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취재] 세종문화회관식 징계의 두 얼굴 : 월간조선

지난해(2013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박인배(朴仁培)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송년 인사말에서 이같이 말했다.

“모두 올 한 해 고생 많았습니다. (한 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부서들도 있습니다. 삼청각 관련해서도 갖은 투서와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블랙홀 같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하지 맙시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의 탓 안 하기’를 실천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대인배 면모를 보인 박 사장의 송년 인사말이 있기 정확히 20일 전인 12월 12일 세종문화회관 산하 삼청각 직원 두 명은 해임(解任) 통보를 받았다. 직장생활 중 해임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해임된 2명은 내부제보자(정확히 표현하자면 K씨는 내부제보자, L씨는 K씨를 도운 인물)였다.

물론 내부제보자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해임이 당연하다. 내부제보자라고 무조건 보호하면 조직 내 위화감(違和感)을 조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K씨와 L씨는 무슨 이유로 해임됐을까.

解任 이유

세종문화회관 감사실은 2013년 6월 24일부터 7월 5일까지 삼청각에 대한 감사를 했다. 중점감사 사항은 ▲법인카드 사용 등 재무 분야 ▲근무실태 등 복무 분야 ▲문화사업 및 편익시설 운영실태였다.

《월간조선》은 세종문화회관 내부감사 자료를 입수해 K씨와 L씨의 비위(非違)내용을 살펴봤다. 징계 수위는 감사결과에 따라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때문의 감사 중 드러난 비위는 해임 이유가 될 수 있다. 자료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류비 개인사용
- K씨는 2013년 1월 4일(8만3000원), 2월 12일(8만6000원), 4월 3일(12만3000원), 4월 11일(8만3000원)에 걸쳐 총 37만5000원의 유류비를 법인카드로 사용.

■구매물품 회계질서 문란
- K씨는 2012년 11월 19일 남자 아르바이트 유니폼을 산다고 지출결의서를 작성, 법인카드를 이용했지만 실제 유니폼은 사무국 직원이 착용.
- 구매업무 간소화를 위한 업무개선(시장방침 359호)에 따라 구매 내역 및 법인카드 전표를 출력해야 하지만 구매 내역은 빼 놓고 법인카드 전표만 출력함.
- 물품관리규정에 의거, 구매한 물품은 자산 또는 비품으로 등록해 담당자에게 물품 인수인계를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음.

■2012년 하반기 ‘자미’ 공연 초대권 과다 사용
- K씨는 초대권을 초과 발생할 시 최종 결재권자 결재를 먼저 받아야 하나, 먼저 초과발행을 한 뒤에 결재권자의 결재를 받았음(347매 초과 발행).
‘자미(滋味)’는 2009년 시작된 삼청각의 상설공연으로 전통공연과 점심 식사가 곁들여진 런치콘서트다.
이에 K씨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유류비 개인사용과 관련해서는 회계담당(현재 퇴사)으로부터 개인차량을 업무상 이용할 경우 법인카드로 유류비 처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사용했고, 구매물품 회계질서 문란에 대해서는 결재 시 첨부돼야 하는 서류를 모두 첨부한 것은 물론 인수인계도 진행했다”고 했다. 초대권 과다 사용에 대해서도 “○○○ 부장의 허락하에 결재를 공연 후에 받았다”고 설명했다.

■삼청각 법인차량 관리 및 직원 복무(시내출장명령)관리 부적정
L씨가 차량관리 담당자임에도 차량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L씨는 “2013년 6월 3일 차량관리 담당자가 뽑히기 전까지 차량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제가 총무업무를 담당하긴 했지만, 법인차량 키, 차량일지 등을 관리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법인차량 키, 차량일지를 관리하라고 하지 않았다. 다들 알아서 차량을 사용했다”고 했다.

표적감사인가?

내부제보자가 제보한 내용은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해임 건의안이 시의회에 상정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꼬투리를 잡는 인상이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는 만큼, 이 정도 비위로 ‘해임은 지나쳤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K씨와 L씨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내부제보 때문에 박 사장이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표적감사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한다. 사실일까.

우선 K씨의 제보로 박 사장이 상처를 입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K씨는 지난해 4월 삼청각의 웨딩사업 관련 비리를 처음으로 폭로했다. 그는 같은 해 2월 I사가 삼청각을 퇴사한 한 직원이 세운 페이퍼컴퍼니이며, 입찰 당시 담합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상사에게 이 문제를 알렸다. 이 과정에서 L씨는 K씨가 I사가 삼청각을 퇴사한 한 직원이 세운 페이퍼컴퍼니라는 증거를 잡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I사의 대표가 퇴사한 한 직원의 어머니 명의로 돼 있다는 것을 총무 업무를 보던 L씨가 확인해 줬다는 것이다.

K씨가 제보한 내용은 작년 6월 서울시의회 감사에서 시의원들에 의해 다시 부각됐고, 이는 급기야 세종문화회관 설립 35년 만에 처음으로, 사장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상정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이 같은 내용은 《월간조선》도 2013년 8월호의 ‘세종문화회관 사상 처음 해임 위기 맞은 朴仁培 사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소속 김태희 서울시의원(서대문 3)은 박 사장 해임촉구 건의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세종문화회관 산하 삼청각이 웨딩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임건의안이 어디까지나 건의이고, 강제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박 사장이 해임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리더십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해임건의안 상정 이후 박 사장은 사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고 한다”며 “서울시와 업무협력 및 정무적인 일도 사장이 아닌 단장들끼리 협의회를 만들어 직접 해결할 정도”라고 했다.

현재 웨딩업체 선정 의혹 건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넘어가 있다.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 본부 관계자는 “감사과의 조사 결과 I사와 함께 입찰한 업체가 공정한 입찰을 방해한 의혹이 있어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일로 인해 자신들이 표적감사를 받았다는 주장은 진실일까. 객관적으로 검증해 봤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표적감사 의혹이 있다는 이야기에 손사래를 쳤다. “정기적인 감사이고, 전 사원을 대상으로 감사했는데 어떻게 표적감사가 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K씨와 L씨를 포함, 내부감사에서 총 6명이 비위사실 및 관리감독 소홀로 지적받았는데 최고 수준의 징계(解任)를 받은 사람은 K씨와 L씨 두 명뿐이었다.

내부감사 자료를 보면 ○○○씨의 경우 위임전결 내규 및 회계규정에 따라 사업계획서를 작성, 사장의 허락을 받고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도 불구, 사업계획서 작성 없이 ‘삼청각 별선(別,選)’ 공연에 출연할 단체를 선정하고 출연료를 지급했다. ‘삼청각 별선(別,選)’은 기업의 행사나 연회 등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맞춤형 특별공연이다. 또 다른 직원 ○○○씨는 예식관련 제휴업체와 계약시 카드사 수수료율을 명기, 차감 후 정산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아 삼청각에 연간 2000만~3000만원 이상의 손해를 끼쳤다. 이 두 직원은 아무 징계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종문화회관 측은 K씨와 L씨를 제외한 4명은 각각 정직(2명), 견책(1명), 경고(1명)를 받았다고 했다.

○○○씨는 2013년 3월 8일 삼청각 식음료 직원(20여명)과 회식 후 삼청각 법인차량(대리기사 고용)을 타고 자택까지 갔다. 이는 내규를 위반한 것이다. 그는 주의조치를 받았다.

물론 사안이 다른 만큼 단순비교는 어렵다. 그렇지만 법인차량 키, 차량일지 등을 잘 관리하지 못한 직원이 해임당했는데 회사에 연간 2000만~3000만원의 피해를 준 직원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형평에 맞지 않아 보인다.

서울市의 삼청각 감사 문건

세종문화회관 산하인 삼청각.

취재 도중 서울시가 작년(2013년) 세종문화회관과 삼청각을 감사한 결과가 담긴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 내용을 분석해 보니 K씨와 L씨의 징계 수위가 이례적으로 높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래 감사결과는 K씨와 L씨, 그리고 위에 언급한 직원 외에 다른 직원들의 비위 내용과 조치 결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시 문건을 요약했다.

▲식음료 용역업체 선정 재공고 부적정(행정상 조치: 주의)
- ‘서울특별시 일반용역 적격심사 기준 제6조’에 의하면 개약담당자는 ‘단순노무’에 의해 이행되는 용역의 경우 종합 평점이 95점 이상인 용역업체를 낙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하지만 ○○○는 식음료 용역(삼청각 한식당, 다원카페, 주차장 인력지원)의 경우 ‘단순노무’가 아닌 ‘단순노무’ 외의 용역으로 적용하라는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평점 90점인 용역업체를 선정했다. 이에 규정대로라면 부적격 처리가 될 수 있는 업체가 선정됐다.

▲음식재료 공급업체 선정 부적정(행정상 조치: 주의·권고)
- 삼청각의 한식당, 연회행사장 등에서 사용되는 식자재를 수의계약으로 구매할 경우 2인 이상 사업자로부터 각각 견적서를 받아 가격을 비교 검토 후, 가장 경제적인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삼청각에서는 2개 사업자로부터 각각 견적서를 직접 제출받지 않고 사전에 ○○농산과 계약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공산품과 축산물을 구매할 때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특정업체와 계속 수의계약을 했다. 이는 특정업체에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음식재료 매월 단가 수의계약 부적정(행정상 조치: 주의·권고)
- 삼청각에 공산품을 납품하는 업체인 ○○물산의 사업장 주소는 개포동 ○○아파트 16동이었다. 별도의 사업장이 없는 업체로부터 물건을 납품받는 것은 안정적이라 보기 어렵다. 게다가 현재 삼청각에서는 공산품·축산물·농산물 납품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있는데 일반경쟁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했다면 3억2500만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계약직 특별채용 업무처리 부적정(행정상 조치: 주의·권고)
- 특별채용은 제한적으로 시행해야 하고, 공개모집을 통해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경쟁의 방법으로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삼청각 경영지원팀은 공개 모집하지 않고 형식적인 면접심사만으로 특별채용을 했다. 삼청각 내 상임연주단 ○○○ 단원 11명도 인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특별채용했다.

▲법인카드 사용 부적정(행정상 조치: 시정·주의)
- 삼청각은 2010년부터 2013년 10월까지 법인카드 사용제한 업종인 유흥주점 3건 54만6000원, 노래방 15건 97만8000원, 단란주점 1건 21만원을 직원 업무협의, 회식 등의 명목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했고, 업무와 무관한 심야(01시 이후)에 13건 107만3000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또 법인카드 사용 시 사용일시, 장소, 목적, 참여자 등을 지출결의서에 명시하고 증빙자료를 첨부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법인카드를 사용한 건수가 총 33건(213만9000원)이나 됐다.

세종문화회관 측에 서울시 감사와 세종문화회관 자체감사의 처분 강도가 너무 다른 것 같다며 설명을 요구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감사결과를 누설하면 비위사실이 있는 상대방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 수 있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그런 이유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