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대 취업률 2년 연속 전국 1위
⊙ 교육부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에서도 3년째 전국 대학 중 1위
⊙ “실무 중심의 낭비 없는 교육을 했다”
⊙ 교육부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에서도 3년째 전국 대학 중 1위
⊙ “실무 중심의 낭비 없는 교육을 했다”
- SK하이닉스반 학생들이 대학 내 반도체공정실습센터에서 실습을 하는 모습.
3월 4일 찾은 대구 북구 복현동 영진전문대. 한가운데 운동장을 빙 둘러가며 건물 10여 동이 자리 잡고 있다. 운동장 입구엔 자그마한 풍력발전기 1대가 돌아가고, 공학관 건물 옥상엔 태양광 발전 모듈이 설치돼 있다. 그 옆으로 3m 높이의 방송·통신 안테나도 세워져 있다. 정문 경비원은 “신재생에너지 전공, 전자정보통신 전공 학생들이 실습하는 시설물들”이라고 소개했다.
본관 앞에 올라서자 가로 5m, 세로 2.5m 크기의 커다란 바위에 ‘주문식 교육의 발상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주변으로 ‘동부화재 금융실무 인력양성 협약’, ‘삼성에버랜드 주문식 교육 협약 체결’ 등 각종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국내 대기업들과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사이 6~7그루씩을 한 무더기로 한 소나무숲을 조성했고, 캠퍼스 길을 따라 목련과 복숭아, 튤립, 장미, 산수유 등 꽃피는 나무와 식물을 빼곡히 심어 놓았다. 이오득 시설지원팀장은 “학생들을 전문 기술인력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 대학의 목표이기 때문에 캠퍼스 전체를 실험·실습의 장소로 만들고, 작지만 활기찬 캠퍼스를 위해 사계절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도록 조경을 했다”고 말했다.
영어 표지판
‘main building’이라고 적힌 본관에 들어섰다. 내부 안내도는 모두 영어로 돼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사무실·강의실·화장실 등 모든 공간 출입구에 영어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바삐 들어온 택배기사가 지나는 학생을 붙들고 “학사운영처가 어디냐”고 물으니, 학생은 친절하게 사무실 앞까지 안내했다. 소재림(23·경영계열 2학년)씨는 “우리는 (영어표기가) 익숙한데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들 당황한다”며 “입학 초기엔 어색했지만, 한 단어 한 단어 영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2006년부터 캠퍼스 내 한글 표지판을 싹 없애고 모두 영어로 교체했다.
부지 18만9000여m2(5만7000여 평)에 캠퍼스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아담한 이 대학, 영진전문대는 캠퍼스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대부분 전문대학이 ‘전문대’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치 4년제처럼 교명을 바꾸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전문대’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그랬다. 더욱 특이한 것은 지방에 있는 이 작은 대학이 전국 최고(最高)의 전문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영진전문대는 《조선일보》와 한국생산성본부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2012년 국가고객만족도조사’에서 기업·호텔·공공기관 등을 따돌리고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전문대 부문에선 이미 11년째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에선 3년 연속 전국 1위 대학으로 선정돼 취업률·정원충원율·교수충원율·장학금비율 등 각종 대학 지표에서 전국 최우수임을 보여줬다.
이 밖에 교과부로부터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orld Class College)·산학협력 선도대학 등으로 선정됐고, 전문대 취업률 2년 연속 전국 1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문대학’ 2년 연속 선정 등 다양한 성과도 만들어왔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문대의 자존심인 셈이다.
최재영(崔宰榮·48) 총장은 “전문대학은 실무 중심의 낭비 없는 교육을 해서 기업체에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며 “곁눈 살피지 않고 전문대 고유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오늘날 영진전문대가 좋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주문식 교육은 최달곤 설립자의 아이디어
3월 4일은 2013학년도 입학식이 있던 날이다. 2800명이 넘는 입학생들이 행사가 열린 백호체육관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한 무리가 스쿨버스 앞에 모여 노트북 1대씩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영진전문대가 새롭게 도입해 선발한 ‘입도선매(立稻先賣) 과정’ 학생 40여 명이다. 전문계고의 경우 내신 1등급, 인문계고의 경우 내신 2등급 이내의 우수한 학생들로, 컴퓨터응용기계계열과 전자정보통신계열에서 각각 20명씩을 뽑았다. 쉽게 말해 ‘특설반’인 셈이다.
소수 정예화(교수 1명당 학생 5명)한 글로벌 톱클래스 환경에 2년 과정 동안 학생 1인당 2000여만 원씩의 장학 혜택을 제공한다.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 주는 것은 물론, 최신 시설의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학업에 필요한 개인 노트북도 지급한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 커리큘럼을 개발해 실습과 시뮬레이션 중심으로 강의하는 현장 중심 교육을 펼치고, 공동 연구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이들에게 자신이 맡은 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대학의 목표다.
교육은 교수와 산업체 전문가 투톱 체제로 가르치고, 해외 글로벌 인턴십과 국내 글로벌 기업에서의 현장실습을 지원한다. 기숙사에서는 전원 멘토-멘티 제도를 도입해 그룹 스터디와 토론, 창의성 프로그램 등을 운영,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과 감춰진 소양을 발굴해 낸다.
영진전문대는 ‘입도선매 과정’을 주문식 교육의 완성단계로 보고 있다.
주문식 교육은 영진전문대가 만들어낸 걸작품이자, 지금껏 경쟁력을 이어온 동력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전문기술 인력이 필요한 시대를 맞았지만, 교육현장에선 늘 공급자 위주 천편일률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에 1994년 당시 학장이었던 최달곤(崔達坤·77) 설립자가 “기존의 모든 교육과정을 버리자” 선언하며 주문식 교육시스템을 창안했다고 한다. 무엇을 가르쳐야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정확하게 맞는지 물어서 기업의 요구대로 맞춰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훗날 정부의 교육정책으로 채택됐고, 전국적으로 120여 개 대학으로 확산됐다.
최 설립자는 교수들과 함께 경기도 성남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합숙을 하며 토론을 벌여 새 교육과정을 짜냈고, 이 과정에서 학과 통폐합과 새로운 교재개발 등을 추진했다. 중앙일간지에 ‘산업체 근무 5년 이상인 분, 혹은 산업체에서 정년퇴임한 분으로 전공 분야 강의 및 산학 유대 강화에 기여하실 분을 모십니다’라는 문구로 광고도 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한 기업 출신의 교수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산업체 출신 교수 채용은 갈수록 늘어 현재 전 교원의 79%를 산업체 출신으로 채웠다.
5년간 대기업에 3300여 명 취업
초기엔 학과별로 몇 명씩 주문받아 보내주는 수준이었으나, 지난 2004년 6월 본격적인 주문식 교육의 틀을 갖췄다. ㈜하이닉스반도체(現 SK하이닉스)와 협약을 맺고 학과 내 ‘하이닉스반’을 만든 것이다. 당시 인터넷전자정보계열 학생들 중 40명을 뽑아 3학기 동안 하이닉스로부터 주문받은 11개 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마지막 학기인 2학년 2학기 때는 직접 회사로 보내 인턴십 현장실습 과정도 거쳤다. 결국 이들 40명은 그대로 하이닉스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이 회사에 입사한 영진전문대 출신은 모두 186명에 이른다.
주문식 교육의 성과는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 374개 기업과 협약을 맺어 주문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최근 5년 동안 삼성그룹, LG그룹, 두산그룹 등 대기업에 취업한 졸업생만 33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기업과도 주문식 교육 협약을 확대해 당당한 해외취업의 성과도 내고 있다. 이 대학 컴퓨터정보계열 ‘일본 IT기업주문반’은 올해 졸업생 20명 전원이 일본 도쿄에 있는 e-스토어, 악셀마크 등 8개 IT기업에 채용됐다. 작년에도 졸업생 24명 중 92%인 22명이 일본 소프트뱅크사를 비롯해 일본 IT기업에 취업했다.
전자상거래 시스템 개발·운용 업체인 e-스토어에 합격한 심수연(22)씨는 “대학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꿈에 그리던 해외취업에 성공했다”면서 “IT 실무능력은 물론, 일본어까지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남보다 열심히 일해 영진전문대 출신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영진전문대를 통해 해외로 취업한 졸업생은 최근 5년 동안 345명이다.
주문식 교육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해외 대학 관계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2년 필리핀 국립대학을 시작으로 베트남 호찌민과학기술대학, 중국 웨이하이기술직업대학 등에서 교수들이 주문식 교육 연수를 받고 갔다.
이렇게 발전한 주문식 교육을 이제부터는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게 영진전문대의 생각이다. 서정욱 산학운영팀장은 “입도선매 과정을 도입한 것은 한국 최고의 기술명장을 기르는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다”면서 “단순한 주문식 교육에서 벗어나 재능 있는 이공계 인재들에게 집중투자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졸업정원제’가 가져온 위기
1977년 3월 12일 ‘영진공업전문학교’로 문을 연 영진전문대는 전기, 전자, 통신 등 3개 학과 신입생 600명으로 출발했다. 당시 대구에선 제일 늦게 인가를 받아 출발한 전문대였다. 이후 1979년 전문대학으로 승격했고, 1980년 ‘영진실업전문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다가 1985년 지금의 ‘영진전문대’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영진(永進)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영원히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영진전문대의 오늘이 있기까지 고비도 있었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졸업정원제’ 때문이었다. 정부는 1980년 7월 30일 교육개혁조치를 발표, 재수생 증가와 과열과외를 막아보자며 졸업 정원을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입학생 확보 경쟁을 불러와 당시 뒤처져 있던 전문대들을 심각한 경영난으로 몰아넣었다.
최달곤 설립자는 “학생을 모집하느라 고등학교를 찾아가 간청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입학 정원이 1000여 명 수준이었는데도 36%밖에 못 채울 정도였으니 학생 수준은 최하위였고, 경영상황도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교수들이 고교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1인당 20만원씩을 주고 ‘학생 장사’를 벌이는 요즘 일부 대학 분위기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영진전문대는 ‘직업보도과’라는 행정기구를 만들어 풀어나갔다.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취업지도를 전담하는 부서였다. 직업보도과는 졸업생과 졸업예정자의 명단을 비치, 자격증 소지자 현황을 파악해 일일이 면담을 통해 취업을 알선했다. 교수들은 연고가 있는 기업체를 공단별, 회사별로 파악해 연 2차례 이상 찾아가도록 했고, 산업현장의 정보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교수와 기업체 관계자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산학협력교육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영진전문대는 1980년 말 취업률 80%를 기록했고, 이듬해 85%, 그 이듬해 88% 등으로 매년 취업률 상승행진을 이어갔다. 결국 취업을 통해 입학·졸업 정원을 유지해 나간 것이다.
1988년 졸업정원제는 폐지되고, 입학정원제가 부활됐다. 그해 입시에서 영진전문대는 평균 2.06대 1로, 대구·경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졸업정원제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실습환경을 구축하고, 취업지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등 대학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였다.
‘전문大의 서울大’
이때부터 영진전문대는 교육시설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최 전 학장은 아직도 캠퍼스에 나타나면 구석구석 다니며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직접 줍는다고 소문나 있다. 대학건설위원회를 만들어 화단과 야외 휴게소를 만들고, 운동장을 넓혔다. 이어 주변도로와 담장도 고쳐 산뜻하게 단장하고, 실습시설과 실습기자재도 대폭 늘렸다.
오늘날 영진전문대는 9개 계열, 3개 학과에 재학생 7680여 명이 공부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문대가 됐다. 2001년부터는 전문대학 최초로 ‘졸업인증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의 실력을 보증하고 있다. 재학 기간 동안 전공 관련 국가자격, 민간자격, 계열에서 추천하는 전공능력인증자격, 어학자격 등의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졸업인증제 운영 시범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간혹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부 대학 담당자들을 만나면 열이면 열 모두 ‘영진은 전문대 중 서울대’라고 말합니다. 영진에서 맞춤형 주문식 교육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는 전문대를 다소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였죠. 그러나 영진의 파격적인 발상이 전문대 이미지를 일거에 바꿔버렸습니다.”
1995년 영진전문대와 협약을 맺어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는 경북대 박찬석 전 총장의 평이다.
4년제 대학과 함께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에 참여
“4년제 대학 포기하고 전문대 왔다가 취업 대박 났어요. 전문대로 진로를 바꾼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결정 같습니다.”
올 2월 영진전문대 전자정보통신계열을 졸업하고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원상호(30)씨. 경북의 한 4년제 대학에 다니다 중퇴한 뒤 전문대로 유(U)턴한 졸업생이다. 그는 20대를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다가 포기할 때쯤인 2010년 가을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결정된다’는 영진전문대의 신문기사를 접했다. 이듬해 3월 늦깎이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한 원씨는 영진을 다니는 2년 내내 취업의 꿈을 꾸며 지냈다. 그는 “영진에 입학한 순간부터 이미 SK하이닉스 직원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모든 교육과정이 기업현장에 맞게 이뤄졌고, 수시로 현장에서 실무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4년 동안 영진전문대에 지원한 4년제 대학 졸업자 수는 1015명, 이 중 203명이 입학했다. 손준용 입시지원처장은 “갈수록 심화되는 취업난 속에서 취업에 대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 대학이 누릴 수 있는 특수인 셈”이라며 “앞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발굴해 질 높은 취업을 추구해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4년제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각종 국책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늘 영진전문대가 앞장선다. 지난 2011년 지식경제부가 추진한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QWL·Quality of Working Life)에 영진전문대는 대구·경북권 사업의 주관 대학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모두 6곳이 선정됐는데, 전문대가 주관을 맡은 지역은 대구·경북권이 유일하다.
금오공대·경운대·구미대학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 중인 대구·경북권 QWL 조성사업은 경북 구미시 옛 금오공대 부지와 칠곡군 영진전문대 칠곡캠퍼스 부지에 ‘QWL캠퍼스’와 ‘기업연구관’ 등을 지어 산·학·연이 어우러진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이다.
QWL캠퍼스에는 영진전문대 등 5개 대학이 전자·기계·디스플레이 등 인근 산업단지 관련 학과들을 옮기고, 4년제 3·4학년, 전문대 2학년 학생들이 직장에 다니면서 실습 등 다양한 전문교육을 받게 된다. 또 기업연구관에는 200여 개의 기업연구소를 유치하고, 근로자들을 위한 문화·복지·편의 기능을 갖출 계획이다. 이 캠퍼스는 앞으로 5년 동안 3000여 명의 인력을 양성하고, 200여 개 중소기업연구소를 유치해 입주기업의 매출총액을 1000억원 규모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1997년 당시 산업자원부가 ‘테크노파크’ 사업을 추진할 때도 영진전문대는 전국 전문대 중 유일하게 이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전국 13개 신청지역 중 대구와 경기, 인천, 충남, 경북, 광주 등 6개 지역이 선정됐는데, 대구 유치에 영진전문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북대, 계명대 등과 함께 모두 235억원의 교비를 투자해 테크노파크 인프라 구축을 내걸어 이 사업을 유치한 것이다. 이렇게 설립된 대구테크노파크는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이 지역의 기술혁신과 기술집약형 산업의 발전을 위해 협력과 연구개발, 자원을 집중시키는 단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성 상징하는 ‘전문대’ 이름 고집
지난 1998년 고등교육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전문대학들이 ‘전문’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고 4년제 대학처럼 ‘대학’ 혹은 ‘대학교’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영진전문대는 여전히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전문 명칭을 그대로 쓰는 곳은 전국 전문대 146곳 중 4곳이 전부다.
영진전문대가 ‘전문’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문화된 교육으로 특화된 대학이기 때문에 굳이 교명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영진전문대 교수·교직원들은 교명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나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전문’이라는 글자를 지키자는 의견을 냈다.
이도영 기획처장은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영진이 성장한 저력”이라며 “앞으로도 영진전문대는 36년 동안 만들고 지켜온 정체성을 꾸준히 지켜가며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영진전문대의 노력은 뜻 깊은 선물로 되돌아오고 있다. 지난 2월 15일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문식 교육으로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보은(報恩)장학금’을 내놨다. ‘SK하이닉스반’과 ‘귀뚜라미그룹반’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나며 십시일반 모은 2200만원을 전달한 것이다. 영진전문대의 ‘보은장학금’은 지난 2007년부터 7년째 이어지고 있는 릴레이 장학금이다. 지금까지 모두 9660여만 원이 후배들에게 전달됐다.
주문식 교육·산학협력 등으로 이 대학과 인연을 맺은 기업들도 “잘 가르친 직원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기업장학금을 매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제일모직, 상신브레이크 등 72개 기업이 최근 3년 동안 모두 2억4000여만 원의 장학금을 쾌척했다.
박재환 학생복지팀장은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 보내주니 기업들은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장학금을 전해주고 있다”며 “우리 대학은 앞으로 기업들이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전교생이 등록금 걱정 없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영진전문대 총장 崔宰榮
“가장 바쁜 총장이 되겠다”
“잘하는 대학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대학으로 평가받는 게 목표입니다.”
최재영(崔宰榮·48) 영진전문대 총장은 최달곤(崔達坤·77) 설립자의 아들이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뒤 1997년부터 경북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2002년 영진전문대 사회복지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기획부장·기획실장·경영기획부총장 등을 거치며 딱 10년 동안 대학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러고는 2012년 2월 총장에 취임했다. 취임 1년이 지난 그는 “설립자가 발전시켜 온 영진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뛰어다니고 있다”며 웃었다.
—아버지가 설립해 30여 년을 운영해 온 대학을 맡아 운영한다는 게 적잖게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대학에 와서 10년 동안 구석구석 구성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설립자께서 큰 경영을 하실 때 집안 살림살이를 맡았던 셈이죠. 그 기간이 있어서 그런지 부담보다는 하던 일이 좀 더 많아진 느낌입니다. 더 발전하고, 커지고, 유명해지기보다는 설립자의 뜻대로 우리 대학만의 원칙을 더욱 잘 지켜내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총장이라서 대학 구성원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영진은 전임 교수 192명 중 79%인 152명이 기업체 출신 경력자들입니다. 이 중 49%는 삼성·LG 등 대기업에서 왔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다른 대학들 분위기와 확연히 다릅니다. 젊은 총장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도 이 중 하나입니다. 캠퍼스에 도착하면 학생·교수·교직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눕니다. 또 수시로 구성원들 술자리에 끼어 소주를 얻어 마시기도 합니다. 잦은 스킨십만이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1등의 자리는 늘 불안하기 마련인데요.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갈 생각입니까.
“영진전문대는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이 아닙니다. 전문대가 가야 하는 원칙과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그 길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원래부터 목표였습니다. 앞으로 입학생 수가 줄어 대학들이, 특히 전문대들이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유행에 따른 변화보다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질, 일자리의 질, 학생들의 질을 높이는 게 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전문대 학생들이 취업하는 일자리는 사실 한계가 있지 않은가요.
“그래서 시도한 게 ‘입도선매 과정’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미리 뽑아 4년제 학생들도 가기 어려운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올해 첫 신입생 40명을 뽑아 파격적인 지원을 합니다. 2년 뒤 이 학생들의 성과가 영진이 가야 할 미래입니다. 앞서 우리 대학은 2007년부터 전문대 최초로 ‘최저학력 기준제’도 도입했습니다. 전문대가 공부 못해 일찍 취업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취업에만 매달리다 보면 인성·교양 교육이 허술해지기 마련일 텐데요.
“짧은 기간 기술연마와 취업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에게 인성·교양까지 교육시킨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교육과정에 포함시킨다고 학생들의 인성·교양 교육이 이뤄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인사 잘하기·봉사활동·MT 등 다양한 과외 활동을 늘려 학생들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 대기업에 취업한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금을 내놓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습니다.”
—영진은 교수·교직원·학생 모두가 바쁘고 힘든 대학으로 소문나 있더군요.
“가장 듣고 싶은 소리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요. 총장도 어느 대학 총장보다 바쁘고 힘든 총장이 되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만 꾸준히 간다면 영진은 우리나라 ‘전문대의 표상’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관 앞에 올라서자 가로 5m, 세로 2.5m 크기의 커다란 바위에 ‘주문식 교육의 발상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주변으로 ‘동부화재 금융실무 인력양성 협약’, ‘삼성에버랜드 주문식 교육 협약 체결’ 등 각종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국내 대기업들과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사이 6~7그루씩을 한 무더기로 한 소나무숲을 조성했고, 캠퍼스 길을 따라 목련과 복숭아, 튤립, 장미, 산수유 등 꽃피는 나무와 식물을 빼곡히 심어 놓았다. 이오득 시설지원팀장은 “학생들을 전문 기술인력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 대학의 목표이기 때문에 캠퍼스 전체를 실험·실습의 장소로 만들고, 작지만 활기찬 캠퍼스를 위해 사계절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도록 조경을 했다”고 말했다.
영어 표지판
‘main building’이라고 적힌 본관에 들어섰다. 내부 안내도는 모두 영어로 돼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사무실·강의실·화장실 등 모든 공간 출입구에 영어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바삐 들어온 택배기사가 지나는 학생을 붙들고 “학사운영처가 어디냐”고 물으니, 학생은 친절하게 사무실 앞까지 안내했다. 소재림(23·경영계열 2학년)씨는 “우리는 (영어표기가) 익숙한데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들 당황한다”며 “입학 초기엔 어색했지만, 한 단어 한 단어 영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2006년부터 캠퍼스 내 한글 표지판을 싹 없애고 모두 영어로 교체했다.
부지 18만9000여m2(5만7000여 평)에 캠퍼스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아담한 이 대학, 영진전문대는 캠퍼스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대부분 전문대학이 ‘전문대’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치 4년제처럼 교명을 바꾸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전문대’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그랬다. 더욱 특이한 것은 지방에 있는 이 작은 대학이 전국 최고(最高)의 전문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영진전문대는 《조선일보》와 한국생산성본부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2012년 국가고객만족도조사’에서 기업·호텔·공공기관 등을 따돌리고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전문대 부문에선 이미 11년째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에선 3년 연속 전국 1위 대학으로 선정돼 취업률·정원충원율·교수충원율·장학금비율 등 각종 대학 지표에서 전국 최우수임을 보여줬다.
이 밖에 교과부로부터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orld Class College)·산학협력 선도대학 등으로 선정됐고, 전문대 취업률 2년 연속 전국 1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문대학’ 2년 연속 선정 등 다양한 성과도 만들어왔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문대의 자존심인 셈이다.
최재영(崔宰榮·48) 총장은 “전문대학은 실무 중심의 낭비 없는 교육을 해서 기업체에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며 “곁눈 살피지 않고 전문대 고유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오늘날 영진전문대가 좋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주문식 교육은 최달곤 설립자의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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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진전문대 교내에 있는 주문식교육 표지석. |
소수 정예화(교수 1명당 학생 5명)한 글로벌 톱클래스 환경에 2년 과정 동안 학생 1인당 2000여만 원씩의 장학 혜택을 제공한다.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 주는 것은 물론, 최신 시설의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학업에 필요한 개인 노트북도 지급한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 커리큘럼을 개발해 실습과 시뮬레이션 중심으로 강의하는 현장 중심 교육을 펼치고, 공동 연구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이들에게 자신이 맡은 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대학의 목표다.
교육은 교수와 산업체 전문가 투톱 체제로 가르치고, 해외 글로벌 인턴십과 국내 글로벌 기업에서의 현장실습을 지원한다. 기숙사에서는 전원 멘토-멘티 제도를 도입해 그룹 스터디와 토론, 창의성 프로그램 등을 운영,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과 감춰진 소양을 발굴해 낸다.
영진전문대는 ‘입도선매 과정’을 주문식 교육의 완성단계로 보고 있다.
주문식 교육은 영진전문대가 만들어낸 걸작품이자, 지금껏 경쟁력을 이어온 동력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전문기술 인력이 필요한 시대를 맞았지만, 교육현장에선 늘 공급자 위주 천편일률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에 1994년 당시 학장이었던 최달곤(崔達坤·77) 설립자가 “기존의 모든 교육과정을 버리자” 선언하며 주문식 교육시스템을 창안했다고 한다. 무엇을 가르쳐야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정확하게 맞는지 물어서 기업의 요구대로 맞춰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훗날 정부의 교육정책으로 채택됐고, 전국적으로 120여 개 대학으로 확산됐다.
최 설립자는 교수들과 함께 경기도 성남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합숙을 하며 토론을 벌여 새 교육과정을 짜냈고, 이 과정에서 학과 통폐합과 새로운 교재개발 등을 추진했다. 중앙일간지에 ‘산업체 근무 5년 이상인 분, 혹은 산업체에서 정년퇴임한 분으로 전공 분야 강의 및 산학 유대 강화에 기여하실 분을 모십니다’라는 문구로 광고도 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한 기업 출신의 교수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산업체 출신 교수 채용은 갈수록 늘어 현재 전 교원의 79%를 산업체 출신으로 채웠다.
5년간 대기업에 3300여 명 취업
초기엔 학과별로 몇 명씩 주문받아 보내주는 수준이었으나, 지난 2004년 6월 본격적인 주문식 교육의 틀을 갖췄다. ㈜하이닉스반도체(現 SK하이닉스)와 협약을 맺고 학과 내 ‘하이닉스반’을 만든 것이다. 당시 인터넷전자정보계열 학생들 중 40명을 뽑아 3학기 동안 하이닉스로부터 주문받은 11개 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마지막 학기인 2학년 2학기 때는 직접 회사로 보내 인턴십 현장실습 과정도 거쳤다. 결국 이들 40명은 그대로 하이닉스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이 회사에 입사한 영진전문대 출신은 모두 186명에 이른다.
주문식 교육의 성과는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 374개 기업과 협약을 맺어 주문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최근 5년 동안 삼성그룹, LG그룹, 두산그룹 등 대기업에 취업한 졸업생만 33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기업과도 주문식 교육 협약을 확대해 당당한 해외취업의 성과도 내고 있다. 이 대학 컴퓨터정보계열 ‘일본 IT기업주문반’은 올해 졸업생 20명 전원이 일본 도쿄에 있는 e-스토어, 악셀마크 등 8개 IT기업에 채용됐다. 작년에도 졸업생 24명 중 92%인 22명이 일본 소프트뱅크사를 비롯해 일본 IT기업에 취업했다.
전자상거래 시스템 개발·운용 업체인 e-스토어에 합격한 심수연(22)씨는 “대학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꿈에 그리던 해외취업에 성공했다”면서 “IT 실무능력은 물론, 일본어까지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남보다 열심히 일해 영진전문대 출신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영진전문대를 통해 해외로 취업한 졸업생은 최근 5년 동안 345명이다.
주문식 교육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해외 대학 관계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2년 필리핀 국립대학을 시작으로 베트남 호찌민과학기술대학, 중국 웨이하이기술직업대학 등에서 교수들이 주문식 교육 연수를 받고 갔다.
이렇게 발전한 주문식 교육을 이제부터는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게 영진전문대의 생각이다. 서정욱 산학운영팀장은 “입도선매 과정을 도입한 것은 한국 최고의 기술명장을 기르는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다”면서 “단순한 주문식 교육에서 벗어나 재능 있는 이공계 인재들에게 집중투자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졸업정원제’가 가져온 위기
1977년 3월 12일 ‘영진공업전문학교’로 문을 연 영진전문대는 전기, 전자, 통신 등 3개 학과 신입생 600명으로 출발했다. 당시 대구에선 제일 늦게 인가를 받아 출발한 전문대였다. 이후 1979년 전문대학으로 승격했고, 1980년 ‘영진실업전문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다가 1985년 지금의 ‘영진전문대’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영진(永進)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영원히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영진전문대의 오늘이 있기까지 고비도 있었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졸업정원제’ 때문이었다. 정부는 1980년 7월 30일 교육개혁조치를 발표, 재수생 증가와 과열과외를 막아보자며 졸업 정원을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입학생 확보 경쟁을 불러와 당시 뒤처져 있던 전문대들을 심각한 경영난으로 몰아넣었다.
최달곤 설립자는 “학생을 모집하느라 고등학교를 찾아가 간청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입학 정원이 1000여 명 수준이었는데도 36%밖에 못 채울 정도였으니 학생 수준은 최하위였고, 경영상황도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교수들이 고교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1인당 20만원씩을 주고 ‘학생 장사’를 벌이는 요즘 일부 대학 분위기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영진전문대는 ‘직업보도과’라는 행정기구를 만들어 풀어나갔다.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취업지도를 전담하는 부서였다. 직업보도과는 졸업생과 졸업예정자의 명단을 비치, 자격증 소지자 현황을 파악해 일일이 면담을 통해 취업을 알선했다. 교수들은 연고가 있는 기업체를 공단별, 회사별로 파악해 연 2차례 이상 찾아가도록 했고, 산업현장의 정보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교수와 기업체 관계자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산학협력교육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영진전문대는 1980년 말 취업률 80%를 기록했고, 이듬해 85%, 그 이듬해 88% 등으로 매년 취업률 상승행진을 이어갔다. 결국 취업을 통해 입학·졸업 정원을 유지해 나간 것이다.
1988년 졸업정원제는 폐지되고, 입학정원제가 부활됐다. 그해 입시에서 영진전문대는 평균 2.06대 1로, 대구·경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졸업정원제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실습환경을 구축하고, 취업지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등 대학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였다.
‘전문大의 서울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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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진 가상공학센터 3D 디지털콘텐츠 제작 실습 모습. |
오늘날 영진전문대는 9개 계열, 3개 학과에 재학생 7680여 명이 공부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문대가 됐다. 2001년부터는 전문대학 최초로 ‘졸업인증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의 실력을 보증하고 있다. 재학 기간 동안 전공 관련 국가자격, 민간자격, 계열에서 추천하는 전공능력인증자격, 어학자격 등의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졸업인증제 운영 시범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간혹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부 대학 담당자들을 만나면 열이면 열 모두 ‘영진은 전문대 중 서울대’라고 말합니다. 영진에서 맞춤형 주문식 교육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는 전문대를 다소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였죠. 그러나 영진의 파격적인 발상이 전문대 이미지를 일거에 바꿔버렸습니다.”
1995년 영진전문대와 협약을 맺어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는 경북대 박찬석 전 총장의 평이다.
4년제 대학과 함께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에 참여
“4년제 대학 포기하고 전문대 왔다가 취업 대박 났어요. 전문대로 진로를 바꾼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결정 같습니다.”
올 2월 영진전문대 전자정보통신계열을 졸업하고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원상호(30)씨. 경북의 한 4년제 대학에 다니다 중퇴한 뒤 전문대로 유(U)턴한 졸업생이다. 그는 20대를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다가 포기할 때쯤인 2010년 가을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결정된다’는 영진전문대의 신문기사를 접했다. 이듬해 3월 늦깎이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한 원씨는 영진을 다니는 2년 내내 취업의 꿈을 꾸며 지냈다. 그는 “영진에 입학한 순간부터 이미 SK하이닉스 직원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모든 교육과정이 기업현장에 맞게 이뤄졌고, 수시로 현장에서 실무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4년 동안 영진전문대에 지원한 4년제 대학 졸업자 수는 1015명, 이 중 203명이 입학했다. 손준용 입시지원처장은 “갈수록 심화되는 취업난 속에서 취업에 대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 대학이 누릴 수 있는 특수인 셈”이라며 “앞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발굴해 질 높은 취업을 추구해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4년제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각종 국책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늘 영진전문대가 앞장선다. 지난 2011년 지식경제부가 추진한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QWL·Quality of Working Life)에 영진전문대는 대구·경북권 사업의 주관 대학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모두 6곳이 선정됐는데, 전문대가 주관을 맡은 지역은 대구·경북권이 유일하다.
금오공대·경운대·구미대학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 중인 대구·경북권 QWL 조성사업은 경북 구미시 옛 금오공대 부지와 칠곡군 영진전문대 칠곡캠퍼스 부지에 ‘QWL캠퍼스’와 ‘기업연구관’ 등을 지어 산·학·연이 어우러진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이다.
QWL캠퍼스에는 영진전문대 등 5개 대학이 전자·기계·디스플레이 등 인근 산업단지 관련 학과들을 옮기고, 4년제 3·4학년, 전문대 2학년 학생들이 직장에 다니면서 실습 등 다양한 전문교육을 받게 된다. 또 기업연구관에는 200여 개의 기업연구소를 유치하고, 근로자들을 위한 문화·복지·편의 기능을 갖출 계획이다. 이 캠퍼스는 앞으로 5년 동안 3000여 명의 인력을 양성하고, 200여 개 중소기업연구소를 유치해 입주기업의 매출총액을 1000억원 규모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1997년 당시 산업자원부가 ‘테크노파크’ 사업을 추진할 때도 영진전문대는 전국 전문대 중 유일하게 이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전국 13개 신청지역 중 대구와 경기, 인천, 충남, 경북, 광주 등 6개 지역이 선정됐는데, 대구 유치에 영진전문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북대, 계명대 등과 함께 모두 235억원의 교비를 투자해 테크노파크 인프라 구축을 내걸어 이 사업을 유치한 것이다. 이렇게 설립된 대구테크노파크는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이 지역의 기술혁신과 기술집약형 산업의 발전을 위해 협력과 연구개발, 자원을 집중시키는 단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성 상징하는 ‘전문대’ 이름 고집
지난 1998년 고등교육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전문대학들이 ‘전문’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고 4년제 대학처럼 ‘대학’ 혹은 ‘대학교’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영진전문대는 여전히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전문 명칭을 그대로 쓰는 곳은 전국 전문대 146곳 중 4곳이 전부다.
영진전문대가 ‘전문’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문화된 교육으로 특화된 대학이기 때문에 굳이 교명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영진전문대 교수·교직원들은 교명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나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전문’이라는 글자를 지키자는 의견을 냈다.
이도영 기획처장은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영진이 성장한 저력”이라며 “앞으로도 영진전문대는 36년 동안 만들고 지켜온 정체성을 꾸준히 지켜가며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영진전문대의 노력은 뜻 깊은 선물로 되돌아오고 있다. 지난 2월 15일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문식 교육으로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보은(報恩)장학금’을 내놨다. ‘SK하이닉스반’과 ‘귀뚜라미그룹반’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나며 십시일반 모은 2200만원을 전달한 것이다. 영진전문대의 ‘보은장학금’은 지난 2007년부터 7년째 이어지고 있는 릴레이 장학금이다. 지금까지 모두 9660여만 원이 후배들에게 전달됐다.
주문식 교육·산학협력 등으로 이 대학과 인연을 맺은 기업들도 “잘 가르친 직원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기업장학금을 매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제일모직, 상신브레이크 등 72개 기업이 최근 3년 동안 모두 2억4000여만 원의 장학금을 쾌척했다.
박재환 학생복지팀장은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 보내주니 기업들은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장학금을 전해주고 있다”며 “우리 대학은 앞으로 기업들이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전교생이 등록금 걱정 없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영진전문대 총장 崔宰榮
“가장 바쁜 총장이 되겠다”
“잘하는 대학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대학으로 평가받는 게 목표입니다.”최재영(崔宰榮·48) 영진전문대 총장은 최달곤(崔達坤·77) 설립자의 아들이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뒤 1997년부터 경북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2002년 영진전문대 사회복지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기획부장·기획실장·경영기획부총장 등을 거치며 딱 10년 동안 대학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러고는 2012년 2월 총장에 취임했다. 취임 1년이 지난 그는 “설립자가 발전시켜 온 영진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뛰어다니고 있다”며 웃었다.
—아버지가 설립해 30여 년을 운영해 온 대학을 맡아 운영한다는 게 적잖게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대학에 와서 10년 동안 구석구석 구성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설립자께서 큰 경영을 하실 때 집안 살림살이를 맡았던 셈이죠. 그 기간이 있어서 그런지 부담보다는 하던 일이 좀 더 많아진 느낌입니다. 더 발전하고, 커지고, 유명해지기보다는 설립자의 뜻대로 우리 대학만의 원칙을 더욱 잘 지켜내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총장이라서 대학 구성원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영진은 전임 교수 192명 중 79%인 152명이 기업체 출신 경력자들입니다. 이 중 49%는 삼성·LG 등 대기업에서 왔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다른 대학들 분위기와 확연히 다릅니다. 젊은 총장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도 이 중 하나입니다. 캠퍼스에 도착하면 학생·교수·교직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눕니다. 또 수시로 구성원들 술자리에 끼어 소주를 얻어 마시기도 합니다. 잦은 스킨십만이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1등의 자리는 늘 불안하기 마련인데요.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갈 생각입니까.
“영진전문대는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이 아닙니다. 전문대가 가야 하는 원칙과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그 길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원래부터 목표였습니다. 앞으로 입학생 수가 줄어 대학들이, 특히 전문대들이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유행에 따른 변화보다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질, 일자리의 질, 학생들의 질을 높이는 게 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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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NCSI 1위 인증패 수여식. |
“그래서 시도한 게 ‘입도선매 과정’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미리 뽑아 4년제 학생들도 가기 어려운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올해 첫 신입생 40명을 뽑아 파격적인 지원을 합니다. 2년 뒤 이 학생들의 성과가 영진이 가야 할 미래입니다. 앞서 우리 대학은 2007년부터 전문대 최초로 ‘최저학력 기준제’도 도입했습니다. 전문대가 공부 못해 일찍 취업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취업에만 매달리다 보면 인성·교양 교육이 허술해지기 마련일 텐데요.
“짧은 기간 기술연마와 취업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에게 인성·교양까지 교육시킨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교육과정에 포함시킨다고 학생들의 인성·교양 교육이 이뤄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인사 잘하기·봉사활동·MT 등 다양한 과외 활동을 늘려 학생들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 대기업에 취업한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금을 내놓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습니다.”
—영진은 교수·교직원·학생 모두가 바쁘고 힘든 대학으로 소문나 있더군요.
“가장 듣고 싶은 소리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요. 총장도 어느 대학 총장보다 바쁘고 힘든 총장이 되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만 꾸준히 간다면 영진은 우리나라 ‘전문대의 표상’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