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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르포

국내 唯一 國軍교도소를 가다

교도소 창살 사이의 작은 햇살에도 꽃은 핀다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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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육군형무소로 출발, 1962년 남한산성 거쳐 1985년 장호원으로 移轉… 지난해
    국군교도소로 명칭 변경
⊙ 정승화·김재규·박흥주 등 10·26사건 관련자 수감
⊙ 항소·상고 중인 미결수와 형 확정된 현역 군인 150여 명 수용 中, 원예 치료 등 다양한
    교정교화·기능교육 실시
⊙ 매일 面會 위해 교도소 근처로 이사 온 수련생 부모… “어떤 자리, 어떤 모습에도 너를 응원할게”
  ‘아버지 어머니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랑하는 아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자유를 구속당한 현역 군인들이 ‘생활’하는 곳. 국내 하나밖에 없는 군(軍) 교정시설 국군교도소에서 발견한 글귀에서 수용자들의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있는 만큼 수용자들은 누구 앞에 당당하게 설 수도 없다. 그나마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 앞에서 눈물을 흘릴 뿐이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는 법. 이들이 형기(刑期)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교정·교화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군교도소의 별칭, 희망대
 
국군교도소의 별칭 희망대. 수용자로 하여금 희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자는 최근 두 차례 국군교도소를 방문했다. 국립생물자원관(환경부 산하기관)과 국군교도소가 함께 연 ‘자생식물 복원사업’ 행사에 참석한 후, 수용자들의 일상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한 차례 더 이곳을 찾았다.
 
  지난 3월 하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 이황3리 삼거리. 국군교도소를 가리키는 표지판 앞에 차를 잠시 멈추자 교도소로 올라가는 길 양쪽에 국방어학원과 ○○부대 정문이 보였다. 1km쯤 올라가자 이번에는 육군 ○○부대 위병소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기자를 안내해 줄 박광선 국군교도소 정훈장교(중위)를 기다렸다. 위병소 관계자에 따르면, 국군교도소는 ○○ 예하 부대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잠시 후 박 중위의 안내로 부대 영내(營內)로 들어갔다. 부대 표지판들이 여기저기 설치돼 있었다. 얼마쯤 들어가자 국군교도소 정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국군교도소라는 말이지, 전군(全軍)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군인 감옥.’
 
  이런 생각에 갑자기 숨구멍이 막히는 듯했다. 교도소 정문 바로 앞에 출입자를 기다리듯 서 있는 ‘희망대’라는 표지석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교도소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라고 중얼거리는 와중에 “왜 희망대죠”라는 질문이 박 중위를 향해 튀어나왔다.
 
  “심신(心身) 포기 상태인 수련생들에게 작으나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소중한 꿈을 가지도록 교정·교화하는 기관이 국군교도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을 ‘희망대’라 부릅니다.”
 
  군기(軍紀)가 바짝 든 현역 중위답게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그는 ‘수용자’라는 호칭이 법정 용어이지만 교화 차원에서 ‘수련생’이라 부른다고 했다.
 
  국군교도소 수련생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있을까.
 
 
  군인·정치인 등 역사적 인물이 수감된 곳
 
자식을 매일 보기 위해 국군교도소 인근으로 이사 온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박호종 교도소장은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저희로 인해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연병장을 지나 교도소 본부 건물에 다다랐다. 멀리 보이는 높은 교도소 담장이 일선 군부대와 다른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본부 1층 교도소 역사관에서 박호종(朴虎鍾) 국군교도소장(중령)을 만났다. 백발(白髮)이 무성했지만 건장한 풍채와 까무잡잡한 피부가 그의 군 경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박 소장은 지난 2월 부임했다고 했다. 그에게서 이곳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들었다.
 
  국군교도소는 1949년 3월 군 내부 사상범과 사고자(事故者)를 수용하기 위해 창설한 육군형무소(서울 영등포 소재)에서 시작됐다. 박 소장은 “그 당시는 교정 시스템 확립 전이라 단순 구금 기능만 했고 군수창고를 개조해 수용소를 만든 탓에 탈옥 사건이 잦았다”고 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형무소에 있던 수감자 800명이 석방됐다. 전세(戰勢)가 기울며 형무소는 대구·부산으로 이동한다. 전쟁 기간 동안 형무소는 포로 수용을 전담했다. 전쟁이 끝나고 수감자에 대한 교양 교육이 처음으로 이뤄지면서 교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벽돌, 기와, 제방 축조, 매트리스·방한모 제작 등의 기능 교육도 이뤄졌다고 한다.
 
  육군형무소는 1962년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에 자리를 잡으면서 제1, 제2 교도소로 운영됐다. 이른바 남한산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했던 인권 사각지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근대화·산업화 분위기에 맞춰 양돈·양계 등 영농 중심의 기능 교육이 수용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육군형무소는 1979년 1·2교도소를 통합해 육군교도소로 개편된다. 그해 10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해 사건이 터지면서 육군교도소는 현대사(現代史)의 한편을 장식했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이 이곳에 수감됐다. 군인 신분이었던 박 대령은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됐고, 김 부장은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후 형 집행이 이뤄졌다고 한다. 정승화 총장은 1980년 6월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박 소장은 “내란 음모, 계엄법 위반 등으로 고(故)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문익환 목사, 예춘호 전 국회의원 등 민간인 17명도 이곳에서 영어(囹圄)의 신세를 졌다”고 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교도소 자생식물 복원사업
 
희귀種子 증식·수용자 재활 의지 높여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관장 김상배)이 2012년부터 청주소년원을 시작으로 ‘자생식물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생식물 복원사업이란 환경부·법무부·국방부가 상호 업무 협약을 맺어 보안이 철저한 교도소와 소년원을 희귀식물 채종포(씨받이밭)로 활용해 희귀식물 종자를 증식하는 사업을 말한다. 아울러 원예 치료의 일환으로 수용자들에게 식물 재배·관리를 맡겨 재소자의 재활의지를 높이는 목적도 갖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 3년간 50여 종 20만 개체를 확보했고 올해의 경우 국군교도소 등 6개 수용시설에서 노랑무늬붓꽃 등 자생식물 26종(총 개체 수 14만개)을 증식할 계획이다. 2013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한 국군교도소는 지금까지 구절초 등 15종, 5만 개체를 생산했다.
 
  올해에는 섬기린초, 분홍바늘꽃 등 7종, 5만여 개체를 재배하는 등 사업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수용자들이 직접 재배한 자생식물은 씨앗으로 수확돼 환경부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에 보관된다. 종자은행은 교육과 연구 목적으로 외부에 분양하기도 한다.
 
  김수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수용자들은 원예활동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경험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있으며, 국가사업에 작은 기여를 한다는 만족감도 갖고 있다”고 했다.
 
  병사든 장교든 처우는 同一
 
국군교도소 역사관에 전시돼 있는 향로. 향로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1970년 후반 육군교도소를 방문해 기증한 것이다.
  육군교도소는 1985년 지금의 장호원으로 이전하면서 인권 중심의 교정·교화시설로 탈바꿈한다. 기능 교육도 영농, 가축 사육 등에서 국가기술자격 획득으로 전환됐다. 군 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사례는 지금까지 총 53회이다. 1985년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호원으로 이전한 지 29년간 육군교도소로 불리다 지난해 11월, 국군교도소로 명칭과 직제가 개편됐다. 창설 초기부터 육·해·공군·해병 소속 수용자들을 통합·관리해 온 교정기관인 만큼 ‘육군’을 ‘국군’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국군교도소는 올해 ‘장호원 시대’ 30년을 맞았다. 박호종 소장은 “육군본부 인사사령부 소속에서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부대로 전환되면서 규모는 축소됐지만 종래 육군 위주의 편제에서 탈피, 해군·해병·공군 소속의 교도관(부사관)과 교도병(병사)을 보충하면서 국군교도소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했다.
 
  현재 국군교도소 전체 부지(敷地) 면적은 6만여 평(20만324m2)이다. 수련생이 ‘생활’하는 수용동, 기능교육장 등 핵심 수용시설은 1만여 평(3만4496m2) 규모다. 국군교도소의 기능·임무는 수용자의 건전한 군인화(化), 수용자의 안전한 수감, 법규에 의한 행형 업무 수행, 수용자 경비(警備), 수용자를 위한 교정·교화·기술 교육 실시 등이다.
 
  국군교도소는 운영과, 교정교화과, 기능교육과, 교도대 등 크게 네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수용돼 있는 인원은 150여 명. 병사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부사관, 장교도 같이 수용돼 있다. 이곳에서는 계급이 높다고 특별대우를 받는 건 없다. 식사나 생활시설 등 수용자의 처우는 동등하다. 식사의 경우, 이곳에 근무하는 150여 명의 기간장병(교도관·교도병 포함)도 같은 ‘밥’을 먹는다.
 
  국군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는 모두 남자 현역군인으로, 1심 판결 후 항소 또는 상고 중인 미결수와 형이 확정된 기결수로 구성돼 있다. 사형수를 포함한 장기수도 일부 있지만 1년6월 형 미만의 수용자가 많다고 한다. 직업군인인 간부급 수용자는 이곳에서 형기를 마친다. 병사의 경우, 1년6월 형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법무부 산하 일반교도소로 이송된다. 형이 확정되는 동안 사실상 군 복무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여군의 경우, 구치소 역할을 하는 ‘계룡대 근무지원단’에 구속돼 있다가 형이 확정되면 제적(전역)돼 민간교도소로 이송된다.
 
  국군교도소 수련생의 범죄 유형은 다양하다. 정두교 교정교화과장(소령)은 “최근 들어 성폭력으로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잡초에도 이름이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수용자들은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국군교도소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들은 후 주요 간부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김치, 콩나물국, 닭강정, 깍두기 등 몇 가지 반찬과 국이 나왔다. 자율배식이었다. 교도소장도 밥과 국, 반찬을 식판에 직접 담아야 했다. 김규원 운영과장(소령)은 “식판에 담긴 국과 반찬은 지금 이 시간 수련생들에게 배식하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평소의 식사량을 먹긴 했지만 두세 시간 후면 배가 고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국군교도소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도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는 밥과 국, 반찬을 두 배로 퍼 담았다. 그리고 다 먹어뒀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수용자나 그들을 관리하는 기간장병 모두에게 고역이라는 생각이 교도소에 있는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국군교도소 첫 방문 때, 기자는 자생식물 복원사업 행사를 참관했다. 국군교도소는 2013년부터 자생식물 복원사업에 참여해 왔다.
 
  이날 사전 행사로 김민하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의 자생식물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150여 명의 수용자를 직접 만날 기회였다.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많았다. 그때였다.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본 듯 정두교 과장이 기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물어볼 게 많죠? 그런데 질문 자체가 이들에게 또 다른 아픔이고 고통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들을 관리하는 입장에 있지만 취재에 응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취재는 수련생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수용동 내 생활관에서 계호활동을 하는 교도병들.
  강연에 참여한 수용자들을 쳐다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들이 입은 푸른색·갈색 수의(囚衣) 뒤쪽에는 ‘희망’이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두 글자, 희망. 이 글자를 매일 보면서 수용자는 어떤 희망을 꿈꿀까.
 
  수용자 대부분은 고교생처럼 앳돼 보였다. 물론 개중에는 나이 들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김민하 연구사는 식물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강연 중간중간에 던진 농담에 수용자들은 환한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잡초에도 이름이 다 있어요.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봐요. 여러분의 마음도 편해질 거예요.”
 
  김 연구사는 화투장에 나오는 꽃과 식물, 새 이야기를 월별로 쉽게 풀이해 주기도 했다. 강의 후반부에 질문 시간이 주어지자 몇몇 수련생은 손을 번쩍 들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강연이 끝나고 교도소 내(內) 원예반을 포함한 수용자 15명이 국립생물자원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희귀 자생식물 씨앗을 모판에 직접 심었다. 수용자들은 이날 오후 섬기린초, 우엉, 층꽃나무, 분홍바늘꽃 등을 제공받았다. 올 한 해 정성 들여 키워 가을에 씨앗을 수확하면 이를 야생식물종자은행에 전달한다. 수용자들은 식물 재배라는 원예 치료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되고, 국립생물자원관은 수용자들의 ‘정성’으로 희귀 자생식물 씨앗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일부 씨앗 중에는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자유의 소중함
 
수용자들은 교도소 기간장병들과 똑같은 식사를 제공받고 있다.
  교도소 내 원예반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원예반장으로 활동하는 수련생 박철수(가명)씨는 “일반인은 잘 모르겠지만,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는 ‘밖’이라는 공간은 자유와도 같다. 원예반은 오전, 오후 3시간씩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활동이 이뤄지는데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원예반 인원은 5명에 불과하다. 흉기가 될 수 있는 농기구를 사용해야 하는 만큼 관리·통제가 가능한 수용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수련생 박철수씨의 동의하에 몇 가지를 물었다.
 
  ―이곳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만 10년 됐습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데요.
 
  그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얼마 후 낮은 목소리로 “서른둘”이라고 했다.
 
  ―하루 일과를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밥을 먹고 8시30분쯤 이곳 비닐하우스 현장으로 나옵니다. 물도 주고 잡초도 제거합니다. 오후에도 나오지요.”
 
  ―매일 나오나요.
 
  “수요일과 주말 빼고 매일 나옵니다. 늦가을 수확이 끝나면 겨울에는 활동이 없습니다.”
 
  ―생활하면서 달라진 게 있습니까.
 
  “하루하루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정성을 들인 만큼 수확량도 달라지죠. 일종의 성취감도 느끼고요. 무엇보다 밖에 나와 있다는 데서 자유로움을 느끼지요. 그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원예반이 가장 인기 있어요. 하늘도 볼 수 있고 바깥공기도 실컷 마실 수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전에는 주로 혼자 있었는데 사람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원예활동 하면서 다른 수련생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대인관계가 좋아졌어요.”
 
  ―시골 출신인가요.
 
  “도시에서 자라 농사 경험은 없습니다. 흙을 만지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살아 있다는 데 감사할 뿐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수용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달력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까.
  ―죄송한데,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드나요.
 
  “10년을 이곳에서 살다 보니 여기가 내 집이다 싶어요.”
 
  ―뭐하고 싶어요. 꿈은요.
 
  그는 또다시 멈칫했다.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뭘 하겠다는 게 없어요. 한때 잠시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어요. 그냥 하루하루를 만족해하며 살아요. 제가 키우는 식물이 조금씩 자라는 걸 보면서요. 살아 있다는 데 감사할 뿐입니다.”
 
  박철수씨는 장기수다. 그런 그에게 원예활동은 작은 희망이 되고 있다. 그가 쓴 원예활동 소감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작고 하찮게 느껴졌던 씨앗들이 시간과 정성이 쌓여 모판 하나, 싹 하나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이 생겼다. 작고 생기 넘치는 꽃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는 내면의 변화도 있다. 현재 내가 생활하는 거실 화분에는 엄동설한에도 자두나무 한 그루와 금잔화 한 포기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자두나무는 식당에서 후식으로 나온 자두의 씨를 겉껍데기를 깨서 속씨만 모아 심었는데 그중 한 개가 싹을 틔운 것이다. 금잔화도 얼마 전 예쁜 주황색 꽃을 피웠다. 교도소 창살 사이 작은 햇살을 받고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박철수씨는 관리가 매우 까다로운 수용자였는데 원예활동을 한 후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노태우 전 기능교육과장은 “몇 년 동안 말도 안 하던 그가 심성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얼굴 인상까지 달라졌다”고 했다. 원예활동과 관련해 박호종 소장은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만큼 원예반 인원도 늘리고 일반 수련생도 생활관 내에서 화분을 재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희망대에 작지만 소중한 희망의 꽃이 피고 있었다.
 
교도관의 하루

 
  2015년 ○월 ○일
 
  06:30
  국군교도소 수용중대 예하 소대(70여 명의 수련생으로 구성)를 관리하는 교도관 김○○ 상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소환 및 계호 업무를 위해 새벽 6시30분에 출근했다. 오늘 재판 대상자는 10명으로 오전, 오후에 걸쳐 하루종일 진행된다.
 
  07:30
  아침식사를 마친 수련생들이 개인정비, 환복을 하며 일과를 준비하는 사이 김 상사는 계호 임무를 수행할 교도병 20명(수련생 1명당 2명이 계호)의 임무 수행 준비 상태와 이동 차량을 점검했다. 7시20분 45인승 버스에 수련생과 계호요원들이 탑승한 상태에서 지휘관에게 출발 전 보고를 한 뒤, 최종 확인·점검을 받고 용산을 향해 출발했다. 교도소 외부로 나온 순간부터 교도관의 주의력과 긴장 상태는 최고조에 달한다. 교도관과 교도병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09:00
  국방부 법원에 도착했다. 재판이 시작됨과 동시에 수련생 한 명 한 명을 법정에 세운다. 이 과정에서 수련생과 외부인이 접촉할 수 있는 우발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딱딱한 법정 의자에 앉아 하루종일 수련생(피고인)을 지켜보며 고도의 주의력을 유지해야 한다.
 
  12:00
  간단한 도시락으로 수용자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19:30
  10명의 재판이 모두 끝난 후 곧바로 부대로 향했다. 저녁식사는 이동 차량에서 해결했다.
 
  21:00~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재판과 계호 임무 과정에서 있었던 수련생 개개인에 대한 사항을 법정 기록부에 빠짐없이 기록했다. 오늘 있었던 재판 결과를 내일 아침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류로 작성했다. 최근 재판에서 예상 외로 많은 형량을 선고받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생활하며 교도병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개인 면담도 실시해야 했다. 수용동 내 교도관실에서 하루를 정리했다.
 
  5.1m의 교도소 담장
 
교도소 정문에서 생활관까지 들어가려면 6개의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수용동 내에는 38개 생활관이 있다.
  국군교도소를 두 번째 들렀을 때는 수련생이 생활하는 수용동(棟)에 직접 들어갔다. 교도소 정문에서 수용동 내 생활관까지 총 6개의 철문을 통과해야 했다. 중간중간 검색대를 거쳤다. 수용동을 중심으로 내·외곽 담장이 별도로 있고, 20여 개의 초소와 47개의 경계등·탐조등이 설치돼 있었다. 수용동 주위로 5.1m에 달하는 담장은 절벽처럼 솟아 있었다. 지금까지 탈출 시도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단층으로 된 수용동은 방사형(放射形)으로 생활관이 배치돼 있었다. 수용동 정면과 옆 담장에는 수련생들을 향하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희망, 존중과 배려, 사랑.’
 
  ‘가장 행복한 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넌 나에게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야.’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수련생들은 이 글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수용동 내 38개의 생활관은 1인실부터 8인실까지 다양했다. 생활관 초입에는 교도관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교도소라고 하지만 시쳇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니던가. 목욕탕, 이발소, 도서관은 물론 군부대 매점인 PX도 운영 중이었다. 민광홍 교도대장(소령)에 따르면, 22개의 편의시설이 있다고 한다.
 
  1인용·8인용 생활관에 들어가 봤다. 군 내무반 같은 느낌이었다. 정리정돈 상태는 양호했다. 다만 30년 된 건물이어서인지 화장실과 건물 바닥, 천장 등에 금이 간 곳이 적지 않았고 냉난방 또한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국군교도소 측은 급수배관이나 복도 천장, 거실 침상 등을 지속적으로 정비·보수하고 있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듯했다. 국방중기 계획에 따르면, 2018년부터 3년에 걸쳐 총 예산 165억원을 들여 수용동을 신축하기로 돼 있다. 그러나 계획만 잡혀 있을 뿐 실제 신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거시적 측면에서 수련생들에 대한 관리, 교육은 일선 전방 부대에 근무하는 군인만큼 중요하다. 수련생들의 출소 후 재범률을 낮춘다면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새로운 수용동과 발전된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시급한 이유다.
 
 
  한때 수용자 500명 넘어
 
8인용 생활관과 독방. 내부 정리 상태는 양호하지만 건물이 오래돼 냉난방 등 일부 시설에서 문제가 반복 발생하고 있다. 수용동 신축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
  교도소의 핵심은 수용자 관리다. 민 교도대장은 “수용자를 위한 여러 편의시설도 운영하고 그들의 기본적 생활권도 보장해 줘야 하겠지만 교도대장으로서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법에 기반한 수용자 관리와 계호(戒護)이기에 한순간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수용자 총원은 150여 명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자를 수용했을 때에는 5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은 민간교도소에 수감한다. 2015년 2월 2일 현재 636명의 병역 거부자가 전국 구치소,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국군교도소 수용자는 기결수와 미결수로 구분되는데 징역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노역을 하도록 돼 있다. 현재 이곳의 기결수들은 군용 침대를 생산한다. 작년에 1만5000여 개를 제작해 일선 군부대에 납품했다고 한다.
 
  수련생의 하루는 어떻게 이뤄질까. 국군교도소 측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련생들의 일과는 아침 6시30분에 시작한다. 아침점호와 세면, 아침식사가 끝나면 오전 9시부터 작업이나 기능 교육 및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12시를 전후로 점심을 먹은 뒤 1시부터 다시 오후 일과에 들어간다. 오후에는 작업과 기능 교육이 주를 이룬다.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체육활동을 하고 이후 샤워와 개인정비 시간을 갖는다.
 
  저녁 6시에 식사를 한 후에는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TV도 보고, 편지도 쓰고, 책도 읽는다. 정서 순화활동과 사이버 교육도 이뤄진다. 밤 10시 취침을 앞두고 일일 정신 교육과 저녁점호가 끝나면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난다.
 
  하루 일과는 비교적 단순했다.
 
  미결수는 기결수와 달리 재판이 끝나지 않은 만큼 오전·오후에 재판 준비 시간을 별도로 부여받고 있다. 미결수는 노역도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비상시 수용자들을 전투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 교육을 시켰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양한 교정·교화 프로그램
 
수용자들은 용접, 서각 등 다양한 기능 교육을 받고 있다. 변호인 접견은 시간과 횟수에 제한이 없다. 일반 면회는 매일 가능하지만 하루 30분 이내로 제한된다. 교도소 내에는 화상면회실도 있다(맨 오른쪽). 한 달에 4회 이용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군에 입대하는 병력 자원의 성장 배경이 다양해지면서 범죄 발생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군교도소의 교정·교화 프로그램도 전문화되는 추세다. 정두교 교정교화과장은 “정신, 심리 치료를 도입하는 등 기존의 프로그램을 심층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국군교도소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정서순화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는 파랑새 미술 심리 치료, 성폭력 예방을 위한 성폭력 치유 프로그램, 재범(再犯) 방지를 위한 새생명학교, 정서순화를 위한 원예반·서각반·서예반·사물놀이반·성경공부반 등이 있다.
 
  출소 후 자활 능력을 높여주기 위한 기능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용접, 자동차 정비, 지게차 운전, 한·중·양식 조리, 정보처리기사 등 기술 습득과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용접기능장(匠) 자격을 갖고 있는 김영주 교관은 “수련생이 여기서 배운 기술로 사회에 나가 삼성,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에 취직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일부 수련생은 매년 감사의 편지를 보내와 오히려 제가 감사 편지를 보낼 정도”라고 했다.
 
  종교활동 시간에 만난 한 수련생은 “이곳에서 2년 넘게 생활하는 동안 용접, 특수용접, 지게차, 조리사 자격 등 5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그는 미술 심리 치료와 가족관계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해 큰 변화를 얻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이곳에 있는 수련생 개개인은 저마다 아픔을 갖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줘야 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일선 군부대에 있는 장병들에게 이런 말도 꼭 해주고 싶습니다. ‘혹시나 또는 설마 하는 마음이 들면 곧바로 행동을 멈춰라. 욱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감정대로 행동해서 얻는 게 뭘까를 생각하고 참아라.’ 이 두 가지만 지킨다면 이곳에 올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저는 비록 지울 수 없는 기록을 안게 됐지만 사회에 나가면 군생활을 할 때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합니다. 저는 올해 7월, 3년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나갑니다.”
 
  국군교도소는 기존에 추진해 온 ‘5감사운동’과 국립생물자원관이 주관하는 자생식물 복원 프로젝트를 확대·발전시킬 예정이다. 또 수련생과 국군교도소 기간장병들이 함께 참여하는 ‘불평없이 살아보기’를 통해 심성 변화를 유도할 계획이다. 인성 교육을 통한 삶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교도관 인권은 없다”
 
국군교도소는 최근 남한산성 시절 교도소 정문으로 사용했던 철문을 수리, 영내 연병장 인근에 기념물로 설치했다. 국군교도소 주요 간부들이 철문 앞에서 최고의 교정기관 육성을 다짐하고 있다.
  국군교도소를 취재하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전문 교도관 시대에도 불구하고 군(軍) 교도관(교도병 포함)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군교도소 교도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진단에서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상을 보인 이가 1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를 받는 사람보다 관리하는 사람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30년 군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앞둔 용성중 주임원사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불꽃 같은 존재가 바로 교도관이다. 군 교도관은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용자의 인권은 있어도 교도관의 인권은 없다는 자조(自嘲) 섞인 말이 나온다. 이제는 교도관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과 심리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국군교도소장 박호종
 
  “희망의 꽃 피우겠다”
 
 
   박호종 국군교도소장은 31년째 헌병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16년 전 육군대학 교육을 마친 후 당시 육군교도소 참모로 이곳에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군생활 마지막 보직인 국군교도소장의 중책을 명예롭게 마치고 싶다”고 했다.
 
  ―16년 전(前)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다면.
 
  “지휘관으로 부임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교정·교화 프로그램에서 많이 발전했다. 재(再)복무 교육을 위한 기능 교육도 다양화됐다.”
 
  ―현장에서 느끼는 국군교도소의 핵심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 복무를 위해 전후방 각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이곳 희망대에 수감돼 영어의 몸이 된 수련생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국군교도소의 현안은 무엇인가.
 
  “우선 수용시설 개선이 시급한 현안이다. 남한산성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지 벌써 30년이 됐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정비와 보수를 실시해 왔지만 수용동 내부의 근본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벽에서 나는 냄새와 급수배관에서 나오는 녹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 또 보일러 시설이 오래돼 겨울철에 난방이 잘 안 돼 지휘관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국방중기계획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65억원을 들여 수용동 신축공사가 이뤄질 예정 이다. 하지만 2017년부터라도 공사가 시작됐으면 하는 게 지휘관으로서 희망사항이다.”
 
  ―수련생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취임 직후에 전 수련생에게서 ‘새로운 지휘관에게 바라는 마음의 편지’를 받아봤다. 수련생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계기가 됐다. 폐쇄된 공간에서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발생하는 것 같다. 최대한 협조할 것이다. 수련생들이 교육과 심리 치료 등을 받으면서 자기반성을 하고 희망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戒護는 전투다
 
  ―수련생과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수련생들은 모두 똑같이 힘든 상황에 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수련생과 교도관・교도병과의 관계 역시 적대(敵對)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곳에 사랑하는 자제분들을 둔 부모님 또한 하루하루를 피눈물을 흘리며 지내실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님들은 20~30분간 주어지는 면회를 위해 하루 전날 출발하거나, 이른 새벽잠을 설치며 자식을 보러 오신다. 심지어 살던 곳을 떠나 자식을 매일 보기 위해 이곳 장호원으로 이사를 오신 분도 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희망대 지휘관인 저를 비롯해 전(全) 교도관은 저희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드린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반드시 실천하겠다. 그런 차원에서 면회장소도 일부 개방했다. 모범 수련생을 대상으로 1박2일 동안 교도소 내에서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한 만남의 집도 운영 중이다.”
 
  ―어떤 국군교도소로 혁신할 계획인가.
 
  “국군교도소는 군내 유일무이한 군 교정・교화기관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 희망대를 거쳐간 수련생이라면 건전한 군인, 나아가 건전한 국민으로 거듭난다는 전통을 만들고 싶다. 우선적으로 인성 교육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4월 8일 하창호 합참 전력기획부장(소장)이 수련생과 기간장병을 대상으로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궁극적으로 국민과 군으로부터 신뢰받는 군 교정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 수용자 중심의 자치제도를 정착시켜 통제와 강제성이 아닌 자율과 소통에 의한 수용생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징벌보다 스스로 규율하는 쪽으로 처우를 개선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완벽한 경계와 계호작전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전 기간장병은 ‘계호는 전투다’라는 구호를 매일 복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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