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700억원 들여 ‘인재개발원’ 신설 추진하는 海警 : 월간조선

해양경찰청(해경)이 ‘인재개발원’ 신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비는 1700억원이다. 해경은 9년 전, 2900억원을 들여 전남 여수시 오천동에 ‘해경 교육원’을 개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신입과 재직자를 분리해 교육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면서 ‘재직자 교육 전담 시설’인 ‘인재개발원’을 만들려고 한다. 당연히 ‘세금 낭비’란 지적이 제기될 수밖에 없지만, 이 같은 해경의 행태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정부 조직에서 해경이 차지하는 위상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 규모도 ‘13만 경찰’의 1/10 수준에 불과하고, 해경 소관 분야가 국민 대다수와 밀접하지 않은 까닭에 해당 기관에 대한 국민적 관심 역시 크지 않다. 이 덕분에 해경은 ‘비판·견제의 사각지대’에서 그토록 ‘숙원’이라고 했던 교육원을 만든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교육시설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내세우는 ‘인재개발원 신설’의 논거는 설득력이 있을까.

‘인재개발원’ 유치 위한 ‘3파전’

해경은 2027년 개원을 목표로 인재개발원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해경의 ‘인재개발원’은 7만6579㎡(2만3000평) 부지에 각종 사무실(1개 동)·생활실(220개 실)·강의동(27개 실)·훈련동(1개 동)·식당(639석) 등을 갖추게 된다. 1일 최대 수용인원은 440명이다. 교수 65명과 행정 직원 124명이 상주한다. 이곳에서 연간 7000여 명을 교육한다는 게 해경의 계획이다.

해경은 7월에 전국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후보지를 모집했다. 그 결과 강원 삼척시·동해시·고성권, 충남 보령시·당진시 등 5개 자치단체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해경은 ‘현지 실사’를 거쳐 이 중 강원 삼척시와 충남 보령시·당진시 등 세 곳을 ‘1차 후보지’로 선정했다. 해경은 12월까지 사전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을 마무리하고 최종 후보지를 선택할 예정이다. ‘1차 후보지’로 선정된 기초단체 세 곳은 현재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과 도지사들이 나서서 입지 조건을 강조하고, 기초 의원들이 건의문을 작성해 해경에 보내기도 했다.

해경의 ‘인재개발원 신설’ 움직임은 ▲졸속 추진 ▲세금 낭비 ▲논거 부족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첫째, 해경의 ‘인재개발원 신설’ 추진 경과를 보면 ‘예산 절감’ 차원에서 기존 교육시설 보완 등의 대안을 논의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대신 처음부터 ‘신규 시설 건립’으로 방향을 정하고, 해당 사업을 추진했다는 의심을 자초하는 대목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해경은 현재 교육원(전남 여수시 소재)과 직무교육훈련센터(충남 천안시 소재) 등 교육시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세금으로 신규 교육시설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철되려면, 기존 시설만으로는 교육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명백한 논거가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내부의 건의, 지휘부의 방안 논의 등이 선행되고 나서 ‘신규 시설 설립’이란 결론을 내는 게 상식적인 업무 처리 과정이다. 해경의 논의 경과를 보면 이와 다르다.

관련 보고 문건 생산 전에 인재개발원 신설 추진

해경 교육원은 해경의 ‘종합교육기관’으로 설립됐지만, 현재는 대부분 신규 임용자 교육용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양경찰청 교육훈련담당관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재개발원 신설’ 관련 해경청장의 지시사항은 전혀 없다. ‘교육시설 부족’ 등을 보고하는 내부 문건도 없다. 해경은 ‘1건’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직무교육훈련센터 교육시설 운영 관련 협조 요청

1) `21년도 재직자 교육은 1주에 평균 3회 이상(60~180명) 과정을 운영함에 따라, 교육생 생활실이 부족할 우려가 있으니 생활관 시험관리센터(3층)를 이용할 경우 교육 일정을 확인 후 진행해주실 것을 당부드리며,

2)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직무교육훈련센터가 재직자 전담 교육부서로서 원활한 교육 운영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17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투입해 교육시설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가 되기 어렵다. 더구나 해경은 해당 문건 결재일인 ‘2021년 1월 26일’에 앞서서 ‘해양경찰 인재개발원 신설TF 운영 계획’을 수립했다. 해경이 ‘논거’로 내세울 수 있는 ‘교육시설 부족 등의 불편사항’ 관련 보고 문건이 생산되기 전에 이미 ‘인재개발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해경의 ‘인재개발원 관련 수발신 문서 목록’을 보면 해경청 교육훈련담당관은 1월 7일 〈해양경찰 인재개발원 신설TF(전담 조직) 운영 계획 보고〉란 제하의 문건을 만들어 기획재정담당관, 혁신행정법무담당관, 인사담당관 등 각 부서에 배포했다. 같은 해 3월 5일에는 〈제2캠퍼스 설립 위한 연구용역 추진 계획 보고〉란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답정너’식 용역(?)

해경은 불과 4개월 만에 ‘인재개발원 신설’을 기정사실화하고, 관련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소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뜻을 가진 신조어)’식 용역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 용역은 부경대 산학협력단이 수주했다. 해당 연구 용역을 수행한 ‘책임연구원’은 고모씨다. 공교롭게도 고씨는 해경 치안감 출신의 ‘고위 전관’이다. 해경 재직 당시 ▲서해지방해경청장(2017년) ▲해경청 기획조정관(2018년) ▲해경 교육원 원장(2018~2020년) 등을 역임했다. 해경 교육원 원장을 끝으로 2020년 12월 퇴직한 고씨는 이듬해 3월 1일 부경대 교수로 임용됐고, 임용일로부터 약 두 달 만에 ‘친정’이 추진하는 1700억원짜리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연구 용역을 맡게 됐다.

해경의 ‘답정너’식 사업 추진을 방증하는 사례는 또 있다. 해경은 상기 연구 용역을 발주하기도 전에 이미 기획재정부에 ‘인재개발원 신설’과 관련해서 ▲제2캠퍼스 부지 매입비 219억원 ▲실시설계비 60억 등 총 279억원을 정부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재부는 거부했다. 이에 대해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당시 해경청 교육훈련담당관은 “여수교육원 기준으로 기본·전문 과정에 필요한 교육실습 시설과 강의실 및 생활관 등 공용시설 면적을 비교·산출하여, 지난 2월 중기사업계획을 통해, 기재부에 요구하였으나 정부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음”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처럼 여러 사례를 감안하면, 해경은 애초에 이미 ‘인재개발원 신설’이란 ‘답’을 정해놓고, 그 추진 명분을 쌓기 위한 요식행위를 졸속으로 진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포 사격장 대신 골프장 만들어

전남 여수시 오천동 소재 해경 교육원의 모습이다. 231만㎡(70만 평) 부지 위에 각종 건물과 시설을 갖추는 데 국민 세금 2900억원이 들었다. 사진=박희석

둘째, 해경의 ‘인재개발원 신설’은 ‘혈세 낭비’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해경은 이미 전남 여수시 오천동에 교육원을 두고 있다. 교육원은 2013년 11월에 개원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국토 균형 발전’ 명목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2005년 6월)을 추진할 때 해경 교육원은 전남으로 이전하게 됐다. 해경은 2007년 1월, 부지를 비롯한 각종 인프라 건설을 약속한 여수시를 ‘교육원 이전 대상지’로 선정했다.

2006년 당시 해경은 교육원을 짓기 위해서는 면적이 165만㎡(50만 평)에 달하는 부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듬해에는 231만㎡(70만 평)라고 말을 바꿨다. 축구장(7140㎡) 면적의 92배에 달하는 부지(66만㎡)를 더 요구했다는 얘기다. 해경이 밝힌 부지 확대 사유는 ‘포(砲) 사격장 설치’였다. 이를 위해 여수시는 상수원 보호 구역을 해제하며 수용 부지 면적을 확대했는데, 해경은 2010년 4월 기본설계 수립 과정에서 이를 취소했다. 포 사격 훈련은 건물 지하 공간에서 진행하는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그 대신 애초 포 사격장을 조성하려고 했던 부지에는 ‘9홀 규모 골프장’을 짓겠다고 했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해경은 “골프장 건설은 해경 사기와 타 기관(경찰 등)과의 형평성, 국제교류 등의 측면에서 양해해달라”고 했다. 골프장이 없기 때문에 해경 사기가 저하되고, 골프장이 없어서 국제교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주장은 ‘강변’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해경은 ‘경찰은 있는데 왜 우린 없느냐?’란 식으로 억지 주장을 펴면서 교육원 내에 ‘기초 체력 단련장’이란 이름을 내건 골프장을 만들었다. 골프장 면적은 31만5000㎡(9만5300평)다. 해당 골프장을 만드는 데 들어간 국민 세금은 ‘145억원’이다. 이를 포함해 해경이 교육원을 조성하는 데 쓴 비용은 총 2910억원이다.

함정 건조보다 인재개발원 신설?

해경은 애초 포 사격장을 만들겠다는 계획과 달리 31만5000㎡(9만5300평) 부지 위에 세금 145억원을 들여 ‘9홀짜리 골프장’을 만들었다. ‘기초체력단련장’이란 이름을 내건 이곳은 개장 이후 연평균 2억8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교육원 구성 현황은 ▲본관동 ▲강당동 ▲체육관 ▲학생회관 ▲도서관 ▲생활관 ▲소화방수 실습장 ▲해양구조 실습장 ▲수상레저 실습장 ▲시뮬레이션 실습장 ▲모의선박 실습장 ▲해양오염 방제 실습장 ▲실내사격 실습장 ▲기관 정비 실습장 ▲해양재난 대응 실습장 ▲골프장 ▲숙영관(해경 직원들이 1박당 1만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상 2층·865평 규모 건물로 객실당 방 2개·화장실 1개) 등이다. 지금까지 교육원 운영 명목으로 지출된 비용은 773억원, 연평균으로 따지면 77억원이다. 이 밖에 10년 동안 교육원 교직원 인건비로 나간 금액은 총 1263억원이다. 매년 인건비 명목으로 126억원이 쓰인 셈이다.

참고로 2015년 10월에 개장한 해경 교육원 골프장은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해경이 작성한 ‘해양경찰교육원 소재 골프장 연도별 운영 유지비 지출내역’에 따르면 골프장 운영 유지비는 연간 6억원, 사용료 수입은 3억2000만원이다. 매년 평균적으로 2억8000만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는 셈이다.

국민 세금 2900억원을 들인 교육원, ▲골프장 ▲골프연습장 ▲교육생이 아닌 해경 직원이 이용하는 숙소까지 갖춘 교육시설, 매년 인건비·운영비로 203억원가량이 드는 교육원을 운영한 지 만 6년(2013년 11월 개원)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해경은 왜 ‘제2캠퍼스’란 이름으로 ‘인재개발원’ 신설을 생각한 것일까. 더구나 국민 세금 170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라서 ‘세금 낭비’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큰데도 추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보유 함정 358척 중 62척(17.3%)이 내구연한을 넘긴 노후 선박이고, 이를 대체할 함정 건조율도 불과 42%인 상황에서 왜 해경은 ‘인재개발원 신설’에 최소 1700억원을 쓰려는 것일까. 일단, 앞서 밝혔듯이 ‘시설 부족’ 때문은 아니다. 다음은 2021년 10월 1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홍희 당시 해경청장이 나눈 문답이다.

해경 교육원에는 매년 운영비, 인건비 명목으로 200억원 이상에 달하는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해경청장, “시설 부족한 건 아니지만…”

〈주철현: 여수에 있는 해경 교육원이 신입생 교육 또 기존에 있는 재직자 교육하는 데 용량이 부족합니까? 시설이 부족합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김홍희: 사실 저희들이 분원….

주철현: 아니, 시설이 부족합니까, 안 부족합니까? 시설은 넘치는 것 아니에요.

김홍희: 시설 면에서는 그렇게 부족한 건 아니지만, 신임 과정과 재직자 교육은 분리하는 게, 경찰청도 그렇고 소방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용역이 나오게 되면 위원님께도 설명을 드리고요.

주철현: 시설 용량이 충분한데도 이상한 핑계를 대서 제2캠퍼스를 짓겠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0억이라는 돈을 들여서…. 그래서 그런 부분은 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분명히 시민들의 뜻을 대변해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김홍희: 알겠습니다.〉

이처럼 해경은 ‘시설 부족’을 ‘인재개발원 신설’ 사유로 내세우지 않았다. 현재 해경은 ‘해경 교육원장’ 출신 부경대 교수 고씨가 ‘책임연구원’을 맡아 수행한 ‘제2캠퍼스 설립 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을 주요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보고서 중 관련 내용이다.

〈미래의 해양경찰의 역할과 전문성 있는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신임교육과 재직자 직무교육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신임교육은 해양경찰교육원에서 담당하고 재직자 기본교육과 전문교육은 별도의 해양경찰 교육 제2캠퍼스에서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음.〉

해당 용역 수행자는 보고서에서 “신임자와 재직자를 별도 시설에서 분리 교육하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즉 교육원에서 재직자 대상 전문 교육을 시행할 경우의 단점, 별도 시설에서 분리 교육을 할 때의 장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보고서에서는 “해양경찰의 교육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신임교육과 전문교육의 분리 운영이 필요함”이란 식의 기술만 되풀이될 뿐이다.

설득력 부족한 ‘신설 사유’

해당 용역 수행자는 보고서에서 ‘교육시설의 낮은 접근성’을 언급했다. 교육원이 전남 여수시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전문성 있는 교수 요원을 초빙하지 못해 교육의 질 역시 저하된다는 주장을 했다. 다음은 이에 관한 보고서 기술 내용이다.

〈해양경찰교육원이 위치해 있는 여수가 지리적으로 치우쳐 편중되어 있어 교육생, 교수 요원, 외래강사 등이 전국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되고 있음. 해양경찰교육원이 입지 면에서 편중되어 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불편함과 비효율을 낳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교육생 전국 접근성 측면, 유능한 교수 요원·외래강사 확보 측면, 균형발전 측면과도 연계되는 문제임. (중략) 전국 접근성 측면에서 해양경찰교육원의 입지를 분석해보면, 외래강사 접근성 측면에서 수도권에서 거리가 문제 되는데, 해양경찰교육원-서울 간 거리는 약 360km로서 소요시간이 자동차 기준으로 4시간30분, KTX 기준으로 약 3시간10분이 소요됨. 전국 해양경찰관서 중에서 가장 거리가 먼 속초에서 거리를 분석해보면, 해양경찰교육원-속초 간 거리는 약 550km로서, 소요시간이 자동차 기준으로 6시간 이상이 소요됨. 전국에서 중앙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세종에서 거리를 분석하면, 해양경찰교육원-세종 간 거리는 약 240km로서, 소요시간이 자동차 기준으로 2시간40분, KTX 기준으로 약 2시간이 소요됨.〉

해경이 지금 와서 ‘지리적 접근성’을 내세워 ‘인재개발원’ 또는 ‘제2캠퍼스’를 신설하려고 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해경은 여수시에 교육원을 만들 때 각종 이점을 강조하는 데 바빴다. 만일 ‘전남 여수시’란 입지 조건이 이토록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다면, 애초에 이전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전 결정, 타당성 검토 당시에는 ‘접근성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 해경이 교육원을 짓고 나서 ‘여수시’의 지리적 조건이 바뀐 게 아닌데도 지금 와서 이런 주장을 한다면,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해경이 작성한 ‘연도별 해경 교육원 교육 현황’에 따르면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 교육’ 기간은 짧게는 3일, 길게는 2주 동안 진행된다. 하루 만에 교육을 이수하고 퇴소하는 식이 아니라 장기간 숙박을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재직자들이 이런 교육을 연간 수회에 걸쳐 받는 게 아니다. 많아야 연간 1회에 불과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접근성’을 운운하며 ‘교육시설 신설’을 주장하는 행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삼척이 여수보다 접근성 좋을까?

해경은 2021년 5월, ‘인재개발원 신설’ 논거를 얻기 위해 ‘제2캠퍼스 설립 기반 마련을 위한 정책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공교롭게도 해당 용역을 수주해 책임연구원으로 이끈 이는 바로 직전까지 해경 교육원장을 지낸 ‘고위 전관’이다.

해경 논리를 그대로 인용하면 현재 ‘인재개발원 신설 1차 후보지’로 선정된 기초단체들의 입지 조건 역시 좋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의 경우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갈 경우 4시간30분(네이버 지도 기준) 걸린다. 충남 보령시 대천항 역시 서울역에서 KTX로 갈 때 4시간20분~4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 강원 삼척시의 경우에는 3시간40분~4시간20분이다. 기차로 이동할 경우 현재 교육원이 있는 여수시와 ‘인재개발원 1차 후보지’의 ‘접근성’은 서로 비슷하다.

또한 해경은 ‘인재개발원 신설 후보지’를 1차로 선정하면서 ‘자가당착(自家撞着)’을 저질렀다. 이는 ‘지리적 접근성’이 ‘인재개발원 신설’의 사유로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상기했듯이 ‘제2캠퍼스 설립 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에서 용역 수행자는 “전국 해양경찰관서 중에서 가장 거리가 먼 속초에서 거리를 분석해보면 해양경찰교육원-속초 간 거리는 약 550km로서, 소요시간이 자동차 기준으로 6시간 이상이 소요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경은 ‘인재개발원 신설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강원 삼척시’를 선정했다. 용역 수행자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할 경우 ‘강원 삼척시’는 ‘후보지’로 선정될 수 없다. 전남 목포시에서 강원 삼척시까지는 기차로 이동할 경우 7시간, 차량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해 갈 때는 6시간 정도 걸린다. 부산시에서는 기차로 6시간40분, 차량으로 4시간30분 소요된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인 대전시에서조차 기차를 타고 삼척시로 가려면 최소 5시간, 차량으로는 3시간50분 걸린다. 그럼 왜 해경은 ‘강원 삼척시’를 ‘1차 후보지’로 선정했을까. 충남 소재 기초단체를 미리 낙점해두고, 이를 감출 요량으로 내세울 ‘들러리’가 필요해 ‘강원 삼척시’를 ‘1차 후보지’에 포함한 게 아니라면, ‘지리적 접근성’ 운운하는 논지는 해경이 스스로 부정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제2캠퍼스 설립 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에서 용역 수행자는 전남 여수시 소재 해경 교육원에 대해 “도심지와 2km 정도 떨어져 있어 임직원들의 생활이 불편한 것이 단점으로 제기되었고, 사격훈련이 곤란하고 매립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되는 등의 문제가 있음”이라고 주장했다. 성인 남성 보속(步速)으로 30분만 가면 되는, 차로 이동할 경우에는 길어야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2km’를 언급하면서 ‘생활 불편’을 호소하는 것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한 “사격훈련이 곤란하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해경은 그야말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다. 전술했다시피 해경은 전남 여수시 오천동에 교육원을 만들 때 ‘야외 사격장’ 명목으로 확보한 부지에 ‘골프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를 가진 해경이 지금 와서 ‘사격훈련 곤란’을 ‘인재개발원 신설’의 사유로 내세울 ‘자격’이 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종합훈련기관”이라더니…

해경은 또 경찰·소방 등 국내 기관과 미국 또는 일본과 같은 해외 유사 기관의 사례를 들어 ‘교육시설 신설’의 타당성을 주장하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경찰은 현재 12만6000명(2020년 기준)이다. 1만2000명인 해경의 10배다. 경찰대를 제외하면 경찰이 운영하는 교육시설은 3개, 해경은 2개다. 이런 차이를 고려했을 때 해경이 운영하는 교육시설 수가 적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해경이 사사건건 경찰을 언급하면서 시설 등을 확보하려는 행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조직 규모가 해경의 5배에 달하는 소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해외 기관 사례를 얘기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평가하기 쉽지 않다. ▲10만㎢인 남한 면적의 98배에 달하는 미국 국토 면적(983만㎢) ▲한국(44만㎢)의 26배에 해당하는 미국 관할해역(영해+배타적 경제수역+연장 대륙붕) 면적(1135만㎢) ▲5만6000명에 달하는 해안경비대 병력 ▲‘세계 10위’ 수준의 해군력 등을 고려하면 해경이 미국 해안경비대를 비교 대상으로 설정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교육원 건립 당시 해경이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종합훈련기관”이라고 선전하고 나서 10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외 타 기관과 ‘비교’해가며 ‘교육시설 신설’을 주장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다음은 10월 1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봉훈 해경청장과 나눈 문답이다.

〈주철현: 당시에 해경에서 배포한 자료를 보니까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도 이 같은 교육원이 없어서 부러워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교육시설이 갖춰졌다 이렇게 홍보를 했던데 맞습니까?

정봉훈: 예, 그 당시에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주철현: (전략) 왜 이렇게 비효율을 감수하고 또 전문성을 포기하고 또 국민 혈세를 낭비해가면서 제2교육원을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정봉훈: 지금 소방이나 경찰도 마찬가지고 국제적으로 재직자하고 신임은 좀 분리해서 교육하는 기관들이 많습니다.

주철현: 아니 그게 우리 해경 교육원처럼 세계적인 이상적인 시설이 없는 곳 이야기지, 지금 만들어져 있잖아요. (중략) 인재개발교육원 취소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견해 말씀해주십시오.

정봉훈: 하여간 최대한 검토를 해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배신감 느끼는 여수시민들

해경 교육원 내부에 있는 오천 저수지는 원래 ‘1급수 상수원’이었다. 해경 교육원은 이곳을 모의선박 실습장, 수상레저 실습장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해경의 ‘인재개발원 신설’ 계획에 대해 여수시 주민 일부는 ‘배신감’을 토로한다. 여수시는 해경 교육원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를 제공했다. 오천동 주민의 1급수 상수원인 저수지마저 포기했다. 도로 등 각종 인프라를 만드는 데 150억원을 썼다. 450억원 규모의 도로 확장 공사도 추진하고 있다. 애초 교육원을 유치할 때 기대했던 ‘경제효과’는 전혀 없고, 여수시민 세금만 나간 상황에서 해경이 다른 지역에 교육원 기능을 상당 부분 흡수하는 교육시설을 신설한다고 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만일 해경이 재직자 교육을 전담하는 ‘인재개발원’을 신설한다면, 교육원은 유명무실한 시설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해경의 현재 인원 분포를 보면 그렇다. 주철현 의원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해경 총원은 1만2798명이다. 이 중 지난 7년 동안 신규 채용된 인원이 총 6578명이다. 전체 인원의 51.4%다. 특히 세금으로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를 했던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폭증했다. 해경이 ‘교육 인원 증가’를 언급한 배경에는 ‘문재인 정권’이 있었던 셈이다. 이런 까닭에 앞으로 해경은 ‘문재인 5년’처럼 신규 채용을 할 수 없다. ‘문재인 5년’ 동안 자행된 비상식적인 공공부문 늘리기를 개혁하겠다고 역설한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는 해경 신임 교육 수요가 급감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여수시에 소재한 해경 교육원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대해 송하진 여수시의회 의원은 “9홀 골프장 등을 갖춘 해경 교육원은 결국 해양경찰과 가족, 퇴직자 등을 위한 ‘그들만의 휴양소’로 전락할 수 있다”며 한탄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 여수시가 해경 교육원을 유치하기 위해 총 640억원에 달하는 혜택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있던데요.

“부지부터 상·하수도까지 다 제공했지 않습니까. 다 바쳤는데, 여수시에 돌아온 건 없으니까 시민들은 자괴감, 상실감을 느끼는 거죠.”

“교육원은 해경 휴양소로 전락할 것”

— 해경 교육원 교육생들로 붐빌 때도 경제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해경 교육원이 올 당시에 ‘천지개벽을 할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지역 농산물, 수산물 판매가 증가하고 부대사업도 늘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다시피 구멍가게조차 한 곳 없잖아요.”

— 다른 지역으로 ‘교육 수요’를 분산하려는 해경의 행태에 대해 ‘여수시민 세금을 먹튀 하려고 한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원화해서 해경 재직자들이 교육을 받으러 충청도로 가버리면, 이쪽에는 해경 신입만 오는데 뭔 효과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한 것과 마찬가지죠. 만약 그 자리에 대규모 리조트나 위락시설이 들어섰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여수~남해 간 해저터널(전남 여수시 상암동과 경남 남해군 서면을 잇는 총연장 7.31km 터널)이 완성되면 남해안을 관통하는 랜드마크가 됐을 겁니다. 여수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낙수효과 역시 어마어마했겠죠. 저는 골프의 ‘골’자도 모릅니다만, 세계적인 인사들이 와서 ‘18홀로 만들면 최고의 코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 해경이 ‘인재개발원’을 다른 지역에 만들 경우에는 교육원이 유명무실한 시설로 전락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까.

“그 교육원에 9홀짜리 골프장이 있잖아요. 앞으로 저게 해경의 휴양시설이 될 수 있지 않으냐, 그렇게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수시민은 배신감을 느끼죠. 천혜의 경관을 갖춘 여수 최고의 땅을 다 내줬는데, 돌아오는 건 없고. 이제 와 뒤통수를 맞는 격이니까, 참 가슴 아픈 일이죠.”

해경, “인력·시설 부족, 재직자 전문 교육기관 필요”

한편, 전술한 지적들에 대해 해경은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국내(경찰·소방), 국외(미국·일본) 등 유관기관도 재직자 직무 전문성 강화를 위해 신임과정과 재직자 교육을 이원화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수 교육원은 신임 교육 강화와 대(對)국민 해양안전교육을 지속적으로 확대 운영하고, 타 기관 대상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재직자 교육을 특화시켜 강화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여수(교육원)에서 실시하던 직무교육훈련센터(천안)를 신설(2020년 10월)해 재직자 전문 교육 과정을 분리했지만, 해양 특화된 전문 교육 훈련 시설이 전무한 실정이라서 재직자 직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문 교육시설이 필요합니다. 교육 수요 증가에 따른 인력·시설 부족 등으로 보다 강화된 교육 운영도 어렵습니다. 여수 교육원 이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볼 때 조직 정원은 50% 이상, 교육 수요는 30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에 직무교육훈련센터를 인재개발원으로 신설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수 교육원에서는 신임 교육뿐만 아니라 전 국민 대상 종합 해양안전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해 해양종합훈련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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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억원 들여 ‘인재개발원’ 신설 추진하는 海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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