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당신도 이렇게 늙어봐! 靈性의 길로 늙어가는 법 : 월간조선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노인에 대한 언어폭력이 패륜(悖倫)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눈, 귀, 입 봉하고 노년을 조용히 보내려 했는데 생각이 멈추지 않아 감히 펜을 들었다.

청춘의 삶과 노년의 삶은 분명 다르다. 청춘처럼 노년을 살 수 없듯 노년처럼 청춘을 살 수 없다. 그러나 청춘과 노년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시작에서 위대하고 소중했던 것이 다만 끝에서는 아주 소소한 의미일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 전혀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이 마지막에 완전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 안에서 인간실존은 특히 노년에 더 많은 평생 배움을 경험한다. 어떤 청춘도 노년을 비켜갈 수 없다. 모든 삶의 단계들은 이와 같이 다 지나간다.

노년은 우리의 충만한 삶을 위해 소중한 가치들을 창조하는 하나의 공간이다. 이런 가치들을 창조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본질의 근원과 의식적인 친교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려면 노인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혹독히 치를 수밖에 없다. 늙어가면서 인간은 신체적 기력과 정신적 능력을 상실하며, 노쇠와 질병만 증폭되어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인의 존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타인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노인은 영적(靈的)으로 성숙해진다. 이러한 성숙 과정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이 노년에 요구된 덕목은 늙어감과 나이 먹음을 겸손하고 솔직하게 수용함으로써 드러난다. 이런 과정을 이미 경험하고 우리에게 각인시킨 100세를 넘긴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왕성한 사회활동은 신(神)의 축복이고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노인, 어떻게 살 것인가

김정희 교수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오늘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혜와 경륜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잔소리, 꼰대로,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등 노인들을 조롱하고 능멸한다. 참담한 심정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지! 이제 우리 노인 세대가 먼저 변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실, 우리 삶 속에서 대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대다수가 우리의 입지가 변하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 더불어 어떤 본질적인 것이 우리에게서 드러난다.

심리학자 융(C.G.Jung)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수용한 것만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수용한 것에서만 영향을 받으며, 그것만을 선(善)으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삶의 법칙은 늙어가면서 더 중요하게 드러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것들이 항상 신의 뜻은 아니다. 신의 선을 감지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비참하고 절박한 시간 속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사명은 기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활동이 불가능한 곳, 거기에 주어져 있다. 그 관점에서 복음(福音)은 노년의 소중한 가치이다. 복음은 노년의 육체적 통증과 멸시를 용서와 인내로 수용하도록 노인들에게 용기를 주며, 하나의 위대한 관계가 되도록 한다. 영적으로 늙어가는 것이야말로 노년의 사명이며 은총이란 얘기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11위권이라고 말한다. 근대 의학의 발전을 통해 삶에 대한 기대는 상승되었고, 인간 수명은 길게 연장되었다. 그에 비해 노인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에 머문다. 노인 자살 비율도 높다. 이게 우리의 잔혹한 현실이다.

오늘의 노인 의미와 어제의 노인 의미는 분명 다르다.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오늘날 노인의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더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시간만 점점 더 늘고 있다.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움만 받아야 하는 역할 수용이 노인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늙어가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삶에 속하며, 특히 삶의 마침에 속한다.

젊음과 늙음을 갈라치는 문화

지난 2006년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점심 식사에 초대된 김정희 교수. 베네딕토 16세는 교회 내에서의 신분과 출신대륙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쇤보른 추기경, 아도코노 주교(아프리카), 김정희 교수, 시리아에서 온 제자 사로얀 신부를 헤드 테이블에 앉게 했다.

노인은 무용지물인가? 오늘의 기술사회 문화에서는 삶의 가치 기준을 유용·무용의 잣대로 판단한다. 이런 사회 안에서 노인은 무익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외면되거나 이방인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을 외면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외친다. 영원히 병들지 않고 늙지 않을 것처럼 우리도 젊었을 때 노인을 폄하하며, 방관하고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늙고, 가난하며, 그리고 병들어 혼자가 되고서야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지하며, 뒤늦게 노인 돌봄의 사회적 결핍을 지각한다.

우리는 사회의 질(質)을 소위 문명(文明)이라고 하는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 사회의 질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며 또 공동의 삶 속에서 그들에게 어떤 대접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노인복지가 그 사회의 질, 즉 문명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노인들의 지혜와 경륜을 소중히 경청하는 사회는 살아 숨 쉬고 있지만 폄하하고 능멸하는 사회는 그 자체가 죽음의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며 대접하고 있는지를 숙고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양 학자들은 현대사회를 고령화 사회로 규정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고령화 사회에서는 아이의 수가 감소하는 반면에 노인의 수는 증가한다. 바로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오늘의 사회 혼란이 발생한다. 이익과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노인은 항상 비생산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이러한 사유의 결과를 낳은 원인은 무엇인가?

이익과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회 문화는 노인과 젊은이를 갈라친다. 이미 이러한 문화에 익숙해진 자들은 노인과 젊은이를 갈라치는 일이 별로 나쁘지 않고, 죄가 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한다.

젊음과 늙음을 갈라치는 문화는 상처와 나약함에 대한 공포와 불안만을 확산시킨다. 이러한 문화는 결국 희망을 잃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런 문화에서는 절망과 좌절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의 지혜와 사랑은 보존되어야 한다. 노인의 지혜와 사랑이 보존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양심을 선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밥상에서 노인들을 떼어낸 문화 속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이다.

이제 이 아이들 세대가 노인들의 밥상을 ‘요양원’이란 이름으로 미리 준비함으로써 적어도 그들의 밥상에서 그들의 부모를 강제로 떼어낸다는 오해와 비난만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이 아이들 세대가 부모들 세대보다 더 양심적이고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혹은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늙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늙어가면서 노인은 한쪽 방향으로 기운다. 다시 말해 균형감각이 깨진다. 그뿐이랴. 노인은 더이상 새로운 것을 언급하지 않고 항상 지나간 것을 반복한다. 나중에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속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

심지어 자신이 여러 번 반복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며, 조금 지나면 망각한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늙어가는 노인의 특성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인의 특성을 이 두 가지 상반된 위험성에서 관찰할 수 있다.

첫째, 노인은 반복하면서 교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무미건조하고 의례적인 것으로 기운다. 다시 말해 과거로 회귀한다. 과거를 이상(理想)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확고히 하려고 한다. 노인에게 과거는 항상 같은 것이다.

둘째, 노인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그 문제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한다. 이러한 위험성은 조절 능력의 상실과 질서 파괴에서 드러나며, 그리고 하나의 불확실성과 불특정에서 드러난다. 그것들에서 지각된 징표가 노인들의 ‘수다’로 드러난다.

그러기에 노인도 늙어가면서 정신을 의식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여기서 노인은 강의와 TV에서 얻은 정보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며, 가능한 한 문화적인 물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특히 노인에게 영적 독서의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독서가 노인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노인은 오디오북이나 라디오 청취를 통하여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

친교와 사랑의 실천, 유머, 감사

노인에게 친교는 작은 봉사이다. 지난 6월 7일 오후 대전 유성구 휴먼시아아파트 경로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작년 9월부터 문을 닫았던 이 경로당은 10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친교는 작은 봉사이며, 좋은 인지 능력이다. 우리가 소소한 것들을 자주 사랑으로 실천한다면 그 소소한 행위가 모여 위대한 가치를 낳는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척도를 발견하는 데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척도 없는 행위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Humor)는 무미건조한 위험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머는 사건의 긴박한 상황을 여유롭게 만들어간다. 유머는 분노, 화, 그리고 수치심(羞恥心)에서 탈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처를 치유한다.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은 그것이 유희적이든 또는 자신에게 관용적이든 행복을 선사한다. 이런 방식에서 노인은 더 나은 것을 수용하고 포용한다. 그래서 웃음은 노년의 중요한 과제이다. 웃음은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며, 노인의 인지력은 웃음을 통한 삶에서 체험된다.

노인은 불안하고 두렵다. 우리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엄습한다면 그것과 정반대로 행하면 된다. 이냐시오에 의하면 ‘유혹에 대항하는 것은 정반대로 행하는 것(agere contra)’이다. 그리고 불안하고 걱정된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 신뢰, 의탁, 그리고 감사기도는 우리에게 유익하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 감사는 불가피하다. 감사의 의미는 삶의 근원으로 귀의함을 뜻한다. 감사하는 자는 삶의 근원이 누구인가를 안다. 이런 의미에서 감사는 신뢰를 전제한다. 우리는 감사 안에서 완전히 삶을 수용하며, 감사 안에서 삶과 일치한다.

‘獻身’은 우리 삶의 기본법칙

헌신은 우리가 항상 새로운 것에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갇혀 있음’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하나의 병이다. 자연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신경적 저해 요인은 ‘아니오’(거부)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특히 노년에 ‘내어주는 것’에는 강하지만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것’에는 약하다.

‘내어주는 것(양도)’ ‘놓아주는 것(포기)’ ‘떼어놓는 것(이별)’, 이것들은 우리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다. 이런 경험들이 의식적으로 헌신으로 귀의를 의미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경험들은 삶의 완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젊은 시절보다 노년에 덜 소유하고, 덜 힘과 저항력을 발휘하며, 그리고 덜 책임을 진다. 그리고 전처럼 더는 많은 요인과 연루되지 않는다. 노인은 상호 간에 경계심이 없으며, 활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만남이 줄어든다. 관계도 점점 멀어지고, 살아 있는 친구보다 죽어가는 친구가 더 많아진다. 갈수록 자신감과 기력을 상실한다.

텅 빈 많은 공간과 예기치 못한 담담한 형상들이 드러난다. 지난날 쌓은 업적은 다 물거품이 되고, 가끔 벌거벗은 나무처럼 앙상한 몰골만 감지된다. 이때 사도(使徒)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는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 21, 18)

그래서 우리는 행위보다 먼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균형을 잡으려면 노인은 먼저 자신을 내어주어야 한다. 내어주어야 하기에 노인도 때로는 긴장될 수도, 때로는 고달플 수도 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결국 수용이다. 마지막 순간에 최종적으로 자신을 내어줌은 이 지상에서 가장 힘든 내어줌의 수련(修練)이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 순간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홀로 죽음으로 건너간다. 이러한 내어줌은 끝이 아니다.

내어줌은 노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며 과제이다. 헌신은 하나의 과정이다. 헌신도 성장해야 하고 다시 새롭게 청원되어야 한다. 헌신은 수동성이 아니라 능동성의 최고 형상이다. 헌신은 통계적인 숫자가 아니며 우리의 소유도 아니다. 이처럼 헌신은 우리의 최고 성숙한 모습이다.

노년의 고독에서 벗어나는 법

노년의 고독은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또는 ‘요양원’에 수용되었다면 노년의 고독은 더 심각한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노인들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반기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제 홀로 있음은 피할 수 없는 노인들의 현실이며, 하루하루가 짐이 되는 현실이기에 두렵다. 사실 오늘의 기술문명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노인들이다. 아이들은 생산적인 존재로 대접하지만, 노인들은 비생산적인 대상으로 소외받는다.

여기서 홀로 있음이 나쁘지 않다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홀로 있는 그 자체를 수용하지 못한 자는 고독을 고통스럽게 경험한다. 그러나 홀로 있는 그 자체를 충만으로 받아들인 자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홀로 있는 그 자체를 수용하지 못한 사람은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홀로 있는 것에 대항한다. 그와 같은 대항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성급하게 비난하는 것은 더더욱 잘못된 것이다.

홀로 있음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충만과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홀로 있음을 의식하고 주목해야 한다. 홀로 있음은 경계를 넘어서 바라보도록, 그리고 미지의 보화(寶貨)를 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고독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가 그 상처를 단순하게 수용하는 것은 위험스럽다. 고독의 상처는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더는 우리의 의지로 단순하게 버틸 수 없다. 다시 말해 고독의 상처는 늪 안으로 깊이 파고들며, 모든 생명력을 상실할 수 있기에 만남과 도움이 필요하다.

늙어가면서 고독을 이겨내는 탁월한 방법은 가능한 한 고독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고독을 사랑으로 바꿔 충만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만남은 상호 존중 안에서 이루어지고, 만족스러운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늙어감 또한 하나의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보호와 보살핌, 심리치료와 창조적인 활동, 애정과 진정성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보호 등등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중요한 역할을 우리 주변에 펼쳐야 함을 알아야 한다.⊙

상단주메뉴

기고

당신도 이렇게 늙어봐! 靈性의 길로 늙어가는 법

노인 삶의 質이 사회 文明을 결정해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