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조수진씨.
“그 친구가 조금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지난 3월 5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후배의 목소리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런 일쯤은 예견을 했어야 옳다. 후배가 부음(訃音)을 전한 ‘그 친구’는 6년째 임파선암(癌) 투병을 해 왔다. 암 환자들에게 ‘죽음’이란 어찌 보면 등짝에 달고 살아야 하는 달갑지 않은 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전화에 한동안 멍했던 것은 ‘그 친구’의 씩씩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불과 20여 일 전에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월간조선》에 만화 연재를 할 의욕을 불태웠다. 우리는 구체적인 연재 횟수, 내용, 원고료 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볼 수 없게 됐지만, 《월간조선》 4월호부터 그의 이름을 내건 만화가 실릴 예정이었다. 그러잖아도 원고를 준비해야 하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월요일에 연락을 취할 참이었다. 그런 씩씩했던 서른둘의 아가씨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니….
기자가 고(故) 조수진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송년(送年)의 분위기에 휩쓸려 있을 무렵, 후배가 건넨 《오방떡 소녀의 행복한 날들》(책으로여는세상)이라는 책을 보게 됐다. 아기자기한 만화가 그려진 저자의 자서전이었다. 기자에게 책을 건넨 후배의 친한 친구라는데, 책 속의 사연이 퍽 딱했다. 일반인이 평생 겪지 않을 일을 20대(代)에 겪어야 했던 젊은이의 녹록지 않은 인생이 담겨 있었다. 우울하기 그지없는 내용은 발랄한 만화로, 예쁜 언어로 포장돼 기자의 눈시울을 붉혔다.
책의 저자 조수진씨는 대전과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삼성카드에 입사(入社)해 사회생활을 만끽하던 와중에 임파선암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섯.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핑크빛 미래에 설레어야 할 20대의 아가씨는 모든 생활을 접고 암투병 환자로 산다. 그리고 2009년, 암 환자의 소소한 일상과 기쁨, 슬픔, 그리고 희망을 담은 자전적 만화책 《암은 암, 청춘은 청춘》에 이어 이번 책을 낸 것이었다.
기자는 이 책에서 ‘희망’을 엿봤고, 편집장과 상의해 그의 만화를 《월간조선》에 싣기로 했다. 이후 그에게 몇 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는 도통 답이 없었다. 낯선 번호를 받지 않는 것인가 싶어 문자를 남겼다. 지난 1월 25일, 그에게서 답변이 왔다.
“조수진입니다. 제가 말을 전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읽고 제가 생각을 한 후에 답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는 이메일 주소를 보내 왔다. ‘말을 못하는 상황’이라는 대목에서 살짝 걱정이 됐다. 증세가 많이 악화된 암투병 환자에게 괜한 제안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메일을 보냈다. 만화를 연재하고 싶은 이유,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지, 또 조수진씨의 건강 상태에 대한 염려를 조심스럽게 이메일에 담았다. 몇몇 선배의 ‘우리가 괜히 아픈 사람에게 더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고는 또 한참 지났을 때 반가운 메일이 왔다. 그의 답이었다. 그는 책에서 봤듯이, 여전히 발랄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오방떡소녀 조수진입니다.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많이 안좋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감사한 제안에 최대한 잘해 보고 싶습니다. 원고료 액수는 문제가 아니고요~^^. 제 만화를 읽고 한 분이라도 감동을 받게 되시면 좋겠어요.”
그는 젊은이 특유의 이모티콘(^^)을 써 가며, 열정을 보였다. 다만 건강문제로 게재 일정에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출판사에 먼저 물어보겠다는 등 구체적인 얘기들이 오갔다. 불과 20일 뒤에 세상을 떠날 사람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만큼 삶에 당당했고, 만화 연재에 애착을 보였다.
봄이 갓 시작되는 길목에서 그는 결국 연재를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기자는 생각한다. 그가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희망 메시지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의 모습처럼, 밝고 건강한 희망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3월 5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후배의 목소리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런 일쯤은 예견을 했어야 옳다. 후배가 부음(訃音)을 전한 ‘그 친구’는 6년째 임파선암(癌) 투병을 해 왔다. 암 환자들에게 ‘죽음’이란 어찌 보면 등짝에 달고 살아야 하는 달갑지 않은 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전화에 한동안 멍했던 것은 ‘그 친구’의 씩씩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불과 20여 일 전에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월간조선》에 만화 연재를 할 의욕을 불태웠다. 우리는 구체적인 연재 횟수, 내용, 원고료 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볼 수 없게 됐지만, 《월간조선》 4월호부터 그의 이름을 내건 만화가 실릴 예정이었다. 그러잖아도 원고를 준비해야 하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월요일에 연락을 취할 참이었다. 그런 씩씩했던 서른둘의 아가씨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니….
기자가 고(故) 조수진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송년(送年)의 분위기에 휩쓸려 있을 무렵, 후배가 건넨 《오방떡 소녀의 행복한 날들》(책으로여는세상)이라는 책을 보게 됐다. 아기자기한 만화가 그려진 저자의 자서전이었다. 기자에게 책을 건넨 후배의 친한 친구라는데, 책 속의 사연이 퍽 딱했다. 일반인이 평생 겪지 않을 일을 20대(代)에 겪어야 했던 젊은이의 녹록지 않은 인생이 담겨 있었다. 우울하기 그지없는 내용은 발랄한 만화로, 예쁜 언어로 포장돼 기자의 눈시울을 붉혔다.
책의 저자 조수진씨는 대전과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삼성카드에 입사(入社)해 사회생활을 만끽하던 와중에 임파선암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섯.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핑크빛 미래에 설레어야 할 20대의 아가씨는 모든 생활을 접고 암투병 환자로 산다. 그리고 2009년, 암 환자의 소소한 일상과 기쁨, 슬픔, 그리고 희망을 담은 자전적 만화책 《암은 암, 청춘은 청춘》에 이어 이번 책을 낸 것이었다.
기자는 이 책에서 ‘희망’을 엿봤고, 편집장과 상의해 그의 만화를 《월간조선》에 싣기로 했다. 이후 그에게 몇 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는 도통 답이 없었다. 낯선 번호를 받지 않는 것인가 싶어 문자를 남겼다. 지난 1월 25일, 그에게서 답변이 왔다.
“조수진입니다. 제가 말을 전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읽고 제가 생각을 한 후에 답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는 이메일 주소를 보내 왔다. ‘말을 못하는 상황’이라는 대목에서 살짝 걱정이 됐다. 증세가 많이 악화된 암투병 환자에게 괜한 제안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메일을 보냈다. 만화를 연재하고 싶은 이유,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지, 또 조수진씨의 건강 상태에 대한 염려를 조심스럽게 이메일에 담았다. 몇몇 선배의 ‘우리가 괜히 아픈 사람에게 더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고는 또 한참 지났을 때 반가운 메일이 왔다. 그의 답이었다. 그는 책에서 봤듯이, 여전히 발랄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오방떡소녀 조수진입니다.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많이 안좋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감사한 제안에 최대한 잘해 보고 싶습니다. 원고료 액수는 문제가 아니고요~^^. 제 만화를 읽고 한 분이라도 감동을 받게 되시면 좋겠어요.”
그는 젊은이 특유의 이모티콘(^^)을 써 가며, 열정을 보였다. 다만 건강문제로 게재 일정에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출판사에 먼저 물어보겠다는 등 구체적인 얘기들이 오갔다. 불과 20일 뒤에 세상을 떠날 사람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만큼 삶에 당당했고, 만화 연재에 애착을 보였다.
봄이 갓 시작되는 길목에서 그는 결국 연재를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기자는 생각한다. 그가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희망 메시지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의 모습처럼, 밝고 건강한 희망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