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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

우병우 장인 이상달 전 정강중기 회장은 어떤 인물인가

전두환 형 전기환과 친분 쌓아 警友會와 기흥골프장 사업 동업… 각계 인맥 거미줄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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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흥컨트리클럽 매개로 권력층과 교류, 사위 우병우는 평검사 시절 상사들 골프 부킹 도맡아
⊙ 경찰·검찰·청와대에 폭넓은 인맥 자랑… ‘경찰 공식 스폰서’ 별명도
⊙ 경찰 인사 좌지우지했던 전기환과 同鄕으로 인연… 골프로 친분 쌓아 ‘용산마피아’와도
    깊은 친분
⊙ 기흥CC 인허가 로비 주역 “1980년대 골프장 허가받으려면 리베이트 50억”
⊙ 1993년 경우회에 뇌물제공 혐의로 구속영장 발부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불구속
  1980년대 5공 시절 권력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검사 우병우’보다 ‘기흥 이상달 사위’로 기억하곤 한다. “(20여 년 전) 검사장과 부장검사 골프 부킹 잘 해주던 젊은 검사”로 기억하는 검찰 출신 인물도 있었다. 우 수석의 장인 이상달 전 정강중기 회장이 서울 근거리의 명문 골프장인 기흥컨트리클럽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현재 기흥CC의 공시지가는 1722억원이며 2008년 작고한 이 회장의 생전 재산은 수천억 원이었다고 한다.
 
  우 수석은 2014년 청와대에 들어올 당시 신고 재산이 423억원으로 재산 공개대상 공직자 중 1위였다. 우 수석의 재산은 상당 부분이 장인에게 상속받은 부인 명의의 재산이다. 재산이 워낙 많아 보통 공직자와 달리 금전적 유혹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상속재산이 결국 공직자 우 수석의 발목을 잡았다. 우 수석 처가와 넥슨이 강남역 건물을 놓고 ‘수상한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인데다 탈세 의혹에 기존의 재산이 투명하게 형성된 것이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우병우 수석의 집안은 어떻게 축재를 한 것일까. 이상달 회장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관련 인물들을 만나 이 회장의 행적을 추적했다.
 
  1939년생인 이상달 회장은 경북 고령 출신으로 경희대 법대를 졸업, 30세에 회사(약수건설)를 설립하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6년 삼강중장비 대표이사와 1988년 삼남개발 대표이사를 거쳐 1992년 대한중기협회 회장을 지냈다. 1994년 정강중기 대표이사가 됐으며 대한건설기계 협회장을 역임했다.
 
 
  5공 정부, 재향경우회에 골프장 건립 허가
 
경기도 동탄면에 위치한 기흥컨트리클럽은 우병우 수석의 장인 이상달 전 정강중기 회장이 소유했던 골프장이다.
  이 회장의 약력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삼남개발이다. 삼남개발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의 골프장 기흥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회사로 지금은 이 회장의 부인이며 우병우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씨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상달 전 회장이 권력층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매개체가 기흥컨트리클럽이다. 이 회장은 기흥CC가 1986년 정부로부터 건립 허가를 받는 데 깊이 관여했고 1989년 기흥CC의 대표로 취임해 운영권을 갖게 된 후로는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갖는 창구로 적극 활용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던 이상달 회장은 어떻게 권력층과 교류하며 명문 골프장을 소유하게 됐을까. 기흥CC를 운영하는 회사인 삼남개발은 1988년 기흥골프장 공사 및 운영을 위해 경우회와 이상달 회장이 50대 50으로 함께 설립한 회사다.
 
  경찰 퇴직자들의 모임인 경우회는 5공 시절이던 1986년 골프장 건립 인허가를 받았다. 재향경우회는 1963년 전직 경찰관의 친목과 복리증진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정회원(퇴직경찰)과 명예회원(현직경찰)을 합친 회원 수는 150만여 명에 달한다. 경우회는 골프장 허가는 받았지만 독립 자금으로 건립 및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1988년 이상달 회장과 반반씩 지분을 갖기로 하고 삼남개발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국내에 정규 골프장은 전국적으로 30여 곳에 불과할 정도로 골프는 극소수의 권력층과 군인 등 특수계층만이 접할 수 있는 스포츠였다. 2016년 현재 국내 골프장 수는 510여 곳이다. 당시 골프장 신설 및 운영은 정부의 통제하에 이뤄졌고 민간기업이 골프장 건립 허가와 운영권을 따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골프장 허가받으려면 (청와대) 리베이트 50억”이라는 것이 당시 정·재계에서 정설이었다.
 
  기흥CC 사건을 조사했던 검찰 관계자는 “당시 공공기관과 시·도지사, 공익단체 등만 골프장 허가를 요청할 수 있었는데 기업은 이 골프장 허가권을 120억원이라는 무형재산으로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경우회는 허가 취득을 명분으로 돈 한푼 없이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고 했다. 정권이 바뀐 1989년에야 규제가 완화돼 대기업의 골프장 건립이 가능해졌다.
 
  5공 비리를 수사한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5공 시절인 1981~87년 사이 골프장 인허가는 총 29건이었는데 이들 업체가 공식적으로 정부에 낸 성금만 176억원이었다. 검찰은 5공 정부의 골프장 인가 관련 금품수수 사실을 추적했으나 밝히지 못했고 공식적으로 낸 성금만 확인했다.
 
 
  부지매입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허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 경찰 인사권자로 불렸던 대통령의 형 전기환씨.
  경우회는 1986년 7월 “경찰 가족들의 건강증진과 여가생활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골프장 건립 허가를 받았다. 정부가 경우회에 골프장 건립 허가를 내준 이유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경우회에 수십만 평 규모의 36홀 골프장을 짓고 운영할 만한 자금이 있었을지, 또 당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건립 허가 리베이트까지 해결할 자금이 있었는지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경우회는 공사비 400억원 규모의 골프장을 짓기로 결정한 1986년 1월 ㈜대우와 수의계약을 맺고 대우에서 70억원을 빌린다. 경우회는 이 자금으로 직접 40만 평, 브로커를 통해 40만 평의 땅을 구입했다.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골프장 건립 허가를 받게 된다. 지금도 골프장 건립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문체부, 국토부 등 여러 부처의 100여 개 규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허가기간이 2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흥CC는 1986년 7월 11일 내인가(內認可)를 받고 정식 허가는 1987년 11월 4일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986년 8월부터 공사에 돌입했다. 당시 공사현장에는 치안본부 소속 현직 경찰 2명이 파견근무를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과정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형인 전기환씨가 있다. 1929년생인 전기환씨는 야간중학교 졸업 후 1959년 경기도에서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 1967년 서울 용산경찰서로 올라와 1974년까지 교통계 경찰로 근무했다. 그는 퇴직 후 시골에 머물고 있었으나 동생이 대통령이 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경찰 출신이었던 점을 활용해 경찰 인사를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기환씨와 용산경찰서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경찰 요직을 꿰차면서 ‘용산마피아’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전기환씨와 용산서에서 같이 근무한 인물과 전씨 종친회 출신 인물, 전기환씨 집 관할인 강남경찰서장 출신 인물 등이 줄줄이 영전이나 승진을 했고 이들이 전기환씨 집을 자주 드나든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경찰 인사를 앞두고 전기환씨 집 문턱이 닳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는 소문, 관할 경찰서장이 매일 문안인사를 드린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전기환의 골프사랑
 
  대통령의 형으로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양녕대군’으로 불리기도 했던 전기환씨는 특권층의 스포츠였던 골프에 심취했다. 그는 동생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던 1980년 초 시골의 땅을 처분하고 강남의 대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후 대림산업 이준용 부회장에게 형의 거취를 부탁했고 전기환씨는 대림산업의 해외송출인력서비스를 담당하는 범한여행의 회장직을 맡게 됐다.
 
  이후 전기환씨는 방배동과 서초동의 고급 주택을 보유하는 한편 고급 승용차 5대와 비서, 운전사를 두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골프에 심취했다. 이때 만난 사채업자, 사업가, 재벌2세 등의 인물들은 이후 전기환씨 구속의 결정적 계기가 된 노량진수산시장 경영권 탈취 사건에 연루된다. 노량진수산시장 사건으로 1989년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전씨는 이듬해 석가탄신일에 가석방돼 현재 투병 중이다.
 
  여러 정황을 볼 때 경우회가 골프장 사업권을 따내는 데 전기환씨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천문학적 건설자금과 로비자금은 어디서 조달했을까. 이상달 회장은 기흥CC 지분 인수와 관련해 경우회 간부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993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상달 회장은 경우회 및 전기환씨와 어떤 관계일까.
 
  전기환씨는 합천 출신 경찰인 옥기진 전 치안감(1930년생·작고),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1931년생)과 깊은 친분이 있었다. 이상달 회장은 합천에서 생활한 적이 있음을 이용해 이들과 자주 어울렸다. 이 회장은 이 같은 인연을 계기로 역대 치안총수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치안감들의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주선하는 등 경우회의 스폰서로 활동했다. 이 회장은 이후 검찰 조사에서 “현직도 아닌 전직 경찰들에게 마음의 선물을 한 것이 무슨 문제냐”는 취지의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상달, 허가 3년 후 골프장 지분 절반 취득
 
우병우 수석의 처가가 운영하는 정강건설 본사.
  전기환씨와 함께 막후에서 골프장 사업을 조종하던 이상달 회장이 기흥CC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89년이다. 경우회는 애초 ㈜대우의 자금을 빌려 부지를 매입하고 골프장 건립 허가를 받았지만 초기자금을 제공했던 ㈜대우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후 미륭건설이 참여했지만 미륭 역시 경영난을 이유로 손을 뗐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이상달씨다. 건설업으로 자금력을 보유했던 그는 1989년 경우회에 60억원을 주고 경우회와 함께 삼남개발을 설립해 기흥CC의 지분 50%를 공식적으로 취득했다. 기흥CC는 1991년 개장했다.
 
  기흥CC의 지분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경우회 간부들은 이상달 회장에게 불법 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인섭 전 경찰청장과 옥기진 전 치안감 등 전직 경찰 수뇌부 5명은 1993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예강환 당시 화성군수도 이 회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이 회장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업무상 횡령)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우병우 수석의 장모가 거주하는 강남구 논현동의 고급 빌라.
  표면적으로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흥CC에 이상달 회장이 나타나 인수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상달 회장은 건립 및 허가 초기부터 골프장 건립을 주도했다. 청와대 출신 한 인사의 얘기다.
 
  “경우회가 골프장 만든다는 건 그 뒤에 전기환씨가 있다는 게 누가 봐도 명백했습니다. 서울과 가까운 기흥에 18홀도 아닌 36홀 골프장을 짓는다는 건 보통 ‘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문제는 자금줄이 누구냐는 거죠. 사실 전기환씨 주변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중 이상달 회장은 유별나게 경찰, 검찰, 청와대 등에 인맥이 많았어요. 전기환씨하고는 같은 합천 출신이라 친해서 이 회장이 경우회에도 후원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골프장 건립 허가 리베이트가 50억원이었는데 다들 당연히 이상달 회장이 제공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왜 이 회장과 경우회가 애초부터 공동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민간업자가 골프장 인허가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 회장은 뒤에서 자금을 대면서 인허가는 경우회 이름으로 받고, 그 후에 이 회장이 지분을 인수하는 걸로 경우회 수뇌부와 전기환씨, 이 회장이 미리 계획을 했던 거죠.”
 
  이 회장이 단순하게 기흥CC의 지분을 인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대 출신의 사업가인 이 회장은 원래 경우회와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었고 중간에 전기환씨가 있었다. 전기환씨와 이 회장은 동향이며 골프를 좋아하는 인연으로 친해졌고 전기환씨는 경우회의 수익사업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 회장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골프장을 운영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기흥CC 이 회장 지분 70%로 증가
 
  1980년대 초중반에 걸쳐 이상달 회장은 경우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 회장은 경찰 주요 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선물을 보내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물론 경찰대학과 경찰골프장 등 경찰 내 건설사업을 도맡아 하기도 했고 경찰 및 경우회 행사에 경품을 제공하는 등 경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경찰 내 폭넓은 인맥을 확보했다. 1990년대 초반 이 회장은 신설 은평경찰서가 부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본인 소유의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 줄 정도로 이 회장은 ‘경찰의 공식 스폰서’로 불리곤 했다.
 
  업계에서도 이상달 회장에 대한 평가는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인맥이 넓고 남을 잘 도와준다” 등으로 좋은 편이었다. 이런 평가는 그의 후한 인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회장이 대표로 있었던 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명절 선물 리스트만 해도 어마어마했고 경찰, 법조, 청와대 등 권력층에 이 회장의 인맥이 엄청나다고 들었다”며 “직원들에게도 인심이 좋은 편이었고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다기보다는 평소 용돈이나 선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흥CC 개장 시점이 되자 50%였던 이 회장의 지분은 70%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공사비가 애초 계획보다 100억원 이상 늘어난데다 고액회원권 분양실적도 저조해 기흥CC는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고, 이를 틈타 이 회장이 친구 남모씨의 명의로 경우회 지분 20%를 사들인 것이다. 기흥CC가 이 회장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경우회 간부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경우회 수뇌부에서 은밀히 이뤄진 이 같은 사연을 모르는 경우회 회원들은 “기흥CC는 경우회의 재산으로 이상달 회장이 편법으로 갈취했다”며 법적 공방에 나선다. 경우회는 검찰에 진정서를 내고 “경우회 간부들이 이상달 회장과 공모해 횡령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경우회 간부들이 뇌물을 받은 사실을 포착하고 1993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한다. 경우회 측의 주장은 “토목공사를 도맡았던 이 회장이 공사비를 부풀려 청구하고 회원권을 터무니없는 고액에 분양하는 방식 등으로 기흥CC를 일부러 경영난에 빠지게 만든 후 갈취했다”는 것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회장은 기흥CC의 설계를 변경함으로써 공사비를 실제보다 110억원 늘렸고 하지도 않은 발파공사를 했다고 청구하는 식으로 공사대금을 총 185억원 부풀려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이 경우회 간부에 대한 뇌물 및 정부 고위층에 대한 로비자금 등으로 증발했다는 것이 경우회 측의 주장이었다. 검찰은 조사 결과 “이 회장이 애초부터 기흥CC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밀한 모의를 했고 경우회 간부들도 이에 동참하며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상달 회장은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내가 입을 열면 경찰 여럿이 다치고 시끄러워진다. 입이 있다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다.”
 
  이 회장은 이 사건으로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았지만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이의를 제기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불구속 기소했다. 이때 이 회장의 나이는 54세에 불과했고 사위인 우 수석은 창원지검 밀양지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결국 이 회장은 3억여원의 뇌물을 경찰에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담당검사는 서울지검 특수3부 정홍원 부장검사(전 국무총리)였다.
 
 
  검사 사위를 맞은 이 회장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후 이상달 회장은 경우회 측에 손해배상 관련 민사소송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1년 경우회와 기흥CC 지분을 똑같이 나누고 경영권은 이 회장이 갖기로 협상했다. 그동안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1992년 대한중기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1994년 대한중기협회의 명칭을 대한건설기계협회로 바꾸고 초대 회장에 취임한다. 그는 2008년까지 14년간 회장직을 유지하며 건설기계업체들의 권익옹호와 상호협력증진을 위한 활동에 나서는 한편 정강건설과 정강중기 등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다.
 
  한편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검찰이라는 새로운 인맥을 갖게 된다. 여타 기업인처럼 법조인 사위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그는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최연소 검사(23세)가 된 서울대 법대 출신 우병우 검사를 사위로 맞았다. 우 검사를 통해 현직 검사들이 기흥CC에서 쉽게 라운딩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며 검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이다. 기흥CC는 서울시내에서 가까워 선호도가 매우 높다. 이 회장은 기흥에서 공직자나 기업인들과 골프를 치며 “내 사위가 검사”라고 과시하곤 했다.
 
  우병우 검사와 함께 근무했던 한 전직 검사는 “검사장이나 부장검사가 골프 부킹 때문에 우병우 검사를 자주 불렀다”며 “우수한 검사들은 출세를 위해 법조인 장인을 선호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 검사는 부잣집을 택한 경우라 다소 의아했지만 외부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점은 부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상달 회장에게는 딸이 4명 있는데 사위 중 법조인은 우 수석뿐이어서 우 수석은 그동안 집안팎의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첫째 사위는 기흥CC의 임원이며 셋째 사위는 교수, 넷째 사위는 기업인이다. 이득홍 전 서울고검장은 우 수석 부인의 사촌과 결혼해 이 회장의 조카사위인 동시에 우 수석과는 사촌동서 사이다.
 
  이 회장은 2008년 사망했는데 매년 기흥CC에서 열리는 이 회장의 추도식 참석자 면면은 이 회장의 인맥을 짐작게 한다. 2010년 2주기에 열린 추모식 겸 흉상 제막식에는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 정경식 전 헌재 재판관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으며 매년 열리는 이 회장 추모식에는 추병직 전 건교부 장관, 김병준 전 부총리 등 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참석하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이상달 회장과의 친분을 타인에게 과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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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득상    (2016-10-10) 찬성 : 130   반대 : 17
-.결제하고 (승인번호:kg이니시스 승인번호:51152637.이시:2016.10.10.22.22) 인테넷으로 기사를 볼려고 하는데 안되네요
  이석주    (2016-08-22) 찬성 : 3   반대 : 143
유익하고 잘 모르고 있던 알찬 내용이네요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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