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협회 K씨, 운동화 훔치려다 들키고 2500만원 횡령까지
⊙ 축구협회는 K씨 소문 무성, 퇴직시키면서 위로금 1억5천만원까지 줘
⊙ K씨가 “비리 폭로하겠다”고 했다는 설이 나돌지만, 축구협회는 부인
⊙ 축구협회는 K씨 소문 무성, 퇴직시키면서 위로금 1억5천만원까지 줘
⊙ K씨가 “비리 폭로하겠다”고 했다는 설이 나돌지만, 축구협회는 부인
-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지난 11월 8일 새벽, 축구협회 심판국 직원 A씨는 이사한 집에서 이삿짐을 풀고 있었다. 한참 짐 정리에 열중하던 중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혼자 살고 있던 A씨는 ‘지금 잠들면 아침에 못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섰다. 새벽 3시40분 A씨는 심판국 사무실에 도착했다. 깜빡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삑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문에 달린 비밀번호 버튼을 누르는 소리였다.
심판국 사무실은 평소 보안이 철저하다. 어느 경기에 누가 심판으로 나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정보다. 사전에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협회가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의 누군가가 벌써 출근한 걸까, 아니면 벌써 6시가 됐나?’ 이때 A씨의 귀에 들린 것은 커터의 드르륵! 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후 종이상자를 가르는 소리…. 누군가가 한쪽에 쌓여 있던 상자에 손을 대고 있었다. 심판에게 지급할 아디다스 운동화 등의 축구용품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심판용품을 훔치다 현장에서 걸린 남자는 회계팀 직원 K씨였다.
A씨는 회사에 절도 장면 목격을 보고했다. 이때부터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직원의 보고를 받고도 징계위원회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K씨는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동안 K씨는 목격자 A씨에게 애걸하다가 종국에는 협박까지 했다. ‘네가 그러고도 무사히 회사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복수의 협회 직원들은 이때의 분위기를 “도둑이 오히려 당당하게 활개치고 다닌 꼴”이라고 표현했다.
절도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여 뒤인 12월 9일에야 1차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인사위원회는 K씨를 1주간 직위 해제하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절도사건 외에 또 하나의 의혹이 제기됐다. ‘축구협회 법인카드 리워드포인트(Reward Point)의 행방’이 그것이다. 몇 년 전부터 축구협회 직원들 사이에서는 ‘법인카드 리워드포인트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하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개인이 신용카드를 써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의 리워드포인트가 쌓이는데, 예산 1000억원이 넘는 축구협회가 쓰는 법인카드에는 꽤 많은 포인트가 쌓이지 않았을까, 이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었다. 직원들은 김진국 전무이사와 행정 담당 부서장인 S국장에게 이런 의문을 몇 차례 전했다. S국장은 ‘K씨를 불러 리워드포인트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라고 몇 차례 지시내렸으나 K씨는 그때마다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후에 협회 측에 설명했다고 한다.
K씨, 횡령 문제되자 뒤늦게 기프트카드로 채워놓아
1차 인사위원회가 열린 당일, 김진국 전무이사는 K씨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축구협회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같은 날 K씨는 현대카드에 연락해 리워드포인트 관련 기록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자신이 리워드포인트를 빼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는 법인카드로 현대카드를 쓰고 있다. 법인카드를 쓰면 리워드포인트가 쌓인다. 현대카드사 홍보팀 관계자는 “리워드포인트 관련 기록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없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며 “카드 관련 기록을 사후에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K씨는 2009년 2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2489만원의 축구협회 소유 리워드포인트를 빼돌렸다. 리워드포인트는 현금과 다름없다. K씨는 리워드포인트를 기프트카드 형태로 환급받았다. 환급을 받으려면 법인 인감이 찍힌 서류가 필요한데, K씨는 법인 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법인 인감을 관리하는 부서장은 따로 있었다. K씨는 이 부서장에게 ‘통장을 새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 법인 인감을 날인받고 이를 이용해 리워드포인트를 기프트카드로 바꿨다. K씨는 축구협회에 입사하기 전에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축구협회의 회계 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횡령 사실을 사전에 집어내지 못했다. 안진회계법인에서 축구협회 감사를 담당하는 간부에게 묻기 위해 세 차례 전화 접촉을 시도했다. 비서에게 연락번호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회의중’, ‘부재중’이란 답변만 돌아왔다. 안진회계법인의 홍보담당자는 “상부로부터 직무와 관련된 어떠한 것도 답변이 곤란하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K씨는 12월 11일 일요일 오전 협회 사무실에 들러 3시간 동안 각종 자료를 챙겨갔다. 직위 해제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 다음 날 김 전무이사는 조사위원에게 조사를 중지할 것을 지시했다. 12월 13일 K씨는 2490만원어치의 기프트카드를 샀다. 같은 날 협회 조사위원회는 현대카드사의 축구협회 담당 직원과 면담을 했다. 여기에서 횡령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K씨 파면 주장했던 위원 협박받아
인사위원회는 12월 15일 2차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인사위는 K씨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날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K씨가 B 인사위원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 사실이 후에 드러났다. 인사위원장과 B 위원에게 각각 ‘퀵서비스’ 형태로 도착한 편지였다. 편지에는 ‘개인 용도를 위해 법인카드로 5900만원어치를 결제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협박의 대상이 된 B 위원은 축구협회의 부서장 중 법인카드의 한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복수의 직원에 따르면, B 위원은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안 마신다고 한다. ‘개인 용도’에 속한다고 K씨가 주장한 사용 내역은 K씨가 주말에 식당이나 주유소에서 결제한 내용이었다. B 위원은 경기국의 부서장이다. 경기국은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외근을 자주 나갈 수밖에 없는 부서다. 축구 경기는 주말에 열린다. K리그, K3리그, 초ㆍ중ㆍ고 리그 등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경기를 주로 진행한다. K씨 주장대로 ‘개인적인 사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K씨는 하필 B 위원을 골라 ‘협박’했을까. 앞서 열린 1차 인사위원회 회의에 단서가 있다. B 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K씨에게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B 위원은 ‘다른 부서 사무실의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계획적으로 절도를 시도했다.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더구나 이런 사람이 협회의 예산을 집행하는 2명 중의 1명이라니 충격적인 일이다. 협회에서 이런 부분에 엄중대처하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발전이 있겠느냐. 해임이 돼야 한다. 파면 사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인 12월 16일에 열린 3차 인사위원회에서 K씨는 리워드포인트를 빼돌린 게 아니라 기프트카드 형태로 수년간 협회 금고에 보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없어진 리워드포인트(2489만원)와 금고에 수년간 보관했었다는 기프트카드(2490만원) 사이에는 1만원의 금액 차이가 난다. 횡령 당시인 2009년에는 1만원권 기프트카드도 발행이 됐으나, 2011년에는 1만원권이 없어지고 10만원권부터 발행이 돼 맞추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현대카드 측은 2009년에 축구협회가 어떤 일련번호의 기프트카드를 받아갔는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해당 일련번호와 K씨가 들고온 기프트카드의 일련번호는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련번호로 확인해 보니 K씨가 들고온 기프트카드는 2009년이 아닌 2011년 12월에 판매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결국 K씨가 횡령 사실을 감추기 위해 뒤늦게 기프트카드를 구매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K씨의 소명을 들은 인사위원회는 권고사직을 결정하는 데 그쳤다. 그 후 협회와 K씨 사이에 오간 것이 문제의 합의서다. (사진 참조) 권고사직도 약한 처벌인데, 거기에다 위로금까지 주었다는 사실은 각종 억측을 낳을 수밖에 없다. K씨는 2011년 12월 31일자로 그만뒀다. 이에 축구협회 노조는 1월 26일 성명서를 냈다. 절도를 하다가 현장에서 들키고, 횡령혐의까지 드러난 직원을 위로금까지 주며 ‘권고사직’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당연한 문제 제기였다. 노조의 성명 직후 김진국 전무이사는 사퇴했다.
숨겨진 비리?
쟁점은 두 가지다. 돈을 주고 직원의 입을 막아야 할 만큼 엄청난 비리가 축구협회에 정말 있는 것일까. 협회는 왜 해당 직원의 조사 및 징계를 차일피일 미뤄 이 지경이 되도록 사태를 키웠을까.
합의서에는 ‘4. 축구협회의 직원으로 재직하던 중 알게 된 협회의 기밀사항 또는 협회에 불리한 사실을 향후 어떠한 경우에도 발설ㆍ공개ㆍ제공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더 의아스러운 조항은 6번 조항이다. ‘6. 축구협회는 K가 위 4항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K의 재직 중 모든 행위에 대해 향후 일체의 민형사상 고발을 하지 않으며, 향후 K의 타업체 취업 시 어떠한 불이익도 가하지 않고, 타업체의 신분 조회 시에도 K가 문제가 없음을 협조한다’는 것이 합의서의 마지막 조항이다.
이에 대해 협회에 직접 물었다. 협회 관계자는 합의서 양식을 만든 사람이 김진국 전 전무라고 했다. 김 전 전무가 과거에 은행 지점장을 지내서인 것 같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 전 전무는 K씨 외에 명예퇴직한 임원들에게도 같은 문항이 있는 서류에 날인하도록 했다고 협회 측에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송기룡 행정 담당 국장의 주장은 달랐다. 2011년 12월과 2012년 1월에 명예퇴직한 임원에게는 일반적인 양식의 사직서만 받았다고 한다. 송 국장의 말이다.
“명예퇴직하신 분들께는 사직서만 받았습니다. K씨에게 받은 것 같은 합의서는 받지 않았고요. 합의서의 큰 틀을 만들고, 이런 내용을 넣어라, 저런 내용을 넣어라 지시한 사람은 김진국 전무였습니다.”
축구협회와 횡령 직원이 서로의 ‘안전’을 담보해 줄 걸 약속하는 조항은 왜 넣은 걸까. 답은 김 전 전무만 알고 있을 터였다. 김 전 전무에게 이에 대해 직접 물으려 수차례 연락했다. 김 전 전무는 ‘할 말이 없다’,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K씨가 ‘협박 편지’에 쓴 협회 임원 법인카드의 사적인 사용 문제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특정 감사 결과 문제가 없는 걸로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직접 묻기 위해 K씨에게 수차례 연락한 결과 전화 연결이 됐다. K씨의 말이다.
“조용히 마무리되길 원했습니다. 저한테 못해 줬든 잘해 줬든 회사에 누를 끼치기 싫었습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언론에 일방적으로 나오니까…. 이번 사안에 대해 제대로 보도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직답을 피했다. 구체적인 얘기는 만나서 하기로 약속까지 정했지만, K씨는 그 후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닷새에 걸쳐 특정 감사를 한 대한체육회에 추가 혐의점을 발견했는지 물었다. 감사실의 홍우택씨는 “이미 밝혀진 내용 이외의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해당 직원의 절도 미수 혐의 및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서 고발조치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간부 직원을 협박한 혐의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할 것을 지시했고요. 정확한 부분은 조사기관이나 사법부에서 조사하고 판단해야 할 겁니다.”
조용히 덮으려다 문제 키운 것?
만약 숨겨야 할 것이 없었다면 협회는 왜 일을 질질 끌었을까. 협회 관계자 몇 명의 말이 일치했다. 김진국 전무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전 협회 직원 B씨의 말이다.
“김진국 전무는 어떤 사안을 하나 보고받으면 그냥 엉덩이로 깔고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해결하거나 추진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갖고만 있는 거죠. 이것 때문에 조중연 회장에게 김 전무에 대한 항의가 여러 루트로 들어갔어요. 조 회장은 ‘잘 봐달라’고만 대답했다더군요.”
협회 직원 C씨는 ‘(조중연 회장) 재선을 염두에 둔 협회가 또다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협회 수뇌부의 초점은 ‘조중연 회장 재선’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조광래 감독을 해임하고 파문이 인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문제까지 불거지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떻게든지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다가 문제를 키운 거죠.”
정말 이들의 말이 전부일까. 다른 의혹은 없는 것일까. 축구협회의 그간 해명에 워낙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아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축구협회는 “K씨를 횡령과 협박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고소했다”고 2월 8일 발표했다. 결국 경찰 조사를 통해 사태의 정확한 전말이 밝혀지게 됐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축구협회의 몫이다. 지금 축구협회에 필요한 것이 단순한 ‘선수 교체’가 아닌, ‘게임 운용 방식’의 전반적인 변화인 이유다.⊙
[단독 인터뷰] 조중연의 直說
“비자금 의혹 제기는 축구 말살하려는 음모”
⊙ “조광래 감독 해임? 절차상 문제없다”
⊙ “축구협회 뒤 보이지 않는 큰손?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趙重衍
⊙ 66세.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 산업은행ㆍ해병대에서 축구선수 생활, 현대축구팀 감독 역임.
⊙ 現 대한축구협회 회장,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
조중연(趙重衍)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단호한 그의 어조는 축구협회의 불안한 안팎 상황과 대조를 이뤘다. 조광래(趙廣來) 전 국가대표 감독 경질 파문이 가라앉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협회 직원의 횡령 사태가 불거졌다. 대표팀의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 여부도 오리무중이다. 2월 29일에 있을 한·쿠웨이트전에서 지고, 같은 조의 아랍에미리트가 레바논에 진다면 월드컵 진출은 좌절된다. 전력상 아랍에미리트가 레바논에 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질적으로 쿠웨이트에 지면 월드컵 예선 탈락이다. 전 세계 축구계 ‘대목장’을 놓칠 수 있는 위기다. 내년 초에는 협회장 선거가 예정돼 있다.
조 회장의 별칭은 ‘축구 행정의 달인’. 선수 출신 행정가로 달려온 지 올해로 딱 20년,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축구협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이어지는 침묵, 잠시 후 들려온 말은 ‘일단 오라’였다. 2년 만의 축구협회장 언론 인터뷰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6층에 있는 조 회장의 집무실은 예상보다 단출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놓여 있는 듯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방문객을 압도하는 장서도 없고, 휘호도 한 점 없었다. 한 편에는 보통 크기의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상 위 서류 더미 옆에 놓인 두꺼운 ‘롱맨 영어사전’이 보였다. 책상에 딸려 있는 작은 책장에는 십수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대부분 축구 혹은 스포츠에 관한 책이었다. 창가에는 작은 크기의 사진 액자 몇 점과 난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마저도 조 회장의 집무실에서는 장식용이나 관상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한 달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는 이동 칠판이었다. 조 회장의 바쁜 한 달이 한눈에 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집무실 풍경 속에 이십 년 세월의 자취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나부터도 비자금은 필요 없다”
기자는 어떻게 얘기를 시작할까 고민했다. 침묵을 뚫고 조 회장이 먼저 꺼낸 말은 ‘선거’였다.
“축구계가 선거 때만 다가오면 항상 시끌시끌합니다. 축구를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고, (축구계의) 재야 세력도 있고 그래요. 거슬러 올라가면 최순영(崔淳永) 회장님도 참 열심히 하셨는데 좋지 않게 나가셨고, 김우중(金宇中)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일하게 정몽준(鄭夢準) 회장님만 4연임을 하신 후에 이임을 하셨죠.”
조 회장은 곧장 ‘비자금’ 의혹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직원의 횡령 사태는 틀림없이 협회가 잘못한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시정을 하고 횡령 혐의가 있는 친구를 고소도 하는 등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입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제 일부에서 몰고가는 것처럼 비자금이 있다는 식의 얘기들은… 축구협회에서 비자금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또 협회 예산을 전부 전자결제시스템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우리 직원의 70% 이상이 노조원입니다. 그 사람들이 집행을 하는데, 거기에 무슨 비자금이 있을 수 있습니까.”
―노조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긴가요.
“노조의 눈을 피하나마나, 저부터도 비자금이 필요하지 않아요. 비자금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얘기는 축구를 말살하려는 저의가 있는 음모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서도 회장이 감독 지명하면 끝”
―이번 사태 전에도 축구계가 시끄러웠습니다. 조광래 감독 건도 그렇고.
조 감독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조 회장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조광래 감독 경질 건을 물으려는 거죠?”
조 회장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축구협회 정관을 보여줄까요? 기술위원회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기술위원회는 추천하고 건의하는 기구지, 결정기구가 아니에요. 모든 것은 이사회에서 하고 이사회 전에 회장이 결정할 수 있어요. 긴급을 요하는 사안은 그 절차 없이도 회장이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축구협회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일본 축구협회의 가와구치 회장이 2006년 월드컵 때 지코 감독을 지명했습니다. 지명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 시점에서 과연 2014년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단정할 순 없지만, 확률적으로 그것이 낮다고 판단이 됐습니다. 다른 기본적인 경기들 외에는 월드컵이 사실상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드컵에 못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조광래 감독은 지난해 12월 7일에 경질됐다. 넉 달 전인 8월 10일 대표팀은 일본에 0-3으로 졌다. 6년 만의 패배였다. 3점차로 진 것은 1974년 한일전 이후 37년 만이다. 11월 16일에 열린 월드컵 지역 예선 레바논전에서도 패했다. 점수는 1-2. 레바논은 중동팀 중 약체급으로 평가된다.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도 146위로 한국팀의 랭킹 31위와는 한참 차이가 있다. 한국이 레바논에 진 것은 월드컵, 올림픽, 친선경기 통틀어 사상 처음이다.
뼈아픈 패배였다. 브라질 월드컵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2월 29일에 있을 쿠웨이트전에서 패하면 최종 예선도 나가보지 못하고 탈락한다. 조광래 감독은 레바논전 패배 한 달 후 해임됐다.
조 감독은 해임된 후 인터뷰에서 ‘협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큰손의 영향을 받고 있다. 날 대표팀 감독에 선임시킨 분도, 또 경질한 최종 결정을 내린 분도 그분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대표팀 선수 선발에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도 했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을 앞둔 시점에서 축구협회 수뇌부 3명이 선수 추천을 해왔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인터뷰에서 “추천을 할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3명이 똑같은 선수를 지목하며 대표팀에 발탁했으면 하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대표팀으로 발탁하기엔 해당 선수의 컨디션이 너무 떨어져 있어 기용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 감독은 외압의 존재를 뒤늦게 공개한 이유가 최강희(崔康熙)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경질된 후 조 감독이 ‘보이지 않는 큰손’을 언급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요 참… 흔드는 방법도 유치합니다.”
―정몽준 명예회장을 얘기하는 것 아닌가요?
“그분이 지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이래 얼마나 바쁘신 분인데 지나간 자리에까지 얘기를 합니까. 그건 상식 아닌가요, 상식.”
조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건너편 책장에 놓인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나란히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책장 다른 칸에는 정 명예회장의 책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이 놓여 있었다. 집무실에는 총 6점의 사진 액자가 있었는데 이 중 4점의 사진에 정 명예회장의 모습이 있었다.
―이번 직원 횡령 사태 해결 과정이 너무 느리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해당 직원의 절도 사실이 적발된 지 한 달 후에나 조사위원회가 열렸고, 그로부터 3주 후에나 그 직원이 그만두었습니다. 은폐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지요.
“그건 의심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제가 체육회에도 진술을 했어요. 11월 8일에 그 일(운동화 절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1월 9일에 파주트레이닝센터 10주년 기념식이 있었어요, 아침 9시에. 행사가 끝나고도 외부 행사 때문에 협회를 못 들어왔습니다. 다음 날에는 제가 두바이를 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18일에는 AFC 회의를 떠났습니다. AFC 회의에 갔다가 카타르에서 올림픽 예선 경기를 보고 24일에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9일부터 24일까지 거의 외국을 3군데나 왔다갔다한 겁니다. 귀국하고도 25일에는 기술국 보고를 받고, 26일에는 포항과 울산 경기를 보러 갔어요. 그래서 겨우 28일에나 그 보고를 받았습니다. 29일에 원칙대로 엄중히 처리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이 내용은 노조가 낸 성명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조 회장은 노조 성명서를 꺼내 해당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외국 출장 일정 때문에 처리 절차가 늦어졌다는 말씀인가요?
“고의로 지연시킨 건 아니고… 올림픽팀이나 대표팀 경기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녔기 때문이에요. 경기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에 있으면 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도 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왜 지체된 건가요.
“공교롭게도 나중에 판단해 보니까, 김진국 전무는 단순한 절도 정도로 생각했던 거예요. 또 하나 행정 담당 지원국장이 오랫동안 휴가 중이었어요. 한 달간 휴가를 낸 상황이었습니다.”
축구협회는 횡령 혐의로 사직한 직원과 합의서를 주고받았다. 합의서에는 ‘직원으로 재직하던 중 알게 된 협회의 기밀사항이나 협회에 불리한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다. 협회에 더 큰 비리가 숨겨져 있지 않으냐는 의혹이 인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협회 사정에 정통한 전(前) 직원 및 현(現) 직원들에게 비리 여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협회의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는 비리가 있기는 힘들다’고 했다. 전자결제로 예산이 집행되는데다 협회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터무니없이 전횡을 부릴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만약 비리가 있을 수 있다면 사업국에서 하는 후원(스폰서) 계약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축구협회는 지난 1월 13일 나이키 코리아와 총 1200억원 규모의 후원 계약을 맺었다. 절반인 600억원을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600억원은 물품으로 받는다. 올해부터 8년간 나눠서 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나이키와 재계약을 하면서 그 전에는 계약기간을 4년으로 했는데 이번에는 8년으로 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회장에게 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협회 후원계약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대표팀의 가치가 점점 올라갈 수 있는데 4년이 아닌 8년으로 계약한 것은 나이키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그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만 4년 계약을 했던 것이지,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은 장기계약을 합니다. 왜냐. 저희가 7회 연속 월드컵에 나갔지만 앞으로도 나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그렇죠. 실패를 해도 고정 수입이 있게 하려고 장기계약을 하는 겁니다. 물가상승률이나 다른 모든 것을 감안해서 계약을 하면 되는 거지, 장기적인 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거를 알아야 돼요. 우리가 꼭 (월드컵에) 나간다는 법이 없어요, 이제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입니다.”
“안정적 지원 위해 장기 후원계약 했다”
조 회장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누가 회장이 되든, 누가 이 집행부에 있든 앞으로는 장기 후원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월드컵에 못 나가도, 올림픽에 못 나가도 안정적인 재정수입이 확보돼야 또 그다음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그렇게 간 겁니다. 오히려 (나이키 쪽에서는) 안 하려고 하는 걸 우리가 원했어요. 그쪽에서 ‘리스크가 있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한 텀(4년)으로 가자’, 그러는 걸 우리 간부들이 회의하고 ‘투 텀(8년)으로 가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번에 투텀 계약을 한 겁니다. 그리고 사업국에서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전부 노조원들이에요. 국장 빼놓고는. 그 사람들이 제안을 한 겁니다.”
―하나은행과의 후원 계약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국민은행이 하나은행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는데 하나은행과 계약을 한 게 옳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국민은행이 더 높은 금액을 부른 게 사실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있는 협회 간부회의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하나은행은 십몇 년을 우리를 지원을 해왔어요. 국민은행은 그냥 윗선에서 뛰어들었어요. 또 하나은행(의 제시금액)도 어느 정도 근접한 수준이었고. 하나은행은 계약 외에도 월드컵 적금이다 뭐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게 있는데, 더 많이 준다고 그냥 많이 주는 데로 가면 나중에 국민은행 계약이 끝났을 때, 우릴 누가 후원을 하겠어요? 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누가 후원을 하겠어요. 아니, 십몇 년 지원했는데 돈 몇 푼 더 준다고… 요즘 음식점 하는 사람들이 어렵다는 거 알죠? 일부 사람들이 삼만원 오만원 더 준다고 하면 후딱후딱 옮겨다녀서 사람 못 구해서 힘들다고. 그러면 안 되죠. 십몇 년을 지원을 해왔고, (조건도) 큰 차이도 안 나는데 그냥 옮겨가 버리면… 그게 맞는 건가 나는 모르겠네요.”
조 회장은 억울해했다.
“축구협회가 후원사 계약이나, 방송사 중계 계약을 할 때 많은 사람이 보고 있고, 또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정도로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명분이 없으면 그런 결정을 못 합니다.”
“정몽준 회장 시대가 축구 르네상스 시대”
“98년도 1월, 우리 축구협회 예산이 30여억 원 될 때 제가 전무로 시작해서 그 후로 한 해도 발전을 안 한 해가 없었어요.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선수부터 감독, 전무, 부회장, 회장까지 맡고 있는 동안에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어떤 정권 때는 국정감사도 받아봤어요.”
2005년 국정감사에서 축구협회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문화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감사에서였다. 민주당 손봉숙 당시 의원이 축구협회의 엠블럼 상표권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 엠블럼 얘기도 나왔죠. 기억합니다.
“유치한 얘기들이 많았죠. 지금이나 똑같은 얘깁니다. 이게 어디서 그런 얘기가 제공되냐 하면 야권(협회 반대세력)입니다. 하라고 하면 하지도 못할 사람들이, 축구발전에 아무것도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들을 해요. 그 당시에 그렇게 떠들던 루머대로면 축구협회가 발전을 했겠어요? 오늘이 있겠어요? 그러면 지도자들이 벌써 들고일어나죠. 그 사람들(협회 반대세력)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헐뜯고 끌어내리지만, 지도자들은 정말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협회가 잘못하면 비난하고 시정명령을 할 수 있는 거죠. 정말 지난 15년 동안은 한국축구가 상전벽해, 크게 발전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몽준 회장님을 모시고 있던 그 기간이 한국축구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과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제? 월드컵이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조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화가 되려면 축구협회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언할 수 있습니다. 1월 9일에 제가 언론사 축구팀장들과 함께 일본에 갔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봐야 뭔가 느낄 것 같아서 내가 제안을 했어요. 그때 90회 전일본선수권대회 고교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4100여 개의 팀이 1년간 토너먼트를 해서 남은 두 팀이 1월에 결승을 하는 거예요.”
한국의 고교축구 관계자 20여 명도 일본 고교축구선수권대회를 보러 갔다. 이들이 본 건 4만4000명의 관중으로 들어찬 경기장이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한국의 한 지도자는 ‘작년 8월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 0대3으로 졌을 때보다 오늘이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들이 본 건 프로경기가 아니라 고교팀의 경기였다.
“지바에 있는 고등학교가 우승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43개의 지역 방송사가 고교선수권대회를 거의 다 중계해 줬어요. 전 경기를 말이죠. 그리고 니혼티비에서 결승전 중계를 했는데, 연장전까지 무려 2시간40분을 모두 중계하고 시상식까지, 그것도 은메달 시상식까지 다 중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연장전 들어가면 방송이 정규방송 때문에 중계를 중단하잖아요.”
‘회장님’들 인터뷰에는 통상적으로 인터뷰에 앞서 ‘사전 질의서와 답변서’가 오간다. 조 회장과 기자는 어떤 사전 논의 없이 만났다. 인터뷰 배석자도 없었다. 조 회장은 대다수의 질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인용해 대답했다.
“그런데 일본 고교선수권 결승전의 시청률이 5.5%였다고 합니다. 5.5%. 그건 어마어마한 겁니다. 2시에 경기가 시작했는데. 거의 5시 가까이 끝나더군요. 언론사 축구팀장들에게 ‘자 다음 날 이걸 일본 언론이 어떻게 쓰는지 보자’고 했어요. 《요미우리》, 《아사히》, 전 스포츠신문이 1면 톱으로 보도했어요. 고교선수권대회 사진이 이만하게 났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일보》가 그 사진을 스포츠면 상단에 전면으로 실었어요. 그런데 과연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고교선수권대회 결승을 우리나라의 다른 신문들이 실어주느냐 이겁니다. 대회를 주최하는 신문사만 조금 쓰고 말지요. (일본 같은) 그런 환경이 되면 틀림없이 대한민국 축구는 세계 수준이 될 겁니다. 축구협회의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겁니다.”
한국 축구 경쟁력은 엘리트 축구
축구계 일각에서는 ‘생활 체육’이 엘리트 축구와 분리돼 있어 축구 저변 확대가 늦어진다고 지적한다. 일본이나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의 축구협회가 생활 축구까지 함께 관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생활 축구와 엘리트 축구가 분리돼 있어 축구 저변 확대가 잘 안 된다는 일부 지적도 있습니다.
“일본은 사회인 축구가 협회 내에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축구하고 분리가 되어 있죠. 생활 축구가 조직 내로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엘리트와 생활 축구가 혼합이 됐을 때 엘리트가 위축될 수 있어요. 생활 체육이나 사회인 축구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에요.”
―협회의 지원이 분산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네. 우리가 그래도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엘리트 분야입니다. 그래서 엘리트 중심의 행정을 하는 것이고요. 아까 얘기가 나온 것처럼 일본은 고교팀이 4100개가 넘습니다. 우리는 고교 140여 개 팀으로 꾸려나가고요.”
―일본보다는 한국 축구의 저변이 확실히 좁네요.
“네. 지금 우리 등록선수가 겨우 2만6000~2만7000명입니다. 그것도 제가 회장을 맡고 등록선수가 1만여 명이 늘었어요. 클럽 저변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80만에서 100만명 가까이 등록선수가 있는데 우리는 겨우 2만6000~2만7000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 축구를 키워서 저변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생활 축구에는 나이 든 분들이 대다수 계십니다. 지금 각 시·도에서 시도한 게 있습니다. 연령별 생활 축구를 우리가 흡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올드 보이들’ 생활 축구는 순수하게 생활 축구에서 하고, 연령별 생활 축구는 각 시·도에서 리그를 벌이고 있어요. 앞으로 거기에서 엘리트로 전환하는 선수들이 생길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제 임기 3년 동안 등록선수가 1만여 명이 늘어난 거죠.”
―프로 배구 리그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프로 축구에서도 작년에 적발이 됐고요. 축구협회 차원에서도 승부조작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를 하고 있나요.
“승부조작에 대해서 크게 우려를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설마’하면서, 전부 쉽게들 생각했어요. 옛날 제가 전무로 있던 시절에는 승부조작이란 게 있지도 않았어요. 스포츠 토토가 시작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거예요.
―축구협회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요.
“네. 이제 피파나 AFC도 거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축구뿐 아니라 배구, 농구, 야구 등의 종목에서도 승부조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축구협회도 스포츠 토토와 함께 방지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도둑 한 명 열 사람이 못 막는다고, 또 생기긴 생길 겁니다. 제도권에서는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할 겁니다.”
협회 직원들이 하나둘씩 집무실에 들어왔다. 회의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을 던질 때였다.
―내년 회장 선거에 나갑니까.
2월 3일 열렸던 비리 직원 사태 기자회견에서 회장이 직접 대답한 적 있는 질문이었다.
“제가 그날 얘기했잖습니까.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겠죠.”
―듣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조 회장은 웃으며 답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도록 얘기한 건데….”⊙
심판국 사무실은 평소 보안이 철저하다. 어느 경기에 누가 심판으로 나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정보다. 사전에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협회가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의 누군가가 벌써 출근한 걸까, 아니면 벌써 6시가 됐나?’ 이때 A씨의 귀에 들린 것은 커터의 드르륵! 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후 종이상자를 가르는 소리…. 누군가가 한쪽에 쌓여 있던 상자에 손을 대고 있었다. 심판에게 지급할 아디다스 운동화 등의 축구용품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심판용품을 훔치다 현장에서 걸린 남자는 회계팀 직원 K씨였다.
A씨는 회사에 절도 장면 목격을 보고했다. 이때부터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직원의 보고를 받고도 징계위원회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K씨는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동안 K씨는 목격자 A씨에게 애걸하다가 종국에는 협박까지 했다. ‘네가 그러고도 무사히 회사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복수의 협회 직원들은 이때의 분위기를 “도둑이 오히려 당당하게 활개치고 다닌 꼴”이라고 표현했다.
절도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여 뒤인 12월 9일에야 1차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인사위원회는 K씨를 1주간 직위 해제하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절도사건 외에 또 하나의 의혹이 제기됐다. ‘축구협회 법인카드 리워드포인트(Reward Point)의 행방’이 그것이다. 몇 년 전부터 축구협회 직원들 사이에서는 ‘법인카드 리워드포인트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하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개인이 신용카드를 써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의 리워드포인트가 쌓이는데, 예산 1000억원이 넘는 축구협회가 쓰는 법인카드에는 꽤 많은 포인트가 쌓이지 않았을까, 이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었다. 직원들은 김진국 전무이사와 행정 담당 부서장인 S국장에게 이런 의문을 몇 차례 전했다. S국장은 ‘K씨를 불러 리워드포인트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라고 몇 차례 지시내렸으나 K씨는 그때마다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후에 협회 측에 설명했다고 한다.
K씨, 횡령 문제되자 뒤늦게 기프트카드로 채워놓아
1차 인사위원회가 열린 당일, 김진국 전무이사는 K씨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축구협회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같은 날 K씨는 현대카드에 연락해 리워드포인트 관련 기록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자신이 리워드포인트를 빼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는 법인카드로 현대카드를 쓰고 있다. 법인카드를 쓰면 리워드포인트가 쌓인다. 현대카드사 홍보팀 관계자는 “리워드포인트 관련 기록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없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며 “카드 관련 기록을 사후에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K씨는 2009년 2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2489만원의 축구협회 소유 리워드포인트를 빼돌렸다. 리워드포인트는 현금과 다름없다. K씨는 리워드포인트를 기프트카드 형태로 환급받았다. 환급을 받으려면 법인 인감이 찍힌 서류가 필요한데, K씨는 법인 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법인 인감을 관리하는 부서장은 따로 있었다. K씨는 이 부서장에게 ‘통장을 새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 법인 인감을 날인받고 이를 이용해 리워드포인트를 기프트카드로 바꿨다. K씨는 축구협회에 입사하기 전에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축구협회의 회계 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횡령 사실을 사전에 집어내지 못했다. 안진회계법인에서 축구협회 감사를 담당하는 간부에게 묻기 위해 세 차례 전화 접촉을 시도했다. 비서에게 연락번호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회의중’, ‘부재중’이란 답변만 돌아왔다. 안진회계법인의 홍보담당자는 “상부로부터 직무와 관련된 어떠한 것도 답변이 곤란하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K씨는 12월 11일 일요일 오전 협회 사무실에 들러 3시간 동안 각종 자료를 챙겨갔다. 직위 해제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 다음 날 김 전무이사는 조사위원에게 조사를 중지할 것을 지시했다. 12월 13일 K씨는 2490만원어치의 기프트카드를 샀다. 같은 날 협회 조사위원회는 현대카드사의 축구협회 담당 직원과 면담을 했다. 여기에서 횡령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K씨 파면 주장했던 위원 협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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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협회와 K씨가 주고받은 합의서. |
협박의 대상이 된 B 위원은 축구협회의 부서장 중 법인카드의 한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복수의 직원에 따르면, B 위원은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안 마신다고 한다. ‘개인 용도’에 속한다고 K씨가 주장한 사용 내역은 K씨가 주말에 식당이나 주유소에서 결제한 내용이었다. B 위원은 경기국의 부서장이다. 경기국은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외근을 자주 나갈 수밖에 없는 부서다. 축구 경기는 주말에 열린다. K리그, K3리그, 초ㆍ중ㆍ고 리그 등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경기를 주로 진행한다. K씨 주장대로 ‘개인적인 사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K씨는 하필 B 위원을 골라 ‘협박’했을까. 앞서 열린 1차 인사위원회 회의에 단서가 있다. B 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K씨에게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B 위원은 ‘다른 부서 사무실의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계획적으로 절도를 시도했다.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더구나 이런 사람이 협회의 예산을 집행하는 2명 중의 1명이라니 충격적인 일이다. 협회에서 이런 부분에 엄중대처하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발전이 있겠느냐. 해임이 돼야 한다. 파면 사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인 12월 16일에 열린 3차 인사위원회에서 K씨는 리워드포인트를 빼돌린 게 아니라 기프트카드 형태로 수년간 협회 금고에 보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없어진 리워드포인트(2489만원)와 금고에 수년간 보관했었다는 기프트카드(2490만원) 사이에는 1만원의 금액 차이가 난다. 횡령 당시인 2009년에는 1만원권 기프트카드도 발행이 됐으나, 2011년에는 1만원권이 없어지고 10만원권부터 발행이 돼 맞추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현대카드 측은 2009년에 축구협회가 어떤 일련번호의 기프트카드를 받아갔는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해당 일련번호와 K씨가 들고온 기프트카드의 일련번호는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련번호로 확인해 보니 K씨가 들고온 기프트카드는 2009년이 아닌 2011년 12월에 판매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결국 K씨가 횡령 사실을 감추기 위해 뒤늦게 기프트카드를 구매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K씨의 소명을 들은 인사위원회는 권고사직을 결정하는 데 그쳤다. 그 후 협회와 K씨 사이에 오간 것이 문제의 합의서다. (사진 참조) 권고사직도 약한 처벌인데, 거기에다 위로금까지 주었다는 사실은 각종 억측을 낳을 수밖에 없다. K씨는 2011년 12월 31일자로 그만뒀다. 이에 축구협회 노조는 1월 26일 성명서를 냈다. 절도를 하다가 현장에서 들키고, 횡령혐의까지 드러난 직원을 위로금까지 주며 ‘권고사직’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당연한 문제 제기였다. 노조의 성명 직후 김진국 전무이사는 사퇴했다.
숨겨진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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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축구협회 유소년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절의 김진국 전 전무. |
합의서에는 ‘4. 축구협회의 직원으로 재직하던 중 알게 된 협회의 기밀사항 또는 협회에 불리한 사실을 향후 어떠한 경우에도 발설ㆍ공개ㆍ제공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더 의아스러운 조항은 6번 조항이다. ‘6. 축구협회는 K가 위 4항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K의 재직 중 모든 행위에 대해 향후 일체의 민형사상 고발을 하지 않으며, 향후 K의 타업체 취업 시 어떠한 불이익도 가하지 않고, 타업체의 신분 조회 시에도 K가 문제가 없음을 협조한다’는 것이 합의서의 마지막 조항이다.
이에 대해 협회에 직접 물었다. 협회 관계자는 합의서 양식을 만든 사람이 김진국 전 전무라고 했다. 김 전 전무가 과거에 은행 지점장을 지내서인 것 같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 전 전무는 K씨 외에 명예퇴직한 임원들에게도 같은 문항이 있는 서류에 날인하도록 했다고 협회 측에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송기룡 행정 담당 국장의 주장은 달랐다. 2011년 12월과 2012년 1월에 명예퇴직한 임원에게는 일반적인 양식의 사직서만 받았다고 한다. 송 국장의 말이다.
“명예퇴직하신 분들께는 사직서만 받았습니다. K씨에게 받은 것 같은 합의서는 받지 않았고요. 합의서의 큰 틀을 만들고, 이런 내용을 넣어라, 저런 내용을 넣어라 지시한 사람은 김진국 전무였습니다.”
축구협회와 횡령 직원이 서로의 ‘안전’을 담보해 줄 걸 약속하는 조항은 왜 넣은 걸까. 답은 김 전 전무만 알고 있을 터였다. 김 전 전무에게 이에 대해 직접 물으려 수차례 연락했다. 김 전 전무는 ‘할 말이 없다’,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K씨가 ‘협박 편지’에 쓴 협회 임원 법인카드의 사적인 사용 문제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특정 감사 결과 문제가 없는 걸로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직접 묻기 위해 K씨에게 수차례 연락한 결과 전화 연결이 됐다. K씨의 말이다.
“조용히 마무리되길 원했습니다. 저한테 못해 줬든 잘해 줬든 회사에 누를 끼치기 싫었습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언론에 일방적으로 나오니까…. 이번 사안에 대해 제대로 보도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직답을 피했다. 구체적인 얘기는 만나서 하기로 약속까지 정했지만, K씨는 그 후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닷새에 걸쳐 특정 감사를 한 대한체육회에 추가 혐의점을 발견했는지 물었다. 감사실의 홍우택씨는 “이미 밝혀진 내용 이외의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해당 직원의 절도 미수 혐의 및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서 고발조치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간부 직원을 협박한 혐의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할 것을 지시했고요. 정확한 부분은 조사기관이나 사법부에서 조사하고 판단해야 할 겁니다.”
조용히 덮으려다 문제 키운 것?
만약 숨겨야 할 것이 없었다면 협회는 왜 일을 질질 끌었을까. 협회 관계자 몇 명의 말이 일치했다. 김진국 전무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전 협회 직원 B씨의 말이다.
“김진국 전무는 어떤 사안을 하나 보고받으면 그냥 엉덩이로 깔고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해결하거나 추진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갖고만 있는 거죠. 이것 때문에 조중연 회장에게 김 전무에 대한 항의가 여러 루트로 들어갔어요. 조 회장은 ‘잘 봐달라’고만 대답했다더군요.”
협회 직원 C씨는 ‘(조중연 회장) 재선을 염두에 둔 협회가 또다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협회 수뇌부의 초점은 ‘조중연 회장 재선’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조광래 감독을 해임하고 파문이 인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문제까지 불거지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떻게든지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다가 문제를 키운 거죠.”
정말 이들의 말이 전부일까. 다른 의혹은 없는 것일까. 축구협회의 그간 해명에 워낙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아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축구협회는 “K씨를 횡령과 협박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고소했다”고 2월 8일 발표했다. 결국 경찰 조사를 통해 사태의 정확한 전말이 밝혀지게 됐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축구협회의 몫이다. 지금 축구협회에 필요한 것이 단순한 ‘선수 교체’가 아닌, ‘게임 운용 방식’의 전반적인 변화인 이유다.⊙
[단독 인터뷰] 조중연의 直說
“비자금 의혹 제기는 축구 말살하려는 음모”
⊙ “조광래 감독 해임? 절차상 문제없다”
⊙ “축구협회 뒤 보이지 않는 큰손?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趙重衍
⊙ 66세.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 산업은행ㆍ해병대에서 축구선수 생활, 현대축구팀 감독 역임.
⊙ 現 대한축구협회 회장,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
조중연(趙重衍)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단호한 그의 어조는 축구협회의 불안한 안팎 상황과 대조를 이뤘다. 조광래(趙廣來) 전 국가대표 감독 경질 파문이 가라앉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협회 직원의 횡령 사태가 불거졌다. 대표팀의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 여부도 오리무중이다. 2월 29일에 있을 한·쿠웨이트전에서 지고, 같은 조의 아랍에미리트가 레바논에 진다면 월드컵 진출은 좌절된다. 전력상 아랍에미리트가 레바논에 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질적으로 쿠웨이트에 지면 월드컵 예선 탈락이다. 전 세계 축구계 ‘대목장’을 놓칠 수 있는 위기다. 내년 초에는 협회장 선거가 예정돼 있다.조 회장의 별칭은 ‘축구 행정의 달인’. 선수 출신 행정가로 달려온 지 올해로 딱 20년,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축구협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이어지는 침묵, 잠시 후 들려온 말은 ‘일단 오라’였다. 2년 만의 축구협회장 언론 인터뷰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6층에 있는 조 회장의 집무실은 예상보다 단출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놓여 있는 듯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방문객을 압도하는 장서도 없고, 휘호도 한 점 없었다. 한 편에는 보통 크기의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상 위 서류 더미 옆에 놓인 두꺼운 ‘롱맨 영어사전’이 보였다. 책상에 딸려 있는 작은 책장에는 십수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대부분 축구 혹은 스포츠에 관한 책이었다. 창가에는 작은 크기의 사진 액자 몇 점과 난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마저도 조 회장의 집무실에서는 장식용이나 관상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한 달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는 이동 칠판이었다. 조 회장의 바쁜 한 달이 한눈에 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집무실 풍경 속에 이십 년 세월의 자취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나부터도 비자금은 필요 없다”
기자는 어떻게 얘기를 시작할까 고민했다. 침묵을 뚫고 조 회장이 먼저 꺼낸 말은 ‘선거’였다.
“축구계가 선거 때만 다가오면 항상 시끌시끌합니다. 축구를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고, (축구계의) 재야 세력도 있고 그래요. 거슬러 올라가면 최순영(崔淳永) 회장님도 참 열심히 하셨는데 좋지 않게 나가셨고, 김우중(金宇中)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일하게 정몽준(鄭夢準) 회장님만 4연임을 하신 후에 이임을 하셨죠.”
조 회장은 곧장 ‘비자금’ 의혹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직원의 횡령 사태는 틀림없이 협회가 잘못한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시정을 하고 횡령 혐의가 있는 친구를 고소도 하는 등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입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제 일부에서 몰고가는 것처럼 비자금이 있다는 식의 얘기들은… 축구협회에서 비자금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또 협회 예산을 전부 전자결제시스템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우리 직원의 70% 이상이 노조원입니다. 그 사람들이 집행을 하는데, 거기에 무슨 비자금이 있을 수 있습니까.”
―노조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긴가요.
“노조의 눈을 피하나마나, 저부터도 비자금이 필요하지 않아요. 비자금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얘기는 축구를 말살하려는 저의가 있는 음모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서도 회장이 감독 지명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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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질 후 소회를 밝힌 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 |
조 감독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조 회장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조광래 감독 경질 건을 물으려는 거죠?”
조 회장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축구협회 정관을 보여줄까요? 기술위원회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기술위원회는 추천하고 건의하는 기구지, 결정기구가 아니에요. 모든 것은 이사회에서 하고 이사회 전에 회장이 결정할 수 있어요. 긴급을 요하는 사안은 그 절차 없이도 회장이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축구협회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일본 축구협회의 가와구치 회장이 2006년 월드컵 때 지코 감독을 지명했습니다. 지명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 시점에서 과연 2014년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단정할 순 없지만, 확률적으로 그것이 낮다고 판단이 됐습니다. 다른 기본적인 경기들 외에는 월드컵이 사실상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드컵에 못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조광래 감독은 지난해 12월 7일에 경질됐다. 넉 달 전인 8월 10일 대표팀은 일본에 0-3으로 졌다. 6년 만의 패배였다. 3점차로 진 것은 1974년 한일전 이후 37년 만이다. 11월 16일에 열린 월드컵 지역 예선 레바논전에서도 패했다. 점수는 1-2. 레바논은 중동팀 중 약체급으로 평가된다.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도 146위로 한국팀의 랭킹 31위와는 한참 차이가 있다. 한국이 레바논에 진 것은 월드컵, 올림픽, 친선경기 통틀어 사상 처음이다.
뼈아픈 패배였다. 브라질 월드컵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2월 29일에 있을 쿠웨이트전에서 패하면 최종 예선도 나가보지 못하고 탈락한다. 조광래 감독은 레바논전 패배 한 달 후 해임됐다.
조 감독은 해임된 후 인터뷰에서 ‘협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큰손의 영향을 받고 있다. 날 대표팀 감독에 선임시킨 분도, 또 경질한 최종 결정을 내린 분도 그분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대표팀 선수 선발에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도 했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을 앞둔 시점에서 축구협회 수뇌부 3명이 선수 추천을 해왔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인터뷰에서 “추천을 할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3명이 똑같은 선수를 지목하며 대표팀에 발탁했으면 하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대표팀으로 발탁하기엔 해당 선수의 컨디션이 너무 떨어져 있어 기용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 감독은 외압의 존재를 뒤늦게 공개한 이유가 최강희(崔康熙)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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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4월 방한한 모하메드 빈 함맘(63·카타르)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그러니까요 참… 흔드는 방법도 유치합니다.”
―정몽준 명예회장을 얘기하는 것 아닌가요?
“그분이 지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이래 얼마나 바쁘신 분인데 지나간 자리에까지 얘기를 합니까. 그건 상식 아닌가요, 상식.”
조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건너편 책장에 놓인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나란히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책장 다른 칸에는 정 명예회장의 책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이 놓여 있었다. 집무실에는 총 6점의 사진 액자가 있었는데 이 중 4점의 사진에 정 명예회장의 모습이 있었다.
―이번 직원 횡령 사태 해결 과정이 너무 느리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해당 직원의 절도 사실이 적발된 지 한 달 후에나 조사위원회가 열렸고, 그로부터 3주 후에나 그 직원이 그만두었습니다. 은폐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지요.
“그건 의심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제가 체육회에도 진술을 했어요. 11월 8일에 그 일(운동화 절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1월 9일에 파주트레이닝센터 10주년 기념식이 있었어요, 아침 9시에. 행사가 끝나고도 외부 행사 때문에 협회를 못 들어왔습니다. 다음 날에는 제가 두바이를 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18일에는 AFC 회의를 떠났습니다. AFC 회의에 갔다가 카타르에서 올림픽 예선 경기를 보고 24일에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9일부터 24일까지 거의 외국을 3군데나 왔다갔다한 겁니다. 귀국하고도 25일에는 기술국 보고를 받고, 26일에는 포항과 울산 경기를 보러 갔어요. 그래서 겨우 28일에나 그 보고를 받았습니다. 29일에 원칙대로 엄중히 처리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이 내용은 노조가 낸 성명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조 회장은 노조 성명서를 꺼내 해당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외국 출장 일정 때문에 처리 절차가 늦어졌다는 말씀인가요?
“고의로 지연시킨 건 아니고… 올림픽팀이나 대표팀 경기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녔기 때문이에요. 경기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에 있으면 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도 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왜 지체된 건가요.
“공교롭게도 나중에 판단해 보니까, 김진국 전무는 단순한 절도 정도로 생각했던 거예요. 또 하나 행정 담당 지원국장이 오랫동안 휴가 중이었어요. 한 달간 휴가를 낸 상황이었습니다.”
축구협회는 횡령 혐의로 사직한 직원과 합의서를 주고받았다. 합의서에는 ‘직원으로 재직하던 중 알게 된 협회의 기밀사항이나 협회에 불리한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다. 협회에 더 큰 비리가 숨겨져 있지 않으냐는 의혹이 인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협회 사정에 정통한 전(前) 직원 및 현(現) 직원들에게 비리 여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협회의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는 비리가 있기는 힘들다’고 했다. 전자결제로 예산이 집행되는데다 협회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터무니없이 전횡을 부릴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만약 비리가 있을 수 있다면 사업국에서 하는 후원(스폰서) 계약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축구협회는 지난 1월 13일 나이키 코리아와 총 1200억원 규모의 후원 계약을 맺었다. 절반인 600억원을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600억원은 물품으로 받는다. 올해부터 8년간 나눠서 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나이키와 재계약을 하면서 그 전에는 계약기간을 4년으로 했는데 이번에는 8년으로 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회장에게 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협회 후원계약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대표팀의 가치가 점점 올라갈 수 있는데 4년이 아닌 8년으로 계약한 것은 나이키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그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만 4년 계약을 했던 것이지,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은 장기계약을 합니다. 왜냐. 저희가 7회 연속 월드컵에 나갔지만 앞으로도 나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그렇죠. 실패를 해도 고정 수입이 있게 하려고 장기계약을 하는 겁니다. 물가상승률이나 다른 모든 것을 감안해서 계약을 하면 되는 거지, 장기적인 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거를 알아야 돼요. 우리가 꼭 (월드컵에) 나간다는 법이 없어요, 이제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입니다.”
“안정적 지원 위해 장기 후원계약 했다”
조 회장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누가 회장이 되든, 누가 이 집행부에 있든 앞으로는 장기 후원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월드컵에 못 나가도, 올림픽에 못 나가도 안정적인 재정수입이 확보돼야 또 그다음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그렇게 간 겁니다. 오히려 (나이키 쪽에서는) 안 하려고 하는 걸 우리가 원했어요. 그쪽에서 ‘리스크가 있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한 텀(4년)으로 가자’, 그러는 걸 우리 간부들이 회의하고 ‘투 텀(8년)으로 가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번에 투텀 계약을 한 겁니다. 그리고 사업국에서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전부 노조원들이에요. 국장 빼놓고는. 그 사람들이 제안을 한 겁니다.”
―하나은행과의 후원 계약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국민은행이 하나은행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는데 하나은행과 계약을 한 게 옳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국민은행이 더 높은 금액을 부른 게 사실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있는 협회 간부회의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하나은행은 십몇 년을 우리를 지원을 해왔어요. 국민은행은 그냥 윗선에서 뛰어들었어요. 또 하나은행(의 제시금액)도 어느 정도 근접한 수준이었고. 하나은행은 계약 외에도 월드컵 적금이다 뭐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게 있는데, 더 많이 준다고 그냥 많이 주는 데로 가면 나중에 국민은행 계약이 끝났을 때, 우릴 누가 후원을 하겠어요? 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누가 후원을 하겠어요. 아니, 십몇 년 지원했는데 돈 몇 푼 더 준다고… 요즘 음식점 하는 사람들이 어렵다는 거 알죠? 일부 사람들이 삼만원 오만원 더 준다고 하면 후딱후딱 옮겨다녀서 사람 못 구해서 힘들다고. 그러면 안 되죠. 십몇 년을 지원을 해왔고, (조건도) 큰 차이도 안 나는데 그냥 옮겨가 버리면… 그게 맞는 건가 나는 모르겠네요.”
조 회장은 억울해했다.
“축구협회가 후원사 계약이나, 방송사 중계 계약을 할 때 많은 사람이 보고 있고, 또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정도로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명분이 없으면 그런 결정을 못 합니다.”
“정몽준 회장 시대가 축구 르네상스 시대”
“98년도 1월, 우리 축구협회 예산이 30여억 원 될 때 제가 전무로 시작해서 그 후로 한 해도 발전을 안 한 해가 없었어요.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선수부터 감독, 전무, 부회장, 회장까지 맡고 있는 동안에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어떤 정권 때는 국정감사도 받아봤어요.”
2005년 국정감사에서 축구협회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문화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감사에서였다. 민주당 손봉숙 당시 의원이 축구협회의 엠블럼 상표권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 엠블럼 얘기도 나왔죠. 기억합니다.
“유치한 얘기들이 많았죠. 지금이나 똑같은 얘깁니다. 이게 어디서 그런 얘기가 제공되냐 하면 야권(협회 반대세력)입니다. 하라고 하면 하지도 못할 사람들이, 축구발전에 아무것도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들을 해요. 그 당시에 그렇게 떠들던 루머대로면 축구협회가 발전을 했겠어요? 오늘이 있겠어요? 그러면 지도자들이 벌써 들고일어나죠. 그 사람들(협회 반대세력)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헐뜯고 끌어내리지만, 지도자들은 정말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협회가 잘못하면 비난하고 시정명령을 할 수 있는 거죠. 정말 지난 15년 동안은 한국축구가 상전벽해, 크게 발전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몽준 회장님을 모시고 있던 그 기간이 한국축구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과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제? 월드컵이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조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화가 되려면 축구협회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언할 수 있습니다. 1월 9일에 제가 언론사 축구팀장들과 함께 일본에 갔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봐야 뭔가 느낄 것 같아서 내가 제안을 했어요. 그때 90회 전일본선수권대회 고교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4100여 개의 팀이 1년간 토너먼트를 해서 남은 두 팀이 1월에 결승을 하는 거예요.”
한국의 고교축구 관계자 20여 명도 일본 고교축구선수권대회를 보러 갔다. 이들이 본 건 4만4000명의 관중으로 들어찬 경기장이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한국의 한 지도자는 ‘작년 8월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 0대3으로 졌을 때보다 오늘이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들이 본 건 프로경기가 아니라 고교팀의 경기였다.
“지바에 있는 고등학교가 우승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43개의 지역 방송사가 고교선수권대회를 거의 다 중계해 줬어요. 전 경기를 말이죠. 그리고 니혼티비에서 결승전 중계를 했는데, 연장전까지 무려 2시간40분을 모두 중계하고 시상식까지, 그것도 은메달 시상식까지 다 중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연장전 들어가면 방송이 정규방송 때문에 중계를 중단하잖아요.”
‘회장님’들 인터뷰에는 통상적으로 인터뷰에 앞서 ‘사전 질의서와 답변서’가 오간다. 조 회장과 기자는 어떤 사전 논의 없이 만났다. 인터뷰 배석자도 없었다. 조 회장은 대다수의 질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인용해 대답했다.
“그런데 일본 고교선수권 결승전의 시청률이 5.5%였다고 합니다. 5.5%. 그건 어마어마한 겁니다. 2시에 경기가 시작했는데. 거의 5시 가까이 끝나더군요. 언론사 축구팀장들에게 ‘자 다음 날 이걸 일본 언론이 어떻게 쓰는지 보자’고 했어요. 《요미우리》, 《아사히》, 전 스포츠신문이 1면 톱으로 보도했어요. 고교선수권대회 사진이 이만하게 났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일보》가 그 사진을 스포츠면 상단에 전면으로 실었어요. 그런데 과연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고교선수권대회 결승을 우리나라의 다른 신문들이 실어주느냐 이겁니다. 대회를 주최하는 신문사만 조금 쓰고 말지요. (일본 같은) 그런 환경이 되면 틀림없이 대한민국 축구는 세계 수준이 될 겁니다. 축구협회의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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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3일에 열린 제66회 전국고교 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우승을 거둔 광양제철고 선수들. |
한국 축구 경쟁력은 엘리트 축구
축구계 일각에서는 ‘생활 체육’이 엘리트 축구와 분리돼 있어 축구 저변 확대가 늦어진다고 지적한다. 일본이나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의 축구협회가 생활 축구까지 함께 관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생활 축구와 엘리트 축구가 분리돼 있어 축구 저변 확대가 잘 안 된다는 일부 지적도 있습니다.
“일본은 사회인 축구가 협회 내에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축구하고 분리가 되어 있죠. 생활 축구가 조직 내로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엘리트와 생활 축구가 혼합이 됐을 때 엘리트가 위축될 수 있어요. 생활 체육이나 사회인 축구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에요.”
―협회의 지원이 분산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네. 우리가 그래도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엘리트 분야입니다. 그래서 엘리트 중심의 행정을 하는 것이고요. 아까 얘기가 나온 것처럼 일본은 고교팀이 4100개가 넘습니다. 우리는 고교 140여 개 팀으로 꾸려나가고요.”
―일본보다는 한국 축구의 저변이 확실히 좁네요.
“네. 지금 우리 등록선수가 겨우 2만6000~2만7000명입니다. 그것도 제가 회장을 맡고 등록선수가 1만여 명이 늘었어요. 클럽 저변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80만에서 100만명 가까이 등록선수가 있는데 우리는 겨우 2만6000~2만7000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 축구를 키워서 저변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생활 축구에는 나이 든 분들이 대다수 계십니다. 지금 각 시·도에서 시도한 게 있습니다. 연령별 생활 축구를 우리가 흡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올드 보이들’ 생활 축구는 순수하게 생활 축구에서 하고, 연령별 생활 축구는 각 시·도에서 리그를 벌이고 있어요. 앞으로 거기에서 엘리트로 전환하는 선수들이 생길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제 임기 3년 동안 등록선수가 1만여 명이 늘어난 거죠.”
―프로 배구 리그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프로 축구에서도 작년에 적발이 됐고요. 축구협회 차원에서도 승부조작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를 하고 있나요.
“승부조작에 대해서 크게 우려를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설마’하면서, 전부 쉽게들 생각했어요. 옛날 제가 전무로 있던 시절에는 승부조작이란 게 있지도 않았어요. 스포츠 토토가 시작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거예요.
―축구협회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요.
“네. 이제 피파나 AFC도 거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축구뿐 아니라 배구, 농구, 야구 등의 종목에서도 승부조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축구협회도 스포츠 토토와 함께 방지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도둑 한 명 열 사람이 못 막는다고, 또 생기긴 생길 겁니다. 제도권에서는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할 겁니다.”
협회 직원들이 하나둘씩 집무실에 들어왔다. 회의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을 던질 때였다.
―내년 회장 선거에 나갑니까.
2월 3일 열렸던 비리 직원 사태 기자회견에서 회장이 직접 대답한 적 있는 질문이었다.
“제가 그날 얘기했잖습니까.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겠죠.”
―듣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조 회장은 웃으며 답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도록 얘기한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