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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와 문화예술계의 민낯

“문화 권력, 교수 권력에 안주하며 ‘배부른 돼지’로 변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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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단은 ‘힘의 숭배’가 작동하는 공간
⊙ 이윤택은 수직적 위계 조직인 연희단거리패의 제왕(帝王)
⊙ 영화감독은 배우의 신(神)… 오디션 보기 위해 수백 명의 배우가 감독 앞에 줄 서
⊙ 연예계 ‘미투’ 진원지는 대학… 중견 배우와 문인, 너나없이 교수 자리 넘봐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윤택이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회견이 ‘리허설까지 한 연극’이라는 폭로가 나왔다.
  ‘미투(Me Too·나도당했다)’로 불거진 문화예술계의 성추문 사건은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갑과 을의 문제, 권력을 지닌 주류 문인과 연극연출자, 영화감독, 방송PD, 기획사 대표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다. 몇몇 개인의 여성관이 잘못된 게 아니라 조직문화의 문제이다.
 
  한국의 예술계는 전반적으로 마초(macho) 문화의 속성이 강하다. 문화 권력을 주로 남성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신인 작가나 여배우에게 속물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작품 내용도 대개 남성중심적이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가부장적 남근주의’ 속성이 짙다. 그들의 왜곡된 시각이 여지없이 작품 속에 투영된다.
 
  KBS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2016)에는 여주인공(수지 분)을 남성이 발로 걷어차고 번쩍 들어 멘다. 심지어 여성을 번쩍 안아 올려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호러나 액션물이 아니다. 여성에게 가하는 언어적, 물리적, 정서적 폭력이 ‘막장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대개 드라마 속 여성은 ‘아무렇게나 막 대해도 괜찮은’ 존재로 묘사된다.
 
  KBS 예능 〈개그콘서트〉의 ‘명훈아’ 코너는 남성(이명훈)이 못생겼거나 뚱뚱한 여성 3명(김민경·오나미·이현정)의 외모를 끊임없이 비하하며 웃음을 준다.
 
  김민경 “아, 마음이 무겁다.”
 
  이명훈 “몸도 무겁잖아.”
 
  “봄도 오는데 어떤 남자가 내 마음을 사로잡을까. 섹시남? 매력남? 짐승남?”
 
  “(여성을 밀치며) 성질남! … 야~.”
 
  약간 건강하거나 덜 예쁜 여성은 남성의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심어 준다.
 
  여배우들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2013)는 노골적으로 남근(의 권력)을 내세운 영화다. 남편의 외도를 증오하는 아내는 남편을 거세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대신 아들을 거세한다. 남근 거세는 가정내 권력 전복을 상징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성기를 이식받고, 어머니는 아들의 욕구를 해소시킨다. 그걸 본 아버지는 아들을 거세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충격을 받은 아들은 스스로 거세한다. 지저분한 이 영화의 바닥에는 김기덕의 왜곡된 남근의식이 깔려 있다. 외도한 남편의 남근을 거세하려는 아내, 남근을 잃어버린 아들, 자신의 남근을 아들에게 이식하는 아버지, 아들에게 이식한 남편의 남근으로 욕망을 채우는 아내….
 
  막장 스토리에는 마초 문화의 속성이 배어 있다. 예술계의 권력을 쥔 이들(주류 문인·연극연출자·영화감독)이 대개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 폭력을 정당화한다.
 
  최근 시인 박진성이 2008년 4월에 일어난 고은의 성추행을 ‘미투’했다. 고은의 만행은 C 대학교가 주최한 고은 시인 강연회의 뒤풀이에서 일어났다. 박 시인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여성의 손과 팔, 허벅지를 만졌다”며 “여성이 저항하자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3분 넘게 흔든 뒤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고은은 자신의 성기를 문단 권력과 동일시한 것이다.
 
 
  문인들에게 치외법권을 주자고 주장한다면…
 
성추문 논란의 당사자들. 위부터 시인 고은, 연출가 오태석 이윤택.
  한국 문단은 ‘힘에 의한 숭배’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또 학문적 봉건주의와 분할주의가 팽배한 곳이다. 한때 백낙청·김병익·김윤식·유종호 선생은 문단(평단)의 ‘빅4’로 불렸다. 이들의 영향력은 문단에서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권력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대신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문학적 세례를 받은 자들이 대학과 문예지 등에서 문단 권력을 ‘대리’하고 있다. 문지(문학과지상사)의 창립 ‘4K’(김병익·김현·김치수·김주현)의 좌장격인 김병익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은 사태’를 이렇게 말했다.
 
  “과거 프랑스의 극작가 장 주네(1910~86)는 남색질, 도둑질, 강간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사르트르는 장 주네를 세인트 주네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700쪽 분량의 연구서를 썼다. 고은 시인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예술과 도덕은 같이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김병익의 생각은 ‘문인 신비주의’와 관련이 있다. 그가 지닌 한국 문단의 권력 내지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을 흘려버릴 수 없다.
 
  ‘문인 신비주의’는 문인을 일상적인 삶의 공간을 넘어선 신비로운 존재로 규정한다. 문인이 삶의 공간에서 보여주는 행태 모두를 초월적이며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권력(영향력)을 지닌 작가는(예컨대 고은은), 어느 정도의 반(反)지성적 일탈 내지 기행을 ‘작가적 호방함’ 관점에서 눈감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고은의 성추행은 그가 정치인도 관료도 아닌 시인이기에 달리 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윤리적 일탈의 범주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누구도 규정하기 어렵다. 문단의 큰 어른인 김병익이 고은을 두둔하는 시각은 사회적 통념으로 이해되지 않는 매우 우려스런 발언이다. 기자와 만난 문지 출신 한 시인의 말이다.
 
  “고은이 문단의 권력을 지녔기에 이해해 주자는 말로 읽힙니다. ‘문인 신비주의’의 시각에서 고은을 보자는 얘기죠. 비슷한 논쟁이 2000년도 초에 일어난 적이 있어요.”
 
  — 문인의 기행을 어느 선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문학적 허용과 문인의 기행은 차원이 다르죠. 상상력에 의한 예술적 실천은 포괄적으로 볼 수 있지만 작품 외적인 문인의 습속까지 이해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예술인을 상식 수준의 윤리에서 예외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만큼 위험한 주장도 없다”고 했다.
 
  “문인들이 ‘위대한’ 창작자이기에 어느 정도 치외법권을 주자고 주장한다면 그건 일반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체제에 저항하는 문제라면 달리 볼 수도 있지만 성윤리의 문제라면 논의할 가치가 없는 사안입니다.
 
  문단 내 어른들의 기행을 ‘장유유서의 관행’으로 용인해 온 문단의 문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학적인 것, 문학 행위자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결과입니다. 문단의 참사인 것이죠.”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인 노혜경이 2001년 쓴 《페니스 파시즘》(개마고원 刊)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 잔디가 탐스럽게 깔린 교정의 어느 잔디밭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유명 시인을 둘러싸고 우리가 앉아 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내가 생각하는 시와 문학이란 것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그 시인에게 말하고 있다. 인정받고 싶은 나의 욕망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윽고 그 시인이 말한다. “자네 오늘 밤 나한테 수청 들지 않겠나?” 나는 유명시인과 더불어 ‘시를 말하기 위해서라면’ 밤을 새울 용의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내 말은 말이 아니라 다만 재잘거림이 되고 만다. 남성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 줄, 다만 소리로서의 내 말. 옆에서 선배라는 남자가 말한다. “너 좋겠다. 낙점을 받았네.” …〉(p.14)
 
  “수청 들지 않겠나?”라는 말이 그저 농담이었다고 해도 성희롱의 범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폭력이다. 노혜경 시인은 서울에서 온 ‘유명시인’이 누군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문단 내 크고 작은 미시 권력들이 촘촘히 존재해”
 
서울 광화문 서울시청 내 서울도서관에 자리한 고은 시인 기념관인 ‘만인의 방’의 철거 전 모습이다.
  문단의 ‘빅4’에게 문학적 세례를 받은 주류 문예지의 ‘에디터’, ‘기획위원’, ‘편집위원’들은 살아 있는 문단의 권력이다. 이들의 권력은 과도하다. 문인에게 원고청탁을 하거나 문학상(신인상) 심사, 각종 문예지원금을 받을 때의 심의권, 출간 검토까지 모두 이들의 손에 좌우된다.
 
  그런 주류 문단의 권력은 누가 줄까. 바로 작가들이 준다. 문인들은 그들의 권력에 기대어, 혹은 유착해 ‘권력의 온실’ 속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길 원한다.
 
  사실,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소수의 작가들에게 돌아간다. 누구나 그 ‘소수’가 되길 원한다. 기자와 통화한 중견 소설가의 말이다.
 
  “해외 작가들이 그 나라 문예지의 에디트와 술 먹고 어울리며 유착되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들과 어울린다고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다 보니, 문단은 크고 작은 패거리로 나눠져서 그들 내부에 대한 비판이나 견제 장치는 존재하지 않죠. 자기들끼리 밀어 주고 평론가를 끌어들여 자기편의 문인을 띄워 줍니다. 함께 망하자는 것이죠.”
 
  작가는 집필 주제와 기간, 분량까지를 맞춤형으로 편집위원들에게 지시를 받으며 문예지 발표 시스템에 자동적으로 길들여진다. 그러나 그런 문단 권력이 거대해 보이지만 출판시장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몇 해 전 보도에 따르면 창비(창작과 비평)와 문학동네의 매출이 200억여 원 대로 중소기업 수준이다. 독자들이 문학 서적을 외면하는데도 문단 권력 논란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인 이성미는 지난 2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문단 내 성폭행’ 토론회에서 “문예지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계속 발행되는 이유는 문예지가 권력 집중 구조의 중심적 역할을 하며 문예지를 통해 문화 권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학 독자에게 외면 받는 문예지가 천편일률적 모양새로 지금까지 존속하게 된 데는 10여 년간 문예진흥기금이 투입된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 혹은 소멸 과정을 밟지 못한 채 문예지는 작품 청탁권이라는 권력을 놓지 않았고 문예지 수는 더 많아졌어요.”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이자 시인·문학평론가인 김명인은 “한국 문단이 정체를 넘어 어떤 위기 상태에 도달해 있다”고 규정했다.
 
  “하나의 기득권 제도이자 비즈니스 세계가 되어 각종 미시 권력 관계가 가로세로 얽혀 있는 한국 문단의 기본 구조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문단 내 성폭력)은 언제든지 재발하게 되어 있어요. 각종 인맥과 서열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미시 권력들이 다른 사회집단과 다를 바 없이 촘촘히 존재하면서 ‘자율성’의 이름으로 은폐되거나 보호받은 문단은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위계도 차별도 발 들여 놓을 수 없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문인 작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가 됐어요. 그것이 문제 해결의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독재자(연출가)가 어느 순간 딴마음을 먹으면…
 
연극 연습 중인 밀양연극촌 단원들. 앞줄 왼쪽부터 하용부 이윤택씨.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의 성폭행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 피해자가 16명이나 되고 이들의 형사고소를 지원하기 위해 변호사가 101명이나 뛰어들었다. 이윤택은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며 밀양연극촌으로 이주한 지난 2000년부터 성폭행을 벌여 왔다고 한다.
 
  경남 밀양에 자리 잡은 연희단거리패는 이상적인 연극 공동체를 표방해 왔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철저한 기수제다. 기수가 높으면 나이가 어려도 깍듯하게 선배라 불러야 한다. 수직적·집단주의 경향이 매우 강하다. 연희단에서는 선배가 후배를 집합시키고 훈계하거나 혼을 내는 경우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로 육체적인 노동은 막내 단원에게 돌아가고, 선배 단원은 단원들을 관리하고 단체의 유지에 책임을 진다. 연희단이 18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위계질서 때문이다. 기수에 의한 상하의 서열 의식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차지한다. (2016년 발표된 서울대 인류학과 권정은씨가 쓴 논문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 연희단거리패의 의례로서의 연극과 자아의 재구성〉 참조)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 겸 연출가는 이윤택이다. 조직 내에서 그의 지시와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윤택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조직 전체가 집단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권력은 낮뿐 아니라 밤에도 이어졌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배우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성 단원들은 돌아가며 밤마다 그를 위해 ‘봉사(안마)’했다. ‘봉사’를 위해 선임이 자는 후배를 깨워 이윤택의 방에 들여보냈다. 그의 손길을 거부하면 캐스팅에 불이익을 받았다. 연희단에서 그는 절대권력자이자 제왕(帝王)으로 군림했다.
 
  기자와 통화한 중견 배우 K씨는 “몇 해전 밀양연극촌에 한 달간 기거하며 연극을 한 적이 있다. 마치 감옥과 다름 없었다. 배우들이 하루 종일 노동을 하더라.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했다.
 
  연극배우협회 한 관계자는 “연극축제 때 밀양(연극촌)에 머무른 적이 있다. 밥을 먹는데, 단원과 이윤택의 밥상이 다르더라. 단원들의 밥상은 너무 부실했다. 공동체 밥상에서조차 위계를 느낄 수 있었다. 이윤택, 하용부는 절대권력자였다”고 회고했다.
 
  다른 극단은 어떨까. 한국 연극계는 여성 연출자 수가 적다. 대개 남성이 작가 겸 연출을 도맡는다. 연출가는 갑을 관계처럼 배우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독재자이자 권력자가 된다. 작품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여성 배우를 가학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윤택도, 오태석도 배우들의 몸에 대한 장악력이 굉장히 높은 연출가다. ‘어떻게 저 배우가 고통의 선을 넘어 저기까지 표현할까’ 싶을 정도로 가학성이 강하고, 예컨대 벗는 것(연기)도 감수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것이 비평계에서 좋은 선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배우의 육체와 영혼을 장악한 독재자(연출가)가 어느 순간 딴마음을 먹으면 배우들은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 연출가라는 권력에 육체를 굴복당한다.
 
 
  김기덕 감독, 여배우에게 “야, 다리 벌려, 다리 벌리라고”
 
여배우를 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
  지난 3월 6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 영화감독 김기덕의 민낯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한 스태프는 해안가에서 정사 장면을 촬영할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김 감독은 여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여배우에게 다가가 치마를 들추면서 “야, 다리 벌려, 다리 벌리라고”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모든 스태프가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 여배우는 이름 없는 조연배우였다.
 
  김기덕 감독과 함께 영화를 찍었던 여배우들은 김 감독과 배우 조재현에게 잇달아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성관계를 거부하자 해고당했다고 주장했다.
 
  여배우 A씨는 “김 감독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자 촬영 현장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또 “영화를 찍을 당시 김 감독이 굉장히 모욕감을 줬던, 내가 정말 싫었던 말이 ‘XX(남자 성기)는 권력’이라는 말이었다.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고 했다.
 
  여배우 B씨는 김 감독과 작업한 후 아예 영화계를 떠났다. 그녀는 “당시 김기덕 감독이 ‘네 가슴을 봐도 되겠느냐’, ‘유두 색깔이 핑크색이냐, 검은색이냐’, ‘내 성기가 어떤 모양일 것 같냐’, ‘네가 스스로 네 성기를 본 적이 있느냐’고 했고 급기야 ‘내가 너의 몸을 보기 위해 같이 가서 확인할 수 있느냐’고 말하길래 무서워서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도망쳤다”고 고백했다.
 
  여배우 C씨는 “김 감독이 ‘너를 알아 가야 한다’며 옷을 벗겼고, 온몸으로 저항했더니 따귀를 10대 때리고는 ‘너를 사랑하는데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 같다’는 식의 문자를 보냈다”고 폭로했다. 또 “여자를 겁탈하려는 하이에나처럼 조재현 배우, 조씨 매니저 등이 방문을 두드렸다. 매일 그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매일 몸싸움을 해야 해서 힘들었고 무서웠다”고 했다.
 
  여배우들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따지고 보면, 영화계 역시 위계가 엄격한 피라미드식 구조다. 영화판에서 감독은 신과 같은 절대자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감독을 정점으로 모든 스태프가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다. 캐스팅 권한을 쥔 권력자에게 신인 배우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신인 배우들을 눈여겨봐 달라고 감독에게 프로필을 보내고, 또 신인 배우들이 직접 영화사를 찾기도 한다. 오디션을 보려고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배우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감독 앞에 대기하는 게 현실이다. 어떤 배우를 선택하느냐는 감독과 제작자의 고유 권한이다.
 
  김기덕이 여배우들에게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감독과 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도, 집요하게 잠자리를 요구해도 응할 수밖에 없다. 응하지 않으면 배역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중견 배우 L씨는 이런 말을 했다.
 
  “여성이 연극계, 영화계에서 여배우로 성장한다는 것은 온갖 굴욕과 수치를 다 견뎌 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독과 연출자는 물론 스태프들에게 (배우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 일쑤죠. 만약 요구를 거절하면 무안을 주고 작은 실수에도 폭언을 듣게 됩니다. 또 부당하게 대우해 스스로 포기하게 하거나 배역을 바꿔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근 미투 폭로로 구설수에 오른 조근현 감독(최근 영화 〈흥부〉 개봉)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면접을 온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배우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 준비하는 애들 널리고 널렸고 다 거기서 거기다. 여배우는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
 
  “깨끗한 척해서 조연으로 남느냐, (감독을)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영화라는 건 평생 기록되는 거야,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
 
  조 감독의 이런 발언을 듣고 이 여성은 “발끈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센 남성인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무서워서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 감독의 이런 발언은 위계에 의한 부당한 압력 행사다. 자신의 지위(감독)를 이용한 갑질이자 폭력이다.
 
  2016년 10월 21일 박효선 영화감독의 트윗으로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열흘 동안 모인 77개의 영화계 내 성폭력 사례가 모아졌다고 한다. 77개의 사례 중 실명 거론은 두 건이었는데, 성폭력으로 영화계의 커리어를 포기한 여성이 총 12명이나 됐다. 이들은 섭외를 하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편집실에 갇혀 기나긴 작업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마다 성폭력이 존재했음을 고백했다.
 
  이 같은 사실은 작년 1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계술계 내 성폭력’ 토론회에서 신희주 감독에 의해 처음 공개됐다. 신 감독은 “가장 놀라운 사실은 촬영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 동료에게 (성폭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도제 시스템이 아직 인습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과 (영화계가) 스태프의 역할과 중요도에 따라 계급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영화계가 권력 구조라는 얘기였다.
 
 
  문화예술계는 교수가 되려는 ‘문화적 풍토병’에 사로잡혀
 
최영미 시인의 미투 고백 이후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5월 23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문학 진흥을 위한 문학 5단체장 공동 기자회견 모습이다. 왼쪽부터 한국소설가협회 김지연 이사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상문 이사장, 한국작가회의 최원식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 한국시인협회 최동호 이사장.
  흥미롭게도 연예계 ‘미투’ 운동의 진원지는 대학이다. 성추문에 휩싸인 황지우·박재동·김태웅(한예종), 윤호진(단국대), 김소희(홍익대), 오태석·한명구(서울예대), 조재현(경성대), 최용민(명지전문대), 최일화(세종대) 등이 모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학생을 은밀히 불러 밀실(密室) 성폭력을 행사한 이도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 교수(박중현)다.
 
  이들은 교수라는 ‘지식 상인’ 자리를 빙자해 학생들을 유린했다. 교수 지위나 권력을 최소한의 ‘상도덕’조차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자리로 착각한 것이다. 순진한 학생들은 절대권력자인 교수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겪을 부당함과 싸울 힘이 없었다.
 
  문단 내 성폭행도 창작 교육 과정이라는 스승과 제자의 위계에서 발생한다. 문학을 동경하는 어린 학생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 구조 때문이다. 문학 창작 환경이 사교육-예고(藝高)-대학의 문예창작과·국어국문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 교육자-저자-심사위원-문학상 수상자 등으로 촘촘히 계열화한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 위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단 내 구조가 피해자들을 폭력에 저항하거나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시인 이성미)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위력은 막강하다. 대학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교수의 위상이 올라간다. 문창과도 그렇지만 연극영화과도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합격할 수 있다. 스타가 되는, 좁디좁은 ‘바늘 길’을 뚫기 위해선 인맥 학맥이 좌우한다. 아무리 대학가에 개인주의가 판을 쳐도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밀어 주고 끌어 주는 특정 학과 출신 학생들은 교수의 부당한 지시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대학교수가 되려는 ‘문화적 풍토병’에 사로잡혔다.
 
  중견 배우들과 문인들은 너나없이 교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교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한다. 학연 패거리 안에서 교수 권력을, 문화 권력을 쥐고 싶어 안달이다. 1980~90년대 괜찮은 작품·평론을 썼던 작가, 비평가들은 대개가 ‘지식 상인’(교수)이 됐다. 연극과 영화로 유명세를 탔던 중견 배우들도 영화나 TV에서 잘 볼 수 없다 싶으면 어디선가 교수 행세를 하고 있다. 교수가 된 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전무하다. 문화 권력에 안주하며 ‘배부른 돼지’가 된 것이다.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차별과 억압을 용인하는 권력 구조로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미투’가 불러온 파장이 문화 권력 해체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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