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孝鍾
⊙ 65세. 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美 인디애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경상대 사회과학대 국제관계학 교수, 現 서울대 사범대 윤리교육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교과서포럼 상임대표.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
⊙ 저서: 《한국의 보수주의》 《국가와 권위》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 등.
⊙ 65세. 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美 인디애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경상대 사회과학대 국제관계학 교수, 現 서울대 사범대 윤리교육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교과서포럼 상임대표.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
⊙ 저서: 《한국의 보수주의》 《국가와 권위》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 등.
보수가 최근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투표와 서울시장 보선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또다시 ‘실패학’을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지금 민심의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안철수 현상’이 그렇다. ‘안철수 현상’이 ‘반(反)보수적’이냐 하는 데 있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친(親)보수적’ 현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따라서 ‘비(非)보수적’ 현상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데 보수의 고민이 있다.
최근 잇단 선거 실패는 ‘보수의 실패’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이고 또 ‘한나라당의 실패’로 보아야 옳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보수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신뢰 속에 권력을 잡았으나, ‘권력의지’만 있었을 뿐, 보수의 정체성을 공유(共有)하지는 않았다. 그 권력의 방향성과 원칙, 그리고 목적성이 뚜렷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명박 정부를 항해하는 배로 친다면, 이명박호(號)는 가야 할 항구가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결국은 우왕좌왕하며 바다를 정처없이 헤매는 일엽편주(一葉片舟)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항구로 간다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이 없으니, 어떤 바람이 불어도 순풍이 될 수는 없었다. 이미 2000년 전 로마의 세네카는 “어떤 항구로 가는지 그 목적지를 모르는 배에 순풍이란 있을 수 없다(ignoranti quem portum petat, nullus ventus est)”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이제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교만함으로 인해 실패함으로써 또다시 믿었던 우군으로부터 배신감을 곱씹으며 신뢰를 접고 스스로 두 발로 서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상황은 보수의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다시 정비하고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연단(鍊鍛)의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지금 보수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있는 반면, 좌파진보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좌파진보는 이미 민주당이나 민노당이라는 정당의 차원을 넘어서서 스스로 독자적인 시민후보를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욱일승천하는 기세다. 이에 비하면 보수 진영에서는 지난 서울시장 보선에서 목격했던 것처럼 이석연 변호사가 출마를 했지만 며칠 만에 출마를 철회할 만큼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바로 이것이 보수의 초라한 존재감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치었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어떤 실체에 존재감이 있다고 해서 바로 그것이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이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문제이고, ‘존재이유’란 어떤 사물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에 관한 답변이다.
지금 보수의 상황을 보면 ‘존재감’은 크지 않지만 ‘존재이유’는 확실하다. 보수세력은 우파로 불려왔지만, 사실 한국사회의 ‘메인스트림’을 이루고 있는 건강한 정치·사회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좌우 이념에 대한 은유적인 비유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좌·우에 관한 한, 날개 보다는 인간이 사용하는 왼손과 오른손이 적합한 은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왼손과 오른손이 있지만 흔히 오른손을 많이 사용한다. 워드를 칠 때나 밥을 먹을 때 오른손을 사용한다. 야구에서 좌타자도 있지만, 대부분 우타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왼손의 기능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오른손이라는 의미다.
보수는 낡은 가치가 아니다
요즘 일부에서는 좌우 이념에 식상해 하고 혹은 “이데올로기 시대는 끝났다”고 하며 ‘이데올로기 종언론’이나 ‘이데올로기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가 하면 좌우의 대립 혹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마치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립인 것처럼 왜곡 선전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그동안 추구해 온 가치들은 결코 낡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축복받은 역사적 쾌거로 보며 그 이후에 전개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로 생각하고 또한 할아버지·아버지 세대가 이룩한 자유와 번영을 이어받아 그 위에 새로운 풍요를 쌓게 하겠다는 가치 지향성이 어떻게 낡고 묵은 것이 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전제정치·일인숭배체제를 사악한 체제로 규정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이 어떻게 ‘수구꼴통’이 될 수 있는가. 또 대한민국의 자유와 안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에 분연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냉전시대의 발상이 될 리 만무하다.
뿐만 아니라 애국심이 살아 꿈틀거려야 하고 법치의 정착으로 모두가 법을 지키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구태의연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편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등, 민주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모든 자유와 권리가 절제 있게 사용되어야 하며, 자유와 권리만 말할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화주의적 책임과 의무, 공동선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최근의 잇따른 선거패배를 두고 보수가 패배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나머지 보수가 스스로 반성하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반성을 하더라도 원칙과 방향이 뚜렷하고 올곧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성을 한다고 하면서 더 이상 보수의 가치는 시대적 가치로 볼 수 없다고 한다든지, 혹은 좌파진보의 가치가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사의 오진(誤診)을 방불케하는 오도된 진단이며 잘못된 반성의 방향이다.
특히 우리가 금기시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보수는 언제나 부패하고 죄가 많다는 주장이다. 엄밀히 말해서 보수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정파적인 가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편적 가치라고 해야 마땅하다. 자유, 인권, 평등, 민주주의, 시장경제, 약자에 대한 배려는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이며 또 대한민국의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을 가지고 “그동안 잘못했으니 방향을 수정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판단한다면, 그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부적절한 진단일 터이다.
또 하나, 보수의 반성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금 젊은 세대 가운데 보수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의 존재이유에 크게 공감해서 보수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고등학교 때 대한민국의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가르쳐온 전교조 교사들의 국가관과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편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같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과 위협에 대해 ‘비겁한 평화’를 외쳐온 좌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며 분연히 일어난 세대다. 또한 광우병 파동에서 나타난 골수 반미주의자들의 광우병 괴담에 경악하고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종북좌파들의 주장에 식상해 보수의 가치를 택한 용감하고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보수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에 매료되어 갖 들어온 새내기 젊은 보수들에 다짜고짜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 잔인한 일일 터이다.
보수는 반성한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스스로를 ‘죄 많은 보수’라고 자처하거나 ‘폐족(廢族)’ 같은 운명이 되었다고 자조해서는 안 된다. 또 부정부패한 세력이라고 스스로 낙인찍어서도 안 된다. 부정부패라고 하는 것은 보수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행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좌든 우든, 언제나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정부패는 노무현·김대중 정부 때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부정부패를 마치 보수를 낙인찍는 아킬레스건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노아의 방주’를 만들자
지금 보수에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 근거가 무엇일까. 하늘은 잔뜩 흐렸고 곧 커다란 폭우가 쏟아질 기세다. 좌파시민운동을 대변하던 시민운동가가 커다란 표차로 서울시장이 되었고, ‘안철수 현상’이 시대정신인 양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태는 보수에 있어 흡사 ‘대홍수’와 비슷한 상황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홍수’라고 하니,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는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희망의 싹을 키웠다. 바로 그것이 ‘노아의 방주(方舟)’가 아닌가.
지금 보수가 이 시점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서 보수는 젊은이들을 양성하고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보수의 꿈과 미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실제로 젊은이들 가운데는 전교조식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고 우파적 가치교육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또 기성세대와 달리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다. 이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소통하면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노아의 방주’와 관련, 네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보수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자부심과 자기정체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한 진정성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보수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과 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자유와 번영을 기약하는 길이었음을 굳게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한다.
약자(弱者)에 대한 따뜻한 배려정신을 가지면서도 자구노력을 통해서 국가의 부(富)를 쌓고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 자유와 번영의 영역을 넓힌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자신의 삶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능력을 다해 치열하게 밤낮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비판하고, 국가의 도움이나 사회보험에 의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와 정신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에 의존 않는 ‘陣地’구축해야
보수의 비전이 사사로운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국가 공동체에 길잡이가 되고 구성원 모두에게 성공과 번영, 혜택은 물론 자유와 자율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보수는 민족적인 가치와 민주적인 가치 및 문명의 가치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허위에 맞서 진실을 옹호하고 비상식에 맞서 상식을 방어하며 성장과 복지 사이에 바람직한 균형을 만드는 창조자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또 이러한 신념을 실천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모름지기 보수는 자기 자신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반드시 가져야 하며 그 논리적 귀결로 보수의 존재이유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보수는 정부나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보수 나름의 ‘진지(陣地)’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는 가치이고 비전이며 동시에 정책이고 세력이다. 따라서 보수는 정당과도 다르고 정권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보수가 특정 정권이나 정당에만 의존하고자 한다면, 자율적으로 비전과 역사를 만드는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나 정당에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될 때 야기되는 문제라면, 정권이나 정당이 보수의 비전을 따르지 않거나 보수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을 때 불평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안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수는 권력과 정당 중심적 사고를 넘어 독자적인 사회·정치세력으로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정책적 공감대를 통해 결집되고 공고화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정치대표성 구조로서는 보수를 대변할 수도 없고, 보수가치의 지향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보수가치에 충실하고 전념하는 정치세력의 조직화는 시대적 소명으로 생각되는데, 보수적 대표성 체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빔밥 중도’는 안된다
셋째, 보수가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좌를 같이 아우르겠다는, 이른바 ‘좌우동거(左右同居)’ 논리나 ‘중도(中道)’로 가겠다는 논리를 버려야 한다.
좌와 우를 아우르겠다고 하는 주장과 시도는 통합과 평화의 관점에서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중도’의 이름으로 주창하거나 환영하는 어젠다로서 좌우 간에 균형을 유지하고 편견과 치우침이 없는 이념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것은 선의(善意)의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시도다. 보수의 방향성과 가치지향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분명 좌와 우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리에 의해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보적 가치에 대한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그러나 좌우를 무차별적으로 아우르겠다는 ‘좌우동거’나 ‘중도지향’은 전혀 다른 개념이며 이질적(異質的) 어젠다다. 보수는 자기정체성과 색깔을 가진 세력으로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자기 자신의 주장과 실적 및 행동을 기반으로 해서 국민들의 신뢰는 물론, 선택과 판단을 받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좌파이념 반(半), 우파이념 반(半)”, 이런 비빔밥 식으로 접근하는 어정쩡한 처신으로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 필요한 비전을 만들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그런 어수룩한 실험을 함으로써 ‘중도’와 ‘실용’, 혹은 ‘친(親)서민’을 앞세웠으나, 결국 “중국집에서 스파게티를 파는 것”과 같은 어색함과 황당함을 연출했다. 그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좌우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특히 보수에 있어 자유에 대한 헌신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보수는 북한의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번영, 민주와 통일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위한 실천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젊은 세대가 보수의 가치를 느끼게 해야
넷째, 보수는 일상적인 ‘실천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남이가” 혹은 ‘끼리끼리’의 연고조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치와 보수의 가치를 배우고 전수하기 위한 학습조직과 교육조직으로부터 시작된다.
보수가 자신의 가치와 이념을 전파하는 스스로의 지역 조직이나 대학, 혹은 젊은 세대에 보수의 이념과 정책을 전파하며 가르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바로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만일 보수가 이런 인프라나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면, 스스로 진정성이 없거나 소명(召命)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보수의 활동은, 예를 들면 민노당의 각종 위원회나 좌파의 의식화 MT 규모의 수준과 비교할 때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 보수의 모임과 조직이 있다고 해도 웰빙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열하게 토론하는 토론의 장이나 학습의 도장이 아니라 편안하게 담소하는 사교(社交)의 장에 불과할 뿐이다.
보수를 지지하고 보수를 신뢰하는 지지세력이나 우호세력은 보수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주거나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시급하게 요청되는 보수형 ‘노아의 방주’ 구축 이유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의 경우, 젊은 세대에 대한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나 싱크탱크 등을 통해 ‘노아의 방주’를 만듦으로써 리버럴이 득세했던 1960~70년대를 극복하고 대처-레이건 이후 30년간 보수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보수는 심기일전하여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를 힘차게 비장한 마음으로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야 할 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에 활로는 있는가>에 대한 토론문 ①
종친초와 공화주의
朴誠賢 인터넷문화협회 회장
과연 진보·보수 구분 프레임은 유효한 것일까? 진보, 보수 모두 가짜인 것 아닐까? 우리는 두 가짜로 이루어진 프레임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보수의 반대말은 리버럴인 것 아닐까? 리버럴·보수 프레임에서 보면 우리 대부분은 리버럴인 것 아닐까? 사는 주택 자체가, 상품화되어 있는 주거 기계 속에서 사는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의 지속성’을 중시하는 보수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버럴인 것 아닌가? 리버럴·보수 프레임으로 보면 우리 대부분은 오히려 리버럴에 속하는 것 아닐까?
‘진보’(progress)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사회주의자들의 용어였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역사의 진보’를 주장했다. 1979년 중국의 집단농장 해체, 1982년 베트남의 집단농장 해체, 1980년대 말의 동구권 붕괴, 1991년 소련 붕괴에 의해 진보는 아무런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를 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의 자기 모순은 세 가지이다. 첫째, 사회주의가 몰락했다. 둘째, 그들은 사회주의 혹은 김일성주의 사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아무런 정치 사상적 통일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목표는 선동을 통한 돈과 권력의 쟁취이며, 북한 옹호 및 쇄국기생(鎖國寄生·세계화 및 세계시장에 저항해서 기존의 이해관계를 고수하자는 입장)일 뿐이다.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의 진보는 국제주의, 개방성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진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그 태생부터 세계주의를 표방했었다.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쳤을 뿐, “프랑스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혹은 “독일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부르짖지 않았다. 그들은 애국가를 거부하고 ‘세계인의 노래’(The Internationale)를 불렀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가짜 진보는 세계화와 세계시장에 대해 막무가내로 반대한다. 싱가포르 같은 도시무역 국가를 제외하는 경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다. 세계시장과 맞붙어 돌아감으로써 먹고사는 나라에 대해, 세계시장과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것은 ‘집단 자살하자’라는 정신병자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진보는 이미 정신병 수준까지 타락한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짜 진보는 끊임없이 북한 전체주의를 옹호한다. 전체주의를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것은 결코 진보일 리 없다.
생명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보수정신의 핵심
보수는 좀 나을까? 우선 정신의 영역에서 살펴보자.
보수정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보수정신의 시작과 적용과 끝은 해석이다. 역사를 해석하고 문화를 해석하는 힘, 이것이 바로 보수정신이다. 대한민국에 대해 “친일파(親日派)가 만든 수치스런 나라”, 북한에 대해 “민족 정통성을 이은 나라”라고 보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이 우리 국사학계를 지배한 지 20년이 넘는다. 역사교사의 대부분이 이런 사관에 의해 직간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며 전교조의 핵심(역교모·역사교사모임, 약 9000명)을 구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 해석을 자학사관이 지배하고 있고, 문학, 예술, 문화에 관한 비평 영역에서 철없는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고 있다. 아무데서도 보수정신의 힘을 발견할 수 없다. 건강한 문화권력, 건강한 해석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수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보수정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다.
애국심과 국가정체성(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보수정신이 아니라 공화주의이다. 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한 인정, 열린 세계에 대한 인정(세계화, 세계시장에 대한 인정),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지지 등이 공화주의 가치를 구성하게 된다.
보수정신은 공화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우리의 각성은 공화주의 각성이었다. 보수정신의 각성이 아니었다.
보수정신은 ‘영구 사회계약론’에 기초한다. 인류의 시작에서 종말까지 면면히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에 대한 인식, 이것이 보수정신의 핵심이다. 호생지덕(好生之德)에 바탕해서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는 정신이 바로 보수정신이다. 보수주의와 공화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저질 좌파 기득권층이 된 종친초
기존의 진보-보수 프레임과 함께 쓰이는 프레임이 좌우 구도이다. 그러나 이는 과연 유효한 프레임일까? 지금의 좌는 모두 가짜에 불과하다. 좌가 가짜이기 때문에 우 역시 헛다리가 될 수밖에 없다. 무릇 우는 자기 자신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좌에 반대하는 것” 안티테제(antithese)이기 때문에 좌가 가짜인 경우, 우 역시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는 원래부터, ‘좌가 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좌는 왜 가짜일까?
첫째, 평양 전체주의 체제는 ‘좌파’가 아니다. 지구상에서 국가 사회주의는 1991년 소련 해체를 끝으로 이미 멸종했다. 북한은, 주민의 70~80%에 대해 배급을 책임지지 않는 체제이다. 이제까지 이런 ‘사회주의국가’는 존재한 적이 없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책이 모두 금서이다. 14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북한 헌법 서문에는 ‘김일성’이란 고유명사가 17번 등장한다. 북한은 사상으로 보나 국가 체제로 보나 이미 사회주의적 전체주의가 아니다. 참혹한 일인숭배 전체주의의 폐허일 뿐이다.
둘째, 흔히 ‘좌파’라 불리는 진영에는 아무런 사상적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일성주의, 트로츠키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막연하지만 맹렬한 반미(反美)주의, 반일(反日)주의, 과격한 좌파 포스트모더니즘, 극단적인 환경보호주의… 셀 수 없이 다양한 사조(思潮)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이를 한마디로 ‘좌파’라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들의 공통성은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있을 뿐이다. 이들의 힘은 지성의 날카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신, 분노를 부추길 수 있는 선동에 있다. 불신, 분노를 선동해서 이들은 무엇을 얻나? 자신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해 온 사회에 대한 앙심(ressentiment)을 만족시키고, 돈과 권력을 얻는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저질 기득권층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종친초(종북-친북-촛불)라 부른다. 종친초의 핵심 정서는 앙심이며, 종친초 중에 가장 강력한 이념성을 가진 구성요소는 북한 전체주의 추종세력이다.
북한은 극에 달한 쇄국적 전체주의 아닌가? 북한을 직접 추종하거나 혹은 그 추종자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자들은 앙심에 찌든 사람들 아닌가?
우리는 세상에 대한 앙심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을 지지한다. 상대는 앙심진영이다. 우리는 생명집단이다.
우리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개인 존엄성을 지지한다. 상대는 전체주의 추종세력에 의해 휘둘린다. 우리는 건강한, 실존적 개인주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쇄국기생이 아니라 세계와 개인을 인식하는 공화주의 가치를 지지한다. 앙심인가 생명인가? 전체주의인가 개인주의인가? 쇄국주의인가 공화주의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한국 보수주의에 활로는 있는가>에 대한 토론문 ②
40代 이하 知的 헤게모니 탈환이 관건
黃晟準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먼저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보수의 실패’는 아니다”라는 관점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최근 연달아 일어난 선거 실패는 ‘보수의 실패’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이고 또 ‘한나라당의 실패’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은 일견 옳으면서, ‘책임 회피성’ 주장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보수의 정체성’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패와 한나라당의 실패, 그 자체가 ‘보수의 실패’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보여준 보수진영의 무기력함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 묵묵히 보수진영의 정체성과 목적성을 지키면서 열심히 활동한 분들도 많다. 그러나 조금은 솔직해 볼 필요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자, 이것을 ‘보수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보다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보수운동의 확산’을 꾀하기보다는, ‘보수의 승리’로 착각(?)하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헤게모니 속에 녹아 들어가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고.
대학생 교육사업의 사례를 보면, 그러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2005~2007년 사이에 각종 대학생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나름 성장했다. 물적·정신적 지원도 계속됐다. 그런데 2007년 대선이 끝나자, 많은 프로그램이 폐지·축소됐다. “이제 대선에 이겼으니,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정치적이었던 많은 프로그램이 색깔을 잃은 채, 무색무취(無色無臭)한 대학생 사교모임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정치색깔이 짙은’ 교육자들은 서서히 배제되어 갔다. “임진왜란이 끝났으면, 의병(義兵)은 해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법”이라는 자학적 이야기가 ‘보수주의 활동가’들 사이에 만연했던 시기이다.
물론 보수주의 활동가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발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나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보수 나름의 ‘진지’를 만들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한나라당의 태도만 쳐다보면서, 이들의 무능력을 비판하면서, 배신감(?)에 분노하고만 있었던 활동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토론자 본인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편한 진실’
현재의 상황은 매우 어렵다. 아직도 보수 어른들은 ‘일부’ 전교조 교사 혹은 ‘일부’ 철없는 젊은이들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국사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살펴보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로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국사학계의 다수파 의견임을 알 수 있다. 또 최근 계속해서 돌출적으로 나오고 있는 40대 판사와 검사들의 발언을 보라. 이미 40대 이하에서의 지적·문화적 헤게모니는 좌익 진영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침묵하는 다수는 우리 편”일 것이라고? 50대 이상에서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40대 이하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 대형서점에 가서,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아니 대학에서의 인문·사회과학 강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아보기 바란다.
최근 대학생들로부터 듣는 하소연 중 하나를 보면, “한미 FTA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A4용지 5매로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미 FTA 찬반 토론도 아니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과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나는 좌익이다”라고 수업시간에 자랑(?)하는 교수들도 많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일하는 원로(元老) 경제학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분은 “요즘 젊은 애들 SNS 때문에 문제야. 한미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질 모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근무하시는 연구소의 30~40대 연구원들은 어떤지 조사해 보시라”고. 며칠 뒤, 그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 정도인 줄 몰랐어. 배울 만큼 배운 석박사들이, 그것도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바로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40대 이하에서 지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좌익에 빼앗겼다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그럼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지난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는가? 보수의 승리가 아니었다. “기회주의라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가 당시 40대 이하로 하여금 MB에게 표를 던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이것이 MB의 잘못이든 국제경제 환경 탓이든), “그렇다면 더 이상 기회주의에 표를 줄 수 없고, 이제는 정의를 회복할 때”라는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과제에 대해서는 발표자가 잘 정리해 놓았다. 패배주의 극복, ‘진지’ 구축, ‘중도’ 유혹 뿌리치기, ‘실천인프라’ 구축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보수주의 이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지적·이념적 투쟁을 견실하게 전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발표자는 ‘노아의 방주’에 대해 언급했다. ‘방주’가 아니라, ‘쪽배’가 되더라도,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요즘 보수주의 이념에 관심을 갖는 20대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들의 관심은 호기심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새로운 사실’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반항심이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희망을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아무튼 이들에게 지적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최근 잇단 선거 실패는 ‘보수의 실패’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이고 또 ‘한나라당의 실패’로 보아야 옳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보수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신뢰 속에 권력을 잡았으나, ‘권력의지’만 있었을 뿐, 보수의 정체성을 공유(共有)하지는 않았다. 그 권력의 방향성과 원칙, 그리고 목적성이 뚜렷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명박 정부를 항해하는 배로 친다면, 이명박호(號)는 가야 할 항구가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결국은 우왕좌왕하며 바다를 정처없이 헤매는 일엽편주(一葉片舟)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항구로 간다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이 없으니, 어떤 바람이 불어도 순풍이 될 수는 없었다. 이미 2000년 전 로마의 세네카는 “어떤 항구로 가는지 그 목적지를 모르는 배에 순풍이란 있을 수 없다(ignoranti quem portum petat, nullus ventus est)”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이제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교만함으로 인해 실패함으로써 또다시 믿었던 우군으로부터 배신감을 곱씹으며 신뢰를 접고 스스로 두 발로 서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상황은 보수의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다시 정비하고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연단(鍊鍛)의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지금 보수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있는 반면, 좌파진보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좌파진보는 이미 민주당이나 민노당이라는 정당의 차원을 넘어서서 스스로 독자적인 시민후보를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욱일승천하는 기세다. 이에 비하면 보수 진영에서는 지난 서울시장 보선에서 목격했던 것처럼 이석연 변호사가 출마를 했지만 며칠 만에 출마를 철회할 만큼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바로 이것이 보수의 초라한 존재감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치었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어떤 실체에 존재감이 있다고 해서 바로 그것이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이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문제이고, ‘존재이유’란 어떤 사물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에 관한 답변이다.
지금 보수의 상황을 보면 ‘존재감’은 크지 않지만 ‘존재이유’는 확실하다. 보수세력은 우파로 불려왔지만, 사실 한국사회의 ‘메인스트림’을 이루고 있는 건강한 정치·사회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좌우 이념에 대한 은유적인 비유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좌·우에 관한 한, 날개 보다는 인간이 사용하는 왼손과 오른손이 적합한 은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왼손과 오른손이 있지만 흔히 오른손을 많이 사용한다. 워드를 칠 때나 밥을 먹을 때 오른손을 사용한다. 야구에서 좌타자도 있지만, 대부분 우타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왼손의 기능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오른손이라는 의미다.
보수는 낡은 가치가 아니다
요즘 일부에서는 좌우 이념에 식상해 하고 혹은 “이데올로기 시대는 끝났다”고 하며 ‘이데올로기 종언론’이나 ‘이데올로기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가 하면 좌우의 대립 혹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마치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립인 것처럼 왜곡 선전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그동안 추구해 온 가치들은 결코 낡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축복받은 역사적 쾌거로 보며 그 이후에 전개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로 생각하고 또한 할아버지·아버지 세대가 이룩한 자유와 번영을 이어받아 그 위에 새로운 풍요를 쌓게 하겠다는 가치 지향성이 어떻게 낡고 묵은 것이 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전제정치·일인숭배체제를 사악한 체제로 규정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이 어떻게 ‘수구꼴통’이 될 수 있는가. 또 대한민국의 자유와 안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에 분연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냉전시대의 발상이 될 리 만무하다.
뿐만 아니라 애국심이 살아 꿈틀거려야 하고 법치의 정착으로 모두가 법을 지키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구태의연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편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등, 민주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모든 자유와 권리가 절제 있게 사용되어야 하며, 자유와 권리만 말할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화주의적 책임과 의무, 공동선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최근의 잇따른 선거패배를 두고 보수가 패배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나머지 보수가 스스로 반성하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반성을 하더라도 원칙과 방향이 뚜렷하고 올곧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성을 한다고 하면서 더 이상 보수의 가치는 시대적 가치로 볼 수 없다고 한다든지, 혹은 좌파진보의 가치가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사의 오진(誤診)을 방불케하는 오도된 진단이며 잘못된 반성의 방향이다.
특히 우리가 금기시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보수는 언제나 부패하고 죄가 많다는 주장이다. 엄밀히 말해서 보수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정파적인 가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편적 가치라고 해야 마땅하다. 자유, 인권, 평등, 민주주의, 시장경제, 약자에 대한 배려는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이며 또 대한민국의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을 가지고 “그동안 잘못했으니 방향을 수정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판단한다면, 그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부적절한 진단일 터이다.
또 하나, 보수의 반성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금 젊은 세대 가운데 보수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의 존재이유에 크게 공감해서 보수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고등학교 때 대한민국의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가르쳐온 전교조 교사들의 국가관과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편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같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과 위협에 대해 ‘비겁한 평화’를 외쳐온 좌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며 분연히 일어난 세대다. 또한 광우병 파동에서 나타난 골수 반미주의자들의 광우병 괴담에 경악하고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종북좌파들의 주장에 식상해 보수의 가치를 택한 용감하고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보수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에 매료되어 갖 들어온 새내기 젊은 보수들에 다짜고짜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 잔인한 일일 터이다.
보수는 반성한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스스로를 ‘죄 많은 보수’라고 자처하거나 ‘폐족(廢族)’ 같은 운명이 되었다고 자조해서는 안 된다. 또 부정부패한 세력이라고 스스로 낙인찍어서도 안 된다. 부정부패라고 하는 것은 보수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행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좌든 우든, 언제나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정부패는 노무현·김대중 정부 때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부정부패를 마치 보수를 낙인찍는 아킬레스건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노아의 방주’를 만들자
지금 보수에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 근거가 무엇일까. 하늘은 잔뜩 흐렸고 곧 커다란 폭우가 쏟아질 기세다. 좌파시민운동을 대변하던 시민운동가가 커다란 표차로 서울시장이 되었고, ‘안철수 현상’이 시대정신인 양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태는 보수에 있어 흡사 ‘대홍수’와 비슷한 상황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홍수’라고 하니,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는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희망의 싹을 키웠다. 바로 그것이 ‘노아의 방주(方舟)’가 아닌가.
지금 보수가 이 시점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서 보수는 젊은이들을 양성하고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보수의 꿈과 미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실제로 젊은이들 가운데는 전교조식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고 우파적 가치교육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또 기성세대와 달리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다. 이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소통하면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노아의 방주’와 관련, 네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보수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자부심과 자기정체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한 진정성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보수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과 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자유와 번영을 기약하는 길이었음을 굳게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한다.
약자(弱者)에 대한 따뜻한 배려정신을 가지면서도 자구노력을 통해서 국가의 부(富)를 쌓고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 자유와 번영의 영역을 넓힌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자신의 삶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능력을 다해 치열하게 밤낮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비판하고, 국가의 도움이나 사회보험에 의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와 정신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에 의존 않는 ‘陣地’구축해야
보수의 비전이 사사로운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국가 공동체에 길잡이가 되고 구성원 모두에게 성공과 번영, 혜택은 물론 자유와 자율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보수는 민족적인 가치와 민주적인 가치 및 문명의 가치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허위에 맞서 진실을 옹호하고 비상식에 맞서 상식을 방어하며 성장과 복지 사이에 바람직한 균형을 만드는 창조자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또 이러한 신념을 실천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모름지기 보수는 자기 자신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반드시 가져야 하며 그 논리적 귀결로 보수의 존재이유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보수는 정부나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보수 나름의 ‘진지(陣地)’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는 가치이고 비전이며 동시에 정책이고 세력이다. 따라서 보수는 정당과도 다르고 정권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보수가 특정 정권이나 정당에만 의존하고자 한다면, 자율적으로 비전과 역사를 만드는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나 정당에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될 때 야기되는 문제라면, 정권이나 정당이 보수의 비전을 따르지 않거나 보수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을 때 불평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안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수는 권력과 정당 중심적 사고를 넘어 독자적인 사회·정치세력으로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정책적 공감대를 통해 결집되고 공고화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정치대표성 구조로서는 보수를 대변할 수도 없고, 보수가치의 지향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보수가치에 충실하고 전념하는 정치세력의 조직화는 시대적 소명으로 생각되는데, 보수적 대표성 체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빔밥 중도’는 안된다
셋째, 보수가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좌를 같이 아우르겠다는, 이른바 ‘좌우동거(左右同居)’ 논리나 ‘중도(中道)’로 가겠다는 논리를 버려야 한다.
좌와 우를 아우르겠다고 하는 주장과 시도는 통합과 평화의 관점에서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중도’의 이름으로 주창하거나 환영하는 어젠다로서 좌우 간에 균형을 유지하고 편견과 치우침이 없는 이념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것은 선의(善意)의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시도다. 보수의 방향성과 가치지향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분명 좌와 우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리에 의해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보적 가치에 대한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그러나 좌우를 무차별적으로 아우르겠다는 ‘좌우동거’나 ‘중도지향’은 전혀 다른 개념이며 이질적(異質的) 어젠다다. 보수는 자기정체성과 색깔을 가진 세력으로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자기 자신의 주장과 실적 및 행동을 기반으로 해서 국민들의 신뢰는 물론, 선택과 판단을 받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좌파이념 반(半), 우파이념 반(半)”, 이런 비빔밥 식으로 접근하는 어정쩡한 처신으로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 필요한 비전을 만들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그런 어수룩한 실험을 함으로써 ‘중도’와 ‘실용’, 혹은 ‘친(親)서민’을 앞세웠으나, 결국 “중국집에서 스파게티를 파는 것”과 같은 어색함과 황당함을 연출했다. 그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좌우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특히 보수에 있어 자유에 대한 헌신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보수는 북한의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번영, 민주와 통일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위한 실천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젊은 세대가 보수의 가치를 느끼게 해야
넷째, 보수는 일상적인 ‘실천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남이가” 혹은 ‘끼리끼리’의 연고조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치와 보수의 가치를 배우고 전수하기 위한 학습조직과 교육조직으로부터 시작된다.
보수가 자신의 가치와 이념을 전파하는 스스로의 지역 조직이나 대학, 혹은 젊은 세대에 보수의 이념과 정책을 전파하며 가르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바로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만일 보수가 이런 인프라나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면, 스스로 진정성이 없거나 소명(召命)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보수의 활동은, 예를 들면 민노당의 각종 위원회나 좌파의 의식화 MT 규모의 수준과 비교할 때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 보수의 모임과 조직이 있다고 해도 웰빙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열하게 토론하는 토론의 장이나 학습의 도장이 아니라 편안하게 담소하는 사교(社交)의 장에 불과할 뿐이다.
보수를 지지하고 보수를 신뢰하는 지지세력이나 우호세력은 보수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주거나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시급하게 요청되는 보수형 ‘노아의 방주’ 구축 이유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의 경우, 젊은 세대에 대한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나 싱크탱크 등을 통해 ‘노아의 방주’를 만듦으로써 리버럴이 득세했던 1960~70년대를 극복하고 대처-레이건 이후 30년간 보수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보수는 심기일전하여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를 힘차게 비장한 마음으로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야 할 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에 활로는 있는가>에 대한 토론문 ①
종친초와 공화주의
朴誠賢 인터넷문화협회 회장
과연 진보·보수 구분 프레임은 유효한 것일까? 진보, 보수 모두 가짜인 것 아닐까? 우리는 두 가짜로 이루어진 프레임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보수의 반대말은 리버럴인 것 아닐까? 리버럴·보수 프레임에서 보면 우리 대부분은 리버럴인 것 아닐까? 사는 주택 자체가, 상품화되어 있는 주거 기계 속에서 사는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의 지속성’을 중시하는 보수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버럴인 것 아닌가? 리버럴·보수 프레임으로 보면 우리 대부분은 오히려 리버럴에 속하는 것 아닐까?
‘진보’(progress)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사회주의자들의 용어였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역사의 진보’를 주장했다. 1979년 중국의 집단농장 해체, 1982년 베트남의 집단농장 해체, 1980년대 말의 동구권 붕괴, 1991년 소련 붕괴에 의해 진보는 아무런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를 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의 자기 모순은 세 가지이다. 첫째, 사회주의가 몰락했다. 둘째, 그들은 사회주의 혹은 김일성주의 사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아무런 정치 사상적 통일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목표는 선동을 통한 돈과 권력의 쟁취이며, 북한 옹호 및 쇄국기생(鎖國寄生·세계화 및 세계시장에 저항해서 기존의 이해관계를 고수하자는 입장)일 뿐이다.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의 진보는 국제주의, 개방성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진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그 태생부터 세계주의를 표방했었다.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쳤을 뿐, “프랑스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혹은 “독일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부르짖지 않았다. 그들은 애국가를 거부하고 ‘세계인의 노래’(The Internationale)를 불렀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가짜 진보는 세계화와 세계시장에 대해 막무가내로 반대한다. 싱가포르 같은 도시무역 국가를 제외하는 경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다. 세계시장과 맞붙어 돌아감으로써 먹고사는 나라에 대해, 세계시장과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것은 ‘집단 자살하자’라는 정신병자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진보는 이미 정신병 수준까지 타락한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짜 진보는 끊임없이 북한 전체주의를 옹호한다. 전체주의를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것은 결코 진보일 리 없다.
생명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보수정신의 핵심
보수는 좀 나을까? 우선 정신의 영역에서 살펴보자.
보수정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보수정신의 시작과 적용과 끝은 해석이다. 역사를 해석하고 문화를 해석하는 힘, 이것이 바로 보수정신이다. 대한민국에 대해 “친일파(親日派)가 만든 수치스런 나라”, 북한에 대해 “민족 정통성을 이은 나라”라고 보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이 우리 국사학계를 지배한 지 20년이 넘는다. 역사교사의 대부분이 이런 사관에 의해 직간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며 전교조의 핵심(역교모·역사교사모임, 약 9000명)을 구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 해석을 자학사관이 지배하고 있고, 문학, 예술, 문화에 관한 비평 영역에서 철없는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고 있다. 아무데서도 보수정신의 힘을 발견할 수 없다. 건강한 문화권력, 건강한 해석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수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보수정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다.
애국심과 국가정체성(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보수정신이 아니라 공화주의이다. 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한 인정, 열린 세계에 대한 인정(세계화, 세계시장에 대한 인정),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지지 등이 공화주의 가치를 구성하게 된다.
보수정신은 공화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우리의 각성은 공화주의 각성이었다. 보수정신의 각성이 아니었다.
보수정신은 ‘영구 사회계약론’에 기초한다. 인류의 시작에서 종말까지 면면히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에 대한 인식, 이것이 보수정신의 핵심이다. 호생지덕(好生之德)에 바탕해서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는 정신이 바로 보수정신이다. 보수주의와 공화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저질 좌파 기득권층이 된 종친초
기존의 진보-보수 프레임과 함께 쓰이는 프레임이 좌우 구도이다. 그러나 이는 과연 유효한 프레임일까? 지금의 좌는 모두 가짜에 불과하다. 좌가 가짜이기 때문에 우 역시 헛다리가 될 수밖에 없다. 무릇 우는 자기 자신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좌에 반대하는 것” 안티테제(antithese)이기 때문에 좌가 가짜인 경우, 우 역시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는 원래부터, ‘좌가 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좌는 왜 가짜일까?
첫째, 평양 전체주의 체제는 ‘좌파’가 아니다. 지구상에서 국가 사회주의는 1991년 소련 해체를 끝으로 이미 멸종했다. 북한은, 주민의 70~80%에 대해 배급을 책임지지 않는 체제이다. 이제까지 이런 ‘사회주의국가’는 존재한 적이 없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책이 모두 금서이다. 14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북한 헌법 서문에는 ‘김일성’이란 고유명사가 17번 등장한다. 북한은 사상으로 보나 국가 체제로 보나 이미 사회주의적 전체주의가 아니다. 참혹한 일인숭배 전체주의의 폐허일 뿐이다.
둘째, 흔히 ‘좌파’라 불리는 진영에는 아무런 사상적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일성주의, 트로츠키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막연하지만 맹렬한 반미(反美)주의, 반일(反日)주의, 과격한 좌파 포스트모더니즘, 극단적인 환경보호주의… 셀 수 없이 다양한 사조(思潮)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이를 한마디로 ‘좌파’라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들의 공통성은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있을 뿐이다. 이들의 힘은 지성의 날카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신, 분노를 부추길 수 있는 선동에 있다. 불신, 분노를 선동해서 이들은 무엇을 얻나? 자신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해 온 사회에 대한 앙심(ressentiment)을 만족시키고, 돈과 권력을 얻는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저질 기득권층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종친초(종북-친북-촛불)라 부른다. 종친초의 핵심 정서는 앙심이며, 종친초 중에 가장 강력한 이념성을 가진 구성요소는 북한 전체주의 추종세력이다.
북한은 극에 달한 쇄국적 전체주의 아닌가? 북한을 직접 추종하거나 혹은 그 추종자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자들은 앙심에 찌든 사람들 아닌가?
우리는 세상에 대한 앙심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을 지지한다. 상대는 앙심진영이다. 우리는 생명집단이다.
우리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개인 존엄성을 지지한다. 상대는 전체주의 추종세력에 의해 휘둘린다. 우리는 건강한, 실존적 개인주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쇄국기생이 아니라 세계와 개인을 인식하는 공화주의 가치를 지지한다. 앙심인가 생명인가? 전체주의인가 개인주의인가? 쇄국주의인가 공화주의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한국 보수주의에 활로는 있는가>에 대한 토론문 ②
40代 이하 知的 헤게모니 탈환이 관건
黃晟準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먼저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보수의 실패’는 아니다”라는 관점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최근 연달아 일어난 선거 실패는 ‘보수의 실패’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이고 또 ‘한나라당의 실패’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은 일견 옳으면서, ‘책임 회피성’ 주장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보수의 정체성’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패와 한나라당의 실패, 그 자체가 ‘보수의 실패’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보여준 보수진영의 무기력함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 묵묵히 보수진영의 정체성과 목적성을 지키면서 열심히 활동한 분들도 많다. 그러나 조금은 솔직해 볼 필요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자, 이것을 ‘보수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보다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보수운동의 확산’을 꾀하기보다는, ‘보수의 승리’로 착각(?)하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헤게모니 속에 녹아 들어가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고.
대학생 교육사업의 사례를 보면, 그러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2005~2007년 사이에 각종 대학생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나름 성장했다. 물적·정신적 지원도 계속됐다. 그런데 2007년 대선이 끝나자, 많은 프로그램이 폐지·축소됐다. “이제 대선에 이겼으니,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정치적이었던 많은 프로그램이 색깔을 잃은 채, 무색무취(無色無臭)한 대학생 사교모임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정치색깔이 짙은’ 교육자들은 서서히 배제되어 갔다. “임진왜란이 끝났으면, 의병(義兵)은 해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법”이라는 자학적 이야기가 ‘보수주의 활동가’들 사이에 만연했던 시기이다.
물론 보수주의 활동가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발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나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보수 나름의 ‘진지’를 만들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한나라당의 태도만 쳐다보면서, 이들의 무능력을 비판하면서, 배신감(?)에 분노하고만 있었던 활동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토론자 본인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편한 진실’
현재의 상황은 매우 어렵다. 아직도 보수 어른들은 ‘일부’ 전교조 교사 혹은 ‘일부’ 철없는 젊은이들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국사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살펴보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로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국사학계의 다수파 의견임을 알 수 있다. 또 최근 계속해서 돌출적으로 나오고 있는 40대 판사와 검사들의 발언을 보라. 이미 40대 이하에서의 지적·문화적 헤게모니는 좌익 진영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침묵하는 다수는 우리 편”일 것이라고? 50대 이상에서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40대 이하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 대형서점에 가서,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아니 대학에서의 인문·사회과학 강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아보기 바란다.
최근 대학생들로부터 듣는 하소연 중 하나를 보면, “한미 FTA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A4용지 5매로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미 FTA 찬반 토론도 아니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과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나는 좌익이다”라고 수업시간에 자랑(?)하는 교수들도 많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일하는 원로(元老) 경제학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분은 “요즘 젊은 애들 SNS 때문에 문제야. 한미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질 모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근무하시는 연구소의 30~40대 연구원들은 어떤지 조사해 보시라”고. 며칠 뒤, 그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 정도인 줄 몰랐어. 배울 만큼 배운 석박사들이, 그것도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바로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40대 이하에서 지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좌익에 빼앗겼다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그럼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지난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는가? 보수의 승리가 아니었다. “기회주의라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가 당시 40대 이하로 하여금 MB에게 표를 던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이것이 MB의 잘못이든 국제경제 환경 탓이든), “그렇다면 더 이상 기회주의에 표를 줄 수 없고, 이제는 정의를 회복할 때”라는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과제에 대해서는 발표자가 잘 정리해 놓았다. 패배주의 극복, ‘진지’ 구축, ‘중도’ 유혹 뿌리치기, ‘실천인프라’ 구축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보수주의 이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지적·이념적 투쟁을 견실하게 전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발표자는 ‘노아의 방주’에 대해 언급했다. ‘방주’가 아니라, ‘쪽배’가 되더라도,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요즘 보수주의 이념에 관심을 갖는 20대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들의 관심은 호기심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새로운 사실’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반항심이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희망을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아무튼 이들에게 지적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