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市 이대에 127억 반납요청, 14억 손배소
⊙ “現 총장이 (대립관계였던) 前 총장 사업 계승할 생각 없어 고의적으로 포기” (이인재 파주시장)
⊙ “이대, 투기성 투자하려다 안되니 포기한 것” (일간지 경기주재 기자)
⊙ 애초부터 학부생 아예 옮기지 않는 조건, 허울좋은 이전설(說)로 지역주민만 허탈
⊙ 이대측 “땅주인 국방부가 매수요청 거절해 불가피하게 사업 포기… 억측은 금물”
⊙ “現 총장이 (대립관계였던) 前 총장 사업 계승할 생각 없어 고의적으로 포기” (이인재 파주시장)
⊙ “이대, 투기성 투자하려다 안되니 포기한 것” (일간지 경기주재 기자)
⊙ 애초부터 학부생 아예 옮기지 않는 조건, 허울좋은 이전설(說)로 지역주민만 허탈
⊙ 이대측 “땅주인 국방부가 매수요청 거절해 불가피하게 사업 포기… 억측은 금물”
- 공중에서 내려다본 캠프에드워드 부지의 모습.
지난 8월 19일, 이화여대는 5년 전(2006년) 경기도·파주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계획했던 ‘파주 이대 교육연구단지(이하 이대 파주캠퍼스)’ 건립계획을 전면 철회한다고 선언했다. 국내 대학의 지방 이전 및 지방 캠퍼스 설립이 난관을 겪는 경우는 많지만, 아예 백지화 선언을 한 것은 이대가 처음이다.
당연히 명문대 유치를 기대하고 있던 파주측은 분개했다. 파주시측은 이대를 위해 각종 행정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주시는 “해당 부지의 토양오염정화를 위해 상하수도 원인자 부담금 조례를 개정해 부담금을 면제해주고,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정화작업 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고 밝혔다. 뿐만아니라 파주시는 진입도로 개설(1억5000만원), 상하수도 부담금 면제(약 90억원 혜택), 도시관리계획 변경결정 용역대행비 2000만원, 캠프에드워드 토양반입 비용지원 2억4000만원, 2010년 5월 이대 자연사특별전시 지원금 6억원 등 세금면제액을 제외하고도 14억여원의 시비 및 도비가 소요됐다며 반환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대측은 사업철회 이유에 대해 “땅값이 예상했던 것과 지나치게 크게 차이 나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정지였던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미군기지(캠프에드워드)의 가격이 MOU 당시 292억원이었는데, 국방부가 땅값으로 1700억원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주시측은 “국방부가 이대에 1700억원대를 요구한 것도 아닌데 엉뚱한 핑계를 대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방부가 자체 감정가 1700억원대라는 점을 들어 이대측이 제시한 액수를 거부한 것이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를 통해 800억원대에서 중재가 가능한데도 이대가 이를 무시했으며, 경기도·파주시가 차액보전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가 이를 뭉갰다”는 것이 파주시의 주장이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사업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포기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대측이 사업포기 이유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 이대는 포기선언문을 통해 “땅값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로 포기하게 됐다”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대는 파주시민들의 계속되는 시위와 공개토론 요구, 이사회 회의록 공개요구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대 총학생회도 그동안 여러 차례 파주 관련 이사회 회의록 공개와 예산집행안 공개를 요구했지만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주요 언론도 이대측의 갑작스런 사업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대와 파주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화기애애한 MOU, 6시간만에 사업시행승인
이대 파주캠퍼스의 시작은 5년 전,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10월 11일, 이배용 당시 이화여대 총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류화선 파주시장은 이대 신촌캠퍼스에 모여 대학유치를 위한 MOU를 체결, 교환했다.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563-5번지 일원, 미군부지였던 공여지 캠프에드워드(30만㎡·약 7만6000평)를 포함해 영태리 일대 약 85만㎡에 이화여대의 교육연구단지 등 시설을 유치한다는 것이었다.
파주시는 MOU 체결 직후 TF팀을 구성했고, 답사와 타당성조사 등을 거쳐 2007년 5월 7일 해당 구역을 ‘파주 이화 연구시설 복합단지’로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내리고 고시했다(파주시 고시 제2007-61호).
이어 주한미군이 캠프에드워드를 국방부에 반환했고, 2008년 3월 25일 이대는 파주시에 사업시행 승인을 신청했다. 파주시는 불과 6시간 만에 사업시행 승인을 내줬다. 일반적으로 사업승인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3년씩 걸리는 점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조치였다.
그동안 주변 사유지 보상문제와 관련한 지주들과의 크고 작은 소송이 있었으나, 이와 별개로 공여지 매수를 진행해 이후 2009년 4월 1일 이대는 국방부에 공여지 매수를 신청했다. 같은 해 9월 이대와 국방부는 각각 공여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해 이듬해인 2010년 2월에 감정평가를 완료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가격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대가 애초 계획했던 예산과 실제 감정평가액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 당시 이대의 감정가는 600억원대, 국방부의 감정가는 1700억원대였다. 이대는 같은해 10월 국방부(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에 652억원에 토지매수 협의를 요청했다. 11월 국방부는 협의가 불성립한다고 통보했고, 12월 이대는 다시 2차 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협의요청 열흘 만에 다시 불성립 통보가 왔다. 이대가 지속적으로 희망한 매수가격은 652억원이었고, 국방부측은 “매수액이 최소 1114억원은 돼야 매각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대는 올해 들어 파주캠퍼스와 관련,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파주시가 2011년 2~3월 두달간 5차례에 걸쳐 이대 유치관련 대책회의를 열었고 4월 19일 경기도와 파주시가 차액보전에 힘쓰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대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던 중 8월 10일 연합뉴스는 이대 조경원 총무처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이대 파주캠퍼스 조성 포기>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기사 전문.
<경기도 파주시의 반환 미군기지에 추진되던 이화여대 캠퍼스 조성 사업이 백지화됐다. 이대가 파주시, 경기도와 2006년 10월 11일 양해각서를 맺고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이다. 이대 조경원 총무처장은 10일 “국방부가 제시한 땅값이 너무 비싸고 내부적으로 사업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점이 나와 사업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며 “곧 관련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에는 땅값 문제 외에도 반값등록금, 미군기지 환경오염, 학내 반발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 “땅값 등 대학 재정운영 문제”
파주시는 이 같은 보도에 8월 11일 이대에 “공식입장을 밝히라”고 요청했고, 이대는 8월 19일 홈페이지에 공식입장을 게재했다.
<국방부와의 가격차이에 따른 캠프에드워드 매수요청이 거절된 것이 이유다. 초기 본교에 제시된 캠프에드워드 가격은 총 292억원이었으며, 이를 전제로 사업을 추진했다. 파주교육연구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지가가 올라 2010년 감정평가액이 652억원에 달했다. 당초 예상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사학으로서의 공신력을 위해 국방부에 2차에 걸쳐 매수요청을 했으나 국방부 감정평가액 1750억원과의 현격한 차이로 성사되지 못했다.
국방부가 자체 감정가로 주장한 1750억원은 본교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막대한 금액이었다. 중토위(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가더라도 중재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파주시는 이에 격분했다. 이인재 파주시장은 “중재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판단이며, 5년째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중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나서지도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1750억원 달라고 한 사람도 없고, 땅값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사업을 그만두려고 작심하고 핑계를 갖다 붙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대는 파주캠퍼스 조성포기의 원인으로 지나치게 높은 땅값을 들었지만, 땅값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파주시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인재 파주시장의 이야기다.
지역구 황진하 의원, “김선욱 총장과 주변이 벌인 일”
“지난 1월부터 김선욱 총장이 파주캠퍼스 조성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는 제보를 여러 건 받았습니다. 최근의 제보는 이대가 그동안 파주캠퍼스 조성용으로 동문들에게 모금한 돈이 수백억 원인데, 그 돈으로 신촌캠퍼스에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 건물 조감도에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있다더군요. 이배용 전 총장이 피땀흘려 모아 온 돈을 후임 총장이 엉뚱한 데 쓴다니 안타깝다며 저에게 제보한 겁니다. 김 총장은 애초부터 파주 올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학내 유보금을 몇천억 원씩 갖고 있으면서 새 건물을 짓는다느니 하며 방만한 재정운용을 해 놓고 이제 와서 돈문제로 5년전부터 진행해 온 사업을 포기한다는 건 사기극에 가깝습니다.”
파주가 지역구인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도 “땅값 때문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황 의원의 설명이다.
“이대와 국방부가 처음 생각한 가격에 큰 차이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차이를 줄이려고 제가 국방부를 찾아갔어요. 최초 국방부 감정가는 이대가 주장하는 대로 1700억원대였지요. 하지만 설득과 재감정요청 등 노력으로 최후 1110억원까지 양보를 받아 냈어요. 이대는 그래도 비싸다고 하기에 경기도지사, 파주시장, 저까지 다 나서서 차액을 보전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땅값협상은 중토위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약 800억원 선에서 해결될 전망이었고 국방부도 중토위 결정에 따르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런데도 엉뚱하게 292억과 1750억원이라는 액수를 언급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겁니다.”
황 의원은 “김선욱 총장과 그 측근들이 파주사업을 철회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댔다”고 주장했다. “이대측 주장을 보면 반값등록금 논란으로 인한 대학재정 운영부담, 일부 부정적 시각, 재학생 반대, 땅투기라는 감사원 지적 등 다양한 핑계를 대고 있는데 실체는 하나도 없어요. 반값등록금을 이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반값등록금 때문에 사업포기하는 대학이 있습니까. 감사원도 이대에 땅투기 지적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답변했고요. 결국 총장과 그 주변인물들이 벌인 일입니다.”
파주시 관계자는 “감정평가 직후 이대측과 만났을 때 그쪽에서 ‘우리측 감정가 652억원에서 플러스 100억원 전후라면 무리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가격문제는 이대측의 652억원과 국방부측의 1114억원이 충돌했지만 중토위를 통하면 800억원대에서 절충이 가능했으며, 이 가격에 대해서는 비공식적으로 이대측이나 국방부측 모두 수용할 용의를 보였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가 파주를 포기한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이대가 파주를 주목했던 이유는
애초 이대가 파주에 새 캠퍼스를 지으려 했던 이유를 수소문해 봤다. 이대는 더이상 확장이 불가능한 신촌캠퍼스 외에 수도권에 분교 또는 지방캠퍼스를 지을 계획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1993년에는 천안캠퍼스 설립을 계획했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파주였을까. 당시 이배용 총장이 취임(2006년 7월) 직후 인터뷰에서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 가능하면 (경기)북쪽에 새 캠퍼스를 짓겠다”는 내용을 본 류화선 파주시장이 이대를 찾아가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총장 취임부터 파주캠퍼스 MOU체결까지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은 점으로 볼 때, 파주행(行)에는 이배용 전 총장의 의중(意中) 역시 강력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부터 파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학자인 이 전 총장은 교수 시절부터 파주에 관심이 많았다. 파주는 율곡 이이 유적지, 황희 유적지, 자운서원, 오두산성, 보광사 등 조선시대 유적지가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사학자들이 주목하는 곳이다.
이 전 총장은 총장이 되기 전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역사문화 아카데미 강의를 열어 호응을 얻었는데, 2000년대 초반 이를 수강했던 한 공무원의 얘기다. “이 전 총장은 파주가 ‘파주삼현(황희, 이이, 윤관)’ 등 훌륭한 학자들을 키워 낸 학문의 고장’이라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고, 수강생들에게 함께 답사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요. 이후 이대가 파주캠퍼스를 설립한다는 말을 듣고 위치선정에 이배용 총장이 큰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년 MOU 직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전 총장이 한 말이다. “파주는 이이, 황희 등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키웠던 곳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연환경인데,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깨끗한 파주에서 이대생들이 정신적인 휴식도 취하면서 인성의 바탕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대생들이 줄곧 지방캠퍼스를 극심하게 반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파주에 대해 이 총장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얘기다.
취임 직후부터 강력하게 추진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던 파주캠퍼스가 무산된 데 대해 이 전 총장은 어떤 입장일까. 현재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 사건에 대해 “학교와 이사회에 문의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現 총장의 사업지속, 의지부족 탓?
파주시측은 김선욱 총장이 전(前) 총장이 벌인 사업을 계속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사업을 취소했다는 주장이다. 현(現) 총장이 파주캠퍼스 추진에 강한 의지가 없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파주시 관계자는 “2010년 8월 김선욱 총장 취임식에 파주시장과 경기도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김 총장이 이대의 미래비전과 여러 사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파주캠퍼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아 바쁜 시간을 내 참석한 사람들을 낯뜨겁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이 포기선언 전까지 파주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2010년 9월 7일,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김 총장은 파주캠퍼스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민간소유 부지는 소송 등 반발이 거세 포기했고, 국방부 소유의 토지만을 대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이대는 2010년 5월 파주캠퍼스 예상부지에서 민간부지를 제외해 달라며 규모를 크게 축소시키는 사업변경안을 승인 신청했고 파주시는 이를 승인해 줬다.
“김 총장이 이 전 총장의 사업을 승계할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파주시측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김 총장이 당선된 총장선거(2010년 5월)에 국정원이 개입하는 등 내부 진통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다 (《주간조선》 2011.4.18자 보도). 당시 이대 총장 선거는 김 총장과 A교수의 팽팽한 접전이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법제처장을 지냈던 김 총장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A교수의 접전이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대결 양상을 띠면서 이 전 총장은 자신이 임기 전반에 처장으로 임명했던 A교수를 지지했다. 말하자면 김 총장과 이 전 총장은 대립관계였던 셈이다.
동문 반대도 사업포기의 한 원인
이대 동문 및 학생들이 지방캠퍼스 설립을 반대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서울시내 유수 대학 중 지방캠퍼스를 보유하지 않은 곳은 이대와 서강대밖에 없을 정도다. 지방캠퍼스를 반대하는 동문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이대는 1993년 천안캠퍼스 설립을 발표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1993년 8월 윤후정 당시 총장은 공대(工大)를 신설함과 동시에 재단이 충남 천안 일대에 소유한 20만여 평의 땅에 제2캠퍼스를 짓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천안캠퍼스 설립안은 학생 및 교수, 동문들의 극심한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천안 부지는 개발을 못한 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가 파주캠퍼스 설립안을 내놓으며 학생회 및 동문들을 대상으로 몇 번이나 강조한 말은 ‘학부생은 옮겨가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 학부생이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일부 대학원생을 위한 연구시설, 외국인 학생 시설, 문화강좌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거리가 먼 시설만 지어 놓는 것이다. 연세대 송도캠퍼스와 마찬가지다. 지방캠퍼스 설립을 줄곧 반대해 온 이대 총학생회와 총동문회 역시 학교측의 약속을 믿고 파주캠퍼스 조성을 반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대 학보나 이대가 만든 홍보물 및 인쇄물에 ‘파주캠퍼스’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총학생회장 “땅투기하려던 것이란 의문”
그러나 ‘땅값 문제’와 ‘이대 내부 문제’에 중점을 둬 취재를 하다보니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는 취재원이 많았다.
《경향신문》 전국부 경기북부주재 원희복 선임기자는 “이대의 이번 결정이 전혀 놀랍지 않으며, 가격 문제 운운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파주캠퍼스란 애초부터 교육적 견지가 아닌 부동산 투자적 의도가 강했다고 봅니다. 땅값은 1750억원에서 1114억원까지 원래 가격에서 3분의 1이나 깎아 준 상태이고, 경기도와 파주시가 차액도 보전해 준다고 협의중이었습니다. 이대는 원래 원했던 자금(652억)과 큰 차이 없이 땅을 매입할 수 있었어요. 포기한 이유는 동문과 학생, 교수들의 반대 등 내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 동시에 투자적 관점에서 사업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해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정윤지(법학과 4학년)씨는 “파주캠퍼스의 실질적 목적이 땅투기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팽배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대 총학생회는 파주캠퍼스 설립에 반대해 왔다.
“애초 파주캠퍼스 계획을 내놓은 뒤 처음에는 체육시설만 만들겠다고 했다가 연구동만 짓겠다더니, 다시 과(科)를 신설할 수도 있다고 수정하는 등 캠퍼스 조성계획에 기준이 없었습니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고요. 수백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학교 주인인 학생들이 알 수 없다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학교측은 파주에 대해서는 학내 언론사 취재도 거부했고, 그동안 파주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해 왔어요. 캠퍼스를 설립하려면 목표와 계획을 분명히 하고 이에 맞게 부지를 확보하는 게 상식인데, 땅값에 따라 캠퍼스 조성계획이 여러 번 바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현재 영태리 일대의 땅값은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상태다. 영태3리 이장 서창배씨는 “지역주민들이 땅값에 욕심이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오랫동안 터전을 지켜 온, 땅투기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다만 오랫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던 자기 땅에 명문대가 들어오고 지역이 발전한다고 해서 한줄기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무산돼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대, “구조적으로 땅값문제 해결할 수 없어 포기”
《월간조선》은 이대측의 반론을 받기 위해 김선욱 총장, 장명수 이사장, 이배용 전 총장, 조경원 총무처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획처 오수근 처장(법학과 교수)은 “파주 사업은 특정 총장의 사업이 아니라 학교법인 이화학당의 사업이므로 총장이 바뀐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현 총장 취임 이후 2010년 추경예산에도 파주 토지매입 대금을 편성했고, 두 차례에 걸쳐 매수협의 요청을 한 것 역시 현 총장인 만큼 억측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수근 처장의 대답이다.
―사업철회의 정확한 배경은.
“부지가격 때문이다. 가격차이가 컸음은 물론, 이런 가격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도 있다. 토지 소유자(국방부)와 본교 유치를 희망하는 주체(파주시, 경기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가능한 한 높은 가격을 받고자 하고, 대학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와는 원하는 방향이 다르다. 지자체가 아무리 대학을 유치하고자 해도 땅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중토위에 재결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중토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학교가 부담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652억원인데 국방부 감정가 1750억원은 그 3배에 이른다.”
―경기도가 토지감정가 차액을 보전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경기도가 제안한 것은 차액을 4~5년에 걸쳐 연구비 지급방식으로 보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연구비를 토지감정가 차액보전이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파주시가 지금까지 사용한 관련 비용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는데.
“파주시가 반환하라고 주장하는 토양정화비용이나 도시기반시설 구축 등의 비용은 결국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본교가 반환할 성격이 아니다.”
―양해각서의 내용을 파기했는데, 법적 책임은 없나.
“법률가 100명 중 99명은 양해각서의 법적 효력을 부인한다. 본교가 체결한 해당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땅투기에 대한 의혹을 많이 받아 왔는데.
“대학이 교육용 부지로 땅을 샀다가 팔려면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판 돈으로 반드시 학교부지를 사야 한다. 땅값이 오른다고 이익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포기결정하고도 6개월 동안 함구
공공기관이 아닌 사립학교의 사업여부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5년 동안 사업을 진행시켜 왔으면서도 수장이 바뀐 이후 기존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캠퍼스 건립 포기를 이미 기정사실화해 놓고도 유야무야하며 결국은 구체적 설명도 없이 캠퍼스포기로 갔다는 사실이다.
포기 관련 언론보도 이후 8월 12일 열린 이화여대 이사회에서 우창록 이사(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이미 2월 이사회에서 파주 부지 매입은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의결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경기도와 파주시의 입장을 고려해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발언했다.
5년동안 추진한 사업을 갑자기 포기한 것은 물론, 이를 결정해 놓고 6개월이나 아무말 없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했던 125년 전통의 이화여대. 그들에게 정말 외부에 공개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당연히 명문대 유치를 기대하고 있던 파주측은 분개했다. 파주시측은 이대를 위해 각종 행정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주시는 “해당 부지의 토양오염정화를 위해 상하수도 원인자 부담금 조례를 개정해 부담금을 면제해주고,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정화작업 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고 밝혔다. 뿐만아니라 파주시는 진입도로 개설(1억5000만원), 상하수도 부담금 면제(약 90억원 혜택), 도시관리계획 변경결정 용역대행비 2000만원, 캠프에드워드 토양반입 비용지원 2억4000만원, 2010년 5월 이대 자연사특별전시 지원금 6억원 등 세금면제액을 제외하고도 14억여원의 시비 및 도비가 소요됐다며 반환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대측은 사업철회 이유에 대해 “땅값이 예상했던 것과 지나치게 크게 차이 나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정지였던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미군기지(캠프에드워드)의 가격이 MOU 당시 292억원이었는데, 국방부가 땅값으로 1700억원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주시측은 “국방부가 이대에 1700억원대를 요구한 것도 아닌데 엉뚱한 핑계를 대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방부가 자체 감정가 1700억원대라는 점을 들어 이대측이 제시한 액수를 거부한 것이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를 통해 800억원대에서 중재가 가능한데도 이대가 이를 무시했으며, 경기도·파주시가 차액보전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가 이를 뭉갰다”는 것이 파주시의 주장이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사업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포기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대측이 사업포기 이유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 이대는 포기선언문을 통해 “땅값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로 포기하게 됐다”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대는 파주시민들의 계속되는 시위와 공개토론 요구, 이사회 회의록 공개요구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대 총학생회도 그동안 여러 차례 파주 관련 이사회 회의록 공개와 예산집행안 공개를 요구했지만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주요 언론도 이대측의 갑작스런 사업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대와 파주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화기애애한 MOU, 6시간만에 사업시행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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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11일 이대에서 열린 교육연구복합단지 건립에 관한 협약식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 류화선 파주시장이 협약서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파주시는 MOU 체결 직후 TF팀을 구성했고, 답사와 타당성조사 등을 거쳐 2007년 5월 7일 해당 구역을 ‘파주 이화 연구시설 복합단지’로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내리고 고시했다(파주시 고시 제2007-61호).
이어 주한미군이 캠프에드워드를 국방부에 반환했고, 2008년 3월 25일 이대는 파주시에 사업시행 승인을 신청했다. 파주시는 불과 6시간 만에 사업시행 승인을 내줬다. 일반적으로 사업승인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3년씩 걸리는 점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조치였다.
그동안 주변 사유지 보상문제와 관련한 지주들과의 크고 작은 소송이 있었으나, 이와 별개로 공여지 매수를 진행해 이후 2009년 4월 1일 이대는 국방부에 공여지 매수를 신청했다. 같은 해 9월 이대와 국방부는 각각 공여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해 이듬해인 2010년 2월에 감정평가를 완료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가격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대가 애초 계획했던 예산과 실제 감정평가액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 당시 이대의 감정가는 600억원대, 국방부의 감정가는 1700억원대였다. 이대는 같은해 10월 국방부(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에 652억원에 토지매수 협의를 요청했다. 11월 국방부는 협의가 불성립한다고 통보했고, 12월 이대는 다시 2차 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협의요청 열흘 만에 다시 불성립 통보가 왔다. 이대가 지속적으로 희망한 매수가격은 652억원이었고, 국방부측은 “매수액이 최소 1114억원은 돼야 매각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대는 올해 들어 파주캠퍼스와 관련,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파주시가 2011년 2~3월 두달간 5차례에 걸쳐 이대 유치관련 대책회의를 열었고 4월 19일 경기도와 파주시가 차액보전에 힘쓰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대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던 중 8월 10일 연합뉴스는 이대 조경원 총무처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이대 파주캠퍼스 조성 포기>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기사 전문.
<경기도 파주시의 반환 미군기지에 추진되던 이화여대 캠퍼스 조성 사업이 백지화됐다. 이대가 파주시, 경기도와 2006년 10월 11일 양해각서를 맺고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이다. 이대 조경원 총무처장은 10일 “국방부가 제시한 땅값이 너무 비싸고 내부적으로 사업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점이 나와 사업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며 “곧 관련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에는 땅값 문제 외에도 반값등록금, 미군기지 환경오염, 학내 반발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 “땅값 등 대학 재정운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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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3월, 파주시 관계자들이 이대가 제출한 파주캠퍼스 건립안을 심사하고 있다. |
<국방부와의 가격차이에 따른 캠프에드워드 매수요청이 거절된 것이 이유다. 초기 본교에 제시된 캠프에드워드 가격은 총 292억원이었으며, 이를 전제로 사업을 추진했다. 파주교육연구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지가가 올라 2010년 감정평가액이 652억원에 달했다. 당초 예상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사학으로서의 공신력을 위해 국방부에 2차에 걸쳐 매수요청을 했으나 국방부 감정평가액 1750억원과의 현격한 차이로 성사되지 못했다.
국방부가 자체 감정가로 주장한 1750억원은 본교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막대한 금액이었다. 중토위(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가더라도 중재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파주시는 이에 격분했다. 이인재 파주시장은 “중재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판단이며, 5년째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중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나서지도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1750억원 달라고 한 사람도 없고, 땅값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사업을 그만두려고 작심하고 핑계를 갖다 붙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대는 파주캠퍼스 조성포기의 원인으로 지나치게 높은 땅값을 들었지만, 땅값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파주시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인재 파주시장의 이야기다.
지역구 황진하 의원, “김선욱 총장과 주변이 벌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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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이배용 당시 이대 총장과 류화선 파주시장이 한동주 9사단장(왼쪽)과 이대 캠퍼스 개발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
파주가 지역구인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도 “땅값 때문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황 의원의 설명이다.
“이대와 국방부가 처음 생각한 가격에 큰 차이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차이를 줄이려고 제가 국방부를 찾아갔어요. 최초 국방부 감정가는 이대가 주장하는 대로 1700억원대였지요. 하지만 설득과 재감정요청 등 노력으로 최후 1110억원까지 양보를 받아 냈어요. 이대는 그래도 비싸다고 하기에 경기도지사, 파주시장, 저까지 다 나서서 차액을 보전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땅값협상은 중토위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약 800억원 선에서 해결될 전망이었고 국방부도 중토위 결정에 따르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런데도 엉뚱하게 292억과 1750억원이라는 액수를 언급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겁니다.”
황 의원은 “김선욱 총장과 그 측근들이 파주사업을 철회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댔다”고 주장했다. “이대측 주장을 보면 반값등록금 논란으로 인한 대학재정 운영부담, 일부 부정적 시각, 재학생 반대, 땅투기라는 감사원 지적 등 다양한 핑계를 대고 있는데 실체는 하나도 없어요. 반값등록금을 이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반값등록금 때문에 사업포기하는 대학이 있습니까. 감사원도 이대에 땅투기 지적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답변했고요. 결국 총장과 그 주변인물들이 벌인 일입니다.”
파주시 관계자는 “감정평가 직후 이대측과 만났을 때 그쪽에서 ‘우리측 감정가 652억원에서 플러스 100억원 전후라면 무리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가격문제는 이대측의 652억원과 국방부측의 1114억원이 충돌했지만 중토위를 통하면 800억원대에서 절충이 가능했으며, 이 가격에 대해서는 비공식적으로 이대측이나 국방부측 모두 수용할 용의를 보였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가 파주를 포기한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이대가 파주를 주목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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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에드워드에서 진행된 환경오염 실태공개 현장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하유출기름을 채취하고 있다. |
이 총장 취임부터 파주캠퍼스 MOU체결까지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은 점으로 볼 때, 파주행(行)에는 이배용 전 총장의 의중(意中) 역시 강력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부터 파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학자인 이 전 총장은 교수 시절부터 파주에 관심이 많았다. 파주는 율곡 이이 유적지, 황희 유적지, 자운서원, 오두산성, 보광사 등 조선시대 유적지가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사학자들이 주목하는 곳이다.
이 전 총장은 총장이 되기 전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역사문화 아카데미 강의를 열어 호응을 얻었는데, 2000년대 초반 이를 수강했던 한 공무원의 얘기다. “이 전 총장은 파주가 ‘파주삼현(황희, 이이, 윤관)’ 등 훌륭한 학자들을 키워 낸 학문의 고장’이라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고, 수강생들에게 함께 답사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요. 이후 이대가 파주캠퍼스를 설립한다는 말을 듣고 위치선정에 이배용 총장이 큰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년 MOU 직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전 총장이 한 말이다. “파주는 이이, 황희 등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키웠던 곳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연환경인데,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깨끗한 파주에서 이대생들이 정신적인 휴식도 취하면서 인성의 바탕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대생들이 줄곧 지방캠퍼스를 극심하게 반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파주에 대해 이 총장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얘기다.
취임 직후부터 강력하게 추진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던 파주캠퍼스가 무산된 데 대해 이 전 총장은 어떤 입장일까. 현재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 사건에 대해 “학교와 이사회에 문의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現 총장의 사업지속, 의지부족 탓?
파주시측은 김선욱 총장이 전(前) 총장이 벌인 사업을 계속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사업을 취소했다는 주장이다. 현(現) 총장이 파주캠퍼스 추진에 강한 의지가 없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파주시 관계자는 “2010년 8월 김선욱 총장 취임식에 파주시장과 경기도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김 총장이 이대의 미래비전과 여러 사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파주캠퍼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아 바쁜 시간을 내 참석한 사람들을 낯뜨겁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이 포기선언 전까지 파주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2010년 9월 7일,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김 총장은 파주캠퍼스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민간소유 부지는 소송 등 반발이 거세 포기했고, 국방부 소유의 토지만을 대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이대는 2010년 5월 파주캠퍼스 예상부지에서 민간부지를 제외해 달라며 규모를 크게 축소시키는 사업변경안을 승인 신청했고 파주시는 이를 승인해 줬다.
“김 총장이 이 전 총장의 사업을 승계할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파주시측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김 총장이 당선된 총장선거(2010년 5월)에 국정원이 개입하는 등 내부 진통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다 (《주간조선》 2011.4.18자 보도). 당시 이대 총장 선거는 김 총장과 A교수의 팽팽한 접전이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법제처장을 지냈던 김 총장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A교수의 접전이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대결 양상을 띠면서 이 전 총장은 자신이 임기 전반에 처장으로 임명했던 A교수를 지지했다. 말하자면 김 총장과 이 전 총장은 대립관계였던 셈이다.
동문 반대도 사업포기의 한 원인
이대 동문 및 학생들이 지방캠퍼스 설립을 반대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서울시내 유수 대학 중 지방캠퍼스를 보유하지 않은 곳은 이대와 서강대밖에 없을 정도다. 지방캠퍼스를 반대하는 동문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이대는 1993년 천안캠퍼스 설립을 발표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1993년 8월 윤후정 당시 총장은 공대(工大)를 신설함과 동시에 재단이 충남 천안 일대에 소유한 20만여 평의 땅에 제2캠퍼스를 짓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천안캠퍼스 설립안은 학생 및 교수, 동문들의 극심한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천안 부지는 개발을 못한 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가 파주캠퍼스 설립안을 내놓으며 학생회 및 동문들을 대상으로 몇 번이나 강조한 말은 ‘학부생은 옮겨가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 학부생이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일부 대학원생을 위한 연구시설, 외국인 학생 시설, 문화강좌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거리가 먼 시설만 지어 놓는 것이다. 연세대 송도캠퍼스와 마찬가지다. 지방캠퍼스 설립을 줄곧 반대해 온 이대 총학생회와 총동문회 역시 학교측의 약속을 믿고 파주캠퍼스 조성을 반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대 학보나 이대가 만든 홍보물 및 인쇄물에 ‘파주캠퍼스’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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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의 파주캠퍼스 건립포기선언 후 파주시민들이 서울 신촌역광장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
총학생회장 “땅투기하려던 것이란 의문”
그러나 ‘땅값 문제’와 ‘이대 내부 문제’에 중점을 둬 취재를 하다보니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는 취재원이 많았다.
《경향신문》 전국부 경기북부주재 원희복 선임기자는 “이대의 이번 결정이 전혀 놀랍지 않으며, 가격 문제 운운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파주캠퍼스란 애초부터 교육적 견지가 아닌 부동산 투자적 의도가 강했다고 봅니다. 땅값은 1750억원에서 1114억원까지 원래 가격에서 3분의 1이나 깎아 준 상태이고, 경기도와 파주시가 차액도 보전해 준다고 협의중이었습니다. 이대는 원래 원했던 자금(652억)과 큰 차이 없이 땅을 매입할 수 있었어요. 포기한 이유는 동문과 학생, 교수들의 반대 등 내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 동시에 투자적 관점에서 사업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해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정윤지(법학과 4학년)씨는 “파주캠퍼스의 실질적 목적이 땅투기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팽배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대 총학생회는 파주캠퍼스 설립에 반대해 왔다.
“애초 파주캠퍼스 계획을 내놓은 뒤 처음에는 체육시설만 만들겠다고 했다가 연구동만 짓겠다더니, 다시 과(科)를 신설할 수도 있다고 수정하는 등 캠퍼스 조성계획에 기준이 없었습니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고요. 수백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학교 주인인 학생들이 알 수 없다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학교측은 파주에 대해서는 학내 언론사 취재도 거부했고, 그동안 파주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해 왔어요. 캠퍼스를 설립하려면 목표와 계획을 분명히 하고 이에 맞게 부지를 확보하는 게 상식인데, 땅값에 따라 캠퍼스 조성계획이 여러 번 바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현재 영태리 일대의 땅값은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상태다. 영태3리 이장 서창배씨는 “지역주민들이 땅값에 욕심이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오랫동안 터전을 지켜 온, 땅투기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다만 오랫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던 자기 땅에 명문대가 들어오고 지역이 발전한다고 해서 한줄기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무산돼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대, “구조적으로 땅값문제 해결할 수 없어 포기”
《월간조선》은 이대측의 반론을 받기 위해 김선욱 총장, 장명수 이사장, 이배용 전 총장, 조경원 총무처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획처 오수근 처장(법학과 교수)은 “파주 사업은 특정 총장의 사업이 아니라 학교법인 이화학당의 사업이므로 총장이 바뀐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현 총장 취임 이후 2010년 추경예산에도 파주 토지매입 대금을 편성했고, 두 차례에 걸쳐 매수협의 요청을 한 것 역시 현 총장인 만큼 억측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수근 처장의 대답이다.
―사업철회의 정확한 배경은.
“부지가격 때문이다. 가격차이가 컸음은 물론, 이런 가격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도 있다. 토지 소유자(국방부)와 본교 유치를 희망하는 주체(파주시, 경기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가능한 한 높은 가격을 받고자 하고, 대학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와는 원하는 방향이 다르다. 지자체가 아무리 대학을 유치하고자 해도 땅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중토위에 재결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중토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학교가 부담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652억원인데 국방부 감정가 1750억원은 그 3배에 이른다.”
―경기도가 토지감정가 차액을 보전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경기도가 제안한 것은 차액을 4~5년에 걸쳐 연구비 지급방식으로 보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연구비를 토지감정가 차액보전이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파주시가 지금까지 사용한 관련 비용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는데.
“파주시가 반환하라고 주장하는 토양정화비용이나 도시기반시설 구축 등의 비용은 결국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본교가 반환할 성격이 아니다.”
―양해각서의 내용을 파기했는데, 법적 책임은 없나.
“법률가 100명 중 99명은 양해각서의 법적 효력을 부인한다. 본교가 체결한 해당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땅투기에 대한 의혹을 많이 받아 왔는데.
“대학이 교육용 부지로 땅을 샀다가 팔려면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판 돈으로 반드시 학교부지를 사야 한다. 땅값이 오른다고 이익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포기결정하고도 6개월 동안 함구
공공기관이 아닌 사립학교의 사업여부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5년 동안 사업을 진행시켜 왔으면서도 수장이 바뀐 이후 기존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캠퍼스 건립 포기를 이미 기정사실화해 놓고도 유야무야하며 결국은 구체적 설명도 없이 캠퍼스포기로 갔다는 사실이다.
포기 관련 언론보도 이후 8월 12일 열린 이화여대 이사회에서 우창록 이사(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이미 2월 이사회에서 파주 부지 매입은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의결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경기도와 파주시의 입장을 고려해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발언했다.
5년동안 추진한 사업을 갑자기 포기한 것은 물론, 이를 결정해 놓고 6개월이나 아무말 없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했던 125년 전통의 이화여대. 그들에게 정말 외부에 공개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