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原電사고와 우리 원자력 정책 방향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했다. 체르노빌 원전은 격납용기가 없었다. 폭발을 일으킨 4호기 원자로에서 다량(多量)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중으로 흩어졌다. 방사능에 피폭(被曝)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사고 처리 과정에 참여했던 발전소 직원이나 소방관 중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소련 당국은 4호기를 석관(石棺)으로 봉인(封印)했다.

체르노빌 4호기는 콘크리트에 매장됐지만, 원전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은 묻히지 않았다. 이 사고 이후 전 세계 원자력업계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다수인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기피하는 산업이 됐다는 사실이다. 원전 104기를 운영하는 미국도 스리마일(Three mile) 사고 이후 32년간 원전 신설 사례가 없을 정도다.

역사(歷史)에는 주기(週期)가 있는 걸까. 20여 년간 침체기를 맞았던 원전이 최근 활력을 되찾았다. 세계산업계환경협의회가 21세기 지구문제로 제시한 ‘지구를 위협할 10대 요인’을 ▲인구증가 ▲식량부족 ▲열대우림의 손실 ▲생물의 멸종 ▲수자원 부족 ▲수산자원 고갈 ▲보건의 위협 ▲기후변화 ▲산성비 ▲에너지 위기라고 열거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 방안은 깨끗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고(高)유가, 화석연료 고갈, 지구온난화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원자력뿐이라는 의견이 점점 설득력을 갖게 됐다. ‘반핵(反核)’ 환경론자 중 일부가 ‘친(親)원전’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반핵단체 ‘그린피스’의 창시자 패트릭 무어 역시 현재는 “원자력발전은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지구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인정했다.

2000년대 후반, 세계 각국은 원전 증설(增設)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인도 같은 후발(後發)국가들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電力) 공급이 절실하다. 미국도 원전 카드를 다시 빼들었다. 지난 2월 오바마 미(美)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원전 르네상스’가 도래하는 듯했지만, 그 시기는 ‘유보(留保)’됐다. 지난 3월 11일 있었던 동(東)일본 대(大)지진은 ‘원전 르네상스’에 찬물을 끼얹었다.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이 터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전 르네상스’에 찬물 끼얹어

원전은 입지 선정과 설계과정, 건설공사 등에서 ‘안전성’을 가장 중시한다. 그중 일본 원전은 ‘안전 철옹성’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 일본 원전조차 기술기준을 훨씬 넘는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無力)했다. 사람들은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보며 인간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원전이 부활하는 대신 20여 년의 노력으로 잊혀 가던 ‘방사능 공포’가 되살아났다.

후쿠시마 원전이 뿜어낸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전 세계는 ‘체르노빌’ 당시의 공황(恐慌) 상태로 회귀(回歸)했다. 일반인은 방사능 공포에 떨었고, 반핵 환경단체의 시위는 끊이질 않았다. 각국 정부는 자국 원전의 안전점검과 대비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했다.

미국은 즉시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중심으로 90일간 전 미국 원전에 대한 안전점검을 시행했다. 5월 12일 “미 원전의 지속적인 안전 및 위험관리 신뢰성을 무너뜨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보고가 발표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원전의 안전성과 원자력에너지 신뢰를 천명하고 원자력은 미국의 에너지 계획의 한 부분임을 확고히 했다.

총발전량의 75% 이상을 원전이 점유하는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원전 안전성 논란을 서둘러 진화(鎭火)했다. 그는 오히려 “EPR(프랑스 수출 원전)의 안전성은 우수하다”고 홍보했다. 향후 원전 수출의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의도에 따른 선제 조치였다. 그 외 러시아, 폴란드, 칠레, 카자흐스탄, 브라질, 남아공 및 케냐는 원전에 대한 계속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獨 일간지 “원자력 포기는 독일 경제모델을 부정하는 것”

한편 사고 당사국인 일본을 비롯해 중국, EU 등은 원전 승인보류 및 안전점검 실시 등을 선언했다. 중국은 원래 2030년까지 80기, 2050년까지는 150기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매년 5~6기가 건설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불가능한 목표치다. 원전 건설 재검토를 시행하면서 원전건설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정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사태로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국가도 생겨났다. 독일, 스위스, 베네수엘라 등이다. 이 중 독일이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원자력 포기는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중 하나로 만든 경제모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독일 산업계에서는 전기료 인상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후쿠시마 사고 발생 후 가동 원전 21기를 포함한 원자력 관련 시설에 대해 종합안전 점검을 50여 일 동안 실시했다. 5월 초 교과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 원전은 설계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이 났다. ‘계속운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고리원전 1호기도 정밀점검 결과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다만, 뜻밖의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그동안 언론과 각계에서 지적된 문제점에 대한 개선사항도 담았다. 교과부는 지진·지진해일·중대사고 등에 대응할 수 있는 6개 분야별 50개 장단기 개선방안을 제시했지만, ‘원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원전의 연평균 운전 정지횟수는 2.4회로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운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1기 중 올해 2월에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新)고리 1호기를 제외한 20기는 모두 OCTF(One Cycle Trouble Freeㆍ한 주기 무고장 안전운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OCTF란 연료장착 후 다음 연료교체 시까지 단 한 번의 발전정지 없이 연속운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원전의 운전·정비·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운영능력을 발휘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특히 고리 1호기는 최근 ‘고장’이 있기 전까지 5주기 연속 OCTF를 달성했다. 이런 사실이 국민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원폭과 체르노빌 사고 등이 유발한 방사능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초 ‘방사능비’ 논란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방사능에 대한 지식도 없고, 이해도 부족한 언론이 ‘방사능비’라고 보도했다. 이 한마디에 전국은 ‘혼란’에 빠졌다.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이날만큼은 비를 맞지 않으려 차를 끌고 나와 교통체증이 매우 심했다. 아이가 비를 맞을까 봐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들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혹시나 빗물이 닿으면 질겁하며 닦아내기 바빴다. 우리 원자력계가 그동안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 펼친 원전 안전성 홍보가 있기나 했던 것인가 의문이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원자력’이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은 엄연한 현실

과학을 믿지 않고, 인터넷 매체에 떠돌아다니는 ‘낭설’을 입에 올리는 세태가 서글프지만 이 또한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자연과학적인 팩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과학적인 신뢰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원자력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쏟았던 만큼의 엄청난 시간과 자원, 그리고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 후쿠시마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더욱 안전한 원전 설계와 건설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먼저 원전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건설 중인 발전소의 시설과 기준이 예상을 뛰어넘은 재해에도 안전한지 점검, 또 점검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보완책을 마련해 조속히 개선하는 노력을 보이는 것도 꼭 필요한 모습이다.

이를 위해서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그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이것이 일어날 확률과 대처 방안도 면밀히 검토하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인간의 이성적 상상을 뛰어넘는 사고에 대해 “How safe is safe enough(얼마나 안전해야 충분히 안전한가)”라는 논제와 원전의 경제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가이아 이론’ 창시자 러브록 “지구의 재앙을 늦추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원자력뿐”

수출진흥을 위해 정부가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원전 도입 희망국가가 외국에 원전 건설을 주문할 때 결정적 변수는 ‘안전’이다. 그동안 우리 원전이 보여준 안전성을 돋보이게 한다면,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에 우리가 세계 원전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학연(産學硏)이 협심해 만든 ‘원전수출진흥협회’를 최대한 지원해 국내 원전 관련 산업 간 협력, 공동연구, 홍보 등의 분야에서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고는 원자력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국가 간 신뢰도 무엇보다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했다. 그러므로 긴밀한 국제공조도 필요하다. 한 국가에서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인접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방사능 수치를 비롯한 사고 관련 정보가 자동으로 전달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인접원자력정보교환기구(가칭)’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원자력은 ‘제3의 불’로 우리 인류의 문명발전을 위해 그 역할이 매우 컸다. ‘탄생의 원죄(원자폭탄)’, 스리마일ㆍ체르노빌ㆍ후쿠시마 사고, 방사성 폐기물 문제 등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원자력은 지구촌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재까지 인류가 찾아낸 유일한 방안이다.

‘가이아(Gaia) 이론’의 창시자인 러브록 박사는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미래 에너지를 두고 기약 없는 실험을 계속할 시간이 없다”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의 재앙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원자력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원전’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고, ‘위험’을 줄이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인류의 번영을 바라지 않는 것이 아닌 한 그 길 외에 현재로선 다른 대안이 없다.⊙

원자력 안전 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