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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GKL, 차명계좌 통해 중국인 개인도박자금 15억 받아 놓고 관리 소홀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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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공사 산하 공공기관(그랜드코리아레저·GKL)과 중국 부호의 거액 소송 전말… 중국 부자들은 왜 한국을 찾지 않게 됐나

⊙ 중국인 L씨, “내 돈 15억원을 확인도 없이 타인에게 내줄 수 있나” GKL 세븐럭 카지노 상대로 소송
⊙ 세븐럭, 차명계좌 통해 제한 없이 거액의 해외도박자금 유입… 외국인 명의의 수억대 보관증이
    그 증거
⊙ “한국 카지노가 돈 떼먹는다” 소문나 중국 부호들 한국카지노 기피, 2015년 매출 전년대비 10% 줄어
⊙ GKL, “직접 불법행위 한 적 없다”… 도박알선이나 차명계좌 운용 증거는 없어
  《월간조선》 2016년 2월호는 〈한국 공공기관 직원들은 왜 중국에 7개월째 잡혀 있나〉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관광공사 산하기관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외국인전용 카지노 ‘세븐럭’ 운영중) 직원 7명이 2015년 6월 중국에서 마케팅활동을 하다 불법도박 알선혐의로 공안에 체포됐고 지금까지 구금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기자는 “메르스 여파와 시진핑의 반부패정책으로 중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자 GKL이 무리한 마케팅활동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도 소개했다.
 
  이후 “GKL을 비롯해 한국 카지노에 중국인 발길이 끊긴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중국의 한 부호가 GKL과 수십억대의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GKL이 15억원 이상의 금액을 중국인 사업가에게 지급해야 하는 한국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GKL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에 나섰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 부호들 사이에서 “한국 카지노에 가면 안 된다, 돈 떼먹히기 쉽다”는 입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GKL 직원들이 대거 중국에서 체포, 구금된 이유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인 장기구금, 관광수입 급감 등 국익과 관련된 이 사건을 《월간조선》이 추적했다.
 
 
  마카오 대신 한국 카지노를 찾은 중국 부호
 
GKL이 중국인 L씨에게 약 15억원의 금전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문.
  2조원 대의 자산을 보유한 중국인 L씨는 도박이 취미로 주로 마카오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겼다. 그런데 2013년 시진핑 정부가 반부패정책을 강화하며 도박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하며 그의 취미생활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도박행위 및 도박알선이 불법이라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의 부호들은 대부분 마카오 카지노에 가는데, 중국 정부가 마카오를 오가는 중국인을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길이 묶였다. 대형 카지노가 있는 싱가포르나 라스베이거스는 멀어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L씨가 자주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2013년 8월의 일이다. 도박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L씨는 서울에도 카지노가 여러 곳 있다는 얘기를 듣고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서울 세븐럭 카지노를 찾았다. 이때 조선족 여성 J씨가 접근했다. J씨는 “세븐럭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믿을 수 있고 VIP가 되면 이런저런 혜택도 많이 준다”며 유혹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중국은 해외 출국시 현금을 미화 5000달러까지만 갖고 나갈 수 있는데, 도박을 좋아하는 L씨에게 이는 지나치게 약소한 금액이었던 것. J씨는 “내가 알려주는 중국 계좌가 사실 세븐럭 카지노 계좌인데, 거기에 돈을 넣어 두면 한국 카지노 계좌에서 바로 인출해 쓸 수 있다”며 “입금하는 대로 카지노 측에서 보관증을 만들어 줄 것이니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J씨는 또 “한국정부가 운영하는 곳이라 누가 뭐래도 믿을 수 있다”며 “내가 한국에 오래 살아 한국 사정을 다 알고 세븐럭 직원들도 알고 지내 이런저런 심부름은 내가 다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세계 많은 카지노들이 이처럼 이른바 ‘환치기 계좌’를 이용해 도박자금을 제공한다. 물론 이런 계좌는 카지노업체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중간 용역업체(에이전시)를 통해 만든다. 에이전시와 계약도 직접 하지 않고 이중삼중으로 하곤 한다. 이들 계좌가 외환관리법상 문제가 돼도 카지노업체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꼬리자르기를 하는 것이다.
 
  L씨도 GKL이 한국 문광부 한국관광공사 산하 기관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인민폐 806만 위안(한화 약 14억2400만원)을 J씨가 알려준 계좌에 입금했다. J씨는 서울 세븐럭에서 L씨 영문이름과 GKL 사장 이름이 각인된 보관증을 받아 중국에 있는 L씨에게 보관증 사진을 보내줬고, L씨가 한국에 입국하는 대로 직접 전달하겠다고 했다.
 
 
  타인 명의 보관증으로 15억 지급?
 
세븐럭 카지노가 L씨에게 발급한 보관증. 총 3장으로 총액은 약 14억원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L씨가 사업 관련 사건으로 중국 공안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참고인 조사와 함께 출국금지 처분을 받은 L씨는 한동안 한국에 갈 수 없었다. L씨는 J씨에게 연락해 “당분간 내가 갈 수 없게 됐고 대신 친구들을 보낼 테니 그때 맡겨 둔 돈을 카지노에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J씨는 “카지노 측에서 보관증이 있어도 본인이 직접 오지 않으면 인출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J씨는 L씨가 당분간 한국에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L씨 명의의 보관증으로 약 15억원의 돈을 세븐럭에서 찾아갔다. 수상함을 느낀 L씨가 친구들을 한국에 보내 세븐럭에 찾아가 확인해 보라고 했지만 이미 L씨의 돈은 사라진 뒤였다.
 
  2014년 9월, L씨는 출국금지가 풀려 직접 세븐럭을 찾아갔는데 세븐럭 측은 “보관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지급한 것이며 카지노 측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J씨는 그 돈을 카지노에서 탕진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돈을 어떻게 했느냐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L씨는 조선족 J씨는 물론 GKL을 상대로 “보관금 지급시 본인 확인을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마카오 카지노의 VIP 고객이기도 한 L씨는 “카지노가 VIP 고객에게 보관증과 보관금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보관증은 분실이나 절도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카지노는 보관증이 있어도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는 게 기본이라 세븐럭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L씨와 그의 변호인은 “소송이 길어져 봤자 서로 좋을 게 없으니 원금만 받고 끝내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당시 GKL 임병수 사장에게 내용증명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GKL 측은 법무법인을 선임해 “문제는 L씨와 금전임대차계약을 맺은 J씨에게 있는 것이지 카지노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던 L씨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카지노 측이 잘못을 시인하고 원금 전체가 아닌 일부만 돌려줬어도 이해하려 했는데 GKL 측이 “우리는 보관증이 중요하지 본인 확인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L씨는 중국의 부호 지인들에게 “한국 카지노는 절대 믿을 수 없으니 가지 말라”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 얘기는 도박을 즐기는 중국 부자 및 관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다.
 
 
  카지노업체, 중국인 VIP 감소로 인한 타격 가시화
 
  실제로 2014년 하반기부터 한국의 외국인 카지노를 찾는 중국인 VIP 고객의 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중국정부의 반부패법 시행 시점인 2014년 초에는 중국의 카지노 VIP들이 마카오 대신 한국으로 향하면서 한국 카지노들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014년 하반기부터 감소세가 확연해졌고 2015년에는 카지노업체 매출액과 입장객이 전년대비 각각 9.7%, 13.1% 감소했다.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의 2015년 매출이 전년대비 10% 이상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성만 HMC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외국인전용 카지노업체들은 2014년 초 마카오 카지노시장 위축의 수혜를 받아 절정의 호황을 누렸지만, 2014년 하반기부터 중국 당국의 본격적인 반부패관련 정책 시행과 국내 외국인 카지노업체의 현지 VIP 마케터 체포로 상황이 급변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체포된 마케터들이 계속 수감중이고 업체들이 직접 마케팅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VIP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뒤집어 보자면 소송건이나 마케터 체포 등의 사건만 없었다면 2014년은 한국이 반사적인 관광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당시 한국 카지노에 중국인 VIP가 줄어든 큰 이유 중 하나가 L씨의 입소문이라고 L씨는 주장했다. 한국인 카지노마케터들이 대거 체포된 것도 한국 카지노에 대한 흉흉한 소문 때문에 중국 공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GKL의 대응에 수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J씨는 처음에 L씨의 보관증으로 세븐럭 출납창구에서 돈을 찾으려 했다가 “본인이 와야 한다”는 말을 듣자 알고 지내던 GKL 중국부 직원 B씨에게 연락했다. B씨는 J씨와 함께 출납창구로 가 “내 VIP 고객의 대리인”이라며 보관금 지급을 요청했다. L씨는 “보관금 인출과 관련해 B씨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B씨도 이 지급건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L씨는 “B씨는 사내의 좋은 부서로 옮겨 잘 다니고 있고, 국산 중형차를 몰던 그가 그 사건 이후 독일 B사의 고가 수입차를 구입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거액 지급시 본인확인 절차가 없다는 GKL
 
2014년 시진핑의 반부패정책 실시 이후 중국의 명품백화점, 고급골프장 등이 불황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L씨의 변호인은 “관광진흥법상 카지노업 허가를 받은 카지노사업자는 관광진흥법 제28조 제2항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령인 영업준칙의 준수의무가 있는데, 이 영업준칙에 따르면 ‘카지노사업자는 모든 카지노 입장객에 대해 신분증명서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카지노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에 본인 확인의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GKL 측에 신분확인과 관련된 업무매뉴얼 또는 내부규정을 요구했으나 GKL 측은 “그런 규정이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최대 규모 카지노업체인 ㈜파라다이스는 카지노영업장 업무매뉴얼에 〈고객에게 보관증을 받고 현금을 지급할 때는 보관증의 성명과 여권의 성명을 대조해 본인임을 확인한 후 지급해야 하며, 지급완료된 보관증에는 ‘PAID’라는 도장을 찍는다〉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L씨는 “내가 VIP 고객이고 J씨는 중간소개인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모든 책임을 J씨에게 씌우고 나와 J씨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GKL의 태도는 도저히 카지노사업자라고 보기도, 공공기관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직 카지노업체 한 임원은 “카지노에서는 금전 관련 사고는 물론 범죄와 연계된 사건 등이 워낙 많기 때문에 카지노의 기본 업무는 이런 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이 사건과 관련한 GKL의 태도는 전형적인 한국 공기업의 무사안일주의적 행태로 보인다”며 “사기업인 파라다이스라면 문제가 생겨도 발빠르게 대처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L씨와 변호인 측은 GKL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일부러 장기화하려 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L씨의 변호인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수익은 물론 국가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현재 GKL 사장에게 탄원을 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며 “임원들은 2년 임기만 채우고 가려고 사건 해결을 미루는 것으로 보이고, 담당 직원이 너무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는 등 회사 전체가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은 L씨의 승리, GKL은 항소
 
  서울지방법원 제34민사부는 2015년 12월 4일 “GKL은 L씨에게 보관금 원금과 함께 2014년 9월부터 지금까지의 이자(연5%)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GKL 측 주장대로 GKL이 선의와 무과실로 J씨에게 보관금을 지급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고 증거가 없으며, GKL이 보관금 지급 당시 카지노사업자로서 갖춰야 할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GKL은 1심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에 나섰다. 2심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GKL은 대법원까지 갈 계획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경우 보통 3~4년이 걸린다. 1심 판결에 따르면 원래 지급기한인 2015년 12월 말이 지나면 이자율은 연 15%로 뛰어오른다. 3심에서도 L씨가 이기면 GKL이 물어내야 할 금액은 2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다. L씨와 변호인 측은 GKL이 대형로펌을 통한 대(對)정부 로비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GKL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물어내기엔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도박업을 굳이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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