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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참전유공자 ‘박대’하는 광주시의 ‘중국인 사랑’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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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정율성 선생 기념사업으로 조성한 정율성로 개통식이 2009년 1월 29일 열렸다. 원안은 정율성.
  정율성은 광주광역시 태생 중국 작곡가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배웠다. 그는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을 따라다니며 ‘중국 인민해방군가(팔로군 행진곡)’와 ‘중국인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연안송(延安頌)’ 등을 만들었다.
 
  정율성은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의 섭이(聶耳), ‘황하대합창’ 세성해(洗星海)와 함께 중국 3대 작곡가로 꼽힌다. 특히 중국 현지에서는 ‘혁명음악의 대부’ ‘군가의 아버지’로 불린다.
 
  정율성은 해방 후 북한에서 6년 동안 활동했다.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해 서울까지 쳐내려 왔다. 그는 ‘조선인민유격대 전가’ ‘중국인민지원군 행진곡’ ‘공화국 기치 휘날린다’ 등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올리는 군가들을 다수 작곡했다. 현재 북한의 ‘조선인민해방군가’도 그중 하나다. 정율성이 만든 곡들은 6·25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 군의 심장을 향해 겨눈 총과 같다.
 
 
  정율성의 항일행적 있다지만… 기간 짧고 역할 작아
 
  일각에선 1934년 의열단장 김원봉이 세운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를 나온 정율성이 의열단원으로서 난징의 한 전화국에서 일본인들의 통화를 도청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얘기한다. 항일투쟁에 참여했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그의 인생을 조명한 유일한 책 《정율성 평전》엔 이와 관련해 단 몇 줄만이 기술돼 있다. 정율성에 관한 여러 논문과 중국 측 기록을 살펴봐도 ‘의열단원 정율성’의 행적에 대해 알 길이 없다. 그가 실제 의열단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해도 그건 정율성의 삶에서 극히 일부다.
 
  정율성은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 타이항산(太行山)에 있던 조선혁명군정학교 살림을 책임진 교무장을 맡기도 했다. 정율성이 이곳에 머물렀던 점을 거론하며 그가 조선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는 중국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따름이다. 조선혁명군정학교는 김무정(6·25 당시 북한 인민군 2군단장으로 참전)이 이끄는 조선의용군에 속해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연구원의 논문 〈조선의용군과 한국광복군의 비교 연구〉에 따르면 김무정이 장악한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 팔로군의 일개 무장 정치선전대에 불과했다.
 
  정율성은 평생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공산혁명에 바쳤다. 태어난 곳만 광주일 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어떤 공헌도 하지 않은 인사란 얘기다. 우리가 그를 기릴 이유는 전혀 없지만, 광주시의 생각은 다르다.
 
  광주시는 고장을 대표하는 인물로 중국인 ‘정뤼청(정율성의 중국 발음)’을 꼽는다. 오래전부터 이곳엔 ‘정율성’을 내세우는 각종 사업이 넘쳐났다. 광주시는 “정율성이 중국 한류의 원조”라면서 2005년부터 연간 5억원을 들여 ‘정율성 음악제’를 해마다 개최한다. 자치구들은 서로 자기 구에서 정율성이 태어났다면서 그의 생가 위치를 놓고 10여 년 동안 싸웠다.
 
  광주시 남구청은 ‘정율성 생가터’로 추정되는 곳에 1억원을 들여 ‘정율성로(233m)’를 만들고 흉상을 세웠다. 이 거리엔 6·25 때 우리의 적이었던 중공군의 군가가 울려 퍼진다.
 
  2014년 10월 광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한·중 합작으로 ‘정율성 영화’ 제작을 본격 추진하고, 올해 1월 정율성기념사업회는 50억원을 들여 정율성의 일생을 조명하는 뮤지컬을 만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광주시, 광주 남구와 동구, 전남 화순군 등이 모여 ‘정율성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한 것도 모자라 향후 본격적으로 정율성 관련 사업들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광주, 참전수당 전국 최하 수준 지급
 
  광주시는 평생 공산주의를 추종한 중국인에겐 큰 ‘애정’을 쏟으면서도 참전유공자는 ‘박대’한다. 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이들은 매달 보훈처로부터 20만원, 거주 지자체에 따라 각기 다른 액수의 참전수당을 받는다.
 
  전국에서 참전유공자에게 가장 많은 수당을 지급하는 곳은 충남 서산시(월 20만원)다. 부산 기장군, 강원도 양구군, 충북 음성군은 각각 15만원, 12만원, 10만원을 준다. 가장 인색한 곳은 광주시와 그 자치구들이다. 광주광역시는 4668명인 참전유공자를 대상으로 65세 이상은 3만원, 80세 이상은 5만원을 준다. 서구와 남구는 각각 2만원, 1만원을 지급한다. 동구와 북구, 광산구는 ‘0원’이다. 참전수당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광역시는 재정자립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 보니 참전수당도 낮은 편이다”라고 변명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아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참전 유공자들에게 줄 돈은 없는데, 정율성에게 쓰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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