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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쿨닥터’ 강윤형 정신과 전문의

“학폭 가해자 36%는 아동학대 피해자… 강제 분리 근본적 해결 안 돼”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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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글로리〉 현실과 비슷… 학폭, 低연령화되고 잔인성 높아지는 추세”
⊙ “아동·청소년, 국영수 이전 ‘멘털 헬스 리터러시’ 먼저 배워야”
⊙ 혐오와 분노의 시대… 가치의 방향성 상실한 아이들
⊙ “내 고유의 삶을 남편 탓으로 돌리는 순간 부부관계는 실패하는 것”
⊙ “(원희룡) 장관 된 후 정말 불쌍할 정도로 일해서 얼굴 보기도 힘들죠”
⊙ ‘이재명 소시오패스’ 발언 이후… 한동안 숨죽이고 살아

康允馨
1964년생. 서울대 의대 졸업, 同대학원 의학박사 / 정신과 전문의·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 교육부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장 역임. 現 닥터스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장
사진=월간조선
  늘 ‘원희룡 장관 부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게 내심 섭섭했을 것 같다. 이미 그 스스로 한 분야에서 권위자로 통하는데 말이다.
 
  학교 정신건강 문제를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강윤형(康允馨·59) 박사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스쿨닥터’다. 실제로 현장을 가장 많이 찾은 의사기도 하다. 25년간 전국 방방곡곡 약 1000개 이상의 학교를 직접 다녔다. 폐쇄적인 학교 문화 특성상 외부에서는 진단하기 어려운 폭력, 자살, 자해 등의 문제를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일일이 만나 임상하고, 해결 방안을 연구했다. 강 박사는 “교육의 세 축인 학생, 학부모, 교사진의 정신 건강은 곧 국가와 국민의 행복과 직결된다”고 했다.
 
  2015년에는 전국 최초로 제주에 문을 연 학생건강증진센터의 센터장을 지냈다. 재임 1년간 제주 시내 180개 학교 중 155곳을 직접 돌봤고, 그해 제주 내 학업 중도 탈락 위기 학생을 ‘0명’으로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해마다 50명 이상이었다. 당시 원희룡 장관이 제주도지사였던 만큼 ‘남편 백으로 들어갔다’는 말도 나왔지만 실상은 전국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중 그 누구도 그 고된 자리에 지원하지 않았던 거였다.
 
  이후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교육부 산하 정신건강전문가학교방문지원사업단의 단장과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았다. 그의 말마따나 ‘소명의식을 갖고’ 학생 건강을 돌본 공로로 지난 2018년에는 유은혜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표창장도 받았다.
 
  올해 1월에는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신임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난 3월 9일 서울 논현동 그의 병원을 찾아가 봤다.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
 
학폭을 주제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사진=넷플릭스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로 학폭이 때아닌 이슈입니다. 드라마를 봤습니까.
 
  “시즌1은 다 봤습니다. 어느 정도 극적인 장치도 가미했지만, 청주 고데기 사건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더군요. 끔찍하죠.”
 
  ― 연진이(극중 가해자)는 왜 그러는 걸까요. 어디서부터 삐뚤어진 겁니까.
 
  “아직까지 그 배경을 자세히 비추지는 않았지만, 가정 내 엄마와의 관계 등이 어딘가 평범치 않음을 시사하는 요소들이 좀 나왔죠. 그게 그를 나르시시스틱(Narcissistic·자기도취)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요.”
 
  ― 실제 학교 현장은 어떻습니까. 드라마 화제성만큼 학폭이 만연해 있습니까.
 
  “만연해 있지는 않습니다. 정부나 관계부처의 노력들로 인해 전체적인 발생 수는 줄었지만, 점차 저(低)연령화되고, 강도는 심해지는 추세죠. 고데기처럼 사용하는 도구가 점차 다양화하고, 그 잔인성도 높아지고요.”
 

  ― 그런데 학교 폭력이라는 게 정확히 뭡니까. 어디서부터 ‘폭력’으로 인정합니까.
 
  “‘분명한 힘의 위계(位階), 힘의 불균형이 있는 상태에서, 위계의 상위에 있는 학생이 고의성, 의도성을 갖고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입니다. 언어폭력, 따돌림도 학폭일 수 있는 거죠.”
 
  ― 정신의학적 시각에서 애초에 학폭이 일어나는 이유는 뭡니까.
 
  “청소년 시기에는 전두엽(前頭葉) 발달이 미숙하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비교적 낮고, 충동 조절도 취약합니다. 원래도 그런데다, 개별적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 등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집단생활을 하는 환경이고, 남자애들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정하려는 경향, 여자애들은 무리를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 거죠. 이렇듯 여러 복합적인 이유에서 발생합니다.”
 
 
  가해자 36%가 아동학대 경험
 
  ― 혹시 학폭 피해자들이 폭력이 있기 전부터 가지고 있는 공통된 경향성 같은 게 있습니까. 가해자들의 동물적 직관에 ‘약자(弱者)’로 비치게 된 이들의 행동이나 그 근거가 되는 심리 같은 것 말입니다.
 
  “그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접근입니다. 공통된 무언가 있더라도 그것이 괴롭힘을 정당화해주지는 않을 겁니다.”
 
  ― 반대로 가해자는 어떻습니까. 통상 어린 시절 부모와 애착관계 문제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간 가해자 대상으로 여러 임상과 연구를 했는데, 모두 그렇지는 않고요,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가장 최근 저희 학회가 가해자 9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71명(75%)이 정신과 진단을 받았는데, 이 중 33명(35%)이 중복 진단을 받았습니다. ADHD가 23%, 우울장애가 20%, 품행장애가 10.5%, 적대적반항장애가 5.3%, 적응장애 5.3%,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4.2%였어요. ADHD의 경우 후천적인 게 아니라 갖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애착관계 문제가 원인이 아닌 거고요. 주목할 건 이 중 아동학대 경험자가 36%라는 겁니다.”
 
  ― 폭력의 대물림이군요.
 
  “현장에 가보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처벌 위주의 해결책은 가해자의 강제전학인데, 쉽지 않을뿐더러 근본적 방안이 될 수도 없습니다. 폭탄 돌리기일 뿐이죠.”
 
  ― 가해자가 전학 가면 그 밑에서 참모 역을 하던 학생이 서열 1위로 등극, 새로운 주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그렇죠. 피해 학생은 방관했던 학생들로부터 받는 상처도 있습니다. 교사가 방관하는 경우도 있고요. 잘못 개입했다가 소송에 연루되니까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무조건 변호사를 대동하거든요. 현재 학폭 해결 방식은 어떻게 보면,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키는 구조죠.”
 
  ― 학폭 이슈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역시 그래서 학군(學群)이 중요하다”며 또다시 ‘8학군 찬양론’이 퍼지더군요. 어떻게 봅니까.
 
  “그게 또 그런 결론으로 도달했군요. 학군과 결부시킬 문제는 아니에요. 강남이라고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멘털 헬스 리터러시’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에 따르면 학폭의 빈도는 줄었지만, 저연령화되고 강도는 심해지는 추세다. 사진은 지난 2015년 서울 한 초등학교 앞의 ‘신학기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현장. 사진=조선DB
  그는 학교 건강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멘털 헬스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하다”고 했다. 리터러시는 문해력(文解力)이다. 요컨대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잘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는 비단 학폭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극심한 입시 경쟁 등으로 현재 아동·청소년 인구의 약 20%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데 그중 치료를 받는 학생은 10%에 불과하다. 100명 중 20명이 문제가 있는데, 그중 2명만이 전문의를 만나는 셈이다. 강 박사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병원 진료에만 그칠 게 아니라 학교 현장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역할도 해야 한다”면서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특히 정서행동 문제는 상당히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아이를 돕기 위해서는 부모, 교사뿐만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학교생활은 학습, 사회성, 정서, 행동이라는 4가지 영역이 골고루 균형 잡혔을 때 가능합니다. 정신건강에 위기가 올 경우 학습은 물론, 교우관계에도 위기가 올 수밖에 없죠. 때문에 저는 ‘멘털 헬스 리터러시’ 교육이 국영수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는 지난 2021년 창립했다. 110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로 이뤄진 민간단체다. 학교 정신건강과 관련한 연구 활동과 정부 정책 제언, 멘털 헬스 리터러시 교육 등 학교 자문과 네트워킹의 역할을 한다. 학회는 그의 주도로 만든 정신건강 교재를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기도 했다.
 
  강 박사는 “특히 학생 사망원인 1위인 자살과 자해, 폭력 문제 등 난이도가 높은 문제는 학교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면서 “학회는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해 복지, 언어치료, 놀이치료, 상담 전문가 등과의 네트워킹으로 자문 시 ‘원팀’으로 움직이게끔 세팅돼 있다”고 했다.
 
 
  잘 웃고, 잘 울어야
 
  ― 흔히 ‘멘털이 강하다’고 하죠. 강한 멘털은 정확히 어떤 겁니까.
 
  “정신이 건강하다는 거죠.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할 수 있는 정신을 말합니다. 힘들 때 ‘도와달라’고 도움까지 요청할 수 있다면 정말 건강한 거고요.”
 
  ― 잘 웃고, 잘 울면 어른들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완전히 잘못된 겁니다. 자기감정 표현을 잘 하는 게 건강한 겁니다. 인간이 어떻게 긍정적인 정서만 갖겠어요. 분노, 불안, 우울, 슬픔, 좌절, 부정적 정서의 스펙트럼은 엄청 넓고, 자연스러운 겁니다. 결코 나쁜 감정이 아니에요. 내면에서 보내는 신호의 일종이고, 이러한 감정 자체가 나를 보호하는 기능도 합니다. ‘내가 화가 났구나, 지금 불안하구나’ 인식하고, 표현하고, 풀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감정을 조절하고, 해소할 수 있습니다.”
 
  ― 외부 자극에 감정의 동요 없이 평정을 유지하는 게 강한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평정은 또 다른 얘기예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마음 챙김)에서는 궁극적 도달점이 평정심이죠. 그러나 대부분은 진정한 평정이 아니라, 억압인 경우가 많습니다. 표현하지 않고 인내하면 계속 쌓입니다. 안 좋아요. 감정이라는 건 힘이 굉장히 셉니다. 잘 소화시키지 않으면 분노조절장애가 생깁니다. 몸 여기저기를 공격해 ‘화병’이라는 신체적인 질환으로까지 발현되죠. 멘털 헬스 리터러시를 통해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그간 감정을 억제하는 걸 왜 옳다고 여기며 살았을까요.
 
  “저 어릴 때만 해도 유교적 전통이 짙었습니다. ‘사회 정서 교육’이라는 게 없었죠. 그때는 양육의 기본 가치가 ‘도덕’이었어요. 오륜(五倫)을 배웠죠. 어른을 공경하라, 말대답하면 안 된다, 여성은 남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참아야 한다, 그런 거죠. 그러다 보니 개인의 감정은 억눌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아서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로 했습니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맞춰주며 스스로의 감정은 뒷전으로 한 채 ‘우리가 남이가’라는 기치에 한 덩이처럼 움직인 거예요. 개별성이라는 게 없었던 거죠. 요즘 MZ 세대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탄생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가치의 방향성’ 상실한 사회
 
  ― MZ 세대들은 ‘회식하자’고 하면 ‘저 약속 있는데요’ 한다죠.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정신이 건강한 거였군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당신과 나는 다른 사람이야’라는 걸 표현하고, 거절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며 본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거죠. 나쁘지 않다고 봐요. 이제 회사도 ‘MZ’라는 시대의 주축에 맞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겠죠. 다만, 그런 느낌은 있습니다. 세대가 너무 급격히 전환을 맞았다는 겁니다. 요즘 제가 중점적으로 고민하는 것 중 하나인데, 시대가 갑자기 바뀌면서 한국 사회가 가치의 방향성을 상실한 것 같아요.”
 
  ― ‘가치의 방향성’이라면요.
 
  “우리가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주는 메시지가 없다고 할까요. 과거에는 예컨대 충효(忠孝)를 가르쳤죠.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에요. 너무 억압적이었으니까요. 요즘 세대를 끌어줄 새로운 가치가 나오기 전에 급격한 산업혁명, 경제발전 등이 이뤄지면서 아이들은 ‘돈’을 가장 큰 가치로 여깁니다. 25년간 학교 현장에서 임상을 하며 느낀 변화상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의사, 변호사, 대통령이 꿈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이유를 물었을 때, 과거에는 ‘아픈 사람 치료해주니까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니까요’처럼 가치 지향적이었던 답들이 지금은 천편일률적으로 ‘돈 많이 벌잖아요’로 바뀌었어요.”
 
  ― ‘이타적(利他的)으로 살라’는 유교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개인’의 행복을 위해 돈이라는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게 됐다고 보면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아닐까요.
 
  “돈은 인간에게 철저히 편의를 위한 수단이어야지, 돈 자체가 인간을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요. 상당한 부(富)를 축적하고도 정신과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모두 연결되어 있죠. ‘나’라는 고유성은 지키되, 사회적 유대 속에서의 ‘나’라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이 사회는 이기심으로 구성된 정글, 약육강식(弱肉强食),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결코 건강한 사회상이 아닙니다. 저는 ‘가치의 방향성’ 상실이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를 초래하는 핵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실제로 혐오와 분노의 시대이기는 합니다. 여혐·남혐 등 각종 혐오를 비롯해 분노의 역치도 상당히 낮아진 듯합니다. 얼마 전에는 지하철 칼부림 사건도 있었죠.
 
  “마찬가지로 급격한 세대 전환으로 인한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과거에 우리를 지탱해줬던 ‘가족 공동체’라는 힘이 붕괴된 이후 새로운 지원·지지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국가 차원의 복지가 있지만 100% 수요자 중심이 아니다 보니 사각지대가 있고요. 세대는 날로 개인화되는 개개인을 지원하는 사회적 지지체계가 형성이 안 되다 보니 그 과도기적 상태에서 작용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이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 거죠. ‘우리’라는 단일체성에서 ‘너와 나’라는 개개인으로 분화되고 있지만, 분리된 객체끼리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을 겪어야겠죠.”
 
 
  ‘너답게 살라’
 
서울대 82학번 친구로 만난 강윤형·원희룡 부부. 올해로 결혼 30년이다. 사진은 지난 2010년 원 장관이 서울시장 예비후보이던 시절. 사진=뉴시스
  강 박사는 남편 원희룡 장관과 서울대 82학번 동기다. 19세, 제주 출신 신입생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로 지내다 캠퍼스 커플이 됐고, 8년 연애 이후 서른에 결혼했다. 슬하엔 장성한 두 자녀가 있다.
 
  ― 정치인 아내, 정신과 의사면서 엄마로 살기에 너무 힘들었겠는데요.
 
  “세 가지 일을 3분의 1씩 할 수밖에 없었죠. 눈물겨운 양육의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이 크고 나서 ‘돌이켜보면 엄마는 늘 피곤했다’고 하더군요.”
 
  ―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는지 궁금합니다.
 
  “‘너답게 살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자연 속 모든 존재는 고유성이라는 게 있고, 각자 이를 지켰을 때 비로소 가치를 발한다고요.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일률적인 방향만이 성공의 길은 아니다, 고유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응원하겠다. 그래서 지금도 자유로운 영혼들이고 스스로 행복하다고들 해요.”
 
  ― 원 장관이 내조(內助)에만 전념해주길 바란 적은 없습니까.
 
  “원래 친구였으니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고, 이후에도 그 부분은 확실히 해뒀어요. 남편이 3선 국회의원을 마치고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낭인(浪人) 생활을 할 때가 있었죠. 그때 저도 병원을 처분하고 둘이서 2년간 배낭족처럼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 가야 할 곳도,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던,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죠. 축복 같던 그 여행 마지막 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정치인으로 잘나가든, 못 나가든, 상관없다. 실패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사랑에서는 실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1 조건이 있다. ‘당신 때문에 내 삶을 못 살았다’는 원망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요.”
 
  ― ‘뒷바라지만 하다 인생 망치기 싫다’는 말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할 수도 있군요.
 
  “내 고유의 삶을 남편 탓으로 돌리는 순간 부부관계는 실패하는 거라고 봤거든요. 그러면서 ‘만일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여전히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돕겠다, 다만 훗날 원망하고 탓하지 않을 수준으로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소시오패스’ 발언 이후
 

  ― 그런 마음으로 도운 건데, 지난 20대 대선 때 호되게 고생했죠.
 
  “그때는 일을 잠시 그만두고 선거운동을 열심히 도왔죠. 늘 ‘남편 뒤에서 돕는다’는 기조를 지켜왔는데, 지난 대선 때는 부지불식간 정치의 전면에 들어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남편에게도 누누이 한 말이지만, 저는 의료가 피아(彼我)가 없어서 좋아요. 네편, 내편이 있는 정치는 성향상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편 가르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거죠.”
 
  지난 2021년 10월 20일 강 박사는 대구의 한 신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진행자가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언행과 행보를 언급하며 ‘지킬 앤 하이드’와 ‘야누스’에 비교했고, 강 박사는 “정신과적으로는 ‘지킬과 하이드’나 ‘야누스’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시오패스나 안티소셜(Antisocial·반사회적)이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 영상 중 3분이 채 안 되는 이 발언으로 온갖 비판 세례를 받게 됐다.
 
  ― 정신과 의사로서 ‘이재명’이라는 인물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말한 것이었습니까.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진행자가 이재명 당시 후보의 대장동 관련 발언을 언급한 뒤 ‘지킬 앤 하이드’에 비유를 했는데, 저도 참, 그때 왜 선생 기질이 발동해서…. 틀린 정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뻔뻔하게 이를 계속 부정하는 것은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이중인격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고, 소시오패스의 특성이거든요. 그런 취지에서 말한 건데, 전후(前後) 상황상 이재명 후보를 지칭하게 됐고, 즉시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일반론적으로 소시오패스의 정의가 그렇다’고 첨언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 사건 이후 스스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참고로 소시오패스는 진단명이 아니고,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다.
 
  ― 이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로부터 경고 내지는 징계를 받았다는 허위 사실이 퍼지기도 했는데요.
 
  “경고도 없었고, 징계 절차가 논의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일은 한동안 하지 못했어요. 그 발언을 한 게 2021년 10월이었고, 다음 달 최종 후보가 결정됐으니 저는 제 일로 돌아가면 됐는데, 2022년 3월 9일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 왜죠.
 
  “만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3월 9일까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죽이며 살았죠.”
 
 
  “사랑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다”
 
  원희룡 장관은 강 박사의 발언 이후 여러 차례 그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결혼할 때 평생 어떤 경우에라도 아내 편에 서기로 서약했다”면서다. 요즘도 입버릇처럼 “내 생애 가장 잘한 선택은 강윤형을 만난 일”이라고 한다.
 
  ― 알고 지낸 지 40년, 결혼 30년 차인데, 꾸준히 사랑받는 정신의학과적(?) 비결이 있습니까.
 
  “시기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해요. 남녀 간 사랑의 시효는 길면 3년이라잖아요. 그게 신경전달물질 반응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거든요. 그 이후에는 옥시토신으로 사는 거죠. 쉽게 말해 서로를 돌봐주는 건데,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게 ‘의도’와 ‘약속’이라 생각해요.”
 
  부부는 결혼 이후부터 10계명을 세우고, 여전히 지키며 산다. 서로 존댓말 쓰기, 욕하지 않기, 물건 던지지 않기, 집 나가지 않기, 각방 쓰지 않기 등이다.
 

  ― 약속은 그렇다 치고 ‘의도’는 뭡니까.
 
  “인간의 모든 동작이나 행동에는 의도가 있어요. 인간이 의도를 갖지 않으면 아무런 미동도 없습니다. 함께 살며, 내가 왜 여기 있는가, 왜 이걸 하고 있는가, 라며 매 순간 나의 의도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이건 의지와는 또 달라요. 많은 경우 뇌는 자동패턴화돼 있어 의도를 잊은 채 살기 쉽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후 할 일을 생각하잖아요. 한 순간에 한 가지만 해야 해요. 머릿속은 안 그래도 엄청 복잡하거든요.”
 
  ― 집에서는 둘이 주로 어떤 대화를 합니까.
 
  “장관 된 이후부터는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정말 불쌍할 정도로 일해서 얼굴 보기도 힘들죠. 일주일에 약 이틀은 세종시에 머물고, 집에 와도 잠만 자고 나갑니다.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묵사(默思)한 뒤, 스스로 아침 챙겨 먹고요. 요즘에는 아침밥도 못 차려줬어요.”
 
  ― 원래는 매일 차려줬습니까.
 
  “아주 오랫동안 그랬죠. 장관 되고 나서는 제가 더 늦게 일어나니까 한 번도 못 챙겼네요. 부스스하게 눈 떠 ‘밥은요?’ 하면 ‘진작에 먹었죠’ 해요.”
 
 
  “타인과 공명하다 보면 지칠 겨를이 없다”
 
  ― 정신과 의사는 매일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죠. 스스로의 정신건강은 어떻게 관리합니까.
 
  “제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찾아온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있죠. 그래서 꾸준히 마음 챙김 수련을 통해 현존(現存)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과거에 얽매여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쉽지 않아요.
 
  내면 깊이 침잠(沈潛)해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뤄졌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자산이든 지식이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 없는 거죠. 때문에 왔던 곳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세상 태어난 밥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랄까요. 학교에서 고통받는 학생들,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 것도 그 차원이고요.”
 
  강 박사는 이어 “‘지혜와 연민의 두 날개로 현존과 공명(共鳴)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라면서 “현존 속에서 나를 마주한 타인(他人)과 공명하다 보면 지칠 겨를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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