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대로 받지 웬 잔말들이 많아!’라고 생각하면 평생 대화가 안 됩니다. 지난 20년간 방폐장 부지를 구하느라 다 실패하고 경주가 받아줬지 않았나요? 그 바탕 위에 원전과 경주시와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 부안터미널 시장 내 점포, 장사 안 돼 시가는 10년 전 1/4로 하락
⊙ 부안사태 당시 폭행당한 金宗奎 전 군수 2007년 군수 보선에서 40.4% 득표
⊙ 경주주민 89.5%의 찬성으로 양북면 봉길리에 방폐장 건설 중
⊙ 유치 인센티브 효과 체감 못 해… 월성1호기 재연장과 신월성 1, 2호기 가동이 새 불씨
⊙ 부안터미널 시장 내 점포, 장사 안 돼 시가는 10년 전 1/4로 하락
⊙ 부안사태 당시 폭행당한 金宗奎 전 군수 2007년 군수 보선에서 40.4% 득표
⊙ 경주주민 89.5%의 찬성으로 양북면 봉길리에 방폐장 건설 중
⊙ 유치 인센티브 효과 체감 못 해… 월성1호기 재연장과 신월성 1, 2호기 가동이 새 불씨
-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에 있는 2003년 당시 방폐장 건설 예정지. 한때 부안의 미래를 약속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여기는 먹고살 게 암 것도 없당게요. 터미널 근처도 요렇게 조용헌게… 저녁 8시만 돼도 차만 댕기제, 사람은 나다니질 않은디. 부안은 완전히 죽어버렸어라.”
전북 부안군 터미널 앞에서 노점을 하는 박모(51)씨는 경기를 묻자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한탄했다. 4월 6일 오후 6시 부안터미널 출구로 나서자 ‘빈차’등을 켠 택시 7~8대가 있었다. 방향을 틀어 시장 쪽으로 갔다. 택시 10여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근처 가게에 삼삼오오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손님인가’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방 소도시 터미널은 해당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핵심 상권이다. 주민이나 외지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안은 터미널 지근거리에 관공서와 금융기관이 있다. 유동인구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만, 9년 전 ‘반핵(反核)운동’의 중심이었던 부안읍의 첫인상은 한적하고 쓸쓸했다.
“외지인 말 들으니 扶安 망할 것 같아 반대”
2003년 부안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정부는 방폐장 수용 지자체에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6700억원 ▲양성자 기반 공학기술개발 사업장 1600억원 ▲테크노파크 800억원 ▲산업단지 1500억원 ▲배후주거단지 1100억원 ▲관광·레저 단지 1500억원 ▲SOC 건설 4500억원 ▲지자체 특별 지원 3000억원 등을 골자로 하는 지원을 약속했다. 17년째 표류하는 국책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건 것이었다.
그해 5월 위도 주민들은 후보지가 아니었지만, 방폐장 유치를 청원했다. 같은 해 7월 14일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는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유치를 신청했고, 산업자원부는 24일 이를 확정했다. 산업자원부는 “부안군은 지원계획에 따라 전형적인 산업·주택·복지·문화시설을 골고루 갖춘 전원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장밋빛 부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내 ‘핵폐기장추방범부안대책위’가 발족했다. 전국에서 환경단체, 전문 시위꾼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방폐장을 핵폐기장으로 불렀고, “핵은 죽음이다”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기형아를 낳는다”며 주민들을 선동했다. 거리 곳곳에는 기형아와 기형 가축의 사진이 나붙었다. 밤마다 반대론자들 주도로 핵 공포를 조장하는 강좌가 열렸다. 이곳에 지역구를 둔 당시 여당(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였던 정균환 의원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부안읍 주민 김경호(38)씨는 2003년 당시 반대 입장에 섰던 사람이다. 그는 “그때는 문을 연 상점이 있으면, 사람들이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망가뜨리고, 집단 따돌림을 했었다”며 “외부 사람들과 반대론자들이 틀어대는 동영상이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방폐장이 들어서면 부안이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밤 열린 ‘강좌’에서 주입식 교육을 했는데, 그런 걸 접하다 보니 찬성 입장을 밝혔던 청년회의소조차도 반대로 돌아서더라고요.”
김씨는 썰렁한 부안수협 앞 도로를 가리키며 “부안읍 인구가 2만명 남짓인데 이곳에서 전·의경 8000명과 주민이 대치했었다”고 회상했다. 부안은 방폐장 유치 신청을 한 2003년 7월부터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시위대는 쇠파이프, 화염병, 가스통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해상 시위를 벌였다. 초·중·고교 학생들도 ‘반핵투쟁’에 동참해 8월 25일부터 등교를 거부했다. 41일간 전개된 등교거부는 평균 50.5%, 높을 때는 80%에 달하는 참여율을 기록했다. 9월에는 내소사를 방문한 김종규 군수가 시위대에 집단구타를 당했다. 반대론자들은 이를 ‘제2의 광주’, ‘파리 코뮌’에 빗댄 ‘부안 코뮌’이라고 극찬했다.
극렬한 반발에 부딪힌 정부는 12월 10일 ‘방폐장 부지선정 원점 재검토’ ‘유치신청 추가 접수’ ‘주민투표를 통한 결정’ 방침을 발표했다. 2004년 2월 부안 전체 유권자 5만2108명 중 3만7540명이 참여한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결과는 3만4472명(91.83%)이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관계 법령에 따라 법적 효력을 갖지 못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찬반 논쟁은 계속됐다.
“부안은 빈 껍데기, 알짜배기는 빠져나가”
같은 해 11월 국가인권위는 “방폐장 추진 절차가 주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속된 극렬한 반발에 12월 1일 정부는 부안 방폐장 관련 전 계획을 취소했다. 이날 부안주민들은 ‘백지화 선언’ 승리 대회를 열었다.
1년6개월 동안 벌인 투쟁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부안군 주민 166명이 구속·불구속 기소됐고, 이 중 5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찰과 주민을 포함한 5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지역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었던 방폐장 유치에 따른 경제적 지원이 사라졌다. 찬반으로 갈렸던 부안주민들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방폐장 유치를 하지 않았어도 경제가 발전하고, 주민들이 행복해졌어야 한다. 그래야 손익계산서의 대차가 맞는다. 8년이 지난 지금 과연 부안주민들은 ‘행복’해졌을까. 김경호씨에게 물었다.
―2004년 전보다 부안은 살기 좋아졌습니까.
“예전에는 참 먹고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빈 껍데기만 남았죠. 그전에는 펄에서 조개만 캐도 하루 10만원은 거뜬했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돈 들고 나와 읍내에서 쓰는 게 부안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덕분에 현금회전율이 굉장히 빨랐죠. 지금은 펄이 죽어서 조개도 안 나오고, 군산으로 가는 도로가 뚫려서 변산이나 격포에 온 관광객들이 부안까지 오질 않아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죠.”
―경기가 어느 정도로 안 좋습니까.
“예를 들자면 제가 시장에 4평짜리 가게를 갖고 있는데 10년 전에 1억원이었어요. 지금은 2500만원밖에 안 해요.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부동산 거래도 없고, 자꾸 가격은 내려가고요.”
―방폐장 유치 반대를 후회합니까.
“방폐장이 들어왔으면 일자리가 생겼을 텐데. 지금 젊은 사람들이 할 게 없어요. 똑똑하거나 돈 있는 알짜배기들은 다 외지로 나가고, 제 또래 중 남은 사람들은 공무원, 택시기사만 있다고 봐도 돼요. 그리고 당시에 시위하는 모습이 그렇게 나왔는데 어떤 기업이 오려고 하겠어요.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가 없지요.”
다음 날 아침 방폐장 유치 청원을 했던 위도를 찾기 위해 격포항으로 향했다. 택시기사 정모(63)씨에게 방폐장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때 방폐장을 유치했어야 쓴디”라며 혀를 찼다. 정씨는 “당시 찬성 입장이었지만, 입도 뻥긋 못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만 되믄 그것만치 부안에 좋은 일이 어디 있었겄습니까. 속으로는 찬성했는디, 개인택시조합 차원에서 시위를 나가자니까 택시 몰고 시위하러 댕기고 그랬습니다. 안 가믄 택시도 다 부숴버리고 따돌리니까. 그때 불참했던 6대는 조합에서 탈퇴시키고 그랬당게요.”
“金大中, 盧武鉉이 나섰어야”
―방폐장에 대한 공포나 거부감은 없었습니까.
“제가 80년대까지는 관광버스 운전을 해갖고 고리하고 월성원전 견학단을 자주 태웠는디, 그때 본 게 원자력이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랑게요. 근게 방폐장이 들어온다 해도 무섭든 안 했고. 그때 김대중씨나 노무현씨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군수였던 김종규씨가 밀어붙이는 식으로만 안 했어도 괜찮았을 것인디.”
―김종규 전 군수에 대해 주민들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금 와서는 김종규씨에 대해 추진력이나 진정성 등에서 좋게들 말합디다. 금번 총선(고창·부안)에 나왔는디, 하는 얘기들 들어본게 무시 못할 것 같더구먼. 2007년 군수 재선 때도 40% 득표해서, 한 3000표 차이로 떨어졌은게 부안에서만큼은 민주당 후보하고 지지율이 비슷할 것이오.”(김종규 전 군수는 4·11총선에 출마, 1위와 3000여표 차이가 나는 2위(33.8%)로 고배를 마셨다).
―요즘 택시영업은 잘됩니까.
“나는 자식들 다 여웠은게 상관없는디 옛날허고 비교하믄 말도 못 한당게요. 예전에 개인택시 하는 사람들은 밤 10시까지만 운행해도 충분히 벌었은게 집에 들어갔는디 지금은 새벽까지 해도 돈이 안 된게 죽을라 해요.”
격포항에 도착해 위도로 가는 카페리를 탔다. 섬의 생김새가 고슴도치와 닮아 ‘고슴도치 위(蝟)’자를 쓰는 위도는 격포에서 직선거리로 14km 떨어져 있어 배로 가는 데 50분 정도 걸린다. 카페리호 선장 송주길(70·포유디해운)씨는 위도에 대해 “현재 위도 주민은 위도진에 주둔했던 수군들의 후손들로 대부분 친척 사이”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도 주민 중 일부가 방폐장 찬성을 했다가 정부가 현금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니까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서로 다 친척인데도 싸우고 그랬어요. 그 뒤로도 유치 문제로 한번씩 들썩거리다가,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을 때 반대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차피 끝난 일이니까 모두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안, 原電 있는 영광보다 인구 감소폭 크고 경제도 낙후돼
오후 12시30분 위도 파장금항에 내렸다. 점심때인 탓일까. 가장 붐벼야 할 항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파장금항에서 면 소재지 진리까지는 대략 2.5km. 기자가 면사무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차량은 트럭 1대뿐이었다. 그 차량을 보기 전까지 기자에게 위도는 무인도나 다름없었다. 진리에 도착해 면사무소의 협조를 얻어 치도리에 있는 방폐장 건설 예정지로 갔다. 버려진 땅,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위도에 방폐장이 건설됐다면, 부안에 한수원 본사가 이전하게 되고, 한수원 직원 700여 명과 가족, 협력업체 직원이 이주했을 것이다. 계량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이들의 소비활동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을 것이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경북전략산업기획단은 방폐장 유치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는 2만9000여 명이라고 밝혔다. 2011년 12월 말 기준 부안 인구 5만9166명 중 생산가능인구(15~64세) 4만4000명. 지역 주민만 고용한다면 부안 생산가능인구의 66%를 고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방폐장 건설 총파급 효과를 3조6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0년 부안군 자체수입(지방세 및 세외수입) 1243억원의 약 29배에 달한다. 예정대로 치도리에 방폐장이 들어섰다면 당시 선전구호처럼 “지역발전을 30년 앞당길 수 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이익이 됐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부안에 남은 것은 ‘정체’ ‘갈등 후유증’ 말고는 없다.
최근 5년간 부안군의 인구는 ▲2007년 6만2124명 ▲2008년 6만962명 ▲2009년 6만265명 ▲2010년 6만282명 ▲2011년 5만9166명으로, 총 2958명이 감소했다. 서해안에 입지한 인근의 다른 기초 지자체와 비교했을 때 부안의 인구 감소폭은 매우 높다. 같은 기간 부안보다 인구가 적었던 인근의 전북 고창군은 이 기간에 101명 줄어 지금은 오히려 부안보다 인구가 1000명가량 많다. 부안사태 당시 표현대로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 6기가 있는 전남 영광군은 1974명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영광군 인구는 5만7037명으로 부안군보다 약 3200명이 적지만, 지역내총생산(GRDP)은 1조8837억원이다. 같은 해 부안의 GRDP 1조380억원보다 81.5% 큰 금액이다. 결국 부안은 원전이 있는 영광보다 인구 유출이 심하고 경제면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90% 찬성으로 천년古都에 방폐장 유치한 경주
4월의 경주는 꽃단장을 위해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의 고도(古都)였다. 가벼운 옷차림의 상춘객이 불국사와 대릉원(大陵苑)을 걸어가고 있었고, 인왕동(洞) 넓은 평지에 우뚝 솟은 첨성대 곁으로 관광버스가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라천년의 문화유산이 즐비한 이곳에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10명 중 9명이 쌍수(雙手)를 들었다고 한다.
경주시는 지난 2005년 11월 2일 20만8607명의 선거인 중 70.8%(14만7636명)의 주민이 투표해 무려 89.5%의 찬성률로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방폐장을 유치했다. 경쟁도시였던 군산(찬성률 84.4%), 영덕(79.3%), 포항(67.5%)을 모두 제쳤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이용래(李鎔來) 부이사장은 이를 두고 “경주시민들이 신라통일 이후 이처럼 뭉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 해 전인 2004년 2월 14일 전북 부안 주민들의 91.8%가 방폐장 유치 반대의 뜻을 밝힌 지 21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경주는 이후 얼마나 달라졌을까.
방폐장 건립 대가로 주어진 3000억원의 ‘달콤한’ 돈다발(특별지원금)과 황금알을 낳는다는 양성자가속기 유치, 한국수력원자력㈜과 방폐공단 경주 이전, 기본 전기료와 TV 수신료 전액 지원, 여기다 방폐장 유치지역지원사업으로 모두 3조4350억원에 달하는 국비지원이 보장된 ‘약속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돈 폭탄’이 어디로 갔나?
기자는 옛 경주여중 교사(校舍)에 자리 잡은 방폐공단을 찾았다. 중앙지 기자 출신인 이정화 홍보과장은 공단이 지난해 본사를 경주로 이전하면서 아이와 함께 이사와 경주시민이 됐다. 250명의 공단 직원 중 대부분이 경주로 주소지를 옮겼다고 한다. 그는 “보문단지 개발 이후 고도(古都)보존 특별법(역사적 문화 환경을 유지·보존하기 위해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등을 제한하는 조치)으로 수십 년간 개발이 지체된 경주가, 태권도 공원 유치와 경마장 건설, 고속철도 역사마저 유치를 실패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방폐장 유치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경주시의회는 2005년 4월 전국 최초로 ‘원전특위’를 구성하는 열정을 보였다. 심지어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참여하는 ‘국책사업경주유치추진단(줄여서 국경추)’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 과장은 “이미 경주 월성에 원전 4호기와 신월성 1, 2호기가 있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걱정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고 했다.
반핵(反核)단체인 ‘경주 핵대책 시민연대’가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를 찬성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어 반핵 측인 ‘경주 환경운동연합’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대세(大勢)는 유치 찬성 쪽이었다. 생태주의 담론이 지역발전 담론 앞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주 분위기는 7년 전과 다르다. 과거의 열띤 환영 분위기는 식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제는 ‘돈’이었다.
‘돈 폭탄’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주의 지나가는 개도 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은 풍문이었다. 방폐공단 이용래 부이사장은 “유토피아적 혜택이 주어질 것이란 생각이 무너지면서 경주는 지금 허탈해 하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방폐장 돈 SOC 사업에 써”
사실 인구 30만의 도시에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은 큰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개인에게 현금보상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돈은 주로 지체된 SOC 사업에 쓰였다. 현재 3000억원 중 1500억원을 이미 쓴 상태다. 장학기금 조성(100억원)과 도로 확·포장, 화장장, 쓰레기 매립장 조성에 썼다고 한다. 남은 1500억원은 ‘미래발전 및 균형개발 사업’ 등의 현안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다.
딜레마는 경주의 재정여건이 부실하다는 데 있다. 2011년 현재 재정자립도는 25.2%. 244개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 51.9%에 훨씬 못 미친다. 빠듯한 시 살림에 보태면,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경주문화원 부원장이자 ‘경주 핵대책 시민연대’ 공동대표인 남홍(南弘)씨는 “1500억원 중 장학금 100억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경주시 자체 경상예산으로 진행해야 할 사업에 쓰였다. 그러니 경주시민들이 전혀 ‘돈 폭탄’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돈이 오히려 지역 불화만 낳았다. 시장과 시의회는 자신의 선거만을 생각해 돈 쓸 궁리를 한다. 목돈이 생겼을 때 경주의 ‘천년비전’을 새로 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폐장 유치지역에 지원키로 한 국비사업도 경주시민들은 속도가 더디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 지원사업은 모두 55개로 총 사업비가 3조4359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2011년까지 확보된 사업비는 1조371억원. 전체 사업비의 30% 정도다.
방폐장 유치 당시 집행위원장을 맡아 찬성 여론에 불을 지폈던 김동식(金東植)씨는 “방폐장 건설 공정률이 87%에 달하지만 유치지역 지원사업 반영률은 30%에 불과하고, 유치 당시 적극 지원을 약속했던 정부가 부지 결정 후에는 지원사업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시설을 가져온 만큼 다른 곳을 제쳐 두고서라도 경주에 먼저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경주에 본거지를 둔 환경운동실천협의회 김헌규(金憲圭) 총재와 손준호(孫晙豪) 대변인은 “과거 90% 찬성하는 분위기가 지금은 반반(半半) 정도로 보면 된다. 가까운 사람 중에는 후회하는 이도 더러 있다”고 했다. 김 총재는 또 “예산으로 SOC 사업을 하지 못하고, 방폐장 돈(특별지원금)으로 했다”며 혀를 찼다.
문무왕릉 지척에 있는 방폐장
이런 상황에서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들어설 방폐장의 공기가 1년6개월 늦춰지게 됐다는 발표가 지난 1월 발표됐다. 2008년 착공한 경주 방폐장은 당초 2010년 6월 공사를 마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반이 약해 완공시기가 2012년으로 한 차례 늦춰졌고, 지난 1월 또다시 2014년 6월로 연장된 것이다.
기자는 공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양북면 봉길리로 차를 몰았다. 감은사지 5층 석탑과 수중 능(陵)으로 유명한 문무왕의 ‘해중(海中)왕릉’의 지척에 공사현장이 있었다.
차로 5분가량 동굴로 들어가니 거대한 돔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사일로(방폐물 처분동굴·SILO)가 있었다. 폐기물 드럼을 적재하는 사일로는 지름 25m, 높이 50m, 두께 1~1.6m에 이른다. 모두 6개가 건설 중이다.
사일로는 동해 해수면보다 80~130m 낮은 곳에 위치하는데, 1개당 폐기물 1만6700드럼을 담을 수 있다. 현장 안내자는 “6개 사일로에 모두 10만 드럼의 폐기물이 묻히게 된다”고 했다. 6개의 사일로 중 4개는 공사가 마무리됐으나 2개는 연약지반과 지하수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있었다.
방폐공단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 성석현(成石鉉) 인수운영팀장은 “사일로의 지하암반 등급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 보강공사 물량이 늘어난 때문이다. 공사기간 연장은 더 안전한 시공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규모 6.5의 지진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기연장에 대해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양북면 봉길리 최병천(崔柄千·양북면 발전협의회 수석부회장) 이장을 만났다. 그는 “방폐장 암반의 등급이 낮아 걱정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믿는다. 안전을 위한 공기연장에 대해 이의는 달지 않는다”고 했다. 최 이장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철거주민에 대한 집단이주 대책이다. 생활터전을 잃은 주민이나 가족에 대한 고용정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불씨
방폐장과 더불어 경주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도 경주시민들에게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월성원전 1호기는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처음 가동했다.
그러나 같은 노후(老後)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의 ‘전력공급 중단’ 사고로 인해 ‘원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를 지켜보는 경주시민들의 심사는 복잡하다.
월성원전 1호기는 오는 11월 30년간의 설계수명이 끝이 난다. 그러나 이미 1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해 5000억원을 들여 압력관 교체 등 170여 건의 설비 개선을 완료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주시의회(의장 김일헌)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30여 년을 국가 원전발전을 위해 희생과 인내로 살아온 경주시민들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이유지만, 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반대라는 해석이 크다. 방폐장 유치 인센티브가 기대할 것이 없었던 만큼, 월성원전 1호기 연장을 두고 정부를 향해 또 다른 지원을 받아내겠다는 눈치다.
게다가 설비용량 100만㎾급 원전인 신월성원전 1, 2호기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신월성 1호기는 오는 6월 말, 2호기는 내년 1월 준공 예정이다. 준공을 앞두고 설비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운전이 한창이다.
여기에 대해 경주시민들은 굳이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렇다고 안전성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체감하지 못하는 방폐장 유치 효과를 느끼고 싶어한다. 방폐공단 이용래 부이사장의 말이다.
“(혐오시설을) 받아준 경주에 대해 정부나 우리 공단이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해야 지역민과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래야 상생발전이 가능해요. ‘주는 대로 받지 웬 잔말들이 많아!’라고 생각하면 평생 대화가 안 됩니다. 지난 20년간 방폐장 부지를 구하느라 다 실패하고 경주가 받아줬지 않았나요? 그 바탕 위에 원전과 경주시와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전북 부안군 터미널 앞에서 노점을 하는 박모(51)씨는 경기를 묻자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한탄했다. 4월 6일 오후 6시 부안터미널 출구로 나서자 ‘빈차’등을 켠 택시 7~8대가 있었다. 방향을 틀어 시장 쪽으로 갔다. 택시 10여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근처 가게에 삼삼오오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손님인가’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방 소도시 터미널은 해당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핵심 상권이다. 주민이나 외지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안은 터미널 지근거리에 관공서와 금융기관이 있다. 유동인구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만, 9년 전 ‘반핵(反核)운동’의 중심이었던 부안읍의 첫인상은 한적하고 쓸쓸했다.
“외지인 말 들으니 扶安 망할 것 같아 반대”
2003년 부안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정부는 방폐장 수용 지자체에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6700억원 ▲양성자 기반 공학기술개발 사업장 1600억원 ▲테크노파크 800억원 ▲산업단지 1500억원 ▲배후주거단지 1100억원 ▲관광·레저 단지 1500억원 ▲SOC 건설 4500억원 ▲지자체 특별 지원 3000억원 등을 골자로 하는 지원을 약속했다. 17년째 표류하는 국책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건 것이었다.
그해 5월 위도 주민들은 후보지가 아니었지만, 방폐장 유치를 청원했다. 같은 해 7월 14일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는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유치를 신청했고, 산업자원부는 24일 이를 확정했다. 산업자원부는 “부안군은 지원계획에 따라 전형적인 산업·주택·복지·문화시설을 골고루 갖춘 전원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장밋빛 부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내 ‘핵폐기장추방범부안대책위’가 발족했다. 전국에서 환경단체, 전문 시위꾼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방폐장을 핵폐기장으로 불렀고, “핵은 죽음이다”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기형아를 낳는다”며 주민들을 선동했다. 거리 곳곳에는 기형아와 기형 가축의 사진이 나붙었다. 밤마다 반대론자들 주도로 핵 공포를 조장하는 강좌가 열렸다. 이곳에 지역구를 둔 당시 여당(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였던 정균환 의원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부안읍 주민 김경호(38)씨는 2003년 당시 반대 입장에 섰던 사람이다. 그는 “그때는 문을 연 상점이 있으면, 사람들이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망가뜨리고, 집단 따돌림을 했었다”며 “외부 사람들과 반대론자들이 틀어대는 동영상이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방폐장이 들어서면 부안이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밤 열린 ‘강좌’에서 주입식 교육을 했는데, 그런 걸 접하다 보니 찬성 입장을 밝혔던 청년회의소조차도 반대로 돌아서더라고요.”
김씨는 썰렁한 부안수협 앞 도로를 가리키며 “부안읍 인구가 2만명 남짓인데 이곳에서 전·의경 8000명과 주민이 대치했었다”고 회상했다. 부안은 방폐장 유치 신청을 한 2003년 7월부터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시위대는 쇠파이프, 화염병, 가스통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해상 시위를 벌였다. 초·중·고교 학생들도 ‘반핵투쟁’에 동참해 8월 25일부터 등교를 거부했다. 41일간 전개된 등교거부는 평균 50.5%, 높을 때는 80%에 달하는 참여율을 기록했다. 9월에는 내소사를 방문한 김종규 군수가 시위대에 집단구타를 당했다. 반대론자들은 이를 ‘제2의 광주’, ‘파리 코뮌’에 빗댄 ‘부안 코뮌’이라고 극찬했다.
극렬한 반발에 부딪힌 정부는 12월 10일 ‘방폐장 부지선정 원점 재검토’ ‘유치신청 추가 접수’ ‘주민투표를 통한 결정’ 방침을 발표했다. 2004년 2월 부안 전체 유권자 5만2108명 중 3만7540명이 참여한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결과는 3만4472명(91.83%)이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관계 법령에 따라 법적 효력을 갖지 못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찬반 논쟁은 계속됐다.
“부안은 빈 껍데기, 알짜배기는 빠져나가”
같은 해 11월 국가인권위는 “방폐장 추진 절차가 주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속된 극렬한 반발에 12월 1일 정부는 부안 방폐장 관련 전 계획을 취소했다. 이날 부안주민들은 ‘백지화 선언’ 승리 대회를 열었다.
1년6개월 동안 벌인 투쟁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부안군 주민 166명이 구속·불구속 기소됐고, 이 중 5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찰과 주민을 포함한 5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지역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었던 방폐장 유치에 따른 경제적 지원이 사라졌다. 찬반으로 갈렸던 부안주민들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방폐장 유치를 하지 않았어도 경제가 발전하고, 주민들이 행복해졌어야 한다. 그래야 손익계산서의 대차가 맞는다. 8년이 지난 지금 과연 부안주민들은 ‘행복’해졌을까. 김경호씨에게 물었다.
―2004년 전보다 부안은 살기 좋아졌습니까.
“예전에는 참 먹고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빈 껍데기만 남았죠. 그전에는 펄에서 조개만 캐도 하루 10만원은 거뜬했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돈 들고 나와 읍내에서 쓰는 게 부안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덕분에 현금회전율이 굉장히 빨랐죠. 지금은 펄이 죽어서 조개도 안 나오고, 군산으로 가는 도로가 뚫려서 변산이나 격포에 온 관광객들이 부안까지 오질 않아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죠.”
―경기가 어느 정도로 안 좋습니까.
“예를 들자면 제가 시장에 4평짜리 가게를 갖고 있는데 10년 전에 1억원이었어요. 지금은 2500만원밖에 안 해요.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부동산 거래도 없고, 자꾸 가격은 내려가고요.”
―방폐장 유치 반대를 후회합니까.
“방폐장이 들어왔으면 일자리가 생겼을 텐데. 지금 젊은 사람들이 할 게 없어요. 똑똑하거나 돈 있는 알짜배기들은 다 외지로 나가고, 제 또래 중 남은 사람들은 공무원, 택시기사만 있다고 봐도 돼요. 그리고 당시에 시위하는 모습이 그렇게 나왔는데 어떤 기업이 오려고 하겠어요.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가 없지요.”
다음 날 아침 방폐장 유치 청원을 했던 위도를 찾기 위해 격포항으로 향했다. 택시기사 정모(63)씨에게 방폐장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때 방폐장을 유치했어야 쓴디”라며 혀를 찼다. 정씨는 “당시 찬성 입장이었지만, 입도 뻥긋 못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만 되믄 그것만치 부안에 좋은 일이 어디 있었겄습니까. 속으로는 찬성했는디, 개인택시조합 차원에서 시위를 나가자니까 택시 몰고 시위하러 댕기고 그랬습니다. 안 가믄 택시도 다 부숴버리고 따돌리니까. 그때 불참했던 6대는 조합에서 탈퇴시키고 그랬당게요.”
“金大中, 盧武鉉이 나섰어야”
―방폐장에 대한 공포나 거부감은 없었습니까.
“제가 80년대까지는 관광버스 운전을 해갖고 고리하고 월성원전 견학단을 자주 태웠는디, 그때 본 게 원자력이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랑게요. 근게 방폐장이 들어온다 해도 무섭든 안 했고. 그때 김대중씨나 노무현씨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군수였던 김종규씨가 밀어붙이는 식으로만 안 했어도 괜찮았을 것인디.”
―김종규 전 군수에 대해 주민들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금 와서는 김종규씨에 대해 추진력이나 진정성 등에서 좋게들 말합디다. 금번 총선(고창·부안)에 나왔는디, 하는 얘기들 들어본게 무시 못할 것 같더구먼. 2007년 군수 재선 때도 40% 득표해서, 한 3000표 차이로 떨어졌은게 부안에서만큼은 민주당 후보하고 지지율이 비슷할 것이오.”(김종규 전 군수는 4·11총선에 출마, 1위와 3000여표 차이가 나는 2위(33.8%)로 고배를 마셨다).
―요즘 택시영업은 잘됩니까.
“나는 자식들 다 여웠은게 상관없는디 옛날허고 비교하믄 말도 못 한당게요. 예전에 개인택시 하는 사람들은 밤 10시까지만 운행해도 충분히 벌었은게 집에 들어갔는디 지금은 새벽까지 해도 돈이 안 된게 죽을라 해요.”
격포항에 도착해 위도로 가는 카페리를 탔다. 섬의 생김새가 고슴도치와 닮아 ‘고슴도치 위(蝟)’자를 쓰는 위도는 격포에서 직선거리로 14km 떨어져 있어 배로 가는 데 50분 정도 걸린다. 카페리호 선장 송주길(70·포유디해운)씨는 위도에 대해 “현재 위도 주민은 위도진에 주둔했던 수군들의 후손들로 대부분 친척 사이”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도 주민 중 일부가 방폐장 찬성을 했다가 정부가 현금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니까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서로 다 친척인데도 싸우고 그랬어요. 그 뒤로도 유치 문제로 한번씩 들썩거리다가,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을 때 반대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차피 끝난 일이니까 모두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안, 原電 있는 영광보다 인구 감소폭 크고 경제도 낙후돼
오후 12시30분 위도 파장금항에 내렸다. 점심때인 탓일까. 가장 붐벼야 할 항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파장금항에서 면 소재지 진리까지는 대략 2.5km. 기자가 면사무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차량은 트럭 1대뿐이었다. 그 차량을 보기 전까지 기자에게 위도는 무인도나 다름없었다. 진리에 도착해 면사무소의 협조를 얻어 치도리에 있는 방폐장 건설 예정지로 갔다. 버려진 땅,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위도에 방폐장이 건설됐다면, 부안에 한수원 본사가 이전하게 되고, 한수원 직원 700여 명과 가족, 협력업체 직원이 이주했을 것이다. 계량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이들의 소비활동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을 것이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경북전략산업기획단은 방폐장 유치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는 2만9000여 명이라고 밝혔다. 2011년 12월 말 기준 부안 인구 5만9166명 중 생산가능인구(15~64세) 4만4000명. 지역 주민만 고용한다면 부안 생산가능인구의 66%를 고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방폐장 건설 총파급 효과를 3조6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0년 부안군 자체수입(지방세 및 세외수입) 1243억원의 약 29배에 달한다. 예정대로 치도리에 방폐장이 들어섰다면 당시 선전구호처럼 “지역발전을 30년 앞당길 수 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이익이 됐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부안에 남은 것은 ‘정체’ ‘갈등 후유증’ 말고는 없다.
최근 5년간 부안군의 인구는 ▲2007년 6만2124명 ▲2008년 6만962명 ▲2009년 6만265명 ▲2010년 6만282명 ▲2011년 5만9166명으로, 총 2958명이 감소했다. 서해안에 입지한 인근의 다른 기초 지자체와 비교했을 때 부안의 인구 감소폭은 매우 높다. 같은 기간 부안보다 인구가 적었던 인근의 전북 고창군은 이 기간에 101명 줄어 지금은 오히려 부안보다 인구가 1000명가량 많다. 부안사태 당시 표현대로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 6기가 있는 전남 영광군은 1974명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영광군 인구는 5만7037명으로 부안군보다 약 3200명이 적지만, 지역내총생산(GRDP)은 1조8837억원이다. 같은 해 부안의 GRDP 1조380억원보다 81.5% 큰 금액이다. 결국 부안은 원전이 있는 영광보다 인구 유출이 심하고 경제면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90% 찬성으로 천년古都에 방폐장 유치한 경주
4월의 경주는 꽃단장을 위해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의 고도(古都)였다. 가벼운 옷차림의 상춘객이 불국사와 대릉원(大陵苑)을 걸어가고 있었고, 인왕동(洞) 넓은 평지에 우뚝 솟은 첨성대 곁으로 관광버스가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라천년의 문화유산이 즐비한 이곳에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10명 중 9명이 쌍수(雙手)를 들었다고 한다.
경주시는 지난 2005년 11월 2일 20만8607명의 선거인 중 70.8%(14만7636명)의 주민이 투표해 무려 89.5%의 찬성률로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방폐장을 유치했다. 경쟁도시였던 군산(찬성률 84.4%), 영덕(79.3%), 포항(67.5%)을 모두 제쳤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이용래(李鎔來) 부이사장은 이를 두고 “경주시민들이 신라통일 이후 이처럼 뭉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 해 전인 2004년 2월 14일 전북 부안 주민들의 91.8%가 방폐장 유치 반대의 뜻을 밝힌 지 21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경주는 이후 얼마나 달라졌을까.
방폐장 건립 대가로 주어진 3000억원의 ‘달콤한’ 돈다발(특별지원금)과 황금알을 낳는다는 양성자가속기 유치, 한국수력원자력㈜과 방폐공단 경주 이전, 기본 전기료와 TV 수신료 전액 지원, 여기다 방폐장 유치지역지원사업으로 모두 3조4350억원에 달하는 국비지원이 보장된 ‘약속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돈 폭탄’이 어디로 갔나?
기자는 옛 경주여중 교사(校舍)에 자리 잡은 방폐공단을 찾았다. 중앙지 기자 출신인 이정화 홍보과장은 공단이 지난해 본사를 경주로 이전하면서 아이와 함께 이사와 경주시민이 됐다. 250명의 공단 직원 중 대부분이 경주로 주소지를 옮겼다고 한다. 그는 “보문단지 개발 이후 고도(古都)보존 특별법(역사적 문화 환경을 유지·보존하기 위해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등을 제한하는 조치)으로 수십 년간 개발이 지체된 경주가, 태권도 공원 유치와 경마장 건설, 고속철도 역사마저 유치를 실패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방폐장 유치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경주시의회는 2005년 4월 전국 최초로 ‘원전특위’를 구성하는 열정을 보였다. 심지어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참여하는 ‘국책사업경주유치추진단(줄여서 국경추)’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 과장은 “이미 경주 월성에 원전 4호기와 신월성 1, 2호기가 있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걱정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고 했다.
반핵(反核)단체인 ‘경주 핵대책 시민연대’가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를 찬성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어 반핵 측인 ‘경주 환경운동연합’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대세(大勢)는 유치 찬성 쪽이었다. 생태주의 담론이 지역발전 담론 앞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주 분위기는 7년 전과 다르다. 과거의 열띤 환영 분위기는 식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제는 ‘돈’이었다.
‘돈 폭탄’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주의 지나가는 개도 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은 풍문이었다. 방폐공단 이용래 부이사장은 “유토피아적 혜택이 주어질 것이란 생각이 무너지면서 경주는 지금 허탈해 하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방폐장 돈 SOC 사업에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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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는 방폐장 유치 특별지원금 3000억원을 받아 1500억원을 쓴 상태다. 주로 SOC 사업에 쓰였다. 사진은 특별지원금으로 건설 중인 경주 충효동 일대 도로(위)와 쓰레기 매립시설인 ‘천군 매립장’ 주변에 시공 중인 웰빙스포츠센터(아래). |
딜레마는 경주의 재정여건이 부실하다는 데 있다. 2011년 현재 재정자립도는 25.2%. 244개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 51.9%에 훨씬 못 미친다. 빠듯한 시 살림에 보태면,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경주문화원 부원장이자 ‘경주 핵대책 시민연대’ 공동대표인 남홍(南弘)씨는 “1500억원 중 장학금 100억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경주시 자체 경상예산으로 진행해야 할 사업에 쓰였다. 그러니 경주시민들이 전혀 ‘돈 폭탄’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돈이 오히려 지역 불화만 낳았다. 시장과 시의회는 자신의 선거만을 생각해 돈 쓸 궁리를 한다. 목돈이 생겼을 때 경주의 ‘천년비전’을 새로 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폐장 유치지역에 지원키로 한 국비사업도 경주시민들은 속도가 더디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 지원사업은 모두 55개로 총 사업비가 3조4359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2011년까지 확보된 사업비는 1조371억원. 전체 사업비의 30% 정도다.
방폐장 유치 당시 집행위원장을 맡아 찬성 여론에 불을 지폈던 김동식(金東植)씨는 “방폐장 건설 공정률이 87%에 달하지만 유치지역 지원사업 반영률은 30%에 불과하고, 유치 당시 적극 지원을 약속했던 정부가 부지 결정 후에는 지원사업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시설을 가져온 만큼 다른 곳을 제쳐 두고서라도 경주에 먼저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경주에 본거지를 둔 환경운동실천협의회 김헌규(金憲圭) 총재와 손준호(孫晙豪) 대변인은 “과거 90% 찬성하는 분위기가 지금은 반반(半半) 정도로 보면 된다. 가까운 사람 중에는 후회하는 이도 더러 있다”고 했다. 김 총재는 또 “예산으로 SOC 사업을 하지 못하고, 방폐장 돈(특별지원금)으로 했다”며 혀를 찼다.
문무왕릉 지척에 있는 방폐장
이런 상황에서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들어설 방폐장의 공기가 1년6개월 늦춰지게 됐다는 발표가 지난 1월 발표됐다. 2008년 착공한 경주 방폐장은 당초 2010년 6월 공사를 마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반이 약해 완공시기가 2012년으로 한 차례 늦춰졌고, 지난 1월 또다시 2014년 6월로 연장된 것이다.
기자는 공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양북면 봉길리로 차를 몰았다. 감은사지 5층 석탑과 수중 능(陵)으로 유명한 문무왕의 ‘해중(海中)왕릉’의 지척에 공사현장이 있었다.
차로 5분가량 동굴로 들어가니 거대한 돔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사일로(방폐물 처분동굴·SILO)가 있었다. 폐기물 드럼을 적재하는 사일로는 지름 25m, 높이 50m, 두께 1~1.6m에 이른다. 모두 6개가 건설 중이다.
사일로는 동해 해수면보다 80~130m 낮은 곳에 위치하는데, 1개당 폐기물 1만6700드럼을 담을 수 있다. 현장 안내자는 “6개 사일로에 모두 10만 드럼의 폐기물이 묻히게 된다”고 했다. 6개의 사일로 중 4개는 공사가 마무리됐으나 2개는 연약지반과 지하수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있었다.
방폐공단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 성석현(成石鉉) 인수운영팀장은 “사일로의 지하암반 등급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 보강공사 물량이 늘어난 때문이다. 공사기간 연장은 더 안전한 시공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규모 6.5의 지진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기연장에 대해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양북면 봉길리 최병천(崔柄千·양북면 발전협의회 수석부회장) 이장을 만났다. 그는 “방폐장 암반의 등급이 낮아 걱정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믿는다. 안전을 위한 공기연장에 대해 이의는 달지 않는다”고 했다. 최 이장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철거주민에 대한 집단이주 대책이다. 생활터전을 잃은 주민이나 가족에 대한 고용정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불씨
방폐장과 더불어 경주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도 경주시민들에게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월성원전 1호기는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처음 가동했다.
그러나 같은 노후(老後)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의 ‘전력공급 중단’ 사고로 인해 ‘원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를 지켜보는 경주시민들의 심사는 복잡하다.
월성원전 1호기는 오는 11월 30년간의 설계수명이 끝이 난다. 그러나 이미 1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해 5000억원을 들여 압력관 교체 등 170여 건의 설비 개선을 완료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주시의회(의장 김일헌)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30여 년을 국가 원전발전을 위해 희생과 인내로 살아온 경주시민들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이유지만, 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반대라는 해석이 크다. 방폐장 유치 인센티브가 기대할 것이 없었던 만큼, 월성원전 1호기 연장을 두고 정부를 향해 또 다른 지원을 받아내겠다는 눈치다.
게다가 설비용량 100만㎾급 원전인 신월성원전 1, 2호기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신월성 1호기는 오는 6월 말, 2호기는 내년 1월 준공 예정이다. 준공을 앞두고 설비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운전이 한창이다.
여기에 대해 경주시민들은 굳이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렇다고 안전성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체감하지 못하는 방폐장 유치 효과를 느끼고 싶어한다. 방폐공단 이용래 부이사장의 말이다.
“(혐오시설을) 받아준 경주에 대해 정부나 우리 공단이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해야 지역민과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래야 상생발전이 가능해요. ‘주는 대로 받지 웬 잔말들이 많아!’라고 생각하면 평생 대화가 안 됩니다. 지난 20년간 방폐장 부지를 구하느라 다 실패하고 경주가 받아줬지 않았나요? 그 바탕 위에 원전과 경주시와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