들은 다투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오마이뉴스’는 4월 5일 “윤 정부 착각했다, 이승만은 이래저래 안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지금 한국사회는 친일파를 단죄하고 민간인 학살자를 규탄하며 반민주 독재자를 배척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민주공화정 이념을 파괴함은 물론이고 국민 세금을 이용해 부정선거까지 자행한 이승만을 위해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이런 흐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4월 8일 자)은 “보훈처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헌법의 ‘4·19 민주이념 계승’을 생각한다면 그를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하기란 쉽지 않다. 이승만이 주로 미국에 체류하며 외교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장이었던 그가 자칭 임시정부 대통령 행세를 하다가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으로부터 탄핵당하는 등 독립운동 공과 또한 논쟁의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 소위 진보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독재, 6·25 때 양민 학살, 친일청산 실패 등을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민 학살을 했다는 주장 같은 것은 저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고요. 말씀드린 것처럼 노년의 권위주의 정치 같은 것은 엄정하게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그럼 오점(汚點) 하나 없어야만 기념관을 지을 수 있다는 건가요? 기념관 하나 짓지 못할 만큼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가 크고, 업적은 없는 것일까요?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모두 서울이나 고향에 그분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도서관이 있어요. 그런 분들과 비교할 때, 이승만 대통령은 기념관 하나 지으면 안 될 만큼 잘못이 큰가요?”
4·19 세대의 이승만 묘소 참배
― 헌법 전문(前文)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비판하는 언론도 있더군요.
“저는 헌법 전문과 기념관 건립이 무슨 인과(因果)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탄생일을 맞아 4·19 세대인 전직 정치인들이 서울국립현충원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과거에 여당을 했던 분도 있고, 야당을 했던 분도 있습니다. 4·19 당시 ‘이승만 하야’를 외치면서 앞장서서 돌을 던졌던 분들이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후회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참 의미 있는 행사였죠.
“당대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봐야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 기록을 보면, 가족장(家族葬)이었는데도 그분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러 나온 국민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인생을 잘못 살고, 나라에 그렇게 해를 끼친 분이라면, 국민들이 그랬겠습니까?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했겠지요. 저는 이걸로 대답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의 비난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이 워낙 두드러졌고, 그 과정에 많은 국민이 동참했기 때문에 기념관 건립을 위한 공감대 형성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이승만 전 대통령은 좌우 가릴 것 없이 ‘4·19로 쫓겨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가 하야를 하신 지 63년, 돌아가신 지 58년이 흘러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감합니다.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제대로 조명받을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4·19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모두 이승만 시대를 부정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권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음지(陰地)에서 양지(陽地)로 올라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젊은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누구인지 자체를 모르게 되었지요.”
이승만의 비애
― 처장께서도 소위 ‘586 세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이 대통령을 긍정하게 됐습니까.
“부끄럽게도 2~3년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이승만이라고 하면 ‘독재자’ ‘3·15 부정선거’ 이 두 가지밖에 기억나는 게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이래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몇 년 전부터, 특히 국가보훈처장을 맡게 되면서 근현대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럴 정도면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할 거예요.”
― 저도 그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이승만 대통령의 비애(悲哀)인 것이죠. 4·19 세대가 대한민국의 중추를 형성했고,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18년간 집권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제대로 조명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하면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노회한 독재자’라는 이미지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대부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농지개혁 같은 국가의 기초공사에 해당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밖에 독도 영유권 확보, 원자력 발전 등도 그렇지요. 농지개혁 같은 경우 우리는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無償沒收 無償分配)’ 방식으로 했는데,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有償沒收 有償分配)’ 방식으로 했다고 배웠어요. 어딘지 ‘북한의 방식이 옳다’라는 느낌이 들게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공부를 해보니, 우리가 6·25전쟁을 극복하고 박정희 시대에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오히려 북한의 경우, 전부 공산당 땅이지 농민들 땅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잘못 배운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주춧돌을 놓고 튼튼한 기초공사를 해놓은 것입니다. 그걸 드러내줄 수 있는 우군(友軍)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운 일이죠.”
“기념관 건립,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나?”
― 그런데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 이승만 기념관 건립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제 주변에도 이승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앞으로 제가 정치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만 해도 이런 소리를 듣는데,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선거를 의식했다면 오히려 하지 말아야죠.”
― 기념관 건립이 윤석열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되지는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을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어보자는 게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의 미션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반도체도 만들고, 탱크도 만들고, 복지제도도 잘 갖추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체성이 바로 서지 않으면, 물질적인 것을 백날 만들어놓아도 결국 적(敵)의 손에 갖다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죠.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포지셔닝해야 할 때입니다. 자유민주주의로 갈 것인가, 북한식으로 갈 것인가? 이렇게 포지셔닝을 할 때 그 출발점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보려고 할 때,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이 부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바로 아는 것은 단순히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그런데 선거를 노리고 이승만 기념관을 지으려는 것이다? 참 바보 같은 얘기입니다. 그거야말로 음모론적인 시각 아닌가요?”
― 개인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생각하지만, 건립 얘기가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제가 지난해 5월 취임하고부터 가장 많이 언급한 주제입니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이야기했죠. 절대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기념관 건립은 하루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건국지사이자 대통령”
― 일각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아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행하는 것은 ‘독재자 이승만’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더군요.
“아니 그게 왜 꼼수입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건국지사이면서 동시에 대통령을 지낸 분입니다. 전직대통령예우법이나 국가유공자법 중 어느 법에 따라 기념관을 건립하건,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기념사업은 행정안전부 사업이지만, 국가유공자에 관한 것은 보훈처 사업입니다. 제가 보훈처장이기 때문에 건국지사로서의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것이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 과거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의 경우처럼,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이 정치적 변화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질 없이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라는 숭고한 미션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정파 분열은 의외로 덜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어느 신문을 보니 건립 찬성과 반대가 각각 50대 50이더군요. 옛날 같으면 1대 9나 2대 8 정도 되었을 텐데…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국민들이 많이 응원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까.
“젊은 세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6·25 당시 미군을 참전시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포 더 컨트리(for the country)’
지난 2월 27일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었다(정식 출범은 6월 초).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일 정부조직법 공포안 공개서명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부름에 응답한 분들을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나라 정부 부처 이름에 ‘국가’가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정보원 정도다.
― ‘국가보훈부’라는 이름은 보훈의 대상이 민족이라는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인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라는 데 대해서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오히려 ‘민족’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나라’입니다. 국제사회는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 나라와 나라의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국민’은 ‘그 나라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공직자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국가보훈도 마찬가지입니다. ‘포 더 컨트리(for the country)’,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고 끝까지 또 책임지는 것이 저희 보훈부의 책무입니다. 따라서 부서 이름이 국가보훈부인 것은 당연한 것이죠.”
―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김원봉을 서훈하지 못해 안달했던 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보훈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모와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번영을 위한 사활적(死活的) 가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보훈에 대한 철학은 못 말릴 정도로 확실합니다.”
―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로 야당에 시달림을 받지는 않을까요.
“공격이 조금 예상되기는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제 소신이자, 공직자로서 제 의무,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야당 의원님들 또한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잘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날인 3월 27일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 후보지에 대한 사전 검토 절차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박민식 처장이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백선엽(白善燁) 장군 기념사업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물밑에서 이와 관련된 여론 수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몇 경 로를 통해 이미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일을 진행할 줄은 몰랐다.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에 따른 장관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정식으로 장관 임명을 받은 후에야 공표할 줄 알았다.
기념관 건립 추진 보도가 나오자 한편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 등은 “독재 부활 시도”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좌우로 첨예하게 나누어져 이념적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논란의 중심에 선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4월 12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서울지방국가보훈청에서 만났다.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3월 26일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탄생 148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국가보훈처 |
“아직 공식적인 말씀은 없으셨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저와 거의 같으실 것이라고 봅니다. 적절한 기회에 대통령께서 공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밝히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처장께서 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功過)와 관련, ‘공팔과이(功八過二)’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저도 공감합니다.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고 했지요!”
―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을 하나 꼽는다면.
“업적은 너무 여러 가지여서… 그래도 두 개, 아니 세 개는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웃음)”
― 그럼 세 개를 말씀해주시죠.
“아시다시피 올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미국과 싸워가면서 한미동맹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동맹이 튼튼한 안보의 기틀이 되었고, 이 덕분에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 그렇지요.
“둘째,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독립운동의 ‘절대영웅’입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으신 분입니다. 물론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셨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암흑 같은 일제(日帝) 치하에서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샛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근대인”
― 세 번째는요?
“이건 사실 간과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은 ‘근대인(近代人)’이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890년대 후반에 독립협회 운동 등을 하면서 이미 민주공화정을 지향했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전제군주정하에 있던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결국 이 때문에 대역죄로 몰려서 사형선고를 받고 한성감옥에 갇히셨잖아요? 그 당시 지사들 가운데는 단순히 망해가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도 많았어요. 이런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혜안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조(淸朝)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한 쑨원(孫文)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인 이승만’에 착목(着目)하는 것을 보고, ‘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제대로 공부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노년(老年)에 이르러 주변 관리를 잘 못 한 부분이겠지요. 그것이 권위주의 정치로, 또 결국은 그분이 하야(下野)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생물학적인 연령, 노쇠함, 이런 것이 영향을 많이 줬을 것 같고… 그런 부분은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 처장의 목소리는 조금은 젖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박 처장은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결국 변명할 수 없는 것이고, 역사적인 비판은 당연하게, 엄정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박민식 처장이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점이 단 하나도 없어야 기념관 지을 수 있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이른바 진보 성향 매체들은 다투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오마이뉴스’는 4월 5일 “윤 정부 착각했다, 이승만은 이래저래 안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지금 한국사회는 친일파를 단죄하고 민간인 학살자를 규탄하며 반민주 독재자를 배척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민주공화정 이념을 파괴함은 물론이고 국민 세금을 이용해 부정선거까지 자행한 이승만을 위해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이런 흐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4월 8일 자)은 “보훈처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헌법의 ‘4·19 민주이념 계승’을 생각한다면 그를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하기란 쉽지 않다. 이승만이 주로 미국에 체류하며 외교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장이었던 그가 자칭 임시정부 대통령 행세를 하다가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으로부터 탄핵당하는 등 독립운동 공과 또한 논쟁의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 소위 진보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독재, 6·25 때 양민 학살, 친일청산 실패 등을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민 학살을 했다는 주장 같은 것은 저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고요. 말씀드린 것처럼 노년의 권위주의 정치 같은 것은 엄정하게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그럼 오점(汚點) 하나 없어야만 기념관을 지을 수 있다는 건가요? 기념관 하나 짓지 못할 만큼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가 크고, 업적은 없는 것일까요?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모두 서울이나 고향에 그분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도서관이 있어요. 그런 분들과 비교할 때, 이승만 대통령은 기념관 하나 지으면 안 될 만큼 잘못이 큰가요?”
전직 여야 정치인 등 4·19 세대 40여 명이 3월 26일 서울 국립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사진=조선DB |
“저는 헌법 전문과 기념관 건립이 무슨 인과(因果)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탄생일을 맞아 4·19 세대인 전직 정치인들이 서울국립현충원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과거에 여당을 했던 분도 있고, 야당을 했던 분도 있습니다. 4·19 당시 ‘이승만 하야’를 외치면서 앞장서서 돌을 던졌던 분들이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후회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참 의미 있는 행사였죠.
“당대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봐야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 기록을 보면, 가족장(家族葬)이었는데도 그분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러 나온 국민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인생을 잘못 살고, 나라에 그렇게 해를 끼친 분이라면, 국민들이 그랬겠습니까?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했겠지요. 저는 이걸로 대답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의 비난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이 워낙 두드러졌고, 그 과정에 많은 국민이 동참했기 때문에 기념관 건립을 위한 공감대 형성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이승만 전 대통령은 좌우 가릴 것 없이 ‘4·19로 쫓겨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가 하야를 하신 지 63년, 돌아가신 지 58년이 흘러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감합니다.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제대로 조명받을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4·19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모두 이승만 시대를 부정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권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음지(陰地)에서 양지(陽地)로 올라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젊은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누구인지 자체를 모르게 되었지요.”
이승만의 비애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가 치러진 1965년 7월 27일, 수많은 인파가 서울시청 앞에 몰려나와 고인을 추모했다. 사진=조선DB |
“부끄럽게도 2~3년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이승만이라고 하면 ‘독재자’ ‘3·15 부정선거’ 이 두 가지밖에 기억나는 게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이래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몇 년 전부터, 특히 국가보훈처장을 맡게 되면서 근현대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럴 정도면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할 거예요.”
― 저도 그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이승만 대통령의 비애(悲哀)인 것이죠. 4·19 세대가 대한민국의 중추를 형성했고,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18년간 집권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제대로 조명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하면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노회한 독재자’라는 이미지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대부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농지개혁 같은 국가의 기초공사에 해당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밖에 독도 영유권 확보, 원자력 발전 등도 그렇지요. 농지개혁 같은 경우 우리는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無償沒收 無償分配)’ 방식으로 했는데,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有償沒收 有償分配)’ 방식으로 했다고 배웠어요. 어딘지 ‘북한의 방식이 옳다’라는 느낌이 들게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공부를 해보니, 우리가 6·25전쟁을 극복하고 박정희 시대에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오히려 북한의 경우, 전부 공산당 땅이지 농민들 땅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잘못 배운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주춧돌을 놓고 튼튼한 기초공사를 해놓은 것입니다. 그걸 드러내줄 수 있는 우군(友軍)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운 일이죠.”
“기념관 건립,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나?”
― 그런데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 이승만 기념관 건립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제 주변에도 이승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앞으로 제가 정치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만 해도 이런 소리를 듣는데,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선거를 의식했다면 오히려 하지 말아야죠.”
― 기념관 건립이 윤석열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되지는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을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어보자는 게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의 미션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반도체도 만들고, 탱크도 만들고, 복지제도도 잘 갖추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체성이 바로 서지 않으면, 물질적인 것을 백날 만들어놓아도 결국 적(敵)의 손에 갖다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죠.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포지셔닝해야 할 때입니다. 자유민주주의로 갈 것인가, 북한식으로 갈 것인가? 이렇게 포지셔닝을 할 때 그 출발점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보려고 할 때,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이 부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바로 아는 것은 단순히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그런데 선거를 노리고 이승만 기념관을 지으려는 것이다? 참 바보 같은 얘기입니다. 그거야말로 음모론적인 시각 아닌가요?”
― 개인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생각하지만, 건립 얘기가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제가 지난해 5월 취임하고부터 가장 많이 언급한 주제입니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이야기했죠. 절대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기념관 건립은 하루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건국지사이자 대통령”
― 일각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아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행하는 것은 ‘독재자 이승만’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더군요.
“아니 그게 왜 꼼수입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건국지사이면서 동시에 대통령을 지낸 분입니다. 전직대통령예우법이나 국가유공자법 중 어느 법에 따라 기념관을 건립하건,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기념사업은 행정안전부 사업이지만, 국가유공자에 관한 것은 보훈처 사업입니다. 제가 보훈처장이기 때문에 건국지사로서의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것이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 과거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의 경우처럼,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이 정치적 변화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질 없이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라는 숭고한 미션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정파 분열은 의외로 덜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어느 신문을 보니 건립 찬성과 반대가 각각 50대 50이더군요. 옛날 같으면 1대 9나 2대 8 정도 되었을 텐데…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국민들이 많이 응원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까.
“젊은 세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6·25 당시 미군을 참전시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포 더 컨트리(for the country)’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일 국가보훈부 승격 정부조직법 공포안 공개서명식을 가졌다. 사진=대통령실 |
― ‘국가보훈부’라는 이름은 보훈의 대상이 민족이라는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인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라는 데 대해서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오히려 ‘민족’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나라’입니다. 국제사회는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 나라와 나라의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국민’은 ‘그 나라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공직자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국가보훈도 마찬가지입니다. ‘포 더 컨트리(for the country)’,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고 끝까지 또 책임지는 것이 저희 보훈부의 책무입니다. 따라서 부서 이름이 국가보훈부인 것은 당연한 것이죠.”
―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김원봉을 서훈하지 못해 안달했던 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보훈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모와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번영을 위한 사활적(死活的) 가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보훈에 대한 철학은 못 말릴 정도로 확실합니다.”
―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로 야당에 시달림을 받지는 않을까요.
“공격이 조금 예상되기는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제 소신이자, 공직자로서 제 의무,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야당 의원님들 또한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잘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