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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보수 원로 10인의 ‘한국 국민에게 고함’

정리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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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패한 후인 1807년 12월 철학자 J.G.피히테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우국(憂國)강연에 나섰다. 1807년 12월에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열린 강연에서 피히테는 독일의 재건은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이 강연은 나폴레옹에 맞서는 해방전쟁은 물론 60여 년 후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
나라 전체가 우울하다.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어디를 봐도 어렵다는 한숨뿐이다. 제대로 된 나라는 어려울 때에도 나라를 지탱하는 세력이 있다. 그게 글자 그대로 보수(保守) 세력이다. 4·13총선 후 그 보수 세력마저 요동치고 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로 열 분에게 물어보았다.
말씀해 주신 분은 가나다순으로 김인섭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변호사, 노재봉 전 국무총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복거일 소설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다.
  1 | 김인섭(金仁燮)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변호사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1936년생. 고려대 법과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 /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굿소사이어티 이사장 역임
  대한민국을 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중에서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얘기한다. 1995년에는 OECD에도 가입했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나라가 해방 후 50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5000년 민족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감사, 자부심은커녕 기적의 역사를 이룩한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매도하는 삼민주의(민족, 민주, 민중) 역사관이 만연해 있다. 이 삼민주의 역사관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보타주하고 있다. 시몬 베유는 “역사를 파괴한 자는 세계 그 어떤 자보다도 중한 죄를 지은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의 비극, 위기가 비롯되었다.
 
  노태우 정권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조화를 이루고, 기업들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사회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후 우리나라는 포퓰리즘과 선동정치,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고비용 저효율의 형태로 현재진행형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민주시민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시민교육이란 ‘정치지도자나 사회엘리트를 포함하는 국가구성원 모두를 민주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을 말한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주의를 외쳐왔지만, 일반 시민이건 직업 정치인이건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민주화 투쟁을 했던 대통령도 내용적으로 ‘문민독재’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학자 벤저민 바버의 말처럼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교육의 사회적 목표는 “좋은 시민의 육성”이라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 로버트 프리먼 버츠는 민주시민의식교육의 핵심으로 ⓛ 건국의 이념과 역사 ② 국가의 정체성과 법치주의 ③ 민주시민을 꼽았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영혼과 목표, 헌법 내용과 법치주의, 그리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지금 그게 안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도저히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이념과 정체성에 대해 공감하거나 역사인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 형성(nation building)’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건국, 즉 ‘국가 형성(state building)’은 해놓고 국민 형성이 안 되었다는 것은, 집은 지어놓았는데 들어가서 살 사람이 없는 격이다. 국민 형성이 안 되어 있는데 사회통합 운운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남(南南)통일이 안 되는데 남북(南北)통일이 되겠는가?
 
  건국 초기나 개발연대에는 이런 민주시민교육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태우 정부 때부터는 이런 교육을 실시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이를 게을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념적 갈등이 극심한 현실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대한민국의 역사를 ‘국가발전사관’이라는 관점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가르쳐야 한다. 현대사에 대한 편향된 도그마적 해석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이룩한 성취를 자각할 때,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통합을 이룩하고 선진 민주 법치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 | 노재봉(盧在鳳) 전 국무총리
 
  한국은 국제질서의 독립변수가 아니다
 
1936년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뉴욕대 정치학 박사 /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 제14대 국회의원, 서울디지털대 총장 역임. 현 서울대 명예교수
  에드먼드 버크가 말했던 ‘보수(保守)’의 개념은 우리 현실과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 오랜 헌정, 정치적 자유, 군주와 의회의 상호견제와 같은 보수해야 할 전통이 있었다. 우리는 1948년 건국 이래 보수해야 할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보수해야 할 것들이 미처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안팎의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다.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이유와 분단 상황 때문에 건국 이래 줄곧 위기국가, 위기정부였다는 사실이다. 1987년 6월 사태 이후 민주화가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가 시작된 것은 1948년 건국 이후부터다. 다만 위기국가 상황 아래 있었기 때문에 헌법과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이나 군부 쿠데타 등도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냉전하 전초기지에 속한 나라 중에서 군부 집권을 피해간 나라는 없었다. 미국에서도 남북전쟁 당시의 링컨은 인신보호영장의 적용을 정지했었고, 2차 대전 당시의 F.루스벨트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로 보냈었다. 이런 이해 없이 한 시대 우리의 역사만을 떼어내서 규범으로 규탄하고 감정적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좌파의 현대사 비판은 근거 없는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 본질적으로 전체주의 체제라는 사실도 잊고 지낸다.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간의 타협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라면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민족’이라는 관념에 함몰되어 우리는 남북한이 강대국이 만든 국제질서를 소비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잘 보지 못한다.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나 북한은 독립변수가 아니다.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북한 문제는 곧 중국 문제다. 북한 문제=중국 문제, 혹은 북한-중국-러시아 블록의 문제다. 핵무기를 만든다고 이런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드 배치도 그렇다. 핵심은 중국이 만드는 질서에 우리가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그 정치·사회 가치가 보편화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그 질서 아래로 들어가야 하나? 북핵 문제는 중국과 북한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와 가치(價値)를 같이하는 메이저파워와 손잡고 생존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제질서는 평등하지 않다. 우리가 잘 하면, 우리가 국제질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사드 배치 국민투표 주장은 그래서 황당한 얘기다. 국제질서에 무지해서 100년 이상 고생했으면, 이제 깨달을 법도 한데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안보에 무관심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북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통령, 수상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는 국방부나 외교부 대변인 성명이 전부다. 대통령이 나서서 설명해야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닌데,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나서서 설명하고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논의하고, 합의를 만들어 내고, 그에 대한 심판을 선거를 통해 받으면 된다. 정치인들이 그걸 못하고 있다. 심판할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니, 지연이나 인맥에 의존하려 한다. 다들 도덕군자처럼 굴면서, 비용이 들지 않는 정치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정치가 세상에 어디 있나?
 
  좌우를 막론하고 생계형 정치인들에 불과하다. 가족들을 보좌진으로 채용했다가 말썽이 나자 탈당하는 걸로 면피하려는 어느 국회의원의 행태가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인이나 검사, 관료들의 부패사건에서 보듯, 정치체제의 객관적 룰을 만들고 지켜야 할 정치인, 관료들이 엉망진창이다. 과거에 독재니 뭐니 했지만 ‘체제 타락’이 이렇게 심한 적은 없었다.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규정하고 정리하면서 국민들의 감성(passion)을 동원하는 것은 대중이 할 일이 아니다. 엘리트, 특히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는 존재위기와 관련되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3 | 류근일(柳根一) 전 《조선일보》 주필
 
  ‘기계적 중간’은 위선이고 지적 사기
 
1938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박사 /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논설위원실장, 논설주간, 주필 역임
  좌파 정권 10년이 끝난 후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이념의 시대는 갔다”면서 탈(脫)이념-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극좌 세력을 향해 했어야 할 그런 이야기를 엉뚱하게 자유민주 진영을 향해 했다. 대한민국을 지키고 극좌 세력과 싸우는 자유민주 진영을 무장해제하는 소리였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고, 해외순방 시 작가 황석영과 동행한 데서 보듯 좌익에게는 노골적으로 굴복했다. 이념적 투항주의였다. 박근혜 정권은 이런 점에서는 이명박 정권보다 다소 낫기는 했다. 그러나 친중반일(親中反日) 외교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여당은 몰가치(沒價値)한 맹물 세력이었다. 개인 차원의 이권이나 출세에만 관심을 갖는, 윤리의식 없는 대기업 임원 같은 존재가 새누리당 정치인들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지난 10년 동안 가치, 철학, 역사관 같은 에스프리(집단영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이 오늘날 보수정치 세력이 총선에서 패하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 이유다.
 
  특히 이념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것은 국민, 지도자, 새누리당 할 것 없이 ‘대한민국 폄하사관(史觀)’에 대한 분노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의 현대사를 모른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세계시장과 연결되어 살고 있지만, 그걸 반(反)민족주의로 보는 오도된 민족주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하는 게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지식인이건 언론이건 ‘나는 우익으로도, 좌익으로도 몰리기 싫다’며 ‘기계적 중간’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겁나서 입장을 선택하지 못하겠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기계적 중간’은 위선이고, 지적(知的) 사기다.
 
  언론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깝다. 기사야 그렇다 쳐도, 논설이 중간에서 왔다갔다한다. ‘언론’은 없고 이 말 저 말 옮기는 ‘매체산업’만 있다. 언론은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언론’이다. “대한민국은 전체주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좋았다” “시장이 중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런 얘기를 당당하게 하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 주류 언론을 향해 오랜 독자들이 “옛날 같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나라 언론이 정히 ‘매체산업주의’로 가겠다면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는 언론이 한 시대를 이끌 수 없다.
 
  정치도, 지식인도, 언론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럴수록 자유민주정치투쟁을 견인할 의병부대가 필요하다. 좌익투쟁 세력은 목숨을 걸고 감옥을 드나들면서 20~30년씩 투쟁을 했고, 오늘날과 같은 위치를 확보했다.
 
  다행히 북한이 워낙 죽을 쑤고 있기 때문에 국내 좌파 세력도 더 이상 새로운 담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파 전선이 흔들리는 것은 내부의 엉터리들, 투항주의자들 때문이다.
 
  자유민주 세력은 이제 소수(少數)운동으로라도 정치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문제의식을 가진 원외의 서클과 새누리당 내의 이념적으로 각성된 의원들의 모임이 서로 접촉하고 이슈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운동에 젊은 층도 끌어안아야 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서도 보듯 세대갈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젊은 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좌우로 가르기보다는, 천황제 파시즘 내지 신정(神政)전체주의냐, 아니면 개인의 해방이냐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에게는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4 | 박관용(朴寬用) 전 국회의장
 
  민주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 충원 방식
 
1938년생. 동아대 정치학과 졸업 / 제11~16대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외무통일위원장, 신한국당 사무총장, 국회의장 역임. 현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보수(保守)정치의 위기’ 혹은 ‘보수정당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나라 정치에 과연 보수정당이 있었는지부터 의문이다. 정체성(正體性)이나 가치(價値)가 없는 것은 우리나라 정당 공통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여야 할 것 없이 태생적으로 인물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화당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여당은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외생적(外生的) 정당이었다.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김대중 같은 지도자 한 사람에게 의지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포말(泡沫)정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이념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인물에 대한 평가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주의를 대변하는 YS나 DJ에 대한 평가였다. 이후에도 이회창,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지도자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이미지’였다. 점점 더 인물에 매달리면서 우리 정치는 퇴행(退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이념정당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수냐 진보냐를 가르는 기준은 친미반북(親美反北)이냐 반미친북(反美親北)이냐 하는 것뿐이다.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여야 할 것 없이 포퓰리즘으로 흐를 뿐이다. 정책의 차이가 없다. 정책과 이념이 없으니, 각 정당은 후보의 당선 가능성, 유권자들에게 먹힐 수 있는 후보의 간판부터 생각하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지 답답하다. 나도 뚜렷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인의 충원구조를 바꿔야 한다. 정치인을 어떻게 충원하느냐 하는 것은 민주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당내 실력자에게서 공천권을 빼앗아야 한다.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적절히 반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픈프라이머리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외국의 제도를 그냥 들여올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내가 지역구에서 인기가 있고 기반이 탄탄한 편이지만, 부동산 부자가 땅 200평만 팔아서 도전해 오면 내가 질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맞는 한국적 제도가 필요하다. 중앙당이나 시·도 지구당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당원들이 공직선거 후보를 면접해서 후보를 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상당 기간 동안 시행착오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헌 주장도 나온다. 개헌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을 바꾼다고 정치가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굳이 개헌을 한다면 ⓛ 특정 세력이 주도해서는 안 되고 ② 제20대 국회 임기 중이라든가 현 대통령 임기 중이라는 식으로 시간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③ 충분한 논의 끝에 국민적 동의가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30년 넘게 개헌을 논의해 왔는데, 우리는 개헌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개헌 시 양원제(兩院制)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행 단원제하에서는 소수의 목소리 큰 정치인들이 선동하면 그대로 넘어간다. 예산 나눠 먹기, 날치기 등의 폐해도 있다. 하원에서 결정한 문제라도 상원에서 다시 논의된다고 생각하면, 정치인들은 의사결정에 더 신중해질 것이고, 정책을 더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다. 정당들은 다른 정당과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정책의 차이가 쌓여나가다 보면,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정치를 바꾸려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정치는 언론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부터 찾고, 신문을 보고 그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한다. 언론이 정치인들에게 ‘당신의 철학이 무엇이냐’ ‘당신네 정당의 정책은 무엇이냐’라고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근래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너무 상업주의로 흐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5 |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명예교수
 
  중국공산당과 경쟁할 수 있는 ‘강한 정당’ 만들자!
 
1948년생.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법대 교수, 대통령 정책기획·사회복지수석비서관,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역임. 현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은 지금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선진통일과 북핵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개조(국가발전)와 국민통합이다. 통일을 전제로 동북아전략을 짜고,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국가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산업화 기득권 세력과 민주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넘어설 ⓛ 이념·가치·철학 ② 국민을 설득할 조직(정당) ③ 반포퓰리즘적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번 총선을 통해 이러한 과업을 수행해야 할 역사주체, 범(汎)보수가 붕괴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당내 자유주의 개혁보수, 중도보수 세력이 해체되고, 권위주의 기득권 보수 세력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념·가치를 창출하고 지도자를 발굴, 육성하는 일은 정당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의 부실·빈곤이 모든 정치적 악(惡)의 근원이다. 한국 정치의 중심에는 ‘정당(system)’이 아니라 ‘소수의 정치건달형 정치인(individual)’들만 있다. 자연히 정당은 사당화(私黨化)되고 있다. 떴다방 수준의 ‘모래 위의 성’이다.
 
  선거 때 보면 당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다. 대선 캠프는 당 밖에 만들어진다. 여론조사팀과 홍보팀이 꾸려져 후보 개인의 인기 제고, 이미지 조작을 한다. 여기에 소수의 대학교수들이 가세한다. 선거에 이기면, 이들 대선 캠프팀이 청와대와 내각으로 들어간다. 당의 이념이나 정책, 당료·당원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청와대·내각과 당이 따로 논다. 같은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정책이 180도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국가전략도, 국가경영도 안 보이고, 사인 간의 권력투쟁만 보인다. 당에 영혼이 없다. 변화의 시대에 필수인 이념과 리더십이 없다. 이대로 가면 좌파에 정권이 넘어간다. 그 결과 통일에 실패하고 분단이 고착화되며, 대한민국이 3류 국가로 추락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수정당의 대대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 보수 세력은 물론 합리적 진보와 중도까지도 담을 수 있는 거대한 ‘큰 그릇’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보수정당은 새로운 구국의 이념과 새로운 지도자 양성이라는 임무를 담당해야 한다.
 
  첫째, 새로운 보수정당은 자유주의적·개혁적 보수가 중심에 서고, 전통 보수가 오른쪽에, 중도 내지 합리적 진보가 왼쪽에 서야 한다. 이 ‘신보수’는 자유가 국가발전과 개인 행복의 기초라는 것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가족·사회·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가치에도 눈감지 않아야 한다.
 
  둘째, 정무와 당무를 분리해야 한다. 정무는 여의도 정치를 말한다. 정무대표(원내대표)가 담당한다. 당무 기능은 당의 이념, 비전, 정책, 전략을 생산하고, 당원을 교육·훈련시키며, 국민 속에 뿌리박은 정당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당무 기능은 선출직 정치인들이 아니라 프로페셔널 당료들이 맡아야 한다.
 
  셋째, 당의 하부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중앙당은 진성당원들은 물론 지지자들의 네트워크를 직접 관리하면서, 이들을 이념적·정책적 동반자로 엮어내야 한다. 당원들은 당내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공천도 장기적으로는 진성당원들이 해야 한다.
 
  넷째, 당은 단일성 집단협치(協治) 구조로 가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정부 권력 약화, 국회 권력 약화, 시민 권력 강화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이런 구조로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정부 권력은 강화하고 국회 권력은 약화하며, 시민 권력은 제도 내에서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치(共治)·협치를 해야 한다. 집단지성을 모아야 한다. 대통령도 이러한 협치구조의 일원으로 기능해야 한다.
 
  다섯째, 당과 대선 캠프를 일원화해야 한다. 당과 대선 캠프가 분리되면서 사당화 현상이 심해졌다. 당의 정체성과 대통령의 정체성이 다르다. 임기 말이 되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 능력이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이를 정상화해야 한다. 당의 조직활동·정책활동 자체가 대선 캠프가 되어야 한다.
 
  통일 이후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중국공산당과 국가경영, 국가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정당 구조, 체질, 운영체계, 관행 등으로 볼 때, 과연 (강한 정당인) 중국공산당과 경쟁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는 ‘강한 국회의원-약한 정당’ 구조이다. 이를 ‘강한 국회의원-강한 정당’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길러내는 산실이 되어야 한다.
 

  6 | 복거일(卜鉅一) 소설가
 
  대처·레이건은 ‘도덕’부터 강조했다!
 
194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소설 〈비명을 찾아서〉로 등단. 문화미래포럼 대표, 사회통합위 민간위원,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 역임
  ‘보수의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시민들이 민중주의(포퓰리즘)에 빠진 데 있다. 시민들이 민중주의에 휘둘리면 정치인들은 그에 따라가기 마련이다. 새누리당은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 전에는 그렇지 않던 이들조차 민중주의로 기울고 있다.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은 “책임의 과반은 시민들에게 있지 정치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식견이다. 식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이다. 우리와 같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이 기본이고, 원리다. 도덕이 서야 자유민주주의가 서고, 시장이 선다. 그런데 도덕을 논하는 사람이 없다. 부정부패가 많다고 하면서도, 도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도 입에 도덕이라는 말을 담은 적이 없다. 경제정책이 어떻고 하는 것을 떠나 그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미국에서 있었던 도덕재무장운동(MRA) 같은 것이 필요하다. 언론에서 캠페인을 하고 정부가 따라가 주면 좋을 텐데, 국민들이 별 관심이 없다 보니 언론에서도 그런 캠페인을 하다가 그만둔다.
 
  교통도덕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사소한 것도 안 지키면서, 무슨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나오고 좋은 방책이 나오겠나? 사소한 도덕적 부실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간 것이 한국 사회 위기의 원인이다. 큰 건물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은 흰개미가 조금씩 갉아먹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도덕심의 부재라는 흰개미가 사회의 기둥을 갉아먹고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고 맨 정책 차원의 얘기만 한다.
 
  정치인들, 특히 보수에서 배출한 대통령들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도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용을 내세웠다. 이념이 중요하다는 것,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도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데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책 얘기를 한다. 4대 개혁입법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입법이 안 돼서 이렇게 되었나?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이 바로 서지 않아서 지불하는 거래비용이 얼마나 많은가? 도덕심 부족을 얘기할 때, 흔히 재벌 등 가진 자들의 경우가 문제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만 본 것이다. 사회 전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부패뿐 아니라 민중주의도 도덕을 인식하지 못해서 나오는 문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다 도덕 수준이 낮아져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덕 수준이 이렇게 떨어진 데에는 사회주의적 풍조가 만연한 것도 한 원인이다. 원래 사회주의 사회는 도덕적 감성이 낮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수령이 지시하는 것만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법 경시 풍조도 도덕 수준 저하와 관련이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판사들조차 엄연히 불법인데도 그 영향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집단적인 도로점거시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무죄방면하곤 하다. 경찰이나 검찰, 사법부 같은 법집행 기관들은 개인 레벨의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면서 무리지어 저지르는 잘못, 떼법 같은 데 대해서는 느슨하게 대처한다.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해 지식인들이 관대한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결국 국가지도자가 도덕이라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화생물학은 인간은 상호이타주의에 바탕을 두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걸 보장하는 것이 도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사회의 작동원리다. 이런 사실을 알아야 방책이 나온다. 대통령이 그걸 인식한다면 4년, 5년씩 재임하면서 도덕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하겠나?
 
  도덕에 대해 얘기하면, 무슨 한가한 얘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보수혁명’을 이끌었던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은 ‘도덕’에서부터 시작했다. 대처는 개인의 자유, 자립의지와 도덕을 강조했던 빅토리아시대의 가치를 가지고 좌파 포퓰리즘에 맞섰다. 레이건은 “부도덕한 사회인 소련은 겉보기에는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약하다. 결국은 무너진다”고 믿었다. 그는 소련을 ‘악(惡)의 제국’으로 규정해 압박했고, 결국 성공했다.
 

  7 |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철저한 자유주의’가 답이다
 
193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석사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학회장, 한국개발연구원 이사장, 《시대정신》 이사장, 실학박물관장 역임. 현 서울대 명예교수
  ‘보수의 위기’를 말한다. 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되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를 만들지 못한 역사를 갖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 즉 일본과 미국을 통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1876년 개항을 하기는 했지만 1910년까지는 별다른 정치·경제적 변화가 없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망국 이후부터였다. 이런 걸 얘기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비난을 한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치판단과 사실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해방 후 근대화를 추진한 세력은 미국과 접촉했던 이승만이었다. 미국의 원조와 한미동맹이 있었기에 이승만의 근대화 추진이 가능했다. 박정희 근대화 과정에서 힘이 된 군부도 미국의 원조 아래 형성되었다. 이승만이 세운 자유민주주의 국가, 박정희가 이룩한 산업화와 재정자립의 기반 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글로벌리즘의 바탕 위에 존재한다. 그걸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새누리당이다.
 
  한국의 운동권은 근대화에 저항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세력이었다. 저항적 민족주의는 그들뿐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문제이다. 한국인이라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크건 작건 저항적 민족주의를 체화(體化)했기 때문이다. 저항적 민족주의의 극단적 형태가 종북(從北) 세력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민민주주의, 사회주의 세력이었다. 근대적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은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 프레임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소모적 갈등과 대립은 이 저항적 민족주의 세력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원래 보수는 ‘사자(死者)와의 동거(同居)’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거를 중히 여기고,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진보는 인간은 현명하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행복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다. 글로벌리즘과 시장(市場)경제를 받아들인 한국 보수는 본질적으로 진보적이었다.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창조적 파괴’ ‘파괴적 창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저항적 민족주의,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이른바 진보 세력은 ‘파괴적 창조’를 할 수 없다. 그들은 내용적으로 보수, 아니 수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근대화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의 물질문화·정신문화를 캐치 업(catch up)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동양에는 없던 자유, 인권과 같은 가치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되었고, 세계 시장과 단단하게 묶였다. 누구도 이걸 되돌릴 수는 없다. 진보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글로벌리즘과 시장을 거부하는 순간, 경제는 파탄이 난다. 석유와 전기와 수도가 끊긴다. 국민들이 아우성을 치면 어느 정권도 견뎌낼 수 없다. 이념보다 강한 게 먹고사는 문제다.
 
  ‘보수의 위기’ 소리가 나오는 것은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해서일 것이다. 새누리당이 실패한 것은 권위주의적 보수정당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새누리당은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청산하고 철저한 자유주의 정당으로 거듭나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친박 세력을 붙잡아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말은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허상이다. 그런 것들을 타파해야 한다. 오히려 규제를 풀고 모든 분야에서 경쟁원리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대우조선 사태 등에서 보듯 한계가 드러난 공공 부문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권위주의를 극복한 자유주의, 포퓰리즘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주의, 사유재산과 자유를 지고(至高)의 가치로 받아들이며 평등주의적 요구와 타협하지 않는 자유주의가 새누리당이 가야 할 길이다.
 

  8 | 양동안(梁東安)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사상 언어부터 올바로 사용하자
 
1945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 경기대 조교수, 《경향신문》 비상임 논설위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치학 교수 역임.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나는 1988년 《현대공론》 8월호에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을 기고했었다. 이 글에서 나는 사회 각 분야의 좌익 세력들이 연대(連帶)하여 대한민국의 반공체제를 무너뜨리고 있음에도 이 나라의 우익 세력들은 속수무책인 현실을 고발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이 나라에는 처음에는 좌익 세력과 제휴한 정권이 들어서고, 그다음 단계에는 좌익 세력이 주도하는 연합 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산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좌익 세력들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나를 ‘극우’라고 매도했다. 야당 의원들은 내가 몸담고 있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정감사 때면, “양 아무개가 아직도 여기 있느냐?”고 따지곤 했다.
 
  우익 세력의 반응은 달랐다. 이후 내 글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 언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이후 우리의 역사는 내가 예언했던 것처럼 흘러갔다.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밀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수는 위기에 처했다. 지금 보수는 낙동강 전선에 처한 형국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우익이 사상문제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우익사상의 무지는 좌익 세력을 ‘진보 세력’이라고 불러주는 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사상 관련 언어들이 부정확하고 부적절하게 사용되면, 국민의 사회인식과 사유에 혼란이 초래된다. 국민이 사회인식과 사유를 부적절하게 하게 되면 그들의 사회적 행동이 부적절해질 수밖에 없고 국민이 사회적 행동을 지속적으로 부적절하게 하게 되면 국가는 재앙을 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을 ‘진보’ 세력으로 불러줄 때, 우익은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좌익 세력은 겉으로는 더 이상 사회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사상을 문제 삼는 사람이 있으면 색깔논쟁으로 밀며 빠져나간다. 여기에 대해 대신 그들은 사상적 구도를 ‘자유주의(신자유주의) 대(對) 비(非)자유주의(진보적 민주주의)’로 바꾸어 놓는다. 여기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가는 중간단계를 지칭하는 위장용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화, 과거사 청산, 개혁, 민족, 통일 같은 다른 명분을 내세워 우익에 대한 사상적 공격을 전방위적으로 계속해 왔다. 이와 함께 그들은 학계, 정계, 언론계, 종교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소리 없이 헤게모니를 장악해 왔다. 지금 좌익은 자본을 빼놓고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나마 남은 자본조차도, 좌익과 싸우기보다는 그들에게 뇌물을 주고 타협하기에 급급하다.
 
  이제 이 땅의 좌익은 ‘안정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애국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보수정당’이라고 하는 새누리당에는 그걸 기대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제 박정희, 김종필, 전두환, 김영삼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리더들이 사라지고, 과거 중간보스들마저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이 정치적 각성 없이 만든 당이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 안에 사상적으로 각성되어 있고 올곧은 사람 5명만 있어도 희망을 가져보겠는데, 그 정도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자면서 최장집 교수를 위원장으로 데려오자는 정당에 무슨 희망을 걸겠는가?
 
  정당 밖의 우익운동도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좌익은 세상이 뒤집히면 자기들 몫이 커지기 때문에 헌신적으로 운동에 참여한다. 우익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어쩌다가 우익운동을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팽(烹) 당하기 일쑤였다.
 
  미국에서도 보수주의운동이 몰락했다가 1950년대 중반부터 각성이 시작되었다. 윌리엄 버클리가 《내셔널 리뷰》를 만든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가 낙선한 후, 보수각성운동은 본격화됐다. 돈 있는 사람들은 보수 잡지나 싱크탱크를 지원했다. 보수운동을 하다가 선거운동의 자원봉사자로 뛰어든 젊은이들은 지방의회나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해 갔다.
 
  우리는 환경이 미국과 다르다. 미국처럼 깨어 있는 부자도 없고, 선거 시스템도 다르다.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 우익운동을 해야 한다. 못 하면 이 땅의 우익은 몰락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그 과정에 접어들었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9 | 이상우(李相禹) 전 한림대 총장
 
  민주주의 보수(保守)하는 건 한미동맹 유지의 첫째 조건
 
1938년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장, 한림대 총장,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역임. 현 신아세아연구소장
  역사를 보면 나라의 흥망 주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초기에는 강한 공동체 정신으로 흥성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쇠퇴하고 공(公)보다 사(私)를 추구하면서 사회가 파편화되고 공동체가 붕괴한다. 이런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과정이 과거에는 약 200~250년 정도였는데,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체제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50~100년으로 단축된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괜찮았다. 우리는 자유민주질서에 대한 단합된 의지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다. 지금 산업화의 결과물들은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민주투쟁은 포퓰리즘으로 전락했다. 민주정치의 주도 세력인 중산층은 붕괴했다. 포퓰리즘의 확대는 자격 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방해하고 있다. 지도 세력이 붕괴한 것이다.
 
  중산층 붕괴, 지도 세력 붕괴 외에 우리는 북한의 도전이라는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민주화의 결과 친북 세력의 공식적·합법적 정치 참여의 길이 열렸다. 남북대결의 주전장은 DMZ가 아니라 서울이 되었다. 그 결과 두 차례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북한은 내년 대선에서 다시 좌파 정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올 코트 프레싱을 할 것이다. 그걸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라의 흥망주기로 보면, 대한민국은 불처럼 일어나던 기운이 한 30년 지나면서 소성안주(小成安住), 부패, 타락의 징후를 보이면서 체제 해체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활시위가 느슨해지면 다시 팽팽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경장(更張)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만들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 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보수(保守)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장 아니면 붕괴라는 분기점에 도달해 있다.
 
  우리가 보수를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전략적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웃을 곁에 두고 있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은 카터 정권의 주한미군 철수정책 때문에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지금 한국은 미국에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안 된다, 도와달라는 말만 하는데 참 답답하다”면서 “동맹을 유지하려면 조건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이념적 상응성(相應性)이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려면 같은 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전략적 중요성이다. 한국이 미국이 일본을 지키기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전략적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라는 얘기였다.
 
  세 번째는 자생 능력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겠지만 2%쯤 모자라니 도와달라고 해야지 모든 걸 미국에 떠맡기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지금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 등과 대중(對中)포위망을 엮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여기에 끼면 좋지만,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면 떠나도 할 수 없다는 태도다. 미국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날, 한국은 그날로 밟혀버릴 수 있다. 미국이라는 닻줄이 끊어져 버린 한국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바깥에서 왕따를 당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수정책의 총책이어야 할 대통령이 천안문 문루에 오른 것이나 일본 총리와 만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사드 문제만 해도, 중국에 좀 더 당당할 필요가 있다. “너희에게는 사드 배치가 정책의 일환이지만, 우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다. 중국이 방어 문제인 줄 알면서도 사드 배치를 방해하는 것은 북한의 핵 우위를 보장해 주려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0 | 이석연(李石淵) 전 법제처장
 
  보수 세력, 보수 정권과 긴장관계 유지해야
 
1954년생. 전북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법학박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경실련 사무총장, 헌법포럼 상임대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법제처장 역임. 현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보수의 위기’가 되풀이되는 원인은 간단하다. 보수 세력에게 자기 몸을 던질 줄 아는 희생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 보수지도자, 보수정치인들에게는 양지만 찾아다니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있다. 선택과 결단을 스스로 창출하지 않고, 그것이 자기에게 던져지기를 기다린다. 새누리당이 어려울 때 누가 몸을 던졌나?
 
  과거 수도 이전 논란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얘기를 하면, 개인적으로는 수도 이전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수도이전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내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가면서 수도이전위헌소송을 수행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수’라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중용되었다. 양지만 찾는 기회주의자들이 ‘보수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런 기회주의를 타파하지 않으면, 보수에 희망은 없다. 고대 그리스의 개혁자인 솔론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느 한편에 가담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사람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만들었던 이유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보수가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이유는 젊은이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보수 원로’가 없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위기에 처하면 원로라는 사람들이 원탁회의를 만들어 조정을 하고, 거기에 따른다. 보수에는 그런 원로가 드물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시대적 소명을 다했으면 뒤로 물러나 후학을 키워야 한다. 그건 지도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수에서는 나이 80이 넘어서도 꼭 자기가 하려 한다. 키케로는 “노욕이라는 것은 나그네 길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노자를 마련하려는 것처럼 미련한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노욕을 부리는 인사들이 젊은이들을 보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보수 정권의 인사정책 실패도 ‘보수 위기’의 원인이다.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나는 이제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실은 나를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지도자는 그런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 지도자에게는 ‘예’라고 말하는 천 사람보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살아온 과정이 투명하고, 일관성 있는 소신을 가진 사람들이 공직에 나가야 한다. 두 차례 보수 정권을 거치는 동안, 그런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대신 능력도, 소신도 없이, ‘예’라고만 하는 측근들이 득세했다. 이를 보면서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실망했다. ‘보수의 위기’도 여기서 왔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보수 정권의 위기’ ‘보수 정치의 위기’이지, 보수 세력 혹은 대한민국의 위기는 아니다. 4・13총선 결과를 놓고 ‘보수의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보수답지 않은 ‘패거리 정치’에 대한 심판이었다. 건전한 보수 세력이 보수답지 않은 보수 정권을 심판한 것이었다.
 
  이제 보수 세력은 정권과 자신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과거 경실련 사무총장을 할 때 “권력과는 긴장-갈등 관계에 서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보수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 정권과 건장한 긴장-갈등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보수 정권이니 보수 세력이 무조건 밀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정권이 잘못하면 보수 세력이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수 세력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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