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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선

일본은 쇠퇴하고 있는가

수입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져

글 : 리 소데쓰  일본 류코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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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인구 감소, 고령화, 지방 인구 과소화 등의 문제를 다른 나라보다 20년 빨리 겪고 있는 것
⊙ 중국은 거지도 전자 결제로 동냥받을 만큼 변화가 빠르지만, 일본은 전자머니 결제액은 2% 미만
⊙ 대졸자 취업률은 사실상 100%
⊙ 고향에 대한 자부심 높고, “돈보다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좋다”는 젊은이들

리 소데쓰
1959년생. 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졸업, 日 조치대 신문학 박사 / 中 《흑룡강일보》 기자, 日 《테레케이블신문》 기자, (주)도호오(東方)실업·(유)중국경제발전연구소 대표이사, 조치대 국제관계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푸단(復旦)대 신문학과 객좌교수 역임. 現 류코쿠대학 사회학부 교수 / 저서 《김정은 체제 왜 붕괴되지 않는가》 《한·중·일 한자문화, 어디로 가는가》 《일중한 미디어의 충돌》 《만주에 있어서의 일본인 경영 신문의 역사》 《조선에 있어서의 일본인 경영 신문의 역사》 등
일본 마쓰야마의 도고온천. 일본 지방도시에서는 지역 특색에 기반을 둔 ‘마치오코시’가 한창이다. 사진=배진영
  1987년 9월 21일 7시20분, 필자가 천신만고 끝에 일본 도쿄역에 도착한 시각이다. 중국 하얼빈에서 기차로 상하이까지 36시간, 상하이에서 오사카까지 여객선으로 48시간, 신오사카역에서 도쿄까지 3시간, 이동에만 84시간, 꼬박 4일을 허비한 셈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딱 하나, 비행기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베이징에서 도쿄까지 편도 항공권은 인민폐로 약 800위안, 기자였던 필자 월급의 15배에 달했다. 배편을 이용하면 60위안, 하얼빈에서 상하이까지 가는 열차 표값을 합쳐도 항공편의 10분의 1 정도면 됐다.
 
  그때 중국의 대학 졸업생 월급은 초봉이 45위안이었다. 1년 후 정식 공무원 편제(기자도 국가공무원이었다)로 편입되면 58위안, 네 명 정도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반 공무원의 월급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저녁 한 끼 먹을 돈도 되지 않았다.
 
 
  일본은 무엇이든 최고였던 시절
 
  그때 일본은 무엇이든 최고였다. 도쿄 도심 번화가 긴자(銀座)의 땅값은 말 그대로 금값이었다. 1㎡ 가격이 1억 엔이나 하는 곳도 있었다. 일본의 부동산 회사들은 미국 뉴욕의 상징인 록펠러센터 빌딩을 매입하고 한국 돈으로 수천억원짜리 명화(名畫)를 거리낌 없이 사들이고 있었다.
 
  중국에서 직장 생활 5년 차였던 필자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 호주머니에는 100엔짜리 동전 몇 개만 남아 있었다. 이마저도 신오사카역에서 신칸센 티켓을 살 때 돈이 모자라 여객선 위에서 우연히 만난 하얼빈공업대 교수한테서 2000엔을 빌려서 티켓을 사고 남은 돈이었다.
 

  도쿄 근교에 살고 있던 지인(하얼빈에 가족이 있는 잔류 일본인 아들)의 도움으로 싸구려 여관에서 하루 묵었다. 이튿날부터 도쿄 이치가야(市ヶ谷) 자위대회관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간당 550엔을 받기로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같은 식당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일본인 학생은 시간당 1000엔을 받고 있었다. 1000엔이면 당시 환율로 중국돈 약 50위안에 해당되었다. 중국 직장인의 평균 월급과 맞먹는 돈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격차가 너무도 큰 것에 크게 놀랐다.
 
  100엔짜리 동전을 넣으면 콜라가 자동으로 떨어져 나오는 자판기는 중국에는 없었다.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공중전화도 없었다(중국에서는 아파트 혹은 생활구역에 전화기를 설치해놓고 필요할 때 요금을 지불하고 빌려 썼다). 중국 생활에 익숙해 있던 필자는 한동안 자판기를 쓸 엄두도 못 냈다. 콜라 한 병에 중국에서 일할 때 벌었던 월급의 10분의 1이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부자가 된 중국의 친구들
 
  그때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의 일본은 어떤가.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자판기에서 떨어지는 음료수 가격이 80엔에서 110엔 정도로 오르긴 했지만 시급(時給)은 거의 변화가 없다. 아직도 아르바이트생은 시간당 1000엔 정도를 받는다. 직장인의 연봉(年俸)도 30여 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일반 직장인의 월급은 200배나 올랐다, 상하이 텔레비전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친구는 연봉이 60만 위안이 넘는다. 35년 전의 1000배가 된다는 얘기다. 중국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경이로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상하이를 방문하면 필자가 친구들 밥값을 내곤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원래 가난한 직장인이었던 PD 친구는 1990년대 후반에는 독일이 상하이에서 생산하는 폴크스바겐 승용차를 타다가 2000년에 들어서서는 일본제 렉서스로 바꾸었다. 요즘에는 자기는 벤츠를, 탤런트인 그의 아내는 포르셰를 탄다. 딸아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그들은 1990년대만 해도 방송국에서 분배받은 좁고 낡은 아파트에 살았지만 지금은 집도 몇 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부동산 붐이 일어날 때 대출로 사놓은 집이 수십 배나 올라 큰 부자가 된 것이다.
 
  이런 부자가 상하이나 베이징에는 수두룩하다. 특히 필자와 교류가 있는, 기자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나 국가기관 직원, 대학교수들 가운데서 정부에 인맥이 있고 정보에 빠른 친구들은 예외 없이 큰 재산을 가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으로 부동산 투자를 장려했던 시기에 은행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고 그 부동산이 10배, 20배로 올랐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30년’ 다시 보기
 
일본의 4인 단독 주택형 노인요양원 ‘잇큐안’. TV를 보거나 종이접기를 하는 노인들 표정이 마치 자기 집 안방에 있는 듯 평온하고 여유롭다. 사진=조선DB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생활해온 필자에게는 이런 ‘행운’은 없었다. 필자가 일본에서 26년 전에 산 집은 오히려 가격이 떨어졌다. 월급은 20년 동안 오르지 않았다. 대학교수는 나이와 근무 연한에 따라 연봉이 조금씩 오르는데, 이 관례를 깨고 월급을 큰 폭으로 올린 적은 없다. 일본인들은 35년 동안 수입은 거의 오르지 않았고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이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필자가 일본에서 생활해온 시기를 전문가들은 ‘잃어버린 20년’, 혹은 ‘잃어버린 30년’이라고도 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30년이라고 할까. 히도쓰바시(一橋)대학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명예교수는 저서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2022년 3월)에서 30년 전 미국과 비슷비슷했던 일본이 지금은 한국과 비슷한 나라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노구치 교수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의 20년 동안 일본의 1인당 명목GDP는 422만 엔에서 428만 엔으로 증가했다. 일본인들의 수입이 20년 동안 1.4%만 증가했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일본은 분명히 쇠퇴하고 있으며 따뜻한 물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개구리처럼 보인다. 이는 많은 경제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인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는 좀 다르게 일본을 보고 있다. 일본인들이 특별히 머리가 나쁘고 운이 나빠서 30년 동안이나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일본은 버블 경제를 경험하고 난 다음인 1990년대 말경부터 선진국이 직면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떠안았고 이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방도시 및 농촌의 인구 과소화(寡少化) 문제, 중소기업의 후계자 단절 등을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20년 빨리 떠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20년 앞서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장에서 나는 물산만으로 잘산다”
 
  금년 2월 중순 강연차 일본 시코쿠(四國) 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松山)시를 방문했다. 일본 내외정세조사회가 주최하는 강연회 연사로 초청받아 마쓰야마 외 지방도시 두 곳을 돌았다. 내외정세조사회는 일본의 중소기업 경영자와 지방 유지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로 전국에 1500개 지회(支會)가 있다. 마쓰야마는 일본 최고(最古)의 온천으로 불리는 도고(道後)온천으로 유명하지만,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기로도 유명하다.
 
  마쓰야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항구도시 야와타하마(八幡浜)에서 생산되는 사토귤(브랜드명)은 크기가 주먹만 한데 달다 못해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맛있다. 또 마쓰야마는 바다 잉어가 많이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필자를 안내해준 내외조사회 마쓰야마 지부 사무국장은 마쓰야마에서 전철로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에히메현 남부의 우와지마(宇和島)시가 고향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필자와 꼬박 이틀을 함께 지낸 그는 입만 벌리면 마쓰야마 자랑이었다. 그는 “잉어는 마쓰야마 앞바다에서 나는 25cm 크기의 잉어가 제일 맛있죠”라며 바다 잉어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싱싱한 잉어를 생으로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금방 지은 밥 위에 얹어놓은 다음 마쓰야마 지방 특산인 매콤한 달래 간장을 듬뿍 쳐서 먹는 방법을 마쓰야마 방식이라고 하고, 밥을 지을 때 쌀 위에 큼직한 다시마 잎 하나를 올려놓은 다음 그 위에 잉어를 통째로 얹어 삶은 다음 이밥과 잉어 살코기를 섞어서 먹는 방법을 우와지마 방식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 다 별미”라고 했다. 마침 필자는 점심을 마쓰야마 방식으로 먹을 수 있었고 오후에는 우와지마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와지마는 마쓰야마에서 전차로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산골 도시다. 달구지같이 느린 전철을 타고 가며 철길 양옆에 우거진 나무와 전차 외벽에 닳을 것 같은 무성한 숲속을 지날 때는 ‘내가 지구의 끝자락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시사통신’ 기자로 일했고 재직 중에 평양 취재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는 안내인은 우와지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는 도회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우와지마가 얼마나 좋다고요. 이 지방 사람들은 우리 고장에서 나는 물산만으로도 아주 잘살아요. 전혀 부족함이 없고 불편하지도 않거든요.”
 
 
  일본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
 
마쓰야마 도고온천 인근의 상가.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주인공들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배진영
  그의 말에 의하면 마쓰야마의 지방경제도 일본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아 장사를 포기하는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상점가가 쇠퇴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마치오코시(町おこし)’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마치오코시’란 직역하면 ‘지역을 흥성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경제발전’이라는 의미보다는 ‘마을을 더 활기차게 살맛나게 만든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지방경제 규모를 더 크게 발전시키기 위해 큰 회사를 유치하거나 도회지로 돈 벌러 나가기보다는, 지방 특색을 살려 자체의 물산을 가지고 지방의 독자적인 순환경제로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 덕택에 수입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일정 생활수준은 유지하고 있으며 노동시간은 절반 정도로 줄어 훨씬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30년 전에는 하루 10시간 일해야 보통 수준의 생활을 영위했다면 지금은 5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안내인은 말했다.
 
  “이 지방 사람들은 외지로 나가기 싫어해요. 지금처럼 사는 게 좋으니까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즈음 일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사는 곳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보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더 벌 생각도 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다.
 
  얘기가 좀 빗나간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를 떠올렸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천하 고멘’(일본 말로 ‘고멘’은 ‘미안해’라는 뜻인데 단어를 뜯어서 해석하면 ‘고’는 경어에 붙이는 접속사이고 ‘멘’은 국수라는 뜻이다. 즉 ‘천하 제일 존경하는 국수’라는 뜻도 된다)이라는 작은 라면집이 있다. 늘 손님이 넘쳐나 기다리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라면은 하루 100인분만 판다. 30대 초반의 젊은 오너에게 “좀 더 규모를 넓히고 체인점도 내면 돈도 더 벌고 손님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장사를 크게 할 생각이 없어요. 돈보다는 손님들이 제가 만든 라면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 좋거든요.”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요즈음 일본에는 이런 가치관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상담하러 오는 학생 가운데 정색한 얼굴을 하고 “나는 돈보다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많다. 대도시보다는 지방도시, 가능하면 자기가 나서 자란 지방으로 돌아가 ‘마치오코시’에 공헌하고 싶다고 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류코쿠대학의 사회학부는 해마다 500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필자가 이 학교 교수가 된 후 26년간 졸업생 취직률은 85% 이상이었다. 좀 더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 공부를 더 한다든가 가업(家業)을 이어받기 위해, 사실상 진로가 결정된 학생까지 합하면 취직률은 100%라고 할 수 있다. 한 학생이 두세 개 기업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는 경우도 있으니, 취직률은 100% 이상이다. 의욕만 있으면 거의 모든 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질 수 있다. 문학부나 법학부도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고졸생 취직률은 대학보다 훨씬 높고 선택의 여지가 많아 대학 졸업생이 고졸 학력으로 취직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 호텔 이용률이 높아진 이유
 
  안내자의 말을 듣다 보니 ‘이곳 젊은이들도 우리 대학 졸업생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 젊은이들이 지방을 떠나 큰 도시로 몰려들던 시기는 이제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일본의 경우, 지방에서 생활해도 풍요롭고 다채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우와지마처럼 지구 끝자락에 있는 것 같은 산골 도시에서 살아도 인터넷 덕분에 도회지의 큰 회사나 직장인들하고 교류하는 데 지장이 없다.
 
  요즈음 일본에서는 작은 도시의 경치 좋은 호텔 이용률이 굉장히 높다. 세계적인 IT기업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컴퓨터만 들고 이런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듯 일하는 방식도 유행하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놀 수 없는 어르신들, 즉 중소기업 오너나 지방 유지들은 유명인사들을 불러 직접 세상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우와지마와 같은 지구 끝자락(우와지마 분들에게는 실례가 되지만) 도시 사람들이 비싼 강연료를 내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필자를 부른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낙후된 일본 열차 시스템
 
일본 마쓰야마의 전차. 일본의 전철 시스템은 한국에 비해 낙후되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진=배진영
  이런 상황과 달리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다. 인구 6만7000명이 넘는다고 하는 우와지마역 개찰구 풍경이다. 개찰구는 그냥 개방해놓은 상태였고, 열차가 도착하고 떠날 때만 역무원이 집게 같은 도구를 들고 나와서 손님들이 내미는 티켓에 도장을 찍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다음 방문지였던 인구 7만 명의 항구 도시 야와타하마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30년 전에야 볼 수 있던 그 광경….
 
  30년 전, 일본 열차 시스템은 세계 최고로 꼽혔다. 한국이나 중국에는 그때까지 신칸센과 같이 빠르고 편안한 열차가 없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오늘 중국이나 한국의 열차 시스템은 일본보다 훨씬 더 발달되어 있다.
 
  수년 전 서울에서 교토로 여행 온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필자에게 “일본 역은 왜 이리도 불편하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지하철역은 출구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고 엘리베이터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철역 개찰구는 아직도 티켓을 사서 통과해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사실 일본이 전철역 개찰구를 카드로 진입할 수 있는 자동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한국보다 한참 뒤다.
 
 
  “중국에서는 거지도 전자 결제”
 
  은행 시스템도 한국과 비교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일본에서 개인이 인터넷 시스템 혹은 휴대전화로 돈을 이체(移替)하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도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늦다. 이용자 또한 아직까지 그리 많지 않다. 2021년 말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현금 결제(決濟) 및 전자 결제에 관한 통계에 의하면 2021년도 일본 국내 소비자들이 경제활동에 사용한 돈의 32.5%만 신용카드, 전자카드, 코드로 결제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가운데 ‘전자머니’ 결제액은 2%에 그쳤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금을 좋아한다. 즉 캇슈레이스(キャッシュレス·현금 쓰지 않기) 비율이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월등히 낮다.
 
  “일본인들이 ‘전자 결제’를 아직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고 중국 출신의 비즈니스맨이 필자에게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중국 선전(深圳)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중국은 아주 과감하게 변화해가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거지에게도 전자 결제로 돈을 줘요. 자유시장에서 파는 배추 한 포기도 전자머니로 삽니다.
 
  의심 많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중국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돈을 신뢰하게 된 것 또한 이상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배경에는 가짜 지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캇슈레이스가 경제활동을 ‘효율적’으로 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죠. 중국 비즈니스맨들은 거의 혁명적입니다. 옛날과 달리 중국 비즈니스는 아주 효율적이에요.”
 
  상하이에 있는 시스템개발회사와 거래를 하고 있는 지인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중국처럼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나라는 없다”고까지 말한다.
 
  “프로젝트를 가져가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친구들을 하루 사이에 모을 수 있어요. 제품 개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그 어떤 물건이든 금방 완벽하게 만들어 샘플을 먼저 보냅니다.”
 
  5년 정도 중국의 선전이나 상하이를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이야기다. 5년 전에도 선전이나 상하이를 방문할 때마다 친구들의 거주지나 오피스 주소가 변해 있었다. 개발 속도가 너무도 빨라 반년 만에 도시가 완전히 변하고 새 구역이 생겨나고 하니 주소가 자주 변한다.
 
 
  지지부진한 마이넘버 카드 보급
 
일본 정부가 보급을 추진 중인 전자신분증인 마이넘버 카드. 아직도 보급률이 8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중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너무도 느리다. 버블 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에 일본은 국제적 위상에 맞게 나리타국제공항을 확장하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대형 활주로를 만들어야 할 토지 복판에 개인 소유의 작은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40년 넘게 설득을 거듭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마이넘버 카드(マイナンバーカード)는 소지를 장려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올해 초에 통계를 보니 보급률이 80%에 못 미치고 있다. 행정수속 등 정보 교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을 결정했고 법까지 만들어 보급하고 있지만 완강하게 거부하는 국민이 많다. 미국의 사회보장(시큐리티)넘버와 다를 바 없지만 일본인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마이넘버 카드에는 앞면에 이름, 주소, 성별 사진 및 장기(臟器) 제공의사 표시란이 있고, 뒷면에는 소지자를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이 담긴 전자 칩이 박혀 있어 행정기관 등으로부터 각종 서비스를 받거나 자료를 열람할 시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은 관청(한국의 자치센터)을 직접 방문하여 필요한 서류를 취득한다.
 
  일본이 ‘개인 정보의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은 2003년 5월이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전자 신분증을 완전히 보급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전문가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일본의 비효율성을 개탄하고 질책한다. 하지만 이런 관습은 중국처럼 하루아침에 개변(改變)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갈라파고스 일본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제품이 환영받으며 어떤 생활양식을 추구하는가와 상관없이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 일본 가전(家電)제품이 세계를 휩쓸고 ‘세계표준’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다 얘기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 시절 일본 소니가 만들어낸 워크맨은 지구인들, 특히 젊은이들의 생활양식까지 변화시켰다. 소형 녹음기와 헤드폰(이어폰)을 연결해 걸어 다니면서도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행위는 그때는 첨단을 걷는 일이었다.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는 미국의 모토롤라를 제치고 일본의 미쓰비시, 도시바의 휴대폰이 최신,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시장에서 일본은 완전히 축출됐다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일본은 지금 한국의 삼성, 미국의 애플의 뒤를 쫓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아니 쫓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필자가 대학원 시절에 아르바이트로 근무했던 《테레케이블신문》은 일본의 TV 기술 업체를 상대로 하는 전문지였다. 그때 일본은 미국과 미래 TV 기술 표준을 가지고 피 터지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테레케이블신문》 이사 중 한 분은 일본에서 위성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 일본 NHK(일본방송공사)의 기술본부 책임자였는데 필자와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의 말로는 NHK는 일본 대기업을 포함한 기술연합체를 만들어 아날로그 하이비전TV 기술 개발에 올인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도 일본은 아날로그 기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제품 개발에서 뒤떨어지게 되었다.
 
 
  “서로 협조하며 일한다는 것이 싫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마나베 슈쿠로. 사진=AP/뉴시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면 그때까지 축적한 기술을 근본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연속성을 중히 여기고 무엇이든 경험과 축적된 데이터를 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진 일본에서 혁명적인 아이디어나 생각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외곬로 가는 줄 알면서도 파멸할 때까지 누구도 솔선해서 멈추려 하지 않고 선뜻 저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공기(분위기)를 감지하려고만 애쓴다.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眞鍋淑郞·일본인으로는 28번째 노벨상 수상)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나는 서로 협조하며 일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일본을 떠났고, 돌아가기 싫다”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수상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마나베 교수는 “일본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조심하고 균형이 잡힌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미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일본에서는 기발한 발상이나 너무 앞서나가는 것은 조직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조직 내부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고 회사와 회사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일본이라는 조직을 떠나면 재능을 발휘하는 일본인이 많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야구 투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스케이트보드 세계대회에서 5번 우승해 ‘세계 왕자’로 불리는 세지리 료(瀬尻稜)가 그 좋은 예이다. 오타니는 외국에 나가서 빛을 발했고, 세지리 료는 일본적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생활 스타일을 추구했기에 성공했다고 일본 언론은 평가한다.
 
  아날로그 기술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일본이 그때까지 축적해온 아날로그 기술을 버리고 디지털로 바꾸려면 그 기술 개발에 종사했던 부서는 버려야 했다. 수많은 회사에 일감을 줄 수 없었다. 새로 예산을 편성해 디지털 쪽으로 돌려야 했다. 이런 변화를 앞장서서 과감히 밀고 나가려는 사람이 조직 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누군가를 상처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연구에서 기술을 축적하고 한평생을 그 분야에서 일 해온 권위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변화를 꾀하기 쉽지 않았다. 마나베 교수가 지적한 일본인 특유의 균형감각으로 인해 쉽사리 다른 것을 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일본’의 역할
 
  이 모든 현상을 종합해보면 일본은 작아지고 있고 세상과 등져 있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된 듯 보인다. 통계학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본의 ‘갈라파고스화(化)’라고 하기도 한다. 적도선 밑에 위치한 에콰도르령(領)인 갈라파고스 제도(諸島)는 본토와 1000km나 떨어져 있어 고립된 상태에서 생물적으로 고유종(固有種)이 진화해왔다. 일본도 갈라파고스섬처럼 고립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일본의 많은 제품은 우선적으로 일본인을 위한 제품으로 시작된다. 세계표준은 부차적이다. 자동차도 그렇고 가전제품도 그렇다. 물론 해외에 큰 시장을 가지고 있고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토요타나 혼다와 같은 회사는 세계화 표준을 중시하고, 미국에서는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시작과 검증은 국내 시장에서 한다. 가전제품은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이 만족할 때까지 기능을 개선해 검증된 제품을 해외 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많다. 또 일본 제품들은 너무 ‘편리한 기능’이 많아 값이 비싸고 또 완벽을 추구하는 바람에 개발비용도 시간도 많이 들어 외국 제품에 비해 비싸다. 국제화가 되어 있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일본 경제의 쇠퇴를 부른 원인이라고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반면에 그런 일본이 외국 기업들에는 검증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제품을 선호하는 외국 소비자들은 일본에 직접 와서 제품을 사 가기도 한다. 중국 소비자들은 똑같은 제품도 일본에서 구매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마케팅에서 ‘갈라파고스’ 일본이 하고 있는 역할〉이란 논문에서 시미즈 아키라(淸水昭) 메이지(明治)대학 교수는 “단기적으로 경제적 합리성의 측면에서 보면 (갈라파고스화한) 일본 시장은 외국 기업들에 매력이 없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외국 기업들이 자사 제품 브랜드의 평가를 높일 수 있고, 세계의 소비자들로부터 신임을 받는 계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매력적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검증받고 일본 소비자들이 환영하는 제품이면 세계에 나가도 문제없다는 뜻이다. 갈라파고스화되어가고 있고 우물 안 개구리이고, 작아지고 있는 일본은 그것이 독자성으로 인식되어 세계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논리이다.
 
  대조적으로 한국의 대기업은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원인도 있고 하여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세계화를 노리고 외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일본 중 누가 더 잘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다른 방식을 추구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한국이 일본 넘어선다
 
  일본이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자아도취에 빠져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을 고집하는 사이에 중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의 4배로 성장했다. 한국은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장관은 저서 《번영인가 쇠퇴인가; 기로에 선 일본》이란 저서에서 “이대로 가면 일본은 틀림없이 쇠망한다”고 경고한다. 그가 인용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50년 세계경제는 미국 경제를 (1인당 GDP 기준) 100으로 할 경우 일본은 58.3, 중국은 52.3, 한국은 105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이 미국을 초월하는 사태가 올 것이며 일본은 한국 경제의 절반도 못 된다는 예측이었다. 앞으로 20년이 더 지나면 일본 경제는 중국하고 비슷비슷한 나라가 되고 한국은 일본의 두 배 이상의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된다는 결과는 일본인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일본이 쇠퇴하고 있다는 조사 자료는 수도 없이 많다.
 
  30년 후 일본이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30년 동안 일본이 더 인간적이고 편안하고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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