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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이념적 관점에서 본 역사왜곡금지법

사실 왜곡하고 우기는 것은 좌익 전체주의의 속성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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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향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
⊙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는 정의기억연대, 국사편찬위원회 공식 통계보다 3·1운동 사망자를 8배 이상 부풀려 말한 문재인은?
⊙ 6·25를 北侵이라고 주장한 사르트르, 킬링필드를 부정한 김용옥·촘스키, 히틀러를 찬양한 E.H 카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2019년 2월 23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5·18역사왜곡처벌법’ 요구 집회. 그 뒤로 보수단체가 내건 5·18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 플래카드가 보인다. 사진=뉴시스
  “이게 나라냐?”라고 묻는다면 답은 이 정권 출범 일성으로 이미 주어져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부동산 문제로 난장판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정신줄을 잡기도 전에 또 다른 난리가 덮쳐왔다. 물난리다. 터지고 떠내려가고…, 소떼가 지붕 위로 뛰어오르고…, 나라 전역이 난리가 났다. 물론 ‘비’가 정권 탓은 아니다. 하나 합리적으로야 그렇지만 기분학상으로는 가히 신통방통을 느끼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맛보게 하기 위해 날씨마저 ‘더불어’ 덩달아 주는가 싶은 것이다.
 
  어떻든 ‘유례없는’이라는 말이 곧바로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실 유례없는 건 아니다. 조금만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여름 장마철의 물난리는 예사였다. 매년 ‘수재의연금’ 모금 행사가 없었던 때가 드물었다. 그런 풍경이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4대강 사업’ 덕분이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으니 논란은 놔두자.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산사태가 어느 때보다도 크게 늘어난 원인은 ‘태양광 난개발(亂開發)’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적어도 산사태가 심하게 발생한 적은 없었다. 산림녹화의 성공 덕분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난데없이 원전(原電) 사업을 중단시키더니 태양광 발전을 한다며 전국 도처에서 산림을 베어내고 태양광 패널로 뒤덮었다. 그 상당수가 이번 폭우에 휩쓸려버렸다.
 
  산림을 베어내는 게 호우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미 지적과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아예 무시했다. 전임 어느 정권도 이런 적은 없었다. 어떤 일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으면 최소한 귀를 기울이는 시늉은 했었다. 그런데 문 정권은 알량한 시늉조차 없이 고집불통으로 산을 뭉갰다. 그 결과 폐물이 된 태양광 패널이 곳곳에 쓰레기더미가 돼 있다. 그래도 이 정권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여전히 우긴다.
 
  그런데 그래놓고는 이 정권의 한 장관이라는 자는 기상천외의 발언을 또 하나 보탰다. “북한도 수해가 심하니 북한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애써 사람 염장을 지르려 해도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야말로 ‘종북(從北)’ 근성이 거의 신앙의 반열이다. 이쯤 되면 정치학적으로 논하기도 뭐한 수준이다.
 
  민주주의의 약점이나 전체주의의 위험이라는 것도 어떤 점에선 이들에겐 어울리지도 않는 분석일지도 모른다. 파렴치하기는 악랄한 범죄자를 연상케 하면서 의기양양해하는 꼴은 양아치 수준이다. 무지몽매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행태는 매우 난폭하다. 이들은 21대 국회가 개원(開院)하자마자 그런 면모를 여실히 선보였다.
 
 
  역사왜곡금지법이라니!
 
2019년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5·18학살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에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동참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6월 1일 ‘역사왜곡금지법’이라는 것이 발의(發議)됐다. 21대 국회 개원 첫날이었고, 1호 법안이었다. “일제(日帝)강점기나 5·18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폄훼하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굳이 어느 당이라는 설명이 없어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압도적 의석의 위세를 보여주는 첫 시위를 했다.
 
  물론 그들로서는 의기양양만이 아닌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발상이 놀랍다.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본적인 권리다. 역사 해석을 대상으로 처벌조항을 만들겠다는 것은 자유민주 이념의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이미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규정이 있는 만큼 별도로 처벌규정을 만드는 것은 그냥 옥상옥(屋上屋)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줄곧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런 자들이 역사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 제한을 말한다. 대표 발의를 한 양향자 의원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언어도단이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체제라는 우리 근본 가치의 수호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가치의 수호를 위한 방책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자유민주체제가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학문의 자유에 대해 자유의 제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그 다양성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학문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폭거다.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부정하는 정도를 넘어 인간의 정신과 양심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이전의 문제가 있다. 법안 발의의 이유로 ‘일제강점기, 5·18, 세월호’ 등을 들고나온 것이다. 왜 하필 이런 것이 유독 그 대상이라는 것인가?
 
  우선 세월호 사건을 역사문제로 거론하는 것은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 식이라면 발생하는 모든 사건 사고가 다 역사문제가 된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나라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매일 이어진다. 그 모든 게 역사문제인가? 도무지 시시비비할 거리도 못 되는 발상이다.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를 보자. 저들은 위안부 문제 왜곡·모욕을 운운했지만 사실 위안부 문제 왜곡의 원조는 그들이었다.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며 나대는 이른바 ‘정의기억연대’의 원래 명칭은 약칭 정대협 이른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였다.
 
  그런데 정신대(挺身隊)와 위안부는 전혀 다르다. 정신대는 일제의 전시(戰時)근로동원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점을 알지도 못했고, 이제는 알면서도 그냥 떠들어댄다. 일제에 대해 어떤 유감을 갖고 어떻게 따지든 그건 당사자의 자유겠다. 하지만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별하지 않는 것은 고의든 무식해서든 그 자체로 역사왜곡이다.
 
  5·18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시시비비 이전에 역사적 주제로 다룰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것 자체가 막혀 있다. 무엇보다도 5000명이 넘는 5·18유공자의 면면을 확인할 수가 없다. 역사는 해석 이전에 사실이 먼저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 자신이 그것을 막고 있어서다. 그래놓고는 그들은 자신의 해석을 유일한 해석으로 내세우며 그에 어긋나는 것은 처벌하자고 한다. 이것은 올바른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강요고 협박일 따름이다.
 
  그래서 역사왜곡을 처벌한다면 사실의 왜곡이야말로 가장 먼저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따지자면 널리고 널렸다.
 
 
  1년 사이에 3·1운동 사망자를 100명 늘린 문재인
 
2019년 3·1절 경축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한 예로 어느 유명 역사 강사라는 자의 경우를 보자. 이 사람은 일제가 우리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발라 훼손했다고 늘어놓았다. 평가할 가치조차 없는, 시쳇말로 그야말로 ‘막 던지는’ 얘기다.
 
  당시 일제 당국이 손을 대기 전 불국사와 석굴암은 굳이 더 이상 훼손할 필요도 없는 다 무너진 폐허 상태였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사용한 복원 작업에 아쉬움을 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두고 “고의적 민족정기 훼손” 운운하는 건 한국인 스스로를 낯 뜨겁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일제가 굳이 우리 민족정기를 어쩌고저쩌고 싶으면 그냥 불도저로 밀어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역사 강사라는 자의 언설은 유치하기까지 한 역사 왜곡이다. 그런데 이런 얼치기 뺨치게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이가 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일제시대와 관련한 그의 언급 하나를 보자.
 
  문 대통령은 올해 3·1절 경축사에서 “1919년, 한 해에만 무려 1542회에 걸친 만세 시위운동으로 전국에서 7600여 명이 사망했고, 1만6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4만6000여 명이 체포·구금되었다”라고 말했다. 3·1운동 당시 사망자 수를 7600여 명이라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3·1절 경축사에서는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나 되는 202만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7500여 명의 조선인이 살해됐고 1만60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체포·구금된 수는 무려 4만6000여 명에 달했다”라고 말했다. 올해에는 100명이 또 추가된 셈인데, 어떻게 늘어나게 된 것인지는 도무지 설명도 없다.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사망자는 553명(시위 참가자는 58만명)이다. 하나 이건 일본 것이니 제쳐두자.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수는 무엇보다도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시하는 3·1운동 사망자 수와도 크게 차이가 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19년 2월, 3·1운동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면서 밝힌 당시 사망자는 최대 934명(시위 참가자는 최다 103만명)이다. 사망자 수에서 8배가 넘는 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사편찬위원회와도 어긋나는 주장을 3·1절 경축사라는 공식 연설에서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다. 출처도 없다.
 
  그의 중대한 역사왜곡은 그 외에도 무수하다. 그는 임시정부를 들먹이며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인했다. 그의 뒤틀린 주장에 따라 역사교과서도 왜곡됐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그저 ‘정부 수립’으로 표현하면서 북한에 대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 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를 세웠을 뿐인데 북한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된다.
 
  이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6·25전쟁에 대해서도 역사왜곡을 했다. 그는 2019년 6월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6·25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역사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발적인 충돌과 핵무장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이 우려를 불식시켜야 합니다.”
 
  그는 6·25를 마치 남북의 쌍방과실인 양 왜곡한 것이다. 6·25가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발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전혀 있을 수 없는 팩트다. 물론 북한과 중공(中共·중국공산정권)은 여전히 북침(北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억지다. 6·25가 북한의 남침에 의한 것임은 최근 구(舊)소련 외무성의 기밀문서에 의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 엄연한 사실을 감성적 언사를 동원해 왜곡한 것이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다. 그 자리의 자격이 있는지 묻게 되는 중대한 왜곡이다.
 
 
  거짓말쟁이 좌익과 ‘쓸모 있는 바보들’
 
  왜 이럴까? 이들은 한편으로는 스스로 중대한 역사왜곡을 일삼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왜곡을 처벌하자고 한다. 이 같은 뒤틀린 역사놀음은 무지몽매해서일까 뻔뻔해서일까? 하지만 이건 이들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이런 작태는 좌익(左翼) 전체주의 세력의 정치적 본성이다. 좌익 전체주의 세력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늘 그랬다. 이들은 해석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본적 사실관계의 날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사실이 확인되어도 끝내 우겼다. 김일성 왕조의 북한이나 중공의 역사날조는 예를 들기도 식상할 정도다. 이들은 거짓말에 가책이 없다. 정치적 DNA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좌익에 감염된 먹물 무리, 이른바 ‘쓸모 있는 바보들’이다. 그 행각은 거의 가관이었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살아생전 이미 수많은 팬덤을 거느린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늘 공산주의 운동의 동반자를 자처했다. 그는 스탈린주의 소련을 적극 옹호했으며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 측을 지지하였다.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남한이 북침했다는 김일성의 말을 그냥 믿었다.
 
  공산좌익의 대표적 만행으로 꼽히는 것 중의 하나가 킬링필드다. 그런데 그 만행의 주범들은 프랑스 좌익과 사르트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에 대해 폴 존슨(Paul Johnson)은 《지식인의 두 얼굴》(원제 Intellectuals)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1975년 4월 이후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끔찍한 범죄로 인구의 4분의 1에서 5분의 1이 죽었다. 이 범죄는 ‘더 높은 조직’이라 불리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중산층 지식인 그룹에 의하여 자행되었다. 8명의 지도자 중 5명은 교사, 한 명은 대학교수, 한 명은 공무원, 한 명은 경제학자였다. 모두가 1950년대에 프랑스에서 공부하였다. 거기서 공산당에 들어갔고, 사르트르의 철학적 행동주의와 ‘폭력의 필요성’이란 교리를 흡수하였다. 이 집단살인자들은 사르트르의 이념적 아들들이었다.〉
 
  사르트르의 말을 들어보자.
 
  “스탈린 서기장 동지는 우리가 모르는 고급정보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6·25전쟁은 미국의 사주에 의한 한국의 북침이다.”
  “소련에는 완벽하게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솔제니친은 시대착오적 인물이다.”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反)혁명적인 인물을 죽여 없애야 한다.”
  “체 게바라는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다.”
 
  이건 망언일까 명언일까?
 
 
  김용옥, “킬링필드는 미국의 조작”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뚜얼슬랭 학살 박물관. 김용옥·촘스키 등은 킬링필드 학살을 부정하거나 미국의 책임으로 돌린다.
  사르트르 못지않은 대단한 인물은 많다. 한국에도 있다. 김용옥의 말을 들어보자.
 
  “아무리 빨갱이라 할지라도 어려서 스님 노릇을 했고, 선각자로서 프랑스 유학을 했으며 귀국해서 학교 선생님으로서 훌륭한 교육자의 모습을 지녔던 인물이 자국민을 200만명이나 학살하는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흡혈귀로 변신할 수 있을까?”(《앙코르와트·월남 가다》, 2005, 김용옥)
 
  김용옥은 그러면서 킬링필드 자체가 미국의 조작이며 허구라는 주장을 펼친다. 폴 포트 정권 때 죽은 사람은 30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을 뿐인데 그나마도 기아와 질병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책임은 미국 쪽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놈 촘스키도 있다. 언어학자에서 정치평론가로 변신한 촘스키는 캄보디아의 집단학살을 부인하다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자 그 책임을 미국에 넘겼다. 폴 존슨은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촘스키의 변명이 네 단계를 거쳤다고 분석했다.
 
  〈1. 학살은 없었다. 서구 선전기관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2. 작은 규모의 살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월남 신드롬’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니컬한 서구의 인도주의자들이 캄보디아의 고통을 이용한 것이다.
 
  3. 살인은 처음 생각하였던 것보다 대규모이다. 이는 미국의 전쟁범죄행위가 캄보디아 농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한 결과이다.
 
  4. 권위 있는 캄보디아 전문가 중 한 사람에 의하면 최악의 학살은 1975년이 아니라 1978년 중반에 일어났고 마르크시스트 때문이 아니라 보수주의자, 인종주의자, 그리고 반월남 요인들 때문이다. 요컨대 폴 포트의 범죄는 사실상 미국의 범죄이다.〉
 
  그야말로 ‘기-승-전-미국악당’이다.
 
 
  ‘덩샤오핑은 퇴보적’이라고 비난했던 E.H. 카
 
  E.H. 카(E.H. Carr·1892~1982)의 경우도 혀를 차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좌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덕분에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새삼 꽤 팔려나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저자 E.H. 카는 이념적 행적이 매우 현란했다. 스탈린과 소련의 전체주의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열렬히 찬양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E.H. 카였다. 그는 1950년부터 1978년까지 28년 동안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라는 14권짜리 소련 역사서를 썼다. 그런데 이 책은 왜곡으로 점철돼 있어 지금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1955년 케임브리지에 자리 잡은 이후 자신의 친소(親蘇) 편향적 입장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비판이 본격화되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책을 한 권 썼다. 이것이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1961)이다. 즉 이 책은 자신의 ‘당파적‘ 역사관에 대한 변명서였다.
 
  카는 그러면서 한때는 히틀러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 영국 《타임스》의 논설위원을 지낼 때 “유럽에는 새로운 질서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질서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쓴 바 있었다. 히틀러의 등장을 두고서였다. 그는 “전통적 국제질서는 결코 재건될 수 없고 히틀러가 왜곡된 방식으로 유럽대륙의 혁명적 전환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카는 “히틀러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시작한 19세기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顚覆)이라는 과제를 완성하였다”고 선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적 전쟁이다”라고까지 했다. 카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스탈린과 히틀러를 동시에 옹호하였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라면서, 체임벌린 영국 정부의 대(對)히틀러 유화정책도 지지하였다. 독소(獨蘇)불가침조약도 적극 옹호하였다. 그러다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을 깬 뒤로는 더 이상 히틀러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카의 이런 행각에 대해 조지 오웰은 1942년 “카 교수는 충성의 상대를 히틀러에서 스탈린으로 바꾼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대로였다. 카는 마르크시즘이 가장 성공적인 전체주의라면서 소련의 사회복지정책은 유럽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소련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눈먼 사람, 치유가 불가능한 사람”이란 악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말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 노선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으로 나아가자 퇴보적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그런 카조차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자신의 당파적 역사관을 옹호하고자 한 얘기지만 아무튼 역사 해석에는 다양성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은 이런 카의 입장에서 본다 해도 어처구니없는 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들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폐지로 만들고 있다.
 
 
  사실왜곡부터 처벌해야
 
  역사는 쉽지 않은 학문이다. 사실관계의 정확한 파악을 위해 과학적·수학적 엄격성이 있어야 한다. 해석을 위해선 간단치 않은 인문적 교양이 있어야 한다. 한편 역사는 사실 위험하기도 하다. ‘인간과 세계’를 다루는 것인 만큼 늘 정치적 논란 앞에 서게 된다. 그래서 ‘이념보다 사실이 먼저’라는 자세를 놓치면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한다.
 
  물론 역사에서 완전한 객관성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인간이든 주관적 관심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며,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언제든 호불호의 감성이 끼어들 수도 있다. 이해와 해석에서도 크든 작든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의문도 당연하거니와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해야 한다. 학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해석의 차이, 의문의 제기는 역사의 이해에선 관용될 뿐 아니라 존중도 돼야 한다.
 
  하지만 ‘사실’ 자체의 날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이것은 마치 거짓 증언이나 증거 조작과 같은 말하자면 범죄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역사왜곡을 금지하고 처벌하겠다면 바로 사실관계에 대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가장 먼저 처벌되어야 할 사람은 누구여야 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부터라고 하면 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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