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그림의 떡’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 : 월간조선

현 정부가 대학생 학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신설한 한국장학재단(이사장 이경숙)이 지난해 정부출연금의 95% 이상을 사용하지 않는 등 본연의 업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300억원에 가까운 보증료를 학생들로부터 부당하게 징수하고 저소득층 장학금과 근로장학금, 농어촌장학금 등을 부당하게 지원 또는 축소해 감사원의 시정요구를 받기도 했다.

최근 국회예산처가 작성한 <2010 교육과학기술부 주요 사업 결산분석>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 예산에서 산하기관인 한국장학재단 출연금으로 4285억6800만원을 내놓았다. 교과부 출연 예산의 용도는 장학재단의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 지원, 학자금 지원사업의 다양한 정보ㆍ상담서비스 제공, 일반상환대출 손실보전금, 고유사업비, 재단운영비 등이다.

그런데 장학재단은 이 중 3.4%인 144억9900만원만 사용했다. 15%인 643억500만원은 교과부의 다른 사업에 전용(轉用)됐으며, 81.6%에 해당하는 3497억6400만원은 아예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산하기관이 애초 책정된 국가예산 중 단 3.4%만 사용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도대체 예산을 어떻게 책정했기에”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기관과 금융기관의 중간쯤에 위치한 장학재단의 특성에 그 원인이 있다.

예산 중 3.4%만 사용했다?

한국장학재단은 한나라당이 수년 전부터 ‘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기’를 주장하며 진행해 온 장학(奬學)정책의 산물로, 장학금 제공과 학자금 대출 등의 업무를 집행하고 있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설립된 한국장학재단은 2010년 1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의 제정 및 ‘한국장학재단 설립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이 이뤄지면서 금융권 대출연계가 아닌 정부 직접대출을 시작했다. 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Income Contingent Loan=든든학자금) 및 일반상환대출로 ICL은 졸업 후 취업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갖게 되면 상환을 시작하는 것이고, 일반상환대출은 10년 거치 10년 상환 방식이다.

장학재단은 자체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 장학금(무상) 및 등록금 대출(대여)을 위한 학자금 기금을 마련한다. 이에 수반되는 대출금 거치기간 동안의 이자부담과 손실보전금, 사업비, 운영비 등이 장학재단 자체 예산으로, 이는 교과부 출연금으로 대부분 충당한다.

대출금이 많아지면 이자비용도 늘어나는 만큼 정부의 부담(교과부 출연금=장학재단 예산)도 늘어난다. 학자금 대출액수와 장학재단 예산은 별도지만 정비례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학재단 예산집행이 예상치에 크게 못 미쳤다는 것은 그만큼 학생들이 학자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2010년 학자금 대출 실적이 예상보다 턱없이 저조해 교과부가 출연한 사업 예산액의 거의 전부를 쓰지 못한 것이다.

애초 예상 100만명, 실제로는 38만명만 학자금 대출

2010년 학자금 대출 액수는 애초 예상의 33%에 그쳤다. 학자금 대출 예상금액 8조3567억원의 33.1%인 2조7661억원밖에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국회예산처 전용수 예산분석관은 “(장학재단에 유입된) 국가예산의 80% 이상이 불용되는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ICL의 수요가 과다 추정됐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예측 실패로 인해 막대한 규모의 예산이 불용된 데 대해 교과부와 장학재단은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교과부와 한국장학재단은 애초 전체 대학생(197만명)의 20~50%가 ICL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2010년 학자금 대출 수요에 대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70만5000명,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 25만3000명으로 총 95만8000명을 예측하고 예산을 잡았다.

그러나 실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은 23만2448건,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은 52만8943건이 지원돼 인원수 기준으로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11만6224명,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 26만4472명 등 총 38만796명만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특히 대출자 중 2/3가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ICL을 이용한 경우는 1/3에 불과해 “든든학자금이 든든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2011년 교과부의 장학재단 출연금은 2010년 4286억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1918억원으로 확 줄어들었다. 애초 교과부가 책정한 예산안은 3218억원이었지만 국회에서 “지난해 결산에 비춰볼 때 불용 예산이 지나치게 많다”며 대폭 줄여버린 것이다. 장학재단의 2011년 대출금 예산도 이에 발맞춰 3조원대로 줄었다.

한 대학교수는 “애초 예상보다 학자금 대출 및 장학금 지급 건수가 적었다면 문턱을 좀 더 낮춰서 많은 학생에게 혜택을 주면 될 텐데 예산을 아예 줄여버리니 학생들에게 심적 부담이 더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학자금 대출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던 것일까? 사실 학점조건(평균 B학점 이상)과 소득조건은 크게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문제는 ‘부담’이다. 지난해 교과부와 장학재단이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가 “높은 금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수요를 예측한 정부의 착오였다.

고금리, 대학생에 부담

7월 1일 교육과학기술부 대회의실에서 이주호 장관이 대학생들과 함께 대학 등록금과 관련한 간담회를 갖고 있다.

현재 ICL 대출금리는 4.9%다. 지난해 초에는 5.7%에 달했다. 평균등록금이 연간 800만원에 달하는 사립대 1학년생이 졸업할 때까지 ICL을 이용하면 4년 만에 졸업 직후 취업하더라도 약 130만~180만원을 대출이자로 내야 하며, 군대에 갔다오거나 휴학을 하면, 또 취업을 바로 하지 못하면 이자는 더 늘어난다. 남성의 경우 불가피한 입대기간에도 이자는 어김없이 늘어난다. 학자금 원금까지 포함하면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졸업하는 셈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 조모씨는 “이자와 원금상환의 부담이 큰 데다 졸업 후 이를 금방 갚을 만큼 괜찮은 직장을 잡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며 “주변 대학생 대부분 대출보다 아르바이트하는 편을 택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은 “등록금 자체가 워낙 비싸 원금과 이자를 계속 빌려서 내면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대부분 학자금 대출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현행 학자금 대출방식이 대학생들에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한편 2010년 통계청이 전국 대학생 21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등록금 마련방법’이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5%가 “가족 도움을 받아”라고 답하는 등 학자금 대출이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의 장학제도는 이 밖에도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장학재단은 학생들로부터 보증료를 징수할 필요가 없는데도 296억여 원의 보증료를 부당징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학제도 곳곳에 허점

감사원 관계자는 “한국장학재단 출범으로 2009년 2학기부터 학자금 대출방식이 기존의 정부보증ㆍ금융기관대출 방식에서 정부직접대출방식으로 변경됐고, 대손비용이 이자율 결정 시 이미 반영된 만큼 학생들로부터 보증료를 징수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2학기 일반상환 학자금을 대출받는 학생 33만1470명에게서 296억3103억원의 보증료를 부당징수했다”고 밝혔다. 학생 1인당 평균 8만9000원의 보증료를 부당징수한 것이다. 장학재단은 빠른 시일 내에 보증료를 환급한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대학생과 농어촌 학생 지원제도, 근로장학금 등이 부당하게 지급되거나 지원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한해 근로장학금을 부당하게 수령한 학생이 1500명을 넘었고, 부당지급액수는 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장학금은 근로장학생이 장학재단 사이트에 자신의 출근부를 직접 입력하면 근로여부 확인업무 담당직원이 검증한 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연수나 여행 등으로 출국했으면서도 근로를 한 것처럼 입력해 장학금을 수령한 학생이 1542명에 달했던 것. 출국으로 전혀 근로를 하지 않고 장학금을 수령한 학생도 141명에 달했다. 이들에게 국가근로장학금 9400여만 원이 지급됐다.

또 농어업인자녀 학자금 지급도 지원대상 여부 확인업무 부실로 농어업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2억6097억원의 농어업인자녀 학자금을 수령했다. 한편 교육기본법 제28조에 따라 ‘특출한 재질이 있으나 학비 마련이 어려운 중고생을 위한 특별장학생’ 선발 기준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특별장학생 중 부모 연소득 5000만원(도시근로자 4인가구 연평균소득) 이상인 학생이 21.8%에 달했다.

감사원 측은 “한국장학재단이 보증료를 부당징수하거나 장학생 선발 및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대학들이 장학제도 관련 법령을 지키지 않는 등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예산이 중복지원 또는 누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교육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정과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반값등록금 논란에도 불구하고 학자금대출금리 안 내려

한편 교과부와 장학재단은 반값등록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2학기 ICL 금리를 연 4.9%로 동결해 비난을 받고 있다. 교과부는 “등록금 완화를 위해 정치권 등에서 대출금리 인하가 거론되고 있지만,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단 현행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ICL 금리는 2010년 1학기 5.7%, 2학기 5.2%, 2011년 1학기 4.9%로 점점 낮아졌다가 이번 2학기에 처음으로 동결됐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주요 정책 대출금리가 무이자 또는 3%대인데, 5% 전후인 ICL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등록금 부담 줄이기와 반값등록금 등으로 사회 전체가 시끄러운데 정부 학자금 대출금리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게 이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장학재단 홍보팀 신한종 과장은 “지난해까지는 수요예측에 다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불용예산이 생겼고, 2011년부터는 지금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안정된 예산집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자금 대출금리를 동결시킨 것은 기준금리 폭등을 고려하면 낮춘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생들이 무리없이 학자금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과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전 대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전 수요조사와 여론조사 등을 통해 예산을 연구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지속적으로 등록금 부담 경감과 장학제도 개선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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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떡’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

2010 예산 중 95% 이상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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