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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성지(聖地) ‘벨베디어’의 ‘미국가정축제’

한학자 총재, “타락에 빠졌던 미국 일깨워”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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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문선명 총재 뉴욕에서 공산주의 위협 경고
⊙ 행사 참가자, “문 총재 냉전종식에 공헌”
⊙ 미(美) 정치인, “문·한 총재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
⊙ 가정연합 신앙의 조국은 한국, 세계종교로 키운 곳은 미국
6월 5일(현지시간) 뉴욕주 테리타운 벨베디어에서 열린 가정연합 1976년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 40주년 기념식.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강 상류를 따라 4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벨베디어(Belvedere)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 수련원이 나온다. 허드슨강을 옆에 둔 벨베디어 수련원은 고전 영화의 무대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27에이커(3만3100평) 규모의 수련원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뜻의 벨베디어는 허드슨강과 초원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이 땅을 1972년 사들여 가정연합의 미국선교 거점으로 삼고 있다.
 
  6월 5일(현지시간) 벨베디어 수련원 입구에는 ‘하나님이 축복한 미국 가정 축제(God Bless America Family Festival)’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축제는 가정연합이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1976년 6월 1일 개최한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오전 10시 행사가 시작되자 ‘유 아 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 등 낯익은 노래들이 흘러 나왔다. 뉴저지와 워싱턴DC 등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에 사는 3000여 명의 가정연합 신도들은 가족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흥겨운 노래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행사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한식 체험, 태권도 시범 등 볼거리도 많았다.
 
 
  1976년 미국에서 공산주의 위협 경고
 
  1976년 6월 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 한국에서 온 종교지도자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나타났다. 5만명이 모인 당시 집회는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미국은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문 총재는 “공산당의 위협과 청소년의 윤리적 파탄을 막지 않고서는 미국에 희망이 없다”며 “미국의 의사요 소방수로 왔다”고 역설했다. 가정연합은 양키스타디움 행사를 해외 선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억한다.
 
  문 총재는 후에 미국 선교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1972년 미국에 왔을 때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위협이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의 몰락이요, 셋째는 윤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청소년문제였습니다.”
 
 
  한학자 총재, “타락에 빠진 미국을 일깨워”
 
기조연설하는 한학자 총재. 사진=가정연합
  5일 행사에서 한학자 가정연합 총재는 40년 전 행사를 회고하며 “청교도의 나라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기대와 달리 미국엔 퇴폐문화가 만연했다”며 “우리는 양키스타디움 대회를 통해 타락에 빠진 미국을 다시 일깨웠다”고 말했다. 원고 없이 이뤄진 연설에 신도들은 20차례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특히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에 미국에 터를 잡고 있는 신도들이 크게 공감했다.
 
  2012년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가정연합은 한학자 총재가 이끌고 있다. 한 총재는 1960년 문 총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 총재는 미국 신도들에게 “미국은 (가정연합이 진출한) 200여 국가 중 큰형과도 같은 나라로 형제자매들이 하나가 돼 다 같이 잘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며 “인류가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1976년 행사 참석자들의 회고
 
1976년 6월 1일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개최된 ‘하나님이 축복한 미국 가정 축제(God Bless America Family Festival)’.
  40년 전 행사에 참여했던 가정연합 신도들에게 1976년 6월 뉴욕 양키스타디움 집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톰 맥더빗 워싱턴타임스재단 이사장, 신묘 다다하키 전 통일신학대학원 총장, 팻시 카시노 버지니아주 사우스카운티 중학교 교사 등 40년 전 행사에 참석했던 가정연합의 산증인들에게 행사의 의미를 물었다. 그들의 답변이다.
 
  “한국 종교인이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그처럼 큰 종교 행사를 한 경우는 없었어요. 가정연합은 고난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고 당시 문 총재가 주장한 미국의 역할은 오늘날 대선 후보에게 들려줘도 손색이 없는 가르침입니다.” (톰 맷더빗 이사장)
 
1976년 6월 1일 양키스타디움에서 강연하는 문선명 총재(좌측). 오른쪽은 당시 통역을 맡았던 박보희 전 세계일보 회장.
  “문선명 총재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두루 만나 냉전 종식에 큰 역할을 했어요.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셨죠.” (신묘 다다하키 총장)
 
  “어린 시절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을 많이 당한 저로서는 인종과 국적을 넘나드는 가정연합의 국제결혼을 시대를 앞서는 실천철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흑인도 백인도 동양인도 없다고 선언했던 문 총재의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팻시 카시노 교사)
 
 
  1970년대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경고
 

  가정연합이 미국에 뿌리 내리게 된 배경을 보면 1970년대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문 총재의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4일 뉴욕 맨해튼 소재 뉴요커호텔에서 만난 5선 경력의 댄 버턴(Dan Burton) 전 미국 하원의원(1983~2013)은 이렇게 설명했다.
 
  — 문 총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문 총재가 강한 반공사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기에 (저와) 의견이 맞았어요. 1976년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에 참석했는데, 참 애국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연 내용 중에 반공과 공산당의 위협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 기억이 남아요. 또 미국이 왜 강해야 되는지도 이야기했죠.”
 
  —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거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남북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하고 운반기술을 발전시키면 한국과 미국은 물론 미국까지 영향권에 들어서게 됩니다. 한국, 일본 등은 미국과 좀 더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가정연합은 미국에 신문(워싱턴타임스), 호텔(뉴요커), 문화공연장(맨해튼센터), 대학교(브리지포트), 합창단(국제새소망), 교향악단(뉴욕심포니오케스트라), 록밴드(선버스트), 무용단(국제민속), 관현악단(고월드브라스밴드) 등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
 
  언론, 교육,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려는 전략으로 보였다. 구체적인 전략에 대해 김기훈 가정연합 북미대륙 회장은 4일 뉴욕 뉴요커호텔에서 기자를 만나 “문선명·한학자 총재 신앙의 조국은 한국이지만, 가정연합을 세계적인 종교로 키운 곳은 미국이었다”며 “교육 주력, 가정교회 활성화, 통일경전 확립 등 문선명 총재 성화 직후 한학자 총재가 밝힌 교단의 3대 미래 비전을 가슴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연합의 미국 진출
 
  1972년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는 미국 워싱턴교회에서 ‘통일전선 수호’를 연두 표어(標語)로 발표했다. 당시 문 총재는 “신도들에게 민주세계는 공산주의 위협으로 인해 절박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독교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독교의 각성과 미국인들에게 공산세계 위협에 대비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7대 도시 대강연회를 추진했다. 조직도 결성했는데, 1월 8일 통일십자군(One World Crusade)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전개했다. 통일십자군 조직은 1973년까지 40개로 나뉘어 각 주(州)에 배치됐다. 1973년 2월 2일 뉴욕 월가 광장에서 ‘하나님의 대회(Rally of God)’를 개최하고, 2월 3일부터 3월 6일까지 뉴욕,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버클리 등 7대 도시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회에서 문 총재는 “기독교 정신의 부흥과 혁명을 일으키고 미국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이 땅(미국)에 왔다”고 선언했다.
 
  1973년 10월 1일부터 1974년 1월 29일까지 4개월간 21개 도시 ‘희망의 날’ 대강연회가 ‘기독교의 위기와 새로운 소망’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1974년 2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앞서 열린 21개 도시를 제외한 32개 대도시에서 ‘기독교의 새로운 장래’를 주제로 공개강연회를 연장했다.
 
 
  문 총재 닉슨 대통령과 회담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여파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사임했다.
 
  문선명 총재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닉슨의 위기가 곧 미국의 위기라고 보고 1973년 11월 30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이 사건이 대통령 한 사람이 책임짐으로써 끝날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하고 세계 영도력 상실의 틈을 노려 공산주의가 득세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워터게이트’ 선언을 발표했다. 닉슨은 문 총재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며 화답했다. 1974년 2월 1일 닉슨은 문 총재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1976년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 성공
 
  1976년 6월 1일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가 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주제는 ‘미국은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일련의 활동으로 6월 14일 미국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문 총재를 표지에 실었다.
 
  1976년 9월 18일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에서 3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 대강연회가 열렸다. 미국 종교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행사는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당시 문 총재는 “하나님은 이 나라에 새로운 계시를 전하기 위해, 특별히 퇴폐적인 미국 청년들을 구해 주고 미래의 지도자가 될 젊은이를 인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고 말했다. 당시 강연회에서 문 총재는 모스크바에서 강연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러한 목표는 후에 달성됐다.
 
  1990년 4월 10일부터 13일간 모스크바에서 41명의 전직 정상들을 포함한 언론인, 정치인, 학자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스크바 대회가 열렸다. 4월 11일에는 문선명·한학자 총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회담이 열렸다.
 
  문 총재는 소련과 독립국가연합 대학생과 지도자급 인사들을 미국으로 연수시키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는데, 1990년 7월 1일부터 8월 19일까지 4차례에 걸쳐 380명의 소련 대학생들이 미국 통일신학대학원에서 열린 국제지도자세미나에 참석했다.
 
  미국 선교의 어려움에 대해 문 총재는 1975년 1월 16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희망의 날 한국 만찬회에서 “미국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미국에 투입할 수 있었다”며 “하나님이 오늘날 미국을 찾아오시기까지 흘리신 피와 땀과 눈물의 수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난 30년간 미국에 있으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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