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은 지난 4월 25일 한강공원에서 실종된 후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고(故) 손정민씨의 49재(사망 후 49일째 치르는 제사) 날이었다. 손씨 가족은 천주교 신자라 49재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49재는 국내 장례 절차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정민씨 가족이 다니는 성당에서는 이날 별도 미사를 가졌다.
또 손씨 가족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이날 오후 6시30분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서초경찰서 초동수사 실패 대국민 사과 및 동석자 A씨 전면 재조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네이버 카페 ‘반포 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하 반진사)이 주축이 돼 주최한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손씨를 추모했고, 연사들은 “서초경찰서는 사과하고 동석자 A씨를 재조사하라”며 ‘편파보도’를 하고 있는 일부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반진사 운영자인 유튜버 ‘종이의TV’ 박모씨는 A씨 변호인 측에 모욕죄로 고발당한 상태다. 한강 의대생 사건은 50일 동안 누구도 사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즉 정민씨가 왜·어떻게 한강에 들어갔는지를 밝혀내지 못한 채 고소고발전으로 얼룩져 있다.
성인 사망 및 실종 사건은 전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한강 의대생 사건처럼 여론의 뜨거운 관심과 온갖 음모론이 횡행하게 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사인(死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의문사(疑問死)임은 물론, 서울시민이라면 대부분 친근하게 느끼는 장소인 한강공원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 사망자가 강남에 거주하며 서울 사립대 의대에 재학 중이었다는 점 등이 특이점이었다. 4050세대 학부모를 중심으로 정성껏 키운 외동아들을 순식간에 잃은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정민씨가 실종 닷새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자 사람들은 정민씨에 대한 애도는 물론 당시 함께 술을 마신 동석자 A씨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표현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난데없이 죽었으니 얼마나 괴롭겠냐는,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의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A씨와 그 가족은 정민씨 유족과 연락을 끊었다. 아들의 마지막을 알고 싶다는 정민씨 유족의 호소는 “7시간 이상 블랙아웃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외면했다.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50일간 사건은 이렇게 진행됐다. 정민씨 유족의 수사 촉구→유튜버들의 음모론 등 각종 의혹 제기→방송 등에서 반(反)음모론 여론 확산→경찰 수사 중간발표→A씨 측의 법적 반격까지, 유족의 목소리는 점점 잊혀가고 있다. 6월 중순 현재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언론 보도가 간간이 나올 뿐이다. 물론 정민씨가 스스로 물에 들어갔거나 발을 헛디뎌 실족했다는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태다.
여론이 바뀐 계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루머가 양산됐다. A씨의 가족 또는 친척이 권력기관 관계자라거나 방송국 고위 관계자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 마약 관련설 등이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 유튜버도 적지 않았지만, 일부의 과잉행동으로 여론은 점차 싸늘해졌다.
애초 정민씨 유족의 아픔에 동조하던 여론이 상당 부분 바뀐 터닝포인트는 5월 29일 방영된 SBS TV〈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였다. 〈그알〉은 정민씨 사인에 대해 타살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주장했고, 만취해 있었다는 정황을 공개하며 사실상 정민씨가 스스로 물에 들어간 것으로 규정했다. 이어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 생산과 돈벌이를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민씨의 타살을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명확한 거짓 뉴스만 쏙쏙 뽑아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그알〉은 A씨의 발언을 왜곡 보도해 “정민씨가 만취해 스스로 한강물에 들어갔다”는 결론을 암시했다. 이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TV만 본 사람들은 〈그알〉이 주장하는 대로 사건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정민씨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왜 어떻게 물에 들어갔는지 알고 싶어 한 것이 전부였지만 방송은 유족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방송 이후 경찰은 한 달 이상 찾아헤매던 A씨의 휴대폰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사건 당시 A씨가 “술에 취해 휴대폰이 바뀐 것 같다”며 정민씨의 휴대폰을 들고 귀가했고, 정민씨의 주검에서는 휴대폰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A씨 휴대폰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 증거로 예상돼왔다. 그러나 경찰은 이 휴대폰과 관련, “사망 원인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고 발표한 게 전부였다.
50일이 지난 현재 남은 것은 고소고발전이다. A씨 측 변호인은 A씨와 권력층 관련설 등의 루머를 제기한 네티즌과 유튜버를 고발했다. A씨 변호인 측인 원앤파트너스는 고소고발 계획에 이어 “1000여명이 선처를 바란다고 연락해왔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의혹은 그대로
《월간조선》은 지난 6월호에서 손정민씨 어머니를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인터뷰했는데, 당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정민씨 부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유튜버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A씨 외의 동석자 존재 여부, 당시 현장에서 폭행 등이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23페이지 분량의 중간수사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유족이 가장 알고 싶어 한 ‘물에 들어가게 된 정황’에 대한 내용은 없다. 또 각종 의혹과 관련해 16개의 Q&A를 공개했는데, 답변 내용 모두 자문자답으로 사실상 A씨에 대한 변호 수준이다. 경찰이 왜 유튜버의 의혹에 일일이 답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물을 무서워해 스스로 들어갈 리가 없다는데”라는 의혹에 “물놀이(스노클링)하는 사진을 확보했다”고 답변한 것이다. 정민씨의 유족은 정민씨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한 적이 없고,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하러 간 경우가 아니면 발에 모래나 물 묻는 걸 싫어한다고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경찰은 과연 세간의 음모론대로 정민씨 사건을 일부러 덮으려는 것일까. 주변 취재 결과 상당수의 법조인과 언론인들은 “딱히 뒷배경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경찰이 초동수사가 미흡했던 점을 무마하기 위해 더 이상 강하게 수사에 나서기 난감할 것” 또는 “그나마 여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지 속으로는 안 그래도 바쁜데 빨리 실족사로 끝내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여기에 기자의 추측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정민씨 아버지가 블로그를 통해 여론전을 펼친 것이 경찰에게 ‘괘씸죄’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정민씨 아버지는 “경찰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찰이 정민씨 아버지에게는 블로그나 언론을 통해 퍼뜨릴까 봐 수사 상황을 직접 알려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정민씨 아버지 블로그와 여러 카페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위로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자식의 죽음이 의문사로 남지 않도록,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길 응원할 뿐이다.⊙
또 손씨 가족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이날 오후 6시30분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서초경찰서 초동수사 실패 대국민 사과 및 동석자 A씨 전면 재조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네이버 카페 ‘반포 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하 반진사)이 주축이 돼 주최한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손씨를 추모했고, 연사들은 “서초경찰서는 사과하고 동석자 A씨를 재조사하라”며 ‘편파보도’를 하고 있는 일부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반진사 운영자인 유튜버 ‘종이의TV’ 박모씨는 A씨 변호인 측에 모욕죄로 고발당한 상태다. 한강 의대생 사건은 50일 동안 누구도 사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즉 정민씨가 왜·어떻게 한강에 들어갔는지를 밝혀내지 못한 채 고소고발전으로 얼룩져 있다.
성인 사망 및 실종 사건은 전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한강 의대생 사건처럼 여론의 뜨거운 관심과 온갖 음모론이 횡행하게 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사인(死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의문사(疑問死)임은 물론, 서울시민이라면 대부분 친근하게 느끼는 장소인 한강공원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 사망자가 강남에 거주하며 서울 사립대 의대에 재학 중이었다는 점 등이 특이점이었다. 4050세대 학부모를 중심으로 정성껏 키운 외동아들을 순식간에 잃은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정민씨가 실종 닷새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자 사람들은 정민씨에 대한 애도는 물론 당시 함께 술을 마신 동석자 A씨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표현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난데없이 죽었으니 얼마나 괴롭겠냐는,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의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A씨와 그 가족은 정민씨 유족과 연락을 끊었다. 아들의 마지막을 알고 싶다는 정민씨 유족의 호소는 “7시간 이상 블랙아웃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외면했다.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50일간 사건은 이렇게 진행됐다. 정민씨 유족의 수사 촉구→유튜버들의 음모론 등 각종 의혹 제기→방송 등에서 반(反)음모론 여론 확산→경찰 수사 중간발표→A씨 측의 법적 반격까지, 유족의 목소리는 점점 잊혀가고 있다. 6월 중순 현재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언론 보도가 간간이 나올 뿐이다. 물론 정민씨가 스스로 물에 들어갔거나 발을 헛디뎌 실족했다는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태다.
여론이 바뀐 계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루머가 양산됐다. A씨의 가족 또는 친척이 권력기관 관계자라거나 방송국 고위 관계자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 마약 관련설 등이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 유튜버도 적지 않았지만, 일부의 과잉행동으로 여론은 점차 싸늘해졌다.
애초 정민씨 유족의 아픔에 동조하던 여론이 상당 부분 바뀐 터닝포인트는 5월 29일 방영된 SBS TV〈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였다. 〈그알〉은 정민씨 사인에 대해 타살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주장했고, 만취해 있었다는 정황을 공개하며 사실상 정민씨가 스스로 물에 들어간 것으로 규정했다. 이어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 생산과 돈벌이를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민씨의 타살을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명확한 거짓 뉴스만 쏙쏙 뽑아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그알〉은 A씨의 발언을 왜곡 보도해 “정민씨가 만취해 스스로 한강물에 들어갔다”는 결론을 암시했다. 이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TV만 본 사람들은 〈그알〉이 주장하는 대로 사건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정민씨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왜 어떻게 물에 들어갔는지 알고 싶어 한 것이 전부였지만 방송은 유족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방송 이후 경찰은 한 달 이상 찾아헤매던 A씨의 휴대폰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사건 당시 A씨가 “술에 취해 휴대폰이 바뀐 것 같다”며 정민씨의 휴대폰을 들고 귀가했고, 정민씨의 주검에서는 휴대폰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A씨 휴대폰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 증거로 예상돼왔다. 그러나 경찰은 이 휴대폰과 관련, “사망 원인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고 발표한 게 전부였다.
50일이 지난 현재 남은 것은 고소고발전이다. A씨 측 변호인은 A씨와 권력층 관련설 등의 루머를 제기한 네티즌과 유튜버를 고발했다. A씨 변호인 측인 원앤파트너스는 고소고발 계획에 이어 “1000여명이 선처를 바란다고 연락해왔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의혹은 그대로
《월간조선》은 지난 6월호에서 손정민씨 어머니를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인터뷰했는데, 당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정민씨 부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유튜버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A씨 외의 동석자 존재 여부, 당시 현장에서 폭행 등이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23페이지 분량의 중간수사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유족이 가장 알고 싶어 한 ‘물에 들어가게 된 정황’에 대한 내용은 없다. 또 각종 의혹과 관련해 16개의 Q&A를 공개했는데, 답변 내용 모두 자문자답으로 사실상 A씨에 대한 변호 수준이다. 경찰이 왜 유튜버의 의혹에 일일이 답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물을 무서워해 스스로 들어갈 리가 없다는데”라는 의혹에 “물놀이(스노클링)하는 사진을 확보했다”고 답변한 것이다. 정민씨의 유족은 정민씨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한 적이 없고,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하러 간 경우가 아니면 발에 모래나 물 묻는 걸 싫어한다고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경찰은 과연 세간의 음모론대로 정민씨 사건을 일부러 덮으려는 것일까. 주변 취재 결과 상당수의 법조인과 언론인들은 “딱히 뒷배경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경찰이 초동수사가 미흡했던 점을 무마하기 위해 더 이상 강하게 수사에 나서기 난감할 것” 또는 “그나마 여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지 속으로는 안 그래도 바쁜데 빨리 실족사로 끝내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여기에 기자의 추측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정민씨 아버지가 블로그를 통해 여론전을 펼친 것이 경찰에게 ‘괘씸죄’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정민씨 아버지는 “경찰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찰이 정민씨 아버지에게는 블로그나 언론을 통해 퍼뜨릴까 봐 수사 상황을 직접 알려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정민씨 아버지 블로그와 여러 카페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위로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자식의 죽음이 의문사로 남지 않도록,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길 응원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