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생생체험

변희재의 유쾌·발랄한 獄中記

유쾌한 드루킹·강용석, 맏어른 이병기, 꼿꼿한 남재준…

글 : 변희재  미디어워치 고문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거침없이 時事문제 논하고, 이재용·신동빈 얘기하던 옆방 미남 죄수, 알고 보니…
⊙ 痛風 때문에 휠체어 타고 나타나자 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놀라서 달려와
⊙ 드루킹, “나는 노회찬에게 돈 준 적 없다”고 주장
⊙ 조폭 거물, “보수 인사들은 여기 들어와서도 너무 조용… 임종석이 대학생 때 함께 수감 생활했는데, 밥그릇 던져대고 난리였어”
⊙ 필자 변호인이었던 강용석 변호사, 갑자기 囚人 되어 나타나… 잡범들과 잘 어울려 교도관도 혀 내둘러

변희재
1974년생. 서울대 미학과 졸업. 前 미디어워치 대표. 現 미디어워치 고문 / 저서 《손석희의 저주》 《변희재의 청춘투쟁》 《스타비평》
  2018년 5월 23일, 최순실 2심 공판에 태블릿PC를 검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나기현 공업연구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JTBC와 검찰은 “국과수에서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55페이지짜리 국과수 보고서에 그런 대목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여러 개의 계정 메일 사용을 근거로, 여러 사람이 공용(共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즉 애초에 필자가 주장한 대로 최순실 개인의 태블릿이 아니라 청와대 공용 태블릿이라면, 청와대 문서가 저장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이 태블릿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증거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나기현 공업연구관은, “태블릿PC가 최순실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느냐”는 최순실 측 이경재 변호사의 질문에 단호히 “없다”고 답했다. 또한 특정 사용자를 가려낼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될 카카오톡 대화록에 대해 “충분히 복원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미디어워치’는 즉각적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반면 그간 JTBC와 검찰의 주장에 반하는 증언이 나오자, 현장의 타(他) 매체 기자들은 전혀 기사를 쓰지 않았다. 또한 필자는 국과수의 55페이지짜리 요약보고서뿐 아니라 4만 페이지의 태블릿 사용기록 로 데이터(raw data)를 확보하여, JTBC와 검찰 보유기간 동안에 어떤 조작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내심 태블릿 조작 의혹의 진실을 조만간 밝혀낼 수 있으리라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포토라인에서
 
  그러나 그 다음 날인 5월 24일 서울중앙지검은 필자에 대한 사전(事前)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순실의 것으로 확인한 바 없다”는 국과수 측 증언으로, 다시 조작론이 확산될까 두려운 검찰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 판단했다.
 
  필자는 내심 ‘과연 법원이 이러한 검찰의 무리수에 손발을 맞춰줄까’ 싶었다. 실제 2016년 명예훼손 사건으로 고소된 1만7000명 중 사전 구속된 피의자는 단 3명뿐이었다. 그것도 “김정일과 박근혜가 주석궁에서 그룹섹스를 했다”는 수준의 유언비어를 유포한 인물들이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공적(公的) 사안에 대해 구체적 의혹을 제기한 언론인이 사전 구속된 적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없다. 또한 나중에 알았지만, 현재 OECD 국가 내에서도 없었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선임한 서정욱 변호사, 강용석 변호사 역시 “도저히 구속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태블릿 조작설을 공적으로 제기하지 못하도록 엄포용 구속영장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을 경우, 검찰과 JTBC에 불어닥칠 후폭풍을 감안해보면, 검찰이 실제 구속을 목표로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미디어워치의 기자들, 주요 독자 후원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만일 구속될 경우, 미디어워치 운영에 대해 미리 대비를 시켰다.
 
  5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생애 최초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었다. 일단 포토라인의 기자들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지금껏 기자들은 수많은 태블릿 조작 의혹에 대해 침묵해왔다. 그러므로 오히려 포토라인의 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필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간략한 발제 이후 기자들과 질의응답할 기회도 없이 검찰 측 직원들에 의해 재판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지금껏 검찰은 포토라인을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 주장해왔다. 그러나 막상 그 알 권리를 가장 손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질의응답의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피의자의 사진이나 찍어 보여주는 게 말 많고 탈 많은 포토라인의 주요 목적이었단 말인가. 이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 등에 포토라인 출석 시 원하는 피의자(被疑者)에 한해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구속
 
  그렇게 재판장으로 끌려간 이후부터는 사실상 피의자의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할 기회는 박탈당한다. 영장실질심사는 비공개 재판이기 때문이다. 그 비공개 재판에서 판사는 JTBC 측 주장을 읽어주는 수준이었다. 필자가 반박하고자 하면, “법원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윽박질러댔다. 판사는 심지어 자발적으로 필자를 응원하러 온 미디어워치 독자들의 기자회견까지 문제 삼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필자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구속영장실질심사도 공개재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난 후, 필자는 구속을 확신했다. 1시간 정도 검찰 차량을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아직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으므로, 필자는 수용자복이 아니라 민간 체육복을 입고 단독 수용자실에 갇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복도에서 드루킹과 마주쳤다. 드루킹은 밝게 웃으며, 교도관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필자는 서울구치소 생활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겠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예상대로 다음 날 새벽,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본격적인 수감(收監)생활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우선 CCTV가 장치된 독방(獨房)으로 배치되었다. 당일 면담 때, 교도관은 “큰 충격을 받아 당장 수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인물로 분류되어, CCTV로 적응 상태를 지켜본 뒤 나중에 CCTV 없는 방으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수용복 등 각 장 수감생활 용품을 챙겨주던 다른 교도관은 잠깐 필자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미디어워치 애독자입니다. 제가 해드릴 건 없지만, 변희재 대표님은 ‘젊은 보수(保守) 인사로서, 기죽지 않고 수감생활 당당히 잘하더라, 이런 말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년간 이 교도관의 주문을 지키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롯데 신동빈, 과자 한 봉지 안 돌리더라”
 
연쇄살인범 강호순.
  서울구치소는 상층・중층・하층으로 분류되고, 각 방은 숫자로 지정한다. 필자가 처음 배치된 곳은 ‘3상1’, 즉 상층의 3번 실의 1번 방이었다. 각 실의 1번과 2번 방은 독방이다. 교도관은 “변희재씨같이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인물은, 자칫 혼거방(混居房)에 있을 때 싸움이 날 수 있으므로 독방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필자가 복도를 지나갈 때 “변희재 파이팅!” 이런 말을 듣기도 했고, “야 이 ××× 죽어버려!”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독방은 주로 필자와 같은 정치범, 혹은 흉악범들이 쓰기 마련이다.
 
  3상을 관리하는 교도관은 50대로 연배가 좀 되는 인물이었다. 이분은 필자의 적응을 돕겠다며, 오후 시간이 되면, 필자와 2번 방의 인물을 함께 불러 커피타임을 가졌다. 주로 교도소 내의 일화나 시사(時事)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필자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교도관과 2번 방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 정도였다. 2번 방의 인물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운동장에서 만나, ‘당신은 어차피 또 들어올 테니, 에어컨이나 설치해놓고 나가라’고 말했다”고 했다. 또한 “롯데의 신동빈 회장은 여기 들어와서, 이웃 방에 과자 한 봉지 안 돌리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에, 정치・시사 관련 발언을 거침없이 하기에 필자는 ‘내가 모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혹은 국정원 출신 인사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0년 이상 수감되어 있는 강호순이었다.
 
  약 한 달이 지난 뒤, 필자는 CCTV가 없는 11상 1번 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드루킹은 바로 이웃한 12상 2번 방에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국정원 특활비 사건으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된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2번 방으로 들어왔다. 이 두 사람은 필자가 석방될 때까지 약 1년간 운동을 함께 나가게 되어, 간략하나마 대화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獨房과 混居房
 
  필자가 구속된 뒤, 접견을 들어온 지인(知人)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식사였다. 그러나 식사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여의도 기준으로 6000원 정도 백반 수준이었다. 교도관은 “우리는 영양사들이 고른 영양 섭취를 과학적으로 고려해서 식사를 제공하므로, 건강 측면에서 집밥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함부로 대하고, 허리가 아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워 있지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교도관들은 ‘번호’ 대신, 깍듯이 ‘변희재씨’라고 이름을 부르며, 상호 존댓말을 쓴다. 이들은 수용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훈련이 되어 있는 전문 직업인들이다. 특히 필자같이 독방을 쓰는 수용자들과는 변호사 접견, 일반 접견 등 이동할 때, 더 많은 대화를 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어 몇몇 교도관과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특히 가끔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다는 교도관들은 아무래도 더 신경 써서 잘해주기도 했다.
 
  서울구치소의 내규(內規)상 수용자는 일과시간에 누워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같이 허리가 아픈 수용자는 예외로 인정해준다. 필자도 겨울에 허리 통증으로 고생할 때, 교도관의 허락 아래 누워 있을 수 있었다.
 
  서울구치소 내에서 독방 생활은 특혜(特惠)로 간주되지만, 독방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6개월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강용석 변호사는 처음부터 독방을 거부하고 혼거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일단 혼거방에서는 다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이므로, 우애가 돈독하다고 한다. 서로 바둑이나 장기도 둘 수 있고,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어, 하루 시간이 훨씬 빨리 간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겨울보다 여름이 견디기 힘들어
 
  더 중요한 것은 활동량이다. 독방은 신림동의 가장 작은 고시원 방이라 생각하면 된다. 키가 큰 필자의 경우 다리를 들어 한쪽 벽에 대고, 다른 쪽 벽에 허리를 댄 자세로 책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겨울에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로 공간이 협소하니, 활동량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거방 수용자들이 하루 30분 운동시간을 할애받는 데 반해, 독방 수용자는 1시간이다. 그러나 독방 수용자가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은 길이 10m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걷는 것 이외에 별로 할 게 없다. 상대적으로 넓은 운동장에서 수용자들끼리 함께 뛰며 대화를 나누는 영화 속 장면은 혼거방 수용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필자가 석방된 뒤 예전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업무에 복귀했다가 바로 나가떨어진 것도 1년간의 활동량 부족을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서는 활동량 자체가 없기 때문에 몸이 쇠약해진 줄 몰랐다가, 갑자기 예전처럼 활동하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그 점에서 아예 독방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은 걱정될 수밖에 없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평소에 요가를 해왔기에, 독방에서 요가로 최소한의 건강은 유지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분명한 건 독방 수용자는 운동장 걷는 것 이상의 운동을 더 해야 한다. 실제로 국가대표 펜싱 선수였던 고영태는 필자에게 “안에서도 가급적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여러 차례 조언해준 바 있다.
 
  서울구치소에서의 최악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다. 특히 지난해 7월 20일부터 8월 10일까지 기온이 35°C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었다. 이 정도 기온이면 서울구치소 상층 온도는 40°C를 넘나들게 된다. 그나마 선풍기를 24시간 돌려주기는 하지만, 이 수준이면 온풍기나 다름없다.
 
  상층의 경우는 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새벽 2시 혹은 3시에 교도관들이 호스를 들고 와서 각 방에 물을 넣어주어야 할 정도였다. 새벽에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아 (방 아래 깔려 있는 쇠파이프의 열 때문에) 뜨거워서 잠이 깬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한낮에는 드러누워 아예 움직이지 않는 이른바 ‘시체놀이’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교도관들은 노약자 수용자들이 혹시 위험한 상태에 빠질까 봐 전전긍긍, 개별 수용자에 대한 관리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용자 개개인은 혹서기(酷暑期)에 더 자유롭고 편한 측면도 있다.
 
  필자에게는, 이 혹서기를 견뎌내기 위해 각 수용자와 교도관이 똘똘 뭉쳤던 이 20일이 참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겨울에 가끔 교도관들에게 혹서기 이야기를 하면, “그건 변희재씨가 독방을 썼기 때문입니다. 혼방 썼으면 그 말 절대 못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구치소 거물들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 이병기・남재준・이병호 전 국정원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현기환 전 정무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수감되어 있다. 나중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조현오 전 경찰청장까지 들어왔다. 국가기관 수장(首長) 전체가 들어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 직원만 30여 명, 정치범 다 합쳐서 60여 명 정도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정원 직원끼리는 거의 ‘사우회(社友會)’ 수준이었다.
 
  이들 모두는 의식적으로 그런 건지 몰라도, 여유롭고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다. 특히 남재준 전 원장의 경우는, 구치소에서 걸어 다닐 때조차, 꼿꼿한 자세 그대로 유지한다.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먼저 교도관이나 동료 수용자에게 말을 걸며 맏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한여름에 수분 부족으로 급성 통풍성(痛風性) 발목 통증이 와, 3일 정도 휠체어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젊은 친구가 입소(入所)하자마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자 이병기 전 실장이 10m 밖에서 달려와 필자의 손을 쥐고 상태를 살펴봐주었다. 그 다음 날은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눈에 띄었다. 이 전 원장도 놀라서 달려와 필자를 살펴봐주었다. 칠십이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젊은 필자에게 그러시니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도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늘 격려해주었다.
 
  반면 남재준 전 원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은 먼저 인사하거나 말을 거는 편은 아니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되기 전, 필자의 재판과 관련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필자가 설명을 했지만, 그는 구치소에 들어온 뒤로 귀가 잘 안 들린다며 알아듣는 것을 힘들어했다.
 
 
  서울구치소의 명물 드루킹
 
드루킹 김동원.
  서울구치소에서 가장 큰 명물은 역시 드루킹이었다. 드루킹은 자신의 방에서만 벗어나면, 그 누구를 상대로 해서라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11상 1번 방으로 옮긴 첫날, 운동을 나가는데 드루킹이 이렇게 말했다.
 
  “변 사장 같은 사람까지 여기 들어오니, 독방이 모자라지. 탄핵 다 끝난 마당에 태블릿이 최순실 건지, 아닌지 뭐가 중요해? 그냥 대충 반성문 쓰고 나가.”
 
  이렇게 첫인사를 했다. 드루킹은 필자보다 두 살 정도 위였지만, 서로 편하게 말을 놓고 지냈다.
 
  필자가 명예훼손으로서는 건국 이래 최고 중형(重刑)인 5년 구형(求刑)을 받았을 때, 드루킹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다가 드루킹이 업무방해죄로 역시 건국 이래 최고형인 7년 구형을 받자 이번엔 필자가 놀랐다. 그때부터 필자는 드루킹을 보면 “어이, 7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필자와 드루킹은 각각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분야에서 구형과 선고까지 한국 신기록 2관왕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드루킹은 구속기간이 연장이 되든, 7년 구형을 받든 3년6개월 선고를 받든 늘 유쾌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드루킹은 필자는 물론 국정원 출신들에게도 수시로 “나는 노회찬에게 돈 준 적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그럼 돈도 안 받은 인물이, 돈 받았다고 유서 쓰고 왜 죽어?”라고 물어보곤 했다. 드루킹은 재판에서도 노회찬의 자살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필자는 드루킹에게 “나한테만 솔직히 이야기해 봐. 돈 준 거 맞으니까, 유서 쓰고 자살했겠지?”라고 여러 차례 물어봤다. 그때마다 드루킹은 “어차피 그건 집행유예 나왔는데, 까짓 줬으면 줬다고 법정에서도 이야기한다”며 끝까지 부정했다.
 
  지난해 8월경 드루킹은 “변 사장,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될 책이 나왔다”며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을 소개해주었다. 미국이 절대적 패권국(覇權國)이 되면서, 중국 등이 흔들리며 세계 질서가 급변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필자의 생각과도 비슷했다. 이 책을 열독(熱讀)한 후 필자는 이 책을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수시로 추천해주었다. 나중에 이 책을 번역한 홍지수 선생이 직접 그 후속편인 《세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까지 넣어주었다. 이번에는 필자가 드루킹에게 속편을 추천해주었다. 드루킹은 바로 이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이 책은 서울구치소의 정치범들에게 최고의 화제가 되었다.
 
 
  고영태
 
고영태.
  최순실 사건을 폭로한 고영태 역시 한때는 필자와 같은 조(組)로 운동을 나갔다. 고영태는 태극기 세력 입장에서는 반역자지만 태블릿PC의 조작론을 최초로 제기한 인물이다. 필자와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2016년 12월 7일 국회 청문회에서 고영태는 “나는 최순실이 태블릿 쓰는 것 본 적이 없다” “내 책상에 태블릿 놔둔 적 없다. JTBC 기자가 밝혀라”고 증언했다. 필자 역시 그 이후부터 태블릿 조작론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JTBC 심수미 기자는 고영태와 만나 “‘최순실이 태블릿 들고 다니며 연설문을 수정했다’고 고영태로부터 들었다”고 보도했다. 고영태가 이를 반박하자 JTBC는 고영태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JTBC 심수미・손용석 기자 등은 “고영태가 각 언론사에 먼저 ‘JTBC 기자와는 만난 적 없다’는 보도자료를 돌렸다”고 재판에서 증언했다.
 
  그 이후 필자는 서울구치소에서 고영태와 마주쳤을 때, 보도자료 배포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고영태는 기본적으로 보도자료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보도자료가 뭔지도 모르고 있으니, 그걸 기자들에게 돌렸을 리도 없는 것이다. 고영태는 서울구치소에서도 태블릿PC에 관한 자신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고영태는 필자의 재판에 주요 증인으로 신청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 뒤로 고영태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옆방에 있던 국정원의 이헌수 전 기조실장은, 필자는 물론 교도관, 기결수(旣決囚)로서 교도소 잡무를 돕는 ‘사소’를 친절하게 챙겼다. 이헌수 전 실장은 옥중에서 관상을 공부하면서, 교도관은 물론 사소들의 관상까지 봐주었다. 때로는 법률 상담도 해주었다. 각종 간식거리도 넉넉히 주문하여 필자와 사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교도관, 사소 모두 이헌수 전 실장을 좋아했다. 이 좋은 관계가 필자의 구치소 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이 전 실장 덕에 교도관과 사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서 만난 《월간조선》
 
  특히 독방을 쓰는 사람은 식사를 넣어주고, 각종 서류를 전해주고, 소식을 넣어주는 사소와의 관계가 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매달 신문을 신청하는 날에 재판이 잡히면, 사소가 미리 챙겨 따로 신문 신청을 받아야 한다. 사소와 관계가 좋으면 이런 걸 챙겨주는 것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신문 없이 보름에서 한 달을 그냥 지내야 한다. 정치범들이 신문 없이 생활하는 건 의외로 큰 곤욕이다.
 
  물론 하루하루 쏟아지는 뉴스만 정리해주는 신문만으로는 국내외의 변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실제로 필자가 출소한 후, 유튜브 시장에선 ‘우파(右派)혁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우파의 세(勢)가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신문을 통해서도 가끔 이 소식을 들었으나, 그 근본 원인까지 파고드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디어워치의 한 독자가 《월간조선》과 《신동아》를 매달 넣어주었다. 필자는 신문보다도 심층보도가 실린 월간지가 들어오는 날만 기다렸다. 필자는 투옥되자마자 ‘구한말(舊韓末) 왜 조선은 망하고 일본은 번성했는지’ 그걸 제대로 탐구하고 싶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를 비롯해 일본 메이지(明治)유신 관련 책들을 주문해 읽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월간조선》에 배진영 차장의 메이지유신 본고장 여행기가 몇 차례 실렸기에 관심 있게 읽었다. 필자와 똑같은 고민을 담은 기사였다.
 
  접견 오는 사람들이 “구치소 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으면 필자는 늘 “KBS에서 문재인과 김정은 얼굴 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평일에는 KBS뉴스, 주말에는 MBC뉴스가 나온다. 친(親)문재인 어용(御用) 뉴스들을 볼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스트레스는 신문으로는 해결이 안 됐다. 《월간조선》 정도가 들어와야 간신히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현기환과 허현준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과는 1년 내내 이웃 방에 있었지만, 대화 시간은 운동하러 나가는 2~3분에 불과했다. 나중에 연배가 있는 교도관이 들어오자, 이헌수 실장에게서 관상을 배우겠다며 필자까지 함께 나오도록 했다. 덕분에 10~20분 정도 대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헌수 전 실장은 필자에게 “골프장 하나 부킹해서 변 대표와 하루 종일 다양한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필자는 보석(保釋)이 아니었다면 6월 14일이 구속만기일이었다. 이 전 실장은 6월 12일이었다. 어차피 거의 동시에 석방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보석 석방 직후에 이 전 실장과의 약속대로 골프장을 함께 가기 위해 연습장에서 골프 스윙을 하다 허리 통증이 도져 병원에 가야 했다. 운동량 부족으로 몸이 전반적으로 굳어 있었던 것이다.
 
  운동 나갈 때의 같은 조는 아니지만 주말 접견 때 서너 차례 함께 나간 현기환 전 정무수석도 기억에 남는다. 항상 여유 있고 늠름한 모습으로 교도관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했다. 현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디어워치와 변 대표 글과 방송을 좋아했는데, 제대로 못 챙겨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필자는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에 올라가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답했다.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은 바로 그 ‘화이트 리스트’로 서울구치소를 들락날락했다. 그는 사전구속된 뒤 6개월 만기(滿期)로 석방되었다. 석방되자마자 필자와 전화 통화를 하고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직후 이번에는 필자가 구속되었다. 그러자 허현준 전 행정관은 몸소 서울구치소까지 와서 서신과 간식거리를 전해주었다. 그러더니 허 전 행정관이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또 들어왔다. 우리는 변호인 접견실에서 반갑게 해후(邂逅)했다. 필자는 “태블릿 조작 다 잡았으니까 염려하지 마!”라고 말했고, 허현준 전 행정관은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필자는 석방된 뒤 곧바로 허현준 전 행정관 면회를 갔다.
 
 
  구치소, 양승태·임종헌 구속 시 긴장
 

  서울구치소에서 교도관들이 가장 긴장했을 때는 역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그리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될 때였다. 법원 최고위층이 구속된 전례(前例)가 없으니, 혹시 사고라도 터질까 교도관들은 전전긍긍했다.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된 다음 날, 필자는 일반 접견 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6개월 이상 구치소 생활을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를 관리하던 교도관은 “임종헌씨는 사전에 수감 훈련을 받고 들어온 분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필자가 석방되기 직전에야 운동장 입구에서 마주쳤다. 필자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종북(從北)’ 관련 소송 1심・2심 모두를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패소(敗訴)했다. 그러다 옥중(獄中)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상고심(上告審)을 승소(勝訴)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종북’으로 보수 인사들이 무더기 패소하면서 보수운동이 큰 타격을 받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운동장으로 안내하는 교도관들에게 “양 대법원장 들어오면 신고식 좀 할 테니 10분만 내달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마주쳐 보니, 워낙 예의 바른 태도여서 “대법원장님, 건강히 운동하십시오”라고 깍듯이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구속될 때도 논란이 많았는지, 구치소에서 마주칠 때마다 재판 상황을 설명해주며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일관되게 “경찰이 댓글로 정치에 개입한 게 아니라, 경찰의 불법시위 진압을 허위로 공격하는 댓글에 반박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증인 심문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했다고 평가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곧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조폭 출신 70대 ‘애국우파’
 
  이렇게 독방을 쓰는 사람들끼리 운동장에 나가다 2~3분 정도 이야기하며 인사를 나누게 된다. 수감 전에 안면이 없더라도 신문 등을 통해 아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잘 모르는 인물이지만 시국(時局) 관련 대화에 익숙하게 동참하면 대개 국정원 출신이었다. 반면 잘 모르는 인물인데 국정원 출신도 아닌 경우는 대부분 조직폭력배・살인 등 흉악범들이다.
 
  필자, 드루킹, 이헌수 실장과 함께 자주 만나던 70대 노인 한 분이 있었다. 이분은 나름 시사에 밝았고, 자신이 ‘애국우파’라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온화했다. 체격도 크지 않았다. 그는 우리와 달리 노란색 수감번호를 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하얀색을 달고 있었다. 필자는 노란색 수인번호가 모범수(模範囚)를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친한 교도관에게 물어보니, “노란색은 흉악범, 아주 질 안 좋은 걸로 유명한 사람들에게 붙이는 색깔”이라고 답했다. 나중에 온몸에 문신을 한 덩치 큰 청년들이 독방으로 대거 수감되었다. 이들은 그 노인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필자는 교도관에게 “저분, 조직폭력배인데, 어떻게 저렇게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고 온화할 수 있지?”라고 물었다. 교도관은 “조직폭력배의 장(長)은 쉽게 말하면 조직의 장이다. 나름 좋은 형, 착한 동생 했던 사람들이 하는 거다. 당연히 태도가 좋지”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노인은 수시로 “보수 인사들은 여기 들어와서도 너무 조용해. 예전에 내가 임종석이 대학생 때 함께 수감 생활했는데, 밥그릇 던져대고 난리였어”라고 말했다. 실제 국정농단 사건으로 투옥된 인사들이 기가 죽어 있거나 이런 건 아니지만, 드루킹과 비교해도 조용한 것은 사실이었다.
 
 
  김경수 수갑 면제 논란
 
김경수 경남지사는 법원 출정 시 수갑을 채우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때 마침 김경수 경남지사의 수갑 면제 논란이 터졌다. 바깥에서가 아니다. 구치소 안에서 터졌다. 함께 운동을 나가는 정치범・흉악범 그 누구도 법원 출정을 갈 때 수갑을 면제받지 않았다. 필자는 수갑을 채우는 사무실에서 ‘70대 이상 노인 혹은 여성의 경우 수갑을 면제할 수 있다’는 문구를 분명히 기억했다. 국정원 출신들은 “이병기・이병호・남재준 원장 등 70대 이상 노인들도 포승줄만 면제받았지, 수갑은 그대로 찼다”고 알려주었다.
 
  필자는 드루킹에게 “나도 김경수와 똑같이 수갑 면제를 요구했고, 서울구치소에서 적당한 해명이 없다면 재판 출정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알렸다. 드루킹은 “그러다 구치소에서 밥도 안 주겠다”며 웃었다. 조폭 노인은 “보수도 그렇게 좀 질러봐라”며 격려했다.
 
  그렇게 재판 출정을 거부하자, 서울구치소 출정 담당 교도관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쟁점 사안은 출정사무실의 안내문에 ‘70대 이상 노인 혹은 여성의 경우 수갑을 면제할 수 있다’ 이외에 ‘도주의 우려가 현저히 낮은 자’라는 문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교도관은 “그런 문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바로 확인하자”고 했다. 그는 문이 잠겨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나중에 필자가 다른 재판 출정을 갈 때 확인해보니, 김경수 수갑 면제 조항이라며 법무부와 서울구치소가 주장한 ‘도주의 우려가 현저히 낮은 자’라는 문구가 스티커 형태로 급조되어 안내판에 붙어 있었다. 법무부와 서울구치소에서 문재인의 최측근 김경수에게 수갑을 면제해주기 위해, 원래 없던 조항을 언론에 공개하고, 수용자들을 속이기 위해 스티커를 시급히 붙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평등권 위반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서울구치소를 상대로 1억원대 민사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경수에 대해서는 이것 말고도, “김경수가 불을 끄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해 특별히 불을 꺼주었다” “김경수가 좁은 독방이 답답하다 해서, 일과시간에 독방에서 나와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등의 말들이 돌았다. 그러나 수감자 신분으로 이를 취재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混居房 자처한 강용석
 
강용석 변호사.
  이렇게 필자가 서울구치소에서 보수 인사도 한 칼 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면, 강용석 변호사는 드루킹을 능가하는 유쾌함으로 주목을 끌었다. 강용석 변호사는 구속영장심사, 1심 준비까지 필자의 변호인이었다. 어느 날 강용석 변호사의 팬이었던 교도관이 “오늘 강용석 변호사 들어왔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필자는 “오늘 변호인 접견 들어올 일이 없을 텐데…”라고 말하는 찰나, 복도 끝에서 강용석 변호사가 수용자복을 입고 걸어오는 것이었다. 어제만 해도 정장 차림의 변호사가 갑자기 필자와 똑같은 수용자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강용석 변호사가 크게 걱정이 되었다. 변호사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수용자 신분으로 전락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교도관들 사이에서 강용석 변호사는 투옥 첫날부터 드루킹과 똑같이 늘 웃고, 교도관 수용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루 만에 적응력을 보여준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독방을 거부하고 혼거방을 택해, 어찌 보면 잡범(雜犯)들과 워낙 잘 놀아서, 교도관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한다.
 
  실제 강용석 변호사와 필자는 서너 번 정도 마주쳤다. 특히 변호인 접견실에서는 저 멀리서 뛰어와서는 “손석희 사장, 뺑소니, 여자 문제 크게 걸렸으니 기다려 봐”라고 신이 나서 알려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1심 선고 이후, 지난 2월 1일 차기환 변호사 등이 항소(抗訴)이유서를 제출했다. 3월 초부터 재판이 시작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3월 내내 재판이 없었다. 필자보다 한 달 이상 늦게 1심 선고를 받은 드루킹과 김경수 지사의 재판은 3월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다 4월 8일에야 첫 심리가 잡혔다. 2심 6개월 구속기간 중 무려 4개월을 허비한 뒤 시작되는 재판이었다. 그날 필자는 수갑 문제로 불출석해 재판은 4월 30일로 또 밀렸다. 이때 처음으로 보석 심리를 열었다. 보석은 곧바로 석방되어야 의미가 있는데, 4개월 반을 허비한 뒤 심리에 들어간 것이다. 변호인단은 항소이유서에 JTBC는 물론 검찰의 태블릿 조작 기록까지 다 짚어 제출하니 재판부가 고심에 빠진 듯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4월 30일 보석심리 당시 재판부는 “석방되었을 시, 예전처럼 또 JTBC 앞에서 집회를 한다거나 위해(危害) 가능성 문제와 관련해 변호인들은 대책을 마련하여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주문했다. 필자나 변호인단 모두 이 주문으로 보석 석방은 결정되었다고 확신했다. 설사 보석이 기각된다 해도 이미 구속만기일이 6월 14일이니 한 달 보름이면, 어차피 석방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승만과 김구》 읽어
 
  구치소의 시간은 의외로 빨리 간다. 필자는 약 1년간 485권의 책을 반입했다. 개중 80%는 필자가 주문한 것이고 20%는 독자들이 넣어준 것이다. 필자가 주문한 책은 모두 읽었고, 독자들이 넣어준 책 절반을 읽었으니, 열 권 중 아홉 권은 읽은 셈이다. 특히 마지막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 손세일 선생의 《이승만과 김구》 7권을 번갈아가며 읽고 있었다. 이런 정도의 책을 잡으면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또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TV 방영 시간이 늘어나, 드라마・예능・영화 등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과거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했던 필자는 이번 기회에 각종 드라마와 예능을 보며, 대중문화 감각도 키우려고 노력했다. 이 지면에서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의 드라마 수준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는 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계 전체의 친문(親文) 좌익 독점현상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죄다 죽여버린 것이다. 하여튼 토요일과 일요일은 TV 시청으로 시간을 나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그렇게 1년여간 시간은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4월 30일 보석심리로 석방이 사실상 결정 난 이후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석방에 대한 설렘 때문이라기보다는 석방 이후 곧바로 태블릿 진실투쟁 구상을 하느라, 책 읽기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구속만기라면 날짜가 지정되어 있어 스케줄을 짤 수가 있다. 그러나 보석은 언제 몇 시에 석방될지 모르니, 난감한 부분이 있었다. 필자는 보석 석방 시, 곧바로 “가짜 태블릿PC는 가짜 대통령 문재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기자회견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시로 기자회견문을 고치면서,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석방 거부’
 
  결국 5월 17일 오후 3시경, 교도관이 보석 석방 결정문을 들고 필자의 방문을 열었다. 수감 첫날 필자에게 미디어워치 애독자라며 “기죽지 않고 당당히 수감생활 해달라”고 주문한 바로 그 교도관이었다. 필자는 “교도관님이 주문한 것, 그 약속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보석결정문에는 주거지 제한, 인물 접촉 금지 등 여러 가지 제한 조건이 써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보석문에는 의례적으로 써 있는 것도 많았는데, 보석문을 처음 받아본 필자는 꼼짝달싹 못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된 것이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일체의 연락 금지’ 조항이었다. 이 문구에 대해 상의를 하기 위해 이동환 변호사와 접견을 하러 나섰다.
 
  이미 서울구치소에서는 필자의 보석문이 도착했다는 소문이 다 퍼졌다. 특히 수갑 문제로 곤혹을 치른 교도관들은 필자를 얼싸안고 “축하한다”며 진정으로 기뻐했다. 그 교도관들에게 “보석문이 이상해서 안 나가야 될 것 같다”고 말하자, 그들은 문학적 표현 그대로 사색(死色)이 되었다. 실제 “안 나가는 게 어디 있냐” “일단 보석문 받았으면 나가는 것이지, 나가고 안 나가고 수용자가 결정할 수 없다. 빨리 좀 나가라”며 강하게 항의를 했다.
 
  접견을 온 이동환 변호사는 사전에 차기환 변호사와 상의했다며,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 단순히 최순실・손석희와 같은 핵심 증인이 아니라 컴퓨터 포렌식 전문가, 전문 기자 등 재판에 필요한 자문(諮問)을 해야 하는 전문가 일체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차라리 감옥에 있으면 컴퓨터 전문가들과 서신은 교환할 수 있는데, 보석으로 나가면 서신도 금지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안 나가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동환 변호사는 서울구치소 밖에서 대기 중이던 미디어워치 독자들, 취재 기자들에게 이 입장을 전했다.
 
  어차피 구속만기는 약 한 달 뒤인 6월 14일, 그까짓 한 달 동안 책이나 50권 더 독파하고 나가겠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그러나 방으로 돌아온 뒤, 문득 차기환 변호사 측이 미디어워치와 상의해서 이미 보석금을 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차기환 변호사는 보석문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지만 설마 필자가 안 나가겠다는 결정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보석금을 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출소하지 않겠다는 필자의 의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서울구치소에 전할 수 있을지 난감했다. 담당 교도관과 상의를 했다. 교도관은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미 보석금을 냈으면, 검찰은 석방 지휘 명령서를 보내올 것이고, 그럼 우리는 석방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필자는 “그럼 다음 주 월요일 변호사가 들어오면 다시 상의해보겠다”고 하자, “안 된다. 우리는 오늘 당장 검찰의 석방 지휘서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그럼 일단 나가서 변호사와 상의한 뒤, 월요일에 다시 들어오는 것도 고려해보겠다”고 하자, “여기는 모텔이 아니다. 일단 나가면, 법원의 판단에 의해 들어와야지, 그냥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쓸쓸하고 씁쓸한 석방
 
  그러다 결국 다른 교도관이 검찰의 석방지휘 명령서를 들고 내 방으로 찾아왔다. 이미 퇴근시간인 오후 6시를 훌쩍 넘겼다. 보석의 경우 대개 오전에 결정문이 도착하면 오후에 나간다. 구속만기인 경우는 자정(子正)에 나간다. 이렇게 애매한 퇴근시간에 석방되는 경우가 없다 보니, 교도관들은 짜증을 냈다. 꼭 필요한 것만 들고 나가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다 버리겠다며 독촉했다. 필자는 마지막 남은 책 스무 권만 박스에 챙겨 들고나왔다. 그러다 보니 보관 중이던 나름 고급 안경도 챙기지 못한 채 떠밀려 나왔다. 그 시간은 오후 7시쯤이었다.
 
  서울구치소 밖 허허벌판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보석 석방 시, 수백명의 지지자들과 수십명의 유튜버, 기자들 앞에서 “가짜 태블릿PC는 가짜 대통령 문재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성명서를 낭독하는 장면을 매일 떠올렸는데…. 그 장면 하나를 그리며 수감생활을 견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더플백 하나 메고 터덜터덜 걸어 나온 군대 제대할 때와 똑같았다.
 
  운동 부족으로 몸이 허약해져, 책 20권이 담긴 박스를 제대로 들지 못해서 길거리에 쏟아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명(救命)운동을 하는 부부가 달려왔다. 자신들의 차로 영등포 미디어워치 사무실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미디어워치 사무실에 도착하면서 1년여간의 서울구치소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교도관들의 푸념
 
  벌써 석방된 지 20여 일이 지나고 있다. 꿈에도 그리던 석방 때의 성명서 낭독은 할 수 없었지만, 대신 6월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태블릿 특검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필자의 ‘구속부터 중형선고까지, 모두 문재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법원이 진실을 짓밟은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의 특성상 더 많은 진실을 알려놓아야 다시 재수감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만간 미국과 일본의 지식인들도 태블릿 재판감시단을 구성 파견할 예정이다.
 
  필자를 포함한 60여 명의 정치범에게는 서울구치소가 ‘문재인의 요덕수용소’나 다름없었다. ‘명예훼손’인 필자를 제외한 정치범들은 모두 개인 비리가 아닌 ‘직권남용’ ‘직무유기’라는 정치적 죄목으로 중형을 선고받고 있다. 이러니 교도관들 역시 “정권 바뀌면 또 문재인・김명수・윤석렬 등의 방 준비해야겠네”라고 푸념할 정도이다.
 
  이 지면을 빌려 문재인에게 꼭 한마디 하고 싶다. 문재인이 그렇게 억지로 잡아넣은 사람 중 단 한 명도 겁을 먹거나 기가 죽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문재인이 레임덕에 빠질수록, 그에게 부역(附逆)한 자들이 ‘서울구치소행 티켓을 받아들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 떨 것이다.⊙
조회 : 21212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2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성은    (2019-07-11) 찬성 : 2   반대 : 1
긴 글인데도 너무 재미있어 술술 읽히네요.. 한국당이 변희재 대표한테 비례대표 줘야한다고 봅니다. 요즘 문다혜 관련 의혹 잘 캐내는 곽상도 의원인가? 그분 아주 마음에 드는데 변대표도 구케으원 날개 달으면 엄청난 파이터일것 같아요. 대머리에 기름 좔좔 흐르는 웰빙 의원들만 많아서는 이길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강용석의원은 좀 진중치 못해서 마음에 안드는 면들이 있지만 강용석도 복귀 했음 싶고..
  김동현    (2019-06-25) 찬성 : 24   반대 : 3
수고 하셨습니다. 건강이 회복 되는대로 채널 A 외부자들에 나와 진중권을 박살 내 주시기 바랍니다.

2019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