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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중앙대 사태와 두산

중앙대가 두산을 원했나, 두산이 중앙대를 원했나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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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범훈 청와대 수석 별명은 ‘국악수석’, ‘중대수석’… 본인 이익과 관련된 업무에 집요”
    (前 교육부 공무원)
⊙ “박 수석, 중앙대 특혜 거절하면 장관 날려 버릴 기세”(前 청와대 행정관)
⊙ 박 총장, 다른 기업 러브콜 받고도 두산 고집해 중앙대 이사장과 충돌
⊙ 이명박 정부 실세들 대거 두산 사외이사로… 두산의 ‘보험’?
⊙ 중앙대 일부 교수, “두산이 (정권 실세) 박범훈 이용하려 중앙대 인수했나 의심”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횡령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재직 시 중앙대에 유리하도록 교육부 등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지난 5월 8일 구속됐다. 중앙대 전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 회장 역시 같은 사유로 검찰에 소환될 전망이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과 조율래 제1차관도 이와 관련해 검찰에 증인으로 출두했고, 박범훈 전 총장은 편법증여와 딸 취업청탁 등 개인비리 혐의까지 덧붙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뿐만 아니라 학교측의 대규모 구조조정 추진에 대한 교수진과 학생의 극단적 반발, 박용성 이사장의 ‘막말’ 파동 등 중앙대는 그야말로 소용돌이에 휩싸인 상태다.
 
  2008년 두산그룹에서 인수한 후 경쟁률과 인기도가 급상승했고, 한때 기업의 대학 인수 및 대학 구조개혁의 성공사례로 불리곤 했던 중앙대가 왜 이런 신세가 됐을까.
 
  박범훈 전 총장은 국악예술고와 중앙대 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일본에 유학한 후 1984년 중앙대 전임 요원이 된다. 그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국악고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국악계의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2003년 중앙대 제2캠퍼스(안성) 부총장이 됐고, 2005년 2월 교수들의 직선제 투표로 총장에 선출됐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문화예술정책위원장직을 맡았다. 정치와 거리가 먼 전공을 한 그가 정치에 몸을 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중앙대의 한 교수는 “(박범훈 전 총장이) 원래 두뇌가 비상하고 정치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총장을 개인적으로 아는 인물들 역시 그의 인맥이 화려하고 정치적 감각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나 박 전 총장이 실제로 정치권에 입문한 까닭은 그를 눈여겨본 이명박 대통령이 이끌었기 때문이다.
 
중앙대 사태란

 
  두산그룹은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한 후 본·분교 통합과 학과통합·개편 등 구조개혁에 나섰다. 2011년 본교와 분교 통합, 2014년 학과통폐합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와 교수협의회는 작지 않은 충돌을 겪었는데 최근 박용성 이사장이 교수들에게 ‘목을 쳐 달라니 가장 고통스럽게 쳐 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막말 이메일’을 보내면서 갈등이 커졌고, 박용성 이사장은 지난 4월 말 사임했다. 이 와중에 두산의 투자를 이끌어 낸 박범훈 전 총장이 중앙대 사업과 관련해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5월 8일 구속됐다. 중앙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사회의 사과와 현 이용구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교수, 학생, 직원이 참여하는 혁신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범훈 총장의 관계
 
중앙대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김누리 교수가 기자회견을 열고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의 막말 파문과 관련해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2002~ 2006년) 재임 당시 서울 소재 유명 대학 총장들과 자주 만났다. 이명박 시장은 특히 서울대 정운찬 총장, 고려대 어윤대 총장, 연세대 정창영 총장,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한국외대 안병만 총장, 중앙대 박범훈 총장, 서울산업대 윤진식 총장 등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숙 숙명여대 전 총장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의) 소망교회 인맥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교회에서 본 적은 거의 없고, 같은 시기에 시장과 총장으로 일하면서 만날 일이 많았고 경영마인드와 새벽기도 등 이런저런 코드가 맞아 가까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서울 소재 대학들은 교지 확보와 건물 증축 등 토지 및 건축과 관련해 서울시와 논의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명박 시장은 이전 시장들과 달리 대학 총장들을 수시로 만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도와주었다”며 “특히 이명박 시장은 본인도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얼리 버드(early bird)’로 유명했던 만큼 부지런하고 행동과 눈치가 빠른 인물을 특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범훈 총장도 이런 이유로 이명박 시장과 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윤대·안병만·박범훈·윤진식 총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브랜드위원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청와대 수석 등 요직에 기용됐다.
 
  박범훈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당시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정권 핵심부에 더욱 가까워졌다. 이때부터 박 총장은 ‘중앙대 세일즈’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인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할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대학 세일즈에 발벗고 나선 박 총장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내 교육담당인 제5정책조정위에서 3차례나 위원장을 맡았던 KDI교수 출신 이주호 의원을 일찌감치 ‘교육 브레인’으로 결정한 상태였다. 당시 전국구 의원이었던 이주호 의원은 ‘난립한 대학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기조 아래 대학구조조정의 틀을 만들고 있었다. 이주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교육과학문화수석으로 취임, MB정부의 교육정책을 세워 나갔다. 이주호 수석은 정권 초기부터 대학의 20% 이상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목표를 공표하고 부실한 대학에는 일체 지원을 끊는 등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청와대 상황에 늘 촉각을 세워 왔던 박범훈 총장은 중앙대가 지나치게 많은 단과대와 학과 수, 높은 등록금, 안성캠퍼스 교통문제, 재정형편 등으로 대학평가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 예상되자 본격적으로 중앙대에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사립학교법 제28조 제2항과 동법 시행령 제12조에 따르면 학교교육에 직접 사용하는 교지·교사 등은 매도할 수 없다. 즉 대학은 사고팔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 인수자들이 내는 출연금 등은 육영 의지의 표현인 것이지 대학 매매 대금이 아니다. 지금까지 기업이 대학을 인수한 경우는 적지 않은데(표 참조), 이는 기업이 기존 재단에 기금을 내거나 부채를 청산해 주고 학교 이사회에 기업쪽 인물들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대학 인수와 ‘인수 금액’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대학과 기업이 맺은 양해각서(MOU) 조항을 통해 장학기금 출연, 건물 신축, 교지 확보 비용,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기업이 부담하는 식으로 금액을 책정해 합의 후 계약하는 식이다.
 

 
  왜 두산이었나?
 
서울 흑석동 중앙대 서울캠퍼스 전경. 서울과 안성에 각각 있던 중앙대 본교와 분교는 2011년 통합됐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교육공약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2007년 초부터 박범훈 총장은 SK, 롯데, STX 등 투자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갔다. 업계에서는 중앙대를 인수할 기업으로 롯데그룹과 현대중공업을 유력하게 꼽았다. 의과대학과 종합병원 인수를 노리는 또다른 중견기업도 유력한 인수 대상자로 거론된 바 있다.
 
  그러던 중 중앙대는 2008년 5월 7일 두산과 MOU를 맺는다. 두산이 기존 중앙대 재단인 수림재단(이사장 김희수)에 1200억원을 인수대금 격으로 지급하고, 이사회를 두산측 사람들로 구성해 두산이 중앙대를 경영하는 형식으로 협의한 것이다.
 
  당시 박용성 두산 회장은 인수 이유에 대해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박범훈 총장이 찾아와서 학교 인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조금만 도와주면 명실상부한 명문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득력이 대단했습니다. 중앙대도 다른 기업과 많이 이야기를 했다고 하고 두산도 다른 학교의 요청이 수없이 많았어요. 서로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협상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은 두산을 환영했고, 투자를 이끌어 낸 박범훈 총장의 공도 인정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교수들은 박범훈 총장이 다소 독선적인 면이 있어도 학교를 위해 노력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중앙대의 학교순위가 하락한 것은 안성캠퍼스의 문제점이 불거지면서부터였습니다. 안성캠퍼스는 크고 아름답지만 용인이나 수원 등 다른 학교 캠퍼스에 비해 교통상황이 크게 열악해서 중앙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박범훈 총장이 본·분교 통합을 통해 이 난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고, 두산을 끌어들이면서 재정적 걸림돌을 해결하는 동시에 통합문제도 해결한 겁니다. 박 총장이 교내 행정을 일일이 직접 챙기면서 다소 충돌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교수들은 박 총장의 방향이 맞다고 생각해 동의하는 편이었습니다. 수익을 최우선시하는 대기업을 끌어온 것이 학자들 입장에서 못마땅할 수도 있었겠지만 위기에 처한 학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다들 있었던 거죠.”
 
  그런데 중앙대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는 “박범훈 총장이 김희수 (당시) 이사장 등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두산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중앙대에 재직 중이었던 한 교수의 얘기다. 일방적 주장이지만, 경청할 만하다.
 
  “박범훈 총장은 김희수 이사장의 양아들을 자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김 이사장이 두산이 아닌 다른 기업과 MOU를 맺기 직전까지 갔을 때 그곳은 안 된다고 김 이사장에게 반발했다고 해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업보다 규모가 작은 두산과 손을 잡았다고 하니 두산이 뭔가 좋은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다들 짐작만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박 총장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조건’이 학교를 위한 것이 아닌, 박 총장을 위한 것이었다는 게 이제 밝혀진 셈입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박 전 총장과 두산의 ‘이면 거래’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훈 전 총장의 부인이 동대문 두산타워의 매장을 편법으로 분양받게 된 경위, 박 전 총장의 딸이 젊은 나이에 중앙대 교수로 취업한 사유 등도 이런 의혹의 일환으로 보인다.
 
인수금액이 7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2007년 두산의 중앙대 인수금액은 얼마일까. 검찰이 박용오 명예회장 주변인을 조사한 결과, 합의한 인수금액은 700억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1년 후인 2008년 박용성 회장이 인수할 때의 금액은 1200억원이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인수금액이 두 배 가까이 높아진 것이다. 박용오 회장은 2009년 11월 작고했다. 검찰 조사 결과 두산그룹 이외에 다른 재벌도 중앙대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박범훈 당시 총장이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인수금액이 갑자기 뛴 것과 박 총장의 반대가 연관이 있는지 검찰이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이 중앙대를 원했다?
 
박용성 두산 회장은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하고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특혜 및 막말과 관련해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반대로 두산이 대학인수 등 사회공헌사업을 모색하던 중 정권 실세들과 가까운 박범훈 총장을 고려해 중앙대를 인수했다는 설도 있다.
 
  중앙대 재직 중인 다른 교수의 얘기다.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까지 지낸 박범훈 총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죠. 두산은 당시 M&A에 속도가 붙어 대우조선해양과 현대건설 인수를 원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대형 매물 인수에는 정부와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이 상식이고요. 또 참여정부 당시 두산 총수 일가가 ‘형제의 난’으로 곤욕을 치렀던 만큼 두산이 정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위 ‘보험용’으로 중앙대를 인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두산은 2005년 박용성(3남)-박용만(5남) 형제를 겨냥한 박용오(2남) 전 회장의 검찰 투서로 촉발된 이른바 ‘형제의 난’과 총수 일가 회사 돈 유용 유죄판결 등으로 명예가 실추된 상황이었다.
 
  중앙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김누리 교수(유럽문화학부, 독일문학 전공) 역시 “박범훈 총장이 (두산) 재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반대로 오히려 학교재단이 박 전 총장의 영향력을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두산이 왜 중앙대를 인수했는지가 의문”이라며 “두산이 시장의 잣대를 들이댄 구조조정으로 중앙대의 시장가치를 높이려 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이지만, 학교 육영에 뜻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 인수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박범훈 총장은 ‘실세’였을까? 교육 분야에 관한 한 일리있는 얘기라는 증언이 잇따른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행정관의 얘기다. “박범훈 수석은 수석이 아닌 (비서)실장급 행세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장관기용설도 수시로 나왔고 대학총장 출신이어서 그런지 본인이 일개 수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청와대 내에서도 그랬으니 교과부에서나 밖에 나가서는 어땠겠습니까.”
 
  두산은 실제로 박 총장을 보고 중앙대를 인수했을까. 이 같은 세간의 의혹에 대해 두산측은 “두산은 교육을 통해 사회공헌에 이바지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한 것일 뿐이며, 앞으로도 순수하게 중앙대 발전을 위해 투자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어떻게 외압을 넣었나
 
  박범훈 총장은 결국 모교에 엄청난 특혜를 주게 된다. 박 총장은 2011년 2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는데, 한 달 후인 3월 교육부는 대학 본·분교 통폐합 가능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011년 6월 법을 통과시킨 것은 국회이지만 이 법안을 만든 것은 교육부다.
 
  이 법 조항과 관련해 당시 교과부 기획조정실장이던 A씨, 대학지원실장 B씨, 2급 공무원 C씨 등이 실무진의 반대를 누르고 압력을 넣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A씨는 2012년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임용돼 박 전 수석 아래에서 일했다. 또 A씨와 B씨, C씨는 모두 박 전 수석이 물러난 2013년 초 교육부를 떠나 지방 교육청 고위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 전 수석이 교육부 관료들을 이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근거다.
 
  검찰 관계자는 “A, B씨는 그들이 스스로 비리를 저질렀다기보다는 고위공무원단에 소속된 공무원으로서 청와대의 압박에 반대하며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들이 박 수석 당시 청와대에 자주 불려가 업무보고를 했던 정황과 그 내용에 대해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그 시기 교과부에 근무하던 한 관료는 “당시 캠퍼스 통합문제는 명목상 다른 학교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사실상은 중앙대 이슈로, ‘국악수석’, ‘중대수석’으로 불리던 청와대 수석(박범훈) 지시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며 “통합에 반대하던 담당 과장이 2012년 말 지방으로 전근해 보복인사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또 “박범훈 수석과 이주호 장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교과부 내에 잘 알려진 이야기”라며 “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강성 장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수석의 요구에 힘들어할 정도였으니 외압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주호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청와대 수석과 장관의 기싸움이 벌어질 때 인사권자인 VIP(대통령) 인근에 있는 수석의 실권이 더 강하다는 것은 상식 아니겠느냐”며 “청와대측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할 때는 장관에 대한 음해성 투서까지 돌아다닐 정도여서 장관이 무척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이주호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당시 정권을 위해 함께 일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비난할 필요가 있느냐”며 답변을 꺼렸다.
 
중앙대 본교와 분교 통합의 의미

 
  박범훈 전 총장이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 의혹 중 가장 큰 것이 본교와 분교 통합 문제다. 본교와 분교가 통합해도 서울과 안성이라는 지리적인 위치는 그대로인데 통합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이 왜 특혜일까.
 
  본교와 분교 통합이란, 졸업장에 본교와 분교를 따로 명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교를 졸업해도 본교를 졸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어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게 된다. 특히 지방대나 타학교 분교를 지원하려던 지원자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다. 지원자가 크게 늘어나면 학교 재정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현재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대학의 정원은 증원할 수 없는데, 본교와 분교를 통합하면 학교측은 사실상 대학 정원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가 본교와 분교의 통폐합을 허용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건 2011년 3월이었다. 박범훈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불과 한 달 만이다. 중앙대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2011년 4월 본·분교 통합을 결의했다. 2011년 6월 법안이 통과됐고 2011년 11월 양 캠퍼스가 통합됐다. 이권이 걸린 일이 불과 반 년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됐는데 이 과정에 박범훈 전 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박범훈-박용성의 빅딜?
 
  취재원들의 증언을 종합하자면 박범훈 총장은 두산과 계약을 통해 중앙대를 재정적으로 정상화하고 키우는 것은 물론 개인적 영달을 플러스알파로 취득했고, 두산측은 많은 기업들이 원하는 사회공헌과 대학병원 소유라는 명분은 물론 정권 실세를 끌어들임으로써 ‘보험’을 드는 효과를 얻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박범훈 전 수석은 공직 취임 후 전방위로 외압을 행사했고, 두산은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정황이 검찰 조사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검찰은 5월 중으로 박용성 전 이사장도 소환해 중앙대 특혜 의혹과 관련해 조사할 방침이다. 그들 사이에 ‘빅딜’이 있었는지 여부는 결국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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