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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이슈

朴元淳 서울시장의 꿈에 나타난 풍납토성

2조원 들여 풍납토성 발굴한다는데…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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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부터 풍납토성 발굴했지만 ‘백제 왕성’이었단 증거 못 찾아
⊙ 서울市, 2011年 문화재청에 ‘풍납토성 규제 완화’ 先제안… 지금은 반발
⊙ “朴元淳, 주민 원성을 정부에 돌리려는 것 아니냐”(서울시의원)
  지난 5월 17일,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이 풍납토성(風納土城) 발굴 의지를 밝혔다. 풍납토성은 백제 성곽으로 추정된다. 토성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다.
 
  사업에 필요한 비용은 총 2조원이다. 정부(문화재청)와 지방자치단체가 7대3 비율로 사업비를 분담하기 때문에 서울시는 6000억원을 조달해야 한다.
 
  박 시장은 빚을 내서라도 조기에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인터뷰에선 기한을 ‘5년’이라고 얘기했다. 매해 4000억원을 유적 발굴에 쓰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이 해당 사업 계획을 언급한 계기가 특이하다. 꿈에서 백제 왕을 만났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 박 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하나의 고대 왕국이 지하에 잠자고 있습니다. 바로 풍납토성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세대의 잘못으로 이곳에 한성 백제 500년의 역사가 발굴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중략) 참으로 우연히 어젯밤에 백제 왕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직원들과 함께 한성백제박물관과 풍납토성 일대를 둘러보고 결심했습니다. 여기를 제대로 보상 발굴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정 힘들다면 시민기금과 채권을 발행해서라도 추진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중략) 시민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풍납토성이 한성 백제의 왕성이란 증거는 없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풍납토성 발굴 조사를 진행했지만, 왕성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상당수의 학자는 왕성 후보지로 한강 유역의 다른 곳을 지목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박원순 시장은 발굴을 밀어붙이고 있다. 과연 풍납토성 발굴 사업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조기에 완료해야 할 만큼 시급한 것일까. 박 시장의 발굴 의지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漢城 百濟 진면모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아직 없어
 
  ‘한성 백제’란, 백제 시조 온조왕이 나라를 세운 기원전 18년부터 22대 문주왕이 웅진성(현 충남 공주시)으로 도읍을 옮기기 직전까지, 한강 유역에 왕성을 뒀던 백제를 얘기한다. 백제 멸망 연도가 660년인 점을 감안하면, ‘한성 백제’의 존속 기간은 전체 백제 역사의 2/3를 차지한다.
 
  사료에 따르면 ‘한성 백제’ 시기는 백제의 최전성기였다. 지역 토착 세력인 마한을 병합하고, 고구려를 침공해 황해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중국 요서(遼西) 지역에도 직할지를 뒀고, 왜(倭·일본)에는 선진 문물을 전파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한성 백제’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사실상 없다. 백제 역사에 대한 학계의 관심도 적다. 그런 까닭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성 백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남 위례성 발굴’은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한 축을 복원하고, 동북아 고대사를 정립하는 출발점이란 의미를 갖는다.
 
  백제의 첫 왕성은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삼국사기》 기록이다.
 
  〈비류와 온조는 (중략)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아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거처를 정하려고 하자 열 명의 신하가 말하였다.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수(漢水)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둘러 있고,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가로막혀 있으니 얻기 어려운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수는 지금의 한강이다. 부아악은 북한산 인수봉의 옛 이름이다. 이곳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지금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하남시가 눈에 들어온다. 대다수의 사학자는 이 일대에서 ‘하남 위례성’을 찾았다.
 
 
  “풍납토성이 백제 王城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 없다”
 
  풍납토성이 학계의 주목을 받은 건 1997년 이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가가 별로 없던 풍납토성 일대는 주택이 하나둘 생기면서 인구밀집 지역으로 변모했고, 1980년대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1990년대엔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당시 풍납토성 내부에선 아파트 신축을 위한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에 1980년대부터 “풍납토성은 한성 백제의 왕성”이라고 주장했던, 이형구 당시 선문대 역사학과 교수는 백제 문화재 파괴를 우려해 1997년 신정 연휴 기간 풍납토성 내부 현대 리버빌 아파트 공사장에 잠입했다. 그는 터파기 현장의 지하 4m 이하 지점에서 백제 시대 유물이 있는 소위 ‘백제 문화층’을 발견하고, 이 사실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알렸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해당 아파트 공사를 중단시키고, 서울대 박물관, 한신대 박물관과 공동으로 ‘긴급 발굴’을 실시했다. 이후 학계에선 “한성 백제의 왕성은 풍납토성”이란 의견(풍납토성설)이 ‘유력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국사편찬위원회는 공식 입장이 없다. 문화재청도 홈페이지 ‘문화유산 정보란’에서 “(풍납토성을)위례성으로 보는 견해와 방어성으로 보는 의견이 엇갈린다”고 밝혔다.
 
  ‘풍납토성설’을 주도하는 인물은 이형구 전 선문대 역사학과 교수,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다. 이 중 신 교수는 2013년에 발표한 〈한성백제 왕궁의 구조와 풍납토성〉이란 연구보고서에서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궁성일 가능성은 이미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됐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풍납토성은 1997년 이래의 발굴 조사에서 신전 건물로 추정되는 대형 석조 건물지와 제사 유구(遺構·건축물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 적심(積心·주춧돌 주위에 채우는 보강용 돌무더기)과 초석(礎石·주춧돌)을 갖춘 지상의 기와 건물지, 대형의 수혈(竪穴·구덩이) 주거지 등이 발견되었다.(중략)
 
  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백제시대 유적에서 유례가 없던 것으로서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궁성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 판단된다.〉
 
 
  “풍납토성이 王城이라면 百濟는 형편없는 나라”
 
  ‘풍납토성설’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도 많다. 그중 이희진 한국역사문화연구원 교수는 “풍납토성을 백제 왕성으로 인정한다면, 백제라는 나라 자체가 그에 맞춰 형편없는 나라가 된다”고 역설한다.
 
  이 교수는 2009년에 강찬석 전 백제문화연구회장(2013년 사망)과 함께 쓴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란 책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 교수와 강 전 회장이 ‘풍납토성설’을 부정하는 논거는 ▲풍납토성의 협소한 규모 ▲역사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지형 조건 ▲원시적인 건물 터 ▲십수년간 발굴해도 나오지 않는 왕궁 흔적 등이다.
 
  성벽을 제외한 풍납토성의 내부 면적은 약 66만m²(20만평)로, 서울시 종로구 소재 창덕궁(55만916m²)의 1.2배 수준이다. 이에 따르면 풍납토성설은 백제 최전성기의 왕성이 조선 시대 궁궐만한 크기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제 ‘한성 백제’ 당시 왕성이 이렇게 작았을까.
 
  한성 백제보다 객관적으로 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비 백제 당시 왕성의 면적은 풍납토성의 20배에 달하는 1322만3140m²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성인 평양성(平壤城, 552년 착공) 규모도 풍납토성의 18배인 1185만m²(359만평)다.
 
  그럼에도 풍납토성이 한성 백제의 왕성이라고 주장하는 건 당시의 왕궁, 종묘(宗廟), 사직단(社稷壇·곡식의 신과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각종 관청, 군사 시설, 사찰 등의 대형 건물과 다수의 민가, 진사왕 때 조성한 거대한 연못, 개로왕 때 새로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궁실과 누각, 대사(臺榭·전망대)가 창덕궁과 비슷한 면적의 부지에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이는 한성 백제 왕성의 건물 배치는 매우 조밀했기 때문에 발굴 조사를 할 경우 큰 어려움 없이 대형 건축물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7년 이래 왕궁이 있다고 추정한, 풍납토성 중앙부의 ‘경당 지구’를 비롯해 전체 면적의 약 10%를 발굴했다. 그 결과 44호 건물지(너비 16m, 길이 18m), 우물(깊이 3m), 196호 수혈(너비 5.5m, 길이 11m), 초석·적심 건물지 4동, 수혈(너비 16.4m, 길이 21m) 등을 발견했지만, 이 중 왕궁이나 ‘왕성’에 걸맞은 대형 건축물의 흔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찾지 못했다.
 
  중국 당대(唐代)의 사서 《북사(北史)》 ‘백제전(百濟傳)’에 따르면 웅진성(고마성)의 인구는 1만호(5만~7만명)였다. 웅진성이 한성 백제 패망 이후 임시 도읍이었단 점, 웅진·사비 도읍 당시 백제가 동원한 최대 병력이 한성 백제를 따라잡지 못하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한성 백제의 왕성인 ‘한성’의 인구가 웅진성보다 적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풍납토성, 사료상 ‘하남 위례성’ 입지와 안 맞아
 
풍납토성 항공 사진.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은 1997년 이후 풍납토성 내부를 발굴했지만, 이곳이 한성 백제의 왕성이었다고 입증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은 찾지 못했다.
  이와 관련, 강찬석 전 백제문화연구회 회장은 2002년에 발표한, 연구보고서 〈연역적 가설 검증법으로 본 왕도 한성의 도시구조〉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한 ‘가’ 지구(1만578m²)에서 17세대의 주거지가 형성된 걸 볼 때 당시 풍납토성 내 전체 인구는 8000명(1세대당 7명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전 회장의 분석대로라면 한성 백제 당시 풍납토성의 인구 수는 삼한 시대 때 군장이 통치한 마한 소국 수준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희진 교수에 따르면 풍납토성의 입지도 사료에 등장하는 ‘하남 위례성’의 지형 조건과 맞지 않는다.
 
  풍납토성 일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물이 범람한 곳이다. 신종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이 2007년에 발표한 〈풍납토성 내외부 백제문화층의 분포 양상〉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풍납토성 서단부 바로 옆에 한강이 흘렀다. 폭우가 내리면 불어난 강물이 흘러넘치는 입지란 얘기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풍납토성 내부 퇴적층 중 백제 유물이 묻힌 ‘백제 문화층’이 지하 4m 지점에 있는 건 흘러넘친 강물이 끌고 온 토사가 ‘한성 백제’ 시대 이후 4m가량 쌓였다는 걸 의미한다.
 
  《삼국사기》에서도 〈폭우가 열흘이나 쏟아져 한강의 물이 넘쳐 민가가 무너지고 떠내려갔다(기루왕 40년 6월)〉 〈백성의 가옥은 강물에 자주 허물어지니…(개로왕 21년)〉와 같은 ‘한강 범람’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한강 물이 자주 흘러넘치는 곳에 왕성을 건설할 이유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이희진 교수는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왕궁이 한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거나, 왕궁은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일정한 높이에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풍납토성 안에서는 홍수 피해를 받지 않을 만큼 높은 지역이 없다. 만약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면 한강 물이 넘쳐서 민가가 무너지거나 떠내려갔다고 기록할 것이 아니라 민가와 함께 왕궁과 종묘도 떠내려갔다고 써야 옳다. 그런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풍납토성 안에 왕궁이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서울市, 2009년 ‘풍납토성 규제 완화’ 추진하기도
 
  앞서 본 것처럼 풍납토성이 한성 백제의 왕성임을 확증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빚을 내서라도 조기에 풍납토성 땅을 매입하고,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유는 풍납동 주민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문화재청은 풍납토성 내부를 ▲1권역-매입 완료 구역 ▲2권역-왕궁 등 핵심시설 추정지 ▲3권역-‘백제 문화층’ 유존 구역 ▲4권역-‘백제 문화층’ 파괴 구역 등으로 분류했다. 이 중 발굴 가치가 있는 2·3권역에 대해선 개발 행위를 제한하고, 순차적 매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예산이 문제였다. 최소 2조원이 필요한 사업인데, 연간 투입하는 예산은 200억~3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사업비를 쓴 2014년에도 그 금액은 500억원(문화재청 350억, 서울시 150억)이다. 이대로라면 최소 2조원이 드는 2·3권역 잔여 부지 매입에 40년이 걸린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그동안 재산권 침해를 당한 2·3권역 주민들은 “조기 보상을 하지 못할 거면, 개발 행위 제한을 풀어 달라”고 문화재청에 요구했다. 항의집회도 가졌다.
 
  문화재청은 2011년 9월 ▲풍납동 주민대표 ▲문화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풍납토성 보존관리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12차례에 걸쳐 대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지난 1월, “핵심 권역인 2권역만 문화재로 지정·보상하며, 3권역은 현재 15m 이하인 건물 높이 제한을 서울시 조례에 따라 21m 이하로 완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 변경안을 냈다. 서울시는 “조기 보상으로 원주민 보상 문제를 해소하고 본격적인 보존에 나서야 한다”며 반발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당초 풍납토성 2·3권역의 개발 규제 완화를 요구했던 곳은 서울시다. 주찬식 서울시의원(송파1)도 “서울시가 관련 용역을 실시하고, 문화재청에 건물 높이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인 2009년에 2억6800만원을 들여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에 ‘풍납토성 관리방안 학술용역’을 의뢰했다. 2011년 4월엔 “2권역은 현 시점에서 매입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므로 내용연수 40년이 경과할 때까지 존치시키고 내용연수가 다하는 2030년까지 리모델링을 허용하고, 3권역은 18m로 건축 높이의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용역 결과를 문화재청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市는 왜 수원市처럼 안 나서나”
 
  박 시장은 ‘백제 왕 현몽(現夢)’을 내세우면서 ‘5년 내 풍납토성 부지 매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풍납토성 관련 사업비는 문화재청이 70%, 서울시가 30%를 부담한다. 서울시 6000억원보다 더 문제는 문화재청 예산 1조4000억원이다. 문화재청이 이를 확보할 수 있느냐다.
 
  올해 문화재청이 ▲국보 ▲보물 ▲사적 ▲명승 등 2714개 문화를 보수·정비하는 데 쓸 수 있는 예산은 2800억원이다. 그런데 박 시장 주장을 따르자면 향후 5년간 풍납토성에만 매년 2800억원을 써야 한다. 문화재청 1년 예산이 7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풍납토성 관련 예산을 상당한 정도로 증액한다고 해도 ‘조기 매입’은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서울시는 왜 현실성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일각에선 “박원순 시장이 풍납토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란 추측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한 김용석 서울시의원(서초4)은 “과거라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단체장의 주요 업적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서울만 해도 창덕궁,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는데 풍납토성 한 곳을 더한다고 해서 박원순 시장이 얻을 이익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찬식 시의원은 “박원순 시장이 풍납토성과 관련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수 예산의 10%를 풍납토성에 쓰고 있는데, 이에 대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의 불만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5년 동안 1조4000억원을 쓰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박원순 시장이 페이스북에 ‘백제 왕’ 글을 올린 이유는 풍납동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니까 어차피 안 될 걸 알면서도 ‘나는 하고 싶은데, 중앙정부가 안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면피하기 위한 겁니다. 그런데 수원시는 기초자치단체인데도 화성 정비 사업비 4700억원의 83%를 댔습니다. 박원순 시장에게 정말 풍납토성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왜 수원시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겁니까.”
 
 
  “시장님 취임 이후 서울시의 역사인식이 바뀐 것도”
 
  다음은 이와 관련한 이종혁 서울시 문화재보존팀장과의 문답이다.
 
  —서울시가 문화재청의 ‘풍납토성’ 관련 변경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화재청 변경안대로 3권역의 건물 높이 제한을 완화한다고 해도 여러 조건을 감안했을 때 혜택을 보는 가구는 5% 정도입니다. 실질적으로 주민들에게 이익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또 건물 높이를 올리면 지하에 있는 백제 유구나 유물이 건물 하중에 의해 파괴될 수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인 2011년 4월 서울시는 문화재청에 3권역의 개발 제한 완화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 입장을 바꾼 겁니까.
 
  “예전에는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도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학자가 왕도라고 인정하고 있기도 하고요. 지금 시장님 취임 이후 서울시의 역사 인식이 바뀐 것도 있습니다.”
 
  —문화재청 예산 규모를 봤을 때 박원순 시장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문화재청 예산만으론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획재정부에 재원 마련을 위한 국공채 발행을 제안했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박 시장이 실현 불가능한 주장을 하는 건 예산 마련이 어려운 문화재청에 풍납토성 보상 관련 책임을 돌리려는 여론몰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경기도 수원시는 화성 정비 사업을 할 때 사업비의 80% 이상을 부담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왜 기존의 예산 분담 비율을 고집합니까.
 
  “수원 화성과 풍납토성은 상황이 다릅니다. 풍납토성은 서울시 사업이 아닙니다. 정부가 먼저 사적으로 지정했고, 이후 보상을 할 때 정부와 서울시가 7대3 비율로 사업비를 부담해 왔습니다. 그 연속선상에서 정부가 부담해야 할 부분은 계속 해야죠. 풍납토성 발굴 사업은 서울을 ‘2000년도 왕도’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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